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제19칙에는 구지(俱胝) 화상이 한 손가락을 세워 불법을 설한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구지 화상은 누구라도 불법에 대하여 질문하면, 단지 한 손가락만을 세우기만 했다.
擧. 俱胝和尙, 凡有所問, 只竪一指.
조사들의 행장을 모아놓은 〈조당집〉 제19권 ‘구지화상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구지 화상은 천룡(天龍)의 법을 이었고 경안주(敬安州)에 살았다. 그 밖의 행적은 알 수가 없어 기록하지 못한다. 선사가 암자에 살고 있을 때에 실제(實際)라는 비구니가 와서 삿갓을 쓰고 지팡이를 짚은 채 선사의 선상을 세 바퀴 돌고는 주장자를 우뚝 선사 앞에 세우고 서서 말했다. ‘화상께서 나의 질문에 대답을 하시면 삿갓을 벗겠습니다.’ 선사가 대답을 하지 못하니 비구니는 그냥 떠나려고 했다. 이에 선사는 말했다. ‘날이 이미 저물었으니 하루 저녁 묵어가도록 하시오’ 비구니가 말했다. ‘제 질문에 대답을 하시면 묵어가겠지만 대답을 못하시면 이대로 떠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떠나 가버렸다.
이때 선사는 혼자 탄식 하였다. ‘나는 명색이 사문이라고 하면서 비구니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외람되이 장부의 형상은 갖추었으나 장부의 작용이 없구나! 이 산을 떠나 선지식을 두루 친견하리라.’ 그리고 조용히 선정에 드니 갑자기 어떤 신인(神人)이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삼(三), 오(五)일 안에 큰 보살이 오셔서 화상께 설법해 드릴 것이요’ 그런지 열흘이 지나지 않아 천룡 화상이 왔거늘 선사는 뛰어나가 말에 절을 하고 맞아들여 모시고 서서 앞에 일을 자세히 이야기 한 즉 천룡 화상이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이니 즉시에 환히 불법을 깨달았다.
선사는 그 뒤로 대중에게 말할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내가 천룡 화상에게 일지선(一指禪)을 얻은 뒤로 평생 동안 사용해도 다 사용하지 못했다.’” 구지 화상은 항상 구지관음다라니(俱觀音陀羅尼: 七俱佛母心陀羅尼經)를 외우고 다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는 마조도일의 제자 법상(法常: 752~839)의 법을 이는 천룡 화상의 제자이다. 천룡 화상의 전기도 잘 알 수가 없다.
구지 화상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불법에 대하여 어떠한 질문을 할지라도 단지 한 손가락만을 세웠다고 한다. 원오도 ‘평창’에 “만약 손가락을 가지고 이렇쿵 저렇쿵 말한다면 구지화상을 법문을 저버린 것”이라고 주의하고 있다. 손가락을 보는 자는 경계에 떨어진 중생이다.
선어록은 선승들의 대화와 행동을 기록하고 있는 언행록이다. 말(言句)은 행위의 기호에 지나지 않는다. 행위는 말(言句)보다도 한층 더 깊이 있는 마음의 대화를 나눌 수가 있다. 원오도 ‘수시’에 “한 티끌이 일어나니 온 대지가 그 속에 들어가고, 꽃 한 송이 피니 그 속에 세계가 열린다”라고 한 말은 한 생각의 번뇌 망념이 일어나면 만법이 일어난다는 〈기신론〉의 말을 바꾸어 표현한 것이다. “티끌이 일어나기 전에, 꽃 한 송이가 피기 전의 지혜작용이 오직 이 구지 화상의 한 손가락에 현성(現成)하였다”고 언급하고 있는 것도 같은 뜻이다. 즉, 번뇌 망념이 일어나기 이전, 언어 문자의 방편으로 표현할 수 없는 불법의 근본을 구지 화상이 한 손가락을 세워서 제시하고 있는 법문을 파악해야 한다. 그것은 한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 근원적인 본래심의 경지를 한 손가락으로 제시한 것이다. 마치 세존이 영산에서 많은 대중들에게 연꽃 한 송이를 들어 보이자 가섭이 미소로 대답한 것과 같은 법문이다.
선불교에서 하나(一)는 불법의 근본인 진실을 표현하는 불립문자의 경지를 표현하는 것이다. 또, 둘(二)은 언어 문자로서 진실을 체득하는 방편법문이다. 선문답에서 행동으로 제시한 불법의 근본은 만법의 근원인 일심(一心)의 법문이다. 불법은 마음으로 만법의 진실을 깨닫고 지혜를 체득하는 심법(心法)이다. 달마가 일심(一心)의 불법을 전했다고 주장하는 것도 일심(一心)의 법문인 심지법문(心地法門)을 말한다. 선에서 제시한 일심(一心)의 법문은 〈화엄경〉에서 설하는 ‘일체의 모든 법은 마음이 만드는 것(一切唯心造)’이나 ‘만법유심(萬法唯心)’ 그리고 ‘하나가 곧 많음(一卽多)’ ‘하나가 곧 일체(一卽一切)’라는 법계의 연기를 사상적인 토대로 하고 있다. 그런데, 선불교에서는 삼라만상의 모든 법은 하나(一心)로 되돌아간다고 주장하는 ‘만법귀일(萬法歸一)’의 법문으로 귀결시키고 있다. 〈조당집〉 제7권 설봉장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위산이 앙산에게 질문했다. ‘그대가 밤새도록 불법을 사유하고 궁리하여 이룬 것이 무엇인가?’ 앙산이 선뜻 한 획(불법의 대의)을 그어 보이니 위산이 말했다. ‘만약 내가 아니었다면 그대의 경지를 바로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다.’ 라고. 어떤 사람이 장경에게 물었다. ‘앙산이 한 획을 그은 뜻은 무엇입니까?’ 장경이 손가락을 하나 세워 일으켜 보였다. 또 순덕에게 질문하니 순덕도 역시 손가락을 하나 일으켜 세웠다. 그러자 그 스님이 말했다. ‘불법은 불가사의하여 천성(千聖)이 같은 길을 달린다.”
원오는 ‘수시’에서 “한 티끌이 일어나면 온 대지가 그 속에 들어가고, 꽃 한 송이 피어나니 그 속에 세계가 열린다.”라고 했다. ‘평창’에서는 “한 티끌이 일자마자 대지는 전부 그 속에 들어가고, 꽃 한 송이 피어나니 온 세계가 열린다. 사자의 한 터럭에 백억 마리의 사자가 나타난다.”라고 했다. 이는 낙보원안(834~898)의 말을 인용하여 일즉다(一卽多)의 융통과 대소(大小)가 무애자재한 불법의 불가사의한 경지를 설한 것이다.
〈유마경〉에 ‘한 터럭 속에 사해(四海)의 바닷물을 포용 한다’고 하여, 〈소부사의경(小不思議經)〉이라고 하였고, 〈화엄경〉에 ‘일심(一心)에 法界를 포용한다’고 하여 〈대부사의경(大不思議經)〉이라고 한다. 〈능엄경〉에서 ‘한 터럭(一毛端)에 두루 모두 시방국토를 포용한다’고 하는 불법의 정신을 구지 화상은 손가락을 세운 법문으로 전개하고 있다. 구지의 일지선(一指禪)은 불법의 일심법계(一心法界) 정신에 〈장자〉 ‘제물론편’에서 “천지(天地)는 한 손가락(一指)이며, 만물은 한 마리의 말(一馬)이다”, “천지(天地)는 같은 뿌리요, 만물(萬物)은 일체(一體)”라는 사상을 수용하여 철학과 이론으로 이해하는 불법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직접 불법을 정신을 현실에서 체득하도록 하는 구체적인 행위의 법문이다.
〈무문관〉에는 구지 화상의 일지선(一指禪) 법문에 이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한다. “구지 화상을 시봉하는 동자가 한명 있었는데, 구지 화상이 외출하였을 때에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구지 화상께서는 어떤 법문을 설하는가?’ 라고 묻자, 그 동자 역시 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후에 구지 화상은 이처럼 동자가 자기의 불법을 흉내 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어느 날 하루는 드디어 칼로서 동자의 손가락을 절단해 버렸다. 동자는 아픔을 참지 못해 통곡하며 달아나고 있을 때에 구지화상은 동자를 불렀다. 동자는 머리를 돌려 화상을 쳐다보았다. 그 때에 구지 화상은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이 때 동자는 홀연히 깨달았다.”
무문 선사는 “구지 화상과 동자의 깨달음이 손가락에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이러한 사실을 잘 파악하여 깨달음을 체득했다면 천룡과 구지, 동자와 이 공안을 읽고 있는 그대가 하나의 꿰미에 꿰어 놓은 것처럼, 똑같은 깨달음의 경지를 체득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라고 평하고 있다. 원오도 ‘평창’에서 “구지 화상이 손가락을 세우는 법문는 참구하기는 쉽지만 깨닫기는 어렵다. 요즘 사람들은 질문을 하면 손가락을 세우고 주먹을 불끈 드는데, 이것은 망상 분별일 뿐 반드시 뼛속에 사무친 투철한 견해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설두 화상은 다음과 같은 의미의 게송을 읊고 있다. “구지 화상은 누구에게나 손가락 하나만 세워 언어 문자를 초월한 법문으로 학인을 지도한 선풍(禪風)을 좋아한다. 손가락 하나로 전 우주를 텅 비워버리고, 들어올려 이러한 법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는가?” 라고 칭찬했다.
성본스님/동국대 불교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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