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지마 니까야(중)

[스크랩] M148. 여섯씩 여섯 경(육육경. Chachakkasuttaṃ )

수선님 2018. 5. 13. 11:38

여섯씩 여섯[六六] 경

Mn148 *육육 경 MAJJHIMA NIKâYA III 5. 6. Chachakkasuttaü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급고독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법을 설하리라. 나는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며 의미와 표현을 구족했고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법을 설하고, 범행

(梵行)을 드러낼 것이니 그것은 여섯씩 여섯이다. 그것을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이제 설하리라."

"그러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 하셨다.


3.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안의 감각장소(터전)들을 알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밖의 감각장소들을 알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의식의 일어나는 모습을 알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일어나는 모습을 알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느낌의 일어나는 모습을 알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갈애의 일어나는 모습을 알아야 한다." 

 

4. "'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안의 감각장소를 알아야 한다.'라고 한 것은 무엇을 두고 한 말인가?

눈의 감각장소, 

귀의 감각장소, 

코의 감각장소, 

혀의 감각장소, 

몸의 감각장소, 

마노[意. 마음]의 감각장소가 있다.

'여섯 가지 안의 감각장소를 알아야 한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이것이 첫 번째 여섯이다."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밖의 감각장소를 알아야 한다.'라고 한 것은 무엇을 두고 한 말인가?

형색(시각대상)의 감각장소, 

소리의 감각장소, 

냄새의 감각장소, 

맛의 감각장소, 

감촉의 감각장소, 

법(마음현상)의 감각장소가 있다.

'여섯 가지 밖의 감각장소를 알아야 한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이것이 두 번째 여섯이다."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의식의 일어나는 모습을 알아야 한다.'라고 한 것은 무엇을 두고 한 말인가?

눈과 형색(시각대상)들을 조건으로 눈의 의식이 일어난다.

귀와 소리들을 조건으로 귀의 의식이 일어난다.

코와 냄새들을 조건으로 코의 의식이 일어난다.

혀와 맛들을 조건으로 혀의 의식이 일어난다.

몸과 감촉들을 조건으로 몸의 의식이 일어난다.

의식(마음.意)와 법(마음현상)들을 조건으로 마음의 식별이 일어난다.

'여섯 가지 의식의 일어나는 모습을 알아야 한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이것이 세 번째 여섯이다."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일어나는 모습을 알아야 한다.'라고 한 것은 무엇을 두고 한 말인가?

눈과 형색들을 조건으로 눈의 의식이 일어난다. 이 셋의 화합이 감각접촉이다.

귀와 소리들을 조건으로 귀의 의식이 일어난다. 이 셋의 화합이 감각접촉이다.

코와 냄새들을 조건으로 코의 의식이 일어난다. 이 셋의 화합이 감각접촉이다.

혀와 맛들을 조건으로 혀의 의식이 일어난다. 이 셋의 화합이 감각접촉이다.

몸과 감촉들을 조건으로 몸의 의식이 일어난다. 이 셋의 화합이 감각접촉이다.

의식(意. 마음)와 법(마음현상)들을 조건으로 마음의 식별이 일어난다. 이 셋의 화합이 감각접촉이다.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일어나는 모습을 알아야 한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이것이 네 번째 여섯이다."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느낌의 일어나는 모습을 알아야 한다.'라고 한 것은 무엇을 두고 한 말인가?

눈과 형색(시각대상)들을 조건으로 눈의 의식이 일어난다. 이 셋의 화합이 감각접촉이다.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다.

귀와 소리들을 조건으로 귀의 의식이 일어난다. 이 셋의 화합이 감각접촉이다.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다.

코와 냄새들을 조건으로 코의 의식이 일어난다. 이 셋의 화합이 감각접촉이다.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다.

혀와 맛들을 조건으로 혀의 의식이 일어난다. 이 셋의 화합이 감각접촉이다.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다.

몸과 감촉들을 조건으로 몸의 의식이 일어난다. 이 셋의 화합이 감각접촉이다.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다.

의식[마음.意]와 법(마음현상)들을 조건으로 마음의 식별이 일어난다. 이 셋의 화합이 감각접촉이다.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다.

'여섯 가지 느낌의 일어나는 모습을 알아야 한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이것이 다섯 번째 여섯이다."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갈애의 일어나는 모습을 알아야 한다.'라고 한 것은 무엇을 두고 한 말인가?

눈과 형색들을 조건으로 눈의 의식이 일어난다. 이 셋의 화합이 감각접촉이다.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다.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있다.

귀와 소리들을 조건으로 귀의 의식이 일어난다. 이 셋의 화합이 감각접촉이다.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다.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있다.

코와 냄새들을 조건으로 코의 의식이 일어난다. 이 셋의 화합이 감각접촉이다.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다.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있다.

혀와 맛들을 조건으로 혀의 의식이 일어난다. 이 셋의 화합이 감각접촉이다.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다.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있다.

몸과 감촉들을 조건으로 몸의 의식이 일어난다. 이 셋의 화합이 감각접촉이다.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다.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있다.

의식[마음.意]와 법들을 조건으로 마음의 식별이 일어난다. 이 셋의 화합이 감각접촉이다.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다.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있다.

'여섯 가지 갈애의 일어나는 모습을 알아야 한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이것이 여섯 번째 여섯이다." 


5. "비구들이여, 만일 '눈이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눈의 일어남과 사라짐은 알 수 있다.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눈이 자아다.'라고 말하면 '나의 자아가 일어나고 사라진다.'라는 말이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눈이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눈은 자아가 아니다.

 

비구들이여, 만일 '형색(시각대상)들이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형색들의 일어남과 사라짐은 알 수 있다.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 수 있기 때문에 '형색들이 자아다.'라고 말하면 '나의 자아가 일어나고 사라진다.'라는 말이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형색들이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형색들은 자아가 아니다.

 

비구들이여, 만일 '눈의 의식이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눈의 의식이 일어남과 사라짐은 알 수 있다.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눈의 의식이 자아다.'라고 말하면 '나의 자아가 일어나고 사라진다.'라는 말이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눈의 의식이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눈의 의식은 자아가 아니다.

 

비구들이여, 만일 '눈의 감각접촉이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눈의 감각접촉의 일어남과 사라짐은 알 수 있다.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눈의 감각접촉이 자아다.'라고 말하면 '나의 자아가 일어나고 사라진다.'라는 말이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눈의 감각접촉이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눈의 감각접촉은 자아가 아니다.

 

비구들이여, 만일 '느낌이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느낌의 일어남과 사라짐은 알 수 있다.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느낌이 자아다.'라고 말하면 '나의 자아가 일어나고 

사라진다.'라는 말이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느낌이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느낌은 자아가 아니다.

 

비구들이여, 만일 '갈애가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갈애의 일어남과 사라짐은 알 수 있다.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 수 있기 때문에 '갈애가 자아다.'라고 말하면 '나의 자아가 일어나고 사라진다.'라는 말이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갈애가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따러서 갈애는 자아가 아니다." 

 

7. "비구들이여, 만일 '귀가 자아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귀의 일어남과 사라짐은 알 수 있다.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 수 있기 때문에 '귀가 자아다.'라고 말하면 '나의 자아가 일어나고 사라진다.'라는 말이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귀가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귀는 자아가 아니다."


비구들이여, 만일 '소리들이 자아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소리의 일어남과 사라짐은 알 수 있다.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소리가 자아다.'라고 말하면 '나의 자아가 일어나고 

사라진다.'라는 말이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소리가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그러므로 소리는 자아가 아니다.


비구들이여, 만일 '귀의 의식이 자아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귀의 의식의  일어남과 사라짐은 알 수 있다.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 수 있기 때문에 '귀의 의식이 자아다.'라고 말하면 '나의 자아가 일어나고 사라진다.'라는 말이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귀의 알음알이가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그러므로 귀의 의식은

자아가 아니다.


비구들이여, 만일 '귀의 감각접촉이 자아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귀의 감각접촉이 일어남과 사라짐은 알 수 있다.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 수 있기 때문에 '귀의 감각접촉이 자아다.'라고 말하면 '나의 자아가 일어나고 사라진다.'라는 말이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귀의 감각접촉이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귀의 감각접촉은 자아가 아니다.


비구들이여, 만일 '느낌이 자아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느낌의 일어남과 사라짐은 알 수 있다.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느낌이 자아다.'라고 말하면 '나의 자아가 일어나고 사라진다.'라는 말이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느낌이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느낌은 자아가 아니다.


"비구들이여, 만일 '갈애가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갈애의 일어남과 사라짐은 알 수 있다.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 수 있기 때문에 '갈애가 자아다.'라고 말하면 '나의 자아가 일어나고 사라진다.'라는 말이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갈애가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갈애는 자아가 아니다." 

 

8. "비구들이여, 만일 '코가 자아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냄새들이 자아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코의 의식이 자아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코의 감각접촉이 자아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느낌이 자아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갈애가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갈애의 일어남과 사라짐은 알 수 있다.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 수 있기 때문에 '갈애가 자아다.'라고 말하면 '나의 자아가 일어나고 

사라진다.'라는 말이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갈애가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갈애는 자아가 아니다." 

 

9. "비구들이여, 만일 '혀가 자아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 

'맛들이 자아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혀의 의식이 자아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혀의 감각접촉이 자아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느낌이 자아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갈애가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갈애의 일어남과 사라짐은 알 수 있다.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 수 있기 때문에 '갈애가 자아다.'라고 말하면 '나의 자아가 일어나고 사라진다.'라는 말이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갈애가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갈애는 자아가 아니다." 

 

10. "비구들이여, 만일 '몸이 자아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 

'감촉들이 자아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몸의 의식이 자아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몸의 감각접촉이 자아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느낌이 자아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갈애가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갈애의 일어남과 사라짐은 알 수 있다.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 수 있기 때문에 '갈애가 자아다.'라고 말하면 '나의 자아가 일어나고 사라진다.'라는 말이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갈애가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갈애는 자아가 아니다." 

 

10. "비구들이여, 만일 마노[마음.意]가 자아다.' … 

'법(마음현상)들이 자아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마음의 식별이 자아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마노(마음)의 감각접촉이 자아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느낌이 자아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갈애가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갈애의 일어남과 사라짐은 알 수 있다.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 수 있기 때문에 '갈애가 자아다.'라고 말하면] '나의 자아가 일어나고 사라진다.'라는 말이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갈애가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갈애는 자아가 아니다." 

 


11. "비구들이여, 이것이 존재의(瘟.오취온) 일어남으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


눈을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형색(시각대상)을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눈의 의식를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눈의 감각접촉을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느낌을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갈애를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귀를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소리를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귀의 의식를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귀의 감각접촉을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느낌을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갈애를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코를 두고 귀를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냄새를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코의 의식를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코의 감각접촉을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느낌을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갈애를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혀를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맛을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혀의 의식를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혀의 감각접촉을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느낌을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갈애를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몸을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감촉을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몸의 의식를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몸의 감각접촉을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느낌을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갈애를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마노[마음.意]을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법(마음현상)들을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마음의 식별을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마노[마음.意] 감각접촉을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느낌을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갈애를 두고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12. "비구들이여, 이것이 존재(瘟.오취온)의 소멸로 인도하는 닦음이다.


눈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형색들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눈의 의식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눈의 감각접촉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라고 여긴다.

느낌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갈애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귀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소리들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귀의 의식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귀의 감각접촉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라고 여긴다.

느낌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갈애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코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냄새들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의 의식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코의 감각접촉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라고 여긴다.

느낌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갈애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혀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맛들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혀의 의식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혀의 감각접촉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라고 여긴다.

느낌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갈애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몸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감촉들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몸의 의식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몸의 감각접촉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라고 여긴다.

느낌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갈애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마노[마음.意]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법(마음현상)들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마음의 식별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마음의 감각접촉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느낌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갈애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13. "비구들이여, 눈과 형색(시각대상)들을 조건으로 눈의 의식이 일어난다. 이 셋의 화합이 감각접촉이다.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일어난다.

즐거움 느낌에 닿을 때 만일 그것을 즐기고 환영하고 취착하면 그에게 탐욕의 잠재성향이 

잠재하게 된다.

괴로운 느낌을 닿을 때 만일 근심하고 상심하고 슬퍼하고 가슴을 치고 울부짖고 광란하면 그에게 적의의 잠재성향이 잠재하게 된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닿을 때 만일 그 느낌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재난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면 그에게 무명의 잠재성향이 잠재하게 된다.

비구들이여, 그가 참으로 즐거운 느낌에 대해 탐욕의 잠재성향을 버리지 않고, 괴로운 느낌에 

대해 적의의 잠재성향을 파괴하지 않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해 무명의 잠재성향을 뿌리 뽑지 않고, 무명을 버리지 않고, 명지를 일으키지 않고,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낼 

것이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비구들이여, 귀와 소리들을 조건으로 눈의 의식이 일어난다. ...

비구들이여, 코와 냄새들을 조건으로 코의 의식이 일어난다. ...

비구들이여, 혀와 맛들을 조건으로 혀의 의식이 일어난다. ...

비구들이여, 몸과 감촉들을 조건으로 몸의 의식이 일어난다. ...


비구들이여, 마노[마음.意]와 법(마음현상)들을 조건으로 마음의 식별이 일어난다. 이 셋의 화합이 감각접촉이다.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일어난다.

즐거움 느낌에 닿을 때 만일 그것을 즐기고 환영하고 움켜쥐면 그에게 탐욕의 잠재성향이 

잠재하게 된다.

괴로운 느낌을 닿을 때 만일 근심하고 상심하고 슬퍼하고 가슴을 치고 울부짖고 광란하면

그에게 적의의 잠재성향이 잠재하게 된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닿을 때 만일 그 느낌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재난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면 그에게 무명의 잠재성향이 잠재하게 된다.

비구들이여, 그가 참으로 즐거운 느낌에 대해 탐욕의 잠재성향을 버리지 않고, 괴로운 느낌에 

대해 적의의 잠재성향을 파괴하지 않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해 무명의 잠재성향을 뿌리 뽑지 않고, 무명을 버리지 않고, 명지를 일으키지 않고,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낼 

것이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14. "비구들이여, 눈과 형색(시각대상)들을 조건으로 눈의 의식이 일어난다. 이 셋의 화합이 감각접촉이다.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일어난다.

즐거움 느낌에 닿을 때 만일 그것을 즐기지 않고 환영하지 않고 움켜쥐지 않으면 그에게 탐욕의 

잠재성향이 잠재하지 않는다.

괴로운 느낌을 닿을 때 만일 근심하지 않고 상심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고 가슴을 치고 울부짖고 

광란하지 않으면 그에게 적의의 잠재성향이 잠재하지 않는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닿을 때 만일 그 느낌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재난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면 그에게 무명의 잠재성향이 잠재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그가 참으로 즐거운 느낌에 대해 탐욕의 잠재성향을 버리고, 괴로운 느낌에 대해 

적의의 잠재성향을 파괴하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해 무명의 잠재성향을 뿌리 뽑고,

무명을 버리고, 명지를 일으킴으로써,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낼 것이라는 것은 가능하다."

 

비구들이여, 귀와 소리들을 조건으로 눈의 의식이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코와 냄새들을 조건으로 코의 의식이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혀와 맛들을 조건으로 혀의 의식이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몸과 감촉들을 조건으로 몸의 의식이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마노[마음.意]와 법(마음현상)들을 조건으로 마음의 식별이 일어난다. 이 셋의 화합이 감각접촉이다.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일어난다.

즐거움 느낌에 닿을 때 만일 그것을 즐기지 않고 환영하지 않고 움켜쥐지 않으면 그에게 탐욕의 

잠재성향이 잠재하지 않는다. 

괴로운 느낌을 닿을 때 만일 근심하지 않고 상심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고 가슴을 치고 울부짖고 

광란하지 않으면 그에게 적의의 잠재성향이 잠재하지 않는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닿을 때 만일 그 느낌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재난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면 그에게 무명의 잠재성향이 잠재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그가 참으로 즐거운 느낌에 대해 탐욕의 잠재성향을 버리고, 괴로운 느낌에 대해 

적의의 잠재성향을 파괴하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해 무명의 잠재성향을 뿌리 뽑고,

무명을 버리고, 명지를 일으킴으로써,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낼 것이라는 것은 가능하다."

 

15.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면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눈에 대해 염오하고 형색들에 대해 

염오하고 눈의 의식에 대해 염오하고 눈의 감각접촉에 대해 염오하고 느낌에 대해 염오하고 갈애에 대해 염오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면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귀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소리에 대해 염오하고 귀의 의식에 대해 염오하고 귀의 감각접촉에 대해 염오하고 느낌에 대해 염오하고 갈애에 대해 염오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면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코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냄새에 대해 염오하고 코의 의식에 대해 염오하고 코의 감각접촉에 대해 염오하고 느낌에 대해 염오하고 갈애에 대해 염오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면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몸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감촉에 대해 염오하고 몸의 의식에 대해 염오하고 몸의 감각접촉에 대해 염오하고 느낌에 대해 염오하고 갈애에 대해 염오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면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마노[마음.意]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법(마음현상)들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마음의 식별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마음의 감각접촉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느낌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갈애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면서 탐욕이 소멸한다. 

탐욕이 사라지므로 해탈한다.

해탈할 때 해탈했다는 지혜가 생긴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16.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그 비구들은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였다. 

이 가르침이 설해졌을 때 60명의 비구들은 취착없이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했다. 

 

Chachakkasuttaṃ niṭṭhitaṃ chaṭṭhaṃ.

여섯씩 여섯[六六] 경(M148)이 끝났다. 

 


출처 : 붓다의 옛길
글쓴이 : 실론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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