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도 미혹도 깨달음도 마음에서 온다. 부처님의 경계는 언제나 맑지만 사람이 만든 경계는 항상 번뇌로 더러워져 있다. 일체가 마음의 작용임을 부처님은 잘 알고 계신다. 그래서 이를 알고 있는 사람은 진실의 부처님과 만나게 된다. 무명과 탐욕이 있기에 미혹에 빠지게 되고 그 또한 마음의 작용에 의한다. 삶도 죽음도 마음에서 생긴다. 그것 역시 마음속에 있으므로 삶과 죽음에 얽매이는 마음이 멸하면 생사의 세계도 다 된다. 그러기에 마음을 떠나 생사가 없다는 것을 알면 깨달음을 얻는다. 내주인은 나의 마음이다. 더러운 마음으로 판단하고 행하면 그 괴로움이 또한 수레가 마소를 따름과 같다. 부처님이 설하신 <팔만대장경>은 한마디로 마음공부의 경전으로 집약된다. 그중에서도 <해심밀경(解深密經)>은 사람의 심층심리를 체계적으로 꿰뚫은 경전이면서 논집으로 설한 특이한 경전이다. 즉 내 마음, 나도 모르는 실로 오묘한 마음의 작용을 깊게 해명한 경전이다. 곧 유식사상(唯識思想)의 근본경전으로서 아뢰야식과 말나식의 연기를 처음으로 부처님께서 설한 경전이다. 인간의 심층세계인 무의식을 학리적으로 밝힌 불교대승의 이론적 집대성이다. 그렇기에 이 경전을 제하고는 불교사상을 생각할 수 없다. 특히 본경전의 ‘분별유가품 제6’은 마음 작용과 그 변혁을 오묘하고도 절묘한 논리로써 파헤치고 있다.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보자. 이는 자씨 보살이 부처님께 그림자마음(참마음을 훼방놓는 또 하나의 마음)도 내 마음인가를 물었을 때의 대답이다. 유식의 관법을 통한 유식의 무경(無境)을 설함이 아닌가. 그 논리적 해명에 접할때 내 마음이 작용하는 실상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래서 만법이 곧 마음(유식)이요, 마음밖에는 법이 없음(唯識所變 心外無法)을 설파하신다. 오직 한마음, 그자체가 뿌리가 되서 만법을 행할 뿐이다. 그러므로 몸은 마음의 부속물일 따름이다. 서양에서 사람의 심층심리를 꿰뚫은 정신분석 학자로는 프로이트와 칼 융을 빼놓을 수 없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로서 심층심리 작용인 무의식의 세계를 파헤쳐 보였고 칼 융은 그 무의식의 세계를 집단무의식과 개인무의식으로 나눠 파헤쳤다. 그는 사람이 갖고 있는 갖가지 마음의 현상, 이를 좀더 구체화하면 마음속의 그림자현상, 콤플렉스, 아니마, 아니무수 현상 등을 제시함으로써 마음의 실상이 과연 무엇이고 어떻게 작용하는 가를 입증하며 증언한다. 프로이트나 융보다 훨씬 이전인, 2천5백년전에 부처님께서 이미 <해심밀경>으로 마음 작용을 설명했다. 그렇다면 프로이트나 융은 부처님의 손바닥에서 자기 나름의 견해를 이론화하여 말놀이를 하고 있음이 아닌가. 장백일/국민대 문과대학장·문학평론가
그 마음이 작용하는 범위는 끝이 없다. 깨끗한 마음에서는 깨끗한 경계가 나타나고 더러운 마음에서는 더러운 경계가 생겨난다. 경계의 변화에도 끝이 없다. 그 경계도 마음이 만들어낸다. 그래서 세상사 일체는 마음 작용 아닌 것이 없다.
“부처님께서 자씨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마땅히 다름이 없다고 말해야 한다. 왜냐하면 저 그림자(影像)는 오직 마음 때문이다. 선남자여, 내가 설한 바 마음이 얽혀 맺어진 인연은 오직 마음에서 나타난다.”
나는 그들이 펴는 정신분석의 이론을 접할 때마다. 무릎을 치며 <해심밀경>에서 이미 설파해 놓으신 진리에 탄복한다. 현대정신분석이론의 핵심이 바로 이 경전속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찌 이 경전을 외면하고서 정신분석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강의시간에 더러 프로이트같은 서양학자들이 연구한 정신분석학의 원뿌리는 바로 이 <해심밀경>이 아니겠는가고 주장하기도 한다(그들이 불경을 접했다는 문헌은 못보았기에 확신은 못한다). ‘깊고 비밀하고 상속하는 진리를 해석하고 또 굳은 매듭같은 미혹에서 해탈케 한다’는 뜻을 가진 <해심밀경>은 그래서 역본경명이 보리유지 삼장의 <심밀해탈경>(5권11품)과 당나라 현장의 <해심밀경>(5권8품), 구나발타라의 <상속해탈지바라밀요의경>(1권) 등 여럿이다. 이중 현장의 번역본이 가장 알려져 있다. 중국의 영인·현범과 우리나라의 원측·원효·경흥스님 등의 주석서가 있었으나 원측스님의 <해심밀경소>(10권)가 유일하게 현존하여 널리 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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