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제13칙에는 파릉(巴陵) 화상에게 제바종(提婆宗)의 종지를 다음과 같이 질문하고 있다.
어떤 스님이 파릉 화상에게 질문했다. “무엇이 제바(提婆)의 종지 입니까?” 파릉 화상이 대답했다. “은쟁반에 흰눈을 가득 담았다.”
擧. 僧問巴陵, 如何是提婆宗. 巴陵云, 銀椀裏盛雪.
본칙의 공안은 〈연등회요〉 제26권과 〈선문염송〉 제27권 등에 전하고 있다. 파릉 화상은 운문문언 선사의 법을 이은 뛰어난 걸승으로 법명은 호감(顥鑑)이라고 하며, 호남의 파릉 신개원(新開院)에서 교화를 펼친 선승이다. 그에 대한 생애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평창’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특히 호감 화상은 독특한 언변으로 사람들을 잘 지도하였기 때문에 ‘감다구(鑒多口)’라는 별칭이 있었다.
사실 운문종은 운문 화상이 한 글자로 불법의 종지를 제시하는 일자관(一字關)의 법문을 비롯하여 동산수초의 ‘마삼근(麻三斤)’처럼 불법의 근본을 짧은 한 두 마디의 언구로 제시하는 독창적인 종풍이 있는데 파릉 화상은 그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스님이 “제바종의 종지는 어떤 것입니까?”라고 질문하자, 파릉 화상은 “은쟁반위에 흰 눈을 가득 담은 것”이라고 대답하고 있다. 〈조정사원〉과 〈인천안목〉 제2권 등에 전하고 있는 것처럼, 이 공안은 파릉 화상이 스승 운문 선사에게 올린 ‘세 마디 깨달음을 체득하는 말(三轉語)’ 가운데 하나이다. 파릉 화상의 유명한 취모검(吹毛劍)은 벽암록 100칙에 수록하고 있다.
제바종에 대해서 평창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서천 15대 제바(迦那提婆) 존자는 처음 외도의 한 사람이었다. 제14대 용수 존자를 친견하고 바늘을 발우 속에 던지자 용수 존자는 그를 큰 그릇으로 여기고 불법의 심종을 전수하여 15대 조사로 삼았다. 〈능가경〉에 “부처님이 말씀하신 마음(佛語心)을 근본(宗)으로 삼고 고정된 문이 없는 무문(無門)을 법문으로 삼는다”라고 하고, 마조스님은 “대개 언구(言句)가 있으면 제바의 종지이다. 제바종은 언어 문자를 주요로 삼는다.”라고 하였다.
용수의 제자 제바 존자는 〈백론(百論)〉의 저자로서 불법의 논의에 뛰어난 변론가였다. 그는 당시 96종의 외도를 논쟁으로 항복받고 불교인으로 전향시킨 인물이다. 따라서 여기서 ‘제바종’이란 제바 존자의 종지를 중심으로 한 대승 반야사상의 불교교단을 말한다. 마조가 “대개 언구(言句)가 있으면 제바종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제바 존자가 날카로운 논법으로 많은 외도들을 논파한 것에서 언구에 의거하여 불법의 대의를 교시한 입장을 말한다.
마조의 말은 〈마조어록〉에는 보이지 않고 〈운문광록〉에 보이며, 운문 화상은 또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마조 대사는 좋은 말을 했지만 질문하는 사람이 없었을 뿐이다” 어떤 스님이 다시 “어떤 것이 제바의 종지 입니까?”라고 질문하자, 운문 화상은 “96종의 외도 가운데 그대가 최하의 한 종류이다”라고 대답하여, 질문자의 논쟁을 타파하고 있다. 운문어록에 제바종에 대한 대화가 자주 언급되고 있는 것처럼, 운문종의 교단에서는 언어 문자로서 불법의 종지를 설하는 제바종과 불립문자와 교외별전을 주장하는 선종의 입장에 대하여 선승들의 안목을 점검하는 선문답이 자주 거론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평창에서 원오는 〈능가경〉에 “불어심(佛語心)을 근본으로 삼고 무문(無門)을 법문으로 한다”는 일절을 인용하고 있다. 여기서 불어심(佛語心)이란 부처님이 불법을 언어 문자로 말씀한 그 마음으로 경전으로 전한 불어종(佛語宗: 교종)의 입장을 말한다. 그러나 선종은 세존이 49년간 한 글자도 설하지 않은 일자불설(一字不說)의 입장에서 정법안장, 열반묘심을 가섭에게 교외별전과 이심전심으로 전한 사실을 주장하고 있다. 불교의 경전에서 주장하는 불법의 가르침이나, 선종의 입장에서 주장하는 불법의 수행 목적은 번뇌 망념이 없는 본래 청정한 부처의 마음[佛心]을 깨닫도록 하는 점에서 똑같은 목적지에 귀착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부처님의 말씀인 부처의 말씀[佛語]이나 경전의 언어 문자는 결국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은 방편의 도구에 불과하다. 방편의 도구 없이 불법의 진실을 체득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부처의 말씀[佛語]을 무시하고 부처의 마음[佛心]은 체득될 수 없고, 부처의 마음을 여의고 부처의 말씀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스님이 파릉 화상에게 “선사는 제바의 종지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제바종과 선종의 입장에 대한 선사의 견해는 어떻습니까?”라는 질문을 하고 있다. 파릉 화상은 곧바로 “은쟁반 위에 흰 눈을 가득 담은 것”이라고 대답하여 천하의 수행자들의 혀를 차단시키고 있다. 이 말은 동산(洞山)의 〈보경삼매가〉에 “은쟁반 위에 흰 눈을 담고(銀椀盛雪), 밝은 달빛아래 백로를 감춘다(明月鷺藏)”라고 읊고 있는 노래에서 인용한 것이다. 하얀 은쟁반과 흰눈, 가을 밝은 달빛아래 서있는 백로의 모습은 똑같은 흰색으로 구분 할 수 없지만, 은쟁반과 눈은 각기 다른 사물로서 특이성을 지니고 있다.
이 말은 두 사물이 흰색이라는 점은 같지만, 그러나 사물이 동일한 것은 아니며, 섞여 있으면서도 각각 독특한 사물의 특성을 지니고 있는 불일 불이관(不一不二觀)의 입장을 제시하고 있다. 은쟁반과 눈은 흰 색깔로 동일성과 평등성을 나타내지만, 사물의 다른 특성은 차별성을 나타낸다. 따라서 평등즉차별, 차별즉평등의 입장으로 상즉원융(相卽圓融)의 이치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선에서 말하는 주관적인 자아와 객관적인 사물과 불법의 근본에서 일체로 하는 천지동근 만물일체(天地同根 萬物一體)와 만법일여(萬法一如)의 경지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일체의 상대적인 차별심을 초월한 절대(一切皆空)의 공관(空觀)에서 무아무심이 되어 객관적인 만물과 주관적인 자기가 하나가 되어 일체가 되고 일여(一如)가 된 경지에서 자신의 일에 몰입한 깨달음의 경지를 말한다.
파릉 화상의 대답은 언어 문자로 불법을 설하는 제바의 종지나 불심을 깨닫게 하는 선종의 입장은 수행체계나 교화방법은 다를지라도 모두 불법의 근본의 입장에서 볼 때 반야바라밀의 실천으로 깨달음의 지혜를 체득하여 견성성불의 경지를 이루는 불법의 대의는 같다는 주장이다. 사실 선종과 교종의 입장을 나누고 구별하며 우열을 논하는 것은 중생의 분별과 차별심인 것이다.
원오의 착어에도 “흰 말이 흰 갈대 꽃밭 속으로 들어간다”라고 하고, 수시에도 “흰눈이 갈대 꽃밭 속에 내리니 흔적을 구분하기 어렵다”라고 말한다. 또, 파릉 화상의 대답에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한 이론을 제시 할 수가 없게 되었다는 의미로 “천하 사람들의 혀를 차단하고 있다”고 코멘트 하고 있다. 또 원오는 “일곱 조각 여덟 조각으로 깨졌다(七分八裂)”고 착어하고 있는데, 이 말은 파릉 화상의 한마디로 제바종에 대한 많은 논쟁이 완전히 분쇄되고 말았다는 의미이다.
설두 화상은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파릉 화상의 안목을 칭찬하고 있다. “신개원에서 교화를 펼친 늙은이의 안목은 뚜렷하게도 남다르다. 은쟁반위에 흰눈을 담았다고 말 할 수가 있었다. 96종의 외도들도 “은쟁반위에 흰눈을 담았다”는 말의 의미를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몰랐다면 다시 하늘 저편의 달에게 물어봐야 하리라. 제바의 종지여 제바의 종지여! 붉은 깃발아래 맑은 바람을 일으키네.”
파릉 화상이 제시한 제바의 종지는 천하의 외도나 제불조사도 모두 붉은 깃발을 세운 곳으로 모여 귀결되도록 제시한 가르침이라고 찬탄하고 있다.
성본스님/동국대 불교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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