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보리행론 - 누구도 고통은 원하지 않는다.
무엇으로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가?
비록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라 해도 고통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고통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또한 그 누구도 마음이 괴롭고, 혼란스러운 것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런데도 왜, 원하지도 않는 고통은 잇달아 생기고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할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취해야 하는 것과 버려야할 것에 대한 바른 견해가 없고 뒤집힌 견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듭거듭 고통이 생기는 것입니다.
고통을 행복으로 여기고,
무상한 것을 영원한 것으로 보고,
또 ‘내가 없음’에도 ‘내가 있다’고 여기는 뒤집힌 견해 탓에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뒤집힌 견해를 없애기 위해, 부처님께서는 법을 행해야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나가르주나께서 “대자비로 중생을 건지시고 중생이 그릇된 견해를 모두 버리도록..” 말씀하신 것처럼, 부처님께서는 고통을 일으키는 뒤집힌 견해를 없애기 위해 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리석음과 뒤집힌 견해는 어떻게 없앨 수 있는가?
이 둘은 기도로 없앨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명상으로 없앨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무상(無常) 혹은 고(苦)를 명상한다고 해서 없앨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없앨 수 있는가?
바로 바른 견해를 통해서 없앨 수 있습니다.
뒤집힌 견해와 정반대가 되는 바른 견해를 가지면 뒤집힌 견해에 집착하는 것을 없앨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을 일컬어, 고통의 근본인 뒤집힌 견해를 없애기 위해, 뒤집히지 않은 견해 즉 바른 실상을 보신 분이라 하신 것입니다.
교주가 뛰어나고 수승하신 분이라는 것을 그분의 생김새나 그분의 좋은 목소리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교주께서 말씀하신 가르침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그 가르침을 자신의 경험에 비춰보았을 때 “이 가르침이 아주 놀라운 것이구나!” “이치에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야 합니다.
그때서야 법을 전파한 교주에게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교주가 말한 법이 그다지 생각해 볼 가치도 없는 것이라면 자신에게 은혜로운 분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분의 말씀을 전부 따라야 할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교주의 가르침을 분석해 보고, 그 가르침을 자신의 경험에 비춰보았을 때 합당하다면,
그때 교주의 가르침과 교주는 믿을 수 있는 선인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부처님 가르침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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