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제37칙은 반산보적 화상의 삼계(三界) 무법(無法)이라는 상당 법문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삼계(三界)는 무법(無法)인데, 어디에서 마음을 구하랴!
擧. 盤山, 垂語云, 三界無法. 何處求心.
본칙의 공안은 〈전등록〉 제7권, 반산 화상의 유명한 상당법문의 일절인데, 〈조당집〉 제15권에도 똑같은 내용을 전하고 있다. 반산 화상은 마조 문하의 뛰어난 선승 가운데 한 사람인 보적(寶積) 선사로 독창적인 법문을 설하고 있다. 〈전등록〉과 〈조당집〉에는 그의 상당법문을 수록하고 있을 뿐, 그의 생애나 전기를 자세히 전하지 않고 있는데, 그의 문하에 미치광이 같은 풍광승(風狂僧)으로 유명한 보화(普化)선사가 배출되었다. 보화는 〈임제록〉에 자주 등장하고 있는 선승으로 임제가 북쪽에서 행화(行化)를 펼치도록 도와준 선승이며, 임제를 어린애로 취급하는 등 뛰어난 역량을 갖춘 선승이었다.
여기서 먼저 〈조당집〉에 전하는 반산 화상의 법문을 들어보자. “선덕 여러분! 비유하면 칼을 휘둘러 허공에 던지면 칼이 (허공에) 미치거나 미치지 못함을 따지지 못한다. 이것은 허공에는 자취(흔적)가 없고 칼날은 손상하지 않는 경지이다. 만일 능히 이와 같이 (마음을 허공과 같이 텅 비우면)마음과 마음이 서로 분별이 없어져 마음이 그대로 부처요, 부처가 그대로 사람이다. 사람과 부처가 다르지 않아야 비로소 도(道)를 이룬다(全心卽佛, 全佛卽人,人佛無異 始爲道矣) … 선덕들이여! 스스로가 잘 살펴보도록 하라! 아무도 대신해줄 사람이 없다. 삼계(三界)는 무법(無法)이거늘 어디에서 마음을 구하며, 사대(四大: 地水火風)가 본래 텅 비어 공(空)한데 부처가 어디에 의지하리요. 마음(旋機)이 움직이지 않으니, 고요하여 근원이 없어졌고 마주보면서 곧바로 드러낼 뿐 다시 다른 일은 없다.”
원오도 ‘평창’에 반산 화상의 법문을 인용하고 있는데, 설두는 본칙에 “삼계가 무법인데 어디서 마음을 구하랴!(三界無法 何處求心)”라는 일절을 문제로 제시하고 게송으로 읊고 있다. 삼계(三界)는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로 중생이 살고 있는 세계를 말한다. 원래 고대 인도의 세계관에서 주장한 것으로 우주에 이러한 세계가 있다고 믿었지만, 불교에서는 중생이 살고 있는 삼계를 도덕적인 표준으로 삼고, 정신상의 수행단계로 보고 있다. 즉 욕계는 음식에 대한 욕망, 이성에 대한 욕망, 수면에 대한 욕망, 재산과 명예에 대한 욕심이 치성한 중생의 세계를 말한다.
색계의 색(色)은 형체로 육체를 말하며, 육체가 있지만 욕심이 없는 중생의 세계를 말한다. 무색계는 형체가 없고 육체가 보이지 않는 신이나 부처님, 천인(天人) 등의 경계를 말하는데, 이것은 중생이 살고 있는 이 사바세계를 말한다. 욕심도 있고, 육체도 있고, 동물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생리적인 현상도 있으며, 부처의 자비심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반산 화상이 말하는 삼계는 단순히 중생이 살고 있는 세계를 말하며, 넓은 의미로 시방세계인 무한의 우주를 지칭한 것인데, 이러한 삼계는 무법(無法)이라고 설하고 있다. 무법(無法)은 공(空)의 의미이다.
〈대품반야경〉 제22권에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일체 종지(種智)는 자성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법(法)에 자성이 없으면 이것을 무법(無法)이라고 한다”라고 설하며, 또 “일체의 모든 법은 인연의 화합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법(法)은 독자적인 자성(自性)이 없다. 만약 자성이 없다고 한다면 이것을 무법(無法)”이라고 한다. 〈열반경〉 26권에도 “공(空)은 바로 무법(無法)”이라고 설하고 있다. 일체의 만법은 무자성(無自性)이며, 공한 것이기 때문에 텅 비어 공(空)하다고 하고, 또 무법(無法)이라고 하며, 인연의 화합의 법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무생(無生)이라고도 한다.
불교에서는 화엄철학과 유식사상에서는 삼계는 오직 마음뿐이라는 ‘삼계유심(三界唯心)’을 주장하고 있으며, 〈능엄경〉과 많은 어록에서는 “마음 밖에 달리 법이 없다(心外無法)”고 강조하고 있다. 불교인들이 가끔 “법(法)은 없으나 마음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불심이나 불성을 영원히 존재하는 영혼으로 착각하면 안된다. 그래서 반산 화상이 이러한 전도되고 착각하는 중생의 병(禪病)을 치료하기 위해서 “어디서 마음을 구하려고 하는가?”라고 했다.
진실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지고 있어 〈금강경〉에 “과거심도 얻을 수가 없으며, 현재심도 얻을 수가 없고, 미래심도 얻을 수가 없다”고 설하고 있는 것처럼, 마음은 모양도 형체도 색깔도 없기 때문에 그 마음의 본체는 얻을 수가 없다. 이러한 마음의 작용으로 나타낸 것이 중생의 삼계인데, 삼계도 불가득인 것이며, 일체의 모든 존재나 삼라만상도 텅 비어 공(空)한 것이기 때문에 얻을 수가 없는 것이다. 또 “만약 모든 모양이 있는 것을 모양이 아닌 것으로 본다면 여래를 친견하리라”라고 설하고 있는 것처럼, 일체의 차별경계를 초월한 무심의 경지에서 지금 여기 자기의 일을 지혜롭게 하고 있는 그 당체가 여래이며 법신이라는 사실을 체득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달마가 혜가에게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오라! 내가 그대를 위하여 안심시켜 주마!”라고 말하자 혜가는 “불안한 마음을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다(不可得)”라고 대답하고 있다. 그래서 달마는 “내가 그대를 안심시켜 주었다”고 하여, 혜가는 얻을 수가 없는(不可得) 그 마음이 안심을 체득한 경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유명한 안심법문을 전하고 있다. 반산 화상이 “삼계에 무법(無法)인데 어디서 마음을 구할 수가 있겠는가?”라고 설하고 있는 것처럼, 마음은 어느 곳에서도 구할 수 없는 것이다. 일체가 텅 비어 공(空)한데 어디서 얻을 수가 있겠는가? 구하고 얻을 수도 없는 마음을 구하려고 하는 것은 물 속에 비친 달을 주우려고 하는 것과 같이 착각과 환상에 떨어지게 된다. 불법은 심법(心法)이다. 마음 밖에서 불법이나 진실을 추구하고 불도를 구하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이다. 그래서 “마음 밖에 법은 없다” “마음 밖에서 불도를 구하는 것은 외도”라고 선승들이 강조하고 있다.
설두는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읊고 있다. “삼계는 무법(無法)인데 어디서 마음을 구할 수가 있으랴!” 설두는 먼저 반산 화상의 설법을 그대로 제시하고 있다. 원오는 “이 말은 귓전에 아직 울리고 있네” “또다시 이 말을 거론하고 있는가?”라고 하면서 앵무새처럼 이 말만 언급하지 말고 자신이 잘 점검해 보라고 착어하고 있다. “흰 구름은 일산이요, 흐르는 물소리 비파소리로다”라는 말은 삼계(三界) 무법(無法)인데 마음을 어디서 구하랴! 반산 화상의 법문을 단적으로 읊고 있다. 멀리 청산을 바라보면 흰 구름이 유유히 왕래하고 산 위를 덮은 일산처럼 보인다. 고개를 숙여 흐르는 계곡물을 바라보면 흐르는 물소리가 마치 거문고를 연주하는 음악소리처럼 들린다. 그러나 백운(白雲)은 무법(無法)의 상태를 과시하지도 않고, 흐르는 물도 무심(無心)이라고 주장하지 않고 그냥 유유히 왕래하고, 도도하게 흐르고 있을 뿐이다. 무법(無法), 무심(無心)을 읊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곡조를 아는 사람이 드물다. 그래서 “한 곡조, 두 곡조 아는 사람 없다”라고 읊고 있다. 이 말은 〈열자(列子)〉 ‘탕문편’에 백아(伯牙)가 거문고를 연주하면 종자기(鐘子期)는 조용히 귀를 기울여 그 연주를 듣고 이해하였다는 지음(知音)의 고사에 의거하고 있다. 즉 무심하게 흐르는 물소리의 음악을 백아도 연주 할 수가 없고, 종자기도 듣고 이해 할 수가 없는데 어찌 음악도 모르는 사람이 한 곡 두곡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설두는 줄이 없는 거문고(無絃琴)의 연주를 어떻게 들었는가? “비 개인 밤 못가엔 가을 물이 깊다”라고 읊고 있는데, 한 곡 두 곡의 연주를 듣고 잘 파악한 경지를 표현하고 있다. 즉 비가 많이 온 원인 때문에 연못의 물이 많이 불어났다는 결과가 나타나게 된 것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은 인연의 화합으로 법이 생기는 것을 진실이라고 하는 것처럼, 불법은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말한다. 그러한 불법의 진실이 멀리 있는 것도 아니요, 추상적인 것도 아니라 지금 여기에 우리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차 마시고 밥을 먹는 일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성본스님/동국대 불교문화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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