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철학

[인도철학사] 5. 소승부파불교철학의 발전

수선님 2020. 10. 11. 12:19

[인도철학사] 제5장 소승부파불교철학의 발전

길희성: 서울대학교 문리대 철학과 졸업. 하바드대학교에서 비교종교학 전공.
저서- Chinul, the Founder of the Korean Son Tradition
현재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교수



 목 차 

 

■ 제1부  인도철학의 형성
제5장 소승부파불교철학의 발전
    1. 부파불교의 전개
    2. 상좌부의 철학
    3. 설일체유부의 철학
    4. 경량부와 독자부
    5. 대중부의 불교사상



제5장 소승부파불교철학의 발전

 

1. 부파불교의 전개  ▲ 위로


불타의 마지막 날들에 관하여 상세히 전하고 있는 소승경전의 "대반열반경"에 의할 것 같으면, 불타는 그의 입적을 앞두고 아난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아난다여, 너희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스승의 가르침이 끝났다. 우리에게는 더 이상 스승이 안 계신다'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난다여, 너희는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내가 너희들에게 가르쳐 주고 제정한 법과 율을 나의 사후에 너희들의 스승으로 삼아라.(1)


그러나 문제는 불타의 입적 후 그의 법과 율에 대하여 그의 추종자들 가운데서 서로 다른 해석과 전승들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불타의 생존시에는 그의 가르침에 대하여 여러 의구심과 논란이 일어나도 그의 개인적인 높은 인격과 카리스마에 의하여 교단은 통일과 화합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입적한 후 불교교단은 그에 비견할 만한 정신적 지도자도 없었고 교단의 조직 또한 교단의 통일을 유지할 만한 어떤 교권적 제도를 지니지 않았다.


따라서 불교는 지리적 양적 성장에 따라 불타의 가르침에 대하여 서로 다른 전통을 전수하게 되었고, 자연히 교단의 분열도 불가피하게 되었던 것이다. 교단의 지도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수차의 결집회의를 했으나 결국 교단은 분열되고 만 것이다.


제일 처음의 공식적인 교단분열은 불타의 가르침을 충실히 지키는 것을 표방하는 보수파의 장로들을 중심으로 한 상좌부와, 교리와 승단의 규율에 있어서 신축성을 허용하는 진보적인 대중부와의 분열이었다.


이 분열의 시기는 세일론의 남방불교전통에 의하면 불멸후 약 100년 후에 소위 '십사'를 둘러싼
계율해석을 위하여 바이샬리에서 모인 제 2차 결집때였다고 하며,(2) 북방불교의 전통에 따르면 아쇼카왕의 치세 때에 마하데바라는 사람이 소위 '오사' 즉, 아라한의 권위를 격하시키는 다섯 가지 항목을 주창한 것을 계기로 하여 분열되었다고 한다.(3)


여하튼 불멸 후 100년부터 아쇼카왕의 사이에 불교교단내에 분열과 대립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며 왕은 이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칙령을 내려 교단의 화합을 촉구하기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이러한 교단의 분열은 아마도 왕의 불교 지원에 힘입어 불교가 융성함에 따라 더욱더 세분되어 급기야 대중부와 상좌부의 근본이부를 중심으로 하여 18개 혹은 20개의 부파가 파생하게 된 것이다.(4) 세일론의 '도왕통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18부의 분파를 언급하고 있다.


도표 [대중부에는 우가부, 일설부, 그리고 제다산부가 있고 다시 우가부에는 다문부가 있다. 상좌부에는 화지부와 발자자부가 있고 다시 화지부에는 설일체유부, 음광부, 설전부, 경부와 법장부가 있고 발자자부에는 법상부, 현위부, 밀림산부 그리고 정량부가 있다.


한편 설일체유부의 전승을 전하고 있는 세우의 '이부종윤론'은 다음과 같은 20개 부파의 분열을 말하고 있다.


대중부에는 일설부, 설출세부, 게윤부, 다문부, 설가부, 제다산부, 서산주부, 그리고 북산주부가 있고, 상좌부는 크게 설일체유부와 설산부(본상좌부)로 나뉘어 지며 설일체유부는 다시 독자부, 화지부, 음광부 그리고 경량부로 되어 있다. 독자부는 법상부, 현위부, 정량부 그리고 밀림산주부로 되어 있다.]


이들 부파들은 현재 이름 정도만 남아 있는 것도 많고 실제에 있어서 인도철학사에서 이렇다 할 학설을 내세운 것으로 알려진 것은 불과 몇 개뿐이다. 특히 대중부 계통의 문헌은 거의 다 산일되었고 상좌부 계통으로서 문헌이 보존되어 있거나 혹은 간접적으로 그들의 교설을 알 수 있는 학파들은 주로 세일론 계통의 상좌부, 설일체유부, 경량부, 독자부 등이다.


이들 부파들은 대부분 자기들의 관점에 입각하여 전수한 경, 율, 논 삼장의 문헌을 갖추고 있었다고 생각되지만, 현재 그 삼장이 비교적 완벽하게 남아 있는 것은 팔리어로 된 세일론 상좌부계통의 삼장과 범어에서부터 한역되어 보존되고 있는 설일체유부 계통의 삼장이다.


경은 원래 불타의 설법을 모은 것이고 율은 불타가 정한 승려생활의 규범을 모은 것으로서, 일찍부터 경과 율은 구전으로 편찬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논은 이보다도 훨씬 후에 와서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서, 원래 불타의 가르침을 기억하기 편리하게 하기 위하여 삼계, 사념처, 오온, 칠각지 등과 같이 법수에 따라 정돈되어 전해졌던 것이다. 이런 법수를 논모라고 불렀으며 그것만을 전담하여 전수하던 사람이 있었던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5)


이러한 경향은 각 부파간의 대립이 심하게 됨에 따라 더욱더 두드러져서 각 부파는 자기들의 철학적 입장에 따라 독립적인 논장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세일론을 중심으로 한 상좌부에서는 '법집', '분별', '계론', '인시설', '논사', '쌍', '발취'의 7론을 논장에 가지게 되었다.


세일론의 전통에 의할 것 같으면 아쇼카왕은 어느날 친히 자기의 별장에서 목갈리풋다 팃사의 주재하에 당시의 승려들을 모두 모은 다음 불타의 참 교설을 물었다한다. 이에 목갈리풋다는 불타의 교설을 분별설이라 규정하여 승단내의 여러 이단을 제거하고 제삼의 결집회의를 연 다음 거기서 '논사'를 설했다고 한다.(6)


이제 이 상좌부의 철학을 먼저 고찰하여 보자.

 

 

2. 상좌부의 철학  ▲ 위로


상좌부는 스스로의 철학적 입장을 분별설이라 부른다. 여기서 '분별'이란 말이 뜻하는 것은 불타는 사물을 관찰함에 분석적으로 본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미 불타가 인간존재를 오장의 모든 법이 결합된 것이라고 분석적으로 본 것을 고찰했다. 상좌부는 불타의 이러한 분석적인 정신을 충실하게 따른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상좌부는 현상세계를 법이라고 불리는 수많은 존재요소들로 구성된 것으로 본다. 이 요소들은 서로 기능적으로 존재하여 생기하였다가 그 작용이 다하면 사라진다. 따라서 현존 작용을 하고 있는 것들만 존재하며 또한 과거의 법이라 할지라도 아직 그 작용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그대로 존속하고 있다. 예를 들면 과거의 업으로서 아직 그 결과로서의 업보가 나타나지 않은 것과 같은 것이다.


상좌부는 수많은 법들 가운데서 인간존재를 설명하기에 필요한 법들을 중심으로 하여 다음과 같이 세 종류로 유위법, 즉 상호조건적으로 발생하는 법들을 분석한다. 첫째는 우리의 육체적인 면을 구성하는 색법으로서 28법을 든다. 둘째는 우리의 정신적 현상들로서 의식의 대상이 되는 심소법에 52법을 들며, 세번째로 아무런 내용이 없는 순수한 의식의 작용 그 자체, 혹은 마음을 하나의 법으로 간주한다.


이 식(알 식자)은 실제에 있어서는 언제나 다른 법들과 함께 공존한다. 식은 감각기관들에 의존하며 순간순간 이어지는 의식들의 흐름과 같은 것이다. 오온 가운데서 식에 해당하여 색법들은 색에 포섭되고 애, 상, 행은 심적인 법들을 포섭하는 것이다.


이들 유위법 가운데서 종교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수행상 결정적 역할을 하는 52개의 심적인 요소들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우리의 행위, 즉 업과 해탈의 과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좌부는 이 52개의 심소법을 해탈에 도움을 주는 25개의 선법, 방해하는 14개의 불선법, 그리고 13개의 중성적인 법들의 3범주로 분류한다.


상좌부는 이상과 같은 81개의 유위법 외에 열반이라는 한 개의 무위법만을 인정하여 모두 합쳐서 82개의 법으로서(7) 인간존재와 인간의 체험세계를 분석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3. 설일체유부의 철학  ▲ 위로


상좌부는 불타의 전통을 가장 충실히 전수한다고 자부했지만, 상좌부는 일찍부터 인도의 본토에서는 그 맥이 끊어졌고 단지 세일론도에서 그 전통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인도본토에서 소승불교를 대표하다시피 하고 사상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한 부파는 오히려 설일체유부였다.


설일체유부가 상좌부로부터 언제 파생되어 나갔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논사'가 작성될 무렵, 즉 아쇼카왕의 때에는 이미 하나의 독립된 분파로서 존재한 것으로 간주된다. 설일체유부(간단히 '유부'라고 부름)는 특별히 인도서북부의 간다라나 카쉬미르 지방에 많은 추종자를 가지고 성행했으며, 서력기원 1-2세기 경에는 인도의 서북부와 중앙아시아에 걸쳐서 일대제국을 건설한 쿠샤나왕조의 카니쉬카왕의 지원을 받아 크게 세력을 떨쳤다.


유부도 역시 상좌부의 7론에 비견되는 일곱 개의 논서로 구성된 논장을 산출했다. 이 논서들은 현재 한역으로만 전해지고 있으며 그 가운데에서 가장 내용적으로 포괄적이며 중요한 것은 '발지론'이다.(8) 이 논은 서력기원전 약 1세기경의 인물로 추정되는 카탸챠니푸트라에 의하여 씌어진 저서로서 잡, 결, 지, 업, 대종, 근, 정, 견의 8항목으로 불교의 교리를 다루는 체계적인 저서이다.


'발지론'에는 2세기 초반에 '대비파사론'이라는 200권의 방대한 주역서가 씌여지게 되었다. 이 주석서는 카니쉬카왕이 협존자라는 자에게 명하여 카쉬미르 지방에서 소위 제사의 결집회의를 열어 거기서 편찬하게 한 것이라 한다. 이 논은 단지 '발지론'의 주석일 뿐만 아니라 당시의 불교사상 및 수론이나 승논과 같은 외도의 철학까지 포함하여 다루면서 유부의 정통성을 확립하려고 하는 하나의 백과사전적인 저작이었다.


'대비파사론'은 그후로 인도에서 소승불교를 대표하는 저서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유부의 학자들은 '비파사사'라 불리었다. 그러나 '비파사'라는 말(광어라는 뜻)이 나타내듯이 이 논은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그후에는 그 요점만을 추린 강요서들이 유행하게 되었다. 3세기 초에 씌여진 법승의 '아비운심론'과 같은 책이다. 그러나 이러한 강요서들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세친의 '아비달마구사론'이다. 이 책은 문자 그대로 소승불교의 철학을 대표하는 명저로서, 인도뿐만 아니라 중국, 한국, 일본 등지에서도 소승교학의 입문서와 같이 연구되어 왔다.


세친은 대체로 4, 5세기 경의 인물로 간주된다. 그는 간다라지방에서 태어나 카쉬미르지방에 가서 '대비파사론'을 연구한 뒤 그 요점을 뽑아서 600송을 지은 후 거기에다 자신의 주석을 가하여 '구사론'을 저술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대체로 유부의 철학을 따르면서도 비판적인 안목을 잃지 않아 때로는 경량부등의 타철학의 관점에서 문제를 고찰하기도 한다. 나중에 그는 대승불교로 전향하여 많은 대승의 논서들을 남겼다. 이제 '구사론'의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봄으로써 유부철학을 고찰하기로 한다.


'구사론'은 계, 근, 세간, 업, 수면, 견성, 지, 정, 파아의 구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에서 철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제법의 본체와 작용을 밝히는 계품과 근품이며 파아품에서는 외도의 철학까지 포함하여 아견을 파하고 있다. 이 3품을 중심으로 하여 '구사론'의 근본적인 철학적 입장을 규정할 것 같으면 '인공법유'의 철학이라 할 수 있다.


인공이란 말은 인간은 영원불변의 자아가 없고 단지 물질적, 그리고 심적 요소들의 혼합체에 불과한 현상적 존재라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을 색, 수, 상, 행, 식이라는 오온의 화합으로 보는 불타의 인간관에 그대로 기초한 것이다. 다만 '구사회'에서는 오온 대신 75법을 들어 인간뿐만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상좌부에서 82개의 법으로 인간존재를 설명하는 것을 보았거니와 '구사론'의 75법도 이와 같은 류의 사고방식인 것이다.


그러나 유부의 철학자들은 법을 존재의 기본적 요소로 보는 관점이 점점 철저해짐에 따라 법을 실체시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공법유의 입장을 취하게 된 것이다. 즉 사람은 공(빌 공)하나 사람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은 항구적으로 존속한다는 이론이다. 유부는 이 점을 '삼세실유 법체항유'라고 표현하며 이것을 유부철학의 근본으로 삼고 있다. 즉 법의 나타남과 작용은 순간적인 현재뿐이나 법의 체성은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를 통하여 실체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유부가 법에 관하여 이런 실재론적 견해를 취하게 된 주요 이유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행한 행위(업)의 효력과 작용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만약에 과거에 지은 업이 어떤 지속적인 힘으로 남아 있지 않고 다만 순간적인 것뿐이라면 현재나 미래에 있어서 그 결과가 나타날 근거가 없어지는 것이며 이것은 업의 법칙을 부정하는 셈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따라서 유부는 업력의 소재로서 삼세를 통한 법의 실유를 상정하는 것이다.


유부에서는 또한 우리가 신체나 언어로 지은 업의 작용을 설명하기 위하여 무표업 혹은 무표색이라는 독특한 개념을 설정한다. 무표색이란 11개의 법 중의 하나로서 외부에 나타나는 우리의 신체적 언어적 행위가 그친 후에도 계속적으로 남아 있으면서 그 행위의 결과를 초래하도록 하는 어떤 보이지 않는 미세한 물질을 말한다. 행위의 인과 과를 이어주는 일종의 색법인 것이다.


'구사론'의 75법은 유위법과 3개의 무위법으로 구분되기도 하고 오위로 분류하기도 한다. 즉 색법 11개, 심법 1개, 심소법 46개, 심불상응행법 14개, 그리고 무위법 3개의 오위이다. 이것은 무위법 3개를 제외하고 모든 유위법을 오온에 준하여 분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다섯 가지의 법 가운데서 유부의 철학적 사고방식을 특징적으로 잘 나타내주는 것은 네번째의 범주, 즉 14개의 심불상응행법들이다. 심불상응행이란 말은 의식의 흐름에 영향을 주면서도 심소법처럼 의식의 대상은 되지 않는 요소들을 의미한다. 즉 심에 상응하지 않는 행법이란 뜻이다. 여기서 행법이란 행, 즉 의지적 성향에 의거하여 발생하는 유의법을 말한다. 이러한 심불상응행법으로서 유위법을 말한다. 이러한 심불상응행법으로서 유부는 다음과 같은 것을 든다.


득과 무득 - 한 개인으로 하여금 업에 따라서 어떤 법을 얻거나 잃게 하는 힘들.
동분 - 유정들로 하여금 각각 자기들이 속하는 류의 공통적 특성을 유지하게 하는 법.
명 - 명근으로서 개인의 수명을 결정하는 생명력.
무상과, 무상정, 멸진정 - 이 셋은 모든 분별작용이 사라진 정신상태를 이루게 하는 힘들.
상 - 모든 유위법의 특징인 생, 주, 이, 멸의 힘들.
명신, 구신, 문신- 소리와 말과 문장에 그들의 의미를 부여해 주는 힘들.


이상과 같은 14개의 심불상응행법들의 개념은 나중에 우리가 고찰하겠지만 승론 철학의 다원적 실재론의 사고방식과 매우 비슷한 것으로서 유부의 철학이 정립될 당시 승론철학이 이미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유부에서 말하는 3개의 무위법이란 허공, 지혜에 의하여 얻어지는 열반인 택멸무위, 인연이 없어서 어떤 법도 생기함이 없는 비택멸무위로서 이들은 생, 주, 이, 멸의 사상을 여읜 절대적이고 영원한 법들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구사론의 계, 근, 피아품을 중심하여 유부철학을 살펴보았다. 구사론의 나머지 부분들 가운데서 세간품과 업품과 수안품은 생사의 과와 인과 연을 설명하여 현성품, 지품, 정품은 수행과 증오의 과와 인과 연을 설명하는 것이다. 구사론은 이렇게 매우 포괄적이며 짜임새 있는 논서로서 유부의 철학뿐만 아니라 불교사상일반에 좋은 지침서이기도 하다. 세친 이후 안혜, 견혜, 진나, 세우 등의 논사들이 출현하여 구사론에 주석서를 썼다.

 

 

4. 경량부와 독자부  ▲ 위로


설일절유부의 철학은 제법의 실체와 현상을 구별하여 제법의 현상은 순간적으로 변하나 실체는 영원한 것으로 간주하는 일종의 다원적이고 실재론적인 사상이다. 이것은 제법의 무아와 무상을 강조하는 원시불교의 현상주의적인 철학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으로서, 변하는 것 가운데 변하지 않는 것을 찾는 인간의 또 하나의 갈망의 표현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유부의 실재론적인 경향에 반발하여 그들이 의거하고 있던 논들의 권위를 부정하고 순수히 불타가 설한 경만을 따를 것을 주장하고 나온 부파가 경량부였다. 경량부는 2세기에 구마라라타에 의하여 설일절유부로부터 분리해 나왔다. 그들의 저서들은 남아 있지 않으나 구사론이나 다른 문헌들을 통해서 그들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


경량부는 법의 실체와 상을 구별하는 유부의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법이란 오직 순간순간 변하는 상뿐이며 현재에만 존재할 뿐이다. 법은 순간적 존재들이기 때문에 생기자마자 없어진다. 따라서 경량부는 유위법의 사상인 생, 주, 이, 멸 가운데서 생과 별만을 인정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경량부는 유부의 근본적 입장인 삼세실유법체항유를 곧 바로 부정하고 현재유체과말미무체를 주장한다.


그들은 법의 분류에 있어서도 색법 가운데서 사대와 필법 하나만을 인정하며 나머지 모든 법은 인정하지 않는다. 열반이라는 것은 일체의 번뇌가 사라지고 제법이 적멸한 상태로서 유부에서처럼 어떤 실체적인 것이 아니다. 열반뿐만 아니라 일체의 모든 법은 경량부에 의할 것 같으면 실체적인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단지 이름에 지나지 않는 가명적인 것뿐이다. 이와 같이 볼 때 경량부는 실로 불타의 무상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유부의 실재론적인 철학을 거부하고 유명론적인 입장을 철저히 고수한 것이다.


경량부는 존재를 순간적인 법들의 연속으로 보기 때문에 지각에 대한 회의를 불러 일으켰다. 만약에 존재가 순간순간 변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어떤 사물을 지각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지나간 것만을 의식 속에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지각이 외계의 세계를 그대로 반영한다고 하는 소박한 믿음은 깨어지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모든 지각은 간접적인 것이다. 우리가 지각하는 것은 대상 자체라기 보다는 지나간 대상에 관한 인상들뿐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인상들로부터 단지 추리에 의하여 대상의 세계를 알 수 있을 뿐인 것이다. 이와 같은 외계의 인식가능성에 대한 회의는 나중에 외계의 실재성까지도 부인하는 유식철학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무상의 세계관을 저버린 유부의 실재론적 철학에 반발했던 경량부도 무아설과 업보를 어떻게 조화시킬까 하는 문제에 와서는 자신의 입장을 끝까지 지키기 어렵게 되었다. 만약에 인간존재가 단지 순간적으로 변하는 제법의 흐름에 지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리는 업의 주체로서의 나와 업보를 받는 나 사이에 동일성을 주장할 수 있겠는가? 도대체 과거에 지은 업은 어떠한 형태로 어디에 존속하다가 과보로서 나타나게 되는 것일까?


경량부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대답으로서 우선 인간존재의 밑바닥에 그 흐름이 의지하고 있는 바의 어떤 기체가 있음을 인정했다. 이것은 일미온 혹은 근본온이라 부르며, 이 일미온은 언제나 동일한 본질로서 계속해서 작용을 하고 있는 미세한 의식으로서 윤회의 주체가 되는 존재라고 한다.


이 식은 우리가 행한 좋고 나쁜 업의 결과로서의 종자들을 그 안에 지니고 있다. 이 종자들은 우리가 지은 업의 훈습에 의하여 우리 안에 남게 되는 습기와 같은 것으로서, 이 종자들이 나중에 현행되어 업보로서의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종자설로써 경량부는 업보를 설명하며 유부에서 말하는 무표업의 이론에 대신하고자 한 것이다. 경량부에 의하면 종자들은 잠복기간 동안 불변하게 존속하는 것이 아니라 상속전변하며 있다가 결과로서 나타난다고 한다. 경량부의 이러한 사상은 나중에 대승불교의 유식철학에 직결되는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독자부(9)는 또 하나의 독특한 이론을 내세웠다. 인간에게는 오온과는 다른, 그러나 오온을 떠나서 따로 존재하지도 않는, 비즉비이온으로서의 푸드갈가라는 것이 있어서, 이것이 업보를 받는 존재로서 윤회를 하거나 열반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9) 독자부란 이름의 뜻은 아직도 정확히 밝혀지고 있지 않다. 푸드갈라의 이론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pukgalavada라고도 부른다. 토마스의 전게서, 39쪽, 92~126쪽 참조.


독자부는 이 푸드갈라와 오온과의 관계를 불과 연료와의 관계와 같다고 한다. 마치 불이 연료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으나 그렇다고 해서 연료 자체는 아닌 것과 같다는 것이다.


만약에 푸드갈라가 오온 이외의 어떤 존재라 할 것 같으면 그것은 어떤 영원한 존재일 것이며 이것은 상견에 빠지는 것이며, 만약에 푸드갈라가 오온과 동일하다고 할 것 같으면 이것은 단견에 빠지는 오류를 범한다고 한다. 푸드갈라는 오온과 같은 유위법도 아니요 오온과 다른 무위법도 아닌 규정하기 어려운 독특한 존재라고 한다.


이 이론은 항시 변하는 현상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자기동일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열반을 유부에서처럼 어떤 비인격적인 법으로 간과하지 않고 유위법과 무위법의 중간적 존재인 자아의 상태로서 파악하려는 것이다.


이상에서 고찰한 경량부와 독자부의 이론들은 원시불교의 근본적 세계관인 무아의 사상을 배반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가지고 있는 철학적 문제점들, 특히 윤회와 업보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시도로서, 후의 대승불교의 아라야식 사상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상좌부, 설일절유부, 경량부, 독자부의 학설을 고찰함으로써 서력기원전 약 3세기부터 기원후 4세기에 이르는 동안에 발전된 상좌부 계통부파들의 철학을 살펴보았다.

 

 

5. 대중부의 불교사상  ▲ 위로


한편, 대중적 진보주의를 표방하면서 상좌부와 대립하여 자체 내에서 많은 부파을 파생시킨 대중부는 불교교리발달상에 있어서 많은 새로운 이론들을 발생시켰다. 이들은 후에 대승불교 발전의 기반이 된 것으로서 보인다. 우선 종교적으로 대중부는 새로운 불타관을 전개했다.


불타가 입멸한 후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그에 대한 한 역사적 인간으로서의 기억이 희박하여지게 되고, 신도들 간에는 그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으로 인하여 그를 이상화하여 볼 뿐만 아니라 심지어 신앙의 대상으로까지 삼는 경향도 보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불타는 그 외모에 있어서 인도인들이 이상으로 하던 위대한 인간들이 갖추어야 하는 32상, 80종호를 갖추었고 그의 마음은 십력, 사무외와 같은 신비스러운 힘들을 지녔다고 한다.


또한 불타로서의 그의 생애의 위대한 업적은 도저히 한 생애의 짧은 기간의 수행만으로서의 성취될 수 없다는 생각에 근거하여 불타는 전생에서 수많은 훌륭한 공덕을 쌓았음에 틀림없다고 믿게 됐다. 이에 따라 그의 전생을 이야기하는 본생담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불타와 성자들을 추모한 나머지 그들의 유골이나 유품들의 숭배도 성행하게 되어 신도들은 탑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그 안에 유골을 안치하고 탑 주위를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참배하며 헌화로서 그들의 신앙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러한 불타에 대한 경애감과 신심은 대중부에서 더욱 더 두드러져, 불타를 완전히 초세간적 존재로 신격화해서까지 보게 된 것이다. 대중부에 의할 것 같으면 제불세존은 모두 출세간적이며 모든 여래는 유루법이 없으며, 그의 말은 모두 설법이고, 그의 몸과 위력과 수명은 끝이 없으며, 그는 물음에 답하되 생각이 필요없으며 일찰나의 마음에 일절법을 안다고 한다.


대중부는 또한 불타가 되기를 희망하는 보살에 관하여도 말하기를 그들은 중생을 이롭게 하려는 마음이 강하기 때문에 악취(동물이나 아귀와 같이 나쁜 존재)에 태어나기를 원하며 또 마음대로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한다.


대중부는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중생의 심성은 본래 깨끗하나 객진과 같은 번뇌에 의하여 더럽혀질 뿐이라고 하여 모든 중생이 불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10) 유위법은 현재에만 존재한다고 하여 경량부와 같이 유부의 법체항유의 사상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대중부는 무위법으로 9개를 인정했다. 즉 택멸, 비택멸, 허공, 공무변처, 식무변처,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 연기지성, 성도지성이다. 이것은 유부의 3무위법 이외에 신정의 사단계, 연기법, 팔정도 같은 것을 영원한 실재나 진리로 간주한 것이다.


(10) 이상의 대중부의 교설은 기부종륜론, 대정신수대장경 49쪽, 15쪽에 근거.  ▲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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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철학사] 5. 소승부파불교철학의 발전

[인도철학사] 제5장 소승부파불교철학의 발전 길희성: 서울대학교 문리대 철학과 졸업. 하바드대학교에서 비교종교학 전공.저서- Chinul, the Founder of the Korean Son Tradition현재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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