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미가잘라 품
Migajāla-vagga
미가잘라 경1(S35:63)
Migajāl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 싸밧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셔다. 그 무렵 미가잘라 존자가 세존께 찾아왔다. 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미가잘라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혼자 머무는 자(홀로 지내는 자), 혼자 머무는 자’라고들 합니다. 도대체 어떤 것이 혼자 머무는 자이고 어떤 것이 동반자와 함께 머무는 것입니까?”
“미가잘라여, 눈(시각)으로 인식되는 형색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유발하고 흥분을 야기한다고 하자. 만일 비구가 그것을 즐기고 기뻐하고 묶여(탐착) 있으면 그가 그것을 즐기고 기뻐하고 묶여 있기 때문에 즐김(환락)이 일어난다. 즐김이 있으면 애착이 있고, 애착이 있으면 속박(결박)이 생겨난다.
미가잘라여, 이처럼 즐김(환락)의 속박에 묶인 비구를 동반자와 함께 머무는 자라 부른다.
미가잘라여, 귀(청각)로 인식되는 소리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유발하고 흥분을 야기한다고 하자. 만일 비구가 그것을 즐기고 기뻐하고 묶여(탐착) 있으면 그가 그것을 즐기고 기뻐하고 묶여 있기 때문에 즐김(환락)이 일어난다. 즐김이 있으면 애착이 있고, 애착이 있으면 속박(결박)이 생겨난다.
미가잘라여, 이처럼 즐김(환락)의 속박에 묶인 비구를 동반자와 함께 머무는 자라 부른다.
미가잘라여, 코(후각)로 인식되는 냄새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유발하고 흥분을 야기한다고 하자. 만일 비구가 그것을 즐기고 기뻐하고 묶여(탐착) 있으면 그가 그것을 즐기고 기뻐하고 묶여 있기 때문에 즐김(환락)이 일어난다. 즐김이 있으면 애착이 있고, 애착이 있으면 속박(결박)이 생겨난다.
미가잘라여, 이처럼 즐김(환락)의 속박에 묶인 비구를 동반자와 함께 머무는 자라 부른다.
미가잘라여, 혀(미각)로 인식되는 맛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유발하고 흥분을 야기한다고 하자. 만일 비구가 그것을 즐기고 기뻐하고 묶여(탐착) 있으면 그가 그것을 즐기고 기뻐하고 묶여 있기 때문에 즐김(환락)이 일어난다. 즐김이 있으면 애착이 있고, 애착이 있으면 속박(결박)이 생겨난다.
미가잘라여, 이처럼 즐김(환락)의 속박에 묶인 비구를 동반자와 함께 머무는 자라 부른다.
미가잘라여, 몸(촉각)으로 인식되는 감촉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유발하고 흥분을 야기한다고 하자. 만일 비구가 그것을 즐기고 기뻐하고 묶여(탐착) 있으면 그가 그것을 즐기고 기뻐하고 묶여 있기 때문에 즐김(환락)이 일어난다. 즐김이 있으면 애착이 있고, 애착이 있으면 속박(결박)이 생겨난다.
미가잘라여, 이처럼 즐김(환락)의 속박에 묶인 비구를 동반자와 함께 머무는 자라 부른다.
미가잘라여, 마노(마음)로 인식되는 법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유발하고 흥분을 야기한다고 하자. 만일 비구가 그것을 즐기고 기뻐하고 묶여(탐착) 있으면 그가 그것을 즐기고 기뻐하고 묶여 있기 때문에 즐김(환락)이 일어난다. 즐김이 있으면 애착이 있고, 애착이 있으면 속박(결박)이 생겨난다.
미가잘라여, 이처럼 즐김(환락)의 속박에 묶인 비구를 동반자와 함께 머무는 자라 부른다.
미가잘라여, 이와 같이 머무는 비구는 비록 그가 조용하고 소리가 없고 한적하고 사람들로부터 멀고 혼자 앉기에 좋은 외딴 처소인 숲이나 밀림의 외딴 거처에 머무르더라도 동반자와 함께 머무는 자라 불린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갈애가 바로 그의 동반자이고 그는 그것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반자와 함께 머무는 자라 불리는 것이다.”
2. “미가잘라여, 눈(시각)으로 인식되는 형색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유발하고 흥분을 야기한다고 하자. 만일 비구가 그것을 즐기지 않고 기뻐하지 않고 묶여(탐착) 있지 않으면 즐김(환락)이 일어나지 않는다. 즐김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애착이 생겨나지 않고, 애착이 생겨나지 않으면 결박이 생겨나지 않는다.
미가잘라여, 이처럼 즐김(환락)의 속박에 묶이지 않은 비구를 혼자 머무는 자라 부른다.
미가잘라여, 귀(청각)로 인식되는 소리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유발하고 흥분을 야기한다고 하자. 만일 비구가 그것을 즐기지 않고 기뻐하지 않고 묶여(탐착) 있지 않으면 즐김(환락)이 일어나지 않는다. 즐김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애착이 생겨나지 않고, 애착이 생겨나지 않으면 결박이 생겨나지 않는다.
미가잘라여, 이처럼 즐김(환락)의 속박에 묶이지 않은 비구를 혼자 머무는 자라 부른다.
미가잘라여, 코(후각)로 인식되는 냄새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유발하고 흥분을 야기한다고 하자. 만일 비구가 그것을 즐기지 않고 기뻐하지 않고 묶여(탐착) 있지 않으면 즐김(환락)이 일어나지 않는다. 즐김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애착이 생겨나지 않고, 애착이 생겨나지 않으면 결박이 생겨나지 않는다.
미가잘라여, 이처럼 즐김(환락)의 속박에 묶이지 않은 비구를 혼자 머무는 자라 부른다.
미가잘라여, 혀(미각)로 인식되는 맛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유발하고 흥분을 야기한다고 하자. 만일 비구가 그것을 즐기지 않고 기뻐하지 않고 묶여(탐착) 있지 않으면 즐김(환락)이 일어나지 않는다. 즐김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애착이 생겨나지 않고, 애착이 생겨나지 않으면 결박이 생겨나지 않는다.
미가잘라여, 이처럼 즐김(환락)의 속박에 묶이지 않은 비구를 혼자 머무는 자라 부른다.
미가잘라여, 몸(촉각)으로 인식되는 감촉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유발하고 흥분을 야기한다고 하자. 만일 비구가 그것을 즐기지 않고 기뻐하지 않고 묶여(탐착) 있지 않으면 즐김(환락)이 일어나지 않는다. 즐김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애착이 생겨나지 않고, 애착이 생겨나지 않으면 결박이 생겨나지 않는다.
미가잘라여, 이처럼 즐김(환락)의 속박에 묶이지 않은 비구를 혼자 머무는 자라 부른다.
미가잘라여, 마노(마음)로 인식되는 법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유발하고 흥분을 야기한다고 하자. 만일 비구가 그것을 즐기지 않고 기뻐하지 않고 묶여(탐착) 있지 않으면 즐김(환락)이 일어나지 않는다. 즐김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애착이 생겨나지 않고, 애착이 생겨나지 않으면 결박이 생겨나지 않는다.
미가잘라여, 이처럼 즐김(환락)의 속박에 묶이지 않은 비구를 혼자 머무는 자라 부른다."
미가잘라여, 이와 같이 머무는 비구는 비록 그가 비구들과 비구니들과 청신사들과 청신녀들과 왕들과 왕의 대신들과 외도들과 외도의 제자들과 섞여서 마을의 안에 머무러더라도 그는 혼자 머무는 자라 불린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갈애가 바로 그의 동반자인데 그는 그것을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자 머무는 자라 불리는 것이다.”
註)미가자라는 승단의 주요 후원자였던 비사카(visakha)부인의 아들로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미가잘라 경2(S35:64)
Migajāl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 싸밧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셔다. 그 무렵 미가잘라 존자가 세존께 찾아왔다. 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미가잘라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제게 간략하게 법을 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면 저는 세존으로부터 법을 들은 뒤 홀로 머물며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수행하며 지내고자 합니다.
“미가잘라여, 눈으로 인식되는 형색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유발하고 흥분을 야기한다고 하자. 만일 비구가 그것을 즐기고 기뻐하고 묶여(탐착) 있으면 그가 그것을 즐기고 기뻐하고 묶여 있기 때문에 즐김(환락)이 일어난다.
미가잘라여, 즐김이 일어나는 것이 바로 괴로움의 일어남이라고 나는 말한다.
미가잘라여, 귀로 인식되는 소리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유발하고 흥분을 야기한다고 하자. 만일 비구가 그것을 즐기고 기뻐하고 묶여(탐착) 있으면 그가 그것을 즐기고 기뻐하고 묶여 있기 때문에 즐김(환락)이 일어난다.
미가잘라여, 즐김이 일어나는 것이 바로 괴로움의 일어남이라고 나는 말한다.
미가잘라여, 코로 인식되는 냄새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유발하고 흥분을 야기한다고 하자. 만일 비구가 그것을 즐기고 기뻐하고 묶여(탐착) 있으면 그가 그것을 즐기고 기뻐하고 묶여 있기 때문에 즐김(환락)이 일어난다.
미가잘라여, 즐김이 일어나는 것이 바로 괴로움의 일어남이라고 나는 말한다.
미가잘라여, 혀로 인식되는 맛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유발하고 흥분을 야기한다고 하자. 만일 비구가 그것을 즐기고 기뻐하고 묶여(탐착) 있으면 그가 그것을 즐기고 기뻐하고 묶여 있기 때문에 즐김(환락)이 일어난다.
미가잘라여, 즐김이 일어나는 것이 바로 괴로움의 일어남이라고 나는 말한다.
미가잘라여, 몸으로 인식되는 감촉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유발하고 흥분을 야기한다고 하자. 만일 비구가 그것을 즐기고 기뻐하고 묶여(탐착) 있으면 그가 그것을 즐기고 기뻐하고 묶여 있기 때문에 즐김(환락)이 일어난다.
미가잘라여, 즐김이 일어나는 것이 바로 괴로움의 일어남이라고 나는 말한다.
미가잘라여, 마노(마음)로 인식되는 법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유발하고 흥분을 야기한다고 하자. 만일 비구가 그것을 즐기고 기뻐하고 묶여(탐착) 있으면 그가 그것을 즐기고 기뻐하고 묶여 있기 때문에 즐김(환락)이 일어난다.
미가잘라여, 즐김이 일어나는 것이 바로 괴로움의 일어남이라고 나는 말한다."
2. “미가잘라여, 눈으로 인식되는 형색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유발하고 흥분을 야기한다고 하자. 만일 비구가 그것을 즐기지 않고 기뻐하지 않고 묶여(탐착) 있지 않으면 즐김(환락)이 일어나지 않는다. 즐김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애착이 생겨나지 않고, 애착이 생겨나지 않으면 결박이 생겨나지 않는다.
미가잘라여, 즐김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바로 괴로움의 소멸이라고 나는 말한다.
미가잘라여, 귀로 인식되는 소리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유발하고 흥분을 야기한다고 하자. 만일 비구가 그것을 즐기지 않고 기뻐하지 않고 묶여(탐착) 있지 않으면 즐김(환락)이 일어나지 않는다. 즐김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애착이 생겨나지 않고, 애착이 생겨나지 않으면 결박이 생겨나지 않는다.
미가잘라여, 즐김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바로 괴로움의 소멸이라고 나는 말한다.
미가잘라여, 코로 인식되는 냄새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유발하고 흥분을 야기한다고 하자. 만일 비구가 그것을 즐기지 않고 기뻐하지 않고 묶여(탐착) 있지 않으면 즐김(환락)이 일어나지 않는다. 즐김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애착이 생겨나지 않고, 애착이 생겨나지 않으면 결박이 생겨나지 않는다.
미가잘라여, 즐김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바로 괴로움의 소멸이라고 나는 말한다.
미가잘라여, 혀로 인식되는 맛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유발하고 흥분을 야기한다고 하자. 만일 비구가 그것을 즐기지 않고 기뻐하지 않고 묶여(탐착) 있지 않으면 즐김(환락)이 일어나지 않는다. 즐김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애착이 생겨나지 않고, 애착이 생겨나지 않으면 결박이 생겨나지 않는다.
미가잘라여, 즐김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바로 괴로움의 소멸이라고 나는 말한다.
미가잘라여, 몸으로 인식되는 감촉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유발하고 흥분을 야기한다고 하자. 만일 비구가 그것을 즐기지 않고 기뻐하지 않고 묶여(탐착) 있지 않으면 즐김(환락)이 일어나지 않는다. 즐김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애착이 생겨나지 않고, 애착이 생겨나지 않으면 결박이 생겨나지 않는다.
미가잘라여, 즐김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바로 괴로움의 소멸이라고 나는 말한다.
미가잘라여, 마노로 인식되는 법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유발하고 흥분을 야기한다고 하자. 만일 비구가 그것을 즐기지 않고 기뻐하지 않고 묶여(탐착) 있지 않으면 즐김(환락)이 일어나지 않는다. 즐김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애착이 생겨나지 않고, 애착이 생겨나지 않으면 결박이 생겨나지 않는다.
미가잘라여, 즐김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바로 괴로움의 소멸이라고 나는 말한다."
3. 미가잘라 존자는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고 감사드린 뒤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아 경의를 표한 뒤에 물러갔다.
4. 미가잘라 존자는 홀로 머물며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수행하며 지냈다. 그는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집에서 나와 출가하는 목적인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렀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최상의 지혜로 알았다.
5. 미가잘라 존자는 아라한들 중의 한 분이 되었다.
사밋디 경1(S35:65)
Samiddhi-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의 대나무 숲에 있는 다람쥐 보호구역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사밋디 존자가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사밋디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마라, 마라’라고들 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마라가 있으며 혹은 마라라는 개념이 있습니까?”
“사밋디여, 눈(시각)이 있고, 형색이 있고, 눈의 의식이 있고, 눈의 의식으로 알아야 하는 법들이 있는 곳, 거기에 마라(악마)는 있고 혹은 마라라는 개념이 있다.
사밋다여, 귀(청각)가 있고, 소리가 있고, 귀의 의식이 있고, 귀의 의식으로 알아야 하는 법들이 있는 곳, 거기에 마라는 있고 혹은 마라라는 개념이 있다.
사밋다여, 코(후각)가 있고, 냄새가 있고, 코의 의식이 있고, 코의 의식으로 알아야 하는 법들이 있는 곳, 거기에 마라는 있고 혹은 마라라는 개념이 있다.
사밋다여, 혀(미각)가 있고, 맛이 있고, 혀의 의식이 있고, 혀의 의식으로 알아야 하는 법들이 있는 곳, 거기에 마라는 있고 혹은 마라라는 개념이 있다.
사밋다여, 몸(촉각)이 있고, 감촉이 있고, 몸의 의식이 있고, 몸의 의식으로 알아야 하는 법들이 있는 곳, 거기에 마라는 있고 혹은 마라라는 개념이 있다.
사밋다여, 마노(마음)가 있고, 법이 있고, 마노의 의식이 있고, 마노의 의식으로 알아야 하는 법들이 있는 곳, 거기에 마라는 있고 혹은 마라라는 개념이 있다.”
2. “사밋디여, 눈(시각)이 없고, 형색이 없고, 눈의 의식이 없고, 눈의 의식으로 알아야 하는 법들이 없는 곳, 거기에 마라는 없고 혹은 마라라는 개념도 없다.
사밋다여, 귀(청각)가 없고, 소리가 없고, 귀의 의식이 없고, 귀의 의식으로 알아야 하는 법들이 없는 곳, 거기에 마라는 없고 혹은 마라라는 개념도 없다.
사밋다여, 코(후각)가 없고, 냄새가 없고, 코의 의식이 없고, 코의 의식으로 알아야 하는 법들이 없는 곳, 거기에 마라는 없고 혹은 마라라는 개념도 없다.
사밋다여, 혀(미각)가 없고, 맛이 없고, 혀의 의식이 없고, 혀의 의식으로 알아야 하는 법들이 없는 곳, 거기에 마라는 없고 혹은 마라라는 개념도 없다.
사밋다여, 몸(촉각)이 없고, 감촉이 없고, 몸의 의식이 없고, 몸의 의식으로 알아야 하는 법들이 없는 곳, 거기에 마라는 없고 혹은 마라라는 개념도 없다.
사밋다여, 마노(마음)가 없고 법이 없고 마노의 의식이 없고 마노의 의식으로 알아야 하는 법들이 없는 곳, 거기에는 마라는 없고 혹은 마라라는 개념도 없다.”
사밋디 경2(S35:66)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의 대나무 숲에 있는 다람쥐 보호구역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사밋디 존자가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사밋디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2. “세존이시여, ‘중생, 중생’이라고들 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중생이 있으며 혹은 중생이라는 개념이 있습니까?”
“사밋디여, 눈(시각)이 있고, 형색이 있고, 눈의 의식이 있고, 눈의 의식이 알아야 하는 법들이 있는 곳, 거기에 중생은 있고 혹은 중생이라는 개념이 있다.
사밋다여, 귀(청각)가 있고, 소리가 있고, 귀의 의식이 있고, 귀의 의식이 알아야 하는 법들이 있는 곳, 거기에 중생은 있고 혹은 중생이라는 개념이 있다.
사밋다여, 코(후각)가 있고, 냄새가 있고, 코의 의식이 있고, 코의 의식이 알아야 하는 법들이 있는 곳, 거기에 중생은 있고 혹은 중생이라는 개념이 있다.
사밋다여, 혀(미각)가 있고, 맛이 있고, 혀의 의식이 있고, 혀의 의식이 알아야 하는 법들이 있는 곳, 거기에 중생은 있고 혹은 중생이라는 개념이 있다.
사밋다여, 몸(촉각)이 있고, 감촉이 있고, 몸의 의식이 있고, 몸의 의식이 알아야 하는 법들이 있는 곳, 거기에 중생은 있고 혹은 중생이라는 개념이 있다.
사밋다여, 마노(마음)가 있고, 법이 있고, 마노의 의식이 있고, 마노의 의식이 알아야 하는 법들이 있는 곳, 거기에 중생은 있고 혹은 중생이라는 개념이 있다.”
사밋디 경3(S35:67)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의 대나무 숲에 있는 다람쥐 보호구역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사밋디 존자가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사밋디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2. “세존이시여, ‘괴로움, 괴로움’이라고들 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괴로움이 있으며 혹은 괴로움이라는 개념이 있습니까?”
“사밋디여, 눈(시각)이 있고, 형색이 있고, 눈의 의식이 있고, 눈의 의식으로 알아야 하는 법들이 있는 곳, 거기에 괴로움이 있고 혹은 괴로움이라는 개념이 있다.
사밋다여, 귀(청각)가 있고, 소리가 있고, 귀의 의식이 있고, 귀의 의식으로 알아야 하는 법들이 있는 곳, 거기에 괴로움이 있고 혹은 괴로움이라는 개념이 있다.
사밋다여, 코(후각)가 있고, 냄새가 있고, 코의 의식이 있고, 코의 의식으로 알아야 하는 법들이 있는 곳, 거기에 괴로움이 있고 혹은 괴로움이라는 개념이 있다.
사밋다여, 혀(미각)가 있고, 맛이 있고, 혀의 의식이 있고, 혀의 의식으로 알아야 하는 법들이 있는 곳, 거기에 괴로움이 있고 혹은 괴로움이라는 개념이 있다.
사밋다여, 몸(촉각)이 있고, 감촉이 있고, 몸의 의식이 있고, 몸의 의식으로 알아야 하는 법들이 있는 곳, 거기에 괴로움이 있고 혹은 괴로움이라는 개념이 있다.
사밋다여, 마노(마음)가 있고, 법이 있고, 마노의 의식이 있고, 마노의 의식이 알아야 하는 법들이 있는 곳, 거기에 괴로움이 있고 혹은 괴로움이라는 개념이 있다."
사밋디 경4(S35:68)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의 대나무 숲에 있는 다람쥐 보호구역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사밋디 존자가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사밋디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2. “세존이시여, ‘세상, 세상’이라고들 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세상이 있으며 혹은 세상이라는 개념이 있습니까?”
“사밋디여, 눈(시각)이 있고, 형색이 있고, 눈의 의식이 있고, 눈의 의식으로 알아야 하는 법들이 있는 곳, 거기에 세상이 있고 혹은 세상이라는 개념이 있다.
사밋다여, 귀(청각)가 있고, 소리가 있고, 귀의 의식이 있고, 귀의 의식으로 알아야 하는 법들이 있는 곳, 거기에 세상이 있고 혹은 세상이라는 개념이 있다.
사밋다여, 코(후각)가 있고, 냄새가 있고, 코의 의식이 있고, 코의 의식으로 알아야 하는 법들이 있는 곳, 거기에 세상이 있고 혹은 세상이라는 개념이 있다.
사밋다여, 혀(미각)가 있고, 맛이 있고, 혀의 의식이 있고, 혀의 의식으로 알아야 하는 법들이 있는 곳, 거기에 세상이 있고 혹은 세상이라는 개념이 있다.
사밋다여, 몸(촉각)이 있고, 감촉이 있고, 몸의 의식이 있고, 몸의 의식으로 알아야 하는 법들이 있는 곳, 거기에 세상이 있고 혹은 세상이라는 개념이 있다.
사밋다여, 마노(마음)가 있고, 법이 있고, 마노의 의식이 있고, 마노의 의식으로 알아야 하는 법들이 있는 곳, 거기에 세상이 있고 혹은 세상이라는 개념이 있다."
우빠세나 경(S35:69)
Upasen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사리뿟따 존자와 우빠세나 존자는 라자가하의 차가운 숲에 있는 삽빠손디까(뱀 머리) 석굴에 머물고 있었다. 그 무렵 우빠세나 존자의 몸에 독사가 떨어졌다. 그러자 우빠세나 존자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했다.
2. “도반들이여, 오십시오. 이 몸을 침상위로 올려주고 이 몸이 마치 곡식의 왕겨처럼 흩어지기 전에 밖으로 옮겨 주십시오.”
이렇게 말하자 사리뿟따 존자가 우빠세나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우빠세나여, 그런데 우리는 우빠세나 존자의 몸의 변화나 감각능력들이 변하는(쇠퇴하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우빠세나 존자는 ‘도반들이여, 오십시오. 이 몸을 침상 위로 올려주고 이 몸이 마치 왕겨처럼 흩어지기 전에 밖으로 옮겨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눈(시각)이 나라든가 나의 것이 눈(시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몸의 변화와 감각능력등이 변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귀(청각)가 나라든가 나의 것이 귀(청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몸의 변화와 감각능력등이 변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코(후각)가 나라든가 나의 것이 코(후각)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몸의 변화와 감각능력등이 변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혀(미각)이 나라든가 나의 것이 혀(미각)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몸의 변화와 감각능력등이 변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몸(촉각)이 나라든가 나의 것이 몸(촉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몸의 변화와 감각능력등이 변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마노(마음)가 나라든가 나의 것이 마노(정신)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몸의 변화와 감각능력등이 변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그러나 나에게는 눈(시각)이 나라든가 나의 것이 눈(시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나에게 어찌 몸이 변하거나 감각기능들이 변하는 것이 있겠습니까?
귀(청각)가 나라든가 나의 것이 귀(청각)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나에게 어찌 몸이 변하거나 감각기능들이 변하는 것이 있겠습니까?
코(후각)가 나라든가 나의 것이 코(후각)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나에게 어찌 몸이 변하거나 감각기능들이 변하는 것이 있겠습니까?
혀(미각)이 나라든가 나의 것이 혀(미각)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나에게 어찌 몸이 변하거나 감각기능들이 변하는 것이 있겠습니까?
몸(촉각)이 나라든가 나의 것이 몸(촉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나에게 어찌 몸이 변하거나 감각기능들이 변하는 것이 있겠습니까?
마노(마음)가 나라든가 나의 것이 마노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나에게 어찌 몸이 변하거나 감각기능들이 변하는 것이 있겠습니까?”
3. “도반 우빠세나여, 그것은 우빠세나 존자가 오랜 세월을 ‘나’라는 생각과 ‘내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의 번뇌가 완전히 뿌리 뽑은 채로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빠세나 존자에게는 눈(시각)이 나라든가 나의 것이 눈(시각)이라든가, 귀(청각)가 나라든가 나의 것이 귀(청각)이라든가, 코(후각)가 나라든가 나의 것이 코(후각)이라든가, 혀(미각)이 나라든가 나의 것이 혀(미각)이라든가, 몸(촉각)이 나라든가 나의 것이 몸(촉각)이라든가, 마노(정신)가 나라든가 나의 것이 마노(마음)다'라는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4. 그 비구들은 우빠세나 존자의 몸을 침상 위로 올린 뒤 밖으로 옮겼다. 그러자 우빠세나 존자의 몸은 거기서 마치 한줌의 왕겨처럼 흩어졌다.
註)삽빠손디까(뱀 머리) 동굴은 뱀의 머리처럼 생겼다. 우빠세나 존자는 싸리뿟다의 동생이었다. 공양을 끝낸 후에 그는 동굴의 그늘에 앉아서 부드러운 바람을 쐬며 가사를 손질하고 있었다. 두 마라의 어린 독사들이 동굴에 걸려 있는 덩쿨에 있다가 한 마리가 우빠세나 장로의 어깨에 떨어졌다. 그는 뱀에게 물렸고 독은 빠른 속도로 거의 몸에 퍼졌다.
싸리뿟다의 형제는 4남 3녀인데 모두다 출가및 불교에 귀의를 하였다. 남동생은 쭌다와 우빠세나 그리고 레와따였고, 여동생들은 짤라, 우빠짤라와 시수빠짤라이다. 이중 남동생인 쭌다는 형인 싸리뿟타를 존경하여 비구계를 받지 않고 싸리뿟다의 시자로 지냈다. 그리고 싸리뿟다가 열반하였을 때 그의 열반소식과 사리를 붓다와 아난다존자에게 전달했다. 우빠세나 존자는 위 경처럼 싸리뿟다와 함께 동굴에서 지내다가 독사에 물려 열반을 했다. 막내동인 레와따 존자는 7살때 10살짜리 신부와 결혼을 하려 했는데 신부를 데리고 나온 100살짜리 할머니를 보고 무상함을 알아 출가했다고 한다.
싸리뿟다의 여동생들인 짤라, 우빠짤라 그리고 시수빠짤라는 모두다 아라한이 되었으며 상윳따니까야 5.비구니 상윳따에 그분들의 이야기와 게송이 실려있다.
우빠와나 경(S35:70)
Upavān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의 대나무 숲에 있는 다람쥐 보호구역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우빠와나 존자가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우빠와나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법,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법’이라고들 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 시간이 걸리지 않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인도하고, 지자들이 각자 알아야 하는 것입니까?”
“우빠와나여, 여기 비구는 눈으로 형색을 보고 나서 형색을 경험하고 형색에 대한 탐욕도 경험한다. 그러면 그는 ‘내 안에는 형색들에 대한 탐욕이 있구나.’라고 하면서 자기 안에 형색들에 대한 탐욕이 있음을 꿰뚫어 안다.
우빠와나여, 이렇게 꿰뚫어 아는 것을 두고 ‘법은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 시간이 걸리지 않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인도하고, 지자들이 각자 알아야 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다시 우빠와나여, 귀로 소리를 듣고 나서 소리를 경험하고 소리에 대한 탐욕도 경험한다. 그러면 그는 ‘내 안에는 소리들에 대한 탐욕이 있구나.’라고 하면서 자기 안에 소리들에 대한 탐욕이 있음을 꿰뚫어 안다.
우빠와나여, 이렇게 꿰뚫어 아는 것을 두고 ‘법은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 시간이 걸리지 않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인도하고, 지자들이 각자 알아야 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다시 우빠와나여, 코로 냄새를 맡고 나서 냄새를 경험하고 냄새에 대한 탐욕도 경험한다. 그러면 그는 ‘내 안에는 냄새들에 대한 탐욕이 있구나.’라고 하면서 자기 안에 냄새들에 대한 탐욕이 있음을 꿰뚫어 안다.
우빠와나여, 이렇게 꿰뚫어 아는 것을 두고 ‘법은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 시간이 걸리지 않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인도하고, 지자들이 각자 알아야 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다시 우빠와나여, 혀로 맛을 보고 나서 맛을 경험하고 맛에 대한 탐욕도 경험한다. 그러면 그는 ‘내 안에는 맛들에 대한 탐욕이 있구나.’라고 하면서 자기 안에 맛들에 대한 탐욕이 있음을 꿰뚫어 안다. 우빠와나여, 이렇게 꿰뚫어 아는 것을 두고 ‘법은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 시간이 걸리지 않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인도하고, 지자들이 각자 알아야 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다시 우빠와나여, 몸으로 감촉을 느끼고 나서 감촉을 경험하고 김촉에 대한 탐욕도 경험한다. 그러면 그는 ‘내 안에는 감촉들에 대한 탐욕이 있구나.’라고 하면서 자기 안에 감촉들에 대한 탐욕이 있음을 꿰뚫어 안다.
우빠와나여, 이렇게 꿰뚫어 아는 것을 두고 ‘법은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 시간이 걸리지 않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인도하고, 지자들이 각자 알아야 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다시 우빠와나여, 마노로 법을 알고 나서 법을 경험하고 법에 대한 탐욕도 경험한다. 그러면 그는 ‘내 안에는 법들에 대한 탐욕이 있구나.’라고 하면서 자기 안에 법들에 대한 탐욕이 있음을 꿰뚫어 안다.
우빠와나여, 이렇게 꿰뚫어 아는 것을 두고 ‘법은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 시간이 걸리지 않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인도하고, 지자들이 각자 알아야 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2. “우빠와나여, 여기 비구는 눈으로 형색을 보고 나서 형색을 경험하지만 형색에 대한 탐욕은 경험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는 ‘내 안에는 형색들에 대한 탐욕이 없구나.’라고 하면서 자기 안에 형색들에 대한 탐욕이 있지 않음을 꿰뚫어 안다.
우빠와나여, 이렇게 꿰뚫어 아는 것을 두고 ‘법을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 시간이 걸리지 않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인도하고, 지자들이 각자 알아야 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다시 우빠와나여, 귀로 소리를 듣고 나서 소리를 경험하지만 소리에 대한 탐욕은 경험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는 ‘내 안에는 소리들에 대한 탐욕이 없구나.’라고 하면서 자기 안에 소리들에 대한 탐욕이 있지 않음을 꿰뚫어 안다.
우빠와나여, 이렇게 꿰뚫어 아는 것을 두고 ‘법을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 시간이 걸리지 않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인도하고, 지자들이 각자 알아야 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다시 우빠와나여, 코로 냄새를 맡고 나서 냄새를 경험하지만 냄새에 대한 탐욕은 경험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는 ‘내 안에는 냄새들에 대한 탐욕이 없구나.’라고 하면서 자기 안에 냄새들에 대한 탐욕이 있지 않음을 꿰뚫어 안다.
우빠와나여, 이렇게 꿰뚫어 아는 것을 두고 ‘법을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 시간이 걸리지 않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인도하고, 지자들이 각자 알아야 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다시 우빠와나여, 혀로 맛을 보고 나서 맛을 경험하지만 맛에 대한 탐욕은 경험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는 ‘내 안에는 맛들에 대한 탐욕이 없구나.’라고 하면서 자기 안에 맛들에 대한 탐욕이 있지 않음을 꿰뚫어 안다.
우빠와나여, 이렇게 꿰뚫어 아는 것을 두고 ‘법을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 시간이 걸리지 않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인도하고, 지자들이 각자 알아야 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다시 우빠와나여, 몸으로 감촉을 느끼고 나서 감촉을 경험하지만 감촉에 대한 탐욕은 경험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는 ‘내 안에는 감촉들에 대한 탐욕이 없구나.’라고 하면서 자기 안에 감촉들에 대한 탐욕이 있지 않음을 꿰뚫어 안다.
우빠와나여, 이렇게 꿰뚫어 아는 것을 두고 ‘법을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 시간이 걸리지 않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인도하고, 지자들이 각자 알아야 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다시 우빠와나여, 마노를 법을 알고 나서 법을 경험하지만 법에 대한 탐욕은 경험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는 ‘내 안에는 법들에 대한 탐욕이 없구나.’라고 하면서 자기 안에 법들에 대한 탐욕이 있지 않음을 꿰뚫어 안다.
우빠와나여, 이렇게 꿰뚫어 아는 것을 두고 ‘법은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 시간이 걸리지 않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인도하고, 지자들이 각자 알아야 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여섯 감각접촉의 장소 경1(S35:71)
Chaphassāyatan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 싸밧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비구가 여섯 감각접촉의 장소(영역)의 일어남과 사라짐과(생성과 소멸) 달콤함과 위험함과 벗어남을 있은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면 그의 청정범행은 성취되지 못했고 그는 이 법과 율에서 멀리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어떤 비구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기에 대해서 저는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여섯 감각접촉의 장소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합니다.”
“비구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눈(시각)에 대하여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장하구나, 비구여. 여기서 그대가 눈(시각)에 대하여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와 같이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분명하게 보면 이것이 바로 괴로움의 끝이다.”
“비구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귀(청각)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장하구나, 비구여. 여기서 그대가 눈(시각)에 대하여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와 같이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분명하게 보면 이것이 바로 괴로움의 끝이다.”
"비구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코(후각)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장하구나, 비구여. 여기서 그대가 눈(시각)에 대하여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와 같이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분명하게 보면 이것이 바로 괴로움의 끝이다.”
"비구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혀(미각)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장하구나, 비구여. 여기서 그대가 눈(시각)에 대하여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와 같이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분명하게 보면 이것이 바로 괴로움의 끝이다.”…
"비구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몸(촉각)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장하구나, 비구여. 여기서 그대가 눈(시각)에 대하여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와 같이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분명하게 보면 이것이 바로 괴로움의 끝이다.”
"비구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마노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장하구나, 비구여. 여기서 그대가 마노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와 같이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분명하게 보면 이것이 바로 괴로움의 끝이다.”
여섯 감각접촉의 장소 경(S35:72)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 싸밧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비구가 여섯 감각접촉의 장소(영역)의 일어남과 사라짐과(생성과 소멸) 달콤함과 위험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면 그의 청정범행은 성취되지 못했고 그는 이 법과 율에서 멀리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어떤 비구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기에 대해서 저는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여섯 감각접촉의 장소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합니다.”
“비구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눈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관찰하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장하구나, 비구여. 여기서 그대가 눈(시각)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와 같이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분명하게(올바른 지혜로 잘 관찰하면)보면 이것은 그대가 첫 번째 감각접촉의 장소를 버리는 것이며 미래에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비구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귀(청각)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관찰하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장하구나, 비구여. 여기서 그대가 눈(시각)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와 같이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분명하게(올바른 지혜로 잘 관찰하면)보면 이것은 그대가 첫 번째 감각접촉의 장소를 버리는 것이며 미래에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비구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코(후각)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관찰하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장하구나, 비구여. 여기서 그대가 눈(시각)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와 같이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분명하게(올바른 지혜로 잘 관찰하면)보면 이것은 그대가 첫 번째 감각접촉의 장소를 버리는 것이며 미래에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비구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혀(미각)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관찰하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장하구나, 비구여. 여기서 그대가 눈(시각)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와 같이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분명하게(올바른 지혜로 잘 관찰하면)보면 이것은 그대가 첫 번째 감각접촉의 장소를 버리는 것이며 미래에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비구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몸(촉각)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관찰하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장하구나, 비구여. 여기서 그대가 눈(시각)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와 같이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분명하게(올바른 지혜로 잘 관찰하면)보면 이것은 그대가 첫 번째 감각접촉의 장소를 버리는 것이며 미래에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비구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마노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관찰하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장하구나, 비구여. 여기서 그대가 마노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와 같이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분명하게 보면 이것은 그대가 여섯 번째 감각접촉의 장소를 버리는 것이 될 것이며 미래에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여섯 감각접촉의 장소 경3(S35:73)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 싸밧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비구가 여섯 감각접촉의 장소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면 그의 청정범행은 성취되지 못했고 그는 이 법과 율에서 멀리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어떤 비구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기에 대해서 저는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여섯 감각접촉의 장소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합니다.”
“비구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기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귀는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기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코는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기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혀는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기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몸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기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마노는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기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3. “비구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눈에 대해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귀에 대해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코에 대해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혀에 대해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몸에 대해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마노에 대해서도 싫어하여 떠난다.
싫어하여 떠난면서 탐욕이 사라지고, 탐욕이 사라지므로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제7장 미가잘라 품이 끝났다. 일곱 번째 품에 포함된 경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① ~ ② 미가잘라 ③ ~ ⑥ 사밋디 ⑦ 우빠세나 ⑧ 우빠와나 ⑨ ~ ⑪ 여섯 감각접촉의 장소이다.
실론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gikoship/15780837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
'상윳따 니까야(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35상윳따 - 제9장 찬나 품(Channa-vagga. S35:84-S35:93) (0) | 2018.04.15 |
---|---|
제35상윳따 - 제8장 환자 품(Gilāna-vagga. S35:74-S35:83) (0) | 2018.04.15 |
제35상윳따 - 제6장 무명 품(Avijjā-vagga. S35:53-S35:62) (0) | 2018.04.15 |
제35상윳따 - 제5장 무상 품(Anicca-vagga. S35:43-S35:52) (0) | 2018.04.15 |
제35상윳따 - 제4장 태어나기 마련인 법(생겨나는 것의) 품 Jātidhamma-vagga.S35:33-S35:42) (0) | 2018.04.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