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불교

인생수업 -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

수선님 2025. 10. 26. 13:34

 

 

인생수업 - 법륜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는 부제가 붙은 《인생수업》이란 이 책은 법륜스님이 한창일 때,(지금도 한창이지만…) 다시 말해서, 즉문즉설을 통해 대중들로부터 인기가 치솟았던 때, 대안적인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할 그 무렵, 그로 인해 2000년 만해상(포교상), 2002년 라몬 막사이상(평화와 국제이해 부문), 2007년 민족화해상, 2011년 창암상(봉사 부문), 2012년 통일문화대상 등을 수상하던 그때 2013년에 내놓은 책이다. 여기에는 지금도 사람이라면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을 안내하고, 거울같이 투명하고 귀한 말씀들이 담겨 있다.

 

처음부터 스님은 즉문즉설로 묻고 답한다. “젊은 사람은 젊으니까 힘도 있고 꿈도 가질 수 있어서 정말 좋구나. 나이 든 사람은 인생경험을 많이 했더니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구나. 이렇게 자기를 긍정하고 현재의 삶을 더 좋게 만들어가야 합니다. 어릴 때는 어린 대로 젊을 때는 젊은 대로, 늙으면 늙은 대로 좋은 사람은 평생 행복하게 삽니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고 지금을 충실히 산다면 그 사람은 늘 인생의 황금기를 사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 우리가 나이 들어가면서 후회하고 만족하지 못하고, 불행한 것은 세상에서 추구하는 가치에 휘둘려 자기중심을 잡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좋은 대학에 가야하고,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고, 더 높은 지위에 올라야 하고, 더 널리 이름을 알려야 하고…, 숱한 욕심에 사로잡혀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금까지의 삶의 우선순위였던 재물, 출세, 명예, 건강 등에 대한 욕구를 뒤로 돌려야 합니다. 이런 욕구들이 앞을 가로막고 있어서, 그것을 해결하기 급급해서, 정작 중요한 것이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욕망들을 내려놓아야 눈이 열리고 어떻게 해야 행복해지는지 비로소 인생의 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오늘을 허투루 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돌아보세요. 죽음의 순간이 언제 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오늘 최선을 다해야 하고, 마음을 다해야 내일 죽어도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추구하는 성공과 상관없이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갈 때 그것은 좋은 인생입니다. 오늘의 삶이 만족스러우면 그게 곧 행복한 인생입니다.”

 

서문에서 스님이 한 말이다. 본문으로 들어가도 아마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즐겁게 사는가? 이런 질문에는 원래 답이 없다. 풀도 그냥 살고 토끼도 그냥 산다. 또 때가 되면 죽는다. 살고 싶어서 살고 죽고 싶어서 죽는 것이 아니다. 주어진 삶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괴로워하며 살 것인가, 즐거워하며 살 것인가 하는 문제만 남는다.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나는 특별하다’는 생각이 담겨져 있다. 그것은 나의 삶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부담을 스스로 갖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특별한 줄 알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하루만 굶어도 배고파 죽겠다. 5분만 숨 못 쉬어도 숨 막혀 죽겠다고 한다. ‘왜 사느냐?’‘왜 살아야 하느냐?’라고 질문하면서 시비 거는 대신 ‘어떻게 하면 오늘도 행복하게 살까’라고 질문하고 생각하는 것이 삶의 에너지를 발전적으로 쓰는 것이다. 그것이 곧 인생에 대한 책임과 권리를 지닌 주인으로서 잘사는 길이다.

 

누구나, 무슨 일이나 ‘긍정하는 습관’을 가지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매사를 긍정하기는 쉽지가 않다. 이미 일어난 일이라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좋다. 일이 일어나 버렸는데 그걸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잘될 거야’하는 낙관적으로만 세상을 보라는 것도 아니다. ‘일어나 버린 일은 항상 잘된 일이다’이렇게 긍정적으로 보고 거기서부터 출발하면 어떤 상황에서든 배울 수 있고,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지혜로운 조언도 해 줄 수 있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아야 한다.

 

오늘같이 화창한 봄날 어렵고 힘들지만 세상은 살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텐데도 사람들은 왜 자살을 할까. 개인적인 원인은 자아상에서 비롯된다고 하고, 사회적 원인은 가정과 사회가 개인의 불안 심리에 씨앗을 심고 거기에 물은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란다. 자살을 막는 해법도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다. 가정에서는 부모가 정서적으로 불안하면 아이 또한 심리적으로 불안하여 그 영향을 미친다. 아이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서는 엄마의 마음이 편해야 하고, 아내의 마음은 남편의 영향이 크다. 사회는 아기를 잘 키울 수 있는 안정된 환경을 엄마들에게 마련해 주어야 하고, 부모는 아이를 위해 헌신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 아이의 정신적 씨앗이 튼튼해지고 세상의 어려움 속에서도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공부 공부’하면서 아이를 지나치게 억압하는 것도, 승자가 되라고 목숨 걸고 경쟁하는 것도, 이기주의적 심리로 약자들은 치열한 경쟁 구도를 이기지 못해 좌절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기 쉽다. 자살 충동을 병이라고 여기지 않는 것도 문제다. 정신질환을 병으로 여기지 않는 데서 문제가 커지는 경우가 있다. 옆 사람에게 ‘죽겠다’고 하는 것은 죽을 것 같은 상황에 빠질 때 ‘살고 싶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외면하거나 ‘그러면 죽어라’고 하지 말아야 한다. ‘너 왜 자꾸 죽는다고 하니? 힘내!’라고 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화제를 바꾸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 자살하려고 산에 간 사람도 맹수를 발견하면 ‘사람 살려’하고 도망치기 십상이다. 생존 본능이 생긴 것이다. 자살 충동은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고 약을 먹어야 하는 병이다. 하루 40명도 더 자살한다는 우리나라의 자살률을 생각하면 남의 일이라고 치부해 버릴 일은 아닐성 싶다.

 

10대 청소년과 20대 청년들의 자살이 늘어간다는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젊은 나이에 왜 삶을 포기할까? 그것은 ‘자신에 대한 인식의 오류’때문이다. 사람에게는 ‘나 이런 사람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 돼야 해’라는 어떤 상이 있다.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어’하기도 한다. 남이 뭐라 하든 관계없이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정해진 상, 그것을 자아, 자아상 또는 자아의식이라고 하는데, 이것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철학자들이 수 없이 연구해 왔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석가모니, 노자와 공자, 칸트와 데카르트…. ‘나는 이런 사람’이란 상상이 자기를 만들고, 상상하는 내가 진짜 나인 줄 착각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대부분은 나를높게 설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공주병, 왕자병이다. 자기에 대해 너무 높은 상을 그리는 것으로 막상 현실에 부닥쳐보면 생각과는 다르다.자기가 너무 초라해 보인다는 말이다.

 

자기가 스스로 그린 자아상과 밥 먹고 성질내는 현실의 나 사이 간극이 벌어지면 자아가 현실의 나를 못마땅해하고, 별볼일 없게 생각하게 되고 그것이 심해지면 세상과 사람들과도 마주하기 부끄러워져 밖으로 나가지 않고 방안에만 있게 된다. ‘나같이 쓸모없는 건 없어져야 해’하는 심리로 발전하고 결국 자신을 죽이는 자아의식이 현실의 자기를 죽이는 일을 저지르게 된다. 그것이 자살이다.

 

상대에 대해서도 상을 그린다. ‘내 애인은 이런 사람이어야 해’하고 말이다. 그런데 현실의 애인이 이 기준에 못 미치면 불만스럽고 보기 싫어진다. 그러면 헤어지면 되는데 상대가 헤어지지 않으려고 하면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다. 그것이 살인이다. 자살이나 살인이나 자기가 그리고 있는 상에 근본을 두고 현실을 부정하는 면에서 같다고 할 수 있다.

 

“다 괜찮아. 지금도 잘하고 있어. 그 정도면 좋아.”

 

불교에서는 윤회라며 ‘욕심이 많으면 죽어서 돼지가 된다. 미련하면 소가 된다. 독하면 독사가 된다’는 이런 말이 있다. 그런데 돼지는 정말 욕심이 많을까? 아니다. 배가 고프면 꿀꿀대지만 배부르면 더 이상 먹지 않는 것이 돼지다. 다른 돼지가 남은 것을 먹어도 못 먹게 하지 않는다. 사람은 어떤가? 자기 배가 부른데도 옆에 굶어 죽는 사람이 있어도 자기 것을 나눠 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사자가 사납다고 하지만 배부르면 눈앞에 토끼가 지나가도 잡아먹지 않는다. 욕심 많은 사람이 죽어서 돼지 혹은 짐승이 되는지는 알 수 없다. 사실 이 이야기는 힌두교 신앙인데도 한국불교에서는 불교 이야기라고 믿는다. 잘못된 믿음이 아닐 수 없다.

 

죽어서 천당에 가느냐, 지옥에 가느냐도 그렇다. 천당에 보내고 지옥에 보내는 것은 그분께서 알아서 하는 일이고 나는 그분(절대자)의 절대적 명령에 따라야지 거역할 수 없다. 죽음에 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죽고 사는 걸 걱정할 필요가 없다. 마음이 짓는 대로 업이 생기고, 지은 업에 따라서 과보를 받는 줄 아는 불자라면 내일은 어떻게 될 것인지 걱정할 것 없이 오늘 마음을 바르게 닦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리되면 내일이 좋아질 것이고, 아무것도 적정할 일이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그 슬픔을 놓아버려야 더 이상 슬픔과 괴로움 속에서 허우적거리지 않는다. 떠난 사람을 위해서도 훌훌 털어버려야 한다. 그 사람에 대한 좋은 기억은 할 수 있지만, 집착해서는 안 된다. 그리워서 운다고 하나 죽은 영혼은 떠나지 않고 허공을 맴돌게 된다. 죽은 이를 위해서도 가벼운 마음으로 보내줘야 하고 나를 위해서도 가볍게 보내야 한다. 남은 가족을 위해서도 더 이상 붙잡지 않아야 한다. 세상은 바뀌었다. 3년상, 1년상을 지내던 시대는 지난 과거다. ‘3일 슬퍼했으면 족하다’저자의 말이다.

 

인간은 서로 사랑하도록 되어 있다. 사랑하려면 상대가 있어야 한다. 상대는 인간일 수도 자연일 수도 있다. 바다를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내가 기분이 좋아서이지 바다가 나를 좋아해서가 아니다. 내가 바다를 좋아하기 때문에 바다가 좋다. 산은 산이고 바다는 바다일 뿐인데 내가 이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냥 바라는 것 없이 내가 좋아하고 행복해하는 것이다. 바라는 것 없이 너를 사랑하면 그가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내가 그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를 바라보는 것으로도 행복해진다. 바다를 좋아하듯, 산을 좋아하듯, 바라지 않고 좋아하면 사랑에 금이 가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버리기 쉽지 않은 것이 있다. 습관이다. 습관은 굳어진다. 노인이 꼰대소리 듣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냥 습관대로, 하던 대로 해버리기 일쑤다. 아이는 미국에 1년만 살아도 영어를 배우는데 어른은 10년을 살아도 어렵다. 어른에게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하면 안 된다. ‘그것 보세요 밭에 나가 일하지 말랬는데 일하니까 아프지 않아요’하면 안 된다. 좋아서 하는 일이니 보고만 있으면 된다. 생각이 굳어지고 세상 보는 눈이 좁아져 있으면 눈으로 봐도 보이지 않고 귀로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 원효대사는 그런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살펴보았다고 한다. 광대들이 춤추고 노래하니까 펄쩍대면서 좋아하는 것을 보고 그때부터 표주박을 들고 광대극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세상에 집착을 끊고 좋은 일에도 나쁜 일에도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도록 하라고 가르쳤다 한다. 내 생각으로 이건 좋은 건데 왜 받아들이지 않지 할 게 아니라, 부모가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집착하지 않는 게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다.

 

생로병사는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부처님도 그것을 풀지 못하고 자신의 죽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자신이 말한 법에 따르면 영원히 멸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 어머니가 수능시험까지 잘 치른 아들을 태우고 신호대기하다 다른 차에 받쳐 아들은 죽었고, 작은 아들은 어머니 차에서 크게 다쳤다. 그런 가운데 어머니가 가해자가 돼 버렸다면 이런 억장이 무너지는 일에 어머니는 어떻게 해야 살수 있을까? 그러나 이미 일어난 일은 되돌릴 수 없다.

 

착한 아이였으나 좋은 곳으로 갔을 거라는 믿음을 갖고 보내야 한다. 울고 불고 하면 엄마 때문에 갈 수가 없으니까 지금이라도 좋은데 빨리 가라고 기도해 줘야 한다. 작은 아들이 다리가 부러졌으나 살아 있으니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말이다. 교통사고 나서 차 부서지고 큰 아들이 죽었지만, 작은 아들이 살았으니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죽거나 다리가 부러질 수도 있는데 그래도 다행이구나 하고 생각하라는 말이다. 이제 앞으로는 누가 다리를 걸어 넘어뜨려도 ‘아들 죽고도 사는데 그만한 일로 못살게 뭐야’할 수 있을 것이다. 아들 죽었어도 생글생글 웃고 사는데, 재산이 넘어간다고 못살까하는 생각이 들면 떠난 아들이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고 간 선물이 될 것이다. 아들 때문에 울고 있으면 아들이 나에게 고통을 주고 간 거고, 아들을 통해 인생의 지혜를 얻으면 아들이 엄마에게 그래도 선물을 주고 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일에 도전해 실패했을 때 그 실패는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연애하다 실패하든, 사업하다 실패하든 그걸 상처로 갖고 있으면 다시는 연애고 사업이고 두려움이 생겨 못한다. 그러나 인생의 경험으로 받아들이면 몇 년 수행한 것보다 더 큰 깨달음을 얻는 기회가 될 것이다. 어떤 경험을 했던간에 항상 교훈으로 삼아 자산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 자녀의 죽음은 비할 데 없이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이를 통해서 인생을 깨닫는다면 앞으로 무슨 일을 당한다 한들 못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하고 생각하고 교훈으로 삼는다면, 남들은 죽네 사네 한다해도 나는 태연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식이 어릴 때는 돌봐주는 게 사랑이다. 그러나 커가면 냉정하게 지켜봐 주어야 한다. 그러나 아이가 어릴 때는 내가 돌봐줄 여력이 부족했고, 나이 들어서는 내가 지켜볼 인내가 부족하다. 아이가 넘어져 악을 써도 자기가 일어날 때까지 지켜봐 주지 않고, 아이가 말 안 듣고 성질을 부리는데도 넘어지면 달려가 안고 난리를 피운다면 부모는 자식이 크면 자기감정도 절제하고 무작정 도와주는 게 아니라 차분하게 지켜볼 냉정함이 있어야 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줄 최고의 선물은 자식이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부모 없이도 혼자 살아갈 힘을 키워 주는 것이 진짜 사랑이다.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진짜 사랑이 아니다.

 

사람들은 새싹이 돋고 생동하는 봄을 최고의 계절로 치는 경우가 많다. 가랑잎이 떨어지는 가을은 ‘쓸쓸하다’고 한다. 가랑잎을 보면서 ‘찬란했던 내 젊음도 가랑잎처럼 스러져가는구나’하고 나이 들어가는 인생을 아쉬워하는 것이다. 봄에 피는 꽃들만 예쁘다고 하면서 봄꽃 보러 여행도 가지만, 단풍을 보기 위해서 단풍놀이를 가기도 한다. 꽃잎은 주워 가지 않지만, 고운 단풍잎은 주워서 책갈피에 꽂아 보관하는 것을 보면 단풍도 결코 만만치는 않다.

 

우리 인생도 나고 자라서 나이 들어가듯이 단풍처럼 늙어가면 나이듦이 결코 서글퍼지만은 않을 것이다. 자연이 변화하듯 편안하게 늙어간다면 그 인생에는 이미 평화로움이 깃들여 있는 것이다. ‘노후를 아름답게 잘 마무리 지어야겠다’는 생각마저 버리고, 나이 들면 드는 대로, 늙으면 늙은 대로, 병이 나면 병나는 대로, 주름이 생기면 생기는 대로, 아파서 걸음이 불편하면 ‘그동안 많이 부려 먹었으니 고장 날 때도 됐지’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의 얼굴은 언제나 편안하다. 단풍마저 아름답듯이 늙음이 비참해지지 않고 순리대로 가는 것이다.

 

잘 물든 단풍처럼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과한 것은 항상 부작용이 따른다. 젊었을 때는 조금 무리해도 금방 회복되지만 나이 들어서는 이겨내기가 힘들다. 저자가 말해주는 경계 원칙은 1. 과식하지 않기 2. 과음하지 않기 3. 과로하지 않기다. 젊은이의 용기는 ‘포부가 크다’고하지만, 나이 들어서는 ‘노욕’이라고 한다. 추하게 욕심을 부린다는 뜻이다. 나이 들어서는 자꾸 일을 벌이고 계획을 세워나갈 것이 아니라, 정리해야 한다.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다. 성숙해져 열매 맺는 것처럼 잔가지를 정리하면서 마무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풍처럼 물들어가는 나’차분하게 바라보고 받아들이자.

 

나이 들어서 계획을 세워 ‘그것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본인은 좋은 일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욕심이다. ‘살 만큼 살았다. 할 만큼 했다. 그러니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욕심이다. ‘쉬겠다. 하지 않겠다’라는 목표가 있는 것이다. 인생 60이 넘어가면 이때부터는 덤?이니까 뭘 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고 생각하고 살아야 욕심이 없어지고 세상을 관조하게 되는 것이다. 아들이, 친구가 ‘도와달라’고 하면 아무 대가 없이 도와주는 것이 자기를 내려놓는 삶이다. 경로우대를 받는다면 이제 그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 세상을 위해 봉사하고 더 이상 돈을 받고 팔지 않는 삶의 전환이 필요하다. 돈이 있으면 보시하고, 돈이 없으면 재능으로 봉사할 수 있어야 한다. 말을 잘하면 말로, 힘이 세면 힘으로, 시간이 많으면 시간으로 남을 돕겠다는 마음을 내야 한다. 그러나 목표를 세워서 욕심을 내지는 않아야 한다. 봉사는 집 밖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매일 아침을 챙겨주는 아내에게 빚을 갚는 것도 봉사다.

 

‘행복한 노후를 위해서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준비 없는 노후는 불안하다’고 언론들이 떠들어되니까 너 나 없이 모두 거기에 매달린다. 오늘이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내일은 행복할까. 이생에서 행복하지 못하면 저생에서도 행복하지 않다. 지금 여기에 살면서 불평불만하면 천당에 가더라도 불평불만한다. 극락에만 가면 행복할 것 같아 수행하고 회계하고 참회해도 막상 가보면 거기서도 괴로울 수 있다. 어디를 가도 저절로 행복해지는 데는 없다. 지금 당장 여기서 행복해야 한다. 행복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보다 오늘 당장 여기서 행복해야 한다. 어떻게?

 

‘저 사람은 좋은 여자 만나 행복한데 나는 이게 뭐꼬’이렇게 생각하면 괴롭다. 스님들처럼 결혼도 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면 행복할 것 같다고 생각하면 괴롭다. 결혼 안 한 스님들이 약 오르도록 재미있게 결혼생활을 하면 그런 소리 안 나온다. 그것이 내처럼 결혼한 중생의 삶이다. 인연 따라 늙으면 늙어서 좋고, 살면 살아서 좋고, 죽으면 죽어서 좋아야 한다. 그래야 이생에서 극락에 살듯이 저 생에서도 극락에 사는 것이다. 이생은 지옥같이 살고 저 생에서는 극락에서 살겠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지옥, 극락이 어디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행복하면 그곳이 극락이고 내 마음이 괴로우면 거기가 곧 지옥이다.

 

나는 지금 충분히 행복하다. 그러나 지금 행복하게 살겠다는 생각조차 내려놓을 때 비로소 행복해진다.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네.

 

안 변하는 것으로 알았던 우주도 변하고, 중심이라고 생각했던 지구도 겨우 태양계의 일부라는 것이 알려진 지 오래다. 하늘이 무너져도 땅이 꺼져도 남편이 죽어도, 병이 나도, 자식이 사고를 당해도 내 마음이 크게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사고는 처리하면 되고, 병이 나면 병원 가서 치료하면 되고, 때가 되면 죽으면 되는 것처럼 마음이 여일(如一)해야 한다.

 

바깥의 변화에 재미를 붙여서 ‘이래서 좋다. 저래서 나쁘다’고 끊임없이 생각을 일으키면 괴로움은 끝나지 않는다. 어떤 일이 닥쳐도 거기에 구애받지 않을 때 더 자유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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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수업 -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

 인생수업 - 법륜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는 부제가 붙은 《인생수업》이란 이 책은 법륜스님이 한창일 때,(지금도 한창이지만…) 다시 말해서, 즉문즉설을 통해 대중들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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