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보리행론 해설 7. ‘온’은 언제 이루어지는 것인가?
‘오온五蘊’이라는 것은 거친 것과 미세한 것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여자와 남자가 관계를 가진 후에 생기는 아이의 ‘오온’은 ‘거친 오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관계를 갖기 전부터 존재하는 ‘의식의 연속성’은 아주 미세한 ‘오온’에 의지해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나’라는 것을 거친 것과 미세한 것으로 나눌 수 있는 것처럼 ‘오온’도 그렇습니다. ‘나’라는 것을 둘로 나누는 이유는 내가 존재하는 데 있어, 의지해야 하는 ‘오온’을 거친 것과 미세한 것으로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시광명(死時光明)* 순간의 ‘나’를 미세한 ‘나’로 보면 됩니다. 그때 ‘거친 오온’은 모두 사라지지만 ‘미세한 오온’은 남아있습니다. ‘나’라는 것은 ‘오온’에 의지하여 존재하며, 오온과 분리된 채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같이 보시고 무아(無我)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외도는 ‘오온’에 의지하지 않는 자유로운 ‘나’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나’를 항상하고, 단일하며 독립적인 것이라고 봄으로써 사람으로서 자아(인아人我)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고통을 바라지 않고 행복만을 바라는 ‘나’가 있기를 바라는 것은, 다른 학파의 주장과 같습니다.
하지만 불교 교리에서 주장하는 ‘나’에는 ‘오온’에 의지하지 않는 인아(人我)는 없습니다. 상키야학파와 같은 인도의 사상가들이 ‘오온’에 의지하지 않은 독립적이고 단일한 ‘나’가 있다고 주장하는데 반해 불교에서는 ‘오온’에 의지하지 않은 인아는 없다고 말합니다.
‘나’라는 것이 ‘오온’에 의지해서 존재하기는 하지만 불교 내에서도 ‘오온’에 의지한 ‘나’에 대한 설명의 차이로 많은 학파로 나누어지기도 합니다.
마음에 ‘나’라는 생각이 먼저 생기고 그 다음 ‘나’와 ‘나의 것’-나의 몸. 나의 친척. 나의 재물 등-으로 여기는 생각이 생김을 알 수 있습니다. ‘나의 것’이라는 생각에 장애가 되는 것은 다른 편(남의 것)으로 여깁니다.
마음에 ‘나’라는 것이 생기면서 ‘나의 것’과 ‘남의 것’을 분별합니다. 그리고 ‘나의 것’에 애착을 하면서 ‘나의 것’은 소중하고 ‘남의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경우들이 발생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 뿌리는 ‘나’라는 생각에 있습니다.
그런데 ‘나’가 전혀 없는 것인가?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앞에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것은 바로 뒤집힌 견해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뒤집힌 견해는 ‘나’라는 마음과 관련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나’라는 마음에 ‘나’라는 것이 원래 있기는 하지만 ‘나’라고 집착하는 마음에서 뒤집힌 견해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없애야 합니다.
불교에서는 ‘나’라고 집착하는 아집과 유신견(有身見)*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의 것’이라는 유신견이 생기면서 삼독과 같은 번뇌가 생깁니다. ‘나’라고 집착하는 유신견은 무엇인가? 이것은 뒤집힌 견해 가운데 무명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상키야학파와 같은 외도는 불교에서 말하는 것과 다르게 오온에 의지하지 않는 ‘또 다른 나’가 있다고 하는데, 이는 ‘나’라고 하는 유신견을 더 강화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오온’에 의지하지 않는 ‘나’는 없을뿐더러 오온을 다스리는 ‘나’는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무아의 견해’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무아의 견해’로 ‘나’라고 집착하는 아집의 힘을 점차 누그러뜨릴 수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불교에서는 ‘오온’을 다스리는 또 다른 독립적인 ‘나’는 없으며, 이것을 아는 견해가 ‘영원히 존재하는 나는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영원히 내가 있다는 것’과 ‘나’라는 것에 집착하는 마음을 유신견이라 합니다. 여러분 아시겠습니까?
뒤집힌 견해가 어떤 것인가 관찰하고, 이러한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합니다. ‘나’라고 집착하고, 독립적인 ‘나’가 있다고 하는 것이 그릇된 것임을 알면 아집과 유신견이 뒤집힌 것임을 알게 됩니다. ‘나’라고 집착하는 마음에서 뒤집힌 견해가 생기는 것입니다.
앞에서 설명한 사성제의 핵심은 행복과 고통을 포함해, 존재하는 모든 것이 ‘연기’ 즉 원인과 조건에 의해서 생긴다는 것입니다. 이 연기를 설하시고자 사성제에 대해 설하신 겁니다. 불교사상의 뿌리는 연기사상입니다.
사성제의 멸성제를 통해 고통의 원인을 버릴 수 있으며, 고통의 원인인 뿌리까지도 차례로 없앨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뒤집힌 견해 중에서도 무명은 끊임없이 윤회하는 원인이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십이연기 가운데 첫 번째로 무명을 설하셨습니다. 무명 같은, 뒤집힌 견해에서 고통이 생겨나는 것이므로 고통을 없앨 수 있는지, 없는지는 ‘고통의 원인을 없앨 수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사시광명(死時光明)
티베트 [사자의 서] 등에서도 설명하듯이 사람의 생명이 다했을 때 안이비설신의 여섯 감각이 정지되어 무너지며, 아집의 제7식인 말나식도 사라지지만 제8식 알리야식은 빛의 형태로 남아있어 다음 생을 윤회하는 근원이 된다. 따라서 이 제8식이 죽을 때 빛의 형태로 남아있으므로 ‘죽을 때의 빛’이라고 한다.
*유신견(有身見)
산스크리트어 satkāyadrsti, 팔리어 sakkāyaditthi 다섯 무더기(오온五蘊)가 ‘영원한 자아’와 관계가 있다고 집착하는 견해. 자신의 육체와 정신이 불변하는 자아라고 집착하는 견해. 다섯 무더기가 자아와 동일하다는 견해 5가지, 자아가 다섯 무더기라고 하는 견해 5가지, 다섯 무더기 안에 자아가 존재한다는 견해 5가지, 자아 속에 다섯 무더기가 존재하는 견해 5가지로 모두 20가지의 견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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