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세계 120

<좌선(坐禪)에 대한 소견>

​좌선(坐禪)이란 앉아서[坐] 고요한[禪] 상태에서 삼매(三昧)에 드는 일이다. 다시 말해, 몸은 움직이지 않으나 마음속의 사유(思惟)로써 번뇌를 물리쳐서 그 마음이 아주 편안하고 깨끗하고 고요한 상태로 머물고자 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선정수행(禪定修行)’이라 한다면 수행과정의 정신집중인 삼매(三昧)를 통해서 얻게 되는 마음의 고요하고 깨끗한 상태, 바로 그 정점을 ‘선정(禪定)’이라 할 수 있다. 즉, 몸으로는 올곧게 가부좌의 자세를 취하면서 마음으로는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삼매에 드는 것이다. 그런데 자세를 가다듬고 고요히 앉아서 화두(話頭)를 들건, 묵조(默照)를 하건, 관법(觀法)을 하건 간에 무언가 거기에는 마음의 작용이 바탕이 돼 있다. 화두를 들어도 화두에 대한 마음자세가 필요하고, ..

선의 세계 2025.01.30

뜰앞의 잣나무 - 정전백수자

정전백수자 화두 (庭前栢樹子 話頭) 1《뜰앞의 잣나무》 조주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묻기를 어떤 것이 조사(달마)께서 서쪽(인도)에서 오신 뜻입니까? 조주 스님 이르시되 "뜰 앞의 잣나무니라" 스님이 이르되 "화상은 경계를 가지고 사람에게 보이지 마십시오 "하니 조주 스님 이르되"나는 경계를 가지고 사람에게 보이지 않노라" 스님이 이르되"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하니조주 스님 이르되 "뜰 앞의 잣나무니라"   이 법문에 졸납(법현)이 이르되 一夜作竊 不覺天曉 (일야작절 불각천효) 밤새도록 도둑질하다 날새는 줄 모르도다.   정전백수자 화두에 설두중현 선사 송하시되,《雪竇顯頌 (설두현송)》千聖靈機不易親 (천성영기불이친) 일 천 성인의 신령한 마음은 쉽게 친할 수 없고 龍生龍子莫因循 (용생용..

선의 세계 2025.01.19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

불교의용어​직지인심.견성성불(直指人心.見性成佛)性宗2009-02-16 05:36:21, 조회 : 2,451​직지인심.견성성불(直指人心.見性成佛) ​직지인심'은 '곧바로 사람 마음을 가리킨다.'는 뜻이다.문 자나 언어를 빌리거나 외적 대상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의 마음을 잘 응시해서 직접 단번에 마음의 근원을 파악하는 것이다.​즉 마음 깊숙히 내재하는 순수한 본심, 순수한 본성에 투철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기를 구명하는'것이며, '자기에 투철하는' 것이다. 이처럼 자기의 본마음을 직접 파악하는 것을 '직지인심'이라 말한다.​직지의 대상은 자기 밖이 아니라 자기 속에 존재한다. 때문에 밖에서 구하지 않고 안에서 구해야 한다. 마음 밖에서 찾는다면 외적 대상에 사로잡히게 되고, 그 결과 망상과 ..

선의 세계 2025.01.19

<은산철벽(銀山鐵壁)>

은산은산철벽(銀山鐵壁)이든 철벽은산(鐵壁銀山)이든 은과 철은 견고해서 뚫기 어렵고 산과 벽은 높아 오르기 어렵다는 말로서 화두를 참구해서 깨닫는 일이 그와 같이 어렵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은(銀)으로 만든 산이요, 쇠[鐵]로 만든 벽에 사방이 꽉 막힌 것처럼 앞뒤가 다 끊어져버린 절박한 상황에 직면해, 너무도 막막해서 아무 사량분별(思量分別)도 할 수 없는 상황을 말한다. 그러나 수행자에게 이 은산철벽은 내 몸과 목숨을 다해서 뚫고 들어갈 수밖에는 없는 관문(關門)으로, 자기 본참공안(本參公案)에 마치 모기가 쇠로 된 소 등에 올라타고서 그 입부리를 소 등에다가 쑤셔 박는 것처럼, 무조건 여하약하(如何若何)라, 막론(莫論)하고 ― 묻지 말고 입부리와 머리와 몸을 압량해서, 합해서 처박고 돌격을 해 들..

선의 세계 2024.12.01

경허선사 참선곡 (參禪曲)

경허선사 참선곡 (參禪曲)​ 홀연히 생각하니 도시몽중(都是夢中)이로다.천만고(千萬古) 영웅호걸 북망산 무덤이요.부귀문장(富貴文章) 쓸데없다. 황천객을 면할소냐.오호라, 나의 몸이 풀끝에 이슬이요,바람속의 등불이라. 삼계대사(三界大師) 부처님이 정령히 이르기를마음 깨쳐 성불하여 생사윤회 영단(永斷)하고불생불멸 저 국토에 상락아정(常樂我淨) 무위도(無爲道)를사람마다 다할 줄로 팔만장경 유전(遺傳)하니,사람되어 못 닦으면 다시 공부 어려우니 나도 어서 닦아 보세.닦는 길을 말하려면 허다히 많건마는 대강 추려 적어 보세.​ 앉고 서고, 보고 듣고 옷 입고 밥 먹으며사람들과 대화하는 일체처 일체시에소소영영(昭昭靈靈) 지각(知覺)하는 이것이 무엇인고? 몸뚱이는 송장이요, 망상번뇌 본공(本空)하고천진면목(天眞面目) ..

선의 세계 2024.12.01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이란 말은 주로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과 함께 4구로 이루어지며, 선종의 특색과 그 가르침을 적절히 표현하는 말이라 하겠다. 선(禪)은 부처님께서 깨달은 진수로서 ‘경전이나 언어문자 밖에 별도로 전해 준 진리’라는 뜻이기도 하므로 선의 특징을 잘 나타낸 말이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말은 경전이나 교학보다는 선이 더 ‘진수’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교학을 배척하고 선을 옹립하기 위한 사상 투쟁적 성격을 가진 술어라고 하겠다. 이 말은 선종의 종취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이긴 하지만, 부처님이 하신 말이 아니라 중국 선불교에서 창안한 말이다. 달마 대사가 주창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당ㆍ송..

선의 세계 2024.11.03

[김호귀의 공곡집과 선문답] 제44칙 판치생모(板齒生毛)

달마가 보여준 ‘마음의 침묵’​“판치생모”라 답한 조주 뜻엔9년 간 면벽 좌선으로 이빨에 이끼 난 ‘달마’ 위대함 담겨있어​승이 조주에게 물었다.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은 무엇입니까.”조주가 말했다. “앞 이빨에 터럭이 난 것이다.”​‘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인가[如何是祖師西來意]’라는 말은 가장 보편적인 공안으로 전승되어 왔다. 조사는 물론 중국 선종의 초조인 보리달마를 가리킨다. 중국을 기준으로 볼 경우에 달마의 출신국 인도는 서방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달마가 중국에 도래한 근본적인 의의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불교가 내세우고 있는 궁극적인 의미를 질문하는 것이다. ‘조사서래의’에 대한 최초의 문답은 탄연(坦然)과 회양(懷讓), 두 사람이 숭악혜안(嵩嶽慧安) 국사를 방문하여 질문한 것에..

선의 세계 2024.11.03

백장야호 / 철학자 강신주의 무무관과 철학

불교의 중도란 느슨한 인과 관계를 긍정하는 지혜​모든 것이 공하다고 보면대상에 대한 집착 끊어져​항상 존재한다는 생각과없다는 생각 버려야 중도​성인, 인과 어둡지 않을뿐초월해서 존재하지는 않아​백장(百丈) 화상이 설법하려고 할 때, 항상 대중들과 함께 설법을 듣고 있던 노인이 한 명 있었다. 설법이 끝나서 대중들이 모두 물러가면, 노인도 물러가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노인은 설법이 끝나도 물러가지 않았다. 마침내 백장 화상이 물었다.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가?” 그러자 노인은 말했다. “예. 저는 사람이 아닙니다. 옛날 가섭(迦葉) 부처가 계실 때 저는 이 산에 주지로 있었습니다. 당시 어느 학인이 제게 물었습니다. ‘크게 수행한 사람도 인과(因果)에 떨어지는 경우는 없습니까?’ 저는..

선의 세계 2024.10.20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본래 한 물건도 없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본래 한 물건도 없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은 육조(六祖) 혜능대사(慧能大師)가 오조(五祖) 홍인대사 (弘忍大師) 법석에서 노행자(盧行者)로 방앗간에서 허드렛일을 할 때 신수대사(神秀大師)가 칠백 대중을 대신하여 자신의 수행(修行) 견처(見處)를 벽에 써놓은 게송 곁에 노행자 자신의 심안처(心眼處)를 글을 아는 행자에게 부탁하여 써놓은 게송이다. 오조 홍인 대사는 대사를 따르는 대중들에게 그동안 갈고 닦았던 마음의 견처를 시 게송을 지어서 각자 바치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 많은 대중스님들은 상수제자(上首弟子)인 신수대사(神秀大師)가 오조 홍인대사 법을 이을 것, 이라고 믿고 자신들의 게송을 지어 받치지 않았다. 부담을 느낀 신수대사는 어쩔 수 없이 밤에 아무도 모르게 대중스님들이 ..

선의 세계 2024.10.06

끽다거(喫茶去) ― 차나 한 잔 마셔라

‘끽다거(喫茶去)’라는 유명한 화두를 남긴 조주(趙州) 종심(從諗, 778~897) 선사는 중국 당나라 시대의 선승(禪僧)으로, 차를 선(禪)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14세에 출가해서 불문에 귀의한 조주 선사는 일찍이 선의 본질을 꿰뚫어 고승(高僧)의 물음에 답할 때 막힘이 없었고, 선문답(禪門答)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스스로도 참선의 화두를 많이 만들어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의 하나가 바로 ‘끽다거(喫茶去)’이다. 조주 선사는 세수 80에 이르기까지 행각과 선문답에 열중하다가 그의 나이 80세부터 120세에 입적할 때까지 줄곧 머물렀던 관음원(觀音院)에 있었을 무렵, 수행자 두 사람이 그를 찾아와 절을 올리고는 이렇게 물었다.“불법(佛法)의 대의(大義)가 무엇입..

선의 세계 2024.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