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편의 명구

[스크랩] 무엇을 하랴

수선님 2018. 11. 25. 12:36

무엇을 하랴


강에 달은 밝게 비치고 노송에 바람이 불어온다.

밤은 길고 하늘은 밝은데 무엇을 하랴.


江月照  松風吹  永夜淸霄何所爲

강월조   송풍취    영야청소하소위


- 증도가

 

 

   증도가(證道歌)는 육조혜능의 제자 영가현각(永嘉玄覺, 665~713) 스님의 저술이다. 삼조 승찬 대사의 신심명(信心銘)과 함께 선시의 백미로 친다. 그래서 뜻있는 불자들의 입에 가장 많이 회자되는 글이다.


   저절로 그러한 상태[自然]는 선심(禪心)의 중요한 조건이다. 이 시는 사람도 자연도 시간도 공간도 모두가 철저히 저절로 그러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신심이 저절로 그러함이 잘 나타나 있다. 뼈 속까지 파고드는 맑고 밝고 고요하고 한가함이다. 무위(無爲)한 선의 향과 맛은 첫째 조건이 이와 같아야 한다.


   선은 하나의 맑은 거울이다. 온 우주와 삼라만상을 환하게 비춘다. 사람의 마음 상태와 그 삶을 또한 환하게 비춘다. 드러나지 않는 사물이 없고 드러나지 않는 일이 없다. 대낮의 밝음보다 한 밤의 밝음이 더욱 깊이가 있는 밝음이기 때문에 한 밤의 맑은 하늘로 표현한 것이다.


   무엇을 하랴. 할 일이 없다. 그래서 자고로 선사들은 일이 없는 사람, 즉 무사한(無事漢)을 높이 산다. “일이 없는 사람이 진정한 귀인이다.”라는 임제 스님의 말씀도 있다. 그렇다고 손과 발을 묶어 놓고 가만히 있다는 것이 아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부지런하지만 그의 마음은 언제나 한가하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심심하다. 너무 심심해서 경전으로 눈을 가리는 눈가리개로 삼는다. 경전으로 눈을 가리고 있으니 더 한가하고 심심할 뿐이다. 심심하므로 그 풍경과 물색은 더욱 아름답게 다가온다. 선경(禪境)의 체득과 수용을 잘 표현한 글이다.


출처 : 무비 스님이 가려뽑은 명구 100선 ② [소를 타고 소를 찾는구나]

출처 : 염화실
글쓴이 : 너럭바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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