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과 수행 157

‘참나’ ‘참마음’의 개념 정리

​ 티베트 텐진 빠모 스님 이분의 얼굴에서 불성 참마음을 읽을 수 없나요 ​ ‘참나’는 진아(眞我)의 번역어이다. 부처님 당시에는 없었던 신생어이다. 중국에서 선불교(禪佛敎)가 번성하면서 수행의 목표가 진아(眞我), 본래면목(本來面目),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 진여(眞如), 불성(佛性)의 발견에 모아지면서 관심의 대상이 된 말이다. 그러므로 진아 곧 ‘참나’는 상락아정(常樂我淨)의 당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참나’는 그냥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번뇌 망상에 덮여서 더럽혀있으므로 수행을 통해 찾아서 밝게 드러내야 한다고 했다. 흔히 세상 사람들은 자신을 믿는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참다운 자기가 아닌 중생심, 이기심, 자만심에 빠진 자기를 믿고 있다. 그러니 ‘참나’가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번뇌에 덮..

법문과 수행 2024.04.21

산골 노승의 화려한 점심-향봉

산골 노승의 화려한 점심-향봉 산골 노승의 화려한 점심 : 네이버 도서 네이버 도서 상세정보를 제공합니다. search.shopping.naver.com 글을 쓰게 된 이유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이다. 부처는 깨달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깨달음이란 무엇이며 깨달음의 내용은 무엇일까? 불교의 수많은 경전에는 깨달음의 내용이며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길이 담겨 있다. 그러나 커피를 마시고 커피 맛을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이룬 후 부처로서 깨달은 내용을 얼마만큼 말씀으로 담아낼 수 있었을까? 사람의 기억력은 한계가 있는 법이다. 부처의 말씀을 듣고 그 후 제자들이 스승의 말씀을 얼마만큼 기억해 경전에 옮겨 담았을까? 마흔이 다된 나이에 늦게야 철이 들어, 인도와 네팔, 티베트에 ..

법문과 수행 2023.10.15

세상 모든 것은 안의 문제다 / 법상 스님

인도 북부 라닥주 해발 4,500m 고지대에 티벳스님들이 깊은 선정에 들어 있는 모습이 한없이 고요합니다. '오∼옴 마니 반메훔' 낮은 염불소리가 은은히 깔리며 가슴을 시원하게 만드는 노스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세상 모든 것은 안의 문제다" 이 작은 멘트 속에 어찌 이리도 많은 것을 담고 있는지... 세상 모든 것은 안의 문제다... 아직도 그 여운이 남아 있는 듯 가슴 뭉클합니다. 그동안 우리들의 마음 속에 세상 모든 것들은 밖의 문제로 돌리기 쉬웠습니다. 사회를 탓하고 부모님을 탓하고 나쁜 머리를 탓하고... 남들을 탓하며 그 작은 나를 내새우려 노력하는 안타까운 모습들... 그 어리석은 삶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가만히 명상해 보면 세상 모든 것은 '나'의 문제입니다. '안'의 문..

법문과 수행 2023.01.15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의 차이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의 차이 ​ ​ ● 소승불교 ​ 소승불교(小乘佛敎)는 작은 수레라는 뜻을 가진다. 보수적 정통 불교를 주장하는 소승불교는 대승 교단에서 대승에 대비하여 표현하는 말로, 상좌부불교, 근본불교라 하고, 남방불교로도 칭한다. 상좌부불교는 스스로 수행하여 깨달음을 목표로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우선으로 하고 있다. ​ 이렇게 해탈의 수행 과정을 통해 얻어진 이상적 존재를 아라한 또는 나한이라고 하였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깨달음을 얻는 수행을 위해 부처님 당시의 전통 방식대로 계율을 철저히 지키며 수행한다. ​ 발달 과정을 살펴보면, 석가모니 때 발달했던 원시 불교와 아소카왕이 불교의 보급과 발전에 공헌했을 때의 불교를 통틀어 상좌부불교라고 한다. 그러나 기원전 2세기 경 불교계의 개..

법문과 수행 2022.12.25

에크하르트 톨레의 깨달음

에크라흐트 톨레의 깨달음 에크하르트 톨레가 평소에 우울증과 자살 충동으로 괴로워하는 나날을 보내다가 어느 날, 이런 생각을 했다, 우울증과 자살충동으로 괴로워하는 나와, 그것을 또 목격하고 있는 나는 누구지? 나라는 존재가 둘로 나누어졌다는 말이냐?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런 의문이 드는 그 순간 생각이 멈춰버렸다고 했다. 즉 “하나는 가짜고 하나는 진짜란 말인가?” 하는 그 순간 생각이 멈춰버렸다는 내용이다. 곧이어서 생각이 정지된 진공 같은 에너지 속으로 쭉 빨려 들어가는 경험을 했다. 그러고서 쓰러져 잤다. 그다음 아침에 일어나니 세상이 찬란하게 바뀌었다. 해석; 우울증과 자살 충동들은 모두 생각이 만들어낸 허상인데, 그것을 모르고 그것들이 실체가 있는 진짜라고 착각하고, 그 속에 빠져 헤어나지 못..

법문과 수행 2022.12.04

나는누구인가? / 마음 공부의 시작 / 마하라지

방문자: 나는 정말 열심히 일했고 그 결과 지금은 나 자신을 성공한 사람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나는 나의 성공에 매우 만족하며, 내가 성취한 것에 강한 자부심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잘못된 것일까요? 마하라지: 옳고 그른지 따지기에 앞서 누가 이 질문을 하는지 말해보십시오. 방문자: (약간 당황하며) 뭐라고요? 물론 나입니다. 마하라지: 그게 누구입니까? 방문자: 나입니다. 선생님 앞에 앉아 있는 바로 나입니다. 마하라지: 내 앞에 있는 그 몸뚱이를 말합니까? 방문자: 며칠 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저는 아들의 죽음을 철학적으로 담대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겠습니다. 물론 이렇게 아들을 잃는 것이 저만 겪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압니다. 사람은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도 압니다..

법문과 수행 2022.11.27

말과 분노

이제열의 소리를 관하다 말소리 듣되 무작정 따르진 말아야 사리풋타 출가 못마땅한 어머니 간혹 만나면 온갖 모멸과 비난 어떤 상황에서도 여여함 유지 화는 참는 것 아닌 다스리는 것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인물은 누구였을까? 선종에서는 2대 가섭존자를 꼽지만 실제적으로는 지혜제일의 사리풋타 존자라고 할 수 있다. 부처님은 그를 법의 장수(將帥)로 칭할 만큼 신임이 두터우셨고 다른 제자들에게도 그의 모범적 행동을 늘 칭찬하셨다. 그가 부처님 앞에서 반열반에 들었을 때, 부처님은 어느 제자의 반열반보다도 침통하게 여기셨다. 이러한 사리풋타가 자신의 이름을 얻게 된 것은 그의 어머니 때문이다. 그녀는 미모가 빼어났고 특히 눈이 사리라는 이름을 가진 새의 눈을 닮아 사람들은 그녀를 사리라고 불렀다. 그러..

법문과 수행 2022.11.13

1겁(劫)의 의미

1겁(劫)의 의미 관념적 극대 시간 겁(劫)의 산스끄리뜨 원어는 깔빠(kalpa)로, 분별시분(分別時分)·분별시절(分別時節)·장시(長時)·대시(大時) 등의 의역어가 있다. 하지만 이것의 표기에서 대표어는 ‘겁(劫)’이다. 겁은 온전한 표기가 아니다. 깔빠에 해당하는 한자 음사어 ‘劫波’ ‘羯臘波’ 등으로부터 편리성에 의해 한 글자로 줄여 사용된 말이다. 마치 보리살타(菩提薩埵; bodhisattva)를 줄여 보살(菩薩)이라 하는 것과 같다. 고대인도 브라흐만교에서 익히 사용해오던 시간 단위인 겁(劫)은 불교에 차용돼 계산할 수 없는 무한히 긴 시간을 대표하는 술어가 됐다. 세계가 성립·존속·파괴·공무(空無)가 되는 하나하나의 시기를 말하며, 측정할 수 없는 시간, 즉 몇 억만 년이나 되는 극대한 시간의 ..

법문과 수행 2022.08.14

깨닫는다고 붉은 꽃이 핍니까?

'證智所知 非餘境(증지소지 비여경)' ​ 의상대사의 법성게에 나오는 한 구절입니다. 쉬운 우리말로 하자면 해탈의 지혜를 깨닫거나(證智), 그에 이르는 지식을 가지고 있더라도(所知) 뭐 별다른 세계가 열리지 않는다(非餘境)는 소립니다. 깨닫기 이전이나 이후나 대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소립니다. 이를 '법성게 강해'의 저자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견성(見性)한다고 붉은 꽃이 핍니까?" ​ 그렇지요. 득도(得道)했다고 해서 갑자기 여름에 매화를 피우진 못하겠지요. 저자의 말처럼 각성(覺性) 이전이나 이후나 대상은 그대로일 겁니다. 다만 그 대상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달라져 있겠지요. 그래서 대상을 분별하던 내 마음을 내려놓고(放下着) 난 다음의 편안함이 있겠지요. ​ 불가(佛家)에 '일수사견(一水四見)'..

법문과 수행 2022.07.31

무엇으로 보느냐? / 능엄경

부처님께서는 황금빛 팔을 들어 다섯 손가락을 구부리고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이것이 보이느냐, 안 보이느냐?” 아난이 대답하였다. “보입니다.” “너는 무엇을 보느냐?” “저는 부처님께서 팔을 들고 손가락을 구부려 빛나는 주먹을 만들어서 저의 마음과 눈에 비추는 것을 봅니다.” “너는 무엇으로 보느냐?” “저와 대중들은 다 같이 눈으로 보옵니다.” “네가 지금 나에게 대답하기를 ‘부처님께서 손가락을 구부려 빛나는 주먹을 만들어서 제 마음과 눈에 비춘다.’고 하였는데 눈은 본다고 하겠지만 무엇을 마음이라 하여 나의 주먹이 비추는 것을 받아들이느냐?” “부처님께서 저에게 지금 마음이 있는 곳을 물으시므로 제가 마음을 미루어 찾아보았사온데, 이렇게 미루어 찾는 바로 그것을 저는 마음이라고 생각하옵니..

법문과 수행 2022.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