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 세계 188

경허스님 이야기

1 도인의 탄생 1) 경허[鏡虛-1846(헌종 12)∼1912]와 만남 나는 벌써 오래 전부터 신문을 거의 보지 않았다. 신문 뿐 아니라 텔레비젼도 약간의 뉴스를 제외하곤 담을 사이에 쌓은 듯이 멀리 하였다. 아내는 볼일이 있어서 밖으로 나가고 아무도 없는 집에 고요히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었는데 오후의 햇살이 창으로 들어와서 차곡차곡 쌓아 둔 신문지 위에서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눈부신 광명이 내 손을 잡고 이끄는 듯한 느낌을 따라 눈길이 머문 곳은 최인호씨가 연재하는 길 없는 길 위였다. 나는 무심코 그 글을 읽어가다가 자꾸 빠져 들었다. 장안의 유명한 기생과 조선 마지막 왕족의 사이에서 태어난 길 없는 길의 주인공은 대학교수였는데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품 중에서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염주에 쓰여진 경..

선의 세계 2021.09.21

선의 뿌리, 2조 혜가와 3조 승찬

믿음 확고하면 마음이 편하다 12. 선의 뿌리, 2조 혜가와 3조 승찬 집착하지 않는것이 도의 첩경 이분법에 털끝 하나 오른다면 부처됨은 하늘과 땅처럼 갈려​​​​​​ 달마와 2조 혜가대사 문답과 도(道) 선종의 2조 혜가(慧可, 487~593) 대사는 인도에서 온 달마대사로부터 깨달음을 인가 받고 소림사에서 9년 동안이나 달마대사를 모셨다. 지금도 중국 숭산 소림사에는 달마와 혜가 대사의 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다. 하지만, 선풍보다는 달마대사가 신체를 단련하기 위해 한 체조가 더 성하다. 소림사 주변에는 무술학교가 수십 개나 되고 전 세계에서 온 청소년 수만 명이 소림 무술을 연마하고 있다. 지금 소림사에는 선의 안목을 갖춘 눈 밝은 선지식이 없다. 중국 불교가 스스로 선종의 탄생지라 자부할지는 몰라도..

선의 세계 2021.09.12

중생과 부처가 모두 눈송이 속에 핀 꽃이로다.

正信希有分 과연 참된 믿음을 낼 수 있겠습니까? 장로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중생들이 이런 가르침을 듣고 참된 믿음을 낼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렇게 말하지 말라. 여래께서 열반하신 후 500년 뒤에도 부처님 말씀대로 아름답게 계를 지키며 복을 짓고 사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가르침에 믿는 마음을 내리니 이로써 부처님의 세상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그대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사람은 전생에 부처님 한 분 두 분 세 분 네 분 다섯 분에게만 선근을 심은 것이 아니라 이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처님께 온갖 선근을 심었으므로 이와 같은 가르침을 듣고 한 생각에 맑고 깨끗한 믿음을 낼 것이다. 무쇠 부처님은 시뻘건 용광로에서 녹아 버리고 나무 부처님은 불길 ..

선의 세계 2021.08.15

普照國師(보조국사)의 思想體系(사상체계)

普照國師(보조국사)의 思想體系(사상체계) 韓國的(한국적) 通佛敎理念(통불교이념)을 具現(구현) 普照國師(보조국사)의 文化史的(문화사적) 地位(지위) 우리 민족 정신문화사 위에 커다란 星座(성좌)를 차지한 두 분의 성자가 있다. 그 한 분은 신라의 元曉大師(원효대사)(617~686AD)요, 한 분은 고려의 普照國師(보조국사)(1158~1210)이다. 원효대사는 인도에서 發源(발원)되어 중국에 와서 여러 학파․교파로 갈라진 불교를 다시 하나의 原理(원리)로 歸一(귀일)시켜 一佛乘(일불승)으로 승화하려는 通佛敎(통불교) 운동을 기도하였으나 그 이상대로 실현되지 않았고 고려의 大覺國師(대각국사)(1055~1101)는 그 당시에 禪宗(선종) 九山門(구산문)에서 교종을 멸시하고 禪宗(선종)만이 부처님의 정통이라고 ..

선의 세계 2021.08.01

삼현(三玄).삼요( 三要).삼구(三句) / 일붕 서경보 큰스님

삼현(三玄).삼요( 三要).삼구(三句) / 일붕 서경보 큰스님 삼현이니 삼요니 삼구니 하는것은 선문(禪門)의행상(行相)이라 하겠으니 불자로서는 알아두어야 할 문제라 생각한다. 삼현(三玄)이란, 1.체중현(體中玄)이니,삼세(三世)가 곧 일념(一念)이란 것이다. 삼세는 과거.현제.미래이니 장원한 시간을 가리킨것이요, 일념이란 것은 한뿔각의짧은 시간을 가르킨 것인데, 체중현은 삼세가 일념간이요,일념이 곧 삼세이니 장단과 원근이 없는' 평등한 심오한 진리를 말한 것이다. 2.구중현(句中玄)은 경절 언구이니 선가(禪家)에서 명료하게 물음을 답한것으로, 예를들면 혜가 가 달마에게 "나의 마음이 편안치 아니합니다"하고 여쭘에 달마대사가 답하되, "마음을 가져오너라"고 이르니 혜가가,"마음을 가히 찾을수 가 없습니다"..

선의 세계 2021.08.01

육조단경의 편찬과 혜능출현의 의미

小乘 大乘 最上大乘 누구나 깨달음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다. 그런데 깨달음이 집착의 대상이란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성스러움도 마찬가지다. 세상의 대부분의 종교들은 악에서 선을 지향하는 가치기준을 갖고 있다. 그러나 불교는 아무리 좋은 가치라도 집착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기준을 설정하지 않는다. 이런 점 때문에 대승이 소승을 비판하는 것이다. 깨달음 한 소식 전부 다 소승 불교적 생각이다. 선과 악 성과 범의 상대적 세계를 모두 초월해야 완전한 해탈이 된다는 가르침이 대승이다. 완전한 해탈이 반야 지혜다. 그래서 제일 처음 육조단경에 등장하는 말이 마하반야바라밀 법이다. 最上承 법문은 금강경에 나온다. 육조단경은 남종의 소의경전인 금강경의 형식을 많이 취하고 있다. 화엄 법화 열반 정..

선의 세계 2021.07.18

선문답 일고찰

선문답 일고찰 1. 서론 2. 선종 성립의 개괄 3. 공안의 성립 4. 선문답 5. 결론 6. 참고문헌 1. 서론 1-1.연구의 동기와 목적 지금부터 바로 5,6년 전에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는 일이 생겼다. 철모르는 고등학교 시절의 소년이 우연히 불교를 알게 된 것이다. 책상위에 꽃혀 있는 수필집을 꺼내서 읽으면서 참으로 마음 깨끗하게 사는 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는 이러한 사람이 믿고 따르는 것에 대해서 알아보고픈 마음이 생겨났다. 불교를 접하면서 간화선수행을 알게 되었고, 무엇인지 알 듯 모를듯한 소리들은 더욱 더 깊은 추구를 하게 만들었다. 한구(一句)의 화두는 도대체 어디에서 생겨나오는 것인가? 이것이 나 스스로의 화두가 되어 온지 벌써 4년이 되간다. 나 스스로의 진지한 탐구는 물론 ..

선의 세계 2021.07.04

홍인은 신수를 인가하지 않음

신수상좌는 깨달음의 노래를 적어놓고 곧 자기의 방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5조화상은 이튿날 아침 드디어 화가인 변상도를 그리도록 하려 하였다. 5조화상은 문득 게송이 적혀 있음을 보고 읽어 보았다. 그리고는 화가 노봉공에게 말했다. 나는 공봉에게 돈 3만 냥을 드리어 이렇게 멀리 오시게 한 수고에 보답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능가경의 변상도는 그리지 않도록 하겠소. 금강경에도 무릇 모양이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한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소. 능가경의 變相圖의 相은 모양이다. 그림으로 불법의 본질을 표현코자 했지만 일체 모양을 부정하는 금강경의 핵심사상인 無相 無住에 반하기 때문에 그리기를 포기한다. 무상 무주란 결국 자기 마음 안에 머문 모양이 없다는 뜻이..

선의 세계 2021.07.04

수처작주 입처개진 隨處作主 立處皆眞

隨處作主 立處皆眞 [어디에 있어도 자신이 주인공이면 자신이 서 있는 곳 전부가 진실이다] 참으로 확실한 것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현재 지금, 여기에, 내 자신이 있다고 하는 것뿐이다. 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고 하는 말은『임제록』에 기술되어져 있는 말이다. 자신이 몸을 두고 있는 곳, 지금, 이 장소야말로 나에게 있어 수행의 장소이다. 그런 각오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어떠한 것일까. 내가 절에서 수행을 막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 절에서의 하루의 생활은 아침부터 밤까지 하는 일이 정해져 있다. 보통생활에 비교하면 너무 부자유스러운 것이었다. 스님이 될 뜻도 확립되지 않고 절에 들어온 나는 빨리 여기에서 나가 자유스럽게 살고 싶다고 하는 그것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절의 풀을 뽑고 있..

선의 세계 2021.06.20

선문답(禪問答)이란?

선문답(禪問答)이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 혹은 선종(禪宗)에서 깨달음을 추구하는 선승들끼리 이루어지는 독특한 대화이다. ​ 즉문즉답(卽問卽答)으로 이루어지며, 조금이라도 머뭇거리면 사량 분별심이나 알음알이 지식에서 나온 대답이므로 응축된 선어(禪語)라 할 수 없다. 선문답은 기본적으로 1문1답으로, 두세 번에서 그치며, 여러 차례 진행되지 않는다. ​ 고도의 선(禪)지식이 있는 스님과 제자가 맞상대를 할 때 가끔 의중을 엿보기 위해 선문답으로 말을 걸기도 한다. 그래서 화두(話頭)라고도 한다. 화두란 불가의 수행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참구(參究)하는 문제를 뜻하는 말이다. ​ 수행자끼리 혹은 스승과 제자 사이 주고받는 문답형식의 대화. 다른 말로는 법거량(法擧量) 혹은 법담(法談)이라고도 한다. 논..

선의 세계 2021.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