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보리행론 해설

[스크랩] 입보리행론 해설 9. 부처님의 가르침도 분석해 보아야 한다.

수선님 2018. 6. 17. 12:26


입보리행론 해설 9. 부처님의 가르침도 분석해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일까요?

중생의 성향과 바람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불교 내에서도 각각 다른 학파가 있듯이, 이 지구상에 다양한 사상과 철학이 존재하는 것은 중생의 성향과 바람 그리고 근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사상과 철학이 존재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고, 목적이 있으며, 이로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유식사상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고, 중관사상 또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이 둘 다 소중한 것이라 여겨, 유식사상도 믿고 따르고 중관사상도 믿고 따르면서 아무 생각 없이 “귀의합니다.”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깊이 생각해 봅시다.

    

    

유식사상에서는 마음이 ‘실재하는 것(실유實有)’이라고 여깁니다. 이것을 스스로 믿고 인정한다면, 중관사상에서 말하는 마음을 포함한 ‘존재하는 모든 것은 비어있는 것(제법개공諸法皆空)’을 인정할 수는 없습니다. 마음이 본디 실체가 없이 비어있음을 주장하는 중관사상에서 마음이 본디 실재로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유식사상을 인정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말조차 꺼낼 수 없습니다.

    

서로 존중할 수는 있지만, 서로 다른 사상에 대해 옳음을 인정하고, 믿고 따를 수는 없습니다. 예로 불교에서는 연기사상 즉 원인과 조건으로 인해 결과가 발생하는 연기법에 대해 생각하고, 번뇌가 고통의 뿌리라는 것을 알아 무아를 깨닫는 지혜가 생기고, 이를 통해 번뇌가 완전히 없어진 상태인 ‘해탈’이 옳다는 것을 알고 믿는다면 아마도 다른 종교를 믿고 따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런 이치를 알면서도 다른 종교를 인정하는 것은 어려울 것입니다. 연기사상이 옳다고 믿는 사람이 조물주나 창조주가 있다고 믿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번뇌의 뿌리는 아집으로 뒤집힌 견해에 의해 생긴 것입니다. ‘나’라고 하는 유신견의 허물을 버리는 것이 옳다고 여기는 사람이 상키야학파와 같이 독립적인 ‘나’가 있다고 인정하는 종교를 믿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독립적인 ‘나’가 존재한다고 인정하고, 믿는 것이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종교를 존중해야 하긴 하지만 세상의 모든 종교를 한 사람이 동시에 믿고 수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보통 잘 관찰하지 않고 타성에 젖어, 각 종교의 가르침이나 창시자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부처님이 아주 소중한 분이듯이 그리스도. 모하메드 또한 매우 소중한 분입니다. 이 지구상에는 다양한 종교를 만든 창시자들이 있습니다. 모두 아주 소중하고 훌륭한 분입니다. 그래서 모두 존경해야 합니다.

    

존경할만한 분이라고 해서 그분들의 가르침 모두 믿고 따르는 것은 아주 근기가 낮은 사람이 하는 행동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그다지 생각해 보지 않고, 관찰도 제대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써 법을 제대로 알고, 슬기롭게 잘 수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맹목적으로 모든 종교를 믿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한 길만 보고 열심히 나아가야 합니다.

    

그 예로,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중관학파와 유식학파 둘 다 부처님의 가르침이며 두 가지 모두 존중해야 하지만 자신의 성향이나 근기가 유식사상에 더 적합할 것 같으면 이를 믿고, 중관학파의 사상은 다른 한 쪽에 두십시오. 반면 중관사상이 더 적합하고 믿고 따를만한 것이라면 유식사상은 다른 쪽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것입니다.

    

본인이 생각했을 때 부처님의 법 즉 불교가 더 맞는 것 같으면 불교를 믿고 따르고 다른 종교를 다른 한 편에 두십시오. 그렇지만 그 종교들을 존중하십시오.

    

인도에서 부처님께서 오셨을 당시에 상키야학파와 같은 외도가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이들의 사상을 듣고, 생각하고, 수행하셨습니다. 사성제와 같은 법륜을 굴리실 때 외도의 가르침에 있는 가르침들을 설하기도 하셨습니다. 그 외로 지관법(止觀法)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 법은 불교와 외도의 공통적인 수행법입니다. 무상.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등을 수행하는 것 역시 외도와 공통적인 수행 방법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것이 ‘바라밀’은 아닙니다. 싫어하는 마음 또한 공통적인 것이지만 그 깊이는 차이가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행하는 사람들도 상키야학파와 같은 외도가 행하는 수행을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예는 근래에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에서 불교에 있는 가르침과 같이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는 삼매를 수행한다거나, 인욕을 한다거나, 사랑과 자비를 행합니다.

 

그 뿌리와 철학적 교리는 약간씩 다르지만 그 자성을 볼 때 사랑은 사랑이고 자비는 자비입니다. 그 깊이와 범위의 차이는 조금씩 있으며 약간씩 다를 수 있지만 공통적인 수행법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서양인 가운데 비록 종교는 다르지만 공통된 장점은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불교에 대해 일반적으로 말했습니다. 

 

 

입보리행론 해설 9. 부처님의 가르침도 분석해 보아야 한다.

출처 : 출리심 보리심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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