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윳따니까야 (Saṁyutta Nikāya) 주제별로 모은 경
제3권 오온을 위주로 한 가르침
Khandha-vagga
제22주제(S22)
무더기(존재의 다발)[蘊] 상윳따
Khandha-saṁyutta
Ⅰ. 처음 50개 경들의 묶음(근본오십경)
Mūlapaññāsaka
제1장 나꿀라삐따 품
Nakulapitā-vagga
나꿀라삐따 경(S22:1)
Nakulapitā-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박가의 쑹수마라기리에 있는 베사깔라바나의 숲에 머물고 계셨다.
2. 그 무렵 나꿀라삐따 장자가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나꿀라삐따 장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3.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늙어서 나이 들고 노쇠한데다 만년에 저의 몸은 병이 들었고 저는 끊임없이 병고에 시달립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나 저는 세존과 바른 마음을 깨우쳐 주는 고귀한 비구들을 거의 친견하지 못합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제가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저를 이끌어 주십시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저에게 가르침을 베풀어 주십시오.”
註) 바른 마음을 깨우쳐 주는 고귀한 비구(manobhavaniyanam bhikkhunam)붓다고사에 의하면, 마음을 성장하게 하는 사람들로 만약에 그분들을 볼 때에 선이나 선의 위력으로 마음이 성장하면 그들을 monobhavaniya 라고 부른다. 사리뿟따나 마하목갈라나 존자같은 분들이다.
4. “참으로 그러하다, 장자여. 참으로 그러하다, 장자여. 그대의 몸은 병으로 허약하고 참으로 늙어 버렸다.
장자여, 이런 몸을 끌고 다니면서 잠시라도 건강하다고 자부한다면 어찌 어리석은 사람과 다르지 않겠는가?
장자여, 그러므로 그대는 이와 같이 생각하고 배워야 한다.
‘나의 몸은 병들었지만 마음은 병들지 않을 것이다(괴롭고 병든 몸에서 항상 괴롭지도 병들지도 않는 마음을 닦을 것이다).’라고 그대는 이와 같이 생각하고 배워야 한다.”
5. 그러자 나꿀리삐따 장자는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고 감사드린 뒤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돌아 경의를 표한 뒤에 사리뿟따 존자가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사리뿟따 존자에게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나꿀라삐따 장자에게 사리뿟따 존자는 이렇게 말했다.
6. “장자여, 그대의 감각기관들은 참으로 고요하고 안색은 아주 맑고 빛납니다. 오늘 그대는 세존의 면전에서 법문을 들었습니까?”
“사리뿟따 존자시여, 어찌 아니겠습니까? 오늘 저는 세존으로부터 감로와 같은 법문과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장자여, 그러면 그대는 어떻게 세존으로부터 감로의 법문과 가르침을 들었습니까?”
7. “존자시여, 오늘 저는 세존께 다가갔습니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습니다. 한 곁에 앉은 저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늙어서 나이 들고 노쇠한데다 만년에 저의 몸은 병이 들었고 저는 끊임없이 병고에 시달립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나 저는 세존과 바른 마음을 깨우쳐 주는 고귀한 비구들을 거의 친견하지 못합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제가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저를 이끌어 주십시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저에게 가르침을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이렇게 말씀드리자 세존께서는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그러하다, 장자여. 참으로 그러하다, 장자여. 그대의 몸은 병으로 허약하고 참으로 늙어 버렸다. 장자여, 이런 몸을 끌고 다니면서 잠시라도 건강하다고 자부한다면 어찌 어리석은 사람과 다르지 않겠는가? 장자여, 그러므로 그대는 이와 같이 생각하고 배워야 한다. ‘나의 몸은 병들었지만 마음은 병들지 않을 것이다(괴롭고 병든 몸에서 항상 괴롭지도 병들지도 않는 마음을 닦을 것이다).’라고 그대는 이와 같이 생각하고 배워야 한다.'라고.
존자시여, 저는 이와 같이 세존으로부터 감로의 법문과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8. “장자여, 그런데 그대는 세존께 ‘세존이시여, 그러면 어떤 것이 몸도 병들어 괴롭고 마음도 병들어 괴로운 것이며 그리고 어떤 것은 몸은 병들어 괴롭지만 마음은 병들지도 괴롭지도 않은 것입니까?’라고 더 질문을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습니까?”
“사리뿟다 존자시여, 저는 존자 사리뿟따를 직접 뵙고 이 말씀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멀리서 찾아 온 것입니다. 그러니 사리뿟따 존자께서 이 말씀의 뜻을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9. “장자여, 그렇다면 이제 들으십시오. 듣고 마음에 잘 새기십시오. 나는 설할 것입니다.”
“존자시여,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나꿀라삐다 장자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대답했다.
10. 사리뿟따 존자는 이렇게 말했다.
“장자여, 그러면 어떤 것이 몸도 병들어 괴롭고 마음도 병들어 괴로운 것입니까?
장자여, 여기에 성자을 알아보지 못하고 성스러운 가르침(法.법)을 알지 못하고 성스러운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한 무지한 범부가 있습니다. 그는 훙륭한 스승을 알아보지 못하고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으로 인도되지 못하여, 물질(물질적 요소. 色)을 자아(나)라고 간주하고(관찰하고), 물질을 가진 것이 자아(나)라고 간주하고, 물질이 자아 안에 있다고 간주하고, 물질 안에 자아가 있다고 간주합니다.
그는 ‘나는 물질이다. 물질은 내 것이다.’라는 견해에 사로잡혀 속박되어 지냅니다.
그러나 이처럼 ‘나는 물질이다. 물질은 내 것이다.’라는 견해에 사로잡힌 사람의 물질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기 때문에(달라지기 때문에) 그에게는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납니다.”
註)유신견(有身見.sakaaya ditthi)를 말함. 1)오온을 자아라고 2)오온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3)오온이 자아안에 있다고 4) 오온 안에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임. 유신견은 성자와 범부를 구분 짓는고 판가름하는 기준이다. 유신견을 버리지 못했다면 그는 결코 성자의 반열에 들어서지 못할뿐더러 어떠한 깨달음도 증득하지 못한다. 아라한으로 가는 열가지 족쇄중의 첫번째가 유신견 타파이다.
11. “그는 느낌(감수작용.受)을 자아라고 간주하고, 느낌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간주하고, 느낌이 자아 안에 있다고 간주하고, 느낌 안에 자아가 있다고 간주합니다. 그는 ‘나는 느낌이다. 느낌은 내 것이다.’라는 견해에 사로잡혀 속박되어 지냅니다. 그러나 이처럼 ‘나는 느낌이다. 느낌은 내 것이다.’라는 견해에 사로잡힌 사람의 느낌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기 때문에 그에게는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납니다.”
12. “그는 인식(지각작용.想)을 자아라고 간주하고, 인식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간주하고, 인식이 자아 안에 있다고 간주하고, 인식 안에 자아가 있다고 간주합니다. 그는 ‘나는 인식이다. 인식은 내 것이다.’라는 견해에 사로잡혀 속박되어 지냅니다. 그러나 이처럼 ‘나는 인식이다. 인식은 내 것이다.’라는 견해에 사로잡힌 자의 인식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기 때문에 그에게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납니다.”
13. “그는 형성(형성작용.行)이 자아라고 간주하고, 형성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간주하고, 형성이 자아 안에 있다고 간주하고, 형성 안에 자아가 있다고 간주합니다. 그는 ‘나는 형성이다. 형성은 내 것이다.’라는 견해에 사로잡혀 속박되어 지냅니다. 그러나 이처럼 ‘나는 형성이다. 형성은 내 것이다.’라는 견해에 사로잡힌 사람의 형성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기 때문에 그에게는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납니다.”
14. “그는 의식(식별작용.識)을 자아라고 간주하고, 의식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간주하고, 의식이 자아 안에 있다고 간주하고, 의식 안에 자아가 있다고 간주합니다. 그는 ‘나는 의식이다. 의식은 내 것이다.’라는 견해에 사로잡혀 속박되어 지냅니다. 그러나 이처럼 ‘나는 의식이다. 의식은 내 것이다.’라는 견해에 사로잡힌 사람의 의식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기 때문에 그에게는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납니다.”
장자여, 이것이 몸도 병들어 괴롭고 마음도 병들어 괴로운 것입니다.
15. “장자여, 그러면 어떤 것이 몸은 병들어 괴롭지만 마음은 병들지 괴롭지도 않은 것입니까?
장자여, 여기에 성자를 알아보고 성스러운 법을 알고 성스러운 분의 가르침에 인도된 잘 배운 제자가 있습니다. 그는 훌륭한 스승을 알아보고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을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에 인도되어, 물질을 자아(나)라고 간주하지(관찰하지) 않고, 물질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간주하지 않고, 물질(물질적 요소)이 자아 안에 있다고 간주하지 않고, 물질 안에 자아가 있다고 간주하지 않습니다. 그는 ‘나는 물질이다. 물질은 내 것이다.’라는 견해에 사로잡혀 속박되어 지내지 않습니다. 이처럼 ‘나는 물질이다. 물질은 내 것이다.’라는 견해에 사로잡히지 않은 사람의 물질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 가지만 그에게는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16. “그는 느낌을 자아라고 간주하지 않고, 느낌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간주하지 않고, 느낌이 자아 안에 있다고 간주하지 않고, 느낌 안에 자아가 있다고 간주하지 않습니다. 그는 ‘나는 느낌이다. 느낌은 내 것이다.’라는 견해에 사로잡혀 지내지 않습니다. 이처럼 ‘나는 느낌이다. 느낌은 내 것이다.’라는 견해에 사로잡히지 않은 사람의 느낌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지만 그에게는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17. “그는 인식이 자아라고 간주하지 않고, 인식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간주하지 않고, 인식이 자아 안에 있다고 간주하지 않고, 인식 안에 자아가 있다고 간주하지 않습니다. 그는 ‘나는 인식이다. 인식은 내 것이다.’라는 견해에 사로잡혀 속박되어 지내지 않습니다. 이처럼 ‘나는 인식이다. 인식은 내 것이다.’라는 견해에 사로잡히지 않은 사람의 인식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지만 그에게는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18. “그는 형성을 자아라고 간주하지 않고, 형성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간주하지 않고, 형성이 자아 안에 있다고 간주하지 않고, 형성 안에 자아가 있다고 간주하지 않습니다. 그는 ‘나는 형성이다. 형성은 내 것이다.’라는 견해에 사로잡혀 속박되어 지내지 않습니다. 이처럼 ‘나는 형성이다. 형성은 내 것이다.’라는 견해에 사로잡히지 않은 사람의 형성은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지만 그에게는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19. “그는 의식이 자아라고 간주하지 않고, 의식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간주하지 않고, 의식이 자아 안에 있다고 간주하지 않고, 의식 안에 자아가 있다고 간주하지 않습니다. 그는 ‘나는 의식이다. 의식은 내 것이다.’라는 견해에 사로잡혀 속박되어 지내지 않습니다. 이처럼 ‘나는 의식이다. 의식은 내 것이다.’라는 견해에 사로잡히지 않은 사람의 의식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지만 그에게는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장자여, 이것이 몸은 병들어 괴롭지만 마음은 병들지 않고 괴롭지 않은 것입니다.”
20. 사리뿟따 존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꿀라삐따 장자는 마음이 흡족해져서 사리뿟따 존자의 말을 크게 기뻐하였다.
柱) 위 부분에 대해서는 "빠띠삼비다막가" 방에 올려져 있는 마하박가중에서 2. 견해에 대한 논의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으므로 필독하시기 바랍니다.
데와다하(데바다하) 경(S22:2)
Devadah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삭까의 데와다하라는 삭까족들의 성읍에 머물고 계셨다.
2. 그 무렵 서쪽 지방으로 가고자 하는 많은 비구들이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비구들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3.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서쪽 지방으로 가서 서쪽 지방에서 수행하며 거주하고자 합니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사리뿟따에게 물어보고 허락을 받았는가?”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사리뿟따 존자에게 물어보고 허락을 받지 않았습니다.”
“비구들이여, 사리뿟따에게 물어보아라.
비구들이여, 사리뿟따는 현자이다. 그는 청정범행을 닦는 비구들을 도와주는 고귀한 사람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4. “사리뿟따 존자는 세존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어떤 계수나무 숲에 앉아 있었다.
비구들은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고 감사드린 뒤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돌아 경의를 표한 뒤에 사리뿟따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사리뿟따 존자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나누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비구들은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사리뿟따여, 우리는 서쪽 지방으로 가서 서쪽 지방에서 수행하며 거주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스승님께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
5. “도반들이여, 호기심 많은 끄샤뜨리야의 현자들과 바라문의 현자들과 장자의 현자들과 사문의 현자들은 다른 지방으로 유행하는 비구들에게 질문을 합니다. 그들은
‘벗들이여, 그대들의 스승은 무엇을 설하고 가르치십니까?
그대들은 어떤 법들을 잘 배우고 잘 파악하고 마음에 잘 호지하고 통찰지로 잘 꿰뚫었습니까?
그대들이 그것을 설명하면 그대들의 스승이신 세존께서 설하신 것과 일치합니까?
그대 존자들은 세존을 거짓으로 헐뜯지 않고 세존께서 설하신 것을 반복하여 잘 설합니까? 그래서 어떤 동료수행자도 나쁜 견해에 빠져 비난을 받아야 할 이유를 만들지 않게 됩니까?’라고 알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도반이여, 이 말씀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저희들은 먼곳에서 사리뿟따의 존자를 찾아 왔습니다. 그러니 사리뿟따 존자가 이 말의 뜻을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6. “도반들이여, 그렇다면 이제 들으십시오. 듣고 마음에 잘 새기십시오. 나는 설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존자시여.”라고 비구들은 사리뿟따 존자에게 대답했다. 사리뿟따 존자는 이렇게 말했다.
7. “도반들이여, 다른 지방으로 유행하는 비구에게 ‘벗들이여, 그대의 스승은 무엇을 설하고 가르치십니까?(어떤 교설을 가졌습니까?)’라고 질문을 하는 호기심 많은 끄샤뜨리야의 현자들과 바라문의 현자들과 장자의 현자들과 사문의 현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도반들이여, 이렇게 질문을 받으면 그대들은 이렇게 설명해야 합니다.
‘벗들이여, 우리의 스승은 욕탐을 길들이는 것(욕망과 쾌락을 극복하는 것을)을 가르칩니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입니다.”
8. “이렇게 설명하면 호기심 많은 끄샤뜨리야의 현자들과 바라문의 현자들과 장자의 현자들과 사문의 현자들은 ‘벗들이여, 그대의 스승은 무엇에 대한 욕탐을 길들이는 것을 말씀하십니까?’라고 다시 더 질문을 할 것입니다.
도반들이여, 이렇게 질문을 받으면 그대들은 이렇게 설명해야 합니다. ‘벗들이여, 스승께서는
물질에 대한 욕탐을 길들이는 것을 설하셨습니다.
느낌에 대한 욕탐을 길들이는 것을 설하셨습니다.
인식에 대한 욕탐을 길들이는 것을 설하셨습니다.
형성에 대한 욕탐을 길들이는 것을 설하셨습니다.
의식에 대한 욕탐을 길들이는 것을 설하셨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입니다.”
9. “이렇게 설명하면 호기심 많은 끄샤뜨리야의 현자들과 바라문의 현자들과 장자의 현자들과 사문의 현자들은 ‘그러면 어떤 위험을 보기 때문에 존자들의 스승은
물질에 대한 욕탐을 길들이는 것을 설하셨습니까?
느낌에 대한 욕탐을 길들이는 것을 설하셨습니까?
인식에 대한 욕탐을 길들이는 것을 설하셨습니까?
형성에 대한 욕탐을 길들이는 것을 설하셨습니까?
의식에 대한 욕탐을 길들이는 것을 설하셨습니까?’라고 다시 더 질문을 할 것입니다.
도반들이여, 이렇게 질문을 받으면 그대들은 이렇게 설명해야 합니다.
‘벗들이여, 물질에 대한 탐욕을 여의지 못하고(떠나지 않고) 욕구를 여의지 못하고 욕망을 여의지 못하고 갈증을 여의지 못하고 갈애를 여의지 못하면, 그의 물질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기 때문에 그에게는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납니다(생겨납니다).
벗들이여, 느낌에 대한 탐욕을 여의지 못하고, 욕구를 여의지 못하고, 욕망을 여의지 못하고, 갈증을 여의지 못하고, 갈애를 여의지 못하면, 그의 의식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기 때문에 그에게는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납니다.
벗들이여, 인식에 대한 탐욕을 여의지 못하고, 욕구를 여의지 못하고, 욕망을 여의지 못하고, 갈증을 여의지 못하고, 갈애를 여의지 못하면, 그의 의식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기 때문에 그에게는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납니다.
벗들이여, 형성에 대한 탐욕을 여의지 못하고, 욕구를 여의지 못하고, 욕망을 여의지 못하고, 갈증을 여의지 못하고, 갈애를 여의지 못하면, 그의 의식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기 때문에 그에게는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납니다.
벗들이여, 의식에 대한 탐욕을 여의지 못하고, 욕구를 여의지 못하고, 욕망을 여의지 못하고, 갈증을 여의지 못하고, 갈애를 여의지 못하면, 그의 의식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기 때문에 그에게는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납니다.
벗들이여, 이러한 위험을 보기 때문에 우리의 스승께서는 물질에 대한 욕탐을 길들이는 것을 설하셨습니다.
벗들이여, 이러한 위험을 보기 때문에 우리의 스승께서는 느낌에 대한 욕탐을 길들이는 것을 설하셨습니다.
벗들이여, 이러한 위험을 보기 때문에 우리의 스승께서는 인식에 대한 욕탐을 길들이는 것을 설하셨습니다.
벗들이여, 이러한 위험을 보기 때문에 우리의 스승께서는 형성들에 대한 욕탐을 길들이는 것을 설하셨습니다.
벗들이여, 이러한 위험을 보기 때문에 우리의 스승께서는 의식에 대한 욕탐을 길들이는 것을 설하셨습니다.‘라고.”
10. “이렇게 설명하면 호기심 많은 끄샤뜨리야의 현자들과 바라문의 현자들과 장자의 현자들과 사문의 현자들은 ‘그러면 어떤 이익(공덕)을 보기 때문에 그대들의 스승은
물질에 대한 욕탐을 길들이는 것을 설하셨습니까?
느낌에 대한 욕탐을 길들이는 것을 설하셨습니까?
인식에 대한 욕탐을 길들이는 것을 설하셨습니까?
형성에 대한 욕탐을 길들이는 것을 설하셨습니까?
의식에 대한 욕탐을 길들이는 것을 설하셨습니까?’라고 다시 더 질문을 할 것입니다.
도반들이여, 이렇게 질문을 받으면 그대들은 이렇게 설명해야 합니다.
‘벗들이여, 물질에 대한 탐욕을 여의고, 욕구를 여의고, 욕망을 여의고, 갈증을 여의고, 갈애를 여읜 자의 물질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지만 그에게는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벗들이여, 느낌에 대한 탐욕을 여의고, 욕구를 여의고, 욕망을 여의고, 갈증을 여의고, 갈애를 여읜 자의 물질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지만 그에게는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벗들이여, 인식에 대한 탐욕을 여의고, 욕구를 여의고, 욕망을 여의고, 갈증을 여의고, 갈애를 여읜 자의 물질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지만 그에게는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벗들이여, 형성에 대한 탐욕을 여의고, 욕구를 여의고, 욕망을 여의고, 갈증을 여의고, 갈애를 여읜 자의 물질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지만 그에게는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벗들이여, 의식에 대한 탐욕을 여의고, 욕구를 여의고, 욕망을 여의고, 갈증을 여의고, 갈애를 여읜 자의 물질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지만 그에게는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벗들이여, 이러한 이익을 보기 때문에 우리의 스승께서는 물질에 대한 욕탐을 길들이는 것을 설하셨습니다. 이러한 이익을 보기 때문에 우리의 스승께서는 느낌에 대한 욕탐을 길들이는 것을 설하셨습니다. 이러한 이익을 보기 때문에 우리의 스승께서는 인식에 대한 욕탐을 길들이는 것을 설하셨습니다. 이러한 이익을 보기 때문에 우리의 스승께서는 형성에 대한 욕탐을 길들이는 것을 설하셨습니다.이러한 이익을 보기 때문에 우리의 스승께서는 의식에 대한 욕탐을 길들이는 것을 설하셨습니다.’라고.”
11. “도반들이여, 해로운 법들을 골고루 갖추어 행하며 지내는 사람이 만일 현세에서 즐겁고 절망이 없고 장애가 없고 번뇌가 없는 행복한 삶을 살고, 몸이 무너져 죽은 다음에는 좋은 곳[善處]에 태어날 것이 예상된다면 세존께서는 해로운 법들을 제거하는 것을 칭송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도반들이여, 그러나 해로운 법들을 골고루 갖추어 행하며 지내는 사람은 현세에서 괴롭고 절망하고 장애가 많고 번뇌가 많은 삶을 살고, 몸이 무너져 죽은 다음에는 불행한 곳[惡處]에 태어날 것이 예상됩니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해로운 법들을 제거하는 것을 칭송하시는 것입니다.”
12. “도반들이여, 유익한 법들을 골고루 갖추어 행하며 지내는 사람이 만일 현세에서 괴롭고 절망하고 장애가 많고 번뇌가 많은 삶을 살고, 몸이 무너져 죽은 다음에는 불행한 곳에 태어날 것이 예상된다면 세존께서는 유익한 법들을 골고루 갖추어 행하며 지내는 것을 칭송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도반들이여, 그러나 유익한 법들을 골고루 갖추어 행하며 지내는 사람은 현세에서 즐겁고 절망이 없고 장애가 없고 번뇌가 없는 행복한 삶을 살고, 몸이 무너져 죽은 다음에는 좋은 곳[善處]에 태어날 것이 예상됩니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유익한 법들을 골고루 갖추어 행하며 지내는 것을 칭송하시는 것입니다.”
13. 사리뿟따 존자는 이렇게 말했다. 비구들은 마음이 흡족해져서 사리뿟따 존자의 말을 크게 기뻐하였다.
할릿디까니 경1(S22:3)
Hālidikāni-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마하깟짜나 존자는 아완띠의 꾸라라가라에 있는 빠빠타 산에 머물고 있었다.
2. 그 무렵 할릿디까니 장자가 마하깟짜나 존자에게 찾아갔다. 가서는 마하깟짜나 존자에게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할릿디까니 장자는 마하깟짜나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3. “존자시여, 세존께서는『숫따니빠따』「앗타까 품」의「마간디야의 질문 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집을 버린 뒤 거처 없이 유행하며
마을에서 아무와도 관계 맺지 않는 성자는
감각적 욕망들을 소멸시키고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으며
사람들과 다투는 말을 하지 않는다.’
존자시여, 이처럼 세존께서 간략하게 설하신 뜻을 어떻게 보고 자세하게 알아야 합니까?”
4. “장자여, 그러면 어떻게 집에서 유행합니까?
장자여, 물질의 요소는 의식의 집이요, 물질의 요소에 대한 탐욕에 묶이는 것(속박되는 것)은 의식의 집에서 유행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느낌의 요소는 의식의 집이요, 느낌의 요소에 대한 탐욕에 묶이는 것은 의식의 집에서 유행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인식(지각)의 요소는 의식의 집이요, 인식의 요소에 대한 탐욕에 묶이는 것은 의식의 집에서 유행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형성의 요소는 의식의 집이요, 형성의 요소에 대한 탐욕에 묶이는 것은 의식의 집에서 유행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장자여, 이와 같이 집에서 유행합니다.
5. “장자여, 그러면 어떻게 집 없이 유행합니까?
장자여, 물질의 요소에 대한 욕구, 탐욕, 즐김, 갈애, 집착과 취착, 그리고 그런 갈애와 사견이라는 마음의 감각장소 여기에 대한 천착과 잠재성향을 제거하셨고 그 뿌리를 자르셨고 줄기만 남은 종려나무처럼 만드셨고 존재하지 않게 하셨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발생하지) 않게끔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래는 집 없이 유행하신다고 말합니다.
장자여, 느낌의 요소에 대한 욕구, 탐욕, 즐김, 갈애, 집착과 취착, 그리고 그런 갈애와 사견이라는 마음의 감각장소 여기에 대한 천착과 잠재성향을 제거하셨고 그 뿌리를 자르셨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만드셨고 존재하지 않게 하셨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발생하지) 않게끔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래는 집 없이 유행하신다고 말합니다.
장자여, 인식의 요소에 대한 욕구, 탐욕, 즐김, 갈애, 집착과 취착, 그리고 그런 갈애와 사견이라는 마음의 감각장소 여기에 대한 천착과 잠재성향을 제거하셨고 그 뿌리를 자르셨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만드셨고 존재하지 않게 하셨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발생하지) 않게끔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래는 집 없이 유행하신다고 말합니다.
장자여, 형성의 요소에 대한 욕구, 탐욕, 즐김, 갈애, 집착과 취착, 그리고 그런 갈애와 사견이라는 마음의 감각장소 여기에 대한 천착과 잠재성향을 제거하셨고 그 뿌리를 자르셨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만드셨고 존재하지 않게 하셨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발생하지) 않게끔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래는 집 없이 유행하신다고 말합니다.
장자여, 의식의 요소에 대한 욕구, 탐욕, 즐김, 갈애, 집착과 취착, 그리고 그런 갈애와 사견이라는 마음의 감각장소와 여기에 대한 천착과 잠재성향들을 여래는 제거하셨고 그 뿌리를 자르셨고 줄기만 남은 종려나무처럼 만드셨고 존재하지 않게 하셨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래는 집 없이 유행하신다고 말합니다.
장자여, 이와 같이 집 없이 유행합니다.”
6. “장자여, 그러면 어떻게 거처에서 유행합니까?
형색의 표상이라는 거처에서 배회하고 묶이는 것을 거처에서 유행한다고 합니다.
소리의 표상이라는 거처에서 배회하고 묶이는 것을 거처에서 유행한다고 합니다.
냄새의 표상이라는 거처에서 배회하고 묶이는 것을 거처에서 유행한다고 합니다.
맛의 표상이라는 거처에서 배회하고 묶이는 것을 거처에서 유행한다고 합니다.
감촉의 표상이라는 거처에서 배회하고 묶이는 것을 거처에서 유행한다고 합니다.
법의 표상이라는 거처에서 배회하고 묶이는 것을 거처에서 유행한다고 합니다.
장자여, 그러면 어떻게 거처 없이 유행합니까?
장자여, 형색의 표상이라는 거처에서 배회하고 묶이는 것을 여래는 제거하셨고 그 뿌리를 자르셨고 줄기만 남은 종려나무처럼 만드셨고 존재하지 않게 하셨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래는 거처 없이 유행하신다고 말합니다.
장자여, 소리의 표상이라는 거처에서 배회하고 묶이는 것을 여래는 제거하셨고 그 뿌리를 자르셨고 줄기만 남은 종려나무처럼 만드셨고 존재하지 않게 하셨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래는 거처 없이 유행하신다고 말합니다.
장자여, 냄새의 표상이라는 거처에서 배회하고 묶이는 것을 여래는 제거하셨고 그 뿌리를 자르셨고 줄기만 남은 종려나무처럼 만드셨고 존재하지 않게 하셨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래는 거처 없이 유행하신다고 말합니다.
장자여, 맛의 표상이라는 거처에서 배회하고 묶이는 것을 여래는 제거하셨고 그 뿌리를 자르셨고 줄기만 남은 종려나무처럼 만드셨고 존재하지 않게 하셨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래는 거처 없이 유행하신다고 말합니다.
장자여, 감촉의 표상이라는 거처에서 배회하고 묶이는 것을 여래는 제거하셨고 그 뿌리를 자르셨고 줄기만 남은 종려나무처럼 만드셨고 존재하지 않게 하셨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래는 거처 없이 유행하신다고 말합니다.
장자여, 법의 표상이라는 거처에서 배회하고 묶이는 것을 여래는 제거하셨고 그 뿌리를 자르셨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만드셨고 존재하지 않게 하셨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래는 거처 없이 유행하신다고 말합니다.
장자여, 이와 같이 거처 없이 유행합니다.”
註) 그런데 왜 여기서 다섯 가지 무더기들(오온)은 집이라 부르고 여섯 가지 대상들(육외처, 육경)은 거처라 부르는가? 욕탐의 강함과 약함 때문이다. 거주하는 곳이라는 뜻에서 집과 거처는 비슷하지만 집은 자신이 항상 머무는 자신의 집을 뜻하고 거처는 사람이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일시적으로 머무는 곳을 뜻한다. 욕탐은 안의 오온에 대해서 더 강하기 때문에 안의 오온을 집이라 한다. 욕탐은 밖의 대상들에 대해서는 더 약하기 때문에 밖의 대상들은 거처라 한다.
7. “장자여, 그러면 어떻게 마을에서 관계 맺습니까?
장자여, 여기 어떤 사람은 재가자들 가운데서 지내면서 기쁨을 같이 하고 슬픔을 같이 하며, 즐거운 일들을 즐거워하고 괴로운 일들을 괴로워하며, 해야 할 일들이 생기면 자신이 그것에 몰두합니다.
장자여, 이와 같이 마을에서 관계를 맺습니다.
장자여, 그러면 어떻게 마을에서 관계 맺지 않습니까?
장자여, 여기 어떤 사람은 재가자들 가운데서 지내지 않고 지내면서 기쁨을 같이 하지 않고 슬픔을 같이 하지 않으며, 즐거운 일들을 즐거워하지 않고 괴로운 일들을 괴로워하지 않으며, 해야 할 일들이 생기면 자신이 그것에 몰두하지 않습니다.
장자여, 이와 같이 마을에서 관계 맺지 않습니다.”
8. “장자여, 그러면 어떻게 감각적 쾌락들을 없애지 못합니까?
장자여, 여기 어떤 사람은 감각적 쾌락들에 대한 탐욕을 떠나지 못하고 욕탐을 떠나지못하고 갈증을 떠나지 못하고 갈애를 떠나지 못합니다.
장자여, 이와 같이 감각적 쾌락들을 없애지 못합니다.
장자여, 그러면 어떻게 감각적 쾌락들을 없앱니까?
장자여, 여기 어떤 사람은 감각적 욕망들에 대한 탐욕을 떠나고 요탐을 떠나고 갈증을 떠나고 갈애를 떠납니다.
장자여, 이와 같이 감각적 쾌락들을 소멸시킵니다.”
9. “장자여, 그러면 어떻게 기대합니까?
장자여, 여기 어떤 사람에게 이런 생각이 생깁니다. ‘미래에 이러한 물질이 있게 되기를. 미래에 이러한 느낌이 되어 있기를, 미래에 이러한 인식이 되어 있기를, 미래에 이러한 형성이 되어 있기를, 미래에 이러한 의식이 있게 되기를.’이라고.
장자여, 이와 같이 기대합니다.
장자여, 그러면 어떻게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습니까?
장자여, 여기 어떤 사람에게 이런 생각이 생기지 않습니다. ‘미래에 이러한 물질이 있게 되기를. 미래에 이러한 느낌이 되어 있기를, 미래에 이러한 인식이 되어 있기를, 미래에 이러한 형성이 되어 있기를, 미래에 이러한 의식이 있게 되기를.’이라고.
장자여, 이와 같이 기대하지 않습니다.”
10. “장자여, 그러면 어떻게 사람들과 다투는 말을 합니까?
장자여, 여기 어떤 사람은 이러한 말을 합니다. ‘그대는 이 법과 율을 제대로 모른다. 나야말로 이 법과 율을 제대로 안다.’ ‘어찌 그대가 이 법과 율을 제대로 알겠는가?’ ‘그대는 잘못된 도(수행)를 닦는 자이고 나는 올바른 도를 닦는 자이다.’ ‘내 말은 일관되지만 그대는 일관되지 않는다.’ ‘그대는 먼저 설해야 할 것을 뒤에 설했고 뒤에 설해야 할 것을 먼저 설했다.’ ‘그대가 주장해 오던 것은 논파되었다.’ ‘나는 그대의 법과 가르침의 허점을 지적했다. 그대는 패했다. 비난으로부터 도망가라. 혹은 만약 할 수 있다면 지금 여기서 설명해보라.’라고.
장자여, 이와 같이 사람들과 다투는 말을 합니다.
장자여, 그러면 어떻게 사람들과 다투는 말을 하지 않습니까?
장자여, 여기 어떤 사람은 이러한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대는 이 법과 율을 제대로 모른다. 나야말로 이 법과 율을 제대로 안다.’ ‘어찌 그대가 이 법과 율을 제대로 알겠는가?’ ‘그대는 잘못된 도(수행)를 닦는 자이고 나는 올바른 도를 닦는 자이다.’ ‘내 말은 일관되지만 그대는 일관되지 않는다.’ ‘그대는 먼저 설해야 할 것을 뒤에 설했고 뒤에 설해야 할 것을 먼저 설했다.’ ‘그대가 주장해 오던 것은 논파되었다.’ ‘나는 그대의 법과 가르침의 허점을 지적했다. 그대는 패했다. 비난으로부터 도망가라. 혹은 만약 할 수 있다면 지금 설명해 보라.’라고.
장자여, 이와 같이 사람들과 다투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11. 장자여, 세존께서 『숫따니빠따』 「앗타까 품」의 「마간디야의 질문 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집을 버린 뒤 거처 없이 유행하며
마을에서 아무와도 관계 맺지 않는 성자는
감각적 욕망들을 없애고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으며
사람들과 다투는 말을 하지 않노라.’
장자여, 세존께서 간략하게 설하신 뜻을 이와 같이 자세하게 알고 보아야 합니다.”
할릿디까니 경2(S22:4)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마하깟짜나 존자가 아완띠의 꾸라라가라에 있는 빠빠타 산에 머물고 있었다.
2. 그 무렵 할릿디까니 장자가 마하깟짜나 존자에게 찾아갔다. 가서는 마하깟짜나 존자에게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할릿디까니 장자는 마하깟짜나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3. “존자시여, 세존께서는『디가니까야』「제석문경」(D21)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갈애를 부수어 해탈한 사문∙바라문들만이 구경의 완성을 이루고 구경의 열반을 얻고 구경의 청정범행을 닦고 구경의 목적을 얻으며 신과 인간들 가운데서 뛰어나다.’라고.
존자여, 이처럼 세존께서 간략하게 설하신 뜻을 어떻게 보고 자세하게 알아야 합니까?”
4. “장자여, 물질의 요소에 대한 욕구, 탐욕, 즐김, 갈애, 집착과 취착, 그리고 그런 갈애와 사견이라는 마음의 감각장소와 여기에 대한 천착과 잠재성향들을 부수고 사라지게하고 소멸하고 포기하고 놓아버리기 때문에 마음이 원만하게 해탈했다고 합니다.
장자여, 느낌의 요소에 대한 욕구, 탐욕, 즐김, 갈애, 집착과 취착, 그리고 그런 갈애와 사견이라는 마음의 감각장소와 여기에 대한 천착과 잠재성향들을 부수고 사라지게하고 소멸하고 포기하고 놓아버리기 때문에 마음이 원만하게 해탈했다고 합니다.
장자여, 인식의 요소에 대한 욕구, 탐욕, 즐김, 갈애, 집착과 취착, 그리고 그런 갈애와 사견이라는 마음의 감각장소와 여기에 대한 천착과 잠재성향들을 부수고 사라지게하고 소멸하고 포기하고 놓아버리기 때문에 마음이 원만하게 해탈했다고 합니다.
장자여, 형성의 요소에 대한 욕구, 탐욕, 즐김, 갈애, 집착과 취착, 그리고 그런 갈애와 사견이라는 마음의 감각장소와 여기에 대한 천착과 잠재성향들을 부수고 사라지게하고 소멸하고 포기하고 놓아버리기 때문에 마음이 원만하게 해탈했다고 합니다.
장자여, 의식의 요소에 대한 욕구, 탐욕, 즐김, 갈애, 집착과 취착, 그리고 그런 갈애와 사견이라는 마음의 감각장소와 여기에 대한 천착과 잠재성향들을 부수고 사라지게하고 소멸하고 포기하고 놓아버리기 때문에 마음이 원만하게 해탈했다고 합니다.”
5. “장자여, 세존께서는『디가니까야』「제석문경」(D21)에서 말씀하시기를 ‘갈애를 부수어 해탈한 사문∙바라문들만이 구경의 완성을 이루고 구경의 열반을 얻고 구경의 청정범행을 닦고 구경의 목적을 얻으며 신과 인간들 가운데서 뛰어나다.’라고 하셨습니다.
장자여, 세존께서 간략하게 설하신 뜻을 이와 같이 자세하게 보고 알아야 합니다.”
삼매 경(S22:5)
Samādhi-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삼매를 닦아라. 삼매에 든 비구는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가?
물질의 일어남(발생)과 사라짐(소멸), 느낌의 일어남과 사라짐, 인식의 일어남과 사라짐, 형성의 일어남과 사라짐, 의식의 일어남과 사라짐이다.”
3.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물질의 일어남이고, 무엇이 느낌의 일어남이고, 무엇이 인식의 일어남이고, 무엇이 형성의 일어남이고, 무엇이 의식의 일어남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사람은 즐기고 좋아하고 묶여(속박되어) 있다. 그러면 무엇을 즐기고 좋아하고 묶여 있는가?
그는 물질을 즐기고 좋아하고 거기에 묶여 있다. 물질을 즐기고 좋아하고 거기에 묶여 있는 자에게 즐김이 일어난다. 물질을 즐기는 것이 바로 취착이다. 그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태어남을 고전으로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생긴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다발)[苦蘊]가 발생한다.
그는 느낌을 즐기고 좋아하고 거기에 묶여 있다. 느낌을 즐기고 좋아하고 거기에 묶여 있는 자에게 즐김이 일어난다. 느낌을 즐기는 것이 바로 취착이다. 그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태어남을 고전으로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생긴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다발)[苦蘊]가 발생한다.
그는 인식을 즐기고 좋아하고 거기에 묶여 있다. 인식을 즐기고 좋아하고 거기에 묶여 있는 자에게 즐김이 일어난다. 인식을을 즐기는 것이 바로 취착이다. 그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태어남을 고전으로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생긴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다발)[苦蘊]가 발생한다.
그는 형성을 즐기고 좋아하고 거기에 묶여 있다. 형성을 즐기고 좋아하고 거기에 묶여 있는 자에게 즐김이 일어난다. 형성을 즐기는 것이 바로 취착이다. 그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태어남을 고전으로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생긴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다발)[苦蘊]가 발생한다.
그는 의식을 즐기고 좋아하고 거기에 묶여 있다. 의식을 즐기고 좋아하고 거기에 묶여 있는 자에게 즐김이 일어난다. 의식을 즐기는 것이 바로 취착이다. 그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생긴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발생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물질의 일어남이고, 이것이 느낌의 일어남이고, 이것이 인식(지각)의 일어남이고, 이것이 형성의 일어남이고, 이것이 의식의 일어남이다.”
4.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물질의 사라짐이고, 무엇이 느낌의 사라짐이고, 무엇이 인식의 사라짐이고, 무엇이 형성의 사라짐이고, 무엇이 의식의 사라짐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사람은 즐기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묶여 있지 않다. 그러면 무엇을 즐기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묶여 있지 않는가?
그는 물질을 즐기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거기에 묶여 있지 않다. 물질을 즐기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묶여 있지 않는 자에게 즐김이 소멸한다. 즐기는 것이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이 소멸한다. 취착이 소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에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소멸한다.
그는 느낌을 즐기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거기에 묶여 있지 않다. 느낌을 즐기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묶여 있지 않는 자에게 즐김이 소멸한다. 즐기는 것이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이 소멸한다. 취착이 소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에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소멸한다.
그는 인식을 즐기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거기에 묶여 있지 않다. 인식을 즐기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묶여 있지 않는 자에게 즐김이 소멸한다. 즐기는 것이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이 소멸한다. 취착이 소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에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소멸한다.
그는 형성을 즐기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거기에 묶여 있지 않다. 형성을 즐기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묶여 있지 않는 자에게 즐김이 소멸한다. 즐기는 것이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이 소멸한다. 취착이 소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에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소멸한다.
그는 의식을 즐기지 않고 좋하지 않고 거기에 묶여 있지 않다. 의식을 즐기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묶여 있지 않는 자에게 즐김이 소멸한다. 즐기는 것이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이 소멸한다. 취착이 소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에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물질의 사라짐이고, 이것이 느낌의 사라짐이고, 이것이 인식의 사라짐이고, 이것이 형성의 사라짐이고, 이것이 의식의 사라짐이다.”
홀로 앉음 경(S22:6)
Paṭisallān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홀로 앉음에 집중하는 수행을 하라.
비구들이여, 홀로 앉는 비구는 있는 그대로 꿰뚫어 보고 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보고 아는가?
물질의 일어남과 사라짐, 느낌의 일어남과 사라짐, 인식의 일어남과 사라짐, 형성의 일어남과 사라짐, 의식의 일어남과 사라짐이다.”
3.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물질의 일어남이고, 무엇이 느낌의 일어남이고, 무엇이 인식의 일어남이고, 무엇이 형성의 일어남이고, 무엇이 의식의 일어남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사람은 즐기고 좋아하고 묶여(속박되어) 있다. 그러면 무엇을 즐기고 좋아하고 묶여 있는가?
그는 물질을 즐기고 좋아하고 거기에 묶여 있다. 물질을 즐기고 좋아하고 거기에 묶여 있는 자에게 즐김이 일어난다. 물질을 즐기는 것이 바로 취착이다. 그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태어남을 고전으로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생긴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다발)[苦蘊]가 발생한다.
그는 느낌을 즐기고 좋아하고 거기에 묶여 있는 자에게 즐김이 일어난다. 느낌을 즐기는 것이 바로 취착이다. 그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생긴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발생한다.
그는 인식을 즐기고 좋아하고 거기에 묶여 있는 자에게 즐김이 일어난다. 인식을 즐기는 것이 바로 취착이다. 그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생긴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발생한다.
그는 형성을 즐기고 좋아하고 거기에 묶여 있는 자에게 즐김이 일어난다. 형성을 즐기는 것이 바로 취착이다. 그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생긴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발생한다.
그는 의식을 즐기고 좋아하고 거기에 묶여 있다. 의식을 즐기고 좋아하고 거기에 묶여 있는 자에게 즐김이 일어난다. 의식을 즐기는 것이 바로 취착이다. 그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생긴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발생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물질의 일어남이고, 이것이 느낌의 일어남이고, 이것이 인식(지각)의 일어남이고, 이것이 형성의 일어남이고, 이것이 의식의 일어남이다.”
4.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물질의 사라짐이고, 무엇이 느낌의 사라짐이고, 무엇이 인식의 사라짐이고, 무엇이 형성의 사라짐이고, 무엇이 의식의 사라짐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사람은 즐기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묶여 있지 않다. 그러면 무엇을 즐기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묶여 있지 않는가?
그는 물질을 즐기지 않고 젛아하지 않고 거기에 묶여 있지 않다. 물질을 즐기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묶여 있지 않는 자에게 즐김이 소멸한다. 즐기는 것이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이 소멸한다. 취착이 소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에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소멸한다.
그는 느낌을 즐기지 않고 좋하지 않고 거기에 묶여 있지 않다. 느낌을 즐기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묶여 있지 않는 자에게 즐김이 소멸한다. 즐기는 것이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이 소멸한다. 취착이 소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에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소멸한다.
그는 인식을 즐기지 않고 좋하지 않고 거기에 묶여 있지 않다. 인식을 즐기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묶여 있지 않는 자에게 즐김이 소멸한다. 즐기는 것이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이 소멸한다. 취착이 소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에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소멸한다.
그는 형성을 즐기지 않고 좋하지 않고 거기에 묶여 있지 않다. 형성을 즐기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묶여 있지 않는 자에게 즐김이 소멸한다. 즐기는 것이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이 소멸한다. 취착이 소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에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소멸한다.
그는 의식을 즐기지 않고 좋하지 않고 거기에 묶여 있지 않다. 의식을 즐기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묶여 있지 않는 자에게 즐김이 소멸한다. 즐기는 것이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이 소멸한다. 취착이 소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에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물질의 사라짐이고, 이것이 느낌의 사라짐이고, 이것이 인식의 사라짐이고, 이것이 형성의 사라짐이고, 이것이 의식의 사라짐이다.”
취착에 의한 초조함 경1(S22:7)
Upādāparitassanā-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취착에 의한 초조함과 취착하지 않음에 의한 초조하지 않음을 설하리라. 이제 그것을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4.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해서 취착에 의한 초조함이 있게 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성자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고, 참된 사람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여, 물질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물질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물질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물질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한다. 그러나 그런 그의 물질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간다. 그의 물질이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기 때문에 그의 의식(지각)은 ‘물질은 변화한다.’는 생각에 휩싸인다. 그러면 ‘물질은 변화한다.’는 생각에 휩싸여서 생긴 초조함과 해로운 심리상태가 일어나서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머문다. 마음이 사로잡혔기 때문에 그는 겁을 먹고 걱정하고 안절부절못하고 그래서 취착에 의한 초조함이 있게 된다.
비구들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성자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고, 참된 사람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여, 느낌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느낌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느낌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느낌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한다. 그러난 그런 그의 느낌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간다. 그의 느낌이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기 때문에 그의 의식(지각)은 ‘느낌은 변화한다.’는 생각에 휩싸인다. 그러면 ‘느낌은 변화한다.’는 생각에 휩싸여서 생긴 초조함과 해로운 심리상태가 일어나서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머문다. 마음이 사로잡혔기 때문에 그는 겁을 먹고 걱정하고 안절부절 못하고 그래서 취착에 의한 초조함이 있게 된다.
비구들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성자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고, 참된 사람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여, 인식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인식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인식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인식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한다. 그러난 그런 그의 인식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간다. 그의 인식이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기 때문에 그의 인식(지각)은 ‘인식은 변화한다.’는 생각에 휩싸인다. 그러면 ‘인식은 변화한다.’는 생각에 휩싸여서 생긴 초조함과 해로운 심리상태가 일어나서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머문다. 마음이 사로잡혔기 때문에 그는 겁을 먹고 걱정하고 안절부절 못하고 그래서 취착에 의한 초조함이 있게 된다.
비구들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성자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고, 참된 사람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여, 형성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형성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형성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형성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한다. 그러난 그런 그의 형성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간다. 그의 형성이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기 때문에 그의 의식(지각)은 ‘형성은 변화한다.’는 생각에 휩싸인다. 그러면 ‘형성은 변화한다.’는 생각에 휩싸여서 생긴 초조함과 해로운 심리상태가 일어나서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머문다. 마음이 사로잡혔기 때문에 그는 겁을 먹고 걱정하고 안절부절 못하고 그래서 취착에 의한 초조함이 있게 된다.
비구들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성자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고, 참된 사람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여, 의식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의식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의식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의식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한다. 그러난 그런 그의 의식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간다. 그의 의식이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기 때문에 그의 의식은 ‘의식은 변화한다.’는 생각에 휩싸인다. 그러면 ‘의식은 변화한다.’는 생각에 휩싸여서 생긴 초조함과 해로운 심리상태가 일어나서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머문다. 마음이 사로잡혔기 때문에 그는 겁을 먹고 걱정하고 안절부절 못하고 그래서 취착에 의한 초조함이 있게 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해서 취착에 의한 초조함이 있게 된다.”
5.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해서 취착하지 않음에 의한 초조하지 않음이 있게 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성자들을 친견하고 성스러운 법을 이해하고, 성스러운 가르침에 인도되고, 참된 사람을 친견하고, 참된 사람의 법을 이해하고 참된 사람의 가르침에 인도되어,
물질을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물질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물질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물질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는다. 그런 그의 물질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간다. 그의 물질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지만 그의 의식(지각)은 ‘물질은 변화한다.’는 생각에 휩싸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물질은 변화한다.’는 생각에 휩싸여서 생긴 초조함과 해로운 심리상태가 일어나서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못한다. 마음이 사로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근심하지 않고 걱정하지 않고 안절부절못하지 않고 그래서 취착하지 않음에 의한 초조하지 않음이 있게 된다.
비구들이여, 여기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성자을 친견하고, 성스러운 법을 이해하고, 성스러운 가르침에 인도되고, 참된 사람을 친견하고, 참된 사람의 법을 이해하고, 참된 사람의 가르침에 인도되어, 느낌을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느낌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느낌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느낌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는다. 그런 그의 느낌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간다. 그의 느낌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지만 그의 의식(지각)은 ‘느낌은 변화한다.’는 생각에 휩싸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느낌은 변화한다.’는 생각에 휩싸여서 생긴 초조함과 해로운 심리상태가 일어나서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못한다. 마음이 사로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근심하지 않고 걱정하지 않고 안절부절못하지 않고 그래서 취착하지 않음에 의한 초조하지 않음이 있게 된다.
비구들이여, 여기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성자을 친견하고, 성스러운 법을 이해하고, 성스러운 가르침에 인도되고, 참된 사람을 친견하고, 참된 사람의 법을 이해하고, 참된 사람의 가르침에 인도되어, 인식을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인식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인식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인식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는다. 그런 그의 인식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간다. 그의 인식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지만 그의 의식(지각)은 ‘인식은 변화한다.’는 생각에 휩싸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식은 변화한다.’는 생각에 휩싸여서 생긴 초조함과 해로운 심리상태가 일어나서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못한다. 마음이 사로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근심하지 않고 걱정하지 않고 안절부절못하지 않고 그래서 취착하지 않음에 의한 초조하지 않음이 있게 된다.
비구들이여, 여기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성자을 친견하고, 성스러운 법을 이해하고, 성스러운 가르침에 인도되고, 참된 사람을 친견하고, 참된 사람의 법을 이해하고, 참된 사람의 가르침에 인도되어, 형성을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형성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형성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형성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는다. 그런 그의 형성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간다. 그의 형성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지만 그의 의식(지각)은 ‘형성은 변화한다.’는 생각에 휩싸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형성은 변화한다.’는 생각에 휩싸여서 생긴 초조함과 해로운 심리상태가 일어나서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못한다. 마음이 사로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근심하지 않고 걱정하지 않고 안절부절못하지 않고 그래서 취착하지 않음에 의한 초조하지 않음이 있게 된다.
비구들이여, 여기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성자을 친견하고, 성스러운 법을 이해하고, 성스러운 가르침에 인도되고, 참된 사람을 친견하고, 참된 사람의 법을 이해하고, 참된 사람의 가르침에 인도되어, 의식을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의식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의식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의식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는다. 그런 그의 의식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간다. 그의 의식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지만 그의 의식은 ‘의식은 변화한다.’는 생각에 휩싸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의식은 변화한다.’는 생각에 휩싸여서 생긴 초조함과 해로운 심리상태가 일어나서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못한다. 마음이 사로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근심하지 않고 걱정하지 않고 안절부절못하지 않고 그래서 취착하지 않음에 의한 초조하지 않음이 있게 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해서 취착하지 않음에 의한 초조하지 않음이 있게 된다.”
취착에 의한 초조함 경2(S22:8)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취착에 의한 초조함과 취착하지 않음에 의한 초조하지 않음을 설하리라. 이제 그것을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해서 취착에 의한 초조함이 있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물질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한다. 그러나 그런 그의 물질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간다. 그의 물질이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기 때문에 그에게는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느낌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한다. 그의 의식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간다. 그의 의식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기 때문에 그에게는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인식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한다. 그의 의식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간다. 그의 의식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기 때문에 그에게는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형성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한다. 그의 의식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간다. 그의 의식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기 때문에 그에게는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의식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한다. 그의 의식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간다. 그의 의식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기 때문에 그에게는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해서 취착에 의한 초조함이 있다.”
4.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해서 취착하지 않음에 의한 초조하지 않음이 있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지 않는다. 그런 그의 물질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지만 그에게는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여기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느낌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지 않는다. 그런 그의 물질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지만 그에게는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여기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인식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지 않는다. 그런 그의 물질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지만 그에게는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여기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형성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지 않는다. 그런 그의 물질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지만 그에게는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여기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의식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지 않는다. 그런 그의 의식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지만 그에게는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해서 취착하지 않음에 의한 초조하지 않음이 있다.”
과거∙미래∙현재 경1(S22:9)
Atītānāgatapaccuppann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과거와 미래의 물질이 무상한(anicca) 것인데 하물며 현재의 물질은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과거의 물질에 대해서 무관심(기대하지)하고, 미래의 물질을 즐거워하지 않으며, 현재의 물질에 대해서 싫어하여 떠나(염오) 탐욕이 사라지게 하고 소멸하기 위해서 닦는다.
비구들이여, 과거와 미래의 느낌이 무상한것인데 하물며 현재의 느낌은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과거의 느낌에 대해서 무관심(기대하지)하고, 미래의 느낌을 즐거워하지 않으며, 현재의 느낌에 대해서 싫어하여 떠나(염오) 탐욕이 사라지게 하고 소멸하기 위해서 닦는다.
비구들이여, 과거와 미래의 인식이 무상한것인데 하물며 현재의 인식은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과거의 인식에 대해서 무관심(기대하지)하고, 미래의 인식을 즐거워하지 않으며, 현재의 인식에 대해서 싫어하여 떠나(염오) 탐욕이 사라지게 하고 소멸하기 위해서 닦는다.
비구들이여, 과거와 미래의 형성이 무상한것인데 하물며 현재의 형성은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과거의 형성에 대해서 무관심(기대하지)하고, 미래의 형성을 즐거워하지 않으며, 현재의 형성에 대해서 싫어하여 떠나(염오) 탐욕이 사라지게 하고 소멸하기 위해서 닦는다.
비구들이여, 과거와 미래의 의식이 무상한것인데 하물며 현재의 의식은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과거의 의식에 대해서 무관심(기대하지)하고, 미래의 의식을 즐거워하지 않으며, 현재의 의식에 대해서 싫어하여 떠나(염오) 탐욕이 사라지게 하고 소멸하기 위해서 닦는다.
과거∙미래∙현재 경2(S22:10)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과거와 미래의 물질이 괴로운(dukkha) 것인데 하물며 현재의 물질은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과거의 물질에 대해서 무관심(기대하지)하고, 미래의 물질을 즐거워하지 않으며, 현재의 물질에 대해서 싫어하여 떠나(염오) 탐욕이 사라지게 하고 소멸하기 위해서 수행한다.
비구들이여, 과거와 미래의 느낌이 괴로운 것인데 하물며 현재의 느낌은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과거의 느낌에 대해서 무관심(기대하지)하고, 미래의 느낌을 즐거워하지 않으며, 현재의 느낌에 대해서 싫어하여 떠나(염오) 탐욕이 사라지게 하고 소멸하기 위해서 수행한다.
비구들이여, 과거와 미래의 인식이 괴로운 것인데 하물며 현재의 인식은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과거의 인식에 대해서 무관심(기대하지)하고, 미래의 인식을 즐거워하지 않으며, 현재의 인식에 대해서 싫어하여 떠나(염오) 탐욕이 사라지게 하고 소멸하기 위해서 수행한다.
비구들이여, 과거와 미래의 형성이 괴로운 것인데 하물며 현재의 형성은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과거의 형성에 대해서 무관심(기대하지)하고, 미래의 형성을 즐거워하지 않으며, 현재의 형성에 대해서 싫어하여 떠나(염오) 탐욕이 사라지게 하고 소멸하기 위해서 수행한다.
비구들이여, 과거와 미래의 의식이 괴로운 것인데 것인데 하물며 현재의 의식은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과거의 의식에 대해서 무관심(기대하지)하고, 미래의 의식을 즐거워하지 않으며, 현재의 의식에 대해서 싫어하고 떠나 탐욕이 사라지게 하고 소멸하기 위해서 수행한다.”
과거∙미래∙현재 경3(S22:11)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과거와 미래의 물질은 무아(anatta. 실체가 없는 것)인데 하물며 현재의 물질은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과거의 물질에 대해서 무관심(기대하지)하고, 미래의 물질에 대해서 즐거워하지 않으며, 현재의 물질에 대해서 싫어하고 떠나 탐욕이 사라지게 하고 소멸하기 위해서 수행한다.
비구들이여, 과거와 미래의 느낌은 무아인데 하물며 현재의 느낌은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과거의 느낌에 대해서 무관심(기대하지)하고, 미래의 느낌에 대해서 즐거워하지 않으며, 현재의 느낌에 대해서 싫어하고 떠나 탐욕이 사라지게 하고 소멸하기 위해서 수행한다.
비구들이여, 과거와 미래의 인식은 무아인데 하물며 현재의 인식은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과거의 인식에 대해서 무관심(기대하지)하고, 미래의 인식에 대해서 즐거워하지 않으며, 현재의 인식에 대해서 싫어하고 떠나 탐욕이 사라지게 하고 소멸하기 위해서 수행한다.
비구들이여, 과거와 미래의 형성은 무아인데 하물며 현재의 형성은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과거의 형성에 대해서 무관심(기대하지)하고, 미래의 형성에 대해서 즐거워하지 않으며, 현재의 형성에 대해서 싫어하고 떠나 탐욕이 사라지게 하고 소멸하기 위해서 수행한다.
비구들이여, 과거와 미래의 의식은 무아인데 하물며 현재의 의식에 대해서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과거의 의식에 대하여 무관심하며, 미래의 의식에 대해서 즐거워하지 않으며, 현재의 의식에 대해서 싫어하고 떠나 탐욕이 사라지게 하고 소멸하기 위해서 수행한다.”
제1장 나꿀라삐따 품이 끝났다. 첫 번째 품에 포함된 경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① 나꿀라삐타 ② 데와다하 ③ ~ ④ 할릿디까니 ⑤ 삼매 ⑥ 홀로 앉음 ⑦ ~ ⑧ 취착에 의한 초조함 ⑨ ~ ⑪ 과거∙미래∙현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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