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 해설

[스크랩] [碧巖錄] 제18칙 忠國師無縫塔 - 혜충국사의 ‘무봉탑’

수선님 2018. 7. 8. 12:37

관련 이미지 <벽암록(碧巖錄)> 제18칙에는 남양혜충 국사가 입적할 때에 숙종 황제에게 이음새가 없는 탑(無縫塔)을 만들어 줄 것을 간청하는 선문답을 다음과 같이 싣고 있다.

 

숙종 황제가 혜충 국사에게 물었다. “국사께서 입적한 뒤에 필요한 물건이 무엇입니까?” 국사는 대답했다. “노승을 위해서 이음새가 없는 탑(無縫塔)을 만들어 주십시요.” 황제는 말했다. “국사께서는 탑의 모양을 말씀해 주십시오.” 혜충 국사가 한참 동안 말없이 있다가, “알았습니까?”라고 하자, 황제는 “모르겠습니다”라고 했다. 국사가 말했다. “나의 법을 부촉한 제자 탐원(耽源)이 있는데, 이 일(此事)을 알고 있습니다. 조서를 내려 그에게 묻도록 하십시요,” 국사가 입적한 뒤에 황제는 조서를 내려 탐원에게 물었다. “이 국사가 말씀한 이 일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탐원이 말했다. “상주(湘州)의 남쪽, 담주(潭州)의 북쪽” (설두가 착어 했다. “한 손으로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거기에는 황금이 있어 온 나라에 가득하다” (설두가 착어 했다. “산처럼 생긴 주장자로다”) “그림자 없는 나무아래 함께 타는 배가 있다.” (설두가 착어 했다. “바다는 잠잠하고 강물은 맑다”) “유리로 만든 궁전위에 아는 사람이 없도다” (설두가 착어 했다. “무봉탑에 대하여 할 말은 다했다”)

 

擧. 肅宗皇帝, 問忠國師, 百年後, 所須何物. 國師云, 與老僧, 作箇無縫搭. 帝曰, 請徙搭樣, 國師良久云, 會. 帝云不會. 國師云, 吾有付法弟子眈源, 却此事, 請詔問之. 國師遷化後, 帝詔眈源, 問此意如何. 源云, 湘之南(兮)潭之北, (雪竇着語云, 獨掌不浪鳴.) 中有黃金充一國. (雪竇著語云, 山形杖子.) 無影樹下合同船. (雪竇著語云, 海晏河淸.) 瑠璃殿上無知識. (雪竇著語云, 拈了也.)

 

이 얘기는 〈전등록〉 제5권에 전하고 있는 것으로, 혜충 국사가 입적하기 직전 대종(代宗)황제와 하직할 때에 나눈 대화이다. ‘평창’에서도 숙종과의 대화가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 혜충(? ~775)국사는 육조혜능의 제자로 하남성 남양의 백애산(白崖山) 암자에서 40년간 거주하였다. 그의 도덕이 널리 알려지면서 숙종과 대종황제의 국사로 초빙되었기 때문에 혜충 국사로 불리게 되었다.

 

황제는 혜충 국사와 하직할 때에 “국사가 입적한 이후에 내가 국사를 위해서 무슨 일을 해드리면 좋겠습니까?”라고 묻는다. 그러자 국사는 “저를 위해서 이음새가 없는 탑(無縫塔)을 만들어 주십시오”라고 대답한다. 입적한 스승을 위해서 탑을 세우는 것은 보은과 공양의 의미인데, 인도나 중국, 한국에도 많은 선승들의 부도탑이 조성되었다.

 

이음새가 없는 무봉탑(無縫塔)이란 형체도 없고 모양도 없는 탑을 말한다. 원오도 “형체를 파악 할 수 없다”라고 착어를 하고 있다. 형체가 없는 탑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온 우주의 법계를 하나의 탑으로 말한 것이다. 즉 우리들 각자의 본성은 자타(自他)나 미오(迷悟)의 차별과 분별심으로 꿰맨 자국이 없다.

 

선에서는 일원상(一圓相)과 같이 진여실상(眞如實相)의 상징어로 사용하는 말인데, 아상, 인상이 텅 비워진 자기가 우주 만법과 하나가 된 만법일여 만물일체(萬法一如, 萬物一體)의 경지를 의미하는 말이다.


황제는 국사가 말한 이같은 무봉탑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탑의 모양에 대하여 질문했다. 국사는 황제에게 잠시 침묵하는 모습으로 보여 주고는 “내가 침묵으로 보여준 의미를 잘 파악했습니까?”라고 확인하고 있다. 국사의 침묵은 일체의 상대적인 차별과 분별심을 초월하고, 아상 인상을 텅 비운 불심의 경지를 직접 보여 주고 있다.

 

황제는 국사의 무봉탑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국사는 황제에게 나의 제자 탐원(耽源)이 내가 말한 무봉탑에 대하여 잘 알고 있으니 그에게 자세히 물어 보라고 말했다. 탐원은 길주 탐원사 응진(應眞)선사로 국사를 오랫동안 모신 시자다. 국사의 법을 계승한 인물이며, 〈무문관〉 17칙에 국사가 시자를 세 번 부른 공안을 싣고 있다. 선문에서는 일원상(一圓相)을 앙산혜적에게 전수한 선승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국사가 입적한 뒤에 황제는 탐원에게 국사가 말한 무봉탑에 대하여 문의하자, 탐원은 무봉탑의 형체를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대답했다. “상주의 남쪽, 담주의 북쪽, 그곳에는 황금이 있어 온 나라에 가득찼네. 그림자 없는 나무아래 함께 타는 배가 있다. 유리로 만든 궁전 위에 아는 사람이 없네.”

 

상주와 담주는 중국 동정호(洞庭湖)를 사이에 두고 흐르는 상강(湘江)과 담강(潭江)을 말한다. 석탑의 모양과 형체에 집착하고 있는 황제에게 “상주의 남쪽 담주의 북쪽”이라고 대답하고 있다. 탐원의 말은 남쪽의 끝, 북쪽의 끝과 같은 말로, 우주 건곤(乾坤)이 모두 무봉탑 아닌 것이 없다는 소식을 읊고 있다. 무봉탑은 어떤 고정된 모양이 없고, 어떤 고정된 장소에 한정되어 있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방세계가 모두 무봉탑인 것이다.

 

이말에 대하여 설두는 “한 손으로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라고 착어 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한 손은 탐원을 비유한 말이다. 황제가 무봉탑에 대하여 질문하자, 탐원이 “상주의 남쪽, 담주의 북쪽”이라고 대답했지만 황제는 말뜻을 알아듣지 못한 것을 비유한 것이다. 탐원 혼자 아무리 무봉탑에 대하여 말해도 말귀를 못 알아 듣고 있다는 의미이다.

 

탐원의 두 번째 게송에 “그 곳에는 황금이 가득 있어 온 나라에 가득 찼네”라고 읖은 것은 시방세계의 무한한 공간에는 일체의 모든 불법(황금)이 가득 충만되어 있다는 뜻이다. 〈아미타경〉과 〈화엄경〉 등에서는 불국토(法界)를 황금과 칠보(七寶) 등으로 비유하고 있다. 우리들의 본체인 진여 법성의 무봉탑(法界) 가운데는 일체의 모든 만법이 여법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 게송에 설두는 “산처럼 생긴 주장자”라고 착어하고 있는데, 산에서 꺾어온 자연 그대로의 주장자를 말한다. 주장자는 선승이 갖는 도구로서 불성의 지혜작용을 무애 자재하게 활용하는 것을 상징한다. 탐원이 “그 곳에는 온 나라에 황금이 가득”이라고 읊은 것은 무봉탑의 세계를 꾸밈없이 자연 그대로 완전히 제시하여 보여준 말이다.

 

탐원은 “그림자 없는 나무아래 함께 타는 배가 있다”라고 읊고 있다. 그림자 없는 나무(無影樹)는 무봉탑을 말한다. 그림자가 없는 것은 상대적인 차별과 분별이 없는 절대의 경지이다. 선악(善惡)과 미오(迷悟), 시비(是非)는 모두 중생심의 차별로 나타난 그림자다. 이 게송은 일체중생이 절대(一味)평등한 불심(佛心)의 배를 함께 타고 있는 경지를 읊고 있다.

 

이 게송에 대해 설두는 “바다는 잠잠하고 강물은 맑다”고 착어했다. 일체 중생이 함께 타고 있는 배는 바람(중생심) 한 점 없는 잠잠한 불성의 바다에서 근심 걱정 없이 순조롭게 항해 할 수 있다. 일체의 차별심이 없는 동정일여(動靜一如)의 불심의 경지를 표현하고 있다.

 

탐원이 “유리로 만든 궁전 위에 아는 사람이 없네”라고 읊고 있는데, 유리 궁전은 수정궁전으로 일체의 분별과 지해, 망념이 없는 청정한 불국토로서 무봉탑을 말한다. 무봉탑의 세계에 있으면서도 무봉탑을 찾고 있는 것처럼, 무봉탑의 경지를 아는 사람이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무봉탑은 각자의 번뇌 망념을 비운 진여 불성이며, 삼라만상의 일체 만법과 함께하고 있는 불심을 말하는데 각자의 불심을 밖을 향해서 어떤 모양과 형체로 찾아 헤매고 있는 중생들을 비판하고 있는 게송이다.

 

설두는 “무봉탑에 대하여 할 말을 다 했다”라고 착어했다. 즉 탐원의 게송은 국사가 말한 무봉탑을 올바른 설명으로 남김없이 잘 표현했다고 칭찬하고, 게송에도 “무봉탑은 보기 어렵다”라고 읊고 있다. 무봉탑을 보려고 하면 도리어 더욱 보기가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성본스님/동국대 불교문화대 교수

출처 : 淨土를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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