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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약자 보호는 불교의 책무 / 이상호

수선님 2025. 4. 27. 12:49
한국불교 미래 100년의 비전 : 사회적 역할

1. 종교에서 사회 구원의 중요성

종교에서 사회 구원은 개인 구원만큼이나 중요한 목표이다. 아니 거의 모든 종교는 개인 구원만을 중시하는 기복신앙에 대해 끊임없이 경계한다는 점에서, 사회 구원은 종교와 기복신앙을 나누는, 그래서 종교성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에 가깝다. 그러므로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과 그 해법의 모색은 종교의 존재 이유 혹은 그 정당성을 입증하는 요인일 수 있다.

사회문제나 여기서 비롯된 사회 구원의 문제는 매우 다양하겠지만, 사회적 약자와 관련된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는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이 갈등은 사회질서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이것의 치유는 사회질서를 안정시켜 사회 구원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오늘날 거의 모든 종교단체에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움직임이 나타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의 불교계 또한 예외가 아니다.

2. 차별당하는 사람들이 넘치는 사회

사회적 약자는 강자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상대적인 개념이며, 사회나 역사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에서 가변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는 여성, 이주민, 난민, 성소수자, 장애인, 무슬림 등이 이러한 사회적 약자로 분류된다. 여성의 경우, 보편적인 인권 개념이나 페미니즘 사상의 영향으로 사회적 지위가 상당히 개선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성차별적인 문화가 종종 확인된다. 최근 한국사회가 심각한 저출산 문제를 안게 된 데에는 집안일이나 육아 또는 직장생활에서 여성이 남성에 비해 불리한 위치에 있다는 판단이 놓여 있다. 남녀평등은 남성과 여성 간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에 그치지 않고, 사회에 따라서는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기도 한 셈이다.

이주민의 경우, 1990년대부터 한국사회의 필요(부족한 노동 인력 보충 정책, 결혼 등)에 의해 사회 구성원으로 편입되었지만, 인종이나 종교 등의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으며, 이러한 상황은 다문화 가정의 자녀에 대한 차별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차별은 난민에게서도 비슷하게 확인된다. 한국사회에서 난민 문제는 2018년에 예멘의 내전 상황을 피해 무비자로 제주도에 입국하는 예멘인들이 난민 인정 신청을 하게 되면서 사회적 관심사로 부상하였지만, 현재 한국사회에서 난민은 법적 지위 인정 여부와 무관하게 인종이나 종교 등의 이유로 차별당할 가능성이 높다.

장애인의 경우, 다양한 우대 정책이 마련되면서 상황이 많이 개선되기는 하였지만, 최근 장애인의 지하철 시위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에서 알 수 있듯이 아직도 장애인의 이동권이 충분히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장애인이 이동권을 충분히 보장받지 못할 경우 최소한의 교육을 받을 헌법상의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지기 쉽다. 성소수자나 무슬림의 경우에도, 성적 정체성이나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으며, 이러한 차별이 종종 심각한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최근에 대구 지역에 모스크 건립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심각하게 나타났던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와 같이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는 성, 인종, 종교, 장애, 성적 정체성 등의 이유로 차별을 받고 있으며, 여기서 비롯된 사회적 갈등 또한 간단하지 않다. 이러한 상황은 사회질서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을 넘어 종종 한국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인으로까지 작용한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불교계는 사회적 약자의 보호에 대한 관심이 많지 않다. 불교계에서 사회복지 사업은 19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지만, 사회적 약자 보호와 관련해서는 조직적이거나 체계적인 움직임이 거의 확인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에 불교계 사회복지시설 중에 장애인 보호시설이나 다문화 및 한부모 가정 대상 복지시설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주민이나 이와 관련된 다문화 가정, 또는 장애인에 대해서는 사회복지사업의 일환으로 보호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듯 보인다.

사회적 약자 보호는 사회 구원을 추구하는 종교의 목적에 부합될 수 있으며, 불교계 또한 이러한 조건에서 예외일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불교계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사업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조직이나 인력 등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이 사업은 서구 계몽주의에서 비롯된 보편적인 인권 개념에 비추어 추진될 수도 있겠지만, 불교계의 경우에는 불교적 정체성에 부합되는 프로그램을 적절하게 제공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사업은 불교정신에 부합되는 것일 수 있다는 점에서, 불교의 가르침을 현실화하는 또 다른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익히 알다시피, 불교에서 중요한 것은 마음의 평온이다. 이 평온은 단순히 나 자신의 한적함을 즐기고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대한 자비 혹은 연민의 마음과 연결되어 있다. 불교에서 수행자가 은둔의 삶을 선택하는 것은 그 자신에게만 이로운 것이 아니라 중생구제의 이로움을 가져오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불교의 자비심은 모든 존재의 안녕과 이로움을 바라는 마음이며, 그들의 고통을 제거해 주고자 하는 실천적 의지의 표현이다. 이 자비심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의 마음을 저버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비 혹은 연민의 마음을 강조하는 불교정신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사업의 사상적 배경으로 충분히 고려될 만하다.

불교계는 붓다께서 장애인에 대해서는 출가를 허용하지 않았지만,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해서는 출가를 허용했음을 강조한다. 불교계는 여성과 성소수자에 관한 한, 불교가 차등 의식이 없거나 약한 상태에서 출발했지만, 오늘날에는 여성과 성소수자를 대하는 방식에서 붓다의 평등 의식을 계승하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이러한 아쉬움의 이면에는 붓다의 가르침을 계승해서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평등 의식을 되살림과 동시에, 이러한 평등 의식을 다른 사회적 약자 집단에까지 확대 · 적용할 경우 불교적 정체성에 부합되는 사회적 약자 보호 사업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판단이 놓여 있을 것이다. 시대적 상황을 고려할 때, 붓다께서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해 출가를 허용했다는 사실은 분명 엄청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이러한 가르침을 되살려서 불교계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사업을 추진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일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불교계가 사회적 약자 보호 사업을 단순히 불교정신이나 붓다 가르침의 산물로만 이해한다면 이 사업이 온전히 추진되기는 어렵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약자 중에서 이주민, 난민, 무슬림이 사회적 약자로서 사회적 관심의 대상으로 부상하게 된 것은 근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발달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인적 · 물적 교류가 빈번해졌으며, 그 결과 이주민, 난민, 무슬림이 사회적 약자로서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오래된 사회적 약자인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사회적 위상이나 그 의미에서 이전 시대와 다른 특성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여성이 ‘직장생활에서 남성에 비해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다고 의식되거나 평가되는 상황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로소 나타난 특징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불교계가 불교의 정체성에 부합되는 방향으로 사회적 약자 보호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불교의 정체성만큼이나 근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특징이나 이와 관련된 사회적 약자의 의미 변화에 대해서까지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3. 남의 불행을 외면하면 불교가 아니다

다른 종교에 비해, 불교는 나와 타인(타자) 사이에서 엄격한 구분이 불가능함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약자 문제를 극복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다. 다만 한국사회가 직면한 사회적 약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경제구조와 사회적 약자의 관계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더구나 어느 사회에서나 사회적 강자들은 사회적 약자들을 차별대우함으로써 자신들의 이익 혹은 기득권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경우가 많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경우의 발생 빈도가 그 어느 사회에서보다 높다. 오늘날 어느 때보다도 보편적인 인권 교육이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 이유도 이러한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사정이 이와 같다면, 불교계가 사회적 약자 보호 사업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특징이나 한계, 그리고 여기서 파생되는 사회적 약자 문제에 대해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과학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다만 정부에 의해 공적으로 운영되는 사회적 약자 보호 프로그램이나 관련 정책이 존재할 것이므로, 불교계의 사회적 약자 보호 프로그램이나 사업은 정부의 프로그램이나 정책과 조화를 이루면서 추진될 필요가 있다.

사회 구원은 모든 종교의 존재 이유일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약자 보호는 불교 고유의 영역으로 보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교의 정체성에 부합되는 사회적 약자 보호 프로그램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선이해(先理解)를 바탕으로 불교정신과 사회적 약자 보호의 연결고리를 꼼꼼히 살펴보아야 한다. 아마도 그 과정에서 불교의 무아설(無我說)이 불교계 사회적 약자 보호 사업을 이끄는 가장 중요한 논거 중 하나로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무아설에 따르면, 자타의 이분법적인 경계 설정은 해체되며, 불교의 연민은 모든 존재, 즉 일체 유정을 대상으로 확장된다. 더욱이 자신과 타인의 연기적 관계를 자각한다면, 타인을 돌보는 일은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어쩌면 바로 이러한 불교의 특성이야말로 불교계의 사회적 약자 보호가 다른 종교의 사회적 약자 보호와 구별되는,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교의 장점을 가장 극대화시킬 수 있는 계기일지도 모르겠다. ■

 

이상호 lsh09191@dongguk.edu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동 대학원 졸업(석사, 박사). 불교 관련 논문으로는 〈공유경제시대 불교경제학의 미래〉 〈행복경제학과 불교: ‘관계’ 개념을 중심으로〉 〈불교와 자연, 그리고 불교경제학: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과제를 중심으로〉 〈고립의 시대, 사회적 진단과 불교적 해법〉 등이 있으며, 역서로 《작은 것이 아름답다》가 있다. 현재 동국대학교 다르마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

 

 

 

 

 

 

 

사회적 약자 보호는 불교의 책무 / 이상호 - 불교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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