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식

한국 선불교의 빛나는 두 별을 만나다

수선님 2025. 10. 26. 13:38

경허록·만공법어

한국 선불교의 빛나는 두 별을 두 권의 책으로 만난다. 한국 선불교의 중흥조 경허 선사와 한국불교의 순수성과 가풍을 정립한 만공 선사다. 경허록·만공법어 편찬위원회가 경허 선사의 어록을 정선한 <경허록>과 만공 선사의 남다른 선지를 엿볼 수 있는 <만공법어>(개정 증보판)를 출간했다.

 

경허록…‘무애’ 삶으로 한국 선불교 중흥

경허록 / 경허성우, 경허록· 만공법어 편찬위원회 지음 / 불광출판사 / 2만8천원

경허 선사 진면목 볼 수 있는 어록

禪 핵심 작품 선별 현대적 언어로

억불시대서 선불교 선등 다시 밝혀

전국에 선원 열어 선수행 정통확립

비방·칭찬에 일절 동요없이 무애삶

“술도 혹 방광하고 여색도 그러하니 / 탐진치 번뇌 속에서 나귀의 해를 보내노라 / 부처와 중생을 나는 알지 못하노니 / 평생토록 술 취한 중이나 되어야겠다”

경허 선사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경허록〉은 경허 선사가 남긴 글 가운데서 선(禪)의 요지를 담은 글들을 선별하여 새롭게 편찬한 조사 어록이다. 기존에 간행됐던 〈경허집〉(선학원본)과 〈경허화상집〉(한암 필사본)에 수록된 내용을 전면적으로 재편하면서 원문의 오탈자를 바로잡고, 보다 현대적인 언어로 번역을 수정·보완했다.

책은 ‘경허록 상’과 ‘경허록 하’로 구성했다. 상에서는 상당, 시중, 시인, 대기, 서장, 가송, 시게로 분류했고, 하에서는 영찬, 문, 행장, 한글 가사로 분류했다.

경허 선사는 한국 선불교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선사는 긴 억불의 시대에서 쇠락일로를 걷고 있던 선불교의 선등을 다시 밝히며 그 맥을 지켰다. 전국에 수많은 선원을 열어 선수행의 정통을 확립하고, 당대 여러 큰스님의 행장·영찬·사찰 창건기 등을 남기는 등 불교의 명맥을 잇기 위해 진력했다. 명실상부한 근대 한국 선불교의 중흥조라고 할 수 있다.

스님은 신장이 크고 용모는 옛날의 위인들처럼 걸출했으며, 성품은 과감하고 음성은 종소리처럼 우렁찼으며, 변재가 좋아 설법에 뛰어났다. 세상의 비방과 칭찬에는 일절 동요하지 않고 남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아 자신이 하고 싶으면 하고,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두었다. 그래서 술과 고기도 마음대로 마시고 먹었으며, 여색에도 구애되지 않은 채 걸림이 없이 유희하여 사람들의 비방을 초래하기도 했다. 책은 “이는 이통현·종도와 같은 옛사람들처럼 광대한 마음으로 불이법문을 증득하여 자유로이 초탈한 삶을 산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적고 있다.

모두에 소개한 스님의 시는 그런 스님의 삶을 잘 표현한 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선사는 수행에 철저하여 안거할 때, 음식은 겨우 숨을 붙일 수 있을 정도만 먹고, 종일토록 문을 닫고 앉아서 침묵하고, 좀처럼 사람을 만나지 않고 정진했다. 천장암에 살 때에는 겨울이나 여름이나 누더기 한 벌로 살았는데, 갈아입지 않아서 여름엔 온몸에 모기와 파리가 꼬이고, 겨울엔 이와 서캐가 가득하여 피부가 다 헐어 가는데도 선사는 고요함을 잃지 않고 산악처럼 앉아 있었다. 하루는 뱀이 선사의 몸에 올라 꿈틀꿈틀 기어가는 것을 대중이 보고 깜짝 놀라 말해 주었으나 선사는 개의치 않으니, 뱀이 스스로 물러갔다.

경허 선사는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아홉 살 때 모친을 따라 상경하여 경기도 광주 청계사에 들어가 계허 스님을 은사로 삭발 수계했다. 이후 당대 이름난 강백이었던 만화 스님 아래에서 불교 경론을 배우고, 유가와 노장 사상에 이르기까지 두루 공부했다. 선사가 스물세 살 때 동학사에서 강석을 열자 수많은 학인이 몰려들었을 만큼 선사의 학문은 이른 나이에 이미 출중했다.

선사는 전염병이 창궐한 마을에서 인간의 죽음에 대해 깊이 사유하게 된다. 숨과 숨 사이에 죽음이 있음을 본 선사는 생사를 벗어나는 길이 참선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영은 선사의 ‘여사미거마사도래화’ 화두를 든다. 깨달음이 있었고, 이후 선사의 삶은 ‘무애’였다.

경허 선사의 가르침은 내면에 자리한 불성을 깨달아 어디에도 걸림 없는 자유자재한 삶을 보여준다. 책은 구한말 한반도를 유행하며 걸림 없는 삶을 살다간 경허 선사의 삶과 사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경허 선사 진영

만공법어…경허 잇고 일제서 한국불교 지켜

만공법어 / 경허성우, 경허록· 만공법어 편찬위원회 지음 / 불광출판사 / 3만원

 

선 요지 등 만공 선사 가르침 담아

거량 14편 등 추가된 개정 증보판

경허 법 이어 한국 선불교 맥 잇고

한국 불교 말살 획책 일제 꾸짖어

재단법인 선학원·수좌공제회 설립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만공 선사는 경허 선사의 법을 이어 쇠퇴하는 한국 선불교의 맥을 잇고 정통 간화선을 선양했다. 선사는 조선 총독부의 한국불교 말살 정책에 반발하여 우리 불교의 순수성을 지키고자 재단법인 선학원을 설립하고, 수좌공제회를 설립해 수행자를 보호하는 한편, 많은 법회를 통해 한국불교의 전통 가풍을 정립했다.

이번에 발간된 <만공법어>는 1968년에 발간된 <만공어록>과 1982년에 발간된 <만공법어>의 개정 증보판이다. 간행 당시 발견되지 않았던 거량 14편과 게송 12편이 새롭게 추가됐으며, 기존 내용 중 원문의 오탈자와 오역을 바로잡았다.

‘상당법어’ ‘거량’ ‘게송’ ‘서문’ ‘발원문’ ‘수행찬’ ‘법훈’ ‘행장’ ‘부록’으로 구성된 책에는 불교와 선의 주요 화두에 관한 만공 선사의 가르침이 오롯이 새겨져 있다. 경허 선사의 제자로서 선불교의 법맥을 계승하고 선풍을 진작시켰던 선사의 삶과 사상, 근현대의 선사 가운데 격외의 선지를 가장 자유롭게 구사했던 선사의 경지가 가감 없이 드러난다.

만공 선사는 1884년 서산 천장사에서 태허 스님을 은사로, 경허 스님을 계사로 하여 사미계를 받고 월면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스물세 살이던 1893년에 ‘만법귀일 일귀하처’ 화두를 들고 공부를 시작했다. 스물다섯 되던 해 7월, 선사는 바라보던 벽을 홀연히 걷어내고 일원상을 보게 된다. 하지만 선사는 흐트러짐 없이 의심을 유지하며 하룻밤을 지내던 중 새벽 쇳송 때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를 외다가 문득 법계성을 깨달아 화장찰해가 홀연히 열렸다. 오도송이 남았다.

“텅 빈 산의 기운이 고금 밖인데 / 흰 구름 맑은 바람 스스로 가고 오누나 / 무슨 일로 달마가 서천을 건너왔는가 / 축시엔 닭이 울고 인시에 해가 오르네”

선사는 스물여섯 살 되던 해, 마곡사에서 경허 선사와 다시 만난다. 선사가 그동안의 공부를 고하자 경허 선사의 점검이 있었다. 만공의 공부는 경허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만공은 스승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다시 받는다. 조주 스님의 무자였다. 무자의 의심이 깊어가고 있을 때였다. 범어사 계명암선원에서 하안거를 마친 만공 선사는 잠시 양산 통도사 백운암에 걸망을 걸었다. 마침 장마를 만나 보름 동안 꼼짝하지 못했는데, 우중의 새벽 종소리에 선사는 홀연히 다시 깨닫는다. 선사는 서른한 살 되던 1901년, 본사로 돌아와 머무르면서 배고프면 밥 먹고 피곤하면 잠을 자면서 소요자재했다. 3년 뒤 2월에, 만공은 다시 스승 경허 앞에 앉는다. 만공은 그동안의 공부와 보림을 다시 스승께 고한다. 스승은 인가했고 전법게가 남았다. “구름 달 시냇물 산 곳곳마다 같음이 / 수산 선자의 대가풍이여 / 은밀히 무문인을 분부하노니 / 한 조각 기틀 권세 살아 있는 눈 속에 있구나” 이어 스승은 만공이라 사호하면서 “불조의 혜명을 자네에게 이어가도록 부촉하노니 불망신지하라”고 이르고 길을 떠났다.

1937년 3월 11일에 열린 조선불교 31대본산 주지 회의에 만공 선사는 마곡사 주지로 참석했다. 이날 선사는 “조선 불교는 일본 불교를 본받아야”한다며 한국 불교 말살을 획책하는 총독 남차랑을 ‘정교분립 선언’으로 크게 꾸짖었다.

광복 다음해인 1946년 10월 20일 만공 선사는 목욕 단좌한 후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자네와 내가 이제 이별할 인연이 다 되었네그려” 하며 큰 웃음 후에 입적했다.

<만공법어>는 선으로 깨달음을 닦아 나가는 대중이 자신의 현재를 점검하는 거울로 삼기에 좋은 책이다.

 

만공 선사 진영

 

 

 

 

 

 

 

한국 선불교의 빛나는 두 별을 만나다 - 현대불교

한국 선불교의 빛나는 두 별을 두 권의 책으로 만난다. 한국 선불교의 중흥조 경허 선사와 한국불교의 순수성과 가풍을 정립한 만공 선사다. 경허록·만공법어 편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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