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선삼매경 54. 12인연(因緣) - 12연기법 세부 설명
① 무명(無明)
此中十二分云何. 無明分不知前不知後不知前後, 不知內不知外不知內外, 不知佛不知法不知僧, 不知苦不知習不知盡不知道, 不知業不知果不知業果, 不知因不知緣不知因緣, 不知罪不知福不知罪福, 不知善不知不善不知善不善, 不知有罪法不知無罪法, 不知應近法不知應遠法, 不知有漏法不知無漏法, 不知世間法不知出世間法, 不知過去法不知未來法, 不知現在法, 不知黑法. 不知白法, 不知分別因緣法, 不知六觸法不知實證法. 如是種種不知ㆍ 不慧ㆍ 不見闇黑無明, 是名無明.
이 가운데서 십이인연(十二因緣)은 무엇인가?
무명분(無明分)은 앞도 모르고 뒤도 모르며 앞뒤도 모른다. 안도 모르고 바깥도 모르며 안팎도 모른다. 부처님도 모르고 법도 모르며 승가도 모른다. 괴로움도 모르고, 습(習)도 모르며 진(盡)도 모르고 도(道)도 모른다. 업도 모르고 과보도 모르며 업과 과보도 모른다. 인도 모르고 연도 모르며 인연도 모른다. 죄도 모르고 복도 모르며 죄와 복도 모른다. 선도 모르고 악도 모르며 선과 악도 모른다.
유죄법(有罪法)도 모르고 무죄법(無罪法)도 모르며, 마땅히 가까이 해야 할 법도 모르고 마땅히 멀리 해야 할 법도 모른다. 유루법도 모르고 무루법도 모른다. 세간법도 모르고 출세간법도 모른다. 과거의 법도 모르고 미래의 법도 모르며, 현재의 법도 모른다. 흑법(黑法)142)도 모르고, 백법(白法)도 모른다. 인연을 분별하는 법도 모르고 육촉법(六觸法)143)도 모르고 참답게 깨닫는 법도 모른다.
이와 같이 가지가지로 알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하여, 어둡고 캄캄하여 밝지 않아 보지 못하니, 이것을 무명(無明)이라고 한다.
② 의도적 행위〔行〕
無明緣行, 云何名行. 行有三種, 身行ㆍ 口行ㆍ 意行. 云何身行. 入息出息是身行法. 所以者何, 是法屬身故名身行. 云何口行, 有覺有觀是, 作覺觀已然後口語, 若無覺觀則無言說, 是謂口行. 云何意行〈痛名世界人所著三種痛 痛應爲受受則隨界 受苦樂 上界所無故 宜言受想出家所患也〉. 痛144)想是意法, 繫屬意故, 是名意行. 復次欲界繫行, 色界繫行, 無色界繫行. 復次善行ㆍ 不善行ㆍ 不動行. 云何善行. 欲界一切善行亦色界三地. 云何不善行, 諸不善法. 云何不動行, 第四禪有漏善行及無色定善有漏行. 是名行.
무명(無明)을 반연하여 행(行)이 있다. 무엇을 행이라 이름 하는가? 행(行)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신행(身行)ㆍ 구행(口行)ㆍ 의행(意行)이다. 무엇이 신행인가? 들숨과 날숨이 신행법(身行法)이다. 왜냐하면 이 법은 몸에 속하기 때문에 신행이라고 이름한다. 무엇이 구행인가? 유각(有覺)과 유관(有觀)145)이다. 이것은 각(覺)과 관(觀)146)을 지은 이후에 입으로 말한다. 만일 각과 관이 없으면 말할 수 없다. 이것을 구행이라 말한다. 무엇이 의행인가? 〔통(痛)은 세상사람이 집착하는 세 종류의 통을 이름한다. 통은 수(受)를 이르니, 수는 즉 경계에 따라 고락을 받는다. 상계(上界)에는 없으므로 이것은 수상(受想)이 출가의 고통을 말한 것이다.〕 통(痛)과 상(想)147)이 의법(意法)이다. 마음에 속하기 때문에 이것을 의행이라 이름한다. 또한 욕계에 얽매이는 행위〔繫行〕ㆍ 색계에 얽매이는 행위〔繫行〕ㆍ 무색계에 얽매이는 행위〔繫行〕이다.
또한 선행(善行)ㆍ 불선행(不善行)ㆍ 부동행(不動行)이 있다. 무엇이 선행인가? 욕계의 일체 선행과 또한 색계의 삼지(三地)이다. 무엇이 불선행인가? 여러 가지 착하지 않는 법이다. 무엇이 부동행인가? 제사선(第四禪)의 유루의 선행과 무색정(無色定)의 선한 유루행이다. 이것을 행이라고 한다.
③ 알음알이〔識〕
行因緣識. 云何名識, 六種識界眼識乃至意識, 是名六識.
행(行)을 인연하여 식(識)이 있다. 무엇을 식이라고 하는가? 여섯 가지 식(識)의 세계가 있으며, 안식(眼識)내지 의식(意識) 이것을 여섯 가지 식이라고 한다.
④ 정신-물질〔名色〕
識因緣名色. 云何爲名, 無色四分痛ㆍ 想ㆍ 行ㆍ 識. 是謂名. 云何爲色, 一切色, 四大及造色是謂色. 云何四大, 地ㆍ 水ㆍ 火ㆍ 風. 云何地, 堅重相者地, 濡濕相者水, 熱常者火, 輕動相者風, 餘色可見有對ㆍ 無對是名造色. 名色和合是謂名色.
식(識)을 인연하여 명색(名色)이 있다. 무엇을 명(名)이라고 하는가? 비물질〔無色〕의 사분 즉 느낌〔痛〕ㆍ 인식〔想〕ㆍ 심리현상들〔行〕ㆍ 알음알이〔識〕이다. 이것을 명(名)이라고 말한다. 무엇을 물질〔色〕이라고 하는가? 일체의 색은 근본물질〔四大〕148)과 파생된 물질〔造色〕이다. 이것을 색이라고 말한다. 무엇이 사대인가? 땅ㆍ 물ㆍ 불ㆍ 바람이다. 무엇이 땅인가? 단단하고 무거운 모양은 땅이요, 부드럽게 적시는 모양은 물이다. 뜨거운 모양은 불이요, 가볍게 움직이는 모양은 바람이다. 나머지 물질이 볼 수 있고 마주하거나 마주하지 않는 것 이것을 파생된 물질〔造色〕이라고 한다. 정신작용과 물질이 화합하면 이것을 명색이라고 한다.
⑤ 여섯 감각장소〔六入〕
名色因緣六入. 云何六入, 內六入眼內入乃至意內入, 是名六入.
명색(名色)을 인연하여 육입(六入)이 있다. 무엇이 육입인가? 안의 육입(六入), 즉 눈의 내입(內入) 또는 의식의 내입이며, 이것을 육입이라고 한다.
⑥ 감각접촉〔觸〕
六入因緣觸. 云何觸, 六種觸界. 眼觸乃至意觸. 云何眼觸. 眼緣色生眼識, 三法和合 是名眼觸, 乃至意觸亦如是.
육입(六入)을 인연하여 촉(觸)이 있다. 무엇이 촉인가? 여섯 가지 촉의 세계가 있다. 눈의 촉감 또는 의식의 촉감이다. 무엇이 눈의 촉감인가? 눈은 물질에 연유하여 안식(眼識)을 발생한다. 세 가지 존재가 화합하면 이것을 눈의 촉감이라고 한다. 의식의 촉감도 마찬가지이다.
⑦ 느낌〔受〕
觸因緣受. 云何受, 三種受樂ㆍ 受苦ㆍ 受不苦不樂受. 云何樂受, 愛使. 云何苦受, 愛使. 云何不苦不樂受, 癡使. 復次樂受生樂住樂滅苦, 苦受生苦住苦滅樂, 不苦不樂受不知苦不知樂.
촉(觸)을 인연하여 수(受)가 있다. 무엇이 수인가? 세 가지 수(受)가 있다. 낙수(樂受)ㆍ 고수(苦受)ㆍ 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이다. 무엇이 낙수인가? 애착하는 번뇌〔愛使〕149)이다. 무엇이 고수인가? 성냄의 번뇌〔愛使〕이다. 무엇이 불고불낙수인가? 어리석음의 번뇌〔癡〕이다. 또한 낙수는 즐거움을 일으켜서 즐거움에 머물며 괴로움을 소멸시키는 것이다. 고수는 괴로움을 일으켜 괴로움에 머물며 즐거움을 소멸시키는 것이다. 불고불락수는 괴로움도 모르고 즐거움도 모르는 것이다.
⑧ 갈애〔愛〕
受因緣愛. 云何愛, 眼觸色生愛, 乃至意觸法生愛.
수(受)를 인연하여 애(愛)가 있다. 무엇이 애인가? 눈은 물질을 감촉해서 갈애를 낳는다. 또는 의식은 존재를 감촉해서 갈애를 낳는다.
⑨ 취착〔取〕
愛因緣取. 云何取, 欲取ㆍ 見取ㆍ 戒取ㆍ我語取.
애(愛)를 인연하여 취(取)가 있다. 무엇이 취(取)인가? 욕취(欲取)ㆍ 견취(見取)ㆍ 계취(戒取)ㆍ 아어취(我語取)이다.
⑩ 존재〔有〕
取因緣有. 云何有, 三種有. 欲有ㆍ 色有ㆍ 無色有. 下從阿鼻大泥梨150)上至他化自在天, 是名欲有, 及其能生業. 云何色有. 從下梵世上至阿迦尼吒天, 是名色有. 云何無色有, 從虛空乃至非有想非無想處, 是名無色有.
취를 인연하여 유(有)가 있다. 무엇이 유(有)인가? 세 가지 유〔三有〕151)가 있다. 욕유(欲有)ㆍ 색유(色有)ㆍ 무색유(無色有)이다. 아래로는 큰 아비지옥으로부터 위로는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152)에 이르기까지 이것을 욕유라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업을 발생시킬 수 있다. 무엇이 색유인가? 아래로는 범(梵)의 세계153)로부터 위로는 가니타천〔有頂天〕에 이르기까지 이것을 색유라고 한다. 무엇이 무색유인가? 허공154)으로부터 비유상비무상처에 이르기까지 이것을 무색유라고 한다.
⑪ 태어남〔生〕
有因緣生. 云何生, 種種衆生處處生出, 有受陰得持得入得命, 是名生.
유를 인연하여 태어남이 있다. 무엇이 태어남인가? 가지가지 중생들이 여기저기서 태어나 오온〔陰〕을 받아서155) 지(持)를 얻고 입(入)을 얻고 생명을 얻는다. 이것을 태어남이라 한다.
⑫ 늙음-죽음〔老死〕
生因緣老死. 云何老, 齒落髮白多皺, 根熟根破氣噎, 身僂拄 杖行步, 陰身朽故, 是名老. 云何死, 一切衆生處處退落墮滅, 斷死失壽命盡, 是名死. 先老後死故名老死.
是中十二因緣. 一切世間非無因緣邊, 非天邊, 非人邊, 非種種等邪緣邊出. 菩薩觀十二因緣, 繫心不動不令外念. 外念諸緣攝之令還.
생을 인연하여 늙고 죽음이 있다. 무엇이 늙는 것인가? 이가 빠지고 머리카락이 희어지며 주름이 많다. 기능이 물러지고 파괴되어 기운이 막힌다. 등이 굽어 지팡이를 짚고서 걸음을 옮긴다. 오음과 신체가 낡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늙는다고 한다. 무엇이 죽음인가? 일체의 중생은 곳곳에서 약해져서 소멸한다. 끊어지고 죽고 사라져 수명이 다하는 것을 죽음이라고 말한다. 먼저 늙고 뒤에 죽기 때문에 늙고 죽음〔老死〕이라고 한다.
이것은 십이인연(十二因緣)에 일치한다. 일체 세간은 인연의 변두리 아닌 것이 없다. 하늘의 변두리가 아니며, 사람의 변두리도 아니고, 여러 가지 삿된 인연의 변두리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보살은 십이인연을 관하되, 마음을 묶어서 동요하지 않으며 생각을 벗어나지 않게 한다. 바깥으로 여러 반연을 생각하면 그것을 추슬러 되돌아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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