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제66칙은 암두전활 화상과 어떤 선객과의 선문답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암두화상이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장안(西京)에서 왔습니다.’ 암두화상이 물었다. ‘황소(黃巢)의 난이 지난 뒤에 칼을 입수했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입수했습니다.’ 암두화상이 목을 그 스님 앞으로 쑥 내밀며 칵! 하고 소리쳤다. 스님은 말했다. ‘화상의 머리가 떨어졌습니다.’ 암두화상은 하하! 하고 크게 웃었다. 그 스님이 뒤에 설봉화상의 처소에 이르자, 설봉화상이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암두에서 왔습니다.’ 설봉화상이 말했다. ‘암두화상은 무슨 말을 하시던가?’ 스님이 앞의 이야기를 제시하자, 설봉화상은 30방망이를 쳐서 쫓아내버렸다.”
擧. 巖頭問僧什處來. 僧云. 西京來. 頭云. 黃巢過後. 還收得劍麽. 僧云. 收得. 巖頭引頸近前云. 僧云. 師頭落也. 巖頭呵呵大笑. 僧後到雪峰. 峰問. 什處來. 僧云. 巖頭來. 峰云. 有何言句. 僧擧前話. 雪峰打三十棒出.
본칙의 공안은 <전등록(傳燈錄)> 제16권 암두전에 전하고 있다. 암두전활(巖頭全豁:828~887)은 덕산선감의 제자로서 설봉과 법형제인데, <벽암록> 제5칙 ‘평창’에 언급한 것처럼, 설봉이 오산에서 도를 이루는 인연을 제시한 선승이다. 암두선원은 호북성 악주(鄂州)에 있었는데, 황소(黃巢)의 난이 일어난 이후에 어떤 스님이 암두화상을 참문하면서 나눈 선문답이다.
암두화상은 찾아온 스님에게 “그대는 어디서 왔는가?” 라고 인사말로 물었다. 이 질문은 간단한 인사말이지만 스님의 안목을 살펴보기 위한 문제를 가볍게 던지고 있는 말이다. 어디서라는 물음은 그대의 본래면목의 당처와 이전에 있었던 지역의 장소를 동시에 제시하여 묻고 있기 때문이다. 그 스님은 “장안[西京]에서 왔습니다”라고 장소를 말하고 있다. 당대에는 서경(西京)은 장안(長安), 동경(東京)은 낙양으로 양경(兩京)을 두었다. 원오도 이 스님을‘과연 하나의 좀도둑’이라고 평하고 있는 것처럼, 암두화상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암두화상은 다시 “황소(黃巢)의 난이 지난 뒤에 칼을 입수했는가?”라고 묻고 있다. 이 스님이 장안에서 왔다고 대답하기 때문에 장안은 황소의 반란으로 장안이 함락된 역사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한 선문답이다. 즉 당말 정치가 문란하고 세상이 안정되지 못하여 인심이 불안정하게 되자, 조주(曹州)의 황소라는 소금장사가 874년 친구인 왕선지(王仙芝)와 함께 반란군을 조직하여 반란을 일으켰고, 드디어 수만 명 반란군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황소는 ‘하늘이 내려준 황소(天賜黃巢)’라는 명문을 새긴 칼을 잡고 스스로 충천(衝天)장군이라고 자칭하며, 880년 장안을 함락하고 대제국(大齊國)을 세워 대재황제라 하고 연호를 금통(金統)이라고 바꾸었다. 그러나 이극용(李克用)이 지휘하는 당조의 반격으로 884년 고향 산동(山東)에서 자결함으로 4년간의 반란군은 막을 내린다. 여기서는 그러한 고사를 토대로 하여 암두화상이 스님에게 “그대는 하늘이 내려준 보검을 입수했는가”라고 묻고 있다. 즉 어려운 수행(황소의 반란)을 거쳐서 무애자재한 반야의 지혜(칼)를 체득하여 자유자재한 경지를 이루었는지를 묻고 있다.
지혜의 칼은 일체의 차별과 번뇌 망념을 차단할 수 있는 절대적인 의 묘검(妙劒)이며, 본래면목, 본지풍광, 무진장한 보배라고도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불성을 지혜작용을 비유한 것이다. 그 스님은 “예! 나는 그 칼을 입수했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암두화상이 던진 낚시에 걸려든 것이다. 원오는 “멍청한 놈들이 삼대와 좁쌀처럼 많다”고 착어하고 있는 것처럼, 지혜의 칼을 가지고 있으면서 쓸 줄을 모르는 놈은 이 스님뿐만 아니라, 수행을 한다는 고금의 많은 선승들이 셀 수도 없이 많다고 비평하고 있다.
암두화상은 “그래! 그렇다면 자네의 그 보검으로 나의 목을 한번에 끊어보도록 하게”하면서 스님 앞으로 목을 길게 쑥 내밀며 칵! 하고 소리쳤다. 화()라는 글자는 전신으로 힘쓰며 지르는 “얏! 에잇!”이라는 기합소리다. 원오는 ‘범을 잡는 덫’이라고 착어한 것처럼, 얏! 이라는 한 고함에 스님이 칼을 주었다고 하는 분별 망상을 한꺼번에 쳐 날려 버린 것이다.
그러나 스님은 암두화상의 자비심을 알지 못하고 “화상의 머리가 떨어졌습니다”라고 엉뚱한 소리를 내뱉고 있다. 겉으로는 지혜의 보검을 쓸 줄 아는 선승처럼 형색은 갖추었지만, 암두화상이 “그러면 내 목을 한번 쳐”라고 하자, 화상의 목을 쳤다고 큰 소리 친다. 자신의 목이 먼저 떨어진 줄 모른다. 암두화상이 던진 올가미에 걸려서 끌려 다니고 있는 주제에 보검을 가지고도 지혜작용을 펼치지 못하는 것이다. 원오는 “송곳 끝이 날카로운 줄만 알고, 끌의 끝이 네모난 줄은 모른다”고 당시의 속담으로 착어하여, 정법의 안목과 융통성이 없고 방편지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비평하고 있다. 암두화상은 “하하!”하고 크게 웃었다. 이와 같은 내용이 <전등록> 제15권 덕산장에 덕산과 용아와의 선문답으로 전하고 있으며, ‘평창’에도 인용하고 있다.
암두의 큰 웃음은 무엇을 나타낸 것인가? 스님이 칼로 베어버린 암두의 머리는 땅에 떨어졌다고 했는데, 지금 암두화상은 큰 소리로 웃고 있지 않는가. 암두의 머리(법신)는 어디에 있는가? 그 스님은 암두화상의 머리를 탈취하여, 암두의 웃음이 자신을 인가한 것으로 착각하고, 의기양양하게 뒤에 설봉화상의 처소에 이르자, 설봉화상도 암두화상과 똑같이 “어디서 왔는가”라고 안목을 점검하는 인사말을 던졌다. 스님은 “암두선원에서 왔습니다”라고 정직하게 장소를 대답한다. 설봉화상은 “암두화상은 어떤 법문을 하시던가?”라고 묻자, 스님이 앞에 암두화상과의 선문답과 일단의 이야기를 말 했다. 설봉화상은 그 스님에게 30방망이를 쳐서 쫓아내 버렸다. 즉 스님은 황소의 보검으로 암두화상의 머리를 끊어 땅에 떨어뜨렸다고 하고, 암두화상이 크게 웃었다는 이야기를 전하는 그 순간 설봉화상은 방망이로 30방 때려서 밖으로 내쫓아 버린 것이다. 원오는 이런 안목 없는 스님은 “아침에 3000방망이, 저녁에 800방망이를 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암두와 설봉이 덕산 문하의 동기 동창생이기 때문에 똑같이 불법의 본분사를 똑같은 입장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다고 하면서, 설봉과 암두가 이 스님을 제접한 귀결처는 무엇인가를 문제로 제시하고 있다. 즉 암두의 웃음과 설봉이 30방망이를 때린 수단은 같은 것인가 잘 살펴보라고 당부하고 있다.
설두화상은 이 공안의 핵심을 게송으로 읊었다. “황소의 난이 지난 뒤에 칼을 주었네.” 스님은 하늘로부터 받은 황소의 보검을 얻었다고 자부하고 있다고 읊고 있다. 원래 사람은 본래 그러한 보검을 구족하고 있지만, 수행하여 정법의 안목을 갖추지 못하면 마음대로 쓸 수가 없다. 칼을 잘 못 쓰면 자신도 죽이고 남도 죽인다. “크게 웃는 웃음은 작가만이 알 수 있다.” 암두가 크게 웃은 것을 읊은 것이다. 암두화상은 스님을 가엽게 생각하며, 어떻게 자비의 손을 쓸까 하고 한 바탕 큰 소리로 웃었는데, 정법의 안목이 없는 바보 같은 그 스님은 자신을 인가한 것으로 착각하고 설봉의 처소로 향했다. 암두화상의 웃음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30방망이 때린 벌칙도 또한 가볍게 용서해 준 것.” 설봉은 암두의 자비로운 웃음을 30방망이 주장자로 때린 내린 벌칙도 설두는 가볍다고 읊었다. “이익을 본 것 같지만 결국 손해만 본 것이다.” 스님이 장안에서 주운 칼로 암두의 머리를 쳤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설봉의 처소에서 자신의 머리가 땅에 떨어지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다.
성본스님/동국대 불교문화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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