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해인삼매(海印三昧) 가운데
능인(能人)이란 비로자나(盧疵那佛) 부처님이며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한정되어 있는 마음을 놓을 때
온 우주의 마음이 스스로 나타납니다.
모든 중생과 사물들이
그 마음 가운데서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을 나툽니다.
이처럼 법계연기(法界緣起)로 이루어진 중중무진한 생명의 장을
해인삼매(海印三昧), 곧 깨달은 마음이라고 합니다.
삶을 여실히 아는 청정한 마음
여기서 말하는 능인(能人)이란 부처님을 말합니다. 화엄세계에서는 연기실상의 모든 법이 부처님을 이루는 근본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인연관계에서 모든 중생과 사물들이 부처로서 제 모습을 나투고 있는 것이지요.
그것을 능(能)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또는 하나의 사물이 그 자체로서 우주법계를 창조하는 주인으로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른 능력자에게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연기세계를 성립시키는 근본이 바로 낱낱의 모든 것이며 그 자체가 능력자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 한 사물이 없으면 다른 일체의 사람과 사물이 존재할 수 없는 것[此無故彼無] 등이 연기실상의 우리 삶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 스스로를 살펴보면 마음이 만법의 주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법이 일어나지 않으면 모든 법이 일어나지 않고 마음법이 일어나면 모든 법이 일어나고, 마음법이 있으면 모든 법이있고 바음법이 없으면 모든 법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중심이 마음을 떠나 달리 있을 수 없습니다. 곧 마음이 능인이며 부처님이며 화엄법계를 이루는 비로자나 부처님의 실상입니다. 그래서 옛스님들께서는 마음 밖에서 부처를 구하는 것을 외도(外道)라 하셨습니다. 외도란 부처님 가르침 이외의 모든 가르침을 뜻합니다만 이 가르침조차 마음 밖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마음 밖에서 부처를 구한다면 삶의 진실한 모습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삶의 왜곡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인류사가 온갖 불만족스러운 일들로 점철되어 있는 것도 그 원인이 마음 밖에서 실다운 법을 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능인이란 우리 스스로도 마음 밖에서 살고 있는 경우가 대두분입니다. 마음의 실상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그저 일어나는 마음대로 활동하면서 불만족스러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이와 같이 끊임 없이 일어나는 욕망의 지속을 잠시 쉬고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수행이 됩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이 습관적으로 일어나는 욕망을 지속하고자 하는 마음작용을 행이라하고 이 행을 지멸(止滅)하는 것이 수행이기 때문입니다.
마음 들여다보기란 순간순간 일어나고 있는 욕망의 지멸을 뜻합니다. 여기에서 항 생각이 일어나니 삼계가 열리고 한 생각이 그치니 법계가 열린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가만히 자신의 지나온 길을 생각해 보십시오. 마음 가운데 무엇인가를 바라는 마음이 일어난 순간부터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마음이 흔들림 없이 편안했는지, 또 그것을 이루기 위해 마음이 얼마나 얽매여 있었는지, 그래서 <금강경(金剛經)>에서는 어느 곳에도 얽매임이 없이 마음을 쓰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욕망을 붙잡으려고 하는 것이 얽매이는 마음입니다.
놓으십시오. 놓는 순간 그때까지 스스로를 옭아매는 모든 것들이 저절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옭아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업이라고 합니다.
어느 누구든 설사 신통자재하신 부처님까지 속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자신만은 속일 수 없으니, 이 속일 수 없이 훤히 알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스스로의 업이며 이것에 의해 끊임없이 속고 있는 것이 또한 우리의 삶이지요.
놓으십시오. 그리고 그 업의 마음이 어떻게 일어나고 사라지는 지를 보십시오. 마음이 주인입니다만 마음 또한 제멋대로 될 수 없습니다. 마음도 제 모습을 결정하여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그와 같이 있다가 사라져 갈 뿐, 습관적으로 이어가는 것이 진실한 마음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마음 지켜보기는 스스로에 한정되어 있는 마음 지켜보기가 아니라 한정된 마음의 결정을 버리는 것을 뜻하며 이때 온 우주의 마음이 스스로 나타납니다. 어느 하나 빠짐 없이 모든 중생과 사물들이 우주의 마음 가운데에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을 나투게 됩니다.
마음이 우주를 성립시키면서 동시에 모든 법이 마음을 성립시키고 있는 중중무진법ㅂ계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때의 마음은 선정에 의해서 특별히 고양된 상태의 마음이 아닙니다. 자아의식으로 한정된 마음을 놓을 때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보게 되고 그때 모든 것이 무상, 무아의 연기관계로 있음을 알게 됩니다.
어느 것도 그 자체로서 자신의 생명을 이룰 수 없으며 어느 것도 관계의 그물망을 떠나 외적 존재에게서 생명을 받는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우리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생명을 주고 받으면서 하나의 법계를 이루고 있고 나아가 하나의 모습으로 법계를 가득 채우고도 남는 생명의 장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법게연기도 이루어진 중중무진한 생명의 장을 해인삼매(海印三昧)라고 합니다. 깨달은 마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인삼매란 선정에 의해서 다양하게 체험되고 있는 여러 가지 삼매 가운데 하나의 삼매가 아니라 삼매 중의 삼매입니다. 왜냐하면 자아의식이 완전히 탈각된, 곧 업의 주체가 허상임을 알고 분명히 알고 모든 업이 완전소멸된 무아의 지혜와 자비가 충만된, 나눔 이전의 맑고 청정한 비로자나 무처님의 세계를 해인삼매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 삼매는 수행자가 화엄의 십바라밀(十波羅密)이 완성될 때 드러나는 세게이니 상즉과 상입의 걸림 없는 세계입니다.
삶을 여실히 아는 청정한 마음으로 온갖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앞서 생사를 말할 때 생사가 고를 낳는 것은 생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생사를 허상의 자아와 결부시켜 집착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생사를 여실히 알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생사를 여실히 알게 될 때 생사에서 벗어나며 해인삼매에서 사는 것입니다.
때문에 걸림 없는 마음으로 사는 부처님이신 능인께서는 해인삼매, 곧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여실히 나투고 있는 생명의 장 전체를 스스로의 모습으로 하고 있는 때를 '해인삼매 가운데'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보면 능인이 해인삼매이며 해인삼매가 능인입니다. 능인과 해인삼매는 수행자가 행의 지멸을 완성하여 하나된 세계로 있는 것을 나타내먀 이것을 ';중(中)'이라는 말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正和
-마음 하나에 펼쳐진 우주
출처 : 淨土를 그리며...
글쓴이 : 느린 걸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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