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 세계 186

육조 혜능

혜능은 일자무식이다. 평생 읽지도 쓰지도 못했다. 어느 날 5조 홍인이 1천 명이 넘는 오조사(당시 동산사) 학인들에게 게송을 하나씩 지어보라 했다. 그걸 보고 ‘가사’(袈裟, 승려가 어깨에 걸친 법의)를 전해주겠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자 제자 중 가장 뛰어났던 신수상좌(606~706)가 게송을 지어 회랑 벽에 써 놓았다. “몸은 보리수요 / 마음은 밝은 거울 같으니 /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 티끌 먼지 안 묻게 하리”(『단경』 32p) 그런데 이틀 뒤, 혜능이 그 게송을 보았다. 그러나 혜능은 글자를 몰랐기 때문에 게송을 직접 읽을 수가 없어 옆에 있던 사람에게 읽어달라고 부탁한다. 옆에서 읽어 주는 게송을 듣고 혜능은 곧바로 뜻을 알아챘다. 그리고는 즉시 자신의 게송을 한 수 읊고자 했다...

선의 세계 2024.05.05

선시(禪詩)

선시(禪詩) 1) 봄에는 꽃이 피고 춘유백화추유월 春有百花秋有月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엔 달이 밝네 하유량풍동유설 夏有凉風冬有雪 여름엔 시원한 바람 겨울엔 흰 눈 약무한사괘심두 若無閑事掛心頭 부질없는 일로 가슴 졸이지 않으면 변시인간호시절 便是人間好時節 인간의 좋은 시절 바로 그것이라네 무문선사(無門禪師)의 이 시는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하는 시이다. 다분히 인생을 낙천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여유 있는 멋이 이 시속에 있다. 사계절의 운치를 바라보며 자연과 동화된 물아일여(物我一如)의 경지는 유흥에 도취되어 읊는 턱없는 풍월이 아니다. 나를 괴롭히는 모든 문제들이 사라진 고요하고 밝은 심경이 될 때 세상은 모든 것이 긍정적으로 아름답게만 보이는 법이다. 욕망에 허덕이고 불안 초조에 시달리는 범부의 번뇌..

선의 세계 2024.02.25

선시 공부

파초 한 그루 파초를 뜨락에 심어두니 밤중에 보슬비 소리조차 들리누나. 매운 바람 툭 쳐서 꺾을까 걱정되어 아이 시켜 돌 주워와 터진 담장 고친다네. 芭蕉一樹種幽庭 中夜猶聽細雨聲 파초일수종유정 중야유청세우성 剛怕疾風輕破折 囑兒拾石補虧牆 강파질풍경파절 촉아습석보휴장 -철선 혜즙(鐵船 惠楫, 1791-1858), 「산거(山居)」 2 국화 진작에 석대 서편 국화를 심었더니 여린 잎 성근 줄기 작은 시내 비춘다. 계절 돌아 가을 되어 꽃술을 터뜨리면 온갖 새들 적막히 울지 않음 비웃으리. 曾將菊種石臺西 嫩葉疎莖映小溪 증장국종석대서 눈엽소경영소계 轉到霜天方吐萼 笑他百鳥寂無嗁 전도상천방토악 소타백조적무제 -철선 혜즙(鐵船 惠楫, 1791-1858), 「산거(山居)」 ● 본래 스스로 완전무결하다. - 벽장회해 - 靈..

선의 세계 2024.02.10

한국 선어록 - 해제

總目次 총목차 ​ 眞覺語錄 진각어록 白雲語錄 백운어록 太古語錄 태고어록 懶翁語錄 나옹어록 ​ 凡例 일러두기 ​ 1. 이 책은 대한불교조계종에서 한국불교 전통사상의 선양・유통을 위하여 기획한 한국전통사상총서 제8권 [선어록편]이다. 2. 이 책의 번역과 관련한 제반 사항은 한국전통사상서 간행위원회의 번역 지침에 따랐다. 3. 이 책에 수록한 네 편의 어록은 조선 중종(中宗) 21년(1526)간・중종 23년(1528)간 목판본과 1940년 보제사(普濟社)간 연인본(鉛印本)『조계진각국사어록(曹溪眞覺國師語錄)』(이상 고려대학교 소장), 고려 우왕(禑王) 4년(1378)간 목판본 『백운화상어록(白雲和尙語錄)』(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1940년 보제사간 연인본『태고화상어록(太古和尙語錄)』(고려대학교 소장), 고..

선의 세계 2023.12.03

[송원 스님] 알기쉬운 선(禪) 이야기 100가지

알기쉬운 선(禪) 이야기 100가지 제1장 공(空) - 不立文字 불립문자(不立文字)― 문자를 앞세우지 않는다는 뜻이다. 요컨대 사제(師弟) 간의 생명의 접촉이 선(禪)의 말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그것만으로 충분히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있음을 뜻합니다. 그런데 후세에 와서 선종(禪宗)에 관한 책이 가장 많이 쓰여지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컬하게 생각됩니다. 어떤 불교 학자는 "불립문자(不立文字)가 무엇인지 알게 하려면 많은 글자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그 말에도 일면의 진리가 있습니다. 어느 노 선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말은 듣거나 읽고 의미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 본래의 뜻을 먼저 파악하고 나서 그 뜻을 생각해야 한다." 글자를 글자로만 읽기 때문에 깊이 들어가지 못합니다. 션窩� 있어야 비로..

선의 세계 2023.08.13

몰록 깨치고 몰록 닦는다

몰록 깨치고 몰록 닦는다 이튿날 큰스님과 산책을 하면서 큰스님께 여쭈었다. "큰스님께선 한번 깨달으신 후에 다시 미한 적이 없습니까?" "늘 한결같다." "큰스님께선 돈오돈수를 주장하셨는데, 정녕 돈오돈수는 무엇입니까?" 순간 큰스님께선 큰 기침 한번 하시고는 말씀하셨다. "말 그대로 몰록 깨치고 몰록 닦는다는 것이다. 즉 깨치면 다시 닦을 것 없는 평상심 그대로 구경각이며 견성성불이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 "말로서 이야기해 보아라." "돈오돈수란 돈오돈수마저 초월한 돈오돈수일 때 돈오돈수와 돈오돈수를 똑같이 녹여 지금 이대로 구경각이며 평상심이며 견성성불인 본불 본중생을 쌍차쌍조한 바로 나입니다." "그래, 그래, 그렇구나." (십년 후 돈오돈수에 대해 큰스님께서 돈오돈수마저 투과하고 ..

선의 세계 2023.07.23

조주록

​ 해제(解題) 조주 종심(趙州從諗:778~897, 全諗이라고도 함)스님은 조주(曹州)의 학향(郝鄕, 혹은 靑丘 緇丘人이라고도 함) 출신으로 속성은 학(郝)씨이다. 스님은 어린 나이에 고향의 호국원(護國院, 조당집에는 龍光寺라고 함)으로 출가하여 경과 율을 익히지 않고 곧바로 참선을 하였다. 그러다가 은사스님을 따라 지양(池陽)에서 남전 보원(南泉普願:748~835)스님을 참례하고 입실하였다. 그 후 남전스님이 입적하기까지 40여 년을 시봉하였다. 스님이 남전스님에게서 깨달은 인연에 대해서는 어록의 처음에 실려 있는데, 그 시기는 스님의 나이 20세 전후인 듯하다. 그리고는 곧 이어 제방의 선지식을 두루 친견하고 그 도행을 널리 익힌 것으로 보인다. 어록 가운데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내가 90년 전,..

선의 세계 2023.07.23

수심결(修心訣) 마음을 다스리는 글

수심결(修心訣)마음을 다스리는 글 福生於儉淸(복생어검청) 복은 검소함에서 생기고, 德生於卑退(덕생어비퇴) 덕은 자신을 낮추고 물러나는 데서 생긴다, 道生於安靜(도생어안정) 지혜 도는 고요히 생각하는 데서 생기고. 患生於多慾(환생어다욕) 근심은 욕심이 많은 데서 생긴다, 禍生於多貪(화생어다탐) 재앙은 탐하는 마음이 많은 데서 생기며, 過生於輕慢(과생어경만) 허물은 잘난 체하고 남을 무시하는 데서 생긴다, 罪生於不仁(죄생어불인) 죄악은 어질지 못하는 데서 생기고. 戒眼莫看他非(계안막간타비) 눈을 조심하여 남의 잘못된 점을 보지 말라, 戒口莫談他短(계구막담타단) 입조심하여 남의 단점을 말하지 말고. 戒心莫自貪嗔(계심막자탐진) 마음을 조심하여 스스로를 탐내거나 성내지 말라, 戒身莫隨惡伴(계신막수악반) 몸을 조심..

선의 세계 2023.06.11

조당집18.19.20

◐ 자호(紫澔) 화상 ​ 남전(南泉)의 법을 이었고, 구주(衢州)에서 살았으나 행장을 보니 못해 생애를 기록하지 못한다. 선사께서 유철마(劉鐵馬)를 감정코자 이렇게 말했다. ㅡ듣건대 유철마가 있다던데 그대가 아닌가? 철마 바구니가 대답했다. ㅡ어디서 그런 소식을 들으셨읍니까? 선사께서 대답했다. ㅡ왼쪽으로 돌고 오른쩍으로 도느니라. 비구니가 말했다. ㅡ전도(顚倒) 하지 마십시오. 이에, 선사께서 때리니 남전이 비구니를 대신하였다. ㅡ이러한 짬은 본래부터 덩고 있읍니다. 선사께서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ㅡ옛부터 일이란 물건이 아닌데 방편으로 이를 부처라 한다. 중하의 사람은 시비를 다투지만 상등의 선비는 굴욕을 당한 줄을 비로소 알게된다. 또 이렇게 말했다. ㅡ삼십년동안 자호(紫瑚)에 살았으나 두 끼니의 ..

선의 세계 2023.05.21

안심법문 / 달마와 혜가

달마와 혜가 이야기 ​달마 대사는 인도 사람입니다. ‘달마도’를 보면 눈이 부리부리하고 이국적으로 생겼잖아요. 그가 인도인이기 때문입니다. 달마는 석가모니 부처에게서 내려오는 깨달음의 맥을 이었습니다. 그리고 인도를 떠나 중국으로 갔습니다. 사람 사는 땅에 깨달음의 이치를 전하고자 한 것입니다. ​ 중국 땅에서 대(代)를 이어 법을 전하려면 제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죽어도 법은 이어지니까요. 달마는 험하기로 유명한 허베이성 쑹산(嵩山)에서 지냈습니다. 쑹산은 봉우리만 72개에 달합니다. 그만큼 바위가 많은 악산입니다. 달마는 쑹산의바위동굴에서 9년간 면벽수도하며 제자를 기다렸습니다. ​ 하루는 신광이라는 40대 남자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달마의 제자가 되기를 청했습니다. 달마는 쉽사리 허락하지..

선의 세계 2023.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