무비스님, 임제록 강설-감변(勘辨) 19. 20. 21. 22-1. 22-2
19 범부인가 성인인가
師一日(사일일)에 與河陽(여하양)과 木塔長老(목탑장노)로 同在僧堂地爐內坐(동재승당지노내좌)하야 因說普化每日(인설보화매일)에 在街市(재가시)하야 ?風?顚(경풍경전)하니 知他是凡是聖(지타시범시성)가 言猶未了(언유미료)에 普化入來(보화입래)어늘 師便問(사편운), 汝是凡是聖(여시범시성)가 普化云(보화운), 汝且道(여차도)하라 我是凡是聖(아시범시성)가 師便喝(사편할)하니 普化以手指云(보화이수지운), 河陽新婦子(하양신부자)요 木塔老婆禪(목탑노파선)이요 臨濟小?兒(임제소시아)라 却具一隻眼(각구일천안)이로다 師云(사운), 這賊(자적)아 普化云(보화운), 賊賊(적적)하고 便出去(편출거)하다
임제스님이 하루는 하양장로와 목탑장로와 함께 승당에 있는 화로 가에서
불을 쬐고 있다가 보화스님의 이야기를 하였다.
“보화가 매일 길거리에서 미치광이 짓을 하는데 도대체 그가 범부인가요, 성인인가요?”
말이 끝나기도 전이 보화스님이 들어오자 임제스님이 보화스님에게 바로 물었다.
“그대는 범부인가, 성인인가?”
“그대가 먼저 말씀해 보시오, 내가 범부입니까? 성인입니까?”
임제스님이 “할!”을 하니 보화스님이 손으로 사람들을 가리키면서,
“하양은 새색시이고, 목탑은 노파선인데, 임제는 어린 종이다.
그러나 각각 한 개의 눈을 갖추었다.” 하였다.
임제스님이 “야 이 도적놈아!” 하자 보화스님이 “도적을 도적질 한 놈아!” 하면서 나가 버렸다.
(강의)
성인인지 범부인지는 그만두고 역시 보화가 한 수 위다.
임제는 도적을 도적질 한 대단한 도적이지만
그것을 간파해버린 보화는 뛰는 놈 위의 나는 놈이다.
그리고 보화스님이 세 화상을 평한 말을 들어보라.
그들의 인생이다. 얼마나 멋있는가.
간소(簡素)하다. 고고(枯槁)하다. 유현(幽玄)하다.
자연(自然)하다. 적정(寂靜)하다.
이것이 선이다. 멋의 극치다.
인간이 이르러갈 수 있는 최고의 경지다.
20 당나귀 한 마리
一日(일일)은 普化在僧堂前(보화재승단전)하야 喫生菜(긱생채)어늘 師見云(사견운), 大似一頭驢(대사일두여)로다 普化便作驢鳴(보화편작여명)한대 師云(사운), 這賊(자적)아 普化云(보화운) 賊賊(적적)하고 便出去(편출거)하니라
하루는 보화스님이 승당 앞에서 생야채를 먹고 있으니
임제스님이 보시고, “꼭 한 마리의 당나귀 같구나.” 하셨다.
보화스님이 곧 바로 당나귀 울음소리를 내니
임제스님이 “야 이 도적놈아!” 하였다.
보화스님이 “도적을 도적질 한 놈아!” 하면서 나가 버렸다.
(강의)
멋지다. 깔끔하다. 기가 막힌다. 선문답치고는 최고다.
보화는 임제보다 언제나 한 수 위다. 그래서 더 멋지다.
조연의 연기가 주연의 연기보다 훨씬 더 근사하다.
자신보다 더 훌륭한 사람과 함께하면서 자신의 교화활동을
돕게 하는 그 사람 임제를 우리는 또 어떻게 보아야 할런지.
자고로 뛰어난 사람은 자신보다 더 뛰어난 사람을 곁에 두고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다.
유비와 제갈량의 관계가 그 좋은 예다.
21 나는 처음부터 그를 의심하였다
因普化(인보화)가 常於街市搖鈴云(상어가시요령운), 明頭來明頭打(명두래명두타)하고 暗頭來暗頭打(암두래암두타)하며 四方八面來旋風打(사방팔면래선풍타)하고 虛空來連架打(허공래연가타)하노라 師令侍者去(사령시자거)하야 ?見如是道(재견여시도)하고 便把住云(편파주운), 總不與?來時如何(총불여마래시여하)오 普化托開云(보화탁개운), 來日(내일)에 大悲院裏有齋(대비원리유재)니라 侍者回擧似師(시자회거사사)한대 師云(사운), 我從來(아종래)로 疑著這漢(의착자한)이로다
보화스님은 항상 거리에서 요령을 흔들며 말하였다.
“밝음으로 오면 밝음으로 치고, 어두움으로 오면 어두움으로 치며,
사방 팔면으로 오면 회오리바람처럼 치고, 허공으로 오면 도리깨질로 연거푸 친다.”
임제스님이 시자를 보내며 “보화스님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바로
멱살을 움켜잡고 ‘아무 것도 오지 않을 때는 어찌하십니까?’ 하고 물어 보라.” 하였다.
그대로 하자 보화스님은 시자를 밀쳐 버리면서,
“내일 대비원에서 재가 있느니라.”고 하였다.
시자가 돌아와 말씀드리니 임제스님이 말씀하였다.
“나는 벌써부터 그를 의심해 왔다.”
(강의)
명두래 명두타(明頭來 明頭打) 암두래 암두타(暗頭來 暗頭打)는 아주 유명한 선어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상사에서부터 노병사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문제가 일어나더라도 자연스럽고 적절하게 그리고 능수능란하게 대처한다.
부처와 조사와 보살과 아라한의 문제라 하더라도,
여래선과 조사선과 향상일로의 문제라 하더라도 누워서 떡 먹듯이 해결한다.
일천칠백 공안뿐만 아니라 일만 칠천공안이라 하더라도 식은 죽 먹기다.
“아무런 일이 없고 어떤 문제도 일어나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내일 대비원에 재가 있단다. 재 지내는데 가서 재밥이나 얻어먹자.”
임제스님이 그를 의심했다는 말은 보화스님의 견처(見處)와 그가 법을 거량하는 것이
자신을 훨씬 능가하는 대단한 스님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누구도 따를 수 없고 가늠할 수도 없는 신묘불측(神妙不測)한 경지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22-1 한 노스님을 점검하다
有一老宿(유일노숙)이 參師(참사)할새 未曾人事(미증인사)하고 便問(편문), 禮拜卽是(예배즉시)아 不禮拜卽是(불예배즉시)아 師便喝(사편할)한대 老宿便禮拜(노숙편예배)라 師云(사운), 好箇草賊(호개초적)이로다 老宿云(노숙운), 賊賊(적적)하고 便出去(편출거)하니 師云(사운), 莫道無事好(막도무사호)니라
어떤 한 노스님이 임제스님을 찾아뵙고 인사도 나누기 전에
“절을 해야겠습니까. 절을 하지 않아야겠습니까?” 라고 물었다.
임제스님이 곧 “할!”을 하므로 그 노스님이 곧바로 절을 하였다.
임제스님이 “정말 좀도둑이로다.” 하였다.
그러자 노스님이 “도둑을 도둑질하는 놈.” 하고 나가 버렸다.
임제스님이 “무사한 것이 좋다고 말하지 말라.”고 하였다.
(강의)
매우 깔끔한 선문답이다.
떠나버린 그 노스님이 아쉬워서 “나에게 한 방 먹이고
그렇게 무사히 벗어났다고 꼭 좋은 것은 아니다.”라고 여운을 남겼다.
22-2 수좌를 점검하다
首座侍立次(수좌시립차)에 師云(사운), 還有過也無(환유과야무)아 首座云(수좌운), 有(유)니라 師云(사운), 賓家有過(빈가유과)아 主家有過(주가유과)아 首座云(수좌운), 二俱有過(이구유과)니라 師云(사운), 過在什?處(과재십마처)오 首座便出去(수좌편출거)하니 師云(사운), 莫道無事好(막도무사호)니라 後有僧擧似南泉(휴유승거사남전)한대 南泉云(남전운), 官馬相踏(관마상답)이로다
임제스님이 옆에서 모시고 서 있는 수좌에게 물었다.
“허물이 있는가? 없는가?”
“예. 허물이 있습니다.”
“손님 쪽에 있는가? 주인 쪽에 있는가?”
“두 쪽에 다 있습니다.”
“허물이 어디에 있는가?”
수좌가 그냥 나가 버리니 임제스님이 말씀하였다.
“무사한 것이 좋다고 말하지 말라.”
뒤에 어떤 스님이 이 일을 남전스님에게 말씀드리니
남전스님께서 “관군들의 말끼리 서로 차고 밟는 격이다.” 하였다.
(강의)
임제스님의 법을 훔쳐본 앞의 한 노스님이 도적이라면 임제스님과 수좌는 그 도적을 잡으려는 관군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다가 도적은 어디로 가고 관군들의 말끼리 서로 부딪히면서 차고 밟는 격이 되어 버렸다.
공연히 자기들 끼리 허물이 있느니 없느니 하면서 티격태격 하다가 그만 남전스님에게 들켜버렸다.
남전스님의 평이 좋다.
떠나버린 노스님이 임제스님에겐 왠지 좀 아쉬웠던 것 같다.
앞에서도 여기에서도 “무사한 것이 좋다고 말하지 말라.”라고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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