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제38칙은 풍혈화상이 조사의 심인(心印)은 철우(鐵牛)의 기용(機用)과 같다고 설법하고 있다.
풍혈화상이 영주(州) 관청(官衙)의 법당에서 설법하였다. ‘조사의 마음 도장(心印)의 모양이 무쇠소(鐵牛)의 지혜작용(機)과 같다. 도장을 떼면 집착하는 것이고, 찍어두면 도장으로 쓸모가 없다. 도장을 떼지도 못하고, 그대로 두지도 못하니, 도장을 찍어야 옳은가? 찍지 말아야 옳은가?’ 그 때 노파장로가 대중 가운데서 나와 말했다. ‘나한테 무쇠소의 지혜작용(機)이 있습니다. 화상은 찍지 마시요!’ 풍혈화상이 말했다. ‘ 고래를 낚아 바다를 맑히는 일은 익숙하지만, 개구리 걸음으로 진흙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에는 흥미 없다.’ 노파장로가 한참동안 생각에 잠기자, 풍혈화상이 고함치며 말했다. ‘장로는 왜 말을 계속하지 못하는가?’ 여전히 장로가 머뭇거리자, 풍혈화상은 불자(拂子)를 한번 치고 말했다.
‘할 말을 찾고 있는가? 어서 말해봐라!’ 노파장로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풍혈화상은 또다시 한차례 불자로 치니, 지사(牧使)가 말했다. ‘불법과 왕법이 똑같군요.’ 풍혈화상이 말했다. ‘그대 지사는 무슨 도리를 보았는가?’ 지사가 말했다. ‘끊어야 할 것을 끊치 않으면 도리어 재앙을 불러들이게 됩니다.’
풍혈화상은 곧바로 법좌에서 내려왔다.
擧. 風穴, 在州衙內, 上堂云, 祖師心印, 狀似鐵牛之機. 去卽印住, 住卽印破. 只如不去不住, 印卽是. 不印卽是. 時有盧陂長老出問, 某甲有鐵牛之機, 請師不搭印. 穴云, 慣釣鯨澄巨浸, 却嗟蛙步輾泥沙. 陂, 佇思. 穴喝云, 長老何不進語. 陂, 擬議. 穴, 打一拂子, 穴云, 還記得話頭, 試擧看. 陂, 擬開口. 穴, 又打一拂子. 牧主云, 佛法興王法一般. 穴云, 見箇什道理. 牧主云, 當斷不斷, 返招其亂. 穴, 便下座
본칙의 공안은 〈전등록〉13권과 〈광등록〉15권에 전하고 있다. 풍혈연소(風穴延沼: 896~973)는 송초(宋初) 임제종을 중흥한 선승으로 남원혜옹(慧)의 법을 이었으며, 그의 어록 1권이 〈고존숙어록〉에 전하고 있다. 원오는 ‘평창’에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풍혈화상은 임제종의 법통을 이은 고승이다. 임제선사가 처음 황벽의 문하에 있으면서 소나무를 심자, 황벽선사가 말했다. “깊은 산중에서 소나무를 심어서 무엇 하려고?” 임제선사는 “첫째는 산문의 경지를 만들고, 둘째는 후대 사람들의 표시가 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풍혈화상이 임제종을 중흥한 선승으로 주목된 것은 〈임제록〉에 임제가 소나무를 심는 이야기에 위산과 앙산의 대화에서 풍혈화상의 출현을 예언하는 말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풍혈화상이 영주(州) 도지사의 초청으로 관청(官衙)의 법당에서 설법했다. “조사의 마음 도장(心印)은 무쇠소(鐵牛)의 지혜작용(機)과 같다. 도장을 떼면 집착하는 것이고, 찍어두면 도장으로 쓸모가 없다. 도장을 떼지도 못하고, 그대로 두지도 못하니, 도장을 찍어야 옳은가? 찍지 말아야 옳은가?” 당송시대에는 도지사가 고승들을 관청의 법당에 모시고 법문을 청한 사례가 많다. 마조가 홍주(洪州)의 관청안의 법당에서 법문을 하고 거주한 것은 유명하다.
조사의 심인(心印)은 〈벽암록〉1칙에 달마조사가 인도에서 중국에 온 것은 불심인(佛心印)을 전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공화상이 양무제에게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불심인(佛心印)과 같은 말로 부처와 조사가 이심전심으로 전한 불법의 근본정신으로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고도 한다. 풍혈화상은 조사심인의 모습을 “무쇠소의 지혜작용과 같다.”고 주장하고 있다. 철우(鐵牛)는 〈중화고금주(中華古今注)〉에 ‘협주(陜州)에 철우의 사당이 있는데, 소의 머리는 하남(河南)에 있고, 꼬리는 하북(河北)에 있다, 우왕(禹王)은 황하의 재난을 달랬다’라고 하는 것처럼, 옛날 우왕(禹王)이 황하(黃河)의 물을 다스리기 위해 무쇠로 만든 소로서 수호신처럼 제사를 올리는 철우이다.
원오가 ‘천인 만인이 움직이려하지만 움직이지 않는다’라고 착어하는 것처럼, 여기서는 엄청난 작용을 갖고 있으면서 전혀 움직임이 없는 무심의 지혜작용으로 비유하고 있다. 즉 불심을 도장에 비유하여 도장을 종이위에 찍어 두면 그 도장은 사용할 수가 없으며, 도장을 종이에서 떼면 인장의 문자가 종이에 분명히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문자가 종이에 나타나게 되면, 자취와 흔적을 남기게 된다. 반대로 도장을 종이 위에 놓아두면 도장의 문자는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도장으로서 쓸모가 없다. 도장 없이 문자를 나타낼 수가 없고, 문자 없는 도장은 쓸모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풍혈화상은 이 문제를 학인들에게 제시하면서 “도장을 찍어야 옳은가? 찍지 말아야 옳은가?” 라고 질문하고 있다.
그 때 노파장로가 “나도 무쇠소의 지혜작용(機)을 본래부터 구족하고 있는데, 화상은 도장을 찍는 형식으로 인가하지 마시요!” 라고 말했다. 노파장로에 대해서는 잘 알 수가 없는데, 노파장로 뿐만 아니라 일체중생이 모두가 무쇠 소(불심)의 지혜 작용을 구족하고 있다. 문제는 이 무쇠 소의 지혜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노파장로는 조사의 심인(心印)이라면 나도 불심을 체득한 지혜가 있으니 선사는 나를 인가해 주시오 라고 제의하고 있는 것이다.
풍혈화상은 노파장로에게 “나는 바다를 혼탁하게 하는 고래를 잡아서 바닷물을 맑히는 큰일은 숙달되어 있지만, 개구리가 진흙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짓거리는 흥미가 없다.”고 말했다. ‘오늘 큰 고래를 한 마리 잡기 위해 불법의 바다에 낚시(문제)를 던졌는데, 겨우 개구리가 걸렸나’ 하면서 안목 없는 노파장로를 심하게 비판하고 있다. 즉 노파장로는 자신과 무쇠 소의 지혜작용을 상대적인 차원에서 파악하려고 하고 있는 이원적인 분별의식과 차별에 떨어져 있기 때문에 풍혈화상이 날카롭게 비판한 것이다.
노파장로가 한참동안 생각에 잠기자, 풍혈화상이 고함치며 말했다. “장로는 왜 말을 계속하지 못하는가?” 여전히 장로가 머뭇거리자, 풍혈화상은 불자(拂子)로 한번 치고 말했다. “무슨 할말을 찾고 있는가? 어서 말해보게나!” 노파장로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풍혈화상은 또다시 한차례 불자로 쳤다. 뭐야! 그대가 체득했다는 무쇠 소의 지혜는 어디서 잠자고 있는가? 라고 다구 치는 말이다. 지사(牧使)가 말했다. “불법과 왕법이 똑같군요.” 그러자 풍혈화상은 “그대 지사는 무슨 도리를 보았는가?”라고 질문하니 지사가 “끊어야 할 것을 끊지 않으면 도리어 재앙을 불러들이게 됩니다”라고 대답했다.
지사가 한 말은 〈사기(史記)〉 제도혜왕 세가(齊悼惠王 世家) 등에는 도가의 말로 전하는데, 〈조정사원〉2권에는 황석공(黃石公)의 말이라고 하는데, 출세간이나 세간이나 똑같이 일시적인 임시변통으로는 완전히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불법의 근본정신을 분명히 체득한 지혜가 있어야 언제 어디서나 무쇠 소의 무심한 경지에서 자신이 세운 원력의 일을 지혜롭게 잘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원오는 “옆에 있는 사람이 안목이 있다는 사실” 이라고 착어하고 있는 것처럼, 지사의 관찰이 훌륭한 것이라고 칭찬하고 있으며, 또, “동쪽 사람이 죽었는데, 서쪽 집안사람이 조문한다.”라고 하면서 노파장로의 안목 없는 죽음을 지사가 조문하고 있다고 평하고 있다. 풍혈화상은 지사의 대답에 일단 만족하며 곧바로 법좌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설두화상은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읊고 있다. “노파장로를 붙잡아 무쇠 소에 앉혔다”는 말은 대중 가운데 등장한 노파장로를 어떻게 해서라도 무쇠 소에 앉히려고 노력한 풍혈화상의 자비심을 읊고 있다. 그러나 장로는 자신이 이미 무쇠 소를 타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삼현(三玄)의 창과 갑옷에 가벼이 덤비지 못하리.’ 라고 하는 것은 풍혈화상이 임제의 법손이기 때문에, 가문의 보배라고 할 수 있는 임제의 삼현(三玄), 삼요(三要)의 법문을 갑옷으로 몸을 보호하고 전쟁에 나가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대적 할 상대 없었다.
〈임제록〉에 “일구(一句)의 법문에 반드시 삼현문(三玄門)을 갖추고, 일현문(一玄門)에는 반드시 삼요(三要)를 갖추어야 한다”라고 주장한 설법인데, 임제의 법문을 체득한 풍혈의 지혜와 방편법문의 수단이 너무나 뛰어난 것이기에 감히 도전하는 장수가 없었다고 읊고 있다. ‘초왕(楚王)의 성으로 모여든 물이 일갈(一喝)의 고함소리에 거꾸로 흐른다.’ 풍혈화상이 설법하는 영주(州)의 관청은 옛날 춘추시대 초왕의 도읍지로서 초왕의 성을 둘러싸고 흐르는 물을 조종(朝宗)이라고 한다. 모두 바다로 흘러가는 물이기 때문이다. 풍혈화상의 일갈(一喝)은 이 물을 역류(逆流)시키는 힘이 있다고 그의 종풍을 칭찬하고 있다.
성본스님/동국대 불교문화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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