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제62칙은 운문화상이 대중에게 하나의 보물에 대하여 설한 법문을 다음과 같이 싣고 있다.
운문화상이 대중에게 설법하였다. “하늘과 땅 사이, 우주 가운데 하나의 보물이 있으니, 형산(形山)에 감추어져 있다. 등불(燈籠)을 들고서 불전(佛殿)을 향해 가고, 삼문(三門)을 들어서 등불(燈籠)위로 올려놓았다.”
擧. 雲門示衆云, 乾坤之內, 宇宙之間, 中有一寶, 秘在形山. 拈燈籠向佛殿裏, 將三門來燈籠上.
본칙의 공안은 <운문광록> 중권의 법문(垂示 代語)에 보이며, <굉지송고> 제92칙에도 인용하여 설하고 있다. 운문화상의 법문은 ‘평창’에도 언급한 것처럼, 승조(僧肇)의 저술로 알려진 <보장론(寶藏論)> ‘광조공유품(廣照空有品’의 한 절을 인용한 것이다.
원오는 ‘평창’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승조법사는 서천 27조 반야다라 존자의 깊은 경지에까지 이르렀는데, 어느 날 난을 만나 사형을 당하게 되었을 대 7일간의 여가를 얻어 <보장론>을 저술하였다. 운문화상은 <보장론> 가운데 네 구절을 제시하여 설법하기를 ‘어째서 값으로 매길 수 없는 보물이 음계(陰界) 속에 숨겨져 있는가’ 라고 묻고 있다. <보장론>의 내용은 존문의 말들과 일치되고 있다.”
승조법사는 구마라집 문하의 이해(理解)제일의 제자로서 <조론>과 <주유마힐경> 10권의 저술이 있다. <보장론>은 8세기 후반의 저술인데, 승조에 가탁한 작품이다. 운문화상이 인용한 <보장론>의 일절은 동산양개선사도 <조당집> 제6권에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설법하고 있다. “‘하늘과 땅 사이, 우주 가운데 하나의 보물이 있으니 육체(形山)에 감추어져 있다. 사물을 인식하는 신령스러운 광명은 안과 밖이 텅 비었네. 적막하여 그 본체를 볼 수 없고, 그 위치는 그윽하여 파악 할 수가 없다.’ 단지 자기에게서 찾아야지 다른 물건을 빌려 찾으려 해서는 안 된다.”
“하늘과 땅 사이, 우주 가운데 하나의 보물이 있으니, 형산(形山)에 감추어져 있다.” ‘하늘과 땅(乾坤)’은 천지(天地)이며, 우주(宇宙)에 대하여 위는 천(天)이고 아래는 지(地)를 우(宇)라고 하고, 고왕금래(古往今來)를 주(宙)라고 하는 것처럼, 우(宇)는 공간, 주(宙)는 시간을 말한다. 즉 불교에서 말하는 시방이라는 무한의 공간과 삼세라는 무한의 시간이 전개하는 그 가운데 귀중한 하나의 보물이 있으니 형산(形山)에 감추어져 있다고 설한다. 여기서 말하는 형산(形山)은 인간의 육체를 말한다. 천지에 충만하고 있는 하나의 보물은 우주의 본체이며 진여, 혹은 법성(法性), 불성(佛性)이라고 한다. 광대무변한 진여 법성은 우리들 인간의 본심이며 본성인 것이고, 경전에서는 불성이라고 한다.
<전등록(傳燈錄)> 제6권에 마조선사가 혜해에게 “지금 나에게 질문한 것이 바로 그대의 보배(寶藏)”라고 설하고 있다. 즉 중생심은 윤회의 고통을 초래하는 업장을 만들지만, 불성의 지혜작용은 무진장한 보배이며 보물과 같이 값진 삶을 만드는 창조적인 것이다. <원각경(圓覺經)>에도 불성의 지혜작용을 여의보주(如意寶珠), 마니보주에 비유하고 있으며, <법화경(法華經)>에도 상투속의 보물(珠)로 비유하고 있다.
<전등록> 제8권에 현사는 “온 시방세계가 바로 하나의 밝은 구슬(一顆明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불성을 보물에 비유한 말은 <조당집> 제5권에 운암선사가 “문으로 쫓아 들어온 것은 보배가 아니다”고 설하고 있다. 육근의 문으로 들어온 보배는 경전과 선승들의 설법을 통해서 들은 언어 문자의 법문을 말한다. 이러한 법문의 내용을 마음으로 깊이 사유하여 깨닫고, 언어 문자의 지식을 지혜로 전환시켜 자신의 무진장한 보배로 만들어야 한다.
자신의 살림살이(지혜)로 만들지 않으면 인연 따라 곧 문을 통해서 나가버리게 되고 만다. 참선수행은 지식으로 전해들은 경전의 말씀과 선승들의 법문을 깊이 사유하고 관찰하여 자신의 지혜로 만드는 수행인 것이다. 경전이나 어록의 법문 내용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면 문제의식이 남게 되며, 이 문제의식이 의심인 것이다. 간화선은 의심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선문답을 깊이 사유하여 불법의 대의를 체득하고 반야의 지혜와 정법의 안목을 구족하는 수행이다.
원오는 “형산에 감추어져 있다.”라는 말에 ‘찰(). 점(點)’이라고 착어하고 있다. 찰()은 정말 형산에 감추어져 있는가. 분명히 확인해 보자라는 말이고, 점(點)은 감추어져 있는 그 곳을 점검해 버린 것을 착어한 것이다. 그러나 운문화상은 원오의 착어보다도 더 강하게 점검하도록 “등불(燈籠)을 들고서 불전(佛殿)을 향해 가고, 삼문(三門)을 들어서 등불(燈籠)위로 올려놓았다”고 설하고 있다. 등불을 들고서 불전을 향해 간다고 하는 말은 하나의 보물이 형산에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바꾸어서 말한 것이다. 하나의 보물이 형산에 있다고 말한 것은 상당히 신비적인 표현으로 들리지만 사량분별이 따른다. 그래서 운문은 무심한 등불을 무심한 불전에 봉납(奉納)한 것과 같은 것이라고 말하면 이상하게 생각 할 것도 없고, 사량 분별도 따르지 않고, 청정무애하고 자유자재한 경지를 설한 것이다. 즉 육체를 불전과 같이 보고, 등불이 불빛을 비추는 것과 같이 심성(心性)을 본다면 우주의 본질인 불법의 대의를 체득 할 수가 있다고 설한다.
‘삼문(三門)을 등불(燈籠)위에 올려놓았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삼문(三門)은 사찰에 들어가는 산문(山門)으로 공(空), 무상(無相), 무작(無作)의 삼해탈문(三解脫門)을 말하는데, 그렇게 큰 삼문(三門)을 불전의 등불 위에 올려놓았다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불전은 대(大) , 등불은 소(小), 삼문(三門)은 대(大), 등불은 소(小)로서 대소의 차별을 초월한 경지에서 대소가 상즉상입(相卽相入)하여 원융무애한 불가사의 해탈의 경지를 구체적인 사물을 제시하여 설하고 있다. <유마경(維摩經)> 불가사의 해탈법문에 수미산이 겨자씨에 들어가고, 사해의 바닷물이 한 터럭 구멍에 들어간다고 설하고 있는 내용이다. <보장론>에서 이론적으로 설한 법문을 구체적인 사물인 삼문(三門)과 등불이 불전 가운데 수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하나의 보물인 불성이 육체 가운데 감추어져 있는 불가사의한 경지를 비유로 설한 것이다.
설두화상은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읊었다. “살펴보고, 살펴보라!” 설두는 무엇을 ‘살펴보라’고 하는가? 운문화상이 설법한 것처럼, 각자가 육체에 감추어져 있다고 하는 하나의 보물을 살펴보라고 한 것인가? 원오는 “높이 눈을 뜨라”고 착어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하나의 보물은 범부의 차원 낮은 눈으로는 볼 수 없기 때문에 정법의 안목을 갖춘 정문(頂門)의 눈으로 잘 살펴봐야 한다. 대소(大小), 범성(凡聖)의 차별의 눈과 사량 분별하는 정식(情識)의 눈으로는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옛 언덕에 어떤 사람이 낚싯대를 잡고 있는가?” 운문화상은 승조법사의 말을 낚시에 매달아 고기먹이로 하여 대중에게 시중법문의 낚싯대를 던지고 있다. 마치 태공망(太公望)이 강 언덕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것처럼, 운문화상도 선(禪)의 바다에서 불법의 대의를 체득한 큰 고기를 낚으려고 한 것이다. 원오가 ‘수시’에서 말한 것처럼, 옛 언덕(古岸)은 대소(大小)나 범성(凡聖)의 차별을 초월한 무심(본래심)의 경지에서 무연(無緣)의 자비심으로 청하지 않은 벗이 되어 무작(無作)의 묘용(妙用)으로 낚싯대를 던진 운문의 마음을 칭찬하고 있다.
“구름은 뭉게뭉게. 물은 넘실넘실” 이 말은 옛 언덕(깨달음의 경지)을 읊은 것인데, 구름과 물과 같이 운문이 무심의 경지에서 무한한 자비심의 지혜작용(묘용)을 펼친 것이다. 또한 사람들 모두가 본지 풍광이 무심의 경지에 작용하고 있음을 말한다. “밝은 달 갈대꽃을 그대야 스스로 살펴보라!” 달빛도 희고, 갈대꽃도 흰 색이지만, 잘 살펴보면 명월(明月)은 명월의 빛이 있고, 갈대꽃은 갈대꽃의 색이 있다. 형산(形山)과 하나의 보물, 육체와 마음, 등불과 산문이 같은 것 같지만 다른 정법의 안목을 구족해야 한다는 운문의 설법을 잘 파악해야 한다고 읊고 있다.
성본스님/동국대 불교문화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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