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결(修心訣)(8)
-보고 듣고 말하고 동작하는 것은 -
-그대의 본심이지 육신이 아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보고, 듣고, 웃고, 말하며,
혹은 성내거나 기뻐하거나
또는 옳다, 그르다 하는
갖가지의 행위와
동작은
필경 누가 그렇게 하게 하는가를 말해보라.
만약 육신이 동작하게 한다면,
어째서 금방 명이 끊어진 사람의 몸은
아직 썩지
않았는데도
눈은 보지 못하고,
귀는 듣지 못하고,
코는 냄새를 맡지 못하고,
혀는 말을 하지 못하고,
몸은 움직이지 못하고,
손은 잡지 못하고,
발은 걷지 못하는가?
이러므로 보고, 듣고, 동작하는 것은
반드시 그대의 본심이지
그대의 육신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이 육신을 이루고 있는
사대(四大)의 성품은 비어서
거울 속의 형상과 같고
물 속의 달과
같은데,
어떻게 항상 뚜렷이 알고,
분명하고 어둡지 않아
갠지스강의 모래 수같이
한량없는 묘한 작용을 일으킬 수 있겠느냐.
그러므로
‘신통과 묘한 작용은
물을 긷고, 나무를 운반하는데 있다’하였다.
즉 물을 긷고 나무를 나르는 일상의 생활을 뜻한다. 그대에게 한 길을 가리켜서 그대의 근원으로 돌아가게 하리라. “그대는 저 까마귀 우는 소리와
까치가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가?” “예 듣습니다.” “그대는 돌이켜서 그대가 듣고 있다는 성품을 들어 보아라. 거기에도 많은 소리가
있는가?” “거기에는 일체의 소리와 일체의 분별도 없습니다.” “기특하고 기특하구나. 이것이 바로 관음보살이 진리에 들어간 문이다.
내가 다시 그대에게 묻는다. 그대는 거기에 일체의 소리와 일체의 분별도 얻을 수 없다고 하였다. 이미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면
그러한 때는 허공과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원래 공하지 않아서 밝고 밝아 어둡지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공하지 않은
것의 본체인가?” “형상이 없으므로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모든 부처님과 조사들의 생명이니 다시는 의심하지 말라.”
그리고 진리에 들어가는 길은 많지만
수심결(修心訣)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 1158~1210)의 저서
출처: Buddhapia, 김원각<시인·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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