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철학

(종교사) 불교발생의 배경

수선님 2020. 7. 5. 11:44

불교발생의 배경

 

 

불교가 발생하게된 역사적 사회적 사상적인 배경을 살펴보고 그러한 상황속에서 불교가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근본불교란 부처님의 근본사상이 살아있는 가르침이란 뜻입니다.  이제는 불교가 발생하게 되었던 역사적, 사회적, 사상적 상황속에서 부처님이 어떠한 목적을 갖고 어떠한 의미속에서 당신의 가르침을 펴셨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목적의식을 알아보겠습니다.

 

# 근본불교를 객관적 입장에서 보려면?

 

부처님의 근본불교를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다른 종교와의 비교속에서 보는 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도 당시의 사상적 흐름과 주장을 살펴보고, 불교가 발생한 사회적 조건을 살펴보는 의미에서 인도 당시의 사회적 배경을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처님 당시의 사회적 조건을 형성했던 그 연원을 보는 의미에서 인도의 역사적 배경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인도의 역사

 

 

1. 인더스 문명과 원주민

 

인도의 역사와 불교 발생 당시의 인도의 역사를 보자면 대부분 아리안족으로부터 그 역사를 시작합니다만, 사실은 인더스 문명으로부터 찾아야 될것 같습니다. 인더스 문명은 서기전 3000년경부터 2000년에 걸쳐서 약 1000년동안 유지되었섰는데 현재는 단절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인더스 문명은 그 문명 이름에서도 말이 나오듯이 지역을 인더스강 유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습니다. 그들은 농경과 목축을 통한 정착생활을 하고 있었고 문명은 청동기 문명의 자취가 보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도시국가를 건설했는데 아주 치밀한 도시 계획하에서 고도의 도시문명을 이루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흔적은 아직까지도 남아있는데 모헨조다로와 하라파의 유적으로써 알수 있습니다.

그들의 종교는 지모신(地母神) 숭배와 성기 숭배의 흔적이 남아있고, 나무 동물 숭배의 흔적도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요가좌법의 원형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1000년동안 유지되다가 소멸되었는데, 그 이유는 아직도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리안족들이 들어오기전에 인도에는 원주민들이 있었는데, 문다족과 드라비다족이 그들입니다. 문다족은 갈색 피부에 작은 키와 낮은 코를 갖고 있고 현재에도 인도 북부의 오지에서 반(半)미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드라비다족은 검은 피부에 농촌 중심의 대가족 제도와 부족 공동체의 소부락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청동기 문명을 갖고 있었고 아리안족의 침략으로 노예로 전락하게되는 운명을 맞게 됩니다.

 

(1)인더스 문명

①시기 : 서기전 3,000년-2,000년네 걸쳐 약 천년간 유지, 현재는 단절

②지역 : 인더스강 유역

③산업 : 농경, 목축 정착생활

④문명 : 청동기 문명의 자취, 도시국가 건설

- 치밀한 계획 하에 고도의 도시문명 (모헨조다로,하라파)

⑤종교 : 지모신(地母神), 성기숭배, 나무 동물 숭배의 흔적, 요가좌법의 원형 발견

⑥소멸 :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이유로 인해 짧은 시간 동안 멸망

 

(2)원주민

①문다(Munda)족 : 갈색 피부,작은 키, 낮은 코

- 현재도 인도 북부의 오지에서 반(半)미개생활

②드라비다(Dravida)족 : 검은 피부, 농촌 중심의 대가족제도와 부족공동체의 소부락 형성

- 청동기 문명 - 아리안족의 침략으로 노예로 전락

 

2. 아리안(Arian)족의 이동과 정착

 

아리안족에 의한 인도의 역사는 B.C13세기부터 시작됩니다. 아리안족의 역사는 그 단계를 나눌때 베다시대, 브라흐마나시대, 우파니샤드시대로 나누는데 이것은 그 당시에 있었던 중심되는 종교 문헌을 중심으로 얘기됩니다.

 

(1)베다(Veda)시대

 

먼저 베다시대(Veda)는 B.C13세기부터 10세기 까지로 추정되는데, 인도 아리안족이 코카서스 북방에서 동진으로 힌두쿠시산맥을 넘어 서북인도로 유입되게 됩니다. 이들은 서북인도의 오하유역에 정착을 하게 됩니다. 이 오하유역이란 곳은 Punjab이라 이름 붙여져 있는데 이것은 인더스강 상류에 5개의 지주가 형성되는 지역을 말합니다. 그들의 문명은 드라비다족과 다르게 철기문명을 갖고있는 유목민 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드라비다족을 쉽게 지배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산업은 목축중심으로 정착과정에서 농업을 흡수하게 됩니다.

그들의 종교는 리그베다를 중심으로 한 토테미즘 단계의 다신교적 자연신교를 믿게 됩니다. 이 리그베다는 아리안족이 인도로 들어오기 전에 15세기 전부터 형성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리그베다는 자연신에 대한 찬가의 집성을 얘기하는데 말기에 우주창조의 조물주사상이 형성되긴 합니다만, 초기나 중기에는 무수히 널려져 있는 자연신을 모두 신의 모습으로 보고 그 신에 대한 찬탄의 시가 씌여져 있습니다.

그들의 종교양태는 그들이 제사를 올리면 신이 제단에 권청되어서 그들의 공희를 받고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으로서 되어있습니다. 그들은 신이 인간의 운명을 주지한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다산과 다수확을 위한 제사와 기원의 집단적 종교의식이 그들의 종교양태였습니다. 그리고 사회양태는 원시공산사회 말기로 추측이 되고 계급구조는 지배족인 아리아인과 피지배족인 드라비다족으로써 최초의 계급관계가 형성됩니다.

 

①시기 : B.C 13 C - 10 C

②문명 주도 민족 :인도 아리안(Arian)족 - 코카서스 북방에서 동진 - 힌두쿠시 산맥 넘어 유입

③정착 : 서북인도 오하(五河:Punjab)유역

④문명 : 철기문명을 가진 유목민

⑤산업 : 목축 중심, 정착과정에서 농업 흡수

⑥사회양태 : 원시공산사회 말기

⑦계급구조 : 지배족인 아리안과 피지배족인 드라비디안 - 최초의 계급관계 형성

⑧종교 : 리그베다(Rig-veda)를 중심으로 한 토템이즘 단계의 다신교적 자연신교

 

(2)브라흐마나(Brahmana)시대

 

 

혼잡지방에 중심을 잡고있던 아리안족은 이후 갠지스강 상류와 야무나강 사이의 비옥한 평야로 이동해서 정착하게 되는데, 이 시기를 B.C10세기에서 8세기로 보고있고 브라흐마나(Brahmana)시대라고 합니다.

산업은 농업이 중심된 산업으로 되고 있는데 그것은 그들의 이동경로가 비옥한 평야를 중심으로 한것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사회양태는 사제중심적인 부족제 공동체를 형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사제는 정치권력과 함께하게 됨으로써 제정일치(祭政一致)사회를 띄게 됩니다. 그리고 사제의 역활이 전문적이고 세습됨으로 인해서 그 지위가 계급으로써 권위를 띄게됩니다.

바라문은 인간의 모습을한 신으로써 모든 대중에게 군림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라문이 범(梵)과 직결된 존재이고 범에게 제사를 지냄으로 인해서 범이 권위를 누려서 인간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존재라는 자기논리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바라문은 그들의 계급을 가장 위에 올려놓고 그 이후 계층적 네개의 집단이 세습계급으로 정착하게 됩니다. 그래서,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의 소위 사성계급 제도가 정착되게 됩니다.

이 때의 종교는 브라흐마나를 중심으로 한 일원론적 범신론의 모습을 띄게 되는데, 여기에서 일원론은 세계를 창조한 조물주로서의 인격신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①시기 : B.C 10C-8C

②이동.정착지역 : 갠지스강 상류와 야무나강 사이의 비옥한 평야로 이동

③산업 : 농업이 점차 중심 산업으로 됨

④사회양태 : 사제중심적 부족제 농촌공동체 형성 : 제정일치(祭政一致) 사회

⑤바라문 계급 세습화 : 사제(司祭)의 전문적 세습 지위가 신적 권위를 띰

⑥인간의 모습을 한 신으로서의 바라문 계급 : 범과 직결된 존재로서, 범을 좌우할 수 있는 존재

⑦계급구조 : 계층적 네개 집단이 세습 계급으로 정착

브라만(brahmana:사제), 크샤트리아(ksatriya:왕족,무사),

바이샤(vaisya:서민,농민), 수드라(sudra:노예-드라비다족)

⑧ 종교 : 브라흐마나(Brahmana)를 중심으로 한 일원론(인격신)적 범신론

 

(3)우파니샤드(Upanisad)시대

 

아리안족은 이후 보다 비옥한 평야지대인 갠지스강 중하류로 이동해서 정착하게 되는데, 이 때를 시기적으로 B.C 8세기에서 5세기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를 우파니샤드 시대(Upanisad)라고 부릅니다. 우파니샤드 시대는 부처님이 태어나시던 시대적 배경과 일치하기 때문에 불자들은 불타시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우파니샤드 시대에 오면 브라흐마나 시대에 있었던 것과는 다르게 새롭게 정치, 종교, 문화, 종교적인 큰 변화가 있게 됩니다. 

시기적으로 보면 먼저 정복과정속에서 아리아인과 드라비다인의 혼혈이 발생하게 됩니다. 아리아인족들이 갠지스강 중하류로 오면서 드리비다인의 거센 반발을 통해서 치열한 전쟁을 치르게 되는데 이 사이에서 대개 발생한 것이지요. 그런데 이것은 브라흐마나 시대에는 별로 흔치않은 일이였습니다. 왜냐하면 아리안족들이 드라비다인족들보다 문화적 수준이 열등했었기 때문이죠.

일반적으로 보면 문화적 수준은 열등하지만 무력적으로 우월한 민족들이 문화적 수준이 우월한 민족을 지배하게 될때는 혼혈을 잘 강요안합나다. 왜냐하면 그러한 혼혈로 인해서 그들 스스로의 독자적인 지배 이데올로기가 훼손될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브라흐마나시대때 나름대로 문화적 영향을 성숙시킨 아리아인들은 이제 꺼리낌없이 혼혈을 발생시키게 됩니다. 그 혼혈아들을 소위 '아뇨드라비다' 란 이름으로 부를 정도로 상당히 많이 발생했던것 같습니다.

이들은 전통적인 아리아인의 풍습과 예절 그리고 베다문화에 대해서 비판적이고 저항적 의식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조선시대때 양반과 상민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이 상민도 아니고 그렇다고 양반의 반열에도 낄수없는 그러한 어정정한 상태에 있으면서 기존의 양반문화에 대해서 거부하고 저항하는 모습을 띄었던거와 마찬가지지요.

그리고 산업면에서의 큰 변화가 있게 됩니다. 그것은 농업생산력의 급속한 발달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우파니샤드시대에 전반적인 변화에 중요한 핵을 이루게 됩니다. 농업생산력이 발달하게 된 이유는 농기계의 발달에 있는데 그것은 아리안족들이 철기문명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전에는 이 철기를 무기 만드는데 주로 사용했었는데 이제는 농업이 중심산업으로 발전되므로 인해서 농기계를 만드는데 철기를 사용하게 됩니다.

우수한 농기계를 사용하게 됨으로 인해서 농업은 급속하게 발전하게 되고 그리고 이 농기계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자 수공업도 중요한 산업으로서 독립하게 됩니다. 그래서 당연히 상업 또한 중요한 산업에 하나로 독립하게 되는데 상업의 발달은 화폐의 발달을 요구하게 되고 이것은 곧 시장경제를 요구하는데 까지 나가게 됩니다.

시장경제를 통해서 도시가 형성되는데 이 도시를 중심으로 도시국가가 만들어지지요. 이 도시국가내에서는 상인이 부를 축적하게 되고 도시의 경제권을 장악하게 됩니다. 그래서 상인이 바이샤계급 분화를 통해서 상인계급으로 급상승하게되지요. 그리고 이 상인들은 자신들의 부를 유지하고 그리고 수호해주기 위해서 크샤트리아계급에서 많은 양의 재물을 제공하고 그들의 재물을 수호하는 역할을 맞기게 됩니다. 그래서 도시국가내에서는 거대한 부를 축적하게 된 상인과 그리고크샤트리아 계급이 결탁해서 새로운 권력측을 형성하게 되죠. 그리고 이러한 도시국가간에서는 서로의 이익이 상충됨에 따라서 아리안계급내의 노예와 토지획득을 위한 정복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나게 됩니다. 이를 통해서 왕족의 지위가 약화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전에는 전쟁을 할 때 전쟁의 승리를 바라문의 제사 때문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는 아리안 계급에서 같은 신을 믿는 사람들끼리 전쟁을 하게되자 타인족과의 전쟁에서 우위를 전후했던 바라문의 제사가 상대적을 그 힘을 잃게 됩니다. 그러면서 정치력을 획득하고 경제력을 획득한 크샤트리아가 그들의 위치를 공고히 하기위해서 철학적이고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 명상과 사색을 통해서 새로운 종교를 만들게 됩니다. 그래서 크샤트리아계급이 우파니샤드 사상의 주체로서 그리고 도시의 수호자로서 4성계급의 최고지위를 확립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사회형태는 전제 군주국가가 출현하게 되죠. 그래서 보다 많은 부와 권력과 토지를 획득하기 위해서 통일국가를 위한 정복전쟁을 일으키게됩니다. 그래서 바야흐로 대도시 노예제 국가의 전형이 형성되게 됩니다. 크샤트리아가 이렇게 급상승함과 반대로 바라문계급은 농촌을 기반으로 했었기 때문에 제사장의 지위가 도시에서는 갈수록 하락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정치, 경제적으로 급변하는 사회속에서 기존의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있었던 바라문사상이 쇠퇴하게 되고 우파니샤드사상이 등장했습니다만, 여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한번 흔들린 가치관속에서 새로운 사상을 찾는 출가수행자가 많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마치 중국의 제자백가시대와 같이 수많은 사상가들이 등장해서 각자의 주장이 진리라고 주장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대중의 고통은 엄청나게 증폭되었습니다.

가장 큰 것으로서는 끊임없는 정복전쟁이었는데, 이 정복전쟁은 패한 나라에서는 모두 노예로 끌려가게 되고 비록 이겼다 하더라도 그 이긴 것으로 인해서는 이익은 소위 지배계급에게만 돌아가게 되죠. 대부분의 피지배대중은 그러한 전쟁 때에 부역으로 끌려나가고 전쟁에 나가서 죽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래서 요행히 살아 돌아오면 다행이고, 아니면 죽거나 몸이 다치는 경우가 빈번했습니다. 그리고 한정된 재화속에서 상인계급이 부를 엄청나게 축적하게 되자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돈없는 대중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빚을 지게 되고, 이 빚으로 인해서 노예로 팔려가는 부채노예가 빈번하게 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대중들은 사상적인 갈등이 일어나게 되고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그른지에 대해서 혼란스럽게 되고 뿐만아니라 이렇게 노예들이 많아지고 대중들의 불만이 고조되자 전제정치가 강화됩니다. 대중들은 사상적 갈등과 전제정치의 강화속에서 전쟁노예와 부채노예로서 노예가 양산되고 그로 인해서 짐승보다 못한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됩니다.

이때 대중들은 간절하게 두가지의 소원을 빌게 되는데 첫째는 평화로운 성왕인 '전륜성왕'과 그리고 진리를 설함으로 인해서 대중들이 갖고있는 사상적 혼란을 씻어주고 바른 삶의 길을 제시해 줄 법왕으로서의 '부처님'의 출현을 간절하게 갈구하게 되죠.

부처님이 태어나시던 시대가 바로 이 시대이었습니다. 끊임없는 정복전쟁의 불안속에서 경제적으로는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고 사상적으로는 혼란된 가치관속에서 헤매고 있었고 정치적으로는 전제정치가 강화되고 문화적으로는 갑자기 축적된 부로 인해서 타락한 지배계급들의 문화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대부분의 대중들이 고통속에 시달리고 있는 그러한 시대이였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불교가 발생하게 됩니다.

 

①시기 : B.C 8C-5C

②이동.정착지역 : 보다 비옥한 평야지대인 갠지스강 중 하류로 이동.정착

③아뇨드라비다 : 아리아인과 드라비디인의 혼혈 발생 - 전통적 아리안의 풍습과 예절 베다문화 비판.

④산업 : 농업 중심, 농업생산력의 급속한 발전으로 수공업, 상업 발전

⑤도시국가 형성 : 상업 발달 - 화폐발달 - 시장경제 요구 -도시 중심의 국가형성

⑥거부장자 출현 : 상인의 부 축적 - 도시의 경제권 장악 - 바이샤의 계급분화 - 상인의 계급상승

⑦정복전쟁 빈번 : 아리안 계급 내의 노예와 토지획득 위한 정복전쟁 - 왕족 지위 급상승

⑧종교양태 : 철학적이고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명상과 사색, 범아일여 체득을 위한 요가

⑨크샤트리야 계급 상승 : 우파니샤드 사상의 주체로서, 도시수호자로서 4성계급의 최고 지위 확립

⑩전제군주국가 출현 : 통일국가 위한 정복 전쟁 - 대도시 고대 노예제국가의 전형이 형성

①바라문계급 약화 : 농촌을 기반으로 한 제사장의 최고 지위 하락

②신흥사상가 등장 : 급변하는 사회와 혼란된 가치관 속에서 새로운 사상을 찾는 출가 수행자 등장

③사회형태 : 고대노예제 사회로의 전환, 정착기

④계급구조 변동 : 왕족계급의 상승, 브라만계급의 약화, 상인계급의 대두

⑤대중고통 심화 : 끊임없는 정복전쟁, 부익부 빈익빈 심화, 사상적 갈등, 전제정치 강화 - 노예 양산

⑥대중의 희구 : 평화로운 성왕인 '전륜성왕(轉輪聖王)'과 진리의 법왕 '부처님'의 출현을 간절히 갈구

 

2. 불교 발생 당시의 사상적 배경

 

1. 전통 바라문 사상

 

(1)베다의 종교 사상

 

앞에서는 인도 당시의 정치, 경제, 사회적인 배경을 알아 보았고, 그러면 이제 사상적인 배경을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전통 바라문의 사상을 본다면 베다와 브라흐마나, 우파니샤드 사상이 그것일 텐데, 먼저 베다의 사상을 보자면 베다의 사상은 토테미즘 단계였습니다.

이들은 리그베다(Rig Veda)를 중심으로한 다신교적 자연 신교였는데, 리그베다는 자연신에 대한 찬가의 집성(集成)으로서 제사드릴 때 올리는 찬가였습니다. 그들은 제사를 올리면 신이 제단에 권청되어서 공희를 받고 그들의 소원을 들어준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즉, 자연에 있는 모든 자연물을 신으로 받들고 그 신에게 제사를 드리고 그래서 신이 인간의 운명을 주재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①토템이즘 단계 : 리그메다(Rig-veda)를 중심으로 한 다신교적 자연신교

②리그베다 : 자연신에 대한 찬가의 집성(集成) - 말기에 우주창조의 조물주 사상 형성

③종교양태 : 제사를 올리면 신이 제단에 권청되어 공희를 받고 소원을 들어줌 -신이 인간의 운명을 주재

다산.다수확을 위한 제사와 기원을 위한 집단적 종교의식

 

(2)브라흐마나의 종교 사상

 

브라흐마니즘단계에 들어오게 되면, 이 여러가지 자연신들이 통합되면서 일원론적 범신론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브라흐마나의 종교단계는 샤머니즘단계라 볼수 있죠. 이 브라흐마나즘은 브라흐마나라는 문헌을 중심으로 되어 있었는데, 브라흐마나는 제사의식의 발전에 따라서 제사의 세칙을 규정하는 베다 본집의 주석서입니다.

이 브라흐마나 사상을 보자면, 범은 세계를 창조하게 되고 그리고 이 일체를 성립한 후에 그 곳에 들어갔다 이렇게 봅니다. 그리고 인간창조를 범이 하게 되는데 범이 네 계급의 인간을 만들때 범이 각기 다른 부위에서 창조했다 라고 얘기하죠. 이것은 이미 알고있듯이 브라만은 머리에서 크샤트리아는 옆구리에서 그리고 바이샤는 무릎에서 수드라는 발바닥에서 인간을 만들었다고 하죠. 그래서 종교적으로 사성계급을 (한얼)시켜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 재미있는 것은 브라흐마나시대에 오면 신의 힘이 더 강해져야 되는데 오히려 베다시대보다 신의 역할이 약화되고 있습니다. 그 배경은 범이 세계를 창조하고 지배하긴하지만 인간의 운명을 주재하는 것은 신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신에게 제사를 어떻게 얼마나 잘 드리느냐에 따라서 인간의 운명이 좌우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주의 창조와 지배자는 범천이지만 범천을 좌우할수 있는 방법은 제사고 그 제사를 드릴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인간은 바라문이다.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바라문들은 제사를 지내기 위한 엄청난 재물을 신의 이름으로 약탈해갔었죠. 그리고 이때 종교 양태는 앞에 봤듯이 제사가 모든 생활과 삶의 전반을 지배하게 되는 '제사 만능주의'였습니다. 바라문지상주의와 제사만능주위가 바로 브라흐마나 시대의 종교 양태의 특징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①사머니즘 단계 : 브라흐마나(Brahmana)를 중심으로 한 인격신적 일원론적 범신론

②브라흐마나 : 제사의식의 발전에 따라 제사의 세칙을 규정하는 베다 본집의 주석서

③범의 세계 창조 : 3계(天.空.地), 3신(三神), 3베다, 3광명을 낳고 일체를 성립 후 그 속에 들어감

④인간창조의 비밀 : 범이 네 계급의 인간을 만들 때, 범의 각기 다른 부위에서 창조 -계급체계 확립

⑤범(Brahman)의 의미 : 우주 창조의 인격신과 동시에 우주의 본질

⑥제사만능주의 : 인간의 모든 문제는 범에 대한 제사를 통해서 해결될 뿐 다른 길이 없다고 주장

⑦바라문 지상(至上)주의 : 우주의 창조와 지배자는 범천, 범천을 좌우할 수 있는 존재는 바라문이라고 주장

⑧종교양태 : 제사가 모든 생활과 삶의 전반을 지배하게 되는 '제사만능주의'

 

(2)우파니샤드의 종교 사상

 

이어서 등장하는 우파니샤드 사상은 브라흐마나사상의 맥을 잇는 한편 브라흐마나 사상과는 대립되는 측면도 나타나게 됩니다.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인해서 새로운 세력을 형성한 크샤트리아계급은 그 당시에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었지만 타락한 바라문들을 존경하지 않았습니다. 기존에는 바라문과 바라문의 신을 통해서 그들의 운명을 맡겼었는데, 이제는 도시국가의 부와 권력이 바라문의 힘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힘은 기존의 바라문에 비해서 높아졌습니다만 사상적으로 볼때는 바라문보다 아래 들어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크샤트리아는 바라문사상들을 비판하면서 그들 나름의 철학체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기존의 맹목적 종교에서 세계의 근원과 자아의 본질에 대해서 추구하게되는 철학적 사유체계로 만들어 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범과 자아에 대한 철학적 사유체계를 우파니사드 문헌의 핵심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우파니사드사상은 일원론적 범신론의 모습을 띠고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이렇습니다. 우파니샤드 사상에서는 태초의 유가 전변하여 만물을 만들고, 만물 속에 그 하나가 들어갔다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 중에 인간 속에 들어온 그 범이 바로 ‘자아’다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들은 윤회사상과 업사상을 갖고 있었는데 이들은 베다원리에 입각한 선악과보의 전생결정론적 도덕률을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갖고 있는 인간의 고통과 즐거움은 전생에 지은 업 때문이다. 그래서 전생이 현생을 결정하고, 현세 없이 내세의 과보를 결정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불교의 윤회,업사상과 혼동해서 안되는 것은 무엇이냐하면 우파니샤드에서의 윤회업설은 전생결정론적인 도덕률 입니다. 마치 무엇과 같느냐 하면, 지금 내가 노예로 태어난 것은 전생에 죄를 많이 지었기 때문에 노예로 태어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노예는 현재 상태에 불만을 갖지 말고 노예생활에 충실할 때 철저한 노예로 살아갈 때 내세에 바른 생활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입장이지요. 마치 어떤사람이 감옥에 들어갔는데 죄를 지어 감옥에 들어 갔으니까 감옥생활을 충실하게 하고 나면 내가 나중에 자유롭게 될 것이다라는 얘기와 똑 같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한다는 부분에 있어서 상당한 한계를 갖게 됩니다.

그러나 교리상으로 볼 때는 우주의 본질인 범과 자아가 본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에 범아일여에 입각해서 선정을 닦으면 생사윤회를 해탈한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이 생사윤회를 해탈할 수 있는 주체는 일반 대중은 아니다 라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자, 이 우파니샤드의 종교양태는 우주와 자아의 근원에 대한 탐구와 사색을 통해서 범아일여의 체득을 위한 수정주의(修定主義)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수정주의는 닦을 '수'자에 선정한다는 그 '정'자지요. 그래서 수정주의라고 얘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사상이 하나의 유가 전변하여 만물도 만들냈다고 해서 전변설 이라고 주장되고 있습니다.

 

①종교단계 : 우파니샤드(Upanisad) 중심의 철학적 사유체계, 범아일여(梵我一如)의 일원론적 범신론.

②전변설(轉變說): 태초의 유(有:梵)가 전변하여 만물을 만들고, 만물 속에 그 하나가 돌어감

③윤회(samsara)사상: 베다 원리에 입각한 선악과보의 전생결정론적 도덕률 주장.

④업(業:karma)사상: 전생 업이 현생을 결정하고, 현세 업이 내세의 과보를 결정한다.

⑤범아일여(梵我一如): 우주의 근원(梵:brahman)과 자아(我:atman)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⑥해탈(moksa): 범아일여에 입각한 선정(禪定:yoga)을 닦아 생사윤회를 해탈한다.

⑦우파니샤드 : 베다의 끝에 위치하는 철학적 사상의 집대성

⑧종교양태 : 우주와 자아의 근원에 대한 탐구와 사색, 범아일여 체득을 위한 수정주의(修定主義)

 

(4)브라흐마나와 우파니샤드의 차이점과 동일점

 

그러면 브라흐마나와 우파니샤드의 차이점과 동일점을 본다면, 범(梵)에 대한 해석입니다. 브라흐마나에서는 인격신으로 봤는데, 우파니샤드에서는 인격신이 아니라 유(有)다. 유, 태초의 유가 있었다, 그래서 좀 다릅니다. 그러나 절대윤리이자 우주의 본질로 보는 것은 동일하죠. 즉 전변설은 동일합니다. 인간과 세상이 만들어진 것이 무엇인가 절대적인 어떠한 존재 또는신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의 입장은 같습니다.

자아에 대한 해석은 브라흐마나에서는 범천의 창조물이며 범에 종속된 것이었는데 우파니샤드시대에 오면 범과 동일한 우주원리로서 나타납니다. 그래서 자아를 강조하게 됩니다.

그리고 제사의식이 브라흐마나시대에는 인간의 삶을 결정하는 절대적 힘이었는데 우파니샤드에서는 그 제사가 바라문의 배를 채워줄 뿐 크샤트리아와는 관계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사의 힘과 의미를 축소시키게 됩니다.

그리고 인간의 운명을 보면 인간의 운명을 누가 결정하는 것이냐를 보면, 베다시대에는 신의 의지가 결정한다 그랬고, 브라흐마나시대에는 제사가 결정한다 그랬고, 우파니샤드시대에는 전생의 업이 결정한다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사성계급제도에 대해서는 브라흐마나시대에는 바라문중심의 사성계급제도였고 우파니샤드시대에는 크샤트리아 중심의 사성계급제도였습니다. 그래서 중심이 바뀌긴했습니다만 바라문과 크샤트리아 밑의 바이샤와 수드라는 변동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성질서 자체는 동일하게 파악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로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베다의 권위는 브라흐마나시대에서는 신앙적, 종교적 접근으로서 베다의 권위는 양사상 모두 절대적인 권위를 지닙니다. 그래서 인도전통사상에 있어서는 아직까지도 베다의 권위를 인정하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크게 두파로 나뉘게 됩니다. 그래서 우파니샤드사상이 브라흐마나사상에 대해서 어느정도 대립하는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만 베다사상과 브라흐마나 사상과 우파니샤드 사상은 공이 베다 베다의 권위를 절대적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모두 브라흐마니즘이라는 하나의 사상체계로 묶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상은 지배계급의 아리안족의 이데올로기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①범 : 인격신(梵天) / 유(有) ; 절대원리이자 우주의 본질로 보는 것(전변설은 동일)

②자아 : 범천의 창조물(범에 종속) / 범과 동일한 우주원리(梵我一如)

③제사 : 인간의 삶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힘 / 제사의 힘과 의미 축소(바라문 비판)

④인간의 운명 : 신의 의지(베다) / 제사의 힘 / 전생의 업-선정의 힘으로 극복

⑤사성계급 제도 : 바라문 중심의 계급 / 크사트리야 중심의 계급 ; 사성질서 자체는 동일

⑥베다의 권위 : 신앙적 종교적 접근 / 철학적 접근 ; 베다의 권위는 양 사상 모두 절대적

 

2. 신흥 사상가의 사상

 

이제 기존의 브라흐마나와 우파니샤드를 모두 부정하고 새로이 자기들의 사상을 편 신흥사상가들의 입장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당시에는 신흥사상가가 우후죽순처럼 불어나게 되어서 62견해 폭은 363견해나 되는 엄청나게 많은 사상가들이 존재하고 사상적 견해가 있었습니다. 여기에서는 그러한 사상가들의 전반적인 경향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신흥 사문(沙門,Sramana)들의 사상적 경향

 

이들의 사상은 기존의 브라흐마니즘사상과 정면으로 대립되게 되는데 이들이 브라흐마니즘에 대해서 정면으로 대립되는 근거는 바로 세상이 바로 어떻게 생성되었는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에 대한 입장입니다.

그들은 '세계구성의 근원을 신이 창조한 것이 아니다'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된 것이냐 하면 이 세상에는 불변하는 물질적 요소가 있다 이렇게 봅니다. 그 물질적 요소에 대해서는 각자의 사상에 따라서 4가지 요소가 있다. 7가지 요소가 있다. 12가지 요소가 있다. 그리고 또 많은 여러가지 요소를 주장합니다만, 어쨋든 이 '물질적요소가 세계의 근원'이다 이렇게 봅니다. 그래서 이들의 주장을 요소론이라고 부르죠. 이 요소론은 신의 세계창조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요소들이 어떻게 세상을 만들었느냐 하면 각각의 요소들이 나름의 인연에 따라서 서로 모여서 쌓이고 모여서 취합되어서 이루어진다라고 해서 적취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적취설은 브라흐마니즘에 있어서 전변설과 정면으로 대립되는 것이지요.이렇게 세계관에서부터 정면으로 기존의 브라흐마니즘 사상에 대해서 대립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브라흐마니즘 선악관과 제사의 권위를 당연히 부정하게 됩니다. 기존에 있었던 브라흐마니즘적 선악관이라는 것은 브라흐마니즘 입장속에서 만들어진 것이고 바라문과 크샤트리아 입장속에서 만들어낸 것이지 본래 그러한 것이 있을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요소론과 적취설을 주장하는 입장속에서는 당연한 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브라흐마니즘적인 선악관을 부정하고 제사의 권위 또한 부정하죠. 신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신에게 제사를 드리므로 인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도 전혀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당연한 얘기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도덕 부정론적 입장을 띄게 됩니다. 이들은 바라문계급과 크샤트리아계급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인간에 대해서도 계급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혈통의 순수와 출생에 의한 신분을 떠나서 출가의 길도 해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신을 부정함으로 인해서 베다의 권위도 부정을 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수행의 측면에 있어서 바라문사상의 수정주의를 정면에서 부정합니다. 그리고 바라문과 크사트리아의 공이 타락한 쾌락주의자들이라고 부정하고 그들은 이러한 세속의 삶을 부정하고 금욕과 고행을 통해서 궁극의 행복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들을 대부분 고행주의자라고 이야기 하는데, 이들의 고행은 단순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닙니다. 나름대로 자신들의 사상적 체계에 기반을 두고 일어나는 것인데, 이들은 육체에 고통을 많이 가함으로 인해서 행복으로 다가간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근거는 인간이 형성될 때 고통도 하나의 요소로서 인간에게 들어온다 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형성될 때는 지,수,화,풍 또는 거기에 고통의 요소도 하나의 물질적 요소로 들어와서 인간에게 고통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행복을 얻거나 즐거움을 얻는 것은 신의 의지나 전생의 업 때문이 아니라 이미 내재되어 있는 고통이 밖으로 발현될 뿐이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 고통을 밖으로 표출시키는 것이 바로 요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예를들면 30%의 고통과 10%의 행복이 있고 이 30%의 고통은 언젠가는 받아야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고통을 미리 받자는 것이죠. 어차피 맞아야만 할 매를 미리 스스로 다 받아 버린다는 겁니다. 사상가에 따라서는 전생과 윤회를 부정하는 사상가도 있습니다만은 부정하지 않는 사상가들도 있습니다. 부정하지 않는 사상가들은 그래서 내생의 고통도 미리 받아 버리자 이런 입장을 띄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얘기된 여러가지들은 말 그대로 경향입니다. 그래서 이 모두를 포함하는 사상도 있고 이중에 부분을 포함하고 있는 사상도 있고 서로 부분 부분 간에 대립되는 사상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이 신흥사상에 대해서 몇가지 예를 들어서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당시의 신흥사상가들은 363견해나 62견해라는 수많은 사상이 존재했었습니다만 부처님의 경전을 근거로 해서 부처님 당시에 유명했던 6가지 사상, 소위 육사외도라고 불리우는 사상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에서 외도(外道)란 물론 불교의 입장 속에서 본 불교 밖의 가르침을 얘기하는 것이지요.

 

①출가주의 : 세속 삶을 부정하고 출가하여 숲속에서 명상 수행

②고행주의 : 타락한 쾌락주의를 부정하고 금욕과 고행을 통해서 궁극의 행복을 추구 - 수정주의 부정

고행의 의미 - 육체의 '고'의 요소를 미리 제거함

③신 부정 : 바라문 사상의 중심인 범(梵)을 정면으로 부정 - 베다의 권위 부정

④혁신적인 인간관 : 혈통의 순수와 출생에 의한 신분을 떠나 출가의 길을 개방 -    계급제도 부정

⑤도덕부정론 : 브라마니즘적 선악관(善惡觀)과 제사의 권위 부정 - 바라문계급의 권위 부정

⑥적취설(績聚說) : 세계구성의 근원을 신의 창조가 아닌 물질적 요소의 결합에서 찾음 - 전변설 부정

⑦요소론(要素論) : 불변하는 물질적 요소가 세계의 근원이라는 기계론적 유물론 - 신의 세계창조 부정

 

(2)부처님 당시의 유명한 여섯가지 사상 : 육사외도(六師外道)

 

먼저 '푸라나 카사파'라는 사람의 사상을 알아보면, 이 사람은 본래 노예 출신이였습니다. 노예출신이였던 푸라나카사파는 선악의 실재성을 부정하고 도덕관념을 부정합니다. 그는 선악이란 본래 실체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냈다는 것이죠. 때문에 도덕이라는 것도 본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에 대한 관념만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선악과 도덕을 부정하는 도덕부정론이라고 불리워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지타 케사캄발린'이라는 사람은 '4요소론'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는 이 세상에 참된 요소는 '지,수,화,풍' 4가지 뿐이다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 4가지 요소가 모여지고 쌓여져서 모든 생명들을 만들어 나간다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은 죽으면 4요소가 흩어져서 영혼도 존재하지 않고 때문에 윤회라는 것도 있을 수가 없고 선악에 대한 과보도 있을 수가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당연히 인간의 운명을 주재하는 신에 대한 제사나 공희도 부정하고 있죠. 철저한 유물론을 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생의 가치는 쾌락에 있다는 괘락론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쾌락이라는 것은 타락하는 쾌락과 방종하는 쾌락이 아니라 인간에게 있어서 본질적인 행복은 쾌락에 있다는 것이죠. 예를들어 노예같은 경우에는 자신의 쾌락을 거부당하고 있습니다. 노예는 노예로 태어났기 때문에 쾌락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노예의 직분에 충실해서 노예로 살아갈 때 그것이 행복이다 이렇게 얘기되고 있는 기존의 바라문 사상에 대해서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파쿠다 캇차아나'같은 경우에는 7요소론이라고 주장되고 있는데, 그는 지,수,화,풍 뿐만 아니라 고,락,영혼도 물질적 요소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생명이 태어나는 것은 지,수,화,풍과 고,락,영혼이 모여서 생명이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가 고통을 받는 것은 그러한 요소 때문에 고통을 받고 그가 즐거움을 얻는것은 그러한 요소때문에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7가지요소로 분해되고, 또 이렇게 분해란 것이 어떠한 인연에 의해서 지, 수, 화, 풍과 고,락, 영혼으로 태어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한 생명이 죽으면 그 생명의 영혼은 흩어져 버리고, 그리고 그 영혼의 요소가 또 다른 생명으로 태어난다.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는 신이나 제사에 의한 행과 불행을 부정하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합니다. 인간이 고통받고 즐거움을 받는 것도 인간이 스스로 다른 조건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요소로 규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참 허무맹랑한 것 같습니다. 나름대로는 기존의 바라문 사상의 제사와 신의 창조에 대한 정면대립이 되는 것이죠.

그리고 '막칼리 고살라'에 의한 12요소론이 있습니다. 이 12요소론은 지, 수, 화, 풍과 고, 락, 영혼 뿐만 아니라 허공, 득, 실, 성, 사도 하나의 불변하는 요소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12가지 요소가 결합되어서 생명이 만들어지고 죽으면 다시 12가지 요소로 해체되고 그리고 그러한 요소들이 어떠어떠한 인연에 의해서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난다.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는 물질 자체가 하나의 살아있는 요소로 보죠. 그래서 소위 활물론(活物論)이라 봅니다.

그리고 인간의 운명은 무엇에 의해 좌우되느냐라고 볼 때 그는 무인 무연론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즐겁고 고통을 받는 것은 그럴만한 특별한 인연이 있어 그런 것이 아니라 그저 우연히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어느 때는 고통을 받고 어느 때는 즐거움을 받을 수 받게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무인무연론을 주장하면서 숙명론적 결정론을 내세우고 있으면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회의론이나 불가지론이라는 것은 세상에 대한 무관심이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 수 없기 때문에 판단은 중지해야 된다는 것이죠. 내가 확인하지 않고 증명하지 않은 것은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알 수 없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지혜, 인간의 지식이라는 것이 결코 믿을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정말 그런가, 과연 그런가 하고 살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얘기를 들으면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는 것은 '너의 무지의 끝을 알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 생활 속에서 내 의견을 이야기하고 내 주장을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스스로 정말 알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입장 속에서는 그 안다는 것이 무지의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아이고 나 배고프다' 이럽니다. '너 왜 배고프냐?' 밥을 안 먹어서 배고프지' 밥을 안 먹으면 왜 배고프지?' [창자가 비었으니까 배고프지.' '그러면 왜 창자가 비었지?' '밥을 안 먹었으니까 창자가 비었지' 이래요. 결국 배고프니까 배고프다 이렇게 얘기가 나옵니다.

또 하나 예를 들어 볼까요. '아 참 꽃이 예쁘다' 그러면 '꽃이 왜 예쁘지? 이유가 뭡니까?' '꽃이 예쁘니까 예쁘지' '꽃은 왜 아름답다고 느끼지' '아 예쁘니까. 아름답다고 느끼지!' 이렇게 되요. 그럼 결국 뭡니까? 꽃은 예쁘니까 예쁘다. 이렇게 됩니다. 왜? 왜? 왜를 두번이나 세번만 물어보면 우리는 모르게 됩니다. 말을 할 수가 없어요. 그저 어느 순간에선가부터는 믿어버리는 거죠. 그래서 다시 본다면 우리가 안다는 것에 대한 근거는 모른다는 것에 있다는 것입니다.

자, '산자야 벨라터풋타'가 소크라테스의 입장과 똑같은지 모르겠습니다만 그의 입장은 세상에 대한 맹목적인 회의가 아니라, 당시에 있었던 수많은 사상가들의 얘기들이 사실은 정확한 깨달음과 정확한 지식과 지혜를 통한것이 아니라 뭔가 자기도 모르는 얘기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산자야 같은 경우에는 그 당시에 있었던 수많은 사상가들의 무지의 끝을 논파하면서 교세를 확장합니다.

그가 간단히 '세상은 모를 것이야'라고 얘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부처님의 2대 제자로서 가장 훌륭했던 목건련과 사리불존자가 바로 '산자야 벨라티풋타'의 2대 제자였다는 사실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 목건련과 사리불은 '산자야 벨라타풋타'가 뭔가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그러나 그 보다 더 훌륭한 스승을 찾지 못해 애태우다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순간 스승을 버리고 부처님께 귀의해서 바른 법을 증득하게 됩니다. 어쨌던 '산자야'가 그 당시에는 상당히 중요한 인물이었던 것은 사실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니간타 나타풋타'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자이나교의 교주로서 유명합니다. 그는 소위 이원론적 우주론을 들고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이원론적 우주론이란 모든 존재는 명(命)과 비명(非命)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입장입니다. 기존의 바라문 사상이 모든 것의 창조를 신으로부터 보고 일반 사상계가 물질로 보는 것임에 반해서 그는 이 두가지를 취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혼과 육체가 나름대로 자기의 생명을 갖고 존재하는데 그에게 있어서는 영혼과 육체를 대립적으로 보는 인간관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도 엄격한 계율과 혹독한 고행주의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는 육체와 영혼의 대립이 인간의 삶인데 여기에서 육체에 지면 우리는 불행해 지고 육체를 이기고 정신이 맑아지면 승리하는 것이다. 그것이 행복이다.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육체에 끌리는 삶을 철저히 부정해서 엄격한 계행을 통해서 살아가고, 그리고 혹독한 고행을 통해서 육체의 욕구를 처절하게 차단하는 것으로서 수행을 삼고 있습니다.

자이나교에는 오계가 있는데 불살생, 불사음, 불망어, 불음주, 그리고 불투도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무소유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자이나교의 철저한 불살생과 무소유는 당시 대중들에게 상당한 존경과 신뢰를 받게 만들었고 많은 대중들의 지지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교리가 다른 일반 사상들에 비해서 나름대로 논리적이고 체계적이기 때문에 인도에 지금까지 남아있는 유일한 육사외도 중에 하나의 사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①푸라나 카사파(Purana Kassapa) : 선악의 실재성 부정, 도적관념 부정

②아지타 케사캄발린(Ajita Kesakambalin) : 4요소(지.수.화.풍)만이 참된 실재, 허공의 존재 인정

영혼, 윤회, 선악 과보, 제사, 공희(供犧) 부정, 철저헌 유물론, 생의 가치는 쾌락에 있다

③파쿠다 캇차야나(Pakudha Kaccayana) : 7요소설 (4요소+고.락.영혼), 영혼도 물질적 요소로 이해,

신이나 제사에 의한 행.불행 부정, 인간의 자유의지 부정

④막칼리 고살라(Makkhali Gosala) : 12요소설 (7요소+허공.득.실.생.사),

활물론(活物論), 무인무연론의 숙명론적 결정론, 인간의 자유의지 부정

⑤산자야 벨라티풋타(Sanjaya Belatthiputta): 회의론, 불가지론-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한 판단중지

⑥니간타 나타풋타(Nigantha Nathaputta) : 자이나교, 이원론적 우주론(존재는 命과 非命으로 구성)

영혼과 육체를 대립적으로 보는 인간관, 엄격한 계행과 혹독한 고행주의(철저한 불살생과 무소유)

 

3. 부처님의 비판 :삼종외도(三種外道): {중아함경 제3 :度經}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베다와 브라흐마나,우파니샤드를 포함한 브라흐마니즘 사상과 육사외도를 포함한 일반사상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펴고 계셨는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사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이에 대한 입장은 부처님이 삼종외도, 오종악견에 대한 비판으로서 정의할 수가 있겠는데 여기에서는 삼종외도를 통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은 중아함경 제3도경에 있는 것인데 부처님께서는 수많은 사상들을 크게 3가지로 분류하셨습니다. 여러가지 사상들이 있지만 그것은 결국 기본 입장에 있어서 세가지에 속한다 이런 것이죠.   그것은 바로 존우론과 숙명론과 무인무연론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1)인 존우조(因尊祐造)

 

존우론이라는 것은 인 존우조라고 얘기되는데, 그것은 사람의 하는 바는 모두 존우(神)의 지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존우는 신(神)을 얘기합니다. 신. 그래서 사람을 만든 것도 신이고, 사람의 행복과 고통을 주재하는 것도 신이고,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신에 의지해서 살아야 된다는 입장에 대한 비판이죠. 이것은 바로 브라흐마니즘에 대한 비판이고, 그리고 우파니샤드의 전변설에 대한 비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①의미 : 사람의 하는 바는 모두 존우(神)의 지음에서 비롯되었다.

②부정 : 만일 존우가 있다면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을 수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바른 것과 그른 것도 있을 수 없을 것이요, 이에 대한 바램과 의지도 없을 것이다.

이를 바로 알지 못하면 바른 생각을 잃을 것이요, 바른 지혜를 얻도록 가르칠 수도 없을 것이다.

③비판 대상 : 브라흐마나와 우파니샤드의 전변설.

 

(2)인 숙명조(因宿命造)

 

두번째는 숙명론에 해당하는데 이것은 인 숙명조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하는 바는 모두 숙명으로 지어졌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숙명은 '이미 지어져 있’는 것입니다. 누가 바꿀수 없이 이미 고정되어 있는 것이다.  '결정되어 있는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당시에 우파니샤드 전생의 현생결정론을 비판한 것이고 요소론을 비판한 것입니다.

우파니샤드에서는 현재의 인생이 전생에 의해서 완전히 결정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바꿀 수 없다는 입장이고 요소론의 입장도 요소에 의해서 인간의 길흉화복이 결정되었기 때문에 인간의 의지로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①해석 : 사람의 하는 바는 숙명으로 지어졌다.

②부정 : 만일 숙명이 있다면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을 수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바른 것과 그른 것도 있을 수 없을 것이요, 이에 대한 바램과 의지도 없을 것이다.

이를 바로 알지 못하면 바른 생각을 잃을 것이요, 바른 지혜를 얻도록 가르칠 수도 없을 것이다.

③비판 대상 : 우파니샤드의 전생의 현생결정론 비판 / 요소론 - 인생의 요소결정론 비판

 

(3)인 무인무연조(因無因無緣造)

 

세번째는 무인무연론에 해당합니다. 이것은 인 무인무연조라 표현하고 있는데, 사람이 하는 바는 '인도 없고 연도 없다’ 는 것입니다. 우연히 생긴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막칼리 고살라와 파쿠다 캇차야나와 같은 사람의 입장을 비판한 것입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 비판하는 근거를 이렇게 들고 있습니다.

만약에 신이 있다면, 만약에 숙명이 있다면, 만약에 인도 없고 연도 없다면,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도 있을 수 없다. 만약에 신이 결정하고 숙명이 결정하고 우연이 결정한다면 인간이 스스로 판단해서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 될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죠. 신이 시키는 대로 살수 밖에 없는 것이고 이미 정해진 대로 살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우연히 그렇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없다는 것이죠. 만약에 신이나 숙명이나 우연이 나를 결정한다면 해야 된다, 말아야 된다는 생각이 따로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바른 것도 그른 것도 있을 수 없을 것이요, 이에 대한 바램과 의지도 노력도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걸 바랠수 조차도 없고, 바래봤자 의미도 없고, 노력을 해 봤자 의미도 없고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를 바로 알지 못하면 바른 생각을 잃을 것이다. 신과 숙명과 우연이 인간을 지배한다라는 것에 대한 허구를 꿰뚫지 못하면 바른 생각을 잃을 것이다. 그래서 바른 지혜를 얻도록 가르칠 수도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①의미 : 사람의 하는 바는 인도 없고 연도 없다.

②부정 : 인도 없고 연도 없이 괴로움이 일어난다면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을 수도 없다.

이렇게 되면 바른 것과 그른 것도 있을 수 없고, 이에 대한 바램과 의지도 없을 것이다.

이를 바로 알지 못하면 바른 생각을 잃을 것이요, 바른 지혜를 얻도록 가르칠 수도 없을 것이다.

③비판 대상 : 막칼리 고살라, 파쿠다 캇차야나

 

(4)기존 사상의 한계

 

부처님께서는 기존 사상에 대해서 여러 가지 사상들을 세 가지로 딱 정리해 놓은 것이고 이 세 가지를 이 한가지로 비판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인간의 인생을 인간 외적인 것에 의해 규정받는 것으로 보았다는 것에 대해서 공통점으로 보고 비판하고 계신다는 점입니다.  즉, 인간의 주체성을 찾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일반사상계는 기존 바라문의 한계는 부정하였으나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파괴는 이루어 놓았지만 그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건설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단명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이나교 같은 경우는 나름대로 살아온 가치를 제시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기존의 사상의 한계속에서 가장 갈등하고 고민했던 사람으로서 우리는 사리불과 목건련을 들 수 있습니다. 사리불과 목건련은 부처님께 출가하기전에 산자야 벨라더풋타의 제자였습니다. 그런데 사리불과 목건련은 뭔가 궁극의 진리를 찾기 위해서 돌아다니고 있는데 산자야를 만남으로 인해서 기존의 사상가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문제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의 밑에서 수행합니다만 그의 경지를 알게되고 나서 회의를 하게 됩니다.

그가 완전한 깨달음을 이룬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는 잘못된 가치에 대한 것은 극복을 하고 비판을 하고 있으되 그 나름에 새로운 가치는 제시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슴이 답답한 상태로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스승을 찾아 다니고 있었습니다. 물론 스승으로부터는 뛰어난 기량을 인정받아서 500명의 수행자들을 각각 나눠서 지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부처님의 제자인 마승존자를 만나서 그에게 가르침을 듣게 됩니다. 그 가르침을 듣는 것도 특별히 많이 듣는 것도 아닙니다. 길을 가는 마승존자의 뒷 모습과 걸음걸이가 하도 거룩하고 고요하고 안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를 뒤쫓아 가서 그에게, “당신이 갖고 있는 가르침이 무엇이냐? 당신의 스승은 누구시길래 그렇게 거룩한 모습을 하고 있느냐? 그 가르침을 좀 들려달라." 하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마승존자가 한마디 합니다.  길고 복잡하지도 않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 생겨나는 것, 우리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세상은 모든 것이 멸하는 것은 인연이 다해서 멸하는 것, 우리 스승은 그 모든 것을 완전히 깨달았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자 사리불존자가 그 한마디를 듣고 기존에 있었던 모든 의심과 혼란이 사라져 나가면서 부처님께 곧바로 귀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①인간의 인생을 인간 외적인 것에 의해 규정받는 것으로 보았다.

②인간의 주체성을 찾지 못했다.

③일반사상계는 기존 바라문사상의 한계는 부정하였으나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지 못하였다.

 

(5)부처님의 입장

 

그러면 부처님께서는 기존의 사상의 한계를 비판하시고 당신께서는 어떤 입장을 갖고 있었는가? 부처님께서는 '인간의 삶은 신의 의지나 전생이나 우연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이 아니다' 라고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만약에 우리의 세 입장이 옳다면, 현재의 모든 결과를 현재의 인간이 책임질 필요조차 없게 된다는 논리라는 거죠. 뿐만 아니라 인간의 바램이나 의지나 노력도 있을 수가 없게 된다. 인간이 받는 모든 고락은 모두 자신이 지은대로 받게 되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자업자득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만이 자기 인생의 주인이다'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보다 더 구체적으로 브라흐마니즘과 신흥사상에 대해서 그들의 세계관과 인생관, 그리고 수행관에 대해서 조목조목 따져 보도록 하겠습니다.

불교의 세계관은 신에 의해서 창조되었다는 전변설을 부정하고 그리고 세상을 물질적 요소에 의해서 형성된다는 적취론도 부정하는 입장입니다. 이 세상에 모든것은 어떠한 신적인 외적요소나 물질적 요소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나름대로 상호 연관구조에 의해서 연기적 관계로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굳이 부처님의 세계관이 전변설과 적취설 중 어느 쪽에 가깝느냐? 하면, 전변설 보다는 오히려 적취설쪽에 가깝습니다. 세상이 형성되어 가는 과정에 있어서는 신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자연이 그 나름대로의 운동논리에 의해서 만들어 진다는 논리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입장에서 본다면 적취론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적취론이 갖고 있는 세계구성이 불변의 요소로만 이루어졌다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조차도 부정합니다. 지, 수, 화, 풍의 요소조차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연관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더군다나 고, 락, 영혼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요소로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부정하고 계십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서로 독립되는 규정성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 규정성을 갖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호의존적인 관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연기사상의 핵심이 되겠습니다.

전변설과 적취설을 보다 철학적인 의미에서 규정한다면, 전변설은 인중유과론이라 하고 적취설은 과중유인론이라고 합니다.

인중유과론이라는 것은 원인 속에서 이미 수많은 과가 내포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과중유인론이라는 것은 하나하나의 원인은 그 의미를 찾기가 어렵지만 그것이 결과로 나타난 속에 보면 인이 내포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전변설은 하나의 범이 전변하여 여러개를 만들었기 때문에 일이 바로 되는 과정속에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 일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적취설의 입장은 하나가 형성되기 위해서 여러가지가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다가 하나도 모여지는 과정을 겪게 됩니다. 이렇게 전변설과 적취설은 철학적으로 근본적으로 다른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하나(一) 속에 다(多)가 있는가 하면, 또 그 다(多)속에 각각 하나(一)가 다 들어 있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즉 일(一)과 다(多)를 대립적으로 보지 않는 것입니다. 또 인(因)과 과(果)를 대립적으로 보지 않고 별개로 보지도 않습니다. 인(因)과 과(果)는 상호 의존적으로 존재하고, 인으로 의해서 과가 되지만 그 과는 그 인의 의미를 새로 규정하게 되고, 또 그 과는 새로운 원이 됩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불교는 일(一)과 다(多)를, 그리고 인(因)과 과(果)를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긴밀한 연관구조 속에서 살펴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이야기는 법성계에 보면 아주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일체중생 다중일 일즉일체 다즉일 일미진중 함시방 일체진중 여겨시’(일체중생 다중일 일즉일체 다즉일 일미진중 함시방 일체진중 여겨시) 하나 속에 다가 있고 다속에 모두 하나가 들어가 있다 이겁니다. 그래서 일과 다를 대립적으로 보지 않는 것이 불교의 세계관입니다. 이것이 바로 중중무진한 연기(緣起)의 원리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해석에 대한 입장에서 본다면, 브라흐마니즘에서는 신의 의지로서 생겨난 관념적 산물로써 인간을 봅니다. 그리고 일반사상계에서는 물질적 요소로 인한 유물론적 인간관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관념적 요소로서의 인간관과 유물적 요소로서의 인간관 모두다를 부정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오온과 12처, 18계 사상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오온과 12처, 18계는 주로 인간의 본질과 그 관념 형성과정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는데, 오온은 인간에 대해서 다섯가지 요소로 규정되어 있다라고 얘기합니다. 그것은 색, 수, 상, 행, 식을 의미하죠. 여기서 색(色)은 물질적 요소를 의미하고, 수상행식(受想行識)은 인간의 의식적 요소를 얘기합니다.

그런데, 이 다섯가지 또한 하나의 요소로서 불변하는 알맹이로 존재하는 것이냐 하면, 그것이 아니라 연관구조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어떠한 연관구조인가 하면, 색, 성, 향, 미, 촉, 법의 6경과 그리고 안, 이, 비, 설, 신, 의 6근이 만나서 6식을 이루고, 이렇게 18계가 오온을 형성하는 과정으로 나타나고 이 오온을 인간의 모습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의 가치관, 즉 선악관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살펴 보겠습니다.  브라흐마니즘에서는 선인선과를 주장하고 있고 일반사상에서는 무인무연을 주장하면서 도덕부정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말(言)로 본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이 브라흐마니즘쪽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실제의 내용은 정반대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윤리나 도덕이라는 것이 본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이 관계속에서 연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선,악에 본래 실체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 속에서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라는 본질을 꿰뚫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면, 부처님의 선악관이 일반사상계과 일치하느냐 하면 또 그렇지도 않습니다. 일반사상계에서는 기존의 선악관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보고, 즉 계급중심적인 브라흐마니즘의 이데올로기를 깨뜨린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입장을 갖지만 그 나름대로 새로운 가치관을 세우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면 부처님께서는 어떠한 세계관을 세우는가?

인간이 모두 평등하는 입장속에서 선악이라는 것은 각자의 생명에 기준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면 인간만이 그 윤리를 갖고 있냐면 또 그것도 아닙니다.  인간의 생명이 소중한 것처럼 다른 모든 자연물들의 생명도 소중하다고 가르치십니다. 그것은 요즘에 일어나고 있는 환경문제나 생태문제로 본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이 얼마나 정확한가를 볼 수 있습니다.

또 그렇다면 동물이나 식물 이러한 소위 생물만이 의미있는 것이냐 하면 거기에 대해서도 우리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지구 자체는 하나의 거대한 유기적 생명체로서 인간과 더불어서 생물과 모든 것들이 함께 어울어져 있습니다. 그럴때 그 모든 것 하나하나에 대해서 중요한 가치와 의미를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게는 인간 전체, 인간 각각 그리고 생명을 중심에 놓고 가치관을 세우시게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오계중에서 가장 첫번을 불살생계로 두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존에 있는 브라흐마니즘의 선인선과도 극복을 하셨지만 부처님께서는 새로운 신흥사상가들의 도덕 부정론에 부정을 위한 부정에 빠져 있는 것들조차 극복을 하시고 새로운 가치관을 세우셨습니다.

인식론적 입장속에서 본다면 브라흐마니즘과 일반사상계와 또 다른 대립을 하고 있습니다.  브라흐마니즘에서는 바른 인식과 바른 지혜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 그것은 신과의 합의를 통해서 하나 될 수 있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의 계시를 통해서 내가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지혜나 바른 가치를 신으로부터 받는다.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사상계 속에서는 또 다른 표현의 극단으로 내걸고 있습니다. 바로 경험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일반사상계 속에서는 내가 직접 경험한 것 아니고는 절대로 믿을 수 없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 당시에 베다사상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에 대해서 반발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에 한계 이상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그러나 바른 인식은 신이 주는 것도 아니고 경험만으로 얻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경험을 바탕으로 하되, 그러나 인간의 관념과 의식과 여러가지 인식작용을 통해서 새로운 지혜와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있어서 즐거움은 왜 생기고 괴로움은 왜 생기는가? 즉, 우리의 인생에 고락이 어떻게 해서 생기는 가에 대해서 알아볼 것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일 수 있겠습니다.

브라흐마나사상에서는 인간의 고, 락이 신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제사에 의해서 바꿔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즉, 신과 제사의식이 인간의 고, 락을 결정하는 요소라고 봅니다.  우파니샤드에서는 현재의 고, 락이 전생의 업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사상계에서는 현재의 고락이 물질적 요소에 의해서 발현되어 나간 것이다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연한 기회에 밖으로 표출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앞에서 살펴보았습니다만 다시 거론하는 것은 우파니샤드의 업사상과 불교의 업사상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시 한번 정리해 보았습니다.

우파니샤드의 업사상은 전생결정론적입니다. 그래서 현재의 고, 락은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보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불교의 업사상은 물론 부처님께서는 전생을 직접 얘기하신 경우가 별로 많지 않았습니다만 이야기하실 때도 그것은 전생결정론을 강조하실려고 한 것이 아니라, 현생의 주체적 의지를 강조하고자 한 것입니다.  전생에 이러한 일이 있어 현생에 이렇게 됐으니까 현생에도 그것을 바꿔나가는 실천해 나간다면 내생에도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입장을 강조하기 위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전생과 업을 얘기하고 있다 하더라도 불교의 업과 우파니샤드의 업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행관에 대해서 살펴보고 맺고자 합니다. 브라흐마니즘의 새 수행관은 수정주의고 일반 사상계에서의 수행관은 고행주의였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당신께서 직접 깨달음의 과정을 통해서 이 두가지를 다 극복하셨습니다.  선정주의는 인간의 고통을 선정에 들어 있을 때만 잊어버림으로 인해서 선정을 위한 선정에 들어버리게 되고, 고행주의 또한 현실의 육체적인 끄달림은 벗어나게 해주지만 끊임없는 고행을 추구함으로 인해서 고행을 위한 고행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에 대한 바른 가르침으로써 중도를 말씀하셨습니다.

 

①인간의 삶은 신의 의지나 전생의 인과나 우연에 의해서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다.

②만약 위의 세 입장이 옳다면, 현재의 모든 결과를 현재의 인간이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논리이다.

③뿐만아니라 인간의 바램이나 의지나 노력도 있을 수가 없게 된다.

④인간이 받는 모든 고.락은 모두 자신이 지은대로 받는 것이다.

⑤자기만이 자기 인생의 주인이다.

 

 

 

 

 

1. 불교란 무엇인가 ?

 

 

1. 논의의 시작

 

- 헛된 땀만 흘리는 어리석은 사람의 비유 : {백유경}의 이야기

 

  아이가 있었는데, 어느날 그 아버지가 그 아이에게 얘기합니다.

"얘야, 너 오늘 저녁에 일찍 자거라" "왜 그렇습니까, 아버지?" 하고 아들이 묻자,

아버지는 "너,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장에 좀 다녀와야겠다." 하고 말씀하였죠. 그러자 아들은 아버지의 말씀대로 일찍 잤습니다.

아버지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아들을 찾아보니까 아들이 간 데가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아침에 일어나서 '장에 가서 무엇 무엇을 사오고, 무엇 무엇을 살펴보고 와라' 하고 얘기하려고 했는데 아들이 없어진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잠깐 어디 갔겠거니' 하고 생각하다가 점심때가 지나고 저녁때가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처음에 궁금하다가 그 다음에 아들이 당신의 말을 듣지 않고 놀러 간 줄 알고 화가 났었습니다. 그리고 걱정도 되기 시작했지요. 밤이 다 깊어가지고 아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보자마자 크게 호탕치기 시작했습니다.

"야 이놈아, 도대체 너는 어디갔다가 이제 오는 것이냐?" 라고 말이죠. 아들은 황당하고 매우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저는 아버지 말씀대로 아침에 일어나서 장에 다녀왔습니다." 아들은 아버지 말씀대로 정말 아침 일찍 일어나서 장에 갔던 것입니다. 장에 가보니까 구경꺼리도 많고 사먹을 것도 많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기웃기웃 거리다가 밤이 깊어서야 돌아온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렇게 한탄을 합니다.  "이 녀석아, 넌 도대체 왜 장에 가는지 목적도 없이 가서 무엇을 해야 되는가에 대한 얘기도 듣지 않고 가서 헛된 땀만 흘리고 고생만 하고 돌아오지 않았느냐." 이렇게 얘기하곤 방으로 들어 가버렸죠.

우리는 이것을 보고 도대체 세상에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고 생각하겠지만, 부처님께서는 이 경전 뒤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범부 중생들 또한 그와 같다. 부처님 법을 만나서 정진을 하고 기도를 하고 공부를 하지만 그 정확한 목적의식이 없기 때문에 헛된 길로 빠져서 인생을 허비하고 죽음을 잊게 된다' 라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 불교란 무엇인가?

 

(1)佛의 敎 : 부처님의 가르침

 

(2)불교의 핵심 : 부처님께서 가르침을 설하신 목적

①부처님께서는 정각 후 45년 동안 도대체 무엇때문에 가르침을 설했나 ?

②부처 만들기 위해 - 불교란 곧 부처되기 위한 가르침

 

(3)佛되는 敎 : 부처되는 가르침

* 불교는 부처되는 목적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필요없는 가르침

 

(4) 부처님이란 어떤 분인가?

①붓다 : Buddha - 깨달은 사람

②무엇을 깨달으신 분인가 ? - 진리를 깨달은 분

③진리(眞理)란 무엇인가 ? - 참된 이치 - 세상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④진리를 깨달으면 어떻게 되는가 ? - 부처가 된다. 성인(聖人)이 된다

⑤깨달으면 되면 어떤 삶을 사는가 ? - 부처처럼 살아간다. 위대한 삶

 

 

2. 나는 정말 부처님처럼 살고싶은가 ?

 

1. 위대한 삶과 행복한 삶

 

(1) '위대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가?

①개인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이기심을 버리고 인류의 행복을 위해 헌신했던 분

②가족의 기대심과 물질적 풍요를 버리고 민족과 사회를 위해 헌신했던 분

③사회 민주화와 민족 해방을 위해 핍박과 고난 속에서 평생동안 고생하셨던 분

④권력과 재물 그리고 쾌락과 명예가 보장된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신 부처님

 

(2)인간 삶에 있어서 선택의 기준

①바른(正) 것과 그른(誤) 것 : 논리적 이성적 당위적 판단 - 원리원칙, 도덕 중심

②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 심리적 감성적 정서적 판단 - 개인취향, 이익 중심

 

(3)나는 이 양자 중의 하나를 선택할 때 어떤 마음이 되는가 ?

①바르다는 것을 선택해서 살아갈 경우의 심리 : 좋아하지 않는 마음

자긍심, 내보이고 싶은 마음 / 부담스러움, 손해보는 마음

의미있는 삶 그러나 어렵고 힘든 삶 : 불행한 삶 -- 싫어하는 마음

②좋아하는 것을 선택하여 살아갈 경우의 심리 : 바른 것과는 거리감

짜릿함, 욕구가 성취되어 기쁜 마음 / 죄스러움, 눈치보는 마음

눈치보는 삶 그러나 쉽고 편한 삶 : 행복한 삶 -- 좋아하는 마음

* 우리 인간 삶이 고해인 이유 : 어느쪽을 선택해도 갈등

 

(4)부처님처럼 위대한 삶을 생각할 때 우리에게 다가오는 느낌과 판단

①위대한 사람 - 내가 하기 싫어하는 일을 많이 한 사람

②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람 - 인류 역사상 가장 어렵게 살고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삶을 산 사람

* 결과적으로 부처님은 세상에서 가장 괴롭게 사신 분 -- 가장 불행한 사람

 

(5)우리는 마음 깊이 정말로 부처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는가 ?

 

(6)우리는 왜 부처되지 못하는가 ?

①부처님의 삶이 행복하다는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②부처의 삶은 의미있으나 불행한 삶이고 중생의 삶을 행복하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에

③중생심(衆生心) : 결코 부처되고 싶지 않은 마음, 중생의 상태를 좋아하는 마음

④중생상(衆生相) : "나는 중생이야!, 누가 뭐래도 중생이야!" 하는 고정관념

: {금강경}의 사상(四相: 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 중의 하나

 

(7)이런 삶은 없을까 ?

①바른 것을 선택해서 살면서도 가슴 벅차게 기쁘고 신나는 삶

②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의미있고 자긍심이 충만한 삶

③그른 것은 누가 하라고 해도 마음으로 부터 싫어지는 상태

* 이런 삶이 정말 행복한 삶은 아닐까 ?

 

2. 행복이란 무엇인가?

 

(1)어떤 삶을 행복한 삶이라고 하는가 ?

①원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고 사는 삶

②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삶

*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삶

 

(2)행복을 구하면서 우리는 왜 행복하지 못하는가 ?

①원하는 것이 시간의 흐름과 조건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

②함께 양립할 수 없는 모순된 두 가지 소원을 갖고 있다.

③진정으로 무엇이 나를 위하는 것인지를 모르고 있다.

* 무엇이 자유이고 무엇이 구속인지를 모르고 있다. - 무지(無知)

 

(3)행복의 조건은 무엇인가 ?

①조건에 흔들리지 않을 자신의 확고한 목적의식을 세운다.

②확실한 선택 후에는 모순의 한 면을 버리거나 부차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③보다 장기적이고 거시적으로 자신을 위한 것이 무엇인지를 판단한다.

* 진정한 자유와 극복해야 할 구속의 대상을 명확히 안다 - 지혜(智慧)

 

 

3.부처님은 정말 어떤 분이신가 ?

 

1. 부처님은 행복한 분이셨나 불행한 분이셨나 ?

 

(1)부처님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게 사셨던 분이었나 ?

①이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자신의 삶이 불안하고 괴로웠었다.

②이 세상 그 누구보다 중생의 삶을 가슴 아파했었다.

③당신의 그 호화롭고 만족된 조건, 소위 왕자의 '행복' 속에도 괴로와했었다.

④최악의 고행조차 환속할 마음을 내지 못할 정도로 괴로웠었다.

 

(2)싯다르타는 왜 부처되고자 출가했던가 ?

①누구보다 컸던 고를 해결하기 위해서 - 만족된 삶을 살고 싶어서

②누구보다 가슴아파했던 중생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 - 바른 사회를 만들고 싶어서

③불안하고 거짓된 행복의 가식을 깨고 참된 행복을 찾기 위해서 출가를 하셨었다.

 

(3)출가 수행 시기와 깨달음 후 부처님은 얼마나 괴로웠을까 ?

①고행 속에서 오히려 참 행복을 찾아가는 기쁨을 얻으셨다.

②깨달음을 얻고 완전한 참 행복을 찾으셨다.

③그렇기에 45년 동안 다른 이 들에게 참 행복을 얻게하고자 중생을 찾아다니셨다.

 

(4)부처님은 이런 삶을 원하지 않으셨을까 ?

①죽음이 다가오더라도 두려움 없이 자기 삶의 목적을 추구할 수 있는 삶의 확신을 갖는 삶

②내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하면서 사는데도 다른 이들의 기쁨을 주는 삶

③내 마음이 움직이는대로 사는데도 의미있고 자긍심이 충만한 삶

④그른 것은 누가 하라고 해도 마음으로부터 관심이 가지 않는 상태

 

 

2. 부처의 개념과 그 의미

(1)경전 근거

"밝은 지혜로 모든 것을 훤히 알아, 닦아야 할 것을 빠짐없이 닦고, 끊어야 할 것을 남김없이 끊었기 때문에 부처라고 부르느니라‧‧‧‧그러므로 번뇌망상을 멀리 벗어나 뿌리채 뽑아버려 세상을 바르게 깨달은 이를 부처라 말하느니라." {잡아함경} 제4권

"나는 모든 것을 이긴자요 일체를 아는 사람. 나는 모든 번뇌로부터 자유롭고 모든 굴레에서 벗어났노라. 스스로 욕망을 파괴하여 자유를 얻었고 위없는 지혜를 성취하였거늘 누구를 스승으로 삼으랴." {중아함경} 제56

 

(2)부처의 개념 (붇다 : Buddha - 깨달은 사람)

 

부처의 개념을 본다면 앞에 보았듯이 붇다란 깨달은 사람입니다. 이 경전에서 본다면 지혜로서 세상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아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알아야 할 것을 모두 알고, 끊어야 할 것을 모두 끊은 사람을 얘기합니다. 일체승자란, 모든 것을 이긴 사람입니다. 그리고 일체승자(一切勝者)요, 일체지자(一切知者)이며, 일체능자(一切能者)이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일체승자란, 모든 것을 이긴사람이다. 이겼다는 것은 무엇을 이야기 합니까? 이것은 내 삶의 목표를 향해 가는 길에 있어서 그 길은 가지 못하게 방해하는 수 많은 것들이죠. 부처님의 삶에 있어서는 세속의 모든 욕망과 특히 부처님께서 정각을 이루기 직전에 보리수 나무아래에서 부처님을 실험에 들게 했던, 수 많은

마구니들을 의미합니다. 이 마구니들을 모두 항복받았다. 그래서 일체승자라고 애기 합니다.   일체지자란 모든 번뇌와 모든 굴레가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내가 갖고 있는 모든 욕망과, 애착이 나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고, 그리고 그것을 극복했을때 내게 행복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바르게 알고 세상에 있는 그대로의 것을 즉, 진리를 깨달은 것으로서 일체지자라 얘기합니다.

일체능자란 나를 구속하고 있는 그 모든 것을 능히 이겨낼 수 있다.

그래서 일체능자라고 애기합니다.

 

①지혜로서 세상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아, 진리를 깨달은 사람

②알아야 할것을 모두 알고, 끊어야 할것을 모두 끊은 사람

③일체승자(一切勝者) / 일체지자(一切知者) / 일체능자(一切能者)

 

(3)'부처님 탄생설화' 속에서 본 의미

 

부처님 탄생설화 속에서 본 의미를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탄생하시고 탄생게를 쓰셨다고하지요.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계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다.' 이렇게 얘기했다고 전해집니다. "하늘 위 하늘 아래 나 홀로 존재하도다. 삼계가 모두 고통속에 헤매이니 내 마땅히 이를 편하게 하리라." 라는 탄생게(誕生偈)죠.

물론 이것이 부처님께서 직접 태어니신 직후에 하신것이냐 아닌 것이냐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브라흐만의 절대적인 권위와 종교적 도그마가 지배하는 세계속에서 신의 권위를 빈 브라만 계급과 베다성전의 이데올로기, 그리고 제사의식이 존중되던 세계속에서 부처님께서는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천하란 인간의 세계를 얘기합니다. 왕의 절대적인 권한과 지배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세계에 왕의 권력과 물질적 풍요, 그리고 명예와 쾌락의 추구가 가장 존중되던 세계속에서 부처님은 태어나셨습니다. 이렇게 신의 세게와 인간의 세계속에서 신의 권위와 브라흐만의 절대적 권위 그리고 베다성전과 제사의식이 존중되던 세계, 왕의 권려과 명예. 재물과 쾌락이 존경되던 세계. 즉 이것이야 말로 삶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고 행복을 안겨줄 수 있는 삶의 목표이자, 삶의 바른 방법이라고 생각되었던 그런 세계속에서 부처님이 태어나셨습니다.

여기에서 부처님께서는 유아독존을 외치십니다. "하늘 위 하늘 아래 오로지 내가 홀로 존귀하다."이랬습니다. 여기에서 홀로 존귀하다는 것은 다른 사람은 존귀하지 않고 나만 존귀하다는 것이 아니라 홀로 존귀하다, 스스로 존귀하다, 세속에 존귀함을 비교에 의한 상대적인 존귀함입니다. 그래서, 부귀를 누린다 혹은 존귀하다라는 말은 빈부(貧富), 귀천(貴賤), 존비(尊卑)의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빈한 사람이 없으면 부한 사람이 있을 수가 없고, 천한 사람이 없으면 귀한 사람이 있을 수 없고, 비한 것이 없으면 존한 것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누군가 상대적으로 하락하는 상황속에서 상중하는 사람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상대적인 존귀함의 세계속에서 부처께서 말씀하신 존귀함은 홀로 존귀하다는 것입니다. 비교에 의한 상대적인 존귀함이 아닌 권위나 종교적 이데올로기나 물질이나 쾌락이나 명예나 재물이나 권력이나 이 모든 것들에 앞에서 홀로 존귀하다 이런 뜻이며 뒤에 삼계개고 아당안지는 존엄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시고, 그리고 모든 사람, 사람마다 스스로 존귀함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자각시키기 위해서 인식시키기 위해서 깨닫게 하기 위해서 평생을 살아가셨습니다.

 

"하늘 위 하는 아래 나 홀로 존귀하도다.

삼계가 모두 고통 속에 헤매이니 내 마땅히 이를 편하게 하리라." {수행본기경} 상권,[강신품]

(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 :

 

①천상계 : 신의 세계, 브라흐만의 절대적인 권위와 종교적 도그마가 지배하던 세계

- 신의 권위를 빈 브라만 계급과 베다성전의 이데올로기 그리고 제사의식이 존중되던 세계

②천하계 : 인간의 세계, 왕의 절대적인 권한과 지배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세계

- 왕의 권력과 물질적 풍요 그리고 명예와 쾌락의 추구가 가장 존중되던 세계

③독존 : 세속의 존귀함 : 비교에 의한 상대적인 존귀함 - 빈부(貧富), 귀천(貴賤), 존비(尊卑)

- 비교에 의한 상대적인 존귀함이 아닌, 존재 그 자체의 절대적인 존귀함

 

(4)'전도 선언' 속에서 본 의미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얻으신 다음에 최초로 녹야원에서 다섯 수행자들을 상대로 전법을 하시고 그 마을에서 가장 부의 아들인 야사를 출가시키십니다. 그리고 이 야사의 친구들을 출가 시켰지요. 그래서 불교교다인 6명의 제자를 갖게 됩니다. 이 6명이 나름대로, 자각을 얻게 되죠. 부처님께서는 이들을 모아놓고, 전도선언을 하시게 됩니다. 그때 전도선언은 이렇습니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이미 그것이 천계의 것이건, 인간계의 것이건 일체의 속박으로 부터 해탈하였다. 수행자들이여, 그대들도 또한 천계와 인간계의 일체의 속박과 사슬로부터 자유롭게되었다. 수행자들이여, 이제 모든 천인과 인간들 속에서 그들을 제도하라.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안락을 주기 위하여, 현실속에서 구체적인 이익과 안락을 주기 위하여 속히 떠나거라."

자, 여기에서 부처님께서는 당신을 어떻게 설명하시냐 하면, '천계의 것이건, 인간계의 것이건 일체의 속박의 것으로부터 해탈하였다.' 그랬습니다. 수행자들에게도 '천계와 인간계에 속박사슬로 부터 자유롭게 되었기 때문에 이제 떠나라.' 이렇게 말씀하시죠. 그럼 이 천계의 사슬과 인간계의 사슬은 무엇이냐? 천계의 사슬은 신 중심적인 사고와 종교적 권위. 베다의 사상. 제사와 종교적 의식을 얘기합니다. 인간계의 사슬이란 왕 중심적인 사고죠. 그래서 일체의 속박으로 부터 해탈되었다는 것은 무엇이냐. 이 두가지의 사슬에 유혹되지 않을 삶의 중심이 섰다는 것입니다.

내가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행복에 목표를 두고 있다. 그 행복의 목표가 언제나 부처되는 것인데 이렇게 살아가고자 하는데 있어서 베다의 권위로서 제사와 종교적 도그마로서 나를 방해하고자 해도 나는 이미 거기에 굴복되지 않는다. 누가 나에게 이길을 가지 않으면 돈과 권력과 명예와 쾌락을 주겠다고해도 거기에 흔들리지 않을 만큼 자기 삶에 중심이 섰다.  이러한 것입니다.

그리고 두가지의 사슬에 의해 대상을 차등하지 않고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내가 어떤 사람을 볼때 그가 돈이 있건 없건, 권력이 있건 없건, 또은 여자건, 남자이건, 외모가 어떻건, 또는 학력이 어떻건, 국적과 지역차가 어떻건 관계없이 그를 그러한 껍데기에 의해서 대상을 차등하고 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그의 존엄성을 볼 수 있는 그런 마음가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천계의 사슬과 인간계의 사슬이 외부로 부터 나를 유혹하거나 아니면 내부로 부터 나를 유혹하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외부로 부터 어떤 유혹이 들어올때, 그 유혹으로부터 갈등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벗어 났다는 것입니다. 내부로 부터 그러한 에너지 분별력이 생길때 그것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것이 일어나지 않을 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얘기합니다. 이것을 해탈이라고 하고, 이것를 자유로움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상태가 되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죠. 즉, '고통을 벗어나서 해탈하였다' 이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그러한 자유로움들을 모든 이에게 전하기 위해서 떠나가라' 는 것입니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이미 그것이 천계의 것이건 인간계의 것이건 일체의 속박으로부터 해탈하였다. 수행자들이여, 그대들도 또한 천계와 인간계의 일체의 속박과 사슬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 수행자들이여, 이제 모든 천인과 인간들 속에서 그들을 제도하라.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안락을 주기 위하여, 현실 속에서 구체적인 이익과 안락을 주기 위하여 속히 떠나가라." {잡아함경} 제 39권 1096

①천계의 사슬 : 신 중심적인 사고, 종교적 권위, 베다(Veda)의 사상, 제사와 종교적 의식

②인간게의 사슬 : 왕 중심적인 사고, 권력 재물 명예 쾌락

③해탈/자유로움 : 두 가지의 사슬에 유혹되지 않을 삶의 중심이 섰다.

두 가지의 사슬에 의해 대상을 차등하지 않고 볼 수 있게 되었다.

 

(5)부처님은 이런 분이 아니었을까 ?

①나의 필요와 타인의 기쁨이 분리됨이 없이, 너와 나라는 생각은 물론 함께라는 생각도 없었던 분

②내 마음이 움직이는대로 사는데도 모순과 갈등이 없이, 자유롭게 사셨던 분

③누구를 만나도 분별심 없이 사랑으로 대하고, 어떤 조건에도 마음의 흔들림이 없었던 분

 

 

3. 불교는 부처되기 위한 공부이다.

 

(1)불교의 목적

 

우리는 불교공부를 왜 하는가? 그것은 첫째 목적도 되고, 둘째 목적도 되고, 그리고 마지막 목적도 되겠습니다. 부처되기 위한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괴로움을 소멸하고 행복해지기 위한 것이라고 나아가서 이 세상에 모든 구속으로 부터 자유로와지기 위해서죠. 이는 나만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이들에게 그 자유로움과 행복을 펼치고 함께 행복해지고자 하는 목적이 함께 따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즉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둘이 아닌 상태를 말합니다.

 

①부처되기 위해

②우리의 괴로움을 소멸하고 행복해지기 위해

③이 세상 모든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와지기 위해

 

(2)불교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불자들의 발심(發心) : 삼보에 대한 귀의

 

 

부처되고자 하는 목적을 자고 마음을 내 사람. 이런 사람을 '발심자'라 하죠. 처음으로 그런 마음을 내 사람은 '초발심자'라 이렇게 얘기합니다만, 이런 발심자들이 제일 먼저 해야 될 일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삼보에 귀의하는 것입니다.

삼보란 아시다시피 불, 법, 승을 의미하죠. 귀의불이란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사신분이라는 믿음이 바로 귀의불에 대한 정신입니다. 귀의법은 부처님의 가르침이야 말로 내게 가장 큰 행복의 길로 이끄는 이정표라는 믿음이죠. 귀의승의 정신은 무엇인가 그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쫓는 공동체야 말로 나와 뭇 생명을 행복으로 이끈 공동체라는 믿음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부처되는 것이야 말로, 가장 행복한 나의 삶이다 라는 내 삶의 목표에 대한 변할 수 없는 확신을 귀의불의 정신이라고 합니다. '바른 길잡이는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이다'란 믿음을 얘기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만이 나를 행복으로 이끌수 있다는 확신에 대한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속하는 공동체는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만, 그 공동체는 내게 제물을 많이 모으게해주는 공동체, 권력을 많이 얻게 해주는 공동체 또는 쾌락을 많이 모으게 해주는 공동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진정한 나의 행복, 즉 부처되게 하고, 나와 이웃이 함께 행복할 수 있게 해주는 공동체는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쫓는 승가 공동체야 말로 나와 뭇 생명을 행복으로 이끌기 때문에 내가 그 어떤 공동체보다 부처님의 공동체를 가장 소중히 여기고 믿고 따르겠다는 것이 귀의승에 정신입니다.

이렇게 이 삼보에 대한 간절한 믿음이 바로 불교신자들의 신앙생활의 시작이죠. 그래서 예불들일때 보면 어떻습니까? 오분향예불의 핵심이 바로 삼귀의(三歸依) 정신이죠. 삼계도사(三界導師) 사생자부(四生慈父) 시아본사(是我本師)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시방삼세(十方三世) 제망찰해(帝網刹海) 상주일체(常住一切) 불타야중(佛咤耶衆) 달마야중(達摩耶衆) 모든 제대 성중을 포함한 승가야중(僧伽耶衆) 이렇게 됩니다.

그들이 어떻게 하느냐? 불법승(佛法僧)에서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한답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돌아와 목숨으로 예배하나이다. 기존의 잘못된 삶의 가치와 잘못된 행복의 편견, 그리고 남을 진정 행복으로 이끌지 못하는 공동체에 믿음을 두었던 마음을 돌이켜서 지극한 마음으로 간단한 마음이나마 지극한 마음으로 삼보에 돌아와서 귀의한다. 이런 것이 바로 지심귀명례 예불문의 형식입니다.

 

①부처님 : 부처님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분이라는 믿음.- 삶의 목표에 대한 확신 :귀의불

②진리 : 부처님 가르침이 가장 큰 행복의 길이라는 믿음.- 행복추구에 방법에 대한 확신 :귀의법

③공동체 : 부처님의 가르침을 좇는 공동체야말로 나와 뭇 생명을 행복으로 이끈다는 믿음 :귀의승

 

(3)불교의 특징

 

불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실천론입니다. 부처될 목적을 갖고 있는 실천론입니다. 그래서 경전에 보면 항상 '여시아문(如是我聞)으로 시작해서 신수봉행(信受奉行)'으로 끝납니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라는 서술자의 입장을 이야기하고 나서 끝났을 때는 많은 대중들이 또는 환도 대중들이 그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받아들여서 받들어 실천했다 이것이죠.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끝까지 실천론입니다.

우리가 강의를 전개하다보면, 불교의 인식론, 불교의 실천론, 불교의 세계관, 이렇게 구분하긴 합니다만, 이것은 사실은 서양 철학적 구분에 의해서 분류해 놓은 것이죠. 부처님께서는 말씀을 하실때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이고, 인식론에 대한 이야기고, 또는 실천론에 대한 이야기다 라고 이야기 하신적이 없습니다. 끝까지 실천론적 입장속에서 그리고 부처되기 위한 방법으로 이야기하십니다. 그런데, 후대 우리가 볼 때 서양철학적 입장속에서 볼때 그렇게 분류할 수 있다 라고 이야기 할 뿐인 것입니다..

 

①불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실천론이다. : 부처될 목적을 위한 실천론

②如是我聞 - 信受奉行

 

 

4. 근본불교란 무엇인가 ?

 

 

1. 불교에 무슨 수식이 이렇게 많은가 ?

 

(1)수많은 명칭이 있다

①소승불교/대승불교, 연기론/실상론, 현교/밀교, 교종/선종,

②남방불교/북방불교, 귀족불교/대중불교/민중불교

③초기불교 / 원시불교 / 근본불교

 

(2)왜 이렇게 수식이 많은가 ?

①수많은 부처님 가르침을 각 부분의 특징에 맞게 분류하여 차별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②무슨무슨 불교를 주장할 경우 그 명칭에는 자신들의 사상성을 내포한다.

③타 부분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정당성을 증명하기 위해 자기우월적인 명칭을 붙이는 경우가 대부분

 

 

2. 불교의 변천

 

불교의 변천을 보자면 그 시기적으로 원시불교, 부파불교, 대승불교, 밀교 이렇게 발전과정을 잡고 있습니다. 아. 원시불교라고 하면 부처님 재세시부터, 혹은 부처님이 돌아가신 입멸후부터 근본분열이 있게 되는 분열후 100년경까지를 원시불교라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리고 부파불교는 이 근본분열 이후에 대중부가 8지파로, 상좌부가 11지파로 분열되어서 총 20개지파가 성립이되는 시기까지 분열후 100년경부터 서기 기원전 1세기 까지를 부파불교시대 혹은 아비달마 불교시대라 합니다.

그리고 출가 수행승의 개인 수행과 아비달마 연구에 빠져서 불교 대중과 유리되던 시기에 의식있는 제가 불자들과 진보적 승려들이 근본불교에로의 회귀하고자 기존의 불교는 소승이라 비판하면서 독자적 교단을 형성하는 대승불교운동이 일어나는 시기를 대승불교 시기라하는데 역사적으로 서립기원전 1세기경부터 7세기경까지를 애기합니다. 혹은 13세기 까지를 이야기 합니다. 7세기 까지로 보는 입장은 밀교가 등장하던 시기를 제외한 시기이고, 13세기까지로 보는 입장은 밀교는 대승불교가 고도의 관념체계를 갖고 현학적으로 흘러서 대경과 유리되기 시작하자, 민간신앙을 흡수하면서 새로운 불교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이 시기가 역사적으로 보면 7세기 후반부터 12세기까지로 보고있습니다.

그리고 특히 1203년에 바쿠실라 사원이 파괴되는 것을 기점으로 해서 불교가 급속히 몰락하게 되는데 그것은 회교도가 인도를 침략해서 불교사원을 파괴하고 불교승려를 무자비하게 학살을 하게 되는데 바쿠실라 서원은 그 당시에 불교를 대표하는 가장 큰 사원이었습니다. 이 바쿠실라 사원의 파괴를 기점으로 해서 불교가 인도에서 급속하게 몰락하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인도에는 거의 불교의 자취를 찾을 수 없게 되고, 근대에 와서야 불교가 새로이 정비를 하게 됩니다.

 

(1)원시불교 (혹은 초기 불교)

①부처님 재세시의 불교 (이 시기만을 초기불교라고도 한다)

②제1결집 : 부처님 입멸 직후 왕사성 근처 7엽굴에서 500장로 들의 결집 - 500결집

③경.률의 편찬 : 마하 가섭을 상수로 아난존자와 우파리 존자가 중심이 되어 경과 률을 결집

④제2결집 : 불멸 후 100년 경 밧지족 비구에 의한 10사(十事)가 장로들에 의해 비법(非法)으로 판정

⑤근본분열 : 보수적 장로의 상좌부(上座部:Theravada)와 진보적 승려의 대중부(大衆部:Mahasanqhika)로

⑥역사적 시기 : 부처님 재세시(혹은 불멸 후) - 근본분열(불멸 후 100년 경)

 

(2)부파불교 : 아비달마(Abhidharma)불교

①지말분열 : 근본분열 후 대중부는 8지파로 상좌부는 11지파로 분열 (B.C 1C까지 총 20지파가 성립)

②경률론 3장의 편찬 : 각 부파의 정통성을 증명하기 위한 교법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의 결실

③아비달마 : '법(法:dharma)에 대한(abhi-)연구'라는 뜻. 주로 논(論)을 의미

④역사적 시기 : 불멸 후 100년 경 - B.C 1C 경 : 약 300년 간

(3)대승불교 : 소승불교에 대한 비판

①부파불교의 비 대중화 : 출가수행승의 개인수행과 아비달마 연구에 빠져 대중과 유리

②대승불교의 주체 형성 : 의식있는 재가불자들과 진보적 승려들의 '근본불교'에로의 회귀

③대승불교 주창 : 기존 불교를 '소승'이라 비판하면서 기존승단 비판, 독자적 교단형성

④대승경전 편찬 : 보살이 주체가 되는 {반야경}을 선두로 {법화경} {화엄경} 등 편찬

⑤대승의 논서 편찬 : 용수(龍樹)의 [중론(中論)]과 무착,세친 등에 의한 [유식론(唯識論)] 등 편찬

⑥역사적 시기 : B.C 1C 경 - A.D 7C 경 (혹은 A.D 13C 경)

 

(4)밀교(密敎) : 현교(顯敎)에 대한 비판

①대승불교의 비 대중화 : 대승불교가 고도의 관념체계를 갖고 현학적으로 흘러 대중과 유리

②힌두교의 확장 : 불교에 밀려있던 바라문교가 민간신앙을 흡수하면서 힌두교로 정립 -대중성 획득

③밀교의 등장 : 당시 대중들에 퍼져있던 주술과 신비주의적 의식을 수용하여 밀교 발생

④밀교경전 편찬 : 7C 후반 {대일경(大日經)}과 {금강정경(金剛正經)} 등의 편찬

⑤인도에서 불교의 몰락 : 회교도가 인도를 침략하여 불교사원 파괴와 불교승려 학살

⑥역사적 시기 : 7C후반 - 12C (1203년 바쿠실라 사원의 파괴)

(5)선종(禪宗) : 교종(敎宗)에 대한 비판

①중국의 불교 전래 : A.D 1C 경 인도의 불교가 중국에 전래

②종파불교 : 수많은 역경(譯經)으로 각기 소의(所依)경전을 중심으로 각 종파를 형성

③교상판석(敎相判釋) : 각 종파가 자신의 소의경전을 우위에 두고 경전을 체계화

④교판을 통한 각 종파의 대립과 논쟁 심화

⑤보리달마(菩提達磨) : 470년 인도의 선승이 중국으로 건너와 선불교를 발전

⑥선의 요체 : 불입문자 교외별전 직지인심 견성성불 (不入文字 敎外別傳 直指人心 見性成佛)

 

3. 불교 명칭의 재음미

 

근본불교의 의미를 규정하자면, 부처님 입멸 후 부터 100년간 제 2차 결집이 일어나던 시기까지를 소위 근본불교라 하는데, 거의 같은 시기에 대한 개념 규정으로서 초기불교와 원시불교라는 개념을 쓰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각각의 자기의 의미가 조금씩 다릅니다.

초기불교란 후기불교에 대한 시기적 구분입니다. 후기에 일어난 불교에 비해서 초창기에 불교했다는 뜻이죠. 그리고 원시불교란 발전된 불교에 비해서 아직 덜 발전된 상태란 의미에서의 원시불교이기도 하고, 후에 첨삭되고, 변질될 불교에 비해서 순수한 불교란 의미이기도 합니다.

여기에서의 원시불교는 나름대로 사상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 원시불교란 일본에서 1960년대 이후에 기존의 불교가 너무 민속신앙과( ) 특히 인도의 국교인( ) 결합이 되면서 불교 본연의 모습을 많이 잃어가게 될때에 '순수한 불교로 돌아가자' 라는 기치를 내걸고 원시불교에 대한 연구가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근본불교란 본질을 벗어난 불교에 대한 본질적인 불교다라는 뜻의 불교를 의미합니다. 이는 왜곡된 불교를 비판하고 본질로 돌아가고자하는 의미에서의 근본불교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세개 각각이 거의 같은 시기를 보고 있는데 시기적으로 보면, 초기 불교에 해당되는 불교가 근본불교입니다. 즉, 부처님의 직언이 담긴 불교란 뜻입니다. 순수성으로 보면 원시불교에 해당하는 불교이고, 부처님의 삶과 승가정신이 살아있는 불교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사상적으로 본다면 근본이란 한문을 풀이하면 알 수 있듯이 '밑뿌리에 해당되는 불교'를 말합니다. 부처님과 가르침의 목적이 살아있는 불교를 의미합니다. 밑뿌리 불교의 입장에서 보면 초기불교나 원시불교만이 아닌, 부처님의 가르침의 목적을 잃지 않는 불교를 근본불교라 얘기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승불교나 밀교 혹은 선종의 초기정신은 근본불교로 돌아가고자는 불교사상운동적 성격을 갖게 됩니다.

 

(1)불교발전사에 있어서 자기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명칭

①승 : 대승/소승 : 소승을 비판하고 대승이 자기 우월성을 표현

②론 : 연기/실상 : 불교 교학체계의 현상론과 본체론의 분류

③교 : 현교/밀교 : 대승과 소승을 현교로서 비판하고 밀교가 자기우월성을 표현

④종 : 선종/교종 : 교판논쟁을 하는 종파불교를 교종으로서 비판하고 선종이 자기우월성 표현

 

(2)지역별 구분

①남방 : 인도에서 남쪽으로 전해진 불교 : 대국, 버마, 스리랑카 등

②북방 : 인도에서 북쪽으로 전해진 불교 : 한국, 중국, 일본 등

 

(3)불교의 주체에 관한 구분

①대중 : 고급화된 엘리트 불교 비판, 대중에게 필요한 불교

②민중 :지배이데올로기화된 불교 비판하면서 피지배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불교

 

(4)근본불교의 의미 규정

①초기불교 : 후기 불교에 대한 시기적 구분

②원시불교 : 발전, 첨삭된 불교에 대한 초창기 불교라는 의미

변질된 불교를 비판하고 순수성 주장 - 순수불교로 돌아가자

③근본불교 : 본질을 벗어난 불교에 대한 정통성 주장 - 왜곡된 불교를 비판하고 본질로 돌아가자

* 그러한 의미에서 [근본불교]라는 것은 어떠한 의의를 갖는가 ?

 

(5)근본불교란 무엇인가 ?

①시기적으로 보면 초기불교에 해당 : 부처님의 직언(直言)이 담긴 불교

②순수성으로 보면 원시불교에 해당 : 부처님의 삶과 승가정신이 살아있는 불교

③사상적으로 보면 밑뿌리[根本]에 해당 : 부처님 가르침의 목적이 살아있는 불교

④밑뿌리 불교의 입장에서 보면 초기불교나 원시불교 만이 아닌 부처님 가르침의 목적을 잃지않는 불교

⑤대승불교나 밀교 선종의 초기정신은 근본불교로 돌아가고자하는 사상운동의 성격을 갖는다.

* 여기에서의 근본불교는 밑뿌리불교로서의 불교이되 시기적으로 초기불교(혹은 원시불교)로 본다

 

4. 근본불교의 자료

 

 

근본불교의 자료는 보통 한역의 네 아함경과 범어의 다섯 니카야를 얘기합니다. 한역의 네 아함경이란 장아함 중아함 잡아함 증일아함을 얘기하고, 범어의 다섯 나카야란 장부 중부 상응부 증지부 소부를 얘기하게 됩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직언이 담겨있는 초기불교이자 순수하게 승가정신이 살아있는 원시불교에서의 부처님의 가르침의 목적이 살아있는 밑부리 불교에 해당되게 되겠습니다.

 

(1)한역(漢譯)의 네 {아함경(阿含經)} (2)범어의 다섯 니카야(Nikaya)

①장아함(長阿含:Dirgh-agama) ①장부(長部:Digha-nikaya)

②중아함(中阿含:Madhyamik-agama) ②중부(中部:Majjhima-nikaya)

③잡아함(雜阿含:Samyuhkt-agama) ③상응부(相應部:Samyutta-nikaya)

④증일아함(增一阿含:Ekottarik-agama) ④증지부(增支部:Anguttara-nikaya)

⑤소부(小部:Khuddaka-nikaya)

 

 

 

 

[출처] [공유] (종교사)불교발생의 배경|작성자 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