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님, 임제록 강설-감변(勘辨) 23. 24. 25-1. 25-2. 26
23 한낱 나무토막이로다
師(사) 因入軍營赴齋(인입군영부재)할새 門首(문수)에 見員僚(견원요)하고 師指露柱問(사지노주문)호대 是凡是聖(시범시성)가 員僚無語(원요무어)어늘 師打露柱云(사타노주운), 直饒道得(직요요득)이라도 也祇是箇木?(야지시개목궐)이라하고 便入去(편입거)하니라
임제스님이 군부대에 재가 있어서 초대를 받아 갔을 때다.
문 앞에서 군인을 만나자 천막 기둥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것이 범부인가? 성인인가?”
군인이 아무런 대꾸가 없자 스님께서 기둥을 두드리며
“설사 잘 대답했더라도 다만 한낱 나무토막일 뿐이다.” 하고는 곧 들어가 버렸다.
(강의)
장난꾼 임제여,
군 막사에서 경비를 서는 졸병에게 그 무슨 해괴망측한 짓인가.
달마를 모르는 어느 시골 아낙에게 달마 불식(不識)의 도리를
열심히 설파하던 어느 도반이 생각난다.
군인도 임제도, 도반도 아낙도 모두가 한낱 나무토막이로다.
이곳에 이르러서는 나 또한 한낱 나무토막이로다.
24 원주와 별좌를 점검하다
師(사) 問院主(문원주) 什?處來(십마처래)오 主云(주운), 州中?黃米去來(주종조황미거래)니다 師云(사운), ?得盡?(조득진마)아 主云(주운), ?得盡(조득진)이니다 師以杖(사이장)으로 面前(면전)에 ?一?云, 還?得這箇?(획일획운환조득자개마)아 主便喝(주편할)한대 師便打(사편타)하다 典座至(전좌지)어늘 師擧前話(사거전화)한대 典座云(전좌운), 院主不會和尙意(원주불회화상의)니다 師云(사운), ?作?生(이자마생)고 典座便禮拜(전좌편예배)한대 師亦打(사역타)하니라
임제스님이 원주에게 물었다.
“어딜 갔다 오느냐?”
“시내에 쌀을 사러갔다 옵니다.”
“그래 다 사왔느냐?”
“예, 다 사왔습니다.”
임제스님이 지팡이로 원주의 앞에다 한 획을 그으면서
“그래, 이것도 살 수 있느냐?” 하였다.
원주가 곧 “할!”을 하므로 임제스님이 그대로 후려 갈겼다.
별좌가 오자 임제스님이 앞의 이야기를 들려주니
별좌가 “원주가 큰스님의 뜻을 몰랐습니다.”하였다.
“그럼 네 생각은 어떠냐?” 하시니 별좌가 절을 하였다.
임제스님은 그에게도 역시 후려쳤다.
(강의)
조실과 원주, 별좌, 참 잘 모였다.
옛날에는 아니 임제스님 당시에는 원주, 별좌, 공양주 같은
소임을 보는 사람은 모두 한 소식을 한 사람들이었다.
수행하는 대중들의 시중을 드는 소임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실은 원주를 점검하고 다시 별좌를 점검하였다.
모두가 합격점이다.
소임 때문에 미혹할 사람들도 아니지만
그래도 조실이 가끔은 이렇게 점검을 하는 것이 관례였다.
원주의 소임과 법거량의 소재가 너무나 절묘하다.
숨이 막힐 지경이다.
25-1 강사를 점검하다
有座主(유좌주)하야 來相看次(내상간차)에 師問(사문), 座主(좌주)야 講何經論(강하경론)고 主云(주운), 某甲荒虛(모갑황허)하야 粗習百法論(조습백법논)이니다 師云(사운), 有一人(유일인)은 於三乘十二分敎(어삼승십이분교)에 明得(명득)하고 有一人(유일인)은 於三乘十二分敎(어삼승십이분교)에 明不得(명부득)하니 是同是別(시동시별)가 主云(주운), 明得卽同(명득즉동)이요 明不得卽別(명부득즉별)이니다
어떤 강사스님이 있어서 서로 인사를 나눌 때 임제스님이
“강사스님은 무슨 경론을 강의하는가?” 라고 물으니
“저는 아는 것이 모자랍니다. 그저 백법론을 조금 익혔을 뿐입니다.” 하였다.
임제스님이 “한 사람은 삼승 십이분교에 통달하였고,
한 사람은 삼승 십이분교에 통달하지 못하였다면 같은가? 다른가?” 하시니
강사스님이 “통달했다면 같겠지만 통달하지 못했다면 다릅니다.”라고 하였다.
(강의)
소위 성불을 한 사람과 성불을 하지 못한 사람도 같다.
깨달은 사람과 깨닫지 못한 사람도 같다.
같다는 이치를 아는 사람과 같다는 이치를 모르는 사람도 같다.
팔만대장경을 아는 사람과 팔만대장경을 모르는 사람도 같다.
강사스님, 삼승십이분교를 알아도 같고 몰라도 같습니다.
그러나 같은 것을 이렇게 같다고 표현한 것은 정말 재미없는 일입니다.
죄송합니다.
임제스님이 나에게 물었으면 손이나 한 번 흔들어 보이면서
“같습니까? 다릅니까?” 했을 텐데.
25-2 시자를 점검하다
樂普爲侍者(낙보위시자)하야 在師後立云(재사후립운), 座主(좌주)야 這裏是什?所在(자리시십마소재)관대 說同說別(설동설별)고 師回首問侍者(사회수문시자)호대 汝又作?生(여우자마생)고 侍者便喝(시자편할)하다 師送座主回來(사송좌주회래)하야 遂問侍者(수문시자)호되 適來是汝喝老僧(적래시여할노승)가 侍者云(시자운), 是(시)니다 師便打(사편타)하니라
낙보스님이 시자로 있었는데 임제스님의 뒤에 서 있다가
“강사스님께서는 여기가 어디라고 같다느니 다르다느니 하십니까?” 하였다.
임제스님이 시자를 돌아보시며 “그래 너는 어떻다고 보느냐?” 라고 물으니
시자가 곧 “할!”을 하였다.
임제스님이 강사스님을 보내고 돌아와서 낙보스님에게
“조금 전에 나에게 ‘할!’을 하였느냐?” 라고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하니 그대로 후려쳤다.
(강의)
임제의 점검에 시자가 “할”로써 대하였다.
그 가풍을 잘도 이어받은 샘이다.
하지만 백전노장인 임제의 마수에 시자는 걸려들었다.
강사스님을 보내고 나서 느긋하게 시자를 다시 점검하고
한 방을 내리는 그 노련함이 징그러울 정도로 돋보인다.
특유의 전광석화는 간데없고 한 여름 낮에 큰 구렁이가 담을 넘어가는 듯하다.
26 덕산스님을 점검하다
師聞(사문), 第二代德山(제이대덕산)이 垂示云(수시운), 道得也三十棒(도득야삼십방)이요 道不得也三十棒(도부득야삼십방)이니라 師令樂普去問(사령낙보거문)호되 道得爲什?(도득위십마)하야 也三十棒(야삼십방)고 待伊打汝(대이타여)하야 接住棒送一送(접주방송일송)하야 看他作?生(간타자마생)하라 普到彼(보도피)하야 如敎而問(여교이문)한대 德山便打(덕산편타)어늘 普接住送一送(보접주송일송)하니 德山便歸方丈(덕산편귀방장)이라 普回擧似師(보회거사사)한대 師云(사운), 我從來(아종래)로 疑著這漢(의착자한)이로다 雖然如是(수연여시)나 汝還見德山?(여환견덕산마)아 普擬議(보의의)하니 師便打(사편타)하다
임제스님은 제2대 덕산스님이 대중에게 법문을 하면서
“대답을 해도 30방, 대답을 못해도 30방이다.”라고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시자로 있던 낙보스님을 보내면서,
“대답을 했는데 어찌하여 몽둥이 30방입니까? 라고 물어보아라.
그가 만약 너를 때리면 그 몽둥이를 잡아 던져버리라.
그리고 그가 어찌 하는가를 보아라.”라고 시켰다.
낙보스님이 그곳에 도착하여 시킨 대로 물으니, 덕산스님이 곧 후려치므로
몽둥이를 붙잡고 던져버리니 덕산스님이 곧 방장실로 돌아가 버렸다.
낙보스님이 돌아와 임제스님께 그대로 말씀드리니,
“나는 이전부터 그 자를 의심하고 있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너는 덕산을 보았는가?”
낙보스님이 머뭇거리자 임제스님이 곧 후려쳐버렸다.
(강의)
낙보스님이 대신해서 점검해본 덕산은 역시 듣던 대로다.
대단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덕산이 누군가.
천하에 임제가 있다면 덕산이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단하산에 가면 이런 말이 있다.
‘천하에 계림이 있는 줄 아는 사람은 여기에 단하산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면 안된다.’
닭을 쫒던 개가 되어버린 임제는 죄 없는 낙보스님만 다그친다.
그리고는 으레 따르는 한 방을 내린다.
시자를 대신해서 점검하는 예는 허다히 있는 일이다.
시자가 눈이 밝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마조(馬祖)스님이 대매법상(大梅法常)을 점검한 일도 그와 같다.
마조에게 지금 이 마음이 곧 부처[卽心是佛]라는 말을 들은 법상은
그것으로 훌륭하다는 신념으로 대매산에 들어가서 홀로 살았다.
마조스님이 하루는 법상이 생각이 나서 시자를 보내어 점검하게 했다.
시자를 맞이한 법상은 “나는 지금 이 마음이 부처라는 신념으로 삽니다.”라고 하니까
시자는 “요즘 마조스님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라[非心非佛]고 합니다.”
“그 노장이야 그렇게 하든 말든 나는 지금 이 마음이 부처일새.”라고 했다.
시자가 그대로 가서 마조스님에게 말씀드리니 마조스님이
“대매산(大梅山)의 매실이 어지간히 익었구나.”라고 하였다.
대혜(大慧)스님도 시자를 시켜 공부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편지를 전하기도 하고 직접 점검도 하고 지도도 하면서
교화한 사실이 서장(書狀)에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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