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부처님을 보고
눈으로 보는 것이 없으니 분별이 없고
귀에는 들리는 소리 없어 시비가 끊기었네.
시비와 분별을 모두 놓아버리고
다만 네 마음의 부처님을 보고 스스로 귀의한다.
目無所見無分別 耳廳無音絶是非
목무소견무분별 이청무음절시비
是非分別都放下 但看心佛自歸依
시비분별도방하 단간심불자귀의
- 부설 거사
구 거사는 세 스님의 법문을 듣고 극진히 공양을 올렸다. 때 마침 봄비가 며칠 간 그치지 않고 내렸다. 비가 그치고 나서야 세 스님은 구 거사 집을 나설 수 있게 되었는데 마침 거사의 딸 묘화가 그 동안에 그만 부설 스님을 사모하게 되어버렸다. 실은 묘화는 나면서부터 벙어리였는데 스님의 법문을 듣고 말문을 열게 됐다.
그 딸은 자신의 말문을 트게 해준 부설 스님을 사모하여 자살을 기도하면서까지 그와 부부가 되기를 원했다. 부설이 승려 신분임을 내세워 거절하였으나 끝내는 그를 거둬들여 부부의 연을 맺고 그 곳에서 살게 되었다. 그 뒤 두 도반들은 실망한 채 구 거사의 집을 떠났다. 결혼을 한 부설 거사는 아들 등운(登雲)과 딸 월명(月明)을 두고 살았으나 성불을 향한 정진은 더욱 치열하였고 공부의 깊이도 날로 더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오대산으로 떠났던 두 스님이 돌아왔다. 부설은 두 스님이 공부한 경지가 궁금하여 등운과 월명에게 물을 담은 세 개의 물병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부설은 물병들을 대들보에 달아놓고 두 스님에게 하나씩 치게 하였다. 병과 물이 쏟아져 내렸다. 그러나 부설이 치자 병만 깨지고 물은 그대로 대들보에 매달려 있었다. 부설이 두 스님에게 말했다.
“참다운 성품은 본래 영명하여 항상 머물러 있는 바, 저 물이 대들보에 매달린 것과 같다.”라는 말을 마치고 나서 부설은 위에 소개한 열반송을 남기고 홀연히 입적에 들었다. 두 스님은 묘적암 남쪽 기슭에 부도탑을 세우고 부설 거사의 사리를 봉안하였다. 지금도 그의 딸 이름을 딴 월명암은 성지로서 찾는 사람들이 많다. 그 곳의 선원은 또한 그의 가족 네 사람이 모두 성인이 되었다 하여 사성선원(四聖禪院)이라 한다.
열반송에서 표현한 삶이 매우 소극적이기는 하나 인생을 깊이 살아 본 사람이라면 부설 거사의 이러한 자세를 충분히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인간의 삶의 역사는 예나 지금이나 사사로운 욕심을 앞세우고 진실과 외로움을 은폐하려는 데서 오는 시비와 분별, 모함, 투쟁, 살상이 난무하는 광장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스스로 인생을 중도에서 포기할 수도 없는 입장이라면 어떤 마음으로 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까. 그 누구도 못하는 일을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바로잡을 수도 없고 포기할 수도 없다.
길은 단 하나, 세상의 시비분별과 보고 듣는 일을 떠나서 자기 마음의 부처님 세상에서 행복과 평화의 길을 모색하는 일이다. 밖으로 향하던 눈을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여 자기 마음속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어느 누구도 나 아닌 바깥세상을 바꾸려고 아무리 노력을 기울인다 하더라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바뀔 때 세상도 달라 보인다. 부설 거사의 이 한마디 말이 인생사와 세상사를 다 설명하고 있으며, 그 살아가는 방법까지 제시하고 있다고 하겠다.
출처 : 무비 스님이 가려뽑은 명구 100선 ② [소를 타고 소를 찾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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