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退翁 性徹大禪師의 生涯와 思想 (퇴옹 성철대선사의 생애와 사상)
本地風光(본지풍광)과 臨濟禪風(임제선풍)
("Pon-Ji-Pung-Kwang" & Its relation to Imchae-son)
辛 奎 卓 (Shin, Gyoo Tag) 논평·105 / 답변·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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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본지풍광]의 선사상
1) 본지풍광의 구성
{본지풍광}의 서지적인 내용을 먼저 말해두고자 한다. 이 책은 1982년 12월 불광출판부의 발행으로 圓澤(원택스님)을 엮은이로, 제목을 [性徹禪師法語集(성철선사법어집)山이 물 위로 간다] 本地風光(본지풍광)로 첫 선을 보였다. 이 책은 菊判(국판)으로 본문 514쪽, 색인 23쪽, 법계도 3쪽으로 되어 있다.
그 뒤 이 책은 다시 백련선서간행회에서 [성철스님 법어집] 2집3권에 편입하여 本地風光 (성철, 장경각, 1990년)으로 또다시 간행하기도 했다.
이 둘은 판형은 물론 내용도 동일하다. 다만 초판에서는 '엮은이 圓澤'으로 되어 있었으나, '성철스님 법어집'에서는 '발행인 여무의'로 바뀐 점은 서로 다르다.
이렇게 바뀐 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엮은이 圓澤'이 온당하다고 하겠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이 책을 읽어 본 이들은 알겠지만, 본문에
성철스님의 동작 등(예를 들면 '良久(양구)', '便下座(편하좌)' 등의 지문)을 표기한 부분이 나오므로 성철스님 자신이 쓴 것이 아니고, 성철스님의 설법을 들은 사람이 필록했고, 그것을 원택스님이 편집 발행한 것 같다.
한편 이 책이 '어록'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성철스님이 직접 쓴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앞뒤가 맞는다. 선어록은 모두 설법을 들었던 제자들이 들었던 내용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본지풍광]의 특징 중의 하나는, 설법을 한 당사자[성철스님]가 시자[원택스님]가 모아서 출판한 책을 생전에 확인한 점이다.
이 점은 [돈오입도요문]과 같다. 따라서 본지풍광은 그 어떤 선어록보다도 당사자의 생각과 어투를 여실히 문자로 기록 정착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본지풍광을 통하여 성철스님의 선사상을 헤아려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필록자의 선사상도 이 어록에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좀더 시간을 갖고 보다 면밀하게 검토해야만 할 과제 중의 하나이다. 다만 현단계에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본지풍광 속에는 성철스님의 선사상과 성철스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사상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책의 이름으로 쓰인 '本地風光(본지풍광)'의 뜻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본지풍광'이라는 용어는 '본래의 모습'이라는 뜻으로 '本來面目(본래면목)'과 더불어 송대 이후의 선서에 많이 쓰인다. 그 예로 우리는 [벽암록] 37 (백련선서간행회, 201∼202쪽)을 들 수 있다.
어떤 스님이 황룡 회당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금강경] 4구게입니까?"
"(4구게가 별도로 존재한다고 인정하는 네 자신의) 질문이 벌써 잘못 되었는데도 모르는군."
설두스님은 이 경전의 핵심을 들어 말하기를 "만일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간직하려 한다면 (그 간직할 것은) 바로 여러분의 本地風光이며 本來面目이다."
조사의 법령에 따라서 시행한다면 本地風光과 本來面目도 세 동강이 내야 하며 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12분교가 어떻다는 둥 꾸며댈 필요가 없다. '이 자리'는 설령 만 가지로 헤아린다 해도 관계가 없다.
이곳 말고도 [벽암록]에는 '本地風光'이라는 말이 많이 보인다. 이 용어가 선의 용어로 정착된 것은 송대이지만, 누구나 간직한 본래의 모습을 강조하는 선 정신은 그 연원이 육조단경에서도 보이고, 특히 [임제록]에서 '自己'라는 용어를 통해서 선명히 대두된다. 뿐만 아니라 이 '本地'라는 말은 禪에서만이 아니라 敎에서도 쓰고 있다.
즉, 천태 지자스님의 '本迹說(본적설)'이 그것이다. 천태스님은 법화경 28품을 반으로 나누어 전반부를 '迹門(적문)', 후반부를 '本門(본문)'에 각각 배당시켜 석가모니의 一大事因緣(일대사인연)의 본래의 모습은 '本門'에서 완전하게 드러난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久遠實成(구원실성) 釋迦牟尼佛(석가모니불)'이 本佛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본지풍광]이라는 서명을 통하여 이 책의 전반에 깔려있는 사상이 '본래의 모습'을 중요시 여기고 있음을 암시받을 수 있다.
다음은 이 책의 구성을 보기로 한다. 이 책은 크게 '上堂法語(상당법어) (91則)'와 '落혜法語(낙혜법어)'(9則) 둘로 나뉘어 모두 100칙으로 편집되어 있다. 여기에서 '100'이라는 숫자로 이 책을 엮은 것은 아마도 碧巖錄(벽암록)이나 從容錄(종용록)의 100則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이 점은 각 법문의 구성으로 볼 때에도 가능성 짙은 추측이다. 그 한 예로 본지풍광 第5則, [普(보)]化賊賊(화적적)의 구조를 보자.
(1) 옛 조사들의 이야기를 인용하기에 앞서 성철스님 자신이 한 緖言 부분 ;
"三世諸佛∼攪亂門庭 (삼세제불∼교난문정)" (이 부분을 앞으로 [起]라고 표기)
** 위의 문장 사이의 '良久云(양구운)'은 엮은이가 성철스님이 다음 말을 하기 위하여 잠시 동안 묵묵히 있는 모습을 기록한 것임.
(2) 옛 조사들의 이야기를 인용하는 부분 ; "一日∼便出去" (일일∼편출거)
(3) 위의 (2)에 대한 성철스님의 평가 부분 ; "師云, 不是 家不聚頭" (사운, 불시 가불취두)
(4) 위의 (2)에 대한 옛 스님의 頌을 인용한 부분 ; "海印信頌日∼滿堂馨香鐵樹花" (해인신송일∼만당형향철수화)
(5) 위의 頌 (4)에 대한 성철스님의 평가 부분 ; "師云, ∼西舍暗坐(사운, ∼서사암좌)" (이상의 (2)∼(5)를 앞으로 [本文]로 표기)
(6) 이상의 전체에 대한 성철스님의 結語 부분 ; "大衆∼戴角出荒草(대중∼대각출황초)" (이 부분을 앞으로 [結(결)]로 표기한다)
(7) 성철스님이 법문을 마치고 법좌에서 내려오는 모양을 엮은이인 원택스님이 기록한 부분 ; "喝一喝, 逐下座" (갈일갈, 축하좌)
이 [普化賊賊(보화적적)] 공안은 [선문염송] 第512則에서도 나오는 것으로 그 구성은 [雪寶頌古百則(설보송고백칙)]이나 碧巖錄(벽암록) (100則)과 유사하다. 91則의 '상당법어' 뒤에 '낙혜법어' 9則을 넣어 '100則'으로 맞춘 것은 엮은이가 雪寶頌古百則이나 碧巖錄 (100則)을 염두에 둔 것 같다.
'낙혜'라는 말은 '이삭줍기'의 뜻이기 때문이다. 물론 엮은이가 이렇게 100으로 맞춘 데에는 위에서 보았듯이 '상당법어' 자체의 구조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2) 본지풍광의 사상
[본지풍광]에 담긴 선사상을 분석하기 전에 선과 언어 및 문헌의 관계를 바라보는 기존의 입장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자세한 고증은 필자의 [중국선서의 번역을 위한 문헌학적 접근](백련불교논집 제1집)으로 대신한다. 다만 여기서는 그 결론만을 말하면 언어와 문헌으로 禪旨(선지)를 오늘의 말로 해명할 수 있다는 것을 상기해 두고 싶다.
그러면 성철스님이 남긴 문헌을 검토 분석하면 스님의 생각을 알 수 있을까 ? 더구나 남의 말을 많이 인용한 [본지풍광]과 같은 책의 경우 어디까지가 스승의 생각이고 어디부터가 남의 생각인가를 구분할 수 있을까 ? 대답을 먼저 말한다면 그것은 가능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우리는' 엿장수 맘대로 ···'라는 말을 쓰기도 하고 듣기도 한다. 이 말을 내 나름대로 풀어보면, 엿 바꿔 먹기 위해 고물을 가져온 꼬마에게 엿을 얼마나 줄까는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것일 게다. '엿장수 맘대로'는 '아무런 기준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라는 의미로도 쓰이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분명한 것은 '엿장수'의 마음이 있다는 사실이다. 남들이 보면 멋대로 엿을 주는 것 같지만, 엿장수가 엿을 주는 데는 반드시 엿장수의 기준이 있다. 가져온 고물의 시가를 매기는 엿장수의 안목이 그 뒷면에 들어 있다.
하다못해 고물을 들고 온 꼬마가 어여쁜 과부의 아들일 때, 마음을 그 어미에 두고 꼬마에게 엿을 많이 줄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엿장수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다는 것이다. 멋대로 엿을 팔다가는 밑천을 다 까먹어 더 이상 엿장수 짓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성철스님의 어떤 마음으로 이른바 엿의 크기를 정했을까 ?
본래대로 말하면 성철스님은 중국과 우리나라 과거 스님들의 말씀을 많이 인용하는데,
첫째 그것을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
둘째 왜 자신의 깨달음을 직접 말하지 않고 남의 말을 인용했을까?
먼저 두 번째의 질문에 대해 답해보자. 본지풍광처럼 남의 말을 모아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하는 것은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정착되었던 전통적인 저술 방식의 하나이다. 중국은 그만 두고라도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자.
고려 혜심(1178∼1234) 스님의 [선문염송]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 책은 중국의 역대 선사들의 깨달음에 대한 기연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이 책을 편집한 혜심스님의 사상을 보조 지눌스님과 연결짓는 이도 있지만,
[선문염송]을 편집하는 과정에 결과적으로 나타난 혜심스님의 사상은, 남종선의 돈오무심과 밀접하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혜심스님은 頓悟無心(돈오무심)과 관련된 일화를 중심적으로 채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은 태고 보우스님과 함께 당시 임제선풍을 드날리던 백운(1298∼1365) 스님의 [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다. 이책은 고려 공민왕 21년(1372)에 鑄字本(주자본)으로 출판되었고, 뒤에 목판본으로도 출판되었다.
주자본은 하권의 일부만 전하지만, 목판본은 온전하게 전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경덕전등록]과 [오등회원] 등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만을 추려서 모아놓은 것이다.
편자인 백운스님의 생각은 표면적으로는 나타나지 않지만, 무엇을 선택했는가를 통해서 역으로 백운스님의 안목을 알 수 있다.
성철스님의 본지풍광도 위와 같은 맥락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그 많은 선사들의 어록 중에서 누구의 어느 말을 선택하여 모아놓는가를 통해 우리는 그 편자의 사상을 역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면
첫째의 질문인 성철스님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중국의 선서를 발췌 요약했을까 ? 이에 대해서는 크게 다음의 세 조목을 들 수 있다.
(1) 옛 조사들의 언구를 의심하여 실답게 참구하여 확철대오할 것을 강조.
이 점은 본지풍광 전체에 흐르는 사상이다. 이 책에서는 역대 조사들이 남긴 話頭(화두)와 公案(공안)을 많이 인용하며 이것들을 끊임없이 의심하여 實參(실참)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57칙의 趙州大死(조주대사)도 그런 예 중의 하나이다. 이 칙은 크게 [起(기)], [本文], [結(결)] 3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첫째는 [起]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성철선사의 말이고,
다음 [본문]은 投子와 趙州(조주)와의 문답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雪竇(설두)스님 등의 頌이 붙어있다. 이 [본문] 부분은 선문염송 277칙에서 인용한 것이다.
끝으로 세 번째는 [結]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성철스님 자신의 말이다.
따라서 본지풍광 57칙에서 성철스님의 생각이 일차적으로 드러나는 곳은 [起]와 [結] 부분이다. [起]에서 강조되는 것은 '不疑言句 是爲大病(불의언구 시위대병)'이다. 그리고 [結]에서 강조되는 것은 '參須實參(참수실참)'과 '悟須實悟(오수실오)'이다.
이런 사상은 본지풍광의 제1칙 [德山托鉢(덕산탁발)]에서도 잘 드러난다. 거기에서 성철스님은 평하기를, "이 공안은 짐독이나 비상과 같아서 이렇거나 저렇거나 상신실명할 것이니, 부질없는 알음알이로 조사의 뜻을 묻어버리지 말라. ··· 오직 최후의 굳센 관문을 부수어 확철히 크게 깨쳐야만 비로소 옛 사람의 입각처를 알게 될 것이다 (본지풍광 14쪽)"라고 한다.
이렇게 '확철대오'를 강조하는 말은 제7칙 [洞山供眞(동산공진)]에서도 나온다. "여기에서 확철히 깨쳐 남음이 없으면 오늘 영산의 본래면목을 밝게 알 뿐만 아니라 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역대의 모든 조사의 本來面目도 모두 알게 될 것이나, 그렇지 못하면 다시 둘째의 가시덤불이 있다 (본지풍광 45쪽)."
실참하지 않고 그냥 부처나 조사의 말을 무반성적으로 접수하는 것에 대한 비판은 역대 조사들의 공통된 입장이고 성철선사도 이런 맥락에 서 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 속에서 반조되지 않는 일체의 언구를 배척한다. "말을 따르는 자는 죽고 글귀에 머무는 자는 迷하다 (본지풍광 89쪽)"고 단호하게 거부한다.
다음의 일화를 보기로 하자.
"師示衆云, 納僧家直須坐斷報化佛頭始得. 問, 坐斷報化佛頭, 是什마人. 師云, 非니境界."
"사시중운, 납승가직수좌단보화불두시득. 문, 좌단보화불두, 시십마인. 사운, 비니경계
이 문장을 흔히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스님께서 대중에 말씀하셨다.
"남자라면 보신불과 화신불의 머리에 눌러앉아야 한다."
한 스님이 물었다.
"보신불과 화신불의 머리에 그대로 눌러앉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대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여기에서 '坐斷(좌단)'을 '눌러앉다'라고 번역한 셈이다. 이것은 아마도 駒澤大學(구택대학)에서 편찬한 [선학대사전]을 그대로 신용한 듯하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번역이다. 그러면 '坐斷'이란 무슨 뜻인가?
'坐斷'은 당나라의 선사들의 어록에 많이 나타나는 용어로 '斷'은 강조를 나타내는 조어이다. '塞斷(새단)'의 '斷'과 마찬가지 용법이다. 그러니 결국 의미는 '坐'에 있다. 그러면 '坐'란 무슨 뜻인가? [경적찬길]에서는 [釋名(석명)]에서 용례를 수집하여 '挫' 즉 '깨트리다' '꺾다'는 의미라고 한다.
한편 당나라 시대에 쓰인 문헌에서는 '挫斷(좌단)'이 많이 쓰이는 것으로 보아 '坐'와 '挫'는 통용되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坐斷(좌단)'은 '깨트리다', '꺾다', '부수다'는 뜻이다. 또 원문의 '報化佛頭(보화불두)'의 '頭'는 그 용법이 오늘날의 白話에도 이어진다.
[中韓辭典](고려대학민족문화연구소편, 1989년)에서도 설명하듯이 '頭'는 명사가 아니라 접미사로써 명사의 뒤에 쓰이거나, 존경의 뜻을 품고 있는 호칭이다. 그러므로 '報化佛頭'는 '보신이나 화신 부처님' 정도의 어미이다.
따라서 위의 문장을 제대로 번역한다면 선을 수행하는 이라면 보신 부처님이나 화신 부처님을 깨부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때의 '直須(직수)∼始得(시득)'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숙어이다. 즉 보신과 화신 부처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툭하면 부처가 어떠니 저떠니 깨달음이 이러니 저러니 하는 당시의 풍조를 그 좋은 말솜씨로 해 붙여대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부처나 조사에 얽매이는 것에 대해 비판은 성철선사의 본지풍광 제33칙 [趙州場花(조주장화)]의 "부처는 중생의 원수요, 조사는 보살의 원수라"는 말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2) 남의 언구에 매이지 않는 자기 자신의 체험을 중시.
이 사상은 조계선의 핵심이자 성철선의 특징으로, 본지풍광의 29칙 [趙州喫粥(끽죽)]에서 잘 드러난다. 사실 조주선사를 성철스님 만큼 많이 인용하는 선사도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29칙의 [結]에 "대중들이여, 말을 찾는 자는 죽고 글귀를 쫓는 자는 잃어버린다. 나아가면 은산철벽이요, 물러서면 만 길의 깊은 구덩이다. ···, 透脫(투탈)한 한마디를 어떻게 말하려는 가?"
위의 [結]은 "바리때를 씻어라"는 화두에 대해 세간에서 상투적으로 해석하는 것에 대한 비판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비판은 선문염송 제427칙의 대혜종고스님의 송에서도 보인다.
즉 "지금 제방에서 눈먼 한무리들이 흔히 다 바리때를 씻는 法門으로 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성철선사는 "將錯就錯(장착취착), 叩氷求火(고빙구화: 점점 더 잘못을 더해 가는군. 얼음을 마찰시켜 불을 얻으려는 군 ; 필자 번역)"라고 착어를 하고 있다.
이것은 조사들의 옛 기연을 상투적으로 이해하는 것에 대한 비판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비판은 본지풍광에 일관되는 사상으로 이 역시 조계선풍의 큰 갈래 중의 하나이다. 그 예를 보기로 하자.
'口脣皮禪(구순피선) 또는 口頭禪(구두선)'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는 趙州(조주; 778∼897)스님은 말을 참 잘 하신다. 그러나 기존의 번역이 이 말 잘하는 조주스님의 레토릭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교훈적이고 모법답안으로 선을 설명하지만 조주스님은 그런 것은 딱 질색이다. 조주록 [선림고경총서 18]의 다음 대회를 보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道입니까?" "담너머에 있다."
"그것을 물은 것이 아닙니다." "무슨 도를 물었느냐?"
"大道 말입니다." "큰 길은 장안으로 통한다."
도가 무슨 특별한 것인 양 잔뜩 기대를 걸고 큰스님에게 묻는 이 객승의 모습은 쉽게 짐작이 간다. 그러나 조주는 평상심이 도리는 상투적인 말로 대답하지 않는다.
그는 항상 자신의 언어로 밀도 있게 표현하고 주체적으로 언어를 사용한다. 不立不字(불립문자)라고 하여 언어의 뒤편으로 숨는 일은 하지 않는다.
조주스님이 언젠가는 손을 오므리며 말씀하셨다.
"나는 이것을 주먹이라고 부르는데, 여러분은 뭐라고 부르는가?"
한 스님이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어찌 외적인 현상[境]을 가지고 사람을 지도합니까?"
조주스님이 대답하셨다.
"나는 외적인 현상으로 남을 지도하지 않는다. 내가 만약 외적인 현상으로 그대를 지도하면 그대를 (외적인 현상 속에 완전히) 매몰시킬 것이다."
그 스님이 말했다. "그럼 이 손은 무엇입니까?" 조주스님은 작별인사를 하였다.
나는 이것을 주먹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너는 너의 언어로 이것에 이름을 붙여보라는 것이다. 그것에 자기의 언어로 이름을 붙임으로써 비로소 완전히 자기 것이 되는 것이다. 그는 수행자마다
각자 스스로 주체적으로 체험할 것과 그 체험을 자신의 언어로 분명하게 표현할 것을 요구한다.
덕산스님의 棒(봉)에 비견하여 조주스님의 선은 口脣皮禪(구순피선) 또는 口頭禪이라 평하기도 한다. 이 중에서도 특히 조주스님의 無字 공안은 종문 제1의 공안처럼 보편화되어 있다. 이 공안에 대해 결론을 먼저 말하면 이 무자 공안은 조주선의 이해에 커다란 방해물이다.
조주 이외의 후세 사람들이 무자 공안과 조주선을 결부시킨 것으로 여기에는 이것을 공안으로 정착시킨 송대 사람들의 책임이 제일 크다.
'유'보다는 '무'를 강조하고, 긍정적인 표현보다는 부정적인 표현에 가치를 두는 이들의 편견이 낳은 잘못된 결과이다. 조주선은 결코 무자로 대변될 수 없다.
송대의 선은 당대의 선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돈오무심'으로 일관되던 당대의 선사상이 송대로 내려와서는 '무심'이 아니라 '유심'으로 전도된다. 한마디로 말해서 선 냄새가 너무나도 풀풀 풍긴다.
걸핏하면 '도', '깨달음', '열반', '불법' 등을 들먹인다. 자취를 떨어버리지 못하는 한 불교에서 가장 금물로 여기는 고정된 틀에 빠지고 만다. 그래서는 禪이 되기에 앞서 불교가 되지 못한다. 그러면 조주선이 무자 화두로 대변되게 된 유래를 알아보자.
어떤 수행자가 물었다. "개에게도 부자가 가지고 있는 성품이 잠재되어 있습니까?"
조주스님이 대답했다. "없다." 그 수행자는 다시 물었다.
"위로는 부처님으로부터 저 아래로는 개미에 이르기까지 모두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개에게 없다고 하십니까?"
조주스님이 대답했다. "개에게 업식의 성품이 있기 때문이다."_조주록 (선림고경총서18) 71쪽
이상의 대화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전반부는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는 이야기이고, 후반부는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대답한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송대에 들어서 조주선을 운운하는 이들은 전반부만을 즐겨 인용하고, 후반부는 아예 거론하지도 않는다.
여기에 '무'를 중히 여기고 '유'를 가볍게 보려는 잘못된 생각이 끼어드는 것이다. 이런 편파적인 생각 때문에 개에게도 불성이 있다는 조주스님의 다음의 이야기는 안중에도 안 들어온다.
한 스님이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조주스님이 대답했다. "집집마다 문 앞은 장안으로 통한다."_조주록 (선림고경총서18) 131쪽
즉, 모든 길은 다 서울가는 길로 이어지듯이 모든 중생은 불성이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개에게 불성이 '있다'는 대답과 '없다'는 대답이 짝이 되어 뒷날 [종용록] 제18칙에 정착된다.
어떤 승이 조주스님에게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조주스님이 대답했다. "있다."
승이 다시 물었다. "불성이 있는데 왜 축생으로 태어났습니까?"
조주가 대답했다. "그가 알면서도 일부러 범했기 때문이다."_종용록 (선림고경총서32) 117∼118쪽
즉 개의 불성에 대해 조주는 '有'라고 대답한 적도 있고, '無'라고 대답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無'만을 편파적으로 드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
[주역]이나 [노자]의 영향인지는 모르지만 '無'에 대한 생각이 중국에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이런 문화적인 흐름 속에서 '有'보다 '無'를 좋아하는 심정은 이해가 간다.
이렇게 '無'를 좋아하는 이들에 의하면 조주스님이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고 한 말이 겉으로 보기에는 모순인 듯하여 거기에 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조주스님의 '무'를 '동양적인 무'이니 '절대적인 무'이니 말들 한다.
그러나 '절대'라는 관념이 고개를 드는 순간 조주선과는 멀어진다. 조주스님이 일평생 일관되게 부수려고 했던 것이 바로 이 '절대'라는 관념이다. 이런 '절대'를 고집한다면 조주스님의 표현을 빌면 '반드시 그대를 들러붙게 할 곳이 있다[大有著니處在(대유저니처재)]'라는 말이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그리고 '동양적'이라는 말도 이해하기 어렵다. 이처럼 애매모호한 말도 드물 것이다.
없으면 없는 것이지 '동양적인 없음'이 따로 있고 '서양적인 없음'이 따로 있는가 ?
조주스님은 이런 느슨하고 어정쩡한 표현은 쓰지 않는다. 성철스님의 경우도 말할 것도 없다. 스님은 '유'와 '무'를 둘 다 모두 인용한다. 이런 성철스님의 안목은 본지풍광 제56칙, [百丈野狐(백장야호)]에서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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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집_2 (2/3) 퇴옹 성철대선사의 생애와 사상 - ③본지풍광과 임제선풍_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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