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제31칙에는 마곡스님이 사형인 장경 화상과 남전 화상을 찾아가서 주장자를 흔들어 보인 기연을 다음과 같이 수록하고 있다.
마곡스님이 석정(錫杖)을 가지고 장경 화상의 처소에 도착하여 선상의 주위를 세 바퀴 돌고서 석장으로 한번 내려치고 우뚝 서자, 장경 화상이 말했다. “옳지(是) 옳지(是).” 설두 화상이 착어했다. “틀렸다(錯).” 마곡스님이 다시 남전 화상의 처소에 도착해서 선상을 세 바퀴 돌고 석장을 한번 내려치고 우뚝 서 있자, 남전 화상이 말했다. “아니야(不是), 아니야(不是).” 설두 화상이 착어했다. “틀렸다(錯).” 당시 마곡스님이 남전 화상에게 말했다. “장경 화상은 옳다고 했는데, 화상은 어째서 옳지 않다고 하시오” 남전 화상이 말했다. “장경은 옳았지만, 그대는 잘못된 것이야!” 이것은 바람의 힘(風力)으로 그렇게 된 것이니 결국 부서지고 만다.
擧. 麻谷持錫到章敬, 禪床三, 振錫一下, 卓然而立. 敬云, 是是. (雪竇著語云, 錯.) 麻谷又到南泉, 요禪床麻, 振錫一下, 卓然而立. 泉云, 不是不是. (雪竇著語云, 錯.) 麻谷當時云, 章敬道是, 和尙爲什道不是. 泉云, 章敬卽是, 是汝不是, 此是, 風力所轉, 終成敗壞.
이공안은 〈전등록〉 제7권 ‘장경회휘전’에 전하고 있으며, 〈벽암록〉 제20칙의 ‘평창’과 〈종용록〉 제16칙에도 인용하고 있다. 본칙에 등장하고 있는 마곡보철(麻谷寶徹)과 장경회휘(長慶懷暉, 754~815), 남전보원(南泉普願)은 모두 마조도일 선사의 제자로서 조사선의 선풍을 확립한 대표적인 선승들이다. 마조문하에 뛰어난 선승 139명 가운데 88명이 모두 훌륭한 선지식으로 활약했다고 전하고 있는 것처럼, 실로 인도에서 전래한 불교를 중국인들의 일상생활의 종교로 완전히 정착시킨 선승들이다.
어느 날 마곡 선사가 석장(주장자)을 가지고 사형인 장경 화상이 앉아 있는 선상(禪床)을 세 바퀴 빙 돌고나서 석장을 한 번 쾅! 하고 내리치고 장경의 정면에 우뚝 섰다. 마곡의 행동은 형식적으로는 예의를 갖추고 있지만 너무 교만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석장은 수행자가 행각할 때 지니고 다니는 나무 지팡이로서 맨 위에 철제로 탑 모양을 만들고, 둥글게 만든 큰 고리에 작은 고리를 12개를 끼워 넣기 때문에 석장(錫杖)이라고 한다. 수행자가 행각할 때 짐승이나 곤충들을 경각시키기 위해 석장을 땅에 치고 둥근 쇠고리가 부딪치어 소리가 나도록 한 것인데, 짐승이나 곤충이 수행자의 발에 밟혀서 죽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원오는 마곡의 행동을 “조계의 모습을 쏙 빼 닮았네”라고 착어하고 있다. 이 말은 영가현각(永嘉玄覺)이 처음 조계혜능을 방문 할 때도 이와 똑같은 모습으로 참문하였기 때문이다. 즉 ‘평창’에 “영가스님이 조계에 이르러 육조스님을 친견할 때에 혜능 화상이 앉아 있는 선상을 세 바퀴 돌고는 석장을 한 번 치고 우뚝 섰다. 그러자 육조는 ‘사문이란 삼천의 위의와 8만 가지 구체적인 법칙을 모두 갖추어야 하는데 그대는 어디서 왔기에 이처럼 거만을 부리는가?’” 라는 일단을 인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마곡의 행동에 장경은 “옳다(是)”고 말했는데, 마곡이 행동으로 제시하고 있는 독자적인 깨달음의 경지는 걸림 없는 지혜작용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마곡과 장경의 문답을 설두 화상은 “잘못된 것(錯)”이라고 착어하고 있다. 즉 나는 그러한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마곡은 처음 사형인 장경으로부터 인정을 받자 득의양양하여 유명한 남전 화상의 처소에 가서도 장경의 처소에서 펼친 행동과 똑같이 선상을 세 바퀴 돌고 석장을 한번 내려치고 남전 화상의 앞에 우뚝 섰다. 그러나 남전 화상은 “아니야(不是), 아니야(不是)”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마곡의 지혜작용(禪機)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마곡의 행위에 대해서 설두 화상은 역시 “잘못된 것(錯)”이라고 착어했다.
이 때 마곡스님이 남전 화상에게 “장경 화상은 옳다고 했는데, 화상은 어째서 옳지 않다고 하시오”라고 다그쳤다. 마곡이 젊은 기운으로 독자적인 경지를 체득하고 장경 화상과 남전 화상을 참문하여 자신의 선기를 탁마하고 있는 입장으로 볼 때 옳고 그름의 상대적인 차별경계에 떨어지는 어리석은 인물로 평가할 수 없다. 남전의 차원 높은 선기와 안목을 끌어내어 점검하기 위한 차별적인 언어로서 다그치는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원오는 이 말에 대하여 “주인공은 어디 있는가?”라고 착어하고 있다. 원오는 마곡스님과 이 공안을 읽는 모든 사람에게 “그대의 주인공은 어떻게 되었소? 옳고 그른 차별경계에 떨어져 상실한 것은 아닌지?”라고 자각하도록 던진 착어이다.
남전 화상은 “장경은 옳았지만, 마곡 그대는 잘못된 것이야! 이것은 바람의 힘(風力)으로 그렇게 된 것이니 결국 부서지고 만다”고 마곡을 위해서 친절하게 대답하고 있다. ‘지금 여기서 그대 자신의 일을 문제로 삼고 지혜로운 일을 해야지 왜 장경을 끌어들이는가? 장경은 관계없는 일이야. 문제는 그대가 올바른 깨달음의 지혜로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가 석장을 들고 내 앞에서 선기작용을 제시하고 있는 행동은 본래심의 지혜작용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풍력(風力)의 힘으로 전개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사대가 흩어지는 시절인연이 되면 파괴되고 마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오는 “자기는 어떻게 하지”라고 착어하고 있는데, ‘풍력에 따라 움직인 마곡의 주인공은 어디로 갔는가’라는 의미이다.
남전이 말한 ‘바람의 힘(風力)으로 움직인 것’이란 인간의 신체가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사대로 이루어진 것이며 육체를 움직이고 활동하는 원동력을 풍대라고 한다. 마곡이 장경과 남전의 선상을 세 바퀴 돌고 석장을 탁 치며 세운 모습은 풍대(風大)라는 원소의 작용에 불과한 것이지 본래인의 지혜작용은 아니라고 비판한 것이다. ‘사대가 흩어지면 그러한 육체적인 활동은 환멸(幻滅)이며 파괴되고 만다. 무슨 지혜작용인양 행동 하는가? 그러한 선기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질책한 말이다.
절대 주체이며 진실의 자기인 본래인은 어떠한 경계에도 흔들리지 않고 동요됨이 없는 것이다. 그대는 자기의 본래인을 확립하지 못했기 때문에 석장을 떨치며 선상을 도는 행위는 본래인의 지혜작용이 아니라 단순히 분위기에 휘말리고 경계를 쫓아 육체를 움직이는 일이었다. ‘진실로 그대 자신의 본래인을 상실했기 때문에 그릇된 것’이라고 말했다.
설두는 장경이 “옳다(是)”고 한 것과 남전이 “그릇된 것(不是)”이라고 한 말에 모두 “잘못된 것(錯)”이라고 착어하고 있다. 그것은 옳고 그름에 끄달리지 않고, 옳고 그름을 모두 초월한 경지에 있다는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견해를 “이것도 잘못되고, 저것도 잘못되었다”고 읊고 있다. ‘절대로 제거하지 말라’고 한 것은 자신이 착어한 ‘잘못된 것(錯)’을 제거하면 옳고 그름의 차별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의 차별에 끄달리지 않는다면, “사해(四海)는 물결이 잔잔하고 모든 강물은 썰물이 빠지게 된다”고 무사태평한 경지를 읊고 있다. 옳고 그름, 선과 악, 범부와 성인이라는 일체의 상대적인 차별심을 일시에 초월한 안신입명(安身立命)의 경지를 읊고 있다.
“고책(古策, 석장)의 가풍이 열 두 대문 보다 높은데, 대문마다 길이 있으나, 죽은 듯 조용하다” 고책(석장)은 본래 구족된 부모미생이전의 본래면목, 즉 고불심(古佛心)을 의미한다. 본래의 석장(불심)에 12개의 고리는 12인연을 상징한 것으로 본래 텅 비어 죽은 듯이 고요하게 울린다. 그런데 설두는 다시 석장의 쇳소리는 “죽은 듯이 고요한 것이 아니다”고 하여, 텅 빈 공의 경지, 무사 무심의 경지에 안주해서도 안 된다고 주의하고 있다. “작가는 병 없는 약을 찾는 것이 좋다”고 응병여약의 약이 아닌 본래의 불심을 깨닫는 지혜를 체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의주고 있는 것이다.
성본스님/동국대 불교문화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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