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보리행론 해설 2. 고귀한 진리, 고집멸도 사성제(四聖諦)
부처님께서는 초전법륜을 굴리실 때 네 가지 고귀한 진리를 최초로 설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사성제를 설하신 이유는, 모두가 고통을 원하지 않고 행복을 바라지만 원하지 않는 불행과 원하는 행복이 우리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통과 행복은 원인 없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전혀 관계없는 원인에서 비롯되는 것도 아닙니다. 항상 존재하는 것에서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조물주의 창조로 인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인연과 조건에 의해 생기는 ‘연기법’에 대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연기법’은 불교 사상의 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지 않는 고통 역시 원인이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 원인은 무엇인가?’ 이것은 일상적인 진리(속제俗諦)에 해당합니다.
짧은 순간의 행복이 아니라 모든 고통을 끊고, 영원히 행복하려면 그것에 합당한 원인과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부처님의 가피로써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느끼는 고통의 원인들을 대치법으로 완전히 소멸시킨다면 고통에서 벗어나,
영원히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모든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괴로움의 소멸의 진리(멸성제滅聖諦)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멸성제 또한 원인과 조건으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멸성제를 이루는 씨앗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의 진리(도성제道聖諦)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원인과 조건에 의해 결과가 생겨난다는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사상의 핵심입니다.
내면의 행복과 고통뿐만 아니라 존재하고 변화하는 안팎의 그 무엇이든, 원인과 조건에 의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 연기 그 자체라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모두 원인과 조건에 의한 것임을 말씀하신 것 입니다.
이런 연유에서 사성제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평상시 우리는 반야바라밀 즉 ‘지혜의 저 언덕으로 가자.’고 독송을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혜란, 이치에 맞게 생각하고 연구. 분석하는 것을 뜻합니다. ‘과연 그런가? 그렇지 않은가?’ 이렇게 분석하는 것을 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혜의 저 언덕으로 가자.’고 할 때에 이 지혜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고통의 뿌리가 무엇인지?’ ‘고통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를 분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통은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게 하는 요인으로는 뒤집힌 견해 중에서도 특히 근본적인 어리석음인 무명을 꼽을 수 있습니다. 뒤집힌 견해는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도 무명이 가장 강하며, 뒤집힌 견해의 뿌리와도 같습니다.
무명을 표현하는 방법도 다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명이 뒤집힌 견해인지 아닌지를 논리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의식을 통해, 어떤 대상을 실상 그대로 본다면 뒤집히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존재하는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다르게 본다면 뒤집힌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대상을 알 때 본래의 실상대로 알지 못한다면 뒤집힌 것입니다. ‘지혜의 저 언덕으로 가자.’에서 말하는 지혜는 무명을 통해 대상을 보는 것이 과연 옳은지 그른지를 분명하게 구별하는 것입니다.
한편, 뒤집힌 견해를 없애려면 뒤집히지 않은 많은 견해 중에도 ‘바른 실상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혜로 무명을 그 잠재적인 성향(습기習氣)까지 완전히 없애려면 지혜뿐만 아니라
큰 복덕의 도움(자량資糧)도 함께 갖추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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