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마음에 싫어함과 만족함이 없다는 말은 옳지 못하다. 왜냐하면 만일 구하는 일이 끝나거나 원하는 일이 이루어졌다면 응당 만족히 여겨야 하기 때문이다. 이치로써 구하거나 이룰 수 없다면 마땅히 그만두어야 한다.
그런데 어찌 항상 싫어함과 만족함이 없다 하는가? 마치 어떤 사람이 우물을 파서 샘을 구하는데 공들인 것은 매우 많건만 물의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거든 응당 그쳐야 하는 것과 같으며, 또한 길을 가는데 목적지에 이미 이르러서는 다시 더 가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런데 어찌하여 항상 싫어함과 만족함이 없다 하는가? |
[답] 보살의 정진은 세상의 비유로써 견줄 수 없다. 마치 우물을 파는데 힘이 적으면 물을 얻지 못할지언정 물이 없는 것은 아닌 것과 같다.
만일 여기에 물이 없으면 다른 곳에는 반드시 물이 있을 것이다.
마치 가야 할 곳이 있는 것과 같이, 반드시 부처의 지위에 이르기를 구해야 하나니, 부처를 구하는 마음에 만족함이 없고, 사람을 가르치기에 게으름이 없기 때문에 싫어함이 없다고 한다. |
또한 보살의 정진은 서원이 크고 넓어서 모든 중생을 다 제도하고자 하나, 중생이 다함이 없으므로 정진도 다함이 없는 것이다.
그대가 말하기를 “일이 끝나면 응당 그쳐야 된다”고 하나 이는 옳지 못하다. 비록 부처의 지위에 이르렀으나 중생이 다하지 않으므로 쉴 수가 없다.
비유하건대 불의 씨가 없어지지 않으면 끝내 식지 않듯이 보살의 정진도 그와 같아서 멸도에 들기 전에는 끝내 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18불공법(不共法)70)에서도 ‘욕망과 정진, 두 가지는 항상 닦는다’ 했다. |
[632 / 2071] 쪽 |
또한 보살은 법에는 머무르지 않고 반야바라밀에 머물러서 정진을 그만 두지 않나니, 이것은 보살의 정진이요 부처님의 정진은 아니다. |
또한 보살이 아직 보살의 도를 얻기 전에는 생사의 몸인데, 좋은 일로써 중생에게 보시하였으되 중생이 도리어 착하지 못한 일을 가하기도 하고, 혹 어떤 중생은 보살이 칭찬하여도 도리어 욕을 하기도 하며, 보살이 공경하여도 도리어 업신여기기도 한다.
보살이 어여삐 생각하여도 도리어 허물을 찾아내고 중상(中傷)하려 하니, 이런 중생들은 아무런 세력도 없이 보살을 괴롭히려 할 뿐이다. |
보살은 이런 중생들에 대하여 서원을 일으키되 “내가 불도를 얻으려는 것은 이 삿되기 그지없는 악한 무리를 제도하기 위함이다”라며 이 악한 중생들에 대해 그 마음을 게을리 하지 않으며 크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일으킨다.
마치 인자한 어머니가 아들이 병들면 걱정과 근심을 버리지 않듯이 하나니, 이러한 모습이 보살의 정진이다. |
또한 보시바라밀을 행할 때에 시방에서 거지들이 와서 구걸을 하는데, 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모두 구하거나 또는 아끼고 소중히 여겨 버릴 수 없는 물건까지를 구하면서 말하기를 “나에게 두 눈을 주시오” 혹은 “나에게 머리․뇌․골수․사랑하는 처자와 귀중한 보물을 주시오” 하며 이처럼 버리기 어려운 것을 구걸하는 자가 억지로 찾더라도 그 마음이 조금도 요동하지 않고 인색함과 성내는 마음도 일으키지 않으며, 의혹하는 마음도 내지 않고 전일한 마음으로 불도를 위하는 까닭에 보시를 한다.
마치 수미산은 사방의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 같다. 이러한 갖가지 모습을 정진바라밀이라 한다. |
또한 보살이 부지런히 다섯 바라밀을 행하면 그것을 정진바라밀이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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