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좁은 소견 - 1
大道體寬 無易無難
대조체관 무이무난
대도는 본체가 넓어서
쉬움도 없고 어려움도 없거늘
무상대도는 그 본바탕이 넓기로는 진시방무진허공(盡十方無盡虛空)을 여러 억천만개를 합쳐 놓아도 그 속을 다 채우지 못합니다. 이와 같은 무변허공(無邊虛空)이라 해도 실제로는 이 자성에다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대도의 본체는 바탕이 넓다'고 한 것으로서 무궁무진하고 무한무변한 것을 의미한 것입니다. '대도의 본체는 넓어서 어려움도 없고 쉬움도 없다'한 것은 본래 스스로 원만히 구족되어 있으므로 조금도 어렵다거나 쉽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본래 스스로 원만히 구족되어 있기 때문에 대법이든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가 공부해서 성취할 필요가 없지 않는가 라고 할는지 모르겠으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대도를 성취하려면 참으로 무한한 노력이 필요하므로 쉬운 것도 역시 아니라는 알입니다.
곧 쉽다, 어렵다 하는 것은 모두 중생이 변견으로 하는 말일뿐입니다. 이는 본래 스스로 원만히 갖추어져 있는 대도를 모르고 하는 말이므로 이러한 쓸데없는 지견(知見)은 모두 버려라 하는 것입니다.
小見狐疑 轉急轉遲
소견호의 전급전지
좁은 견해로 여우같은 의심을 내어
서둘수록 더욱 더디어 지도다.
조그만한 견해로 여우처럼 자꾸 의심하면 급하게 서둘면 반대로 더욱 더디어진다고 하였습니다. 대도는 본래 스스로 원만히 갖추어져 있는데, 이를 자꾸 가깝게 하려 하면 더욱 멀어지는 것이 사실이므로, 누구든지 대도를 성취하려면 쉽다는 생각도 내지 말고 어렵다는 생각도 내지 말며, 급한 생각도 더디다는 생각도 내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쉽다 어렵다 급하다 더디다 하는 등이 모두가 변견으로서 취사심(取捨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취사심을 버려야만 대도를 성취한다는 의미입니다.
執之失度 必入邪路
집지실도 필입사로
집착하면 법도를 잃음이라
반드시 삿된 길로 들어가고
대도나 중도나 또는 다른 뭐라고 하든지, 이를 집착하면 병이 됩니다. 누구든지 중도를 성취하고 부처를 이루려면 집착하는 병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집착이 없는 사람은 대도를 성취한 사람이면, 집착이 있는 사람은 대도를 성취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조금이라도 집착하는 병이 있으면 법도를 잃고 근본 대도와는 어긋나서 반드시 삿된 길, 즉 변견에 떨어지게 됩니다.
放之自然 體無去住
방지자연 체무거주
놓아 버리면 자연히 본래로 되어
본체는 가거나 머무름이 없도다.
홀연히 집착을 놓아 버리면 모두가 자연히 현전하며, 본체는 본래 가는 것도 머무는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머무름이 있으면 가는 것이 있고, 가는 것이 있으면 머무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도는 본래 원만구족하여 머무름과 가는 것이 떨어졌기 때문에 집착하는 생각만 완전히 놓아버리면 자연히 대도를 성취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변견인 취사심을 버려야만 대도를 성취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任性合道 逍遙絶惱
임성합도 소요절뇌
자성에 맡기면 도에 합하여
소요하여 번뇌가 끊기고
모든 집착심을 놓아 버리면 자기의 자성을 따라서 그대로 도에 합합니다. 이는 마치 구슬이 쟁반에서 구르듯이 힘 안들이고 마음대로 활동하여 아무런 장애도 없습니다. 소요(逍遙)란 한가롭고 자재한 기상을 말하는데, 일체 번뇌망상이 다 떨어졌다는 뜻입니다.
繫念乖眞 昏沈不好
계념괴진 혼침불호
생각에 얽매이면 참됨에 어긋나서
혼침(昏沈)함이 좋지 않느니라.
우리가 모든 집착심을 놓아 버리면 대도가 현전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번뇌망상은 그만두고, 대도 중도 부처라는 등의 생각에 조금이라도 생각이 얽매이면 바로 진리와는 어긋나므로, 중도도 깨져 버리고 부처도 죽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부처라는 생각과 중도라는 생각, 참되다는 생각 등 어떤 생각이든지 이런 생각이 추호라도 마음에 남는다면 근본은 모두 깨지고 맙니다.
이처럼 생각에 얽매이지 말라 했다 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멍텅구리처럼 앉아만 있으면 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생각에 얽매여도 병이고, 혼침해도 병이므로, 이 모두를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不好勞神 何用疎親
불호노신 하용소친
좋지 않으면 신기를 괴롭히거늘
어찌 성기고 친함을 쓸 건가.
쓸데없이 정신을 쓰지 말아라, 정신을 쓰면 점점 더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어찌 성김과 친함을 쓸까보냐'하는 것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성김이란 멀리한다는 뜻이니 세간법과 악을 버림이고, 친함이란 가까이한다는 뜻으로서 세간법과 악을 취한다는 것입니다.
악을 버리고 선을 취하려 하지도 말며, 세간법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취하려고 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이리하여 양변 변견을 버리지도 취하지도 않을 때, 우리가 무상대도를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欲趣一乘 勿惡六塵
욕취일승 물오육진
일승으로 나아가고자 하거든
육진(六塵)을 미워하지 말라.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일승(一乘)이란 무상대도를 말합니다. 무상대도를 성취하려거든 객관의 대상인 육진을 버리지 말며 미워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육진을 이대로가 전체로 진여대용이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볼 때는 육진이지만, 아는 사람에게는 육진이 아니라 진여대용(眞如大用)의 육용(六用)이라는 것입니다.
중생이 집착심을 가지면 육진이 되고 눈 밝은 사람이 바로 쓰면 육용(六用)으로서 진여의 대용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육진을 버리고서 어찌 무상대도를 구할 수 있겠느냐고 하는 말입니다.
六塵不惡 還同正覺
육진불오 환동정각
육진을 미워하지 않으면
도리어 정각과 동일함이라
진여대용인 육진을 미워하지 않으면 바로 정각(正覺)이라는 말입니다. 육진을 버리고 정각을 성취하려는 사람은 마치 동쪽으로 가려고 하면서 서쪽으로 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육진을 바로 보라는 것입니다.
智者無爲 愚人自縛
지자무위 우인자박
지혜로운 이는 함이 없거늘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 얽매이도다.
지혜가 있는 사람은 아무 것도 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대도가 현전하여 버리려야 버릴 것이 없고 취하려야 취할 것이 없는데, 무슨 할 일이 있겠습니까? 잘 모르는 사람은 공연히 취하려고 애쓰며 버리려고 고생을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근본 대법을 모르기 때문에 스스로 취사심에 묶여서 엎어지고 자빠지며 지옥으로 갔다 극락으로 갔다 하며 온갖 전도(顚倒)를 거듭합니다.
그러면 '본래 스스로 함이 없다(本自無爲)'고 하여 손도 꼼짝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될 것 아니냐고 할는지 모르지만, 이것도 무위법에 떨어진 것이 됩니다. '함이 없다(無爲)'고 했지만 실제는 함이 없는 것을 찾아 볼 수도 없고 중도를 깨쳐도 중도도 찾아볼 수 없는 구경에서 하는 말이지, '함이 없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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