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화장 명수좌(華藏明首座)에게 주는 글
곧바로 보여주는 조사선에 어찌 샛길을 용납하리오. 여기서는 향상인(向上人)만을 귀하게 여길 뿐이다. 그들은 듣자마자 곧 들어 보이고, 뽑아들자마자 당장 행하니, 설사 밝은 눈으로 엿본다 해도 벌써 바보짓이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한 모서리를 들어주었는데도 나머지 세 모서리를 돌이켜 알지 못하는 사람은, 내 상대하지 않겠다"라고 하였으니, 하나를 들면 나머지 셋을 알고 눈대중으로 아주 작은 차이를 알아내어 수레바퀴가 데굴데굴 굴러가듯 전혀 막힘이 없어야 '향상의 수단을 쓴다[提持]'고 할 수 있으리라.
듣지 못하였는가. 양수(良遂)스님이 마곡(麻谷)스님을 찾아뵈었을 때, 뵙자마자 마곡스님은 방장실로 들어가 문을 닫아 버렸다. 그가 의심을 품고 있다가 두번째 다시 찾아뵙자 이번에는 마곡스님이 채소밭으로 휙 가버렸다. 그러자 양수스님은 단박에 깨닫고 마곡스님에게 말하였다.
"스님! 저를 속이지 마십시오. 스님을 찾아와 뵙지 않았더라면, 일생을 12부경론(十二部經論)에 속아서 지낼 뻔 하였습니다."
이처럼 했던 것을 보건대, 그는 참으로 힘을 덜었다[省力]하겠다. 양수스님은 되돌아와서 대중들에게 말하기를, '여러분이 아는 것을 나는 모조리 알지만 내가 아는 것은 여러분이 모르리라" 하였다. 양수스님이 안다 한 것은 바람 한 점 통하지 않는 경계로서, 다른 사람들은 결코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겠으니 진짜 사자라 할 만하다. 그 집안의 종지를 잇는 법손이 되려면 반드시 그의 경지를 벗어나야만 할 것이다.
달마(達摩)스님이 양(梁)나라에 갔다가 위(魏)나라로 가서 낙초자비(落草慈悲)로 사람을 찾으며 소림(少林)에서 9년을 홀로 앉아 있었다. 이때 깊은 눈 속에서 한 사람을 만났는데 마지막에 "무엇을 얻었느냐"고 묻자 다만 세 번 절하고 제자리에 가 서니 마침내 "골수를 얻었다"는 말이 있게 되었다.
그로부터 그루터기를 지켜 토끼를 기다리는[守株待兎] 무리들이 앞을 다투어 '말없이 절하고 제자리에 선 것을, 골수를 얻은 심오한 이치라고 여기에 되었으나 그들은 칼 잃은 자리를 뱃전에 새겨놓고 나중에 칼을 찾는 격[刻舟求劍]이 되었음을 전혀 몰랐다 하리라. 이런 자들이야말로 칼 잃은 자리를 배에다 새기는 자들이니 꿈엔들 달마스님을 뵐 수 있겠는가.
진정한 본색도류(本色道流)라면 반드시 정견(情見)을 벗어나서 별도의 생애를 설정해야 하는 것이니, 결코 썩은 물 속에서 살아날 계책을 짓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이 집안의 가업을 계승 하리라. 여기에 이르러서는 옛부터 내려오는 법이 있다는 사실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 이른바 유하혜(柳下惠)의 일을 잘 배우면 결코 그의 자취를 본받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옛사람은 말하기를, "한 마디 합당한 말은 만 겁에 노새 매는 말뚝이라네" 라고 하였는데, 참으로 옳다 하겠다.
유(有)를 타파한 법왕(법왕: 부처님)이 세간에 나오셔서 중생의 욕구에 따라 갖가지로 법을 설하시나, 그 설법은 모두 방편임을 미루어 알 수 있다. 그것은 다만 집착과 의심을 부수고 알음알이와 미루어 알 수 있다. 그것은 다만 집착과 의심을 부수고 알음알이와 아견(我見)을 부숴주기 위해서이니, 그 많은 악각악견(惡覺惡見)이 없다면 부처님이 세간에 나오시지도 않을 터인데, 하물며 갖가지 법을 설한 까닭이 있겠는가.
옛사람은 종지를 체득한 뒤에는 깊은 산 초막이나 돌집 속에서 다리 부러진 솥에 밥을 해 먹으며 10년이고 20년이고 지냈다. 그리하여 세상사를 모두 잊고 티끌세계를 영원히 떠났었다. 요즈음 시대엔 감히 그와 같기를 바라지는 못한다 해도 명예와 자취를 버리고 본분을 지켜 오로지 도에 순숙한 노납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몸소 깨달은 바를 자기 역량에 따라 쓰면서 지난 업을 소멸하고 오래도록 익혀온 습성을 녹여야 한다. 이렇게 하고도 남은 힘이 있으면 다른 사람을 교화하여 반야의 인연을 맺어주고 자기 근본이 익어지도록 연마해야 한다. 비유하면 거친 풀숲을 헤치고 온개 도인, 반개 도인[一個半個]을 얻은 것과 같은 것이니, 그리하여 불법이 있음[有]을 같이 알고 생사를 함께 벗어나야 한다. 미래세가 다하도록 이렇게 하여 부처님과 조사의 깊은 은혜에 보답해야만 한다.
설사 인연이 무르익어 부득이 세속에 나와 인연 따라 사람과 하늘 중생들을 제도하더라도 결코 무엇이라도 구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된다. 그런데 하물며 부귀하고 세력있는 이들과 결탁하여 세속에 물들고 아부하는 그런 스님들의 행동거지를 본받아 범부와 성인을 속이는 짓을 하랴. 나아가 구차하게 잇속과 명예만을 탐내어 무간업을 지어서야 되겠는가! 설사 깨달을 계기는 없다 해도 이처럼 세상을 살다가다 보면 업을 지어 과보를 받는 일은 없으리니, 참으로 번뇌의 세계의 벗어난 아라한(阿羅漢)이라 할 수 있다.
한 스님이 천황(天皇道悟)스님에게 묻기를, "무엇이 계(戒)·정(定)·혜(慧)입니까?" 하자 천황스님이 말하기를, "여기 나에겐 그런 부질없는 살림살이는 없다"고 하였다. 또 덕산스님(德山宣鑑 : 782∼865)에게 "무엇이 부처입니까?"하고 물었더니 덕산스님은 "부처님은 서천(西天)의 늙은 비구다" 하였다. 또 석두스님(石頭希遷)에게 "무엇이 도입니까?" 하고 묻자, "벽돌이니라" 하였다.
한 스님이 운문(雲門文偃)스님에게 묻기를 "무엇이 불조(佛祖)를 초월한 이야기입니까?" 하자 "호떡이지" 하였고, 또 조주(趙州)스님에게 "달마스님이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뜰 앞의 잣나무다"라고 하였다. 또 청평(淸平)스님에게 "무엇이 유루(有漏)입니까?" 물었더니, "나무국자"라고 하였으며, 삼각(三角)스님에게 "3보란 무엇입니까?" 하고 묻자 "쌀, 조, 콩"이라고 대답하였다.
이 모두는 지난 날 본분종사(本分宗師)가 실제의 경지를 몸소 밟아보고 본분자리에서 자비를 베푼 말씀이다. 그런데 그 스님들의 이런 말들만 뒤쫓는다면 은혜를 저버리는 짓이 될터이고 그렇다고 그 스님들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면 어떻게 깨달을 수 있겠는가! 금강정안(金剛正眼)을 갖추지 못하고서는 귀결점을 알 수 없으리라.
이 선문(禪門)에서는 홀연히 벗어나 깨쳐야지, 애초부터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해 주어서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캄캄한 봉사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이근종성(利根種性) 맹팔랑(孟八郞)이 하루아침에 단박에 깨치는 것이다.
2. 장선무(張宣撫)상공에게 드리는 글
지난 날부터 매우 깊이, 그리고 오래도록 이 도리를 공부해왔으니 어찌 말을 빌려 통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종지를 뛰어넘는 격외(格外)도리는 크게 통달한 자라야 간직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천변만화도 손바닥을 벗어나지 않고 세간법과 불법이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치 매일 사용하는 거울 속의 그림자와 같아서 애초부터 비추는 작용과 그 그림자가 분리된 적이 없으니 이것이 바로 대정(大定)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마거사(維摩)가 향적(香積)여래로부터 공양을 받고 수미등왕(須彌燈王)여래에게 사자좌를 빌려오기도 하며 묘희세계(妙喜世界) 쥐기를 옹기장이가 돌림판을 다루는 듯하였던 것입니다.
겨자씨에 수미산을 받아들이기도 하며 뱃속에 겁화(劫火) 빨아들이기를 마치 손바닥 뒤집듯 합니다. 이는 속이 텅 비었으면서도 신령스럽고, 고요하면서도 비추기 때문입니다. 이 밖에 사물이 출몰하고 이리저리 변하는 데는 다른 힘을 빌리지 않습니다.
이른바, 불가사의를 깨침이 모두 한 뙈기 마음밭일 뿐이라고 한 것이니, 더구나 수행을 쌓고 덕성을 지녀 좌우 어디서나 근원과 봉착하는 경우야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금강보검을 거머쥐고 살활(殺活)의 주장자를 휘두르는 순간들이 모두 이 오묘함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말과 뜻을 벗어나는 격외도리는 천 만리라 해도 오히려 몸소 목격할 따름이니, 부디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3. 함께 부치는 글
예로부터 성현은 격량(格量)을 초월하여 걸출하였습니다. 그들은 대근기(大根器)를 심어 이 큰 인연을 홀로 깨치고 자비원력으로 '바로 가리키는 도'를 폈습니다. 만유가 한 몸인 지극히 깊고 묘한 이 일[一段事]은 단계를 세우지 않고 단박에 뛰어넘어 홀로 증득하는 것입니다.
공겁(空劫) 이전으로부터 담담히 요동하지 않고 뭇 생령의 뿌리가 되며, 고금을 통하여 사려가 끊겼으며 범부와 성인을 벗어났고 알음알이[知見]를 뛰어넘었으며, 애초부터 움직이지 않고 확연히 드러난 채 살아 움직여, 바로 지금 모든 유정(有情)과 무정(無情)이 다 그것을 완전하게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탄생하시자마자 하늘과 땅을 가리키며 크게 포효하여 대뜸 드러내 보이셨고, 다음으로는 밝은 별을 보셨으며, 마지막에는 꽃을 들어 보이신 것입니다. 여기서는 그것을 알아차릴 바른 안목을 갖는 일이 가장 중요하니, 그로부터 서천의 28대와 중국의 6대 조사도 그것을 가만히 전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런 줄을 모르는 자들은 뭔가 신통묘용이 있을 것이라 여겨서 말을 가지고 지류만을 좇을 뿐 애초에 그 근본을 밝혀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옛날에 이부마(李駙馬)가 석문(石門)스님을 뵙자 석문스님은, 이 대장부의 일은 장수나 재상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부마는 바로 깨닫고 게송을 지어 자기 뜻을 진술하였습니다.
도를 배우려면 반드시 무쇠로 된 놈이라야 하리니
착수하는 마음에서 결판내도록 하라
곧바로 위없는 보리에 나아가려거든
일체의 시비에 상관하지 말라.
學道須是鐵漢 著手心頭便判
直趣無上菩提 一切是非莫管
지혜롭고 영리한 상근기는 천기(天機)를 이미 갖추었으므로 그저 확실하게 깨닫기만을 힘쓸 뿐입니다. 그것을 쓸 경우에는 대기(大機)를 거머쥐고 대용(大用)을 발휘하여 기미보다 앞서 작동하고 사물을 끊어버리고 변통합니다.
암두(巖頭)스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사물을 물리치는 것이 상급이고, 사물을 좇는 것은 하급이다. 전쟁으로 비유해 보면 개개의 능력은 변통하는 데에 달렸다."
즉 어떤 상황에서도 빠르게 변통할 수 있다면 모두가 자기 발아래 있게 되고 자기 손아귀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잡고 놓고 말고 폄이 모두 중생교화라 할 것이며, 늘 편안하고 고요하게 제자리에 거처하면서 실 끝만큼도 마음에 거리는 것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움직여 기연에 감응할 때도 저절로 바탕[璿璣]을 잡아, 회전변통함에 대자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수많은 무리와 인연들을 모두 칼 휘두르는 대로 베어나니, 온통 파죽지세여서 바람 부는 대로 쏠립니다. 그러므로 서 있는 그 자리가 진실하면 작용할 때도 힘이 있습니다. 나아가 영웅을 몽땅 거느리고 호랑이 같은 군사를 휘몰아 큰 도적을 물리치고 백성을 어루만지며 사직을 편안히 하고 중흥의 대업을 보좌함도 모두가 이 하나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위의 관건을 열어젖힘은 만세토록 없어지지 안을 공(功)이므로 옛부처님과 같이 보고 같이 들으며, 함께 알고 함께 쓰는 것입니다.
사조(四組)스님은 "마음이 아니면 부처를 묻지 못한다"하였고, 덕산(德山)스님은 "부처는 하릴없는 사람일 뿐이다"하였고, 영가(永嘉)스님은 "당처를 떠나지 않고 항상 담담하니, 찾으면 그대를 아나, 볼 수 없도다"하였으며, "무위진인(無位眞人)이 항상 얼굴로 드나든다"고 한 이 모두가 이런 부류입니다.
지금 추밀대승상(樞密大丞相)께서는 이미 말 밖에서 알아차리고 소리 이전에서 깨달아버렸습니다. 그런데 제가 괜스레 군더더기를 붙여 허물을 드러냈을까 걱정이오며, 크신 자비로 외람이 살펴 보아달라는 청을 받잡고, 이로써 마침내 노농(老農), 노포(老圃), 노마(老馬)의 지혜를 잊고 부끄러운 말씀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4. 원수좌(圓首座)에게 주는 글
도를 체득한 사람은 선 자리가 고고하고 우뚝하여 어떤 법과도 마주하지 않는다. 티끌 하나 건드리지 않고 움직이니, 어찌 풀하나 까딱 않고 숲 속에 들어가며 물결을 일으키지 않고 물에 들어가는 정도에 그치랴. 그런 가운데 속이 이미 텅 비어 고요하고 밖으로는 대상에 응하는 작용이 끊기면 어느덧 저절로 무심을 철저히 깨치게 되니, 비록 만 가지 일이 단박에 닥쳐온다 해도 어찌 거기에 정신이 휘둘리랴. 평상시에는 마치 어리석고 바보스러운 듯 한가함을 지키다가도 사물에 임하게 되어서는 애초에 재주를 부리지 않는다 헤아리고 결단함이 바람이 돌고 번개가 구르듯 기연에 딱딱 들어맞으니, 어찌 본래 지켜온 것이 아니겠느냐.
옛스님이 말하기를, "사람이 활쏘기를 배울 때, 오래도록 쏘아야만 비로소 적중시키는 것과도 같다"고 하였다. 깨닫는 것은 찰나이나 공부를 실천해가는 데는 모름지기 긴 시간을 요한다. 마치 비둘기새끼가 태어나서는 붉은 뼈가 허약하지만, 오랫동안 먹이를 주고 길러서 깃털이 다 나면 문득 높고 멀리 날 줄 아는 것과도 같다. 그러므로 투철하게 깨닫는 요점은 발로 다스림[調伏]에 있는 것이다. 예컨대 모든 티끌 경계가 항상 흘러들어와 속을 꽉 막으나 체득한 사람에게는 완전히 뚫려 있으니, 모두가 자기의 큰 해탈문이다. 종일토록 무엇을 해도 한 적이 없고, 좋고 싫음이 전혀 없으며 권태도 없다.
모든 중생을 제도하면서도 제도를 한다느니 제도를 받는다느니 하는 생각이 없는데 하물며 염증을 내랴. 성품이 치우치고 메마른 이가 있으면 부족한 점을 보태주어 원만하게 해준다. 또한 방편을 열어 중생을 섭수하여 교화하는 데 있어서, 위 아래로 살펴 응대하며, 높고 낮고 멀고 가까움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게 한다. 상불경(常不經)보살의 행을 실천하고 인욕선인(忍辱仙人)을 배우며 옛 부처님의 법도를 따라 37품(三十七品)의 조도법(助道法)을 성취하면, 4섭법(四攝法)을 견고하게 행하여 큰 작용[大用]이 목전에 나타나게 되면 시끄러움과 고요함이 하나가 된다. 물 따라 내려가는 배에 노 젓는 수고가 필요치 않듯이 모두를 흠뻑 받아들여 보현보살의 행원(行願)을 원만하게 깨달으니, 세간과 출세간의 큰 선지식이다.
옛 스님은 말하기를, "촌구석[三家村] 그대로가 저마다 총림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총림이 없는 곳엔 뜻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편리만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더욱 편리함에만 집착하게 되니, 반드시 힘써서 끝까지 게으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시끄러움과 고요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즉, 시끄러운 곳에선 두루두루 변화에 응하되 속은 텅 비고 고요하여, 텅 비고 고요한 곳에서는 고요함에 매이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가는 곳마다 모두 나의 활발한 생활이다. 오직 속은 비고 밖은 따라주면서 근본이 있는 자라야만 이럴 수 있다.
선지식이 된 자는 자비와 부드러움으로 중생들을 잘 제도하되, 평등하여 다툼이 없도록 처신해야 한다. 상대방이 나쁜 마음을 먹고 내게 욕하거나 이치에 맞지 않게 내게 관여해 오고 헐뜯고 욕되게 하는 경우에는, 다만 뒤로 물러나 스스로를 비추어 보아야 한다. 자기에게 잘못이 없으면 일체를 따지지 말며, 생각을 움직여 성내거나 원망하지도 말아라. 그저 그 자리에 눌러 앉아 애초에 듣지도 보지도 않은 것처럼 해야 한다. 시간이 흘러가면 마군의 재앙은 저절로 없어진다. 만약 그들과 시비를 한다면 나쁜 소리가 서로 나오게 마련인데, 어찌 끝날 기약이 있으랴. 또 자기의 역량을 드러내지 말지니, 세속의 무리들과 무엇이 다르랴. 부디 힘써 행하라. 그러면 생각 생각 자연히 다스려질 것이다.
백추와 불자를 쳐서 인간과 천상을 일깨워주고 생사를 투철히 벗어나게 함이 어찌 작은 인연이랴. 화애로운 얼굴과 부드러운 말로 근기에 맞게 제접 인도하며, 그들의 동기를 살펴서 판단해주고, 그가 있는 곳을 시험하며 치우침을 바로잡고 집착을 떨어주어야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드러내 주어서, 불성을 보게하여 푹 쉬어버린[休歇] 안락한 곳에 도달하게 해야 한다. 이른바 못과 쐐기를 뽑고 끈끈함을 없애고 결박을 풀어준다고 하는 것이다.** 부디 실다운 법이라고 하면서 학인을 묶어놓아서, 이처럼 머물고 이처럼 집착케 해서는 안된다. 그들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로부터 휘둘려 전도되지 않게 하라. 그것은 독약이다. 그들에게 그것을 먹게하면 일생을 한 쪽만 보고 속아서 잘못될 것이니, 무슨 이익이 있으랴.
불조께서 세상에 나오시어 다만 이 큰 인연을 주창하셨으니, '오직 마음[心印]만을 전할 뿐, 문자를 쓰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최상 근기만을 상대하여 하나를 들으면 천을 깨닫는 자를 귀하게 여길 뿐이다. 그 자리에서 알아차려 수행을 마치고 명예와 이익을 구하지 말고, 오직 생사를 투철하게 벗어나고자 힘써야 한다.
지금 이미 그 자손이 되었으니 그 가풍[種草]을 간직해야 한다. 옛부터 도가 있었던 사람을 살펴보니, 그들은 움쩍하면 용과 호랑이를 항복시켰으며 불보살이 신통으로 계(戒)를 주었다. 괴로움과 싸우고 담백한 음식을 먹으며 인간세상을 몽땅 잊고 티끌 세계를 영원히 떠났다.
20·30년을 자취와 명예를 숨기고 다리 부러진 냄비로 밥을 먹으면서, 더러는 앉아서도 죽고 서서 죽기도[坐脫立亡]하였다. 그 가운데 한 개 또는 반개의 도인이 여러 성인이 밀어내줌으로써 출세하여 종풍을 세우고, 고매한 행을 지니며 부처님의 은혜에 힘써 보답하지 않음 없었으니, 비로소 내놓은 한 두 마디는 부득이해서 그렇게 한 것이었다. 이것은 중생들을 인도하여 진리로 들어가게 하는 문이며, 초인종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들의 체제와 역량은 후학들의 모범이 될 만하니 마땅히 본받고 더더욱 힘써서 옛 가풍을 되찾아야한다. 절대로 명리를 구하려 해서는 안된다. 그러기를 깊이깊이 축원하노라.
마조(馬祖)스님이 옛날에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키 장이 집이라는 조롱 때문에 도를 펴기가 어려울까 두려워하여 다시 협(峽) 땅을 나와 강서(江西)에 가서 인연이 맞게 되었다.
대수(大隋)스님은 지난 날 고향으로 돌아와 우선 용회(龍懷)의 길 입구에서 3년 동안 차를 끓이면서 여러 인연을 맺다가 목암(木菴)에 은둔하여 촉(蜀) 땅에서 도를 행하였다.
향림(香林)스님은 옛날에 고향으로 돌아와 수정궁(水晶宮)에 자취를 감추고 40년 동안 한 덩어리가 된 일을 성취하여 지문(智門) 노스님의 가풍을 드날리더니, 이윽고 설두(雪竇)스님을 배출하여 운문(雲門)스님의 정통 종지를 크게 펼쳤다. 이처럼 머물기도 하고 다시 나오기도 하되, 이 모두를 인연으로 판단하였다. 지금은 이미 멀리 서역 만리에 돌아갔지만 행각의 근본 뜻만을 간직할 뿐, 결코 머물고 떠남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자명(慈明)스님이 옛날에 분양(汾陽)스님을 하직하자 분양스님은 이렇게 축원하였다.
"절을 짓고 보수하는 일은 자연히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불법의 주인이 되도록 하여라."
자명스님은 그로부터 다섯 번이나 큰 사찰에 머물게 되었으나 서까래 하나 건드리지 않고 임제스님의 정통종지만을 드날렸다. 드디어는 양기(楊岐)·황룡(黃龍)·취암(翠巖) 세 큰스님을 얻어 자손이 세상에 두루 퍼지니, 결과적으로 당부를 저버리지 않은 셈이다.
옛사람은 짐을 걸머질 만한 사람을 선택하는 데 이처럼 신중했었다. 절집을 화려하게 장엄하는 일은 불법에 있어서는 대단할 것이 없다 하겠다.
부처님의 도는 아득하고 넓어 오랫동안 부지런히 힘써야만 성취할 수 있다. 조사의 문하에선 팔을 자르고 눈 속에 서 있기도 했으며, 허리에 돌을 지고 방아를 찧기도 했다. 보리를 지고 수레를 밀기도 했으며, 채소밭을 건사하며 밥을 짓기도 했었다. 또는 밭을 개간하기도 하고 차를 달여 베풀기도 하며 흙을 나르고 연자방아를 돌리기도 했다. 이는 모두 높은 뜻으로 세속을 끊고서, 쉬지 않고 스스로 애쓰며 도를 성취하고자 한 자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이었으니, 이를 두고 "게으름 속에서는 한 법도 나오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마침내 연원(淵源)을 통달하고 나서 보니 그것은 너무나 어렵고도 험하여 아무도 달성하지 못할 것이었는데도 그들은 해냈었다. 그런데 세상에 나와 상대하며 허리 굽히거나 높혀보는 등의 일은 못하겠다고 하니, 이것은 하지 않는 것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당초에는 구름 위에 머물렀으나, 스스로 경책하여 방편문을 넓히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
5. 유서기(裕書記)에게 주는 글
실다운 경지를 밟고 편안한 곳에 도달하고 나면, 그 가운데에는 헛되이 버릴 공부가 없고 끊임없어서 실낱만큼도 샐 틈이 없다. 담담하고 고요히 엉켜서 불조도 알 수 없고 마군외도도 부여잡을 수 없으니, 이는 스스로 머물 것 없는 대해탈문에 머문 것이다. 다함없는 시간을 지낸다 해도 그저 한결같을 뿐이니[如如], 하물며 모든 인연이야 말할 필요가 있겠느냐.
여기 머무는 가운데 바야흐로 가풍을 세워 남들의 못과 쐐기를 뽑아 주며 그들의 집착을 없애줄 수 있으니, 바로 이것을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이라 한다. 여래가 간직하신 비밀스런 말씀을 가섭이 감추지 않았으니 이것이 바로 여래의 진실한 밀어이다. 감추지 않은 그것이 곧 은밀함이며 은밀한 그대로가 감추지 않음이니, 이를 어찌 미혹한 생각에 매이고 잘잘못을 따지며, 상투적인 격식에 빠져 알음알이를 짓는 자와 함께 거론할 수 있으랴! 투철히 벗어나 실제로 깨달은 경지에 도달하려면 격식에서 벗어나고 종지를 초월한 맨 꼭대기에서 알아차려야 할 것이다. 깨닫고 나서는 잘 간직했다가 상근기를 만나거든 그때 가서 인가해 줄 일이다.
불자를 들고서 법좌에 올라 종사라 불리우면서도 본분작가(本分作家)의 수단이 없다면 사방에서 찾아오는 사람을 속여 그들을 풀밭 구덩이 속으로 끌어들여 자질구레한 물건으로 만들어버리는 꼴을 면치 못하리라. 만약 금강의 바른 안목을 갖추었다면 먼지 하나 있지 않은 말쑥한 경지에서 오로지 본분사를 가지고 지도할 일이다. 그러나 설사 견처가 부처님과 같다 해도 그들은 오히려 부처님의 경지라는 장애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부터 방(棒)을 휘두르고 할(喝)을 내뱉으며 한 기연과 한 경계, 한마디가 모두 낚시밥이었다. 홀로 벗어남을 귀하게 여길 뿐, 풀잎이나 나무에 붙어사는 도깨비짓을 무엇보다 꺼린다. 이른바 농사꾼의 소를 빼앗고 주린 사람의 밥을 빼앗는다는 것이다. 그런 솜씨가 아니라면 모두가 흙장난이나 하는 자일 뿐이다.
제방에서 찾아온 납자로서 숙세의 선근이 있어 공부를 하다가 곧장 깨달아 들어갈 수 있는 자라도 진정한 종사를 만나지 못하면, 도리어 그를 끌어다가 격식을 표방하고 기연과 경계에 떨어져서 오랏줄 없는데 스스로 결박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한다.
비슷하기는 하나 옳지 않은 이것이 가장 처리하기 어렵다. 요컨대 그의 병맥을 알고 막힌 곳을 가려내며 치우친 곳을 캐물어 일깨워주고, 집착과 막힘을 버리게 해야 한다. 그런 뒤에 진정한 본분종지를 보여 주어 의혹이 없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분명하게 큰 해탈을 얻고 큰 보배 집에 거처하면 자연히 쫓아도 떠나지 않으리라. 그렇게 되면 불법을 크게 넓히고 조사의 법등(法燈)을 끊임없이 이어서 가히 갚지 못할 은혜를 갚았다고 할 만 하겠다.
황룡 혜남(黃龍慧南)선사가 지난 날 석상(石霜)스님을 뵙기 전에는 한 밥통의 선[一 皮禪]만을 알았었다. 취암스님은 그를 가엾이 여기고 자명(慈明)스님을 찾아보라고 권하였다. 거기서 오로지 "영운(靈雲)스님은 투철하게 깨치지 못했다."고 한 현사(玄沙)스님의 말씀을 끝까지 캐 들어갔는데, 시절이 맞아서 기왓장 부서지듯, 얼음 녹듯하여 이윽고 인가를 받았다. 그리하여 30년을 이 도장으로 제방의 알음알이를 뽑아 주었다. 병을 낫게 하는 데는 이런저런 약이 필요치 않으니, 긴요한 곳에 어찌 그 많은 불법이 있으랴.
훌륭한 종사가 학인을 위해서 정형화된 격식[ 臼]이나 어떤 표방[露布]을 내걸지 않더라도 오래 가면 배우는 무리들이 잘못 알아 기어코 격식과 표방을 만든다. 더욱이 그들은 격식 없음으로 격식을 삼고, 표방 없음으로 표방을 만든다. 모름지기 여기에 이르러서는 그루터기를 지켜 토끼를 기다리고 손가락을 달로 착각하는 그런 일들을 모두 없애야 하리라.
기미보다 앞서서 비춰보고 먼지바람에 움직이는 풀에서도 그 단서를 알아차려야 하는데, 더구나 시끄럽게 세상살이를 하는 경우이겠느냐. 가슴이 텅 비고 고요하여 아무것도 헤아릴 것이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어떻게 기미보다 먼저 사물을 알아차리고 착오 없이 원만하게 응대할 수 있겠는가. 이는 모두가 나가선정(那伽禪定: 부처님의 선정)의 효험이다.
임제스님의 금강왕보검, 덕산스님의 말후구(末後句), 약교(藥橋)스님의 한마디, 비마(秘魔)스님의 나무집게, 구지스님의 손가락[指], 그리고 설봉(雪峰)스님이 공을 굴렸던 일과 화산(禾山)스님이 "북 칠 줄 아느냐" 했던 것과 조주(趙州)스님이 "차나 마시게" 했던 것과 양기(楊岐)스님의 밤숭어리[栗棘蓬], 금강 울타리[金剛圈] 등이 모두 같은 이치일 뿐이다. 깨치면 그대로 힘을 덜어 모든 불조의 말씀을 다 통달할 것이니, 오직 당사자 스스로 두루 널리 지니는 데 달려 있을 뿐이다.
6. 융지장(隆知藏)에게 주는 글
조사가 나오신 뒤로, 바로 가리킴만을 오로지 전하는 데 힘썼을 뿐, 사람을 물에 띄우고 진창으로 이끄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으니, 표방과 격식을 늘어놓는다면 바보짓이다. 석가부처님이 3백여 차례나 법회를 하시고 근기에 따라 교화를 베풀고 세상에 나와 모범을 보이신 것은 아마도 노파심에서 나온 번거로운 말씀들[周遮]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끝에 가서는 요점만을 가지고 최상근기를 제접하셨던 것이다. 가섭으로부터 28대 조사까지 기연에 따른 관문[機關]을 보여준 일은 적고 이치를 설명한 적이 많았으나, 법을 부촉해 줄 때 가서는 언제나 직접 대면하여 받아 지니지 않음이 없었다.
예컨대 찰간대를 거꾸러뜨리고 사발 물에 바늘을 던지며, 원상(圓相)을 보이고, 승리의 붉은 깃발을 잡으면 밝은 거울을 잡고 무쇠말뚝처럼 전법게(傳法偈)를 설하였다.
달마스님이 6종(六宗)으로 외도(外道)를 규정짓자 천하가 태평하여 '나는 하늘이고 너는 개다'로 낙착됐으니, 이는 헤아리고 따져서는 알 수 없는, 민첩한 신기(神機)이다. 마침내 양(梁)나라에 갔다가 위(魏)나라로 가서는 또다시 부처님 교설밖에 따로 행하고 오직 마음[心印]만을 전하는 도리를 말씀으로 드러내보였다. 6대에 걸쳐 가사를 전하며 지적한 도리가 분명하였고, 조계대감(曹谿大鑑)스님에 이르러선 언설에도 통하고 종지에도 통함을 자세하게 드러내보였다.
오래도록 이렇게 지내오자 바른 안목을 갖추어 크게 해탈한 종장들이 격식을 변동하고 막힌 길을 틔웠다. 사람들로 하여금 이름과 모습에 걸리거나 이론과 말에 떨어지지 않게 하여, 우뚝하게 살아있어서 씻은 듯 자유로운 묘한 기틀을 내 놓았다. 그리하여 드디어는 방(棒)을 휘두르고 할(喝)을 내지르며, 말로써 말을 무찌르고 기틀로 기틀을 빼앗으며, 독으로 독을 쳐부수고 작용으로 작용을 타파함을 보게 되었다.
때문에 700여 년을 흘러오는 동안, 파가 갈리고 저마다 호호탕탕하게 자기 가풍을 드날려 그 종극점을 알 수 없었으나, 그 귀착점을 논할진댄 직지인심(直指人心)을 벗어나지 않는다. 마음자리가 밝아지면 실낱만큼도 막힘과 장애가 없어서, 지고 이김, 너와 나, 옳고 그름 등의 지견(知見)과 알음알이를 버리고 크게 쉬어버린 안온한 데에 도달하거늘, 여기에 어찌 두 가지 이치가 있으랴.
이른바 "모든 시냇물은 제각기 흐르지만 바다로 다 함께 돌아간다"고 한 것이다. 요컨대 원대한 식견을 갖춘 향상(向上)의 근기라야 불조의 뜻과 기개를 이을 수 있다. 그런 뒤에야 조실의 문지방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철저하게 믿어서 곧장 붙들어 잡아야 비로소 인가를 받고 본분의 가풍을 감당할 만하리라. 이 밖에 부디 비밀스럽고 보배로이 잘 간직하여 말을 삼가하고, 쉽게 놓아 지내지 말라.
오조(五組)스님은 평생 고고하고 준엄하여 인가한 사람이 적었다. 무미건조하게 우뚝 서서 이 하나[一著子]만을 의지하며 항상 말하기를, "한 무더기 수미산을 의지하듯 하라"하였는데, 어찌 허튼 농담과 우스개일로 사람을 속이는 데 떨어졌겠는가. 아무 맛없는 생철 맛을 학인들에게 들이밀어 씹게하여 반드시 통 밑이 쑥 빠진 듯한 데에 이르러야 그 많은 악지악견을 떨어주고, 가슴엔 실낱만한 것도 남겨 두지 않아 투철하게 깨끗해야만 비로소 손을 써서 단련시키고 그런 뒤에야 비로소 주먹질과 발길질을 그만두었다.
그런 뒤에 금강왕 보검으로써 그가 과연 실천하고 감당할 수 있는지를 헤아려 보았다. 아무 일도 없이 깨끗하여 산은 산, 물은 물이게 되면 다시 모든 성인이 가두어도 머물지 않을 저쪽으로 옮겨가도록 하여, 옛부터 조사들이 깨닫고 전수해왔던 정법안장(政法眼藏)에 계합하게 하였다. 나아가 중생들을 위해 응용할 경우에는 농사꾼의 소를 몰고 가버리고, 주린 사람의 음식을 빼앗아서** 완전함을 얻어 조금도 실수함이 없음을 증득해야만 바로 본분의 도류(道流)인 것이다.
마갈타국(摩竭陀國)에선 몸소 이 법령을 시행하였고, 소림의 9년 면벽(面壁)에선 바른 종지를 온전히 제창[全提]다. 그러나 뒷 사람들은 뚝 끊겨 말 없는 것으로써, 우뚝한 만길 벼랑같아 터진 틈도 없고 더듬어 볼 수도 없는 경계라고 잘못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본분사를 전혀 잘못 알고 알음알이를 가지고 제멋대로 헤아리면서 문득 높은 견해인 양 여긴 것이니, 이야말로 큰 병통이다. 예부터 내려온 이 일은 본래 이런 적이 없었다. 암두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목전에 드러난 바로 이것은 부싯돌 불이나 번뜩이는 번갯불과 같다. 만약 밝히지 못했다면 의심하지 말라. 이는 향상인의 경계로서 그런 것이 있는 줄을 아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조주스님이 "차나 마시게"했던 것과 비마스님이 나무집게를 들었던 것과 설봉스님이 나무공을 굴렸던 것과 화산스님이 "북 두드릴 줄 아는군"했던 것과 구지스님의 한 손가락과 귀종(歸宗)스님이 연자방아 돌린 일과 현사스님이 (영운스님을)깨닫지 못했다 한 것과 덕산스님의 방망이와 임제스님의 할이 모두 철두철미하게 알음알이[葛藤]를 뚝 끊어버린 것이다.
대기(大機)와 대용(大用)이 천차만별한 갈등들을 하나의 근원으로 돌아가게 한 것이니, 사람에게 끈끈한 것을 떼어주고 결박을 풀어줄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말을 따라 알음알이를 내는 이가 있다면 곧 본분수단[本分草料]을 노새 젖 열 섬에, 사자 젖 한 방울을 타면 모두가 흩어져버리는 것과도 같았다. 요컨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전수해 받아 면면히 계속 멀리 잇고자 할진댄, 부디 인정을 따르지 말고 쉽다고 여기지도 말지니, 이것이 바로 단적인 뜻이니라.
"마지막 한마디에 비로소 견고한 관문에 도달한다."고 하였는데, 참으로 진실한 말씀이다. 생사를 투철히 벗어나 정인(正印)을 지님이 모두가 이러한 시절이니, 향상의 문빗장을 밟은 자라야만 바로 알 수 있다.
7. 법왕(法王)의 충장로(沖長老)에게 드리는 글
옛부터 내려온 종승(宗乘)에서는 높이 초월하여 곧바로 증득하였으니, 스승과 제자가 계합하여 깨닫는 일에 결코 소홀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이조(二祖)스님은 눈에 서서 팔을 끊었으며, 육조스님은 황매산(黃梅山)에서 돌을 지고 디딜방아를 찧었던 것입니다. 그 나머지 분들도 이삼십년씩을 부지런히 힘썼으니, 어찌 쉽게 인가하였겠습니까.
이는 아마도 근기를 관찰하여 맞게 가르치고 백천 번을 단련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편견이나 집착, 의심 등이 생기자마자 모두 결단 내주어 철저히 놓아버리도록 하여 마치 새는 가죽부대를 새지 않도록 하는 것처럼 쳐도 부숴지지 않는 곳으로 평온하게 옮겨 밟도록 하였습니다. 그런 뒤에야 세상에 나와 중생들을 지도하게 하였으니, 이야말로 작은 인연이 아닙니다.
한 구석이라도 빈틈없게 하지 않으면 모양새가 바르지 못하니, 이리저리 들쑥날쑥하면 선지식에게 비웃음을 당합니다. 이 때문에 옛스님들은 8면으로 영롱한 구슬처럼 빈틈없고 올바르고자 힘썼을 뿐입니다. 안으로는 자기 행실이 얼음장이나 옥처럼 청결하고, 밖으로는 방편을 원만하게 통달하여 뭇 유정들을 보살펴서 마치 방죽의 못물처럼 서로 잘 돌이켜 베풀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참문할 때에는 본분의 일로써 낱낱이 묻고 점검하여 그가 알아차리면 그때 가서 수단을 써서 탁마해 주었으니, 비유하면 물 한 그릇을 조금도 흘리지 않게 다른 그릇에 쏟아 붓는 것과도 같다하겠습니다. 농사꾼의 소를 몰고가고, 주린 사람의 밥을 빼앗듯 하여 귀신도 알아차리지 못하니, 큰 해탈을 의지해야만 다시는 머리에 뿔 달린 이류(異類) 중생으로 태어나지 않습니다.
함이 없는 데에 편안히 안주하면 참으로 5계 10선(五戒十善)으로 티끌세계를 벗어난 아라한입니다. 달마스님도 "행동과 이해가 서로 일치한 사람이라야 조사라 부른다"고 하였습니다.
두루 행각하여 제방을 초월함은 생사의 일이 큼을 근본으로 삼기 때문이며, 중생을 지도하고 이롭게 하여 큰 선지식이 되는 것은 일대사인연을 밝히는 데 있습니다. 이는 서로를 필요로 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어주는 이치로서, 예로부터 원래 그러하였습니다.
큰 법을 걸머질 만한 근기라야 만 길의 절벽에 서서 종사의 풀무와 쇠망치에 단련되고 완성되어 처음과 끝이 모두 진정하였습니다. 나오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한번 나왔다 하면 반드시 대중을 놀라게 하는 것은 언제나 그랬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이미 깨달음이 엉성하지 않으니 법을 전수할 때도 경솔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회양(懷讓)스님이 조계(曹溪)에 8년을 있었던 경우와 마조스님이 관음원(觀音院)에 있었던 경우와 덕교(德嶠)스님이 용담사(龍潭寺)에 있었던 경우와 앙산(仰山)스님이 대원 위산스님에게 있었던 경우와 임제스님이 단제(斷際)스님 회상에 있었던 경우가 모두 십년 이십년을 하산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한 기연, 한 경계와 한 마디 한 마디가 쇠 소리로 시작하여 옥 소리로 끝나는 연주처럼 시작과 끝이 정연하여 뒷사람들은 엿볼 수도 없었으며, 훌쩍 뛰어넘어 증득하여 대동(大同)의 경지에 도달하면 자연히 그 귀착점을 살피게 됩니다.
생각컨대, 지난 날 마조(馬祖)스님은 서당(西堂)스님을 위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대는 교학을 공부하였는가?"
"교가 어찌 다르겠습니까?"
"그렇지가 않네. 그대가 이후로는 사람들에게 여기서는 이리 말하고 저기서는 저리 말하게 될걸세."
"저는 자신의 병을 치료할 뿐인데, 어찌 감히 다른 사람을 위하겠습니까?"
"그대는 말년에 반드시 세상에 도를 크게 펼칠 걸세"라고 하였는데, 과연 그렇게 되었습니다.
옛사람을 자세히 살펴보면, 향상의 한 덩어리 인연을 확철대오하여 언상(言像)과 분별을 떠나 확고한 곳에 이르렀으니, 그들은 홀로 즐기며 편안히 쉬는 경계를 스스로 알았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마조대사는 오히려 이처럼 격려하였으나, 정작으로는 원만자재한 변통으로 한 모서리만 지키며 한 곳에만 달라붙지 않기를 바랐으며, 반드시 고금을 포괄하여 원만하게 실천하고 섭화해서 둥글게 뒤섞여서 그 한계가 없기를 바란 것이었습니다.
중생을 이롭게 할 때는 팔방으로 적을 받아들이고 초막 속을 헤쳐서 하나나 반개의 꼬리 그을린 큰 잉어를 찾아서 본분의 가풍을 담당할 법손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 이 어찌 방편으로 불조의 은덕에 보답하고자 불사를 짓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요컨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방편의 손을 드리워 척척 닿는 곳마다 모름지기 몸을 벗어날 기틀이 있어야 하며 남의 눈을 멀게 해서는 안되고 인과를 미혹해서 그르치면 안되니, 도리어 이익이 되지 못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선지식에게 가장 요긴한 길입니다.
황룡 혜남(黃龍慧南)선사는 일찍이 말하기를, "단정하게 방장실에 거처하면서 본분의 일로 사방에서 찾아오는 사람을 제접하는 것이 장로의 직분입니다. 그 나머지 자잘한 일들은 소임 맡은 사람[知事]에게 맡기면 안될 일이 없다"라고 하였는데, 정말 그렇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쓸 때는 반드시 조심스럽게 선택하고 일을 맡겨 그르치지 않게 해야 합니다. 대위사(大 寺) 진여(眞如)스님은 말하기를, "주지하는 데는 특별한 재주가 없다. 그저 사람을 잘 쓰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고 했으니, 깊이깊이 생각하십시오.
속담에, 재주를 부리는 것이 원칙대로 하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백장 대지(百丈大智)스님이 규범을 세우시니 천고에도 그것을 부수지 못하였고, 요즈음도 조심스럽게 준수할 뿐입니다. 자기가 솔선하여 그 고아한 모범을 어기지 않으면 여러 사람들이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말후구를 꺾어 거꾸러뜨리고 생사를 투철히 벗어난 납자라면, 모름지기 모든 성인들이 가두어도 갇히지 않고 번뇌의 뿌리[命根]까지 끊어버리는 하나[一著子]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末後句(말후구) 말후(末後)는 구경(究竟)ㆍ필경(畢竟)ㆍ구극(究極)ㆍ지극(至極)의 뜻. 구(句)는 언구(言句)ㆍ어구(語句)ㆍ문구(文句)란 뜻. 종문(宗門)의 활구(活句)를 말한다. 대오(大悟) 철저한 극치에 이르러 지극한 말을 토하는 것.)
옛 분들에게는 잡고 놓고 죽이고 살리고 하는 큰 도가 있었으며, 큰 해탈을 얻어 언제나 그 지식(知識)을 활용하였습니다. 알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니, 일 속에서 살펴보아 그 근기에 마땅하게 초탈 단행해야만 비로소 영원토록 힘을 얻을 것입니다.
양기조사(楊岐祖師)는 금강권(金剛圈)과 율극봉(栗棘蓬)을 제창하여 용과 뱀을 가려내고 호랑이와 물소를 사로잡았습니다. 만약 본분종사가 그 집안 사람이라면, 무심코 드러내 보여도 납자의 혀끝을 앉은 자리에서 끊는다 하겠습니다.
8. 법제선사(法濟禪師)에게 드리는 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다자탑(多子塔) 앞에서 법좌를 반으로 나누어 앉으셨을 때, 이미 이 도장[印]을 은밀히 전수하셨습니다. 그 뒤 꽃을 들었던 일은 두번째 공안이었으며, 나아가 금란가사(金欄袈裟)를 맡기고 계족산에서 미륵불을 기다리게까지는 몇 가지 절차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달마스님은 멀리 서쪽 천축국으로부터 양나라에 갔다가 위나라에 들어와서는 소림굴에 차갑게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깊은 눈 속에서 팔을 끊는 늙은이가 그것을 간파해냈기 때문에, 누설하여 그에게 맡기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를 두고 '오로지 은밀한 기별(記 )만을 전한다'고 하는데, 자세히 따져 보면 잘못된 것입니다.
이로부터 서쪽에서 온 종지를 떠들석하게 전하게 되었는데, 세간의 시류에 따라 잘못에 잘못을 더하여 온세상에 퍼져서 5가 7종(五家七宗)으로 나뉘어 서로가 문호를 세우고 제창하였으나, 실제로 따져본다면 결국 무슨 일을 이루었습니까.
그러므로 옛부터 통달한 사람은 이런 차반은 먹지 않았는데, 그렇다면 무엇이 옳은 이치겠습니까. 우주 바깥을 볼 수 있다 해도 그 자체와는 다른 것임을 알겠는데, 더구나 가이 없는 향수해(香水海)에 떠 있는 당왕찰(幢王刹)의 밑바닥을 볼 수 있는 사람이라도 그 실다운 곳을 볼 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되리요!
그러므로 이 대장부의 일은 박차서 뒤바꿔 놓고 번쩍 들어서 열어젖히는 걸음걸이와 지략으로서 똑같은 가풍을 깨쳐야만, 비로소 맡겨진 일을 제대로 홍포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침내는 모래와 흙도 쓸어버리지 않아야만 이윽고 석가세존과 가섭존자와 눈 푸른 달마와 신광(神光 : 혜가)과 한 자리에 앉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무심코 손을 드리워 사람을 죽이고 살림에 애초부터 정해진 격식은 없습니다. 긴밀하고 우뚝하여 천신만고의 지극히 험하고 독한 곳에서 곧바로 명근(命根) 끊는 솜씨를 얻는 것을 귀하게 여길 뿐이니, 그런 뒤에 헛되게 인가해 주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백운(百雲)스님께서는 "신선의 비결은 부자간에도 전하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9. 고서기( 書記)에게 주는 글
임제의 정종(正宗)은 마조(馬祖)스님과 황벽(黃蘗)스님으로부터 대기(大機)를 드날리고 대용(大用)을 발휘하였다. 그물을 벗어버리고 소굴을 벗어나 호랑이와 용처럼 달리며 별똥 튀고 번개가 부딪치듯 하여서, 오무렸다 폈다 잡았다 놓았다 하는 이 모두가 본분(本分)에 의거하여 면면적적(綿綿的的)하였다.
풍혈(風穴)스님과 흥화(興化)스님에 이르러선 종풍을 더욱 높이 드날리고 기봉은 더욱 준험하였다. 서하(西河)스님은 사자를 희롱하였고 상화(霜華)스님은 금강왕(보검)을 떨쳤는데, 종문(宗門)의 문지방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인가를 직접 받지 않고서는 그 규모를 알 수 없으며 부질없이 스스로 껍데기만 더듬는다면 희론만 더할 뿐이다.
대체로 하늘을 치솟는 기개를 가지고 격식 밖의 도리를 받아 지니고 싸우지 않고도 백성과 군사를 굴복시키며, 살인을 하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해도 오히려 본분의 취지와는 비슷하지도 못한데, 하물며 별을 옮기고 북극성을 바꾸며 천륜(天輪)을 굴리고 지축을 돌리는 경우이겠느냐. 그러므로 3현 3요(三玄三要)와 4료간(四料簡)과 4빈주(四賓主)와 금강왕보검(金剛王寶劍)과 땅에 웅크린 사자[踞地師子]와 한 할이 할의 작용을 하지 못함[一喝不作一喝用]과 고기 찾는 장대와 그림자 풀[探竿影草]과 한 번의 할에 객과 주인을 나눔[一喝分賓主]과 조용(照用)을 일시에 행함 등 많은 까다로운 언구[絡索]들을 보여주었다.
많은 납자들이 제 나름대로 분별 설명을 하였으나, "우리 법왕의 창고 속에는 이러한 칼이 없다"고 한 것을 사뭇 몰랐다 하리라. 희롱하여 가지고 나오면 보는 자들은 그저 눈만 껌적거릴 뿐이니, 모름지기 저 빼어난 이들은 계합 증오하여 시험과 인정을 받아 때로는 측면으로 제접하며 본분의 수단을 쓰거니, 어찌 일정한 단계와 매체를 빌리랴.
보수(寶壽)스님이 개당할 때 삼성(三聖)스님이 어떤 한 스님을 밀어내자 보수스님은 갑자기 후려쳤다. 그러자 삼성스님은 말하기를, "그대가 이와 같이 사람을 대한다면 이 스님만 눈 멀게 할뿐 아니라, 진주(鎭州)땅 온 성 안 사람들의 눈까지 모두 멀게 하고 말리라"고 하였다. 그러자 보수스님은 주장자를 던져버리고 곧바로 방장실로 되돌아가버렸다.
흥화스님이 함께 참학하던 스님이 찾아오는 것을 보더니 문득 '할'하자 그 스님도 할하였고 흥화스님이 또 할하자 그 스님도 다시 할하니 흥화스님은 "보아라, 이 눈 먼 놈아!"라고 하고 곧 바로 후려치며 법당에서 쫓아내버렸다. 시자스님이 "그 스님에겐 무슨 잘못이 있었는지요?"라고 묻자 흥화스님은 말하였다.
"그에게는 권(權)도 있고 실(實)도 있었다. 내가 손을 가지고 그의 면전에 옆으로 두 번을 댔으나 결코 그는 알지 못하였다. 그러니 이처럼 눈 먼 놈을 때리지 않고 어찌하겠느냐."
살펴보건대, 저 본분의 종풍은 월등히 뛰어나 지략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오직 저들의 눈이 바른 것만을 바랄 뿐이었다. 올바른 종지를 붙들어 걸머쥐고 바른 종안을 갖추려면, 모름지기 처음부터 끝까지 골수에 사무쳐 실오라기만큼도 구애됨이 없어 아득히 홀로 벗어나야만 한다. 그런 뒤에야 정확하게 서로 이어서 이 위대한 법의 깃발을 일으키고 이 큰 법의 횃불을 밝힐 수 있다. 그리하여 마조(馬祖)·백장(百丈)·수산(首山)·양기(揚岐) 등의 스님을 계승할 뿐 외람되게 다른 곳을 넘보지 말아라.
10. 보령(報寧)의 정장로(靜長老)에게 드리는 글
영산(靈山)에서 단독으로 전하고 소실봉(少室峯)에서 은밀히 내려준 법은 세상무리에서 우뚝 뛰어난 이를 요합니다. 이들은 티끌바람에 풀이 움직이는 것을 증험하고 눈빛이 형형하여 푸르른 하늘을 뚫습니다. 산이 막혀 있어도 일어났는지 자빠졌는지를 알며 소리를 삼키고 자취를 없애서 털끝만큼도 남겨두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물결 거슬리는 파도를 일으키고 흐름 끊는 기틀을 움직입니다.
문턱에 올라가 사람을 물어뜯는데 날랜 매와도 같이 빨라서 그림자를 감추고 허공을 스치듯 합니다. 등으로는 푸른 하늘을 어루만지며 눈 깜빡할 새에 지나버리고, 붙들면 오고 밀치면 가니 참으로 초준하다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올바른 종지가 유전하여 훗날까지 표준이 되었던 것입니다.
누구라도 살인을 하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뒤에야 작가 선지식이 되었습니다. 황벽(黃蘗)스님은 태어나면서부터 이것을 알아 천태산(天台山)에 행각할 적에 나한(羅漢)이 파도를 타고 폭포 건너는 것을 보자 즉시 쳐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백장스님이 마조스님의 '할' 한마디에 사흘 동안 귀가 먹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뒤로 물러나면서 혀를 내둘렀습니다. 이는 대기(大機)의 작용인 줄을 알지니, 어찌 견해가 좁고 견문이 얕은 사람이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그 후 임제조사를 제접할 때는 온통 그대로 작용하여 눈썹을 아끼지 않고 가업을 이을 자식을 얻어서 천하 사람들에게 음덕을 입혔습니다.
뜻있는 사람이라면 응당 충분히 알고 노련하게 단련하여 격식과 종지를 초월해야 합니다. 그런 뒤에 주린 사람의 밥을 빼앗고 농사꾼의 소를 몰고 가는 솜씨로 옛 규범을 계승하여 방향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아무리 미세한 곳이라도 물방울이 스며들 수 없고 햇빛도 뚫지 못하며, 너그러이 한가한 때라도 모든 성인이 그를 찾아낼 수 없어야만 비로소 향상의 씨풀[種草]입니다.
오조봉의 노스님이 항상 말하였습니다. "석가와 미륵도 오히려 그의 노예이다. 필경 그는 누구이겠느냐?" 여기에서 어지럽게 송곳 찌르는 것을 어찌 용납하겠습니까. 있는 줄을 알기만 하면 조금은 옳다 하겠습니다.
무릇 장부의 기개를 떨쳐 상류(上流)를 뛰어넘고자 한다면 반드시 손을 써서 바로 얽매이지 않게 해주며, 불러도 되돌아보질 않아야 하며 중생을 이롭게 하고 기연에 응대해 주어야 합당한 것이니, 말쑥하여 깨끗한 경지입니다. 풀 구덩이 속에서 구르거나 귀신의 굴속에서 도깨비와 희롱하지 마십시오. 현묘한 이성(理性)을 가지고 눈썹을 드날리며 눈을 깜빡이고, 손을 들고 다리를 움직이는 사이에 합당한 말만을 하여 실다운 법으로 세상의 남녀를 얽어 묶지 말아야 합니다. 마치 한 봉사가 여러 봉사를 이끄는 것과 같으니, 어찌 방편이 될 수 있겠습니까.
이미 지위에 앉아 종사라 불리우는 사람은 참으로 쉽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자기의 분에 맞게 얼렸다 녹였다 하면서 고고하고 준엄하게 해야합니다. 마치 사자가 노닐 때 그 의기가 뭇 짐승을 놀라게 하듯, 나왔다 들어갔다 사로잡았다 놓았다 함을 끝내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갑자기 땅에 웅크리고 앉아 반대로 몸을 매달리면 모든 짐승이 달아나면서 겁을 집어먹으니, 어찌 수승하고 기특하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사람이라면 3천리 밖에서도 이미 일의단서를 모두 살핍니다. 그래서 암두스님은 말하기를, "물 위에서 호로병을 누르는 것과도 같아 무심하여 호호탕탕한 경지는 억지로 잡아당겨 얽어매려 해도 되질 않고, 부딪치고 누르는 대로 천지를 덮는다"고 하였습니다. 잘 기르고 실천하여 이 경지에 도달해야만 비로소 영산·소실과 함께 한 가닥 길을 나눈다 하겠습니다.
황벽·임제·암두·설봉 등의 스님은 서로 빈(賓)·주(主)가 되어, 바람이 불면 풀이 쓰러지듯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세상에 나온 것을 헛되게 하지 않고 30년 20년 법을 펼쳤습니다. 그들의 집안에는 같이 흐르고 함께 증명하여 통달한 사람이 저마다 있어서, 서로서로 보호하였습니다. 누가 변화의 구슬을 감정할 사람이 없다 하겠습니까. 나는, 용의 구슬은 어디에서도 항상 맑다고 하겠습니다.
11. 개성사(開聖寺) 융장로(隆隆老)에게 드리는 글
개성사(開聖寺) 주지 융(隆) 스님과는 정화(政和:1111-1117) 연간에 상서현(湘西縣) 도림사(道林寺)에서 만났을 때 아교와 옻칠이 붙듯 화살과 칼 끌이 부딪치듯 하여, 이 때문에 큰 그릇이라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종부(鐘阜) 땅에 만났는데, 이미 큰 풀무 속에서 담금질을 마치고 이 큰 일의 인연을 요달하셔서 날로 가까워지고 친근해졌습니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불조가 격식과 종지를 초월하였고, 천만 사람을 가두어도 머물지 않는 곳에서 털끝이나 바늘구멍사이에서 확연히 통하여 백천 만억의 가없는 향수찰해(香水刹海)를 포옹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주장자로써 대대로 내려오는 성인들의 명맥을 하나하나 발현했으며 취모검 위에서 주장들을 뽑아 주고 끈끈한 것을 떼어주고 결박을 풀어 주어서 큰 자유를 얻게 하였습니다.
이문(夷門)땅으로 찾아와 자리를 함께하여 의지하여 지낸 지 오랩니다. 무엇보다도 임제스님의 정법안장 하나가 면면히 이어져 자명(慈明)·양기(揚岐) 두 스님에 이르렀으니 모름지기 바람도 들어가지 못하고 물도 적시지 못하는 영리한 놈이라면 살인을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기개를 자부하고 깨달음의 도장[正印]을 높이 들어야 합니다. 조사와 부처를 꾸짖고 욕하는 것은 오히려 그 밖의 일입니다. 그대로 온누리 사람들로 하여금 철저하게 생사의 소굴을 말숙하게 끊고, 아무 할 것 없는 크게 통달한 경계에 도달하여야 본분의 씨앗이 됩니다.
12. 보현사(普賢寺) 문장로(文長老)에게 드리는 글
부처와 조사는 마음으로 마음에 전하였는데, 대개 모두는 투철하게 깨달아 벗어나서 마치 두 거울이 서로 비추듯 언어나 형상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격식과 헤아림을 멀리 추월하여 화살과 칼끝이 서로 마주 버티듯, 애초에 다른 인연이 없어야만 도의 오묘함을 전수받아 조사의 법등을 계승할 수 있었습니다. 알음알이가 끊겨 사유를 벗어나고 정식(情識)을 뛰어넘어서 호호탕탕하게 통하여 자유자재한 곳에 도달하였습니다. 사람을 택하여 법을 부촉할 경우에 이르러서는 남다른 기상은 물론 모습이나 체제가 완전히 갖추어지기를 요구합니다. 그런 뒤에야 집안의 명성을 떨어뜨리지 않고 위로부터 내려오는 수단을 체득하여야 바야흐로 서로가 부합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백 년을 계속 이어오면서 갈수록 더욱 빛이 났으니, 이른바 근원이 깊어야 멀리까지 흐른다고 한 것입니다.
요즈음은 자못 옛날의 자취를 잃어 가풍을 함부로 하며 주장들을 남기고 격식을 만듭니다. 스스로도 완전히 벗어나질 못하고서 도리어 남들을 위한다면, 이것은 마치 늙은 쥐가 소뿔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서 점점 갈수록 좁아집니다. 이러고서야 어떻게 위대한 강령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지난 말 처음 스승[五祖法演]을 뵈었을 때 내가 공부한 바를 털어놓았는데, 그것은 모두 보고 들은 기연의 어구들로서 모두 불법과 심성의 현묘함에 대해서였습니다. 그러자 노스님께서는 무미건조한 두 구절을 들려 주셨는데, "유구와 무구는 마치 등넝쿨이 나무를 의지한 것과 같다"였습니다. 처음에는 이리저리 재주를 부려보았고, 다음으로는 논리를 세워 설명하였으며, 끝에 가서는 해보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꺼내는 족족 간략히 물리치셨으니, 이윽고 나도 모르는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러나 끝내 들어갈 수가 없어 재삼 이끌어 주시기를 간구하였더니 법어를 내려주셨습니다.
"네가 견해로 헤아리는 것이 다하여 일시에 모두 없어져버리면 자연히 깨달으리라."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나는 벌써 다 설명해주었다. 가거라"
내 자리에 앉아서 참구하여 끝내 아무 터진 틈도 없는 도리를 요달하였습니다. 그래서 방장실에 들어가 입에서 나오는 대로 어지럽게 말씀드렸더니, "무슨 횡설수설이냐"고 나무라셨습니다. 즉시 마음속으로 복종하였는데 참으로 눈 밝은 사람이 나의 가슴 속 일을 꿰뚫어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끝내 깨치지는 못하고 이윽고 산을 내려와 2년쯤 지나 돌아가서 비로소 "소옥(小玉)아! 하고 자주 부른 것은 원래 딴 일이 아니라…" 한 구절에서 통 밑바닥이 빠진 듯하여 전에 보여주신 것이 참다운 약석(藥石)이었음을 비로소 엿보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미혹했을 때는 깨닫지 못했던 것을, 바야흐로 진실 타당한 그 당처를 알게 되었습니다. 양수(良遂)스님이 "여러분이 아는 것은 내가 모조리 알지만 내가 아는 것은 여러분이 모른다" 하신 말씀과 같다고나 할까요. 참으로 진실하신 말씀입니다!
설봉(雪峰)스님이 덕산(德山)스님에게 "위로부터 내려오는 종승(宗乘)의 일이 저에게도 해당하는지요?" 하고 묻자 덕산스님은 주장자로 때리면서, "뭐라고 지껄이느냐?"고 하였습니다.
설봉스님은 후에 "나는 덕산스님에게 매를 맞고 천겹 만겹 살냄새와 땀이 밴 장삼을 벗어버린 것과 같았다"고 하였습니다.
임제스님은 황벽스님에세 세 차례 매맞고 대우(大愚)스님에게 가서 물었습니다.
"저에게 허물이 있습니까, 허물이 없습니까?"
대우스님이 말하였습니다.
"황벽스님이 이처럼 노파심이 간절하였는데, 너는 다시 와서 허물을 찾고 있느냐."
이 말 끝에 임제스님은 활짝 깨닫고 자기도 모르는 결에 말하였습니다.
"원래 황벽의 불법도 몇 푼어치 안되는구먼!"
이 두 어른은 총림에서 걸출한 분들로, 모두 몽둥이 끝에서 크게 깨달아 뒤에까지 이 종풍을 크게 떨쳐 세상의 사다리와 배가 되었습니다. 참선하는 사람들은 잘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어찌 그들이 거칠고 천박하겠습니까. 그런데 요즈음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주장자로 사람을 제접하는 것은 모두 경계[機境]에 떨어진 것이다"고 합니다. 반드시 심성을 참구하여 요달하고 나서 지극히 묘한 이치를 철저히 논할 것이니, 어느 때이고 바늘과 실처럼 면면밀밀해야 바야흐로 세밀한 데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컨대 저 일대장교인 5교 3종(五敎三宗)은 은밀한 곳, 지극히 진실한 실제의 경지를 분석해 드러내며 부처 지위의 이치를 꿰뚫었으니, 어찌 조사서래의를 빌림이 세밀함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법이 오래 흐르다 보니 이견(異見)이 많이 나오고 참된 가르침을 전해받지 못하여 제호를 가지고 독약을 만들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어찌 덕산·설봉·황벽·임제의 허물이겠습니까. 속담에, "두레박 줄이 짧으면 깊은 샘에 이르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노조(魯祖)스님은 납자들을 보면 그저 면벽을 할 뿐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남전(南泉)스님은 말하기를, "나는 어떤 때는 말하기를 '부모가 낳아주기 이전에는 참구해낸다 해도 오히려 아무 것도 얻질 못한다'고 했는데 이렇게 해가지고는 나귀해가 되도록 참구해도 기약이 없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두 어른들은 자취를 함께 하고 눈썹을 나란히 한 분으로, 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는데 무엇 때문에 굳이 이처럼 말하였을까요? 노조스님의 방법을 알아냈습니까? 알아냈다면 남전스님 보기를 물이 물로 들어가듯 하겠지만 모른다면 노조스님을 잘못 알고 남전스님을 그릇되게 집착하여 빙글빙글 그저 말로 드러낸 주장을 쫓기만 할 뿐 어찌해 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석공(石鞏)스님은 활을 당겨 화살을 쏘았고, 비마(秘魔)스님은 나무집게를 들어 사람을 시험하였으며, 구지스님은 한 손가락을 치켜 세웠고, 무업(無業)스님은 "망상 피우지 말라"했습니다. 화산(禾山)스님은 "북칠 줄 안다"고 하였고, 설봉(雪峰)스님은 나무공을 굴렸으며, 조주(趙州)스님은 "차나 마시게" 하였고, 현사(玄沙)스님은 "빗나갔군"하였는데, 불법에 어찌 이런 것들이 있겠습니까.
만약 낱낱이 방편을 지어 합당한 말을 한다면 만겁 천생토록 윤회한다 해도 꿈에 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진실하게 조계의 올바른 길을 밟았다면 앉아서 성패를 구경하고 이 한 무리의 허물을 엿볼 것입니다.
감사(監寺) 자문(子文) 장로가 이 편지를 남겨둔 지 수년이 되었는데, 요사이 절에서 물러나 약간 한가하기에 그것을 꺼내보니 천지를 덮으며 성현을 뛰어넘는 한 마디였습니다. 그대는 오래 참구하였으니 스스로 양수(良遂)스님처럼 알 것입니다.
건염(建炎) 3년(1129) 윤 8월 11일에 운거산(雲居山)의 동당(東堂)에서 씁니다.
13. 정주(鼎州) 덕산 정(德山靜) 장로에게 드리는 글
장로께서 도림(道林)과 상종함은 숙세의 큰 인연입니다. 향상의 관문을 열어 제치고 한마디에 그대로 계합하여 빠짐없이 원만히 비춤은 옛부터 모두 대기와 대용을 썼기 때문이니, 용과 코끼리의 발자국은 노새가 감당할 바가 아닙니다.
만약 이 솜씨를 갖추지 않았다면 어떻게 사람에게서 끈끈함을 떼어주며 결박을 풀어주고 못과 쐐기를 뽑아주겠습니까. 이 본분의 일은 단지 한결같이 다잡아 농사꾼의 소를 몰고 주린 사람의 밥을 빼앗는 솜씨만이 활구(活句)입니다.
모든 언어, 요긴한 기연, 사리(事理), 밝고 어두움, 침묵과 언어, 잡고 놓아줌, 살림과 죽임 등은 모두 다음 글에 갖추어져 있으니 더 이상 들먹이지 않겠습니다. 오로지 황벽·임제·목주·운문·위산·앙산·설봉·현사 등의 스님은 더욱 오묘함을 체득하였습니다.
산승의 방안에서는 일찍이 이 관문을 밟지 않으면 결코 그냥 지나게 하지 않았으며, 부촉할 때에는 더더욱 철저하게 했습니다. 희귀하게 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니 그런 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알아차린 사람이 없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반드시 바로 이 문중의 사람이라야만 할 것입니다.
14. 담주 지도 각(智度覺) 장로에게 드리는 글
지극한 도는 간단하고 쉬우면서도 깊고 오묘하여 애초에 등급이나 사다리를 세우지 않고 만 길 절벽에 서 있으니, 이것을 본분 소식이라 합니다. 이 때문에 마갈타(摩竭陀)에서 방문을 잠그고 바른 법령을 시행한 일과 비야리(毘耶離)에서 침묵으로 근본 종지를 천양한 것도 오히려 본분의 선지식이 있었다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을 터이니, 하물며 현묘함에 빠져 마음과 성품을 설명하고 따지는 경우야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땀 냄새 밴 장삼을 착 붙혀 입고 벗어버리지 않는다면 더더욱 낭패를 볼 뿐입니다. 이것은 소실과 조계의 가풍과는 전혀 다르며, 임제스님과 덕산스님의 기량은 뼈를 발라낸 듯하며, 용과 호랑이가 달리고 천지가 회전하듯 하여서, 경쾌(慶快)한 사람은 끝내 진흙탕으로 이끌지 않는 법입니다.
옛부터 크게 통달한 사람은 지극한 곳을 철저히 믿기만 하면 재빠른 새매와 같아서, 바람타고 날아올라 해를 빛내고 등 뒤로 장애와 막힘도 없었습니다. 칠통 팔달하여 말아 들이고 펴며 서로 잡고 놓아주면서, 성인의 지위에도 오히려 머물려 하지 않았는데 어찌 범부의 부류에 처하려 하였겠습니까. 가슴은 텅 비어 지금과 옛을 모두 감싸고 풀 한 줄기 집어서 장육금신(丈六金身)을 만들고 장육금신을 집어서 한 줄기의 풀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렇기는 하나 애초에 낫고 못하고, 취하고 버림이 없어 오직 활발하고 우뚝하게 기연에 응할 뿐입니다. 어떤 때는 사람을 빼앗아도 경계는 빼앗지 않으며〔奪人不奪境〕, 어떤 때는 경계는 빼앗아도 사람은 빼앗지 않으며〔奪境不奪人〕, 어떤 때는 사람과 경계를 함께 빼앗기도 빼앗지 않기도 하면서〔人境俱奪俱不奪〕 형식과 종지를 초월하여 완전히 말숙한 경지를 이룬 것입니다.
어찌 사람을 가두며 사람을 덮고 옮기며 치닫게 하는 것만을 귀하게 여긴 것이겠습니까. 무엇보다 참된 자리에 당하여 기댐이 없는 무위무사(無爲無事)의 큰 해탈로서 각각의 본분사를 밝게 보였던 것입니다. 때문에 옛사람은 티끌 바람에 풀끝이 움직이면 그에 앞서 알아차리고, 털끝이 나오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잘라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개나 반개도 얻지 못했는데, 어찌 피차 어리석음 속에서 서로 뒹굴고 끌고 당기며 선문답을 두고 이리저리 따지고 가려서 격식을 만들어 사람들을 매몰시켜서야 되겠습니까. 이는 눈을 뜨고 침상에 오줌 싸는 격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저 눈 밝은 사람은 결코 이런 틀에 박힌 짓은 하지 않습니다.
대장부의 의기(意氣)로 여러 사람을 놀라게 함에는 모름지기 임제스님의 근본 종지를 올바르게 이어, 할 한마디 몽둥이 한 대, 한 기틀, 한 경계에서 분명히 해결해야만 합니다. 듣지도 못하였습니까. "취모검을 쓰고 나서는 재빨리 다시 갈아두라"고 했던 말을.
15. 촉중(蜀中)의 축봉장로(鷲峰長老)에게 드리는 글
다자탑 앞에서 일찍이 법좌를 반으로 나누었고, 총령( 嶺)의 서쪽 언덕에서 한짝 신을 홀로 들고 갔으며, 임제스님은 눈 먼 나귀로 혜연(慧然)스님에게 명하였고, 협교(夾嶠: 善會) 스님은 청산(靑山) 때문에 낙포(洛浦)스님에게 맡겼습니다.
비록 근원이 나뉘고 유파가 갈렸으나, 요컨대 한 맥이 조계로부터 나와 큰 그릇의 영리한 근기를 골라 자취를 쓸어 없애게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위로부터 용과 호랑이가 달리고 북두를 돌리고 별을 옮기듯 하면서 번뜩이는 번개 속에서 그릇된 것을 가려내고 부싯돌 불빛 속에서 검고 흰 것을 분간하였던 것입니다.
어리석은 놈은 문제 삼지도 않고 오직 준수한 부류에게만 힘썼을 뿐입니다. 팔꿈치 뒤에 호신부적을 길고 정수리 눈을 확철히 떠 종지와 강력을 세우고 바른 법령을 단독으로 제창하였습니다. 근원이 깊지 않으면 흐름이 멀지 못하고 공부가 쌓이지 않으면 쓰임이 오묘하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서하(西河)스님은 사자를 놀림에 종지와 격식을 초월하려 하였고, 양기스님은 따가운 밤송이(栗棘蓬)를 삼키고, 흐르는 물을 칼로 쟀습니다.
선불장(選佛場) 에 들어와 향상 관문의 빗장을 열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때로는 얼렸다 때로는 녹였다 하면서 견고한 무쇠 척추로 이 큰 임무를 걸머져야만 합니다. 자기 자신에게는 자세하고 진실하며 다른 사람한테는 치우침이 없어야 하니, 속세의 인연이 떨어지기만 하면 바로 허물에 빠집니다.
오조봉의 노스님은 고개를 좌우로 끄덕였고, 백운산의 할아버지는 통째로 대추를 삼켜 항상 경책을 하셨습니다. 깊은 연못에 살얼음을 밟듯 해야만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백천 걸음을 나아가고, 벼랑 위에서 억만 번이나 뛰게 됩니다. 이에 참다운 가죽 자루를 시험하여 부딪쳐도 부숴지질 않는 줄 알 것입니다. 무릇 이는 부처님의 뚜렷한 본분의 씨앗이니, 삼가 할진저.
16. 현상인(顯上人)에게 주는 글
견처(見處)가 투철히 통하고 용처(用處)가 명백하니, 번개 치듯 기봉을 휘두르며 물소뿔에 달무늬 지듯 하며(結角羅紋) 종횡으로 뒤섞여도 스스로 능히 회전해서 막힘과 걸림이 없어야 한다. 또한 견해를 세우지도 않으며 기틀을 남겨두지도 않은 채 바람이 불면 풀이 쓰러지듯 도도해야 한다.
근원을 깨달아 들어갈 경우 연원에 사무치면 될 뿐, 수증(修證)에 관계할 것(回互)이 없으니, 앎도 오히려 용납할 수 없는데 더구나 알지 못하는 경우이겠느냐. 하루 종일 이렇게 얽어맴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애초에 주관과 객관, 나와 남을 간직하지 않으니 불법이 무슨 상관이리요. 이 무심(無心)·무위(無爲)·무사(無事)의 경계를 어찌 총명하고 영리하고 지혜롭고 분별있고 지식 많은, 세속의 근본 없는 사람이 헤아릴 수 있으랴.
달마스님이 서쪽에서 올 적에 어찌 이 법을 가지고 왔으랴! 달마스님은 오직 각각의 본인에게 본래 있는 성품을 곧바로 지적해서 그들로 하여금 분명하고 철저하게 드러내도록 하여, 수없이 많은 잘못된 깨달음이나 잘못된 지식, 망상과 계교에 물들지 않도록 하였다.
참구를 하려면 모름지기 실답게 참구해야 하며 진정한 스승을 만나야 한다. 풀 구덩이 속으로 끌려 들어가지 말고 당장에 깨달아야 한다. 그리하여 땀 냄새 밴 장삼을 벗어버리고 가슴 속을 텅비워 한 털끝만큼이라도 범부니 성인이니 하는 망령된 생각이 없어야 하며, 밖으로 치달려서 구하려 하지도 말아야 한다. 담담하고 진실하면 모든 성인들이라도 밀쳐버릴 수 없다. 한 덩어리 적나라한 마음(田地)을 가지고 공겁(空劫)의 저쪽으로 투철히 벗어나면 위음왕불(威音王佛)도 오히려 손이거니, 하물며 다시 남을 쫓아 찾으려 하겠느냐!
조사 이래 본분 작가들은 모두 이러하였다. 저 육조(六朝)스님의 경우, 신주(新州) 땅 일개 땔감장사에 불과하여 눈으로는 글자도 알아볼 수 없었으나 대만 홍인스님을 한 번 뵙자 가슴을 열고 투철히 벗어버렸다. 그런 즉 비록 성현이 세상 자취를 묻고 살아도, 요는 방편으로 보여주려 했던 것이다. 이 일은 훌륭하고 어리석음에 관계없이 모두 자기에게 본래 갖추어 있다.
이제 이미 참선하는 부류에 들어갔다면 매일같이 그윽한 마음으로 참구해야 하리라. 이 큰 인연은 다른 사람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 줄을 알아야 한다. 오로지 이 일은 몹시 날카로운 근기로 본분사를 걸머지고 더욱 나아가는데 있으니, 백천 번을 단련해서 순금을 만들 듯 나날이 망상을 덜고 도를 늘려야 한다.
티끌세계를 벗어나는 요점과 중생을 이롭게 하는 근본은 무엇보다도 일곱 번 뚫고 여덟 번 거듭 뚫어서 어느 모로도 의심 없는 안온한 데 도달하여, 대기대용의 경지를 얻어야만 한다. 이 공부는 바로 은밀한 작용 가운데 있다. 매일 만 가지 인연이 엇갈리고 세속의 번뇌가 어지럽게 일어나 맞고 거슬리고 얻고 잃는 등의 경계가 즐비한 속에 출몰하면서도, 그것들에 굴림을 당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들을 굴려서, 활발하여 물을 뿌려도 적셔지지 않는 경지라야 이것이 바로 자기의 역량인 것이다.
나아가 고요하고 텅 비어 응연(凝然)한 데 이르러서도 다른 것이 아니다. 내지는 기묘한 말이나 험하고 빼어난 기연과 경계까지도 한결같이 공평할 뿐 전혀 득실이 없으면, 모두 나의 쓰임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오래 갈고 닦으면 생사의 순간에 훌쩍 벗어나, 세간의 부질없는 명예와 이익을 마치 바람에 날리는 흙먼지처럼 보고, 또 꿈과 허깨비와 헛꽃처럼 여겨서, 아무 힘 들이지 않고 세상을 건너는 것이니, 어찌 티끌세계를 벗어난 큰 아라한이 아니겠느냐!
골좌(骨挫)스님은 평생토록 누가 묻기만 하면 "뼈를 잘라라[骨挫]"라고 대답을 했는데 마치 무쇠탄알과 같아, 참으로 긴요하고 초준하다 하겠다. 이를 잘 참구한다면 참으로 조사 문하의 사자라 하리라.
혜충국사(慧忠國師)가 본정선사(本淨禪師)에게 물었다.
" 그대는 일체의 미묘한 법문을 볼 때 어떠한가?"
" 한 생각도 좋아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 바로 이것이 너의 집안일로, 참구하는 자가 여기에 도달해야 말끔해져서 다른 사람에게 속지 않는 자이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참으로 본분소식에 맞는 것이다"
17. 간장로(諫長老)에게 드리는 글
조주스님은 말하기를 "내가 남방에 있던 30년 동안에 죽과 밥을 먹는 두 때는 제외하겠으니, 이때는 마음을 잡되게 쓴 때이다"고 하였습니다. 옛스님들은 이 일을 위해서 등한히 하지 않고 정중하게 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닦고 간파해서 매우 분명한 데 이르렀습니다. 한 기틀, 한 경계, 한 마디 한 마디가 전혀 헛된 데 떨어지질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세간법과 불법이 한 덩어리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요즈음 시대에 실다운 데 이르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몹시 날카롭게 분발하여야합니다. 창자와 위를 뒤집어 바꿔버리고, 악한 지견을 취하지 말며 잡독을 먹지 않아서, 한결같이 순일하고 아주 진정묘명(眞淨妙明)하게 되어, 당장에 본지풍광(本地風光)을 밟고 안온한 대해탈의 경지에 도달해야 합니다. 보신불과 화신불의 머리에 눌러앉아서 늠름하게 홀로 높아 바람 한점 들어가지 않고 물에도 젖지 않았습니다. 바람 몸을 그대로 이루어 일상생활 속에 역량이 있으니, 소리를 듣고 사물을 보아도 취하거나 버리려는 마음을 내지 않고 착착 닿는 대로 몸을 벗어날 길이 있습니다.
듣지도 못하였습니까. 어떤 납자가 구봉(九峰) 스님에게 이렇게 물었던 일을.
" 스님께서는 연수(延壽)스님을 직접 뵈었다고 들었습니다만, 정말 그렇습니까?"
구봉스님은 말하였습니다.
"앞산에 보리가 익었더냐?"
그 친절하고도 가까운 곳을 알 수 있다면 납승의 본면목[巴鼻]을 보게 되리니, 이른바 사람을 죽이는 칼, 사람을 살리는 칼이라는 것입니다. 다만 바라노니, 오래도록 스스로 살펴보아서 격식을 벗어난 곳에 이르면, 마침내 자연히 귀결점을 알 것입니다.
18. 원선객(元禪客)에게 주는 글
조주스님은 말하기를 "불(佛)이라는 한 글자를 나는 듣기 좋아하지 않는다" 하였다. 말해 보라,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를. 아마도 부처님은 일체지(一切智)를 갖춘 사람이었기 때문에 듣기를 좋아하지 않았을 런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러한 도리는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그것이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듣기를 좋아하지 않았을까? 눈 밝은 사람의 경우라면 듣자마자 귀결점을 알리라. 그렇다면 귀결점이 어디에 있느냐? 한번 꺼내 보아라.
노조(魯組)스님은 납자들이 찾아오는 것을 보면 문득 벽을 마주하고 앉았다. 이는 사람을 위한 것이냐, 아니면 사람을 위하지 않은 것이냐? 그 요점[節文]은 어디에 있겠느냐? 만약 그와 기연을 투합하고 싶다면 어디로 나아가야 하겠느냐?
백장대지(百丈大智)스님은 상당설법을 끝낼 때마다 다시 대중을 불렀다. 대중들이 머리를 돌리면 백장스님은 말하였다.
" 무엇이냐?"
이에 대해서 약산(藥山)스님은 스스로 말하였다.
" 백장스님이 법당에서 내려 올 때의 일을 말해 보라. 그것으로 어떤 사람을 지도하였는가? 하였으니, 어떻게 알아 차려야겠느냐?"
19. 고선인(禪人)에게 주는 글
고납자( 衲子)는 근기와 성품이 매섭고 영리하다. 교해상(敎海上)에서 책상자를 걸머지고 종장들을 두루 방문하였으며, 지난날 재상이었던 장무진공(張無盡公)에게 큰 그릇으로 인정되며 정중한 대접을 받았다. 빼어나게 뛰어난 기상을 자부하고 좀스럽게 자잘한 일 따위는 하려들지 않았다. 진실하게 서로 만나 한 마디 말에 기연이 투합하면 지난날의 속박을 단박에 벗어버렸다. 비록 철저히 깨닫지는 못했으나, 요컨대 훤출하여 다른 사람의 억압과 속박을 받지 않는 통쾌한 자였다.
그의 내력을 살펴보았더니, 부공(傳公: 장무진공)의 집에서 그를 선발해 준 것이 애초의 원인이었다. 이윽고 심한 추위를 무릅쓰고 잠깐 함평(咸平) 땅으로 가려고 나를 찾아왔다. 떠날 것을 알리며 법어를 청하기에 나는 그에게 법어를 내린다.
납자라면 의당 통렬하게 생사로써 일을 삼고 지견과 알음알이의 장애를 녹이도록 힘써서, 불조가 전수하고 부촉해 주신 큰 인연을 철저하게 깨쳐야 하리라. 이름나기를 좋아하지 말고 뒤로 물러나 실다움을 구해 수행과 이해와 그리고 도와 덕이 충실해야 한다. 숨으면 숨을수록 숨겨지지가 않아 모든 성인과 천룡이 그를 사람들에게 밀쳐 내리라. 그런데 하물며 세월에 묻혀 단련하고 탁마하며 기다리니, 마치 종소리가 치는 대로 울리듯, 골짜기에 메아리 울리듯, 대장장이의 천만번 풀무질과 담금질 속에서 나온 진금이 만세토록 변치 않듯, 만 년이 일념인 경지야 말해 무엇하랴. 그렇게 되면 향상의 본분소식은 손아귀 속에 있어 바람이 부는 대로 풀이 쓰러지듯 하리니. 참으로 여유작작하지 않겠는가.
이 글은 부옹(장무진)에게 보여주어 증명을 삼겠다. 수행에는 오래도록 변치 않음이 중요하다.
20. 온초감사(蘊初監寺)에게 주는 글
그대에게 한 마디라도 해주면 벌써 더러운 물을 사람에게 끼얹는 셈이니, 더구나 눈을 깜짝이고 눈썹을 드날리며 선상을 치고 불자를 세우며 "이 무엇이냐"고 묻고 할을 하고 방망이질을 하는 것 등의 이 모두는, 평지에 쌓인 뼈무더기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런데 좋고 나쁜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어 부처와 법과 선과 도를 물으면서 자기를 위해달라 하고 지도해 주기를 빌며, 향상이니 향하니 하는 불법의 지견, 말씀이나 도리를 구하니, 역시 진흙 속에서 흙을 씻고 흙 속에서 진흙을 씻는 격이어서, 어느 때에 말숙히 벗어난 경지에 이르겠느냐.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듣고는 문득 속으로 따지기를, "나는 알아버렸다. 불법은 본래 아무 일 없는 것으로서 누구나 다 갖고 있다. 종일토록 밥 먹고 옷 입는 데 무엇이 조금이라도 부족하였던가?"라고 하면서, 문득 하릴없는 일상의 경계 속에 안주해버린다. 이야말로 '이러한 일'이 있는 줄을 전혀 모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분 속의 사람이라야만 위로부터의 종승본분(宗乘本分)을 알게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만일 실제로 깨달아 들어간 곳이 있다면 일어났는지 자빠졌는지를 식별하고, 나아갈지 물러날지를 알며, 허물 쉴 줄을 알고 번뇌를 떠난다. 나날이 가까워지며 더욱 좋은 쪽으로 변해가되 소굴을 지키지 않고 올가미에서 벗어나와 천하 늙은이의 혀끝을 의심치 않는다. 생철(生鐵)을 단련하듯 노력 수행하면서 공양한 뒤에야 다함없는 법등을 태우고 끊임없는 도를 실천한다. 몸과 목숨을 버리면서 뭇 생령을 건져내 그들 각자가 속박의 굴레를 벗어나 집착의 결박을 버리게 한다.
그러면 부처나 조사에 집착했던 병이 모두 치유되고 해탈의 깊은 구덩이에서 이미 벗어나서 함이 없고 하릴없는 쾌활한 도인이 되리라.
그러나 자신을 제도하고 나면 모름지기 행원(行願)을 버리지 말고 모두를 제도할 것을 생각해야 한다. 괴로움과 수고로움을 참고 견디면서 살바야해(薩婆若海)에서 배가 되어야만 비로소 조금이나마 상응함이 있으리라.
바싹 메마른 사람이나 노주등롱(露柱燈籠)이 되지 않도록 삼가해야 한다. 정갈스런 공[毬]처럼 되어 자신의 일만 마친다면 무슨 일을 이루랴. 이 때문에 옛스님은 반드시 사람들에게 한 가닥 길을 가면서 보답할 수 없는 큰 은혜를 감당하여 보답하라고 권하였던 것이다.
요즈음, 제방에는 영리한 납자들이 많은데 이들은 당장 깨달으려고만 한다. 어떤 사람은 너무 지나치게 탐구하여 쉽게 알려 들고, 그러다가 겨우 나아갈 길을 알기만 하면 즉시 세상에 나오고 싶어한다. 반대로 또 하나의 잘못된 무리들은 추천해도 세상에 나오지 않으려 하는데, 이도 역시 원만하게 통하진 못한 것이다. 시절인연을 알아서 기회를 잃지 말아야만 막힘없는 사람이라 할 것이다.
21. 일서기(一書記)에게 주는 글
영특하고 신령한 납자는 바탕이 뛰어나고 남다른 자태를 쌓아서 비분강개한 마음으로 세속의 벼슬을 버리고, 자기 자신과 세상의 들뜬 명예를 나는 티끌이나 뜬 구름 혹은 골짜기의 메아리처럼 본다. 숙세의 대근기(大根器)로써 생사문제를 훌쩍 뛰어넘고 성인과 범부를 끊는 일이 있음을 안다.
이리하여 삼세여래가 깨달으신 금강정체와 역대조사가 단독으로 전한 오묘한 마음을 그대로 밟아 향상(香象)과 금시조(金翅鳥)가 된다. 요컨대 억천만 부류 위에서 달리고 날며 뭇 흐름을 끊어버리고 하늘을 나는데, 어찌 고니나 제비가 되어 이기고 지고 높고 낮음에 얽매이며, 목전의 전광석화 사이를 비교하면서 이로움과 해로움에 휘둘리겠는가.
이 때문에 옛날 크게 통달한 사람은 세세한 일을 기억하지 않고 천박한 일을 도모하지 않았다. 문득 불조의 경지를 높이 초월할 경지를 세우고 그 누구도 감당해내지 못할 무거운 짐을 걸머지려 하였다. 그리하여 나루터에서 4생 9류(四生九類)를 건네주며 괴로움을 없애고 편안함을 널리 주려 하였다. 도를 가로막는 우매함을 타파하고 무명의 전도된 독화살을 꺾어버렸다. 그리고 법안(法眼)의 견해 가시를 뽑아내어 본지풍광을 맑히니, 공겁 이전의 면목이 밝게 드러났다.
마음과 힘을 다하여 추위와 더위를 꺼리지 않고 뼈저리는 뜻과 고상한 행동으로 세 가닥 서까래 아래서 원숭이 같은 마음을 죽여 버리고 말같이 뛰는 의식을 죽여 버렸다. 그리하여 고목과 썩은 나무같이 하여 갑자기 뚫어버리니, 어찌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어진 것이랴. 가리워졌던 것을 드러내서 어두운 방에 밝은 등불을 켜고 나루터에서 배가 되고자 한다면, 큰 해탈을 증득하여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고 단박에 올바른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진리[理]에 들어가는 문을 통달하고 그런 뒤에 보광명장(普光明場)에 올라 번뇌 없는 청정한, 그리고 수승하고 위대한 법공의 자리에 앉는다. 바다 같은 입에서는 물결이 출렁이듯 걸림 없는 네 변재[四無碍辯]를 떨친다. 한 기연을 세우고 한 마디를 내려 주며 한 수승한 모습을 나타내어 널리 범부·성인·유정·무정들이 모두 위엄스러운 광채를 우러러보며 은혜를 입게 하여도, 이는 아직 절승한 공훈의 상태는 아니다.
다시 저쪽으로 더 나아가서, 모든 성인들이 가두어도 갇히지 않고 모든 신령이 경모하려 해도 방법이 없으며, 모든 하늘이 꽃을 받들 길이 없는데, 마구니 외도가 어떻게 옆에서 엿볼 수 있으랴.
지견을 놓아버리고 현묘함을 몰아내며 작용을 날려버려, 배고프면 밥 먹고 목마르면 물 마실 뿐이다. 애초에 유심(有心)이니 무심(無心)이니 옳은 생각이니 잘못된 생각이니를 모르는데, 하물며 이제까지 배워 이해한 현묘함, 이치와 성품의 분류[分劑]와 명상(名相)에 꽉 막힌 지견과 부처다 법이다 하는 견해, 그리고 천지를 뒤흔들 세간의 지혜와 총명함에 연연하랴. 스스로를 얽어매 바다에 들어가 모래를 헤아린들 무슨 믿을 만한 점이 있으랴.
참으로 대장부라면 힘써 적을 이기고 여러 사람을 놀라게 해서, 자기의 본래 뜻과 발원이 만족해야만 본분의 큰마음과 큰 견해로 크게 해탈하여 함이 없고 일 없는 참다운 도인이라 하겠다.
22. 일서기(一 書記)에게 준 법어에 덧붙여
나는 정화(政和 : 1111∼1117) 말기에 낭야(瑯 )에 가서 한 스님을 만났는데, 마치 오랜 친구사이 같았다. 나는 그가 도를 지향하는 뜻이 다른 사람 같지 않아서 좋았고, 그래서 앞의 게송을 지었다. 대량산(大梁山)애 주지하라는 조서를 받고 가게 되어서는 함께 다닐 수 있었고, 그는 매일 이 문제를 더욱 열심히 물었다. 수백 명의 대중 가운데서 힘써 배우려 하였으므로 다시 뒤의 법문을 주었다.
건염(建炎 : 1127∼ 1130) 원년에 동남으로 가려하여 거듭 글을 쓰고 거듭 발문을 붙여 뒷날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우선 헤어지기로 하였다. 도인의 본분은 천만 리 밖에서도 털끝만큼도 막히지 않는다는 것을 서로 안다. 옛날에는 이 경우에도 바른 법령[正令]을 행한 경우가 많았다.
예컨대 조주(趙州)스님은 "부처가 있는 곳에도 머물지 말며, 부처가 없는 곳은 얼른 지나가라" 하였으며, 석실(石室)스님은 "한결같이 가기만 하지는 말라. 뒤에 다시 내게로 오리라"하였다. 동산(洞山)스님은"풀 한 포기 없는 만리 밖으로 가라"하였고, 대자(大慈)스님은"나도 데리고 가라"하였으며, 귀종(歸宗)스님은"날씨가 추우니 가는 길 조심하라" 하였다. 또 조산(曹山)스님은 "가도 달라질 것 없다" 하였고, 오본(悟本)스님은 "비원령(飛猿嶺)은 험하니 잘 살펴가라" 하였으니, 이 모두가 가리고 숨길 것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백 갈래에서 오직 근본 밝히기에 힘써서 그 자리에서 알아차리기만 하면, 남쪽 고을이나 북쪽 지방 어느 곳에선들 그[渠]를 만나지 않으랴.
끝으로 은근한 마음에서 한 마디 더하지 않을 수 없도다. 자, 무엇이 진실한 곳인가?
주장자를 비껴들고 인간을 돌아보지 않은 채
곧바로 천 봉우리 만 봉우리로 들어간다.
櫛標橫擔不顧人 直入千峰萬峰去
23. 종각선인(宗覺禪人)에게 주는 글
종문에서는 날카로운 지혜를 가진 최상근기로서 생사를 벗어나고 지견을 끊으며 언설을 여의고 성인과 범부를 초월하는 오묘한 도를 가진 자를 제접한다. 그러니 어찌 천박하고 좁은 식견을 가지고 도리를 따지거나 기연·경계 등의 알음알이 위에서 살 궁리를 하는 자가 헤아릴 수 있으랴.
반드시 용과 호랑이처럼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자를 요한다. 그들은 재빠르고 날카로운 역랑을 써서 거량하는 소리를 듣기만 하면 바로 떨치고 일어나 떠나버린다. 밖으로는 세간의 속박과 집착을 버리고 안으로는 성인이니 범부니 하는 미혹한 생각을 버리고, 곧바로 홀로 아득하여 높고 초준한 곳에 도달한다. 실낱만큼도 의지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분명히 알아차리고 온몸으로 짊어져, 부처님이 와도 현혹되어 동요하지 않는데 하물며 조사나 종장의 말과 기봉이야 말해서 무엇하랴. 한 칼에 끊어 다시는 돌아보지 말고 그 밖의 잡다한 것들에는 무심해야 조금이라도 뛰어난 무리(上流)와 상응할 수 있다.
듣지도 못하였느냐. 영가(永嘉) 스님은 조계에 들어서자마자 사자후를 하였으며, 단하(丹霞) 스님은 마조 스님이 선불장(選佛場) 보여주는 것을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결판을 냈으니, 이들은 두 스님 앞에 이르자마자 흐름을 거슬러 투합하였던 것이다. 또 양좌주(亮座主)는 한 마디 말끝에 42본(四十二本) 경론이 얼음 녹듯 하였고, 덕산스님은 (용담스님이) 지촉(紙燭)을 불어 끄는 순간 경론의 소초를 모두 태워버렸으며, 임제스님은 육십 방망이를 맞은 뒤에 돌연 내던졌으니 모두가 투철히 벗어난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일찍이 몇 차례나 조사의 방에 들어갔으며 법문을 몇 차례나 청했는지를 알지 못한다.
요즈음 도를 배우는 납자들은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대개는 그저 공안이나 기억하고 예와 지금을 비교하여 따지고 말을 외워 복잡한 이론을 풀고 표방하는 주장을 배운다. 그러니 어느 때에 쉴 수 있으랴. 이렇게 한다면 한바탕 너절한 잡동사니만을 불러낼 뿐이다. 그렇게 된 근본 원인을 추궁해 보건대, 위로는 아직 작가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였으며 스스로는 대장부의 뜻과 기상을 걸머지질 않았었다.
그렇기에 일찍이 뒤로 물러나 자기에게로 돌아서서 정신을 차리고 이제껏 가져왔던 승묘(勝妙)하다는 생각을 놓아버리고 단도직입적으로 벗어나 본분의 일대사 인연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분명하게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이렇게 한다면 일생을 애써 수고한다 해도 꿈에서도 보지 못하고 말리라. 때문에 옛사람은 "보리는 말을 떠났으며 애초부터 얻은 사람이 없다"고 하였다. 또 덕산스님은 "나의 종지에는 말이 없으며, 아무 법도 사람에게 줄 것이 없다" 고 하였으며, 조주스님은 "부처[佛]라는 한 마디를 나는 듣기 좋아하지 않는다" 하였다.
이들을 보면 벌써 흙을 뿌려 사람들을 호도해버린 것이다. 만약 다시 몽둥이질 속에서 현묘함을 구하고 "할"소리에서 오묘함을 찾으며 눈을 부릅뜨고 손과 발을 움직인다면 더욱 여우의 소굴로 떨어지게 되리라.
이 종지는 깨달음을 귀하게 여길 뿐이다. 은산철벽의 만 길 깎아지른 벼랑에서 전광석화가 치는 가운데 이럴까 저럴까 망설인다면, 바로 구덩이 속으로 떨어지리라. 때문에 옛부터 보호하고 아껴왔던 이 하나[一看子]는 함께 도달하고 함께 깨달은 이들이 그대가 움켜잡거나 더듬을 여지가 없는 곳에서 마음을 다하여 얽힌 인연을 버리고서 선지식을 의지하여 수행을 하였다.
만일 다시 천만 어려움 속에서 마음이 참아내지 못하고, 어리댈 수 없는 곳에서 몸과 마음을 놓아버리고 궁구하여 철저하게 깨닫지 못한다면 진실로 애석하리라. 천생백겁(千生百劫)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공부가 끊어진 적이 있었더냐. 끊어진 적이 없었다면 무슨 나고 죽고 가고 옴을 의심하랴. 인연에 속한 일은 본분사에 있어선 아무 관계가 없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오조(五祖) 노스님께서는 항상 말씀하시기를, "나는 여기 50년을 있으면서 선상 맡에 왔던 무수한 납자들을 보았다. 그들은 다만 부처를 찾으며 불법을 말할 뿐이었으니, 결국 본분납자를 만나보지는 못하였다" 하였는데 참으로 그렇다. 요즈음시대를 살펴보면 불법을 설명하는 사람조차도 만나기 어렵다. 그러니 더구나 본분(本分)을 구하는 사람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시절이 말세여서 성인과 간격이 더욱 멀어져 우리 당(唐)나라 안에는 부처의 종족들을 살펴보고 살펴보아도 다 없어졌다. 하나나 반개의 지조 있는 이를 얻기는 해도 감히 옛 큰스님들과 같기를 기대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수행해 나아갈 바를 알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르게 한다면 벌써 이는 불 속에서 연꽃이 피어난 격이니, 부디 모든 인연을 떨쳐버려야 된다.
그러면 고래로 크게 깨달았던 이들의 가슴 속을 알아버리니, 어디를 가든지 쉬어서 은밀한 행을 실천하리라. 그리하여 모든 천신이 꽃을 받들 길이 없으며, 마군외도가 찾아도 자취를 볼 수 없게 되리니 이는 진정한 출가인이다. 자기를 철저히 요달하여 만약 복(福)에 보답할 인연이 있다면, 세상에 나와서 한 손을 드리운다 해도 분수 밖이 아니다. 다만 마음을 결판내어 긍정한다면 결코 서로 속이지 않으리니, 노승의 이런 말도 보주(普州)사람이 도적을 쫓는 격이라 하겠다.
24. 광선인(光禪人)에게 주는 글
적실[親切]한 뜻을 얻고자 할진댄, 무엇보다도 구하려 하지 말라. 구해서 얻으면 벌써 알음알이에 떨어진다. 더구나 이 큰 보배창고는 옛부터 지금까지 역력하게 텅비고 밝아서 시작 없는 오랜 시간으로부터 자기의 근본이니, 모든 움직임이 그 힘을 받든다. 오로지 망상을 쉬어 한 생각도 생기지 않는 곳에 도달해야 그대로 투철히 벗어나 망정의 티끌에 떨어지지 않고 알음알이[意想]에 머물지 않는다. 훤출히 벗어나면 온 세상 어디에서도 감추어지지 않아서 물물마다 모두 대용(大用)을 이루며, 낱낱이 모두가 자기의 흉금에서 흘러나온다.
옛사람은 이것을 두고 집안의 재물을 풀어 쓴다고 했다. 한 번 얻으면 영원히 얻으니 쓰고 누림에 어찌 다함이 있으랴. 단지 몸소 참구한 곳이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여 철저하게 깨치지 못할 것만이 근심스러울 뿐이다. 그러니 분연히 모든 인연을 끊어 실낱만큼도 기댐이 없어서 몸과 목숨을 놓아버리고 당장에 알아차려서 두 번째 것이 없게 해야만 하리라. 이렇게 되면 설사 모든 성인들이 나온다 해도 그를 움직일 수 없다. 그때그때 마음대로 밥 먹고 옷 입으면서 성스런 씨앗[聖胎]을 길러 알음알이를 남기지 않으니, 이야말로 마음을 깨닫는 지름길[徑截]로서 빼어난 법문(法門)이 아니겠느냐!
25. 민선인(民禪人)에게 주는 글
옛 성인께서는 삼씨 한 말과 보리 한 톨을 먹었으며, 옛 스님들은 괴로움을 몸소 겪고 음식을 담박하게 먹으면서 여기에만 정결한 뜻을 두었다. 잠도 잊고 먹을 것도 잊은 채 오로지 확고히 참구하여 실다이 깨치고자 하였으니, 어찌 이른바 풍요로운 4사(四事) 공양을 바랬으랴! 도가 옛날만 못하게 되자, 법륜(法輪)은 구르지 않았는데, 식륜(食輪)이 먼저 구른다는 비난이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총림에선 장로를 죽반두(粥飯頭)라 부르게 되었으니, 옛날과 비교하면 완전히 상반된다 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러나 인연을 따라 변화하는 부분에서는 두 번째 단계라도 시행해야 하는데, 북쪽 산에 앉아 사방에서 찾아오는 납자를 제접하면서도 그저 남쪽 밭 두덩을 쳐다볼 뿐이다.
마침 금년 가을은 크게 풍년이 들었으니 청컨대 각민선객(覺民禪客)은 베어 거두도록 하시라. 떠나는 길에 한 마디 청하길래 위의 이야기를 해준 바, 무엇보다도 근본을 받들어 지말에 파급하는 일을 중히 여겨야 한다. 그래야 날카로움과 관조를 겸하게 되리니, 이는 원만하게 깨닫고 통달한 사람의 본분사이다. 힘써 실천해야만 좋으리라.
일반적으로 도를 배우고 현묘함을 참구하려면 반드시 큰 신근(信根)을 가져야 하니, 이 일은 언어문자와 모든 경계 위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깊이 믿고 자기의 체험을 확실하게 해야만 한다. 지난 날 지었던 알음알이와 미치고 허망한 마음을 놓아버리고 곧바로 실낱만큼도 염두에 두지 말아야 한다.
본래 청정무구하고 원만 고요한, 오묘한 본성 속에서 철저하게 알아차려 주관·객관을 둘 다 잊어버리고 언어와 사고의 길이 끊겨진 자리에서 확연하게 본래의 면목을 보아야 한다. 한번 얻으면 영원히 얻어서 견고하게 움직이지 않게 한 다음에야 걷고 몸을 움직이며 말하고 숨을 쉬는 모두가 5음(五陰)의 마군 경계에 떨어지질 않으리라.
그러면 일체의 불법이 앉은 자리에서 눈앞에 나타나리니, 마침내 움직이거나 앉거나 모두 선(禪)에 계합하여 생사의 근본을 벗어버리고 일체의 번뇌와 매임을 영원히 떠나 씻은 듯이 하릴없는 도인이 되리라. 하필이면 종이 위에서 저 죽은 말들을 찾으려 하는가?
26. 재선인(才禪人)에게 주는 글
구지스님은 납자들과 문답할 적에는 한 손가락을 세웠을 뿐인데, 이는 위 아래로 철저히 통달하여 의심이 깨달아, 병을 치료함에 많은 약이 필요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후인들은 그 본뜻을 모르고 그저 겉모습만을 따라 손가락을 세우면서 전혀 흑백을 분간하지 못한다.
이는 제호를 가지고 독약을 만드는 격이니 참으로 불쌍하다. 참되고 정확한 견해로 꿰뚫은 사람이라야 비로소 신중하여 결코 소홀하지 않을 줄을 안다. 이른바 천균(天鈞) 무게의 활[弩]은 생쥐를 잡기 위해 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정수리 위에 눈을 갖추어야만 바야흐로 쓸 수 있게 된다. 뒷날 현사(玄沙)스님이 이 인연을 가지고 거론하였다.
"구지스님이 알아차린 곳은 거칠었으니 한 기틀, 한 경계만을 인식하였을 뿐이다. 어떤 눈 먼 놈은 말을 따라 알음알이를 내어 구지스님을 억누르고는 실답다고 말한다. 이야말로 구운 벽돌이 바닥까지 얼어붙었음을 전혀 몰랐다 하리라. 여기에 이르러선 자세히 살펴야지 바보짓은 금물이다. 구지스님은 죽음에 임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천룡(天龍)스님의 한 손가락[一指頭禪]을 얻어서 일생 사용했는데도 다 쓰지 못하였다'라고 하였는데, 어찌 괜한 말이겠는가."
조계 대감(曹溪大鑑)스님이 신분이 미천하였을 땐 신주(新州)의 땔감장수였다. 보잘 것 없이 수십 년을 지내다가 하루아침에 나그네가 경전 외우는 소리를 듣고 그 본원(本願)을 세우고는 어머니를 버리고 고향을 떠나 멀리 황매산의 스님을 찾아갔다. 처음 뵙고 몇 마디 대화 사이에 기연이 투합하여 자취를 숨기고 8개월 동안 방아를 찧었다.
이윽고 신수(神秀)대사와 함께 게송을 바치고서야 비로소 칼끝을 드러냈더니, 황매산의 스님은 드디어 가사와 바리때를 그에게 전수하였다. 이때 여러 대중들이 쫓아가 다투어 빼앗으려 하였다. 몽산(夢山)이 먼저 대유령(大庾嶺)에 이르러서 의발을 들려했으나 들지 못하고 비로소 힘으로 빼앗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머리를 숙이고 약을 내려 주기를 빌었다. 대감께서 "착함도 생각하지 말고 악함도 생각하지 말라. 이런 때 상좌의 면목이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그는 곧바로 귀착점을 알았다. 시절인연이 아직 이르지 않아 대감스님은 다시 사회(四會)의 사냥꾼 속에 오랫동안 은둔한 뒤에야 번우(番 )로 나와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는 말을 토로하였다.
이 말을 들은 인종(印宗)법사는 스승으로 모시는 예의를 갖추고 머리를 깎아 주고 구족계단(具足戒壇)에 오르게 하였다. 그러자 즉시 큰 법요(法要)를 여시고 2천의 대중을 격발시켜 명성이 대궐에까지 알려졌다. 천자는 가까운 신하에게 명령하여 가사와 발우를 하사하였으나 스님은 끝내 받지 않았다. 용상(龍象) 대덕 수십 사람을 제도하였는데 모두가 대종사였으니, 어찌 그리도 위대하신지!
성현이 세상에 나와 존망진퇴하며 사람을 지도함에 빠뜨림이 없었다곤 하나 걸을 때는 달렸던 취향이 저 미천함으로부터 저명한 데까지 이르렀다. 이것을 가만히 살펴보자면 세상의 인연을 끊지 않고 오묘한 풍규(風規)를 보였으니, 오랜 세월이 지난다 하더라도 그와 함께 비교할 자가 없다. 지금까지 온 세상이 모두 그의 자손이니 커다란 규범을 매번 우러러볼 때마다 털끝만큼이라도 헤아려보려 하지만 되질 않는다. 역량 있는 후학들에게 힘쓸 것을 바라면서 부족하나마 대략을 기술하노라.
현재 나타난 견문각지(見聞覺知)가 그대로 법이지만 법은 견문각지를 떠나 있다. 그러므로 견문각지에 집착한다면 그것은 그저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이지 법을 통달함은 아니다. 대체로 법에 통달한 사람은 견문각지를 뛰어넘어 견문각지를 수용하면서 견문각지에 안주하지 않고 똑바로 당장에 투철히 벗어나서 전체가 그대로 법이다. 이 법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으며 말도 아니고 침묵도 아니다. 그러나 있음도 나타내고 없음도 나타내며 말을 나타내고 침묵을 나타내어 오랜 세월 속에서도 항상하여 바뀌지 않는다.
그러므로 운문(雲門)스님은 "말할 땐 있다가 말하지 않을 땐 없으며, 생각할 땐 있다가 생각하지 않을 땐 없다고 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곧바로 이 법을 오묘하게 통달하여 대용을 얻도록 하면 말하거나 침묵하거나 무엇을 하든 간에 영원히 반야가 눈앞에 나타날 터인데, 거기서 다시 선지식에게는 가까이 있고 농부에게는 멀리 있다고 논할 필요가 있겠는가! 한 번만 뚫고 나가보면 자연히 부딪치는 곳마다 그를 만나리라.
옛 부처님과 조사들은 이 한 명백한 일을 우러르고 귀중하게 여기면서도 여러 중생들 속에 베풀어서, 높고 낮음, 귀하고 천함을 조금도 가리지 않고, 어디나 천진 분명하고 원만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새삼스레 불법이 현묘하다는 견해를 내면 잘못이며, 만일 견해를 일으키지 않으면 그대로 적나라하여 완전하게 드러난다.
때문에 말하기를, "숲에 들어가도 풀을 건드리지 않고 물에 들어가도 물결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하였다. 산은 산, 물은 물, 스님은 스님, 속인은 속인이며 주장자를 보면 주장자라고 부를 뿐이니, 이를 두고 체(體)를 본다고 한다. 만약 여기에서 철저히 보아 내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아침까지 실낱만큼도 빈틈이 없어 전체가 나의 활용이 되고, 하나하나가 분수 밖이 아닌, 모두 본분의 일인 것이다. 서 있는 자리에서 아직 체득하지 못했다면 털끝만큼도 움직여서는 안되니, 어찌 그대로 완성된 분명한 기요(機要)가 아니랴!
단도직입하여 요점을 깨닫는 데 현성공안(現成公案)을 사용할 분이다. 널리 작위(作爲)하면서 밤낮으로 십자로에서 어묵동정과 전체의 움직임을 일시에 간파하여 애초부터 가려 나가니, 참으로 통쾌하도다.
이 일이 만일 말 속에 있다면 합당한 한 마디 말이 고정불변의 것이 되고 만다. 그러나 천 마디 만 마디를 말한들 결국 끝이 없음을 어찌하랴. 그러므로 이 일이 말 속에 있지 않고 다만 말을 빌려 이 일을 드러내려 할 뿐임을 알라. 영리한 자라면 당장에 이 뜻을 체득하여 말을 초월하여 철저히 증득할 것이다.
그리하여 활발히 살아 움직이는 경지, 그것에서 한 구절을 가지고 백천 구절로 만들어 쓰게 하며, 백천 구절을 가지고 한 구절로 만들어 쓰게 한다. 그러니 '마음 그대로가 부처다'.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며 물건도 아니다' 나아가서는 '마음은 부처가 아니고 지혜는 도가 아니다'는 것과 '동쪽 산이 물 위로 간다' '한 낮에 삼경(三更)의 종을 친다' '후원에서 나귀가 풀을 먹는다' '북두성 속에 몸을 숨긴다'하는 말들이 모두 하나로 관통해 있음을 어찌 의심하랴!
엄양존자(嚴陽尊者)가 조주스님에게 물었다.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을 땐 어찌합니까?"
"놓아버리게."
"저는 한 물건도 가져오질 않았는데 무엇을 놓아버리라 하시는지 잘 모르겠군요."
"보아하니, 아직 놓아버리질 못했군" 엄양존자는 그 말끝에 크게 깨달았다.
그 후 황룡(黃龍)스님이 이렇게 송(頌)하였다.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음이여!
양 어깨에 걸머지고 일어나질 못하는 도다
눈 밝은 사람은 속이기 어렵나니
말끝에 잘못을 단박 안다 해도
뒷걸음질에 깊은 구덩이로 떨어지리라
가난한 사람 보배 얻은 듯
독악(毒惡)을 잊어 마음속에 전혀 두지 않으면
뱀과 호랑이를 친구삼고
이류(異類)를 평등하게 생각하네
쓸쓸한 천백 년에
맑은 바람 아직 그치질 않는구나
놓아버리게.
一物不將來
兩肩擔不起
明眼人難
言下忽知非
退步墮深坑
心中無限如貧得寶
毒惡旣忘懷沒交涉
蛇虎爲知已異類等解
寥寥千百年淸風猶未己
放下著
이를 상식적으로 논한다면 그가 "한 물건도 가져오질 않았다"고 하였는데, 무엇 때문에 대뜸 그에게 "놓아버리게"라고 말하였을까? 이것은 법안으로 미세한 곳까지 비추어 그를 위해 큰 병통을 끄집어내어 부끄러움을 알도록 해준 것임을 알겠다. 그는 그래도 깨닫질 못하고 다시 질문하므로 거듭 점검해 주었더니 그대로 기왓장 부서지듯 얼음 녹듯 하였다. 비로소 밑바닥이 뒤집어지면서 일시에 벗어나 이윽고 사나운 호랑이를 조복 받고 독사를 길들이는데 이르렀다. 이 어찌 안으로 느끼고 밖으로 감응함이 아니겠느냐,
방거사(龐居士)의 식구들이 모두 불을 쪼이고 있었다. 거사가 말하기를 "어렵구나, 어려워! 열 섬의 유마(油麻)를 나무 위에 펴기가"라고 하자, 방거사 부인이 말하기를 "쉽다, 쉬워! 모든 풀끝에 조사의 뜻이 있다"하였다. 그러자 딸인 영조(靈照)는 "어렵지도 않고 쉽지도 않다. 배고프면 밥 먹고 피곤하면 잠을 잔다"라고 말했다.
보통 때 사람들에게 이 화두를 거량하면, 영조가 한 말이 힘을 던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며, 방거사와 그 부인이 '어렵다' 혹은 '쉽다'한 것은 싫어한다. 그러나 그것은 말을 따라 이해한 것일 뿐, 그 근본 뜻은 전혀 살피지 못한 것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말의 자취가 일어나면 다른 길들이 그것으로부터 생기게 된다. 말을 잊고 뜻을 체득할 수 있다면 비로소 이 세 사람이 각각 한 솜씨에서 나와 밑 빠진 대바구니를 함께 들고 새우도 건지고 조개도 건지면서, 닿는 곳마다 살인의 기틀이 있고 곳곳마다 몸을 벗어날 길이 있음을 보게 되리라.
27. 찬상인(璨上人)에게 주는 글
달마스님은 서쪽에서 와서 문자나 말을 세우지 않고 오직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가리켰을 뿐이다. '그대로 가리킴'을 논한다면, 모든 사람마다 본래 갖추고 있으며 무명(無明)의 껍데기 속에서 전체로 감응하여 나타나며, 위로부터의 모든 성인과 털끝만큼의 차이도 없다. 이른바 천진(天眞)한 자성은 본래 청정하고 밝고 오묘하여, 10허(十虛)를 머금기도 하고 토해내기도 하며 6근(六根)과 6진(六塵)을 오롯이 벗어났다고 한 것이다.
이 한 뙈기의 심전지(心田地)는 생각을 여의고 알음알이를 끊어 일상적인 격식을 아득히 초월하였으니, 큰 근기와 큰 지혜 있는 이는 본분의 역량으로 곧장 자신의 근본자리로 나아가서 알아차린다. 마치 만 길 절벽에서 손을 놓아 몸뚱이를 버리고도 다시는 돌아보지 않듯 하여, 지견(知見)과 알음알이의 장애를 밑바닥까지 엎어버리고 완전히 죽은 사람처럼 이미 기식이 끊겨버렸다.
본 바탕에 도달하여 크게 쉬게 되면 입·코·귀가 애초에 서로 알지 못하며, 알음알이[識見]와 생각[情想]도 모두 도달하지 못한다. 그런 뒤에 꺼진 불, 찬 재와 두두물물 위에서 밝히며, 마른 나무 썩은 그루터기 사이에서 사물마다 비춘다. 이리하여 아득하고 높은 데 계합하면 다시는 결코 마음을 찾거나 부처를 찾을 필요가 없으니, 착착 들어맞아 원래 밖에서 얻은 것이 아니다.
예로부터 깨달았다는 백천 가지의 사례가 바로 이것일 뿐이니 마음으로 다시 마음 찾을 필요가 없다. 무엇 때문에 부처가 다시 부처를 찾느라고 수고하겠느냐. 혹시 말 위에서 격식을 짓거나 경계 사물 위에서 알음알이를 내어 알려 한다면 너절한 쓰레기 포대 속에 빠져서 끄집어내려 해도 끝내 어쩔 수 없는 꼴이 되고 만다. 이처럼 생각도 잊고 비춤도 끊긴 것이 진제(眞諦)의 경계라 하겠다.
거친 밭에서 가리지 않고 손 가는 대로 집어오니 밝고 밝은 풀끝마다 그대로가 분명한 조사의 뜻이다. 하물며 푸른 대나무와 탐스런 누런 국화와 장벽·기와부스러기 등이 무정설법을 하고, 물새가 숲에서 고(苦)·공(空)·무아(無我)를 연설하는 경우야 말해서 무엇하겠느냐. 이는 하나의 실제에 의거하여 인연 없는 자비를 드러내며, 고요한 큰 보배 광명에서 함이 없는 빼어난 힘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장경(長慶)스님은 말하기를, "도반과 만나 어깨를 스치고 지나는 사이에 일생 참학(參學)하는 일을 모두 끝냈다"라고 하였다.
남탑(南塔)스님은 말하기를, "내가 한 조각 나뭇잎을 가지고 성곽에 들어가는 것이 바로 앙산(仰山) 한 무더기를 옮겨버린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향엄(香嚴)스님의 '대나무에 기왓장 부딪치는 소리'와 영운(靈雲)스님의 '복사꽃을 보았던 일'과 자복(資福)스님의 '찰간대'와 도오(道吾)스님의 '신령한 주장자'와 대앙(大仰 : 앙산)스님의 '가래를 꽂은 것'과 지장(地藏)스님의 '씨 뿌린 것'이 모두 다 금강의 진정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니, 당자로 하여금 한걸음도 떼지 않고 크게 해탈한 참 선지식을 참례하고 말 없는 교화를 시행하여 걸림 없는 변재를 얻게 한다.
그리하여 삼라만상의 모든 사물 위에서 긴 시간 두루 참례하면서 원융한 법계를 널리 다 포섭한다. 보신불과 화신불의 머리에 앉아, 앉고 눕고 나타나고 숨으면서 변행삼매( 行三昧)를 초연히 증득하나니, 무엇 때문에 굳이 각성(覺城)의 동쪽 누각(樓閣)문전과 웅이산(熊耳山)과 조계의 근원에서 승당입실(陞堂入室)한 뒤에라야만 친히 전수하고 증득한다고 할 수 있느냐.
혜초(蕙超)스님이 묻기를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하자 법안스님이 "그대가 혜초이다" 하였는데, 혜초스님은 여기서 깨달았다. 이것을 두고 이른바 "너에게서 나온 것이 너에게로 되돌아간다."고 한다.
당(唐)나라의 옛스님인 영선사(英禪師)가 별로 알려지지 않았을 때였다. 밭일을 하느라 망치로 흙덩이를 부수다가 큰 흙덩이 하나를 보고 장난삼아 힘껏 후려쳤더니, 곧바로 폭삭 부숴졌다. 그러자 홀연히 크게 깨닫고, 이로부터 은현 자재하여 남들이 헤아리지 못하게 되었고, 자못 신이(神異)함을 나타냈다. 한 노스님이 이 이야기를 가지고 말하기를 "산하대지를 이 스님이 한 번 후려치자 산산히 조각나버렸다. 부처님께 공양하는데 반드시 많은 향을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였으니, 참으로 진실한 말씀이다.
28. 찬상인(璨上人)에게 주는 글
머물 것 없는 근본에 의지하여 일체 법은 건립하나니, 머뭄없는 근본은 머뭄없는 데 근본한다. 이를 투철하게 깨치면 만법이 한결같아 털끝만큼의 머무는 모양[住相]도 찾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지금 드러난 행위 그대로가 모두 머뭄 없음이다. 근본이 이미 밝혀졌다면 이것은 마치 사람에게 눈이 있어 햇빛이 밝게 비추면 갖가지 물건을 보는 것과도 같으니, 이 어찌 반야의 문빗장이 아니랴!
영가(永嘉)스님은 "그 자리(當處)를 떠나지 않고 항상 담연하다"하였으니, 이보다 더 가까운 말은 없으리라. "찾은즉 그대를 아나, 보지는 못 하도다"고 했는데, 담연한 당처에서 2변을 눌러 앉아서 평온해야지 알음알이를 내서 찾으려 해서는 절대 안 된다. 찾았다 하면 마치 그림자를 잡은 것과도 같느니라.
"만법과 짝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하였는데, 마음의 광채를 돌이켜 스스로 비추어보라." 그대가 한 입에 서강(西江)의 물을 모두 마시면 그때 가서 너에게 말해 주리라"하였는데, 팔각의 맷돌이 허공에서 구르듯 하였다. 이를 참구해 꿰뚫으면 눈앞에서 평지가 푹 꺼져서, 시작을 알 수 없는 망상이 말끔히 없어지리라.
덕산스님이 강 건너에서 부채로 부르자 문득 알아차린 사람이 있었고 조과(鳥 )스님이 실올 하나를 뽑아서 훅 불자, 깨달은 사람도 있었다. 이러한 큰 인연들은 시절이 이르자 뿌리에서 싹이 스스로 튼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기틀과 감응이 서로 딱 들어맞을 바탕이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바로 그 사람이 빈틈없이 가만히 운용하다가 스승의 문호를 빌려 발휘한 것이었던가? 이처럼 어려운 일을 어찌 그리 초준하게 끊어서 그리 쉽게 증득했을까? 옛사람이 겨자씨를 굴려 바늘을 맞춘다는 비유를 하였는데, 진실로 헛말이 아니다.
마음을 믿어서 다다르고 성품을 확연히 보면 날로 씀에 실낱만큼도 빈틈이 없다. 세간법 모두가 그대로 불법이며 불법 모두가 그대로 세간법이니 평등하고 한결같다. 어찌 말할 땐 있다가 말하지 않을 땐 없으며, 생각할 땐 있다가 생각하지 않을 땐 없으랴. 이와 같다면 바로 망상과 알음알이 속에 있는 것이니, 어찌 철저하게 깨친 것이겠는가!
생각생각 마음마음, 빠짐없이 관조해야 한다. 세간법과 불법이 전혀 간격이 없으면 자연히 순수하게 익어 어디에서나 근원을 만나리라. 질문이 있으면 질문에 곧바로 대답하고 질문이 없으면 담연하여 항상 고요하니, 이 어찌 실제로 생사를 투철히 벗어나는 요점이 아니랴.
최후의 한 구절[末後句]을 모두 꿰뚫고 난다면, 말 있음과 말 없음, 향상과 향하, 방편과 진실, 조(照)와 용(用), 오무림과 폄, 줌과 빼앗음에 간파하는 일이 필요치 않다. 조주스님의 이 본분소식을 뉘라서 알랴. 모름지기 우리 본분가풍의 자손이라야 알 수 있다.
29. 영부사에게 주는 글
옛사람은 이 큰 인연만을 위하였으니 스승과 제자가 서로 만나면 언제나 이것으로 일깨워 주었고, 나아가 밥 먹고 잠자고 한가 한 때라도 여기에다 생각을 두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한마디 한마디와 주장자를 치고 할을 하고 눈을 깜짝이고 눈썹을 치켜세우고 손을 들고 발을 움직임이 다 기연에 투합하였다.
이는 정성스런 마음을 오로지 하여 허다한 나쁜 지견에 물들지 않고 똑바로 알아차렸기 때문에 어려움이 없는 듯하였다. 요즈음의 형제들은 근성이 약간 둔한 데다가 잡다하기까지 하다. 비록 선지식을 찾아뵙고 참구하여 오래 훈습하면서도 오히려 마음속에 유예를 두어 한번에 철저히 깨닫지 못한 것은, 그 병통이 순일하게 오래하지 못한 데 있다.
만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잠자는 것도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애써 도를 닦으면 옛사람만 못할까봐 근심할 필요가 없으리라.
30. 상선인(詳禪人)에게 주는 글
뜻을 세워 도에 힘쓰는 인재라면 하루 종일 스스로 관조하고 스스로 알아서 오직 여기에만 생각을 두어야 한다.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 있는 한 덩어리 큰 인연은 성인이라 해서 더 늘지도 않고 범부라고 해서 줄지도 않아 6근과 6진을 홀로 벗어나 아득히 사물 밖으로 초월한 줄을 알아라. 그것이 작용할 때는 언제나 방향과 처소를 가리지 않고, 맑고 고요하고 흩어지지 않는다. 비록 천변만화를 한다 해도 애초에 움직이지 않고 인연 따라 나타나고 일을 만나면 발현하되, 원만하게 성취되지 않음이 없다.
무엇보다도 텅 비고 고요하여 모든 것에 초연하여야 한다. 주된 근본이 이미 밝혀지고 나면 밝히지 못할 어둠이 없어 만 년이 일념(一念)이고 일념이 만 년이다. 철두철미하고 온전한 기틀[機]과 위대한 작용[用]은 비유하자면 장사가 팔을 굽히고 펼 때 다른 힘을 빌리지 않는 것과도 같으며, 생사의 허깨비가 영원히 소멸하고 금강의 참모습이 홀로 드러나 한 번 얻으면 영원히 얻어 끊어짐이 없다. 고금의 말씀[言敎]·기연(機緣)·공안(公案)·문답(問答)·작용(作用)이 모두 이 일을 온전히 밝힌 것이다.
오래도록 씻은 듯이 청정하게 실천하다 보면 자연히 어디에서나 근원을 만나 한 덩어리가 되리라. 듣지도 못했느냐. 법등(法燈)스님이 한 말을.
"거친 밭에 들어가 가리지 않고 손 가는 대로 풀을 움켜쥐니 눈에 보이는 대로 기틀에 맞닿지 않는 것이 없다."
어찌 말하지 않으랴. 뿌리 없건만 살았고 흙을 떠났으나 자빠지질 않네. 매일 쓰면서도 모르는데 다시 어느 곳에서 찾으랴. 이 소식은 참으로 간절하고도 마땅하도다.
31. 혜선인(慧禪人)에게 주는 글
수료(水 )스님이 마조스님을 뵙고 불법의 분명한 대의를 묻자, 마조스님이 한 번 밟아 버렸다. 그러자 크게 깨닫고는 "모든 법문과 한량없이 오묘한 의미를 한 털 끝에서 근원을 알았으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 하더니 껄껄하고 크게 웃었다. 그 뒤로는 평생토록 대중법문을 할 때면 늘 말하기를, "마조스님에게 한 번 밟히고 난 뒤로부터 지금까지 웃음 그친 적이 없었다"하고는, 다시 껄껄하고 웃었다.
이는 굳게 정성껏 찾았으나 들어갈 곳을 찾지 못하다가 갑자기 발에 밟히자 문득 깨달아 알아차리고 걸머졌던 짐을 훌쩍 벗어버려 전혀 의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드디어는 가슴 속에 깨달았던 것을 토해냈으나 그것이 결코 다른 일은 아니다.
요즈음 참선하는 사람들이 과연 진실되게 종사들이 하신 한 마디 한 경계를 실제 체험으로 만나 헤치면서 나아간다면 무슨 어려운 일이 있으랴! 다만 근본이 들뜨고 식견이 천박함을 걱정할 뿐이다. 바람이 나무 끝을 스치듯 해 가지고는 천번 만번 들여대도 계합하지 못한다. 그런데 더구나 알음알이를 짓는 자가 이렇게 깨달아 들어갈 일은 없다고 지시해주는 경우야 어떠하겠느냐!
마조스님과 수료스님도 이처럼 한번에 건립하였을 분이다.
이같이 한다면 나귀해가 되도록 꿈에서도 보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도를 배우려면 진실한 믿음을 숭상해야만 한다. 혜선인(慧禪人)은 실천에 전념하므로, 부족하나마 이 정도 방편으로 보일 뿐이다.
이 일을 논한다면 부싯돌 불이나 번개불빛과도 같아서, 밝혔거나 밝히지 못했거나 간에 꼼짝없이 목숨을 잃는다. 밝히지 못한 경우에야 목숨을 잃는 것은 굳이 그렇다 치고, 밝혔는데도 무엇 때문에 목숨을 잃을까? 상당한 사람들이 이 점에 대해 의심을 하는데 그들은 끝까지 도달하여 명근(命根)이 끊긴 곳에 이르러, 심장과 간장 등 오장육부가 바뀌어서 향상의 경계와 같아진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때문에 말하기를, "절벽에서 그대로 손을 놓아버린 뒤에야 생철(生鐵)로 주조한 자가 가시덤불을 뚫고 나왔다고 할 만하다"고 하였으니, 천하 늙은이의 혀끝을 의심하지 않아야만 진정으로 참구하고 배울 자격이 있음을 믿으라.
32. 수도하는 약허암주(若虛菴主)에게 주는 글
도를 배우는 납자들이 처음에는 신심과 취향이 있어 세상의 번거로움과 더러움을 싫어하며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할까를 늘 염려한다. 그러다가 이미 스승의 지도를 받게 되거나 혹은 자기 자신으로 인하여 원래부터 각자에게 갖추어진 완전하고 묘한 진심(眞心)을 밝혀서 경계나 인연을 만나면 스스로 귀착점을 알아서 그대로 간직하여 안주하려 하니,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드디어 고정된 형식을 만들까 염려스럽다. 마침내 기연 위에 조(照)와 용(用)을 세우고 혀를 차고 손뼉을 치며, 눈을 부릅뜨고 눈썹을 날리면서 한바탕 유난을 떤다.
그러다가 다시 본색종장을 만나 수많은 알음알이를 모조리 들추어내어 단박에 본래의 함이 없고 하릴없는 무심한 경계에 계합한 뒤에야 부끄러움을 알고 쉴 줄을 알게 된다. 한결같이 그윽한지라. 모든 성인도 그이 일으킨 곳을 찾지 못하는데, 더구나 그 나머지야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때문에 암두스님은 말하기를, "저 체득한 사람은 한가한 경지만 지킬 뿐 하루 종일 하고자 함도 없고 의지함도 없다"하였는데, 이야말로 안락법문이 아니겠는가!
옛날에 관계(灌溪)스님이 말산(末山)비구니 스님에게 갔더니 말산스님은 물었다.
" 방금 어디에서 왔는가?"
관계스님은 말하였다.
" 길 입구에서 옵니다."
" 왜 덮어버리질 못하는가?"
관계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다음날 "어떤 것이 말산의 경계입니까?"하고 물었더니 말산스님은 말하였다.
" 꼭대기를 드러내지 않는다."
" 무엇이 산중 사람입니까?"
" 남녀 따위의 모습이 아니지."
" 왜 변화하질 않습니까?"
" 신(神)도 아니고 귀(鬼)도 아닌데 무엇을 변하겠는가?"
이러한데 어찌 실제의 경지를 밟지 않고 만 길 절벽 같은 곳에 도달하지 않았으랴! 그러므로 "마지막 한마디라야 비로소 굳게 닫힌 관문에 도달하여 요충지를 차지하고서 성인이든 범부든 통과시키지 않는다"고 하였던 것이다. 옛사람은 이미 그러하였는데, 요즈음 사람인들 어찌 조금이라도 부족하랴. 다행히도 금강왕 보검이 있으니, 지음(知音)을 만나면 반드시 꺼내 보이리라.
33. 양노두선인(良蘆頭禪人)에게 주는 글
금색두타(金色頭陀 : 가섭)는 계족산(鷄足山)에서 오랜 겁 동안 앉아 있고, 달마스님은 소림에서 9년을 면벽하였으며, 조계(曹溪)스님은 사회현(四會縣)에서 사냥꾼을 따라다녔고, 대위(大 : 위산)스님은 깊은 산 속에다 암자를 세우고 10년을 지냈다. 대매(大梅)스님은 한 번 안주하자 인적을 끊었고, 무업(無業)스님은 대장경을 열람하였으며, 옛 성인은 7일 밤낮을 발돋음질하면서 부처님을 찬탄하였고, 상제(常啼)보살은 수개월 동안 심장과 간을 팔았으며, 장경(長慶)스님은 앉아서 일곱 개의 방석을 뚫었었다.
이는 모두가 이 하나의 큰 인연을 위해서 그런 것으로, 그 뜻이 가상하니 영원토록 후학들의 표준이 될 만하다. 그들의 몸을 긴 선상 위에 놓는다 해도 역시 그윽한 마음으로 몸소 참구할 뿐이다. 다만 마음과 생각을 맑고 조용하게 하여 어지럽고 시끄러운 곳에서도 훌륭하게 공부를 하였는데, 공부를 할 때에는 철두철미하여 실낱만큼도 빠짐없게 하였다. 전체가 있는 그대로여서 다시는 나라든가 혹은 남이라든가 하는 견해를 일으키지 않는다. 오직 이 하나의 큰 기틀을 자유자재하게 운용될 뿐인데, 다시 무슨 세제(世諦)니 불법이니를 말하랴.
오래도록 한결같이 평등하게 간직하다 보면 자연히 서 있는 자리가 실제의 확고한 자리로서 바로 이것이 그대 양상좌(良上座)가 계합한 곳이다. 물이 물로 들어가고 금에다 금을 올리듯, 한결같이 평등하여 맑고 참되리니, 이것이 바로 살 궁리할 줄을 아는 것이다. 다만 한 생각도 내지 말고 또렷또렷하도록 놓아버려 옳고 그름, 나와 남, 얻고 잃음 등이 조금이라도 있기만 하면 그것을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낮이 다하고 밤이 다하도록 자기 참 선지식을 몸소 참구하는 것이니, 어찌 이 일을 끝내지 못할까 근심하랴. 스스로 살펴보기를 간절히 바라노라.
34. 허봉의(許奉議)에게 드리는 글
이 일은 날카로운 지혜를 가진 상근기에게 있는 것으로서 하나를 듣고 천을 깨닫는 것이 어렵지 않으니, 요컨대 서 있는 자리를 견고히 하여 확실히 믿고 꽉 잡아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맞고 거슬리는 모든 경계와 갖가지 인연들을 한 덩어리로 만들어 마치 허공에 실낱만한 장애도 없듯 텅 비고 밝아 전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이렇듯 백겁천생이 시종여일해야 평온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총명하고 민첩한 사람이 근기가 들뜨고 근본이 얕아서 말 위에서 전변할 줄 알고 세간에서는 가히 숭상할 만한 게 없다고 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마침내는 견해의 가시를 키우고 능력과 알음알이를 내보이며 잽싸고 영리하게 언어를 사용하면서 불법이란 이러할 뿐이라고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경계 인연이 생기면 벗어나지 못하고 거기서 진퇴를 이루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러므로 옛사람은 모든 마구니와 어려움을 일찍이 두루 다 겪었으니, 일곱 토막으로 잘리워도 생각을 움직이지 않고 한번 마음을 다잡으면 마치 철석같았습니다. 나아가 생사를 투철히 벗어나는 데 이르러서는 전혀 힘을 들이지 않았으니, 어찌 식정을 초월하여 강개한 뜻을 지닌 대장부가 아니겠습니까.
재가보살이 출가한 수행을 닦는 것은 마치 불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는 것과도 같습니다. 대체로 이름과 지위, 권(權)과 실(實)의 의기(意氣)를 졸지에 조복받기는 어려운데, 더구나 삼계화택(三界火宅)의 번거롭고 시끄러움이 백천 갈래로 지지고 볶는 경우야 말해서 무엇하리요!
오로지 본래 참되고 오묘하고 원만한 자기 자리에서 당장 크게 쉬어버린 대적정삼매의 경계에 도달하고, 나아가 그것마저 놓아버리면 텅 비어 평등하고 항상하며, 무심(無心)을 철저하게 깨닫고 일체 법을 꿈이나 허깨비처럼 여깁니다. 텅 비고 툭 트인 경지에서 인연 따라 세월을 녹인다면 유마힐(維摩詰)·부대사(傅大士)·배상국(裴相國)·양내한(楊內翰)등 여러 훌륭한 재가(在家)의 수행인들과 그 정인(正因)을 함께 할 것입니다. 자기의 역량을 따라 깨닫지 못한 사람을 교화하여 함이 없고 아무 일 없는 법성(法性)의 바다 속으로 함께 들어간다면 남섬부주를 한바탕 뛰쳐나온다 해도 본전을 밑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불법은 대단할 것이 없으니 구지(俱 )스님은 한 손가락만 세웠고, 타지(打地)스님은 땅만 쳤으며, 조과(鳥 )스님은 실오라기를 입으로 불었고, 무업(無業)스님은 망상 피우지 말라 하였으며, 중읍(中邑)스님은 시끄럽게 재잘거렸으며, 고제(古提)스님은 불성이 없다 하였고, 골좌(骨 )스님은 일생동안 뼈가 꺾인다고만 말했을 뿐입니다. 다만 믿음으로써 여기에 이르렀을 뿐이니, 때문에 일생동안 써먹어[受用]도 다 쓸 수가 없었습니다.
만일 의심을 내면 다른 견해 및 차별이 생겨 향상이니 향하니 하는 것이 있게 되니, 어떻게 그 향상 향하를 타고 앉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오래하는 것을 귀하게 여겼으니, 이것이 사람 얻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이미 들어갈 곳을 알아 근원이 밝아지면 만 길 벼랑처럼 높고 아득하게 씻은 듯 초탈해야 합니다. 부처병·조사병을 버리고 현묘한 이치와 성품도 버리고 한가로이 호호탕탕하여 아무 것도 모르는 촌구석 사람과 전혀 다르지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오랜 세월을 길러 나가다 보면 소박하고 진실하며 매우 안온하여 바야흐로 안락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자기를 노출하여 총명한 체 하거나 책략을 드러내 지견(知見)을 자랑하며 결코 구두선(口頭禪)으로 빠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열 번 말하여 아홉 번 들어맞는다 해도 한 번 말 없느니만 못하다고 하였고, 또 "나는 부처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백천 명이나 보았지만 그 가운데서 무심도인은 한 사람도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천해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천해나가면서도 모양에 집착하지 않고 덕에 머물지 않는 것을 '모양 없는 진실한 수행'이라 이름합니다.
큰 코끼리는 강을 건널 때 물결을 끊고 지나가는데, 이렇게 수행 실천해 가면 물이 방울마다 얼듯 가슴 속에 자취를 남겨두지 않거니, 하물며 특별히 마음을 일으켜 모든 죄악을 짓는 경우이겠습니까. 이미 이처럼 깨달음을 간직하고 또한 이처럼 깨닫지 못한 이를 격려하다 보면, 문득 위에서 바로 조복되고 믿음이 순숙하여 함이 없고 하릴없어지리니, 어찌 통쾌하지 않겠습니까.
35. 해지욕(諧知浴)에게 주는 글
이 큰 법은 삼세 모든 부처님이 함께 깨닫고 역대 조사가 함께 전하여 똑같은 도장으로 인가하였다. 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 본성을 보아 성불케 하며, 문자나 말을 세우지 않았으니 이를 두고 교(敎) 밖에 따로 행하며, 단독으로 심인(心印)을 전한다고 한다. 만약 말과 교리로써 설명하며 단계를 세우고 격외(格外)니 격내(格內)니를 논한다면 근본 종지를 잃어버리고 옛 성인을 저버리게 되리라.
요컨대 처음 입문할 적부터 곧바로 본분인(本分人)을 만나서 그대로 근원을 알아 뒤로 물러나 자신에게 나아가야 한다. 철석같은 마음으로써 종전의 망상과 견해, 세간의 지혜와 총명, 너와 나, 얻음과 잃음 따위를 밑바닥까지 뒤집어 일시에 놓아 버려야 한다. 곧바로 마른 나무, 불 꺼진 재처럼 하여 망정과 견해를 모두 없애 정나나적쇄쇄(淨 赤灑灑)한 곳에 도달하여 활연(豁然)히 계합 증득하면, 위로부터의 모든 성인과 실낱만큼도 차이가 나지 않는다.
진실로 믿어서 다다르고 분명하게 봐서 사무친다면 이것이 바로 진리에 들어가는 문이다. 여기서 다시 일념이 만 년이 되게 하고 만년이 일념이 되게 하여 하루 종일 순일하여 잡됨이 없어야 한다. 실낱만큼이라도 일어나거나 꺼짐이 있기만 하면 25유(二十五有)에 떨어져 빠져나올 기약이 없으리라.
죽기 살기로 물어뜯어 끊어버린 뒤에야 바탕[田地]이 안온하고 은밀하리라. 성인이니 범부니 하는 지위에 들어가지 않아야만 비로소 새가 새장을 벗어난 것처럼 스스로 쉬고 스스로 깨달은 곳에서 자리를 잡고 옷을 입을 수 있으리라. 그러면 백 번 단련한 순금처럼 일거일동이 넓고 한가로워 6근·6진의 생사와 현묘한 경(境)·지(智)가 마치 끓는 물에 눈을 뿌리는 것과도 같으리라. 마침내는 스스로 시절을 알아 다시는 본분을 벗어나지 않으니, 이를 일러 무심한 도인이라 이름한다. 이렇게 닦고 증득하며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을 일깨워 이렇게 실천하게 한다면, 어찌 도를 닦는 요점이 되지 않으랴!
옛사람이 이 하나의 인연을 위하여 어찌 침식을 잊는 정도에만 그쳤으랴! 머리·눈·골수를 희사하고, 팔을 끊고 방아를 찧기까지에 걸핏하면 30년, 20년을 지냈다. 예컨대 암두(巖頭)·설봉(雪峰)·흠산(欽山)스님의 경우, 총림을 함께 돌아다녔으나 각자 한 가지 일을 잡고 부지런히 노력하였다. 동산(洞山)을 아홉 차례 갔었고 투자(投子)스님에게 세 번 갔었는데, 가는 곳마다 하룻밤 한 순간을 그냥 지나쳐버린 적이 없다. 반드시 서로 거론하여 비교해주고 서로 갈고 닦아 주더니, 신풍산(新豊山)에서 깊숙이 계합하여 활연히 종지를 깨달은 것이다.
덕교(德嶠 : 덕산)스님은, 그의 걸음걸이와 체재를 보건대, 불법문중의 용과 코끼리라고 할 만하다. 후학들은 그들의 자취를 우러러, 세월을 헛되게 보내어 옛날의 훌륭했던 어른들을 욕되게 하지 말아야 한다.
옛날에 천태덕소(天台德韶)국사는 어려서부터 자질이 뛰어났다. 총림을 행각할 때 가는 곳마다 기연이 맞아서 스승대접을 받게 되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금릉(金陵) 땅 청량사 대법안(大法眼) 스님의 회상에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묻고 참례하는 것은 게을리 하고 오직 열심히 시봉을 들며 방장실에서 옷깃을 여미고 있었을 뿐이었다. 하루는 대중 참당(參堂)에 따라갔는데,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계근원의 한 방울 물입니까?" 그러자 "이것이 조계근원의 한 방울 물이다"라고 대답하는 말을 듣고, 전에 깨닫고 이해했던 것이 마치 얼음 녹듯 풀려 큰 안온함을 얻었다.
이로써 배워서 이해하는 것은 사람을 피곤케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 마디, 한 구절, 한 기틀과 한 경계에서 아는 것은 다문(多聞)을 더할 뿐이니. 궁극의 지극한 실재 자리에 이르려 하면 모름지기 통 밑바닥이 빠져버리듯 해야만 하리라. 이 일은 결코 말 가운데 있지 않다. 이를 집착하고 기억하여 자기의 견해로 삼는다면, 마치 그림 속의 떡과 같으니 어떻게 배고픔을 달랠 수 있으랴.
그러나 크게 통달한 인재는 진실한 이치를 초월하여 증득한다. 나아가 기연에 투합할 경우에는 말 사이에 있으면서 그 자취에서 멀리 벗어나 기틀이나 경계 등의 그물로 그를 잡아둘 수 없다. 예컨대 석두(石頭)스님은 약산(藥山)스님에게 이렇게 물었다.
" 그대는 여기서 무엇을 하느냐?"
" 아무것도 하질 않습니다."
" 그렇다면 한가하게 앉아 있는 거로군."
" 한가하게 앉아 있는 것도 하는 겁니다."
석두스님이 다시 물었다.
" 그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였는데, 무엇을 안 한다는 건가?"
" 모든 성인도 모릅니다."
석두스님은 이에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이제껏 함께 있어도 이름도 모르고
임운 등등이 서로 함께 그렇게 갈 뿐이네
예로부터 현인들도 알지 못했거니
경솔한 범부가 어찌 밝히랴.
從來共住不知名 任運相將只 行
自古上賢猶不識 造次凡流豈可明
이 같은데 어찌 철저하게 깨달은 사람의 말이 아니랴. 기연으로 헤아리는 말로서야 어떻게 그를 구속할 수 있었으랴. 만일 이치자리[理地]를 밝히지 못했다면 가슴 속에 물건이 막힌 듯 질문을 해도 마치 모포 위에서 고양이를 끌 듯 할 것이다. 그러므로 조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마음이 모든 경계를 따라 움직이나
움직인 자리마다 실로 오묘하구나
흐름을 따라 본성을 알아차리니
기쁨도 없고 근심도 없도다.
心隨萬境轉 轉處實能幽
隨流認得性 無喜亦無憂
총림의 형제들이 찾아와 법을 물을 때, 맨 처음에는 정인(正因)이 분명히 있어서, 생사의 일이 큰데도 스스로의 일을 밝히지 못하는 것을 선지식에게 고백한다. 그러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 어찌 흔히 말하는 명예와 지위를 위하고, 나의 능력과 나의 우수함을 내보이기 위해서이겠는가!
그러나 만일 시종일관 항상 이런 마음을 가지면 자기 일을 밝히지 못함을 근심하지 않는다. 나아가 오랫동안 가까이 하다가 끝내는 자기의 분상에 털끝만큼도 서로 상응하는 곳이 없게 되면, 문득 이러쿵저러쿵 따지며 상대방 견해를 시비하고 아견을 늘리면서 빠져나올 곳을 찾는다.
그렇게 하면 뒷날 한줄기 향으로 감히 화상을 저버리진 않았다 하겠으나, 최초의 정인(正因)을 잃어버리고 마군의 경계에 떨어진다는 것은 전혀 모른다. 옛사람은 말하기를 "권속의 장엄은 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이른다"하였다. 이미 짚신을 다 밟아 떨어뜨린 무리들이라면 이제는 응당 처음의 마음을 깨달아 생사 벗어나기를 기약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으니, 각자 힘써야 하리라.
36. 인선인(印禪人)에게 주는 글
도는 깨달아 통달함에서 오니, 깨달음에는 입지(立志)가 우선이다. 갖가지로 매어 있는 범부로부터 훌쩍 뛰어 성인의 세계에 곧바로 깨달아 들어가려는 것이 어찌 작은 인연이랴! 진실로 철석같은 마음을 가지고 생사의 흐름을 끊어 본래의 바른 성품을 알아차려야 한다. 티끌만치도 속이나 밖에 법이 있음을 보지 않고 가슴 속을 텅 비워 아무 걸림이 없으면 하는 작용마다 모두 근본 속에서 흘러나온다.
근본이 이미 확실하면 일체의 사물을 굴릴 수 있는데, 이를 '금강의 바른 몸'이라고 말한다. 한 번 얻으면 영원히 얻는데 어찌 밖에서 구할 것이 있으랴. 그러므로 옛 스님은 말하기를, "이 종지는 그 오묘함을 얻기가 어렵다"고 했으니, 부디 자세하게 마음을 쓰는 가운데서 정인(正因)을 단박에 깨달아야 티끌세상의 계급과 구덩이를 벗어난다.
옛 스님들은 강을 사이에 두고 부채를 흔들기도 하고 포단의 실오라기를 불기도 하다가 문득 계합(契合)할 기연(機緣)이 트이는 수가 있었다. 나아가 문득 입을 막아버리고 방망이로 등허리를 때리기도 했으며, 통 밑이 빠지는 것처럼 풀리기도 했다. 이는 오래도록 전일하게 했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홀연히 깨달은 것이니, 어찌 밖에서 얻었겠는가. 모두가 스스로 증득하고 스스로 깨달음에서 온 것이다.
대매(大梅)스님이 마조스님에게 질문하여 "마음 그대로가 부처다[卽心卽佛]"라는 말을 듣자마자 문득 깨달음의 문지방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이로부터 산에 머물렀다. 후에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非心非佛]"라고 한 마조스님의 말을 듣고 바로 말하기를, "이 늙은이가 사람을 놀리는구나. 이래가지고야 어느 때 마칠 기약이 있겠는가. 그대는 비심비불이지만, 나는 즉심즉불일 뿐이다"라 하였다. 이는 물을 거슬리는 파도가 있어 마조스님의 허물을 간파해버림이 아니겠느냐.
약산스님이 대중에게 말하였다.
"나에게 한마디가 있는데, 송아지가 새끼를 낳으면 그때 가서 그대들에게 말해 주겠다."
당시에 그냥 놓아 보내지 않았더라면 그에게 "참선하는 납자가 낭패로군"하고 말해 주었으리라.
37. 신(信)시자에게 주는 글
도를 배우는 요점은 뿌리를 깊이 박고 줄기를 견고하게 하는데 있으니, 하루 종일 자기의 근본을 비추어야 한다. 생각을 크게 일으키면서도 전혀 속으로 관여하지 않을 때에는, 원융하여 가이 없고 전체가 텅 비게 응어리져 일체의 하는 일에 일찍이 의심하는 간격이 없으니, 이를 '지금 있는 그대로의 본분사[現成本分事]'라고 말한다.
한 털끝만큼이라도 견해를 일으키고 알아차려서 주체가 되겠다고 바라면 바로 음계(陰界) 속에 떨어진다. 그리하여 견문각지(見聞覺知)와 득실시비(得失是非)에 걸려 정신이 반은 취하고 반은 깨어난 상태에 휩싸여 분별하지 못한다.
사실대로 따져 보면 시끄러운 속에서 가지고 다녀도 아무 일도 없는 것과 같아서, 철두철미하게 그 자리에서 원만 성취하여 아무 형상이 없으면, 전혀 힘을 들이지 않고 작위에도 걸리지 않는다.
말과 말 없음, 일어남과 자빠짐이 결코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니니, 털끝만큼이라도 막힘을 느낀다면 이는 모조리 망상이다. 곧바로 큰 허공과 같이, 밝은 거울이 경대에 걸린 것 같이, 솟아오른 해가 하늘에 빛나는 것 같이 아무 것도 없이 깨끗해야 한다.
움직임과 고요함, 가고 옴이 하나하나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니, 자유 자재하도록 놓아버려 법에 매일 것도 없고 법을 벗어나려 할 것도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덩어리를 이루었는데, 어느 곳에 불법을 떠난 밖에 따로 세간법이 있으며, 세간법을 떠난 밖에 별도로 불법이 있으랴! 그러므로 조사께서는 곧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켰던 것이다.
금강반야(金剛般若)는 사람이 모양[相] 떠난 것을 귀하게 여기니, 비유하면 장사가 팔을 굽히고 펼 때 다른 힘을 빌리지 않는 것과도 같다. 이처럼 요점을 살펴서 긴 시간을 스스로 물러나 참구해야 좋으리라.
그리하여 진실로 깨달은 경지에 도달함이 있게 되면 바로 이것이 생각 생각에 가이없고 헤아릴 수 없는 대선지식을 두루 참례한 것이니, 부디 진실하게 믿고 힘써 공부해야만 가장 훌륭하다고 하겠다.
38. 조인(祖印)사미에게 주는 글
영가스님은 말하기를, "그 자리[當處]를 떠나지 않고 항상 담연하니, 찾은 즉 그대를 아나, 볼 수는 없도다"하였다. 당처의 고요한 경지에서 두변을 눌러 앉아 평온하게 해야 하며, 알음알이를 지어서 찾는 것을 절대 조심해야 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찾았다 하면 그림자를 잡으려는 것과 같느니라.
마조스님은 "마음 그대로가 부처[卽心卽佛]"라고도 하였고, 또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고 물건[物]도 아니다"라고 하였다. 동사(東寺)스님은 말하기를, "마음은 부처가 아니며, 지혜는 도가 아니다. 칼이 떠난 지가 오래인데 그대는 이제서야 배에 칼 떨어진 자리를 표시하고 있구나"라고 하였다. 가령 각자의 말을 따라간다면 어찌 정해진 결론이 있으랴.
그러나 말을 잊고 깨닫는다면 다시 백천억 마디를 연설한다 해도 하나의 참다움[一實]에 불과하다. 무엇이 참다운 자리일까! 대매스님이 말했듯이 "그대는 그저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라고 말하라. 나는 마음 그대로가 부처라고 하리라" 하였는데, 이 어찌 참됨이 아니랴. 요컨대 철저히 믿어서 몸소 깨닫고 몸소 보아야만 자연히 다른 사람에게 속지 않으리라.
39. 민지고(民知庫)에게 주는 글
민선인(民禪人)은 금관(錦官) 대자사(大慈寺)의 전법사(傳法師)인 소(昭)율사의 법손이다. 머리를 깎자마자 즉시 가업을 익혀 사분율을 배웠다. 이윽고 포건(布巾)을 벗어던지고 율법을 떠나 스스로 청정하려 하여, 지팡이를 어깨에 걸머지고 남쪽에 유람하여 조사가 서쪽에서 온 종지를 물으려고 내가 살고 있는 협산(夾山)에 와서 서로 만났으며, 도림사(道林寺)에 머문지 오래였다.
내가 장산(蔣山)을 맡게 되었을 때는 더욱 확실하게 묻고 참구하였다. 깨닫는 문제에 있어선 스스로 지해(知解)를 털어버리고 온전한 기틀로 곧바로 꿰뚫어야 하는데, 인연 따라 묻고 대답할 때마다 한번에 단도직입하여 상당히 공부가 쌓였으니 기뻐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 근기로써 다시 부지런히 노력하고 마음[志]을 쉬어서 더없이 깊고 오묘한 곳에서 크게 쉬어버리고 완전히 안온한 곳에 도달해야 한다. 가는 티끌도 움직이지 않고 그저 한가로운 경지만을 지켜 범부와 성인도 헤아릴 수 없게 하고 모든 덕도 거느리지 않는 뒤에야 의발을 맡길 만한 것이다.
암두스님은 말하기를, "사물을 물리치는 것이 상급이고, 사물을 쫓는 것이 하급이다"라고 하였다. 모든 경계와 모든 인연, 나아가 고금의 가르침과 임기응변에 이르기까지 만약 자기의 근본이 텅 비고 고요하여 두루 밝고 고요히 비추면[圓明寂照], 모든 것이 다 나에게 간여해온다 해도 금강왕 보검으로 단칼에 잘라버릴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늠름하고 신령한 위엄으로 일체를 앉은자리에서 끊어버려, 물리치지 않아도 저절로 물러나리니 어찌 여유자작하지 않으랴.
만일 근본을 밝히지 못하고 약간이라도 의심하고 머뭇거린다면 휘둘림을 당하여 분명하지 못할 것은 뻔하니, 어떻게 남의 굴림을 면할 수 있으랴. 남에게 딸려가다 보면 끝내 자유로울 리가 없으리라. 지극한 도는 간단하고 쉬우니 다만 물리치느냐 쫓아가느냐에 달렸다. 도를 잘 체득한 사람이라면 깊이 생각해야 된다.
옛사람은 이 하나의 일을 위해서 그대로 온몸을 희사하기도 하고, 눈 속에 서 있기도 했으며, 방아를 찧기도 했고, 심장과 간을 팔기도 했다. 양쪽 팔뚝을 태우기도 했고, 훨훨 타는 불무더기 속에 몸을 던지기도 했고, 온몸이 일곱 토막으로 잘리 우기도 했으며, 몸을 호랑이 먹이로 바치기도 하고 비둘기를 구하기도 했으며, 머리를 희사하고 눈을 보시하기도 하였다. 이런 백천 가지의 경우라도 모두가 간곡하고도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깊이 도달하지 못한다. 뜻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옛사람을 본받아 안자(顔子)처럼 되기를 바라고 인상여(藺相如)를 흠모해야 된다.
원만 담연하고 텅 비어 응연(凝然)한 것은 도의 체(體)이고, 펴기도 하고 오므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는 것은 현묘한 작용[用]이다. 훌륭한 솜씨로 칼을 휘두르고 능히 조심하여 지키되, 마치 구슬이 소반에 구르듯, 소반이 구슬을 굴리듯 하여 잠시도 허망함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세간법이니 불법이니 구분을 하지 않고 그대로 한 덩어리를 이루니 이른바 "부딪히는 곳마다 그를 만난다"한 것이 그것이다. 종횡으로 출몰하되 애초부터 외물(外物)이 없다. 적나라하고 자유자재하여 본분의 일로써 인정(印定)하고 두두물물마다 밝고 묘연하다.
그러니 어느 곳에 다시 얻고 잃음, 옳고 그름, 좋고 나쁨, 길고 짧음이 있으랴. 다만 자기의 바른 안목이 환하게 밝지 못할까 염려스러울 뿐이다. 양변에 떨어지게 되면 전혀 관계가 없게 된다. 듣지도 못하였느냐. 영가스님이 말하기를, "상근기는 한 번 결단하여 일체를 알아버리나, 중하근기는 많이 들을수록 더더욱 믿지 못 한다"고 했던 것을.
부처님과 조사의 말씀은 그저 통발과 그물에 불과할 뿐이니, 이를 의지하여 진리에 들어가는 문으로 삼는다. 그리하여 마침내 확연하고 분명히 깨달아 알게 되면 그 바른 자체(正體) 위에 모든 것이 원만하게 구비된다. 그러니 불조의 말씀을 모두 그림자나 메아리 정도의 일로 보아서, 결코 받들어서는 안 된다.
요즘 들어 참선하는 많은 납자들이 종지(宗旨)가 되는 법(法)에 근본하지 않고 그저 언구(言句)만을 지니고 간택할 뿐이다. 그리하여 가까움과 멂을 논하고 얻음과 잃음을 분별하며, 뜬 물거품 위에서 참다운 견해라고 생각하여 이를 과시한다. 꽤 많은 공안을 잘도 가려내어 제방에 있는 5가 종파(五家宗派)의 말을 묻고 해석하나, 한결같이 알음알이[情識]에 빠져 그 자체[正體]를 미혹하였으니, 진실로 가련하다.
참되고 바른 종사가 있어 눈썹을 아끼지 않고 위에서와 같은 잘못된 지견을 떠나라고 권하면 도리어 반대로 "마음 씀이 뒤바뀌었다"고 하면서, 단련받기를 그만두고 더더욱 가시덤불 속으로 들어간다. 이른바, 작가선지식을 만나지 못하면 늙어지도록 쓸모없는 물건이 될 뿐이라고 하는 것이니, 요점을 살피는 데에서는 한 수도 쓰지 못한다. 살 속에 피가 흐르는 사람이라면 귀결점을 알겠지만, 혹 주저하는 경우에는 붙잡을 곳[鼻頭]을 잃으리라.
7 불(七佛) 이전에는 과연 어떠했는가? 곧바로 모름지기 빡빡하고 긴밀하게 머리의 피부에 달라붙어서 분명하고 역력하게 이 한 덩이의 심전지(心田地)를 알아차려 오래도록 안오 면밀하였다. 이리하여 스스로 알고 물러나서 마침내는 "나는 견처가 있으며, 나에겐 오묘한 이해가 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가운데 실낱만큼이라도 주관이니 객관이니 하는 견해의 가시가 있게 되면 그 무게가 태산보다 더하기 때문이어서, 이런 것은 옛부터 결코 서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석가모니불께서는 연등부처님에게 무법(無法)으로써 수기(受記)를 얻으셨으며, 노(盧)씨는 황매산에서 '본래 한 물건도 없다'는 말로써 의발을 직접 받으셨다. 생사 순간에 이르러서 조금이라도 짊어진 것이 있었다하면 곧 신령한 거북이가 꼬리자국을 남기는 격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청정하다느니 더럽다느니 하는 극단을 모두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마음이 있느니 없느니, 견처가 있느니 없느니 하는 것들은 마치 벌겋게 타는 화로에 한 점의 눈[雪]을 떨어트리는 것과 같아서, 하루 종일 철두철미 쇄쇄낙락하게 하여 모든 성인도 길을 함께 하지 않는 이런 곳에 노닐면서, 당장에 순숙하게 하여 배울 것이 끊어지고 아무 하릴없으며 천만 사람도 잡아둘 수 없는 진실한 도인을 자연히 성취한 것이다.
조주스님은 납승을 보기만 하면 앞으로 가까이 오라고 불러서, 그 스님이 앞으로 가까이 가면 그냥 가라고 했다. 얼마간 힘을 덜어 알아차린다면 십분 성취한 것이겠지만, 이러쿵저러쿵 한다면 지견(知見)만 생기리라.
옛사람은 큰 자비를 갖추고 있었으니, 사람들이 정면에서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을 보면 바르게 방편을 열어 들어갈 길을 열어 주었다.
예컨대 고제(古提)스님의 경우, 납자들이 오는 것을 보기만 하면 대뜸 "물러가거라! 물러가! 너에게는 불성이 없다"라고 하였는데 후에 오직 앙산(仰山)스님이 나와서 그 분명한 소식을 알았다. 그러니 요즈음의 경우, 이것을 끄집어내서 참학하는 자들에게 묻기만 하면 열이면 열 모두 멍하니 그만 그 말 속에서 죽어버린다. 그러므로 단박에 깨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니, 만약 산 경계[活處]에 의거한다면 어떻게 토로해 내겠는가. 남의 말 따르는 것을 무엇보다 조심해야 된다.
영운스님은 복사꽃을 보고 깨달아 게송을 지었고, 현사스님은 "그는 아직 철저히 깨닫지 못했다"고 하였으며, 어떤 노파가 오대산 가는 길을 가르쳐 주자, 조주스님은 되돌아와서 노파를 감파했다고 하였다. 총림에서는 이것을 갖가지로 따지면서 시끄럽게 떠들 뿐이니, 이야말로 옛사람들이 말한 '문을 두드리는 기왓조각'과 같다 한 것을 전혀 몰랐다 하리라.
문에 들어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므로, 문에 들어갔으면 그만이지 문 두드리는 기왓조각을 대단한 것인 양 집착하겠는가. 명확한 뜻은 곧바로 드러내야 한다고 하였으니, 그 귀결점이 어느 곳에 있느냐? 도리를 알겠는가? 털끝만큼이라도 어긋나면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가 나느니라.
무성한 풀숲에 들어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손 가는 대로 풀을 집어내 오더라도 그것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데야 어찌하랴. 참으로 착안이 바르고 손놀림이 정확하다면 한 줄기의 풀로도 장육금신(丈六金身)을 만들게 할 수 있으니, 더구나 그 밖의 변화야 말해 무엇하겠느냐.
근본이 이미 밝아지고 나면 일상생활 속에서 밭을 매고 땅을 개간하며 봄에 씨 뿌리고 가을에 추수하는 것들이 모두가 협산(夾山) 늙은이와 직접 화답(和答)하는 것이며, 지장(地藏)스님이 연설하던 일과 똑같은 범행(梵行)이 될 것이다. 오래도록 익히고 실천하여 비로봉에 높이 걸터 앉아 이 정법(正法)을 전하니, 어찌 현묘하지 않으랴!
40. 서울을 떠나는 자문거사(自聞居士)를 전송하면서
어떤 길로 왔느냐? 만일 배를 타면 물의 형세를 알아서, 노를 들어 물결을 갈랐을 것인데, 무엇 때문에 간곡하게 애써 알려주겠는가. 자신이 한 번 휘저으면 그만인 것을. 그렇기 때문에 바람 같고 번개 같아서 따졌다 하면 천리만리 동떨어지니, 빼어난 부류만 제접할 뿐 어리석은 놈과는 상대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해에 낚시를 드리우는 것은 사나운 용을 낚으려 함이며, 격식을 벗어난 현묘한 기틀은 선지식을 찾기 위함이다.
이 종지를 통달하고 나면 일체의 세간과 출세간이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본다. 낱낱이 처음부터 끝까지 꿰뚫어 문득 몸과 목숨을 버릴 줄 알고 천차만별한 경계에서도 편안하여 요동하지 않는다. 설사 바람 같은 칼날을 만난다 해도 꿈쩍도 안하며, 가령 독약을 마신다 해도 몹시 한가롭고도 한가롭다. 만일 실천하며 기르지 않는다면 어떻게 대명천지에 해와 달이 걸리듯 크게 통달하여 자유롭게 출몰할 수 있으랴. 이 경지는 원래 앞뒤가 없으니, 곧바로 향상의 관문을 열어 제쳐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