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지눌스님 활동년대 : 고려
1158~1210. 고려중기의 스님. 정혜결사(定慧結社)운동을 편이. 조계종의 개조. 호는 목우자(牧牛子), 성은 정(鄭). 황해도 서흥 사람이다. 아 버지는 국자감의 정9품벼슬을 지낸 정광우(鄭光遇), 어머니는 조(趙)씨이다. 1165년(의종19)8세에 출가하여 조계의 법맥을 이은 종휘(宗暉)에게 득도하고 수학했다. 1182년(명종12) 승과에 합격하고, 보제사(普濟寺)에서 열린 담선(談禪)법회에 참석해 많은 선배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1185년(명종15) 하가산 보문사에서 대장경을 읽다가 이통현(李通玄)의《화엄론》을 깊이 연구하였다. 정혜사(定慧社)를 조직하고《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을 발표했다. 그러므로 그의 독자적 사상을 확립하고, 각 종파의 큰 스님들을 널리 맞아들여 정진을 함께 하니 따르는 자가 많았다. 1197년(신종즉위) 순천 송광산 길상사(吉祥寺)로 정혜사를 옮기기로 하여 그곳으로 가는 도중 지리산 상무주암(上無住庵)에 들렀다. 여기서 3년 동안 참선하던 어느 날《대혜어록》을 보고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종전까지 은둔적 생활을 벗어나 적극적인 보살행으로써 현실 참여를 지향했다. 1200년(신종3) 길상사로 옮겨 11년 동안 대중을 거느리고 도를 설하며 선을 닦게 되자, 사방에서 모여드는 이가 헤아릴수 없었고, 왕족이나 선비로서 정혜사에 들어온 이도 수백인 이었다. 그는 ‘중생을 떠나 따로 부처가 없다.’고 설파하
수선사를 중심으로 한 그의 정혜결사 운동은 고려 후기의 선을 크게 부흥시켰으며, 특히 그의 삼문에 의한 독창적인 선사상은 대각 의천(大覺義天)이 교로써 선과 교의 합일을 모색했던 것과는 달리, 당시 서로 대립해 있던 선과 교를 서로 융화시키려 한 것으로서 고려 불교는 물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큰 영향을 주었다. 또한,송광사가 오늘날 승보사찰로서 한국불교를 이끌어가는 승가 교육과 수행의 전당이 되고, 또 전 세계 각지에서 찾아오는 눈푸른 납자들이 한국불교를 체득하는 요람으로 발전한 것은 보조국사 지눌(知訥 송광사가 오늘날 승보사찰로서 한국불교를 이끌어가는 승가 교육과 수행의 전당이 되고, 또 전 세계 각지에서 찾아오는 눈푸른 납자들이 한국불교를 체득하는 요람으로 발전한 것은 보조국사 지눌(知訥)에서 비롯된 것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1172년(고려 명종 2) 보조국사 지눌이 흥국사와 함께 은적암(隱寂庵)을 창건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흥국사 창건은 1195년(명종 25)에 이루어졌으므로 절의 창건을 고려시대로 본다면 1195년 창건으로 보아야겠고, 같은 해 석천사(石泉寺)를 창건하기도 하였다. 1830년(순조 30)에 작성된 <한산사중창서>에 따르면 고려시대에 보조국사 지눌(知訥, 1158∼1210)이 한산사(寒山寺)를 세웠다고 한다. [자료제공 : 사찰문화연구원, 현대불교미디어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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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행자실 -
글쓴이 : 성불하십시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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