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견유몰유(遺有沒有) 종공배공(從空背空) : 있음을 버리려면 있음에 빠지고 공함을 따르려면 공함을 등지느니라.
여기에서도 유와 공을 상대로 말하고 있는데 현상적으로 보이는 일체 문제는 모두 있음과 없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견유몰유 : 있음을 보내려고 하면 오히려 있음에 빠진다.
있음을 버리려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탐진치 삼독을 떼어내 보내다, 혹은 버리다. 로 생각된다.
종공배공 : 공을 쫓는다고 할 때, 내 마음에는 공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다. 이 마음이 무슨 마음일까?
제법무아의 마음, 나는 없다. 를 추구하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없다는 색공을 의미하는 것인데 나라는 존재는 지수화풍과 수상행식이 연을 맺어 이루어진 것이니 그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 하여 모든 법은 본래 없는 것이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수많은 번뇌가 일어나는 것이 사실이므로 이 번뇌를 끊음으로써 얻어지는 것인데, 생각으로서 제법무아를 추구해가면 내가 없는데 내가 원할 것이 무엇이며, 진리를 탐구할 내가 어디 있겠는가? 등 다양한 생각의 고리가 이어지게 되는데 공을 추구하는 것이 이러한 생각으로 이어지면 오히려 공의 참뜻을 등지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한 경우, 유의 마음이 공의 마음을 쫓아가는 것이 되는데 공의 마음을 쫓아가다 보면 그 공의 상대되는 만큼의 유가 같이 따라오게 된다. 그것은 공하고자 하는 마음도 사실은 유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공을 쫓아가면 결국 공이 되어야 하는데 공이 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공하고자 하는 마음은 연에 따라 일어난 마음이니 생멸이 없는 공의 마음이 아니라 생멸이 있는 유의 마음이다. 그리고 공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공하고자 하는 유의 마음이 더욱더 강해지는 것이니 불생불멸하는 공의 입장에서는 배신당했다, 혹은 공을 오히려 등지게 되었다는 말이 될 수 있다.
지나치게 인위적으로 공을 추구하려 하면 결국 공을 구하고자 하는 그 마음이 공에 들어가는 길을 가로막게 되어 끝내 공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이 된다.
공한 것이 좋다고 있는 것을 다 버리려고 하다 보면 오히려 그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 더 있는 것을 쫓게 되니 공을 배신하는 격이 되기도 한다.
견유몰유
종공배공
유를 보내면 유에 빠지고
공을 따라가면 공을 등진다.
신심명에서 매우 유명한 구절입니다.
우리는 보통 ‘망상이 있다, 분별심이 있다, 죄업이 있다고’ 생각하여
그 죄업을 없애려고 합니다. 이것이 견유입니다.
그런데 죄업을 없애려 하는 것 자체로
공연히 죄업을 한 번 더 떠올리는 겁니다.
그럴수록 오히려 죄업에 빠지게 되지요.
즉, 몰유가 됩니다.
‘이제 저 사람 생각을 그만해야지’ 저 사람을 그만 미워해야’지라는
생각이 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을 더 일으키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만 사랑해야지’라는 생각이 사랑한다는 의미입니다.
공空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이 좋다고 아무것도 없는 것을 좇는다면
오히려 공하고 등지게 됩니다.
유도공도 그냥 놔둬야 됩니다.
제가 읽은 책 중에
『의사에게 살해당하지 않는 47가지의 방법』이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매우 유명한 의사가 썼습니다.
그의 글 가운데 사람은 암이라는 병으로 죽는 것이 아니고,
병원에서 암을 치료받다가 치료약 때문에 죽는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결국 병원의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고 죽이게 되는 것입니다.
너무나 기가 막히잖아요.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의사는 “방치하라. 암과 같은 중병일수록 방치하라.”고 말합니다.
간택 이 뭡니까?
오래 살려 하고, 병을 고치려 하는 일체가 간택입니다.
최선은 그냥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나는 벼룩이다!!”
‘고통을 없애야지’ 하면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 ‘행복해야지’ 하면 반드시 불행이 찾아온다. ‘부처가 되야지’ 하면 절대 부처가 될 수 없다. 방하착하여 놓고 놓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견유몰유 종공배공, 있음을 버리려 하면 있음에 빠지고, 공을 따르려 하면 공을 등지게 된다. 불교는 생각, 또는 문자文字나 언어로 풀려고 하면 절대 알지 못할 뿐 아니라, 목적하는 성불도 이루기가 힘들다. 이 말은 곧 고통이나 괴로움, 불편함이나 불안함을 해결하려면, 결코 생각이나 감정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언어도단 심행처멸, 말로서도 표현하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알지 못한다는 말이다. 또 불립문자, 문자로도 알 수 없으며, 사교입선, 가르침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으니, 분별이 끊어진 선으로 들어가야 된다는 말이다.
만약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한다면, 이미 욕심이라는 것이 생각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욕심은 없어질 수가 없다. 또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한다면, 이미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 라고 하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생각이 없어질 리가 만무하다. “이것을 꼭 이루어야지” 하고 생각한다면,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이미 자리 잡고 있어서,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도 있겠으나, 그에 따른 인과의 과보로서 이루지 못하는 것 또한 생겨나게 되므로, 이루지 못할 일이 현실로 나타나고야 만다는 것이다.
따라서 생각 자체가 분별심이요, 말로 표현되거나, 문자로 나타나는 것, 그리고 특히 감정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분별심을 뜻하는 것으로서, 있음에 빠지는 것이 되어 인과의 과보를 받게 된다.
그래서 고통을 없애려면 고통이 계속 남아있게 되고, 괴로운 마음을 없애려면 괴로운 마음이 절대 없어지지 않게 되며, 어려움을 피하려 하면 어려움은 절대 피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고통과 괴로움, 어려움이라는 생각을 이미 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 안에 들어있는 것들은 일체유심조하여 반드시 현실로 나타나게 되고, 인과를 이루게 되므로, 고락의 분별을 계속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공空함을 따르게 되면 공함을 등지는 것이라고 했는데, 공이라는 것 역시 유有와 마찬가지로, 공이라고 생각하면 이미 공이 아니게 된다는 말이다.
이 역시 생각이나 말이나 문자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이니, 만약 부처를 이루려고 생각한다면 벌써 유가 발생되었기 때문에 부처가 될 수도 없을 뿐더러, 이미 중생이라는 상대가 생겨나게 되고, 이러한 분별심으로는 부처도, 공도, 깨달음도 이룰 수가 없는 것이다.
진정한 공空이 되고, 부처가 되고, 견성과 성불을 이루기 위해서는 생각과 말과 감정을 모두 놓아야 하느니, 극락이라고 생각하면 이미 지옥이 생겨나고, 없다 또는 무라고 생각하는 즉시, 있다 또는 유라는 것이 생겨나며, ‘좋다’라고 생각하면 이미 ‘싫다’라는 것이 먼저 자리잡고 있게 됨으로, 진정한 중도와 해탈은 생각과 감정과 말과 문자를 떠난 자리를 말한다.
따라서 복을 구하려고 해서는 절대 복이 될 수가 없고, 덕을 구하려고 해서는 절대 덕이 될 수 없는 것이니, 진정한 복과 덕이란, 구하려고 하는 마음이 한 점 없을 뿐더러, 그러한 생각 자체가 없어 분별하지 않는 마음이 되면 저절로 복과 덕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되어야 하는데.. 저렇게 되면 안되는데..” 하는 생각을 당장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면 어떡하지? 저러면 어쩌나?” 하는 마음도 내려놓아야 한다. 어떤 생각을 하던, 어떤 감정을 같던, 인과의 그물에 걸리기 때문에, 더 좋은 것은 더 나쁜 시절인연이 오고, 원하는 만큼 원하지 않는 시절인연이 온다는 것을 굳게 믿고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래도 생각과 감정을 놓고, 저래도 생각과 감정을 놓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하는데, 이 좋다 싫다라는 분별심을 놓아서 어떤 현상이 벌어지더라도, 어떤 인연이 다가오더라도 놓고 또 놓고 방하착해야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방하착, 바로 놓는 것이다. 의심을 하거나, 불안해하거나, 불편해하거나, 불신을 하거나, 이유를 달고, 궁리를 하고 감정을 갖는 것은 바로 당신 스스로의 몫이 될 뿐이다. 뛰어봐야 벼룩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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