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제14칙은 운문 화상이 부처님이 한평생 설법한 내용의 의미에 대한 선문답을 다음과 같은 짧은 한마디로 대답한 내용을 싣고 있다.
어떤 스님이 운문 화상에게 질문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한 평생 설하신 법문의 가르침(一代時敎)은 무엇입니까?” 운문 화상이 대답했다. “질문에 알맞은 일대일(一對一)의 설법을 한 것이다(對一說)”.
擧. 僧問雲門, 如何一代時敎. 雲門云, 對一說.
선어록에는 교학의 전문가인 강사[座主]들이 선사들에게 부처님의 일대시교(一代時敎)나 삼승십이분교(三乘十二分敎)를 제시하여 선승들이 주장하는 ‘불립문자 교외별전(不立文字 敎外別傳)을 비판하면서 부처님이 한 평생 중생을 위해서 설하신 불법의 가르침에 대한 선승들의 견해를 시험하는 질문을 많이 하고 있다. ‘일대시교(一代時敎)’란 석가모니 부처님이 한평생 설하신 불법의 가르침을 말하는데, 천태나 화엄교학에서 제시한 교상판석(敎相判釋)의 용어이다.
즉 천태종에서는 부처님의 일대 교설을 오시(五時) 팔교(八敎)로 분류하여 불법을 통합하고 있다. ‘오시’란 첫째로 화엄시(華嚴時)로서 세존이 보리수나무 아래서 정각을 이루고 21일간 대승 무상의 법문인 〈화엄경〉을 설한 시기이다. 두 번째는 아함시(阿含時)로 화엄의 교리는 깊고 미묘하여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초심자들을 위하여 12년간 녹야원에서 소승의 아함경을 설한 시기이다. 세 번째는 방등시(方等時)인데, 소승에서 대승을 향한 8년간 대소승의 불교를 설한 시기로 〈유마경〉과 〈능가경〉 〈금광명경〉 등이다. 네 번째는 반야시(般若時)로 22년간 〈대반야경〉을 설하여 제법의 참된 진실과 이치를 설한 시기이다. 다섯 번째는 법화시(法華時)로 〈법화경〉과 〈열반경〉을 설한 시기로 석가세존이 출세하여 중생을 구제한 실다운 대승의 법문을 설한 최후의 8년간을 말한다.
천태의 교판에서 주장하는 ‘팔교’는 교리상의 분류로 장교(藏敎), 통교(通敎), 별교(別敎), 원교(圓敎)라는 네 가지의 교화법으로 분류하고, 또 중생의 근기에 맞는 석가세존의 설법을 돈교(頓敎), 점교(漸敎), 비밀교(秘密敎), 부정교(不定敎) 등 네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중국 화엄종에서는 일체의 불교를 오교(五敎)로 다음과 같이 분류하고 있다. 첫째는 소승교(小乘敎)로 〈아함경〉 등 소승불교를 설한 시기이다. 두 번째는 대승시교(大乘始敎)로 대승의 법문이지만 대승의 극치에 이르지 못한 최초의 가르침을 설한 시기로 〈해심밀교〉나 〈유식론〉과 같은 법상(法相)의 시교와, 〈반야경〉과 〈중관론〉과 같은 설법을 공시교(空始敎) 라고 한다. 모두 진여의 본성을 설하고 있지만 화엄에서 주장하는 이사원융(理事圓融)의 묘한 이치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세 번째는 대승종교(大乘終敎)로 〈능가경〉과 〈기신론〉과 같이 대승의 참된 정신을 밝히고 이사(理事)가 원융함을 제시하고 있지만 아직 수행의 단계가 남아 있기에 곧바로 부처가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승시교와 더불어 점교라고 하고 분류하고 있다. 네 번째는 돈교(頓敎)로서 점교처럼 단계와 방편을 두지 않고 곧바로 진리에 계합하는 법문으로 〈유마경〉의 불이법문(不二法門) 등의 가르침이다. 다섯 번째는 원교(圓敎)인데, 원교 가운데 〈법화경〉은 삼승(三乘)의 근기에 맞는 일승(一乘)의 묘한 이치를 설하기 때문에 동교(同敎)의 일승(一乘)이라고 하고, 〈화엄경〉은 보현보살의 큰 근기에 대한 설법이기 때문에 별교일승(別敎 一乘)이라고 구분하고 있다.
여기 부처님의 일대 시교(時敎)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는 사람은 분명히 화엄이나 천태교학에서 제시한 교판(敎判)을 전제로 한 점으로 볼 때 교학의 전문가인 강사로 보인다. 그런데 운문선사는 선불교 입장에서 한마디로 대답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 일단의 대화는 선과 교의 입장을 단적으로 분명히 제시한 선문답이다.
교학승려들은 선에서 주장하는 불립문자(不立文字)나 교외별전(敎外別傳)에 대하여 좋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비난하고 있다. 선종에서는 부처님이 49년 동안 한 글자도 설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데, 부처님이 한평생 중생교화를 하면서 펼친 법문[一代時敎]에 대하여 선사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라는 날카로운 문제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운문 선사는 ‘부처님은 질문자와 일대일(一對一)의 설법을 한 것일 뿐’이라는 의미로 ‘대일설(對一說)이라고 대답하고 있다. 운문의 ‘대일설’은 석가모니 부처님은 언제나 질문자와 일대일로 만나서 질문자의 근기와 질문 내용은 물론, 당시 질문자와 마주하고 있는 시절인연과 여러 상황에 가장 적합한 대답을 하여 중생을 구제한 설법을 한 것이었다.
부처님은 언제나 개별적으로 일기일회(一期一會)의 만남으로 이루어진 설법을 한 것이며, 5040여 권의 8만4000의 법문도 그러한 대화를 종합한 것이다. 천태나 화엄에서 주장한 5시 8교의 교학체계를 계산한 설법이 아니다. 부처님의 입장에서 볼 때 5시 8교도 ,교외별전도 없었다. 오직 시절인연에 응하여 일대일의 대화에 최선을 다한 중생교화의 법문이었다. 부처님의 일대 시교란 항상 눈앞에 있는 중생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을 뿐이다.
즉 질문자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그의 질문에 꼭 맞은 법문을 설하여 불법의 지혜를 체득하도록 제시한 것이다. 그래서 〈법화경〉에서는 중생의 근기에 가장 적합하게 설하는 부처님의 설법을 수기설법(隨機說法) 혹은 근기설법(根機說法)이라고 한다. 또한 질문자와 부처님이 만난 시간과 장소와 중생의 근기에 적합한 설법이라는 의미로 수의소설(隨宜所說)이라고도 한다.
〈유마경〉에서는 부처님은 훌륭한 의사와 같다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부처님은 중생의 병(心病)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처방할 수 있는 지혜를 구족하고 있다. 때문에 부처님의 설법을 중생의 병에 알맞은 약을 처방하여 제시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응병여약(應病與藥)이라고 한다.
운문이 ‘질문자의 질문에 알맞은 설법을 한 것’이라는 ‘대일설(對一說)은 중국의 교학불교에서 제시한 부처님의 일대교설에 대한 시간적인 분류와 교설에 대한 논리적인 교판의 입장을 정면에서 부정하고 부처님의 설법정신을 단적으로 제시한 선종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실 선불교의 선문답도 부처님이 중생교화의 대화와 같이 대화를 통하여 불법의 참된 정신을 지금 여기서 직접 번뇌 망념이 없는 본래 청정한 불성을 체득하도록 하는 견성성불과 직지인심(直指人心)의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선불교는 부처님의 일대시교(一代時敎)를 선문답이라는 대화로 새롭게 전개했다. 선문답의 일대일의 대화는 때와 장소와 사람을 전제로 한다. 사제간의 일대일 대화는 불성을 체득하여 견성성불을 이루도록 하는 직지인심의 법문이다.
설두는 “운문 화상이 질문에 알맞은 일대일의 설법은 너무나 뛰어났네.”라고 극찬하고 있다. 그리고 “구멍 없는 철추로 거듭 쐐기를 박았다. 염부제 나무아래서 껄껄대고 웃으니, 어젯밤 검은 용의 뿔이 요절났네. 별나고 별났네. 운문노인이 용의 뿔을 하나 꺾었도다.”
그것은 마치 세존이 ‘5시8교’를 설하고도 49년간 한 글자도 설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처럼, 운문도 ‘일대일의 설법’이라는 한마디로 구멍 없는 철추로 거듭 쐐기를 박고 있다. 인간의 세계인 염부제의 모든 사람이 운문의 ‘일대일의 설법’이라는 철추로 5048권이나 되는 석존의 일대시교를 모두 분쇄해버렸기 때문에 언어문자의 경전에 얽매이지 않고 편안하게 되었다. 검은 용의 소중한 뿔에 비유되는 일대시교를 꺾어버린 것은 일체 경전의 속박에서 벗어나도록 한 것인데, 마음의 경전인 본래면목을 체득하면 언어문자의 경전에 속박될 필요가 없다는 운문의 법문을 게송으로 읊고 있는 것이다.
성본스님/동국대 불교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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