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보리행론 해설 115. 오직 나의 적만이 인욕수행을 가능하게 한다.
108 적을 통해 내가 인욕을 성취했다면
인내의 결과를
적에게 먼저 보답해야 하니
그가 인욕의 씨앗이기 때문이네.
보리심을 수행하는 사람에게 인욕수행은 필수요건입니다.
보리심을 수행하는 사람에게 ‘분노’ 라는 적은 가장 나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분노’ 라는 적을 바로 대치할 수 있는 것이 인욕수행입니다.
이런 인욕수행은 자신을 화나게 하는 자신의 적과 자신이 공동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므로 “인내의 결과를”, 좋은 결과를 적에게 먼저 올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인욕의 씨앗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의문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109 적이 나에게 인욕을 성취하게 하려는 의도가 없었기에
공양을 올릴 대상이 아니라 한다면
깨달음의 씨앗이 되는
정법에는 어찌하여 공양을 올리는가?
‘적은 나를 해치려는 마음이 있었지만 나의 인욕수행을 증장시키기 위해 나를 해친 것이 아니다.
적은 나로 하여금 인내를 성취하게 하려는 의도는 없으므로 공양을 올릴만한 대상이 아니다.’ 라고 한다면 “깨달음의 씨앗이 되는 정법에는 어찌하여 공양을 올리는가?”
만약 나에게 도움을 주려는 의도가 없었기 때문에 공경할 까닭이 없다고 한다면 정법과 괴로움의 소멸의 진리(멸제滅諦)나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의 진리(도제道諦), 역시 우리를 돕고자 하는 의도는 없습니다.
멸제나 공을 실제 체득한 지혜 그 자체가 우리를 돕고자 하는 의도는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관점에서 본다면 “깨달음의 씨앗이 되는 정법에는 어찌하여 공양을 올리는가.” 하고 반문을 하신 것입니다.
110 적은 나를 해칠 의도가 있으므로
공양을 올릴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면
의사처럼 도움을 주는 사람에게서
내가 인욕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정법이 나에게 도움을 주려는 의도도 없지만 해칠 의도도 없지 않는가?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도움이 되는 정법은 공양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적은 나를 해치려 하기 때문에 “공양을 올릴 곳이 아니라고 한다면 의사처럼 도움만 주는 사람에게서 내가 안욕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해치려는 마음이 있기에 우리가 상대를 적으로 여기지, 해치려는 마음이 없으면 적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인욕수행은 오로지 적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여래를 향해서 인욕수행을 할 수 없습니다. 보살을 통해 인욕수행을 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선지식이나 스승을 통해서 인욕수행을 할 수도 없습니다.
또한 자신의 부모. 형제를 통해 인욕수행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누가 인욕수행을 가능하게 하는가?
누가 인욕수행의 기회를 주는가? 오직 적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사처럼 도움만 주는 사람에게서 내가 인욕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하신 것입니다.
참 놀라운 법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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