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반야심경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수선님 2025. 12. 7. 13:30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대승경전의 대표적 경전의 하나인 <금강경(金剛經)>은 위대한 역경승 구마라습(鳩摩羅什, 344~413)이 심혈을 기울여 한역한 경전이다.

따라서 글의 내용이나 번역문의 유려한 문장에서나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는 경전이다.

따라서 많은 선지식들이 이 <금강경>에 대해 평도 하고 주석도 했는데, 그 중에서도 손꼽힐 만한 글을 쓴 다섯 분의 선지식, 즉 육조 혜능(慧能)과 야보(冶父), 종경(宗鏡), 규봉(圭峰) 스님, 그리고 부대사(傅大士), 이렇게 다섯 분들께서 각각 견해(주석)를 밝힌 글만을 모은 책이 <금강오가해>이다.

즉, <금강경오가해>란 <금강경>에 대한 규봉(圭峰)의 찬요(簒要)와 육조(六祖)의 해의(解義)와 부대사(傅大士)의 제강송(提綱頌), 야보(冶父)의 송(頌), 종경(宗鏡)의 제강(提鋼)을 합친 책(2권 2책)을 말한다. 다시 정리를 하면 아래와 같다.

① 당 규봉 종밀(圭峰宗密. 780~841)의 금강반야경소론찬요(金剛般若經疏論纂要),

② 일명 구결(口訣)로 불리는 당 혜능(慧能. 638~713) 대사의 금강반야바라밀다경해의(金剛般若波羅蜜多經解義),

③ 양(梁) 부대사(傅大士. 497~570)의 금강경제강송(金剛經提綱頌),

④ 송(宋) 야보 도천(冶父道川)의 착어(着語)와 송(頌)인 금강경주(金剛經註),

⑤ 송(宋) 예장 종경(豫章宗鏡)의 금강경제강(金剛經提綱).

그리고 <금강경오가해>에 포함된 글들의 특징을 보면 아래와 같다.

• 규봉의 찬요(纂要)가 <금강경>의 본문에 대해 대체적인 개요를 짚어준다. 규봉 종밀은 화엄종에 속한 고승이지만 선에도 밝았으며 선과 교가 하나임을 주장한 사람으로서, 그의 <찬요>는 <금강경>에 대한 인도 유식학파의 논리를 계승하고, 인도의 전통적인 사상을 받아들여 중국의 화엄학과 선을 접속시킨 입장에 있었다.

• 육조의 해의(解義)가 <금강경>의 말씀의 뜻을 해석해주는데,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스님의 해설이라기에는 ‘해의’ 그 자체가 <금강경>의 논서로서 가히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 부대사(傅大士, 497~569)는 제강송(提綱頌)을 달았는데, 삼성(변계소집성, 의타기성, 원성실성)이라는 유식론적 입장에서 <금강경>을 노래했다. 부대사가 생존했던 중국의 남북조시대에는 대승불교의 공사상(空思想)을 노장학(老莊學)의 입장에서 해석하던 시대이다. 부대사의 송은 그 시대의 선의 풍조를 풍기고 있으며, 선의 측면에서 <금강경>을 보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문헌이다.

부대사는 양(梁)나라에서 진(陳)나라에 걸쳐 살았던 거사(居士)이다. 존칭으로 부대사라고 하는데, 이때의 대사(大士)는 보살의 별칭이다. 절강성(浙江省)의 동양(東陽) 출신으로 성은 부(傅), 이름은 흡(翕), 자는 현풍(玄風), 호는 선혜(善慧)라고 했다. 쌍림대사(雙林大士) 또는 동양대사(東陽大士)라고도 했다.

16세에 혼인해 두 아들을 두었으나, 24세에 서역에서 온 숭두타(嵩頭陀) 스님을 만나 가르침을 받고 동양(東陽)의 송산(松山)에 은거해 수행했다. 534년에 입궐해 양무제(梁武帝)에게 설법하고, 칙명으로 정림사(定林寺)에 머무르니 학인들이 운집했다.

540년에 송산에 쌍림사(雙林寺)를 창건하고 머물면서 후학들을 지도했다. <금강경오가해>의 게송을 보면 부대사는 선(禪)과 유식(唯識)의 대가인데, 유식을 전공한 이가 아니면 해석을 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부대사의 게송은 번역만 있고 해석을 찾아보기 어렵다.

• <금강경오가해>에 실려 있는 야보송(冶父頌)은 12세기 중국 송나라 시대에 야보 도천(冶父道川) 선사가 <금강경>을 읽고 착어(着語)와 송(頌)을 한 것이다. 야보의 송(頌)은 설명 대신 착어(着語 : 선가에서 공안에 붙이는 짤막한 평)와 선시로 대신하는데, 야부 도천 선사의 선시는 음미할 만하다. 다음은 야보 선사의 선시이다.

천척사륜직하수(千尺絲綸直下垂) ― 천길 낚시 줄 곧 바로 내렸는데

일파재동만파수(一波纔動萬波隨) ― 한 파도 일자 만 파도 출렁인다.

야정수한어부식(夜靜水寒魚不食) ― 밤 깊어 물도 찬데 고기는 물지 않고

만선공재월명귀9滿船空載月明歸) ― 달빛만 가득 싣고 빈 배만 돌아가네.

이 게송은 야보 도천 선사의 <금강경오가해>에 있는 ‘지견부생분(知見不生分)’의 게송이다. 야부 도천 선사 게송 중 백미송(白眉頌)이다. 그리하여 중국과 한국 큰 스님들 법문에 등장하는 단골 메뉴 게송이다. 그 만큼 널리 애송된다.

선시(禪詩)는 선사의 가풍(宗風), 도격(道格)을 따라 어떤 것은 미(美)하고, 어떤 것은 청 청(淸)하며, 어떤 것은 외(巍)하고, 어떤 것은 고(孤)하며, 또는 진9眞)하고, 순(純)하며, 괴(怪)한 것도 있다. 나름대로의 격조와 품격을 지니고 있다.

이 게송은 <금강경> 32분 중 31분 ‘지견불생분(知見不生分)’이다. 지견(知見)은 중생견(衆生見)의 사견(四見)을 말한다. 아견(我見)⋅인견(人見)⋅중생견(衆生見)⋅수자견(壽者見)이 사견이다. 경(經)의 핵심은 사견을 내지 말라는 것이다.

이 게송 말구에 ‘달빛만 가득 실고 빈 배로 돌아가네’라는 구절의 뜻과 딱 부합된다. 고깃배는 고기를 싣고 가야 한다. 그런데 달빛만 가득 실고 빈 배로 간다. 거기에 깊은 뜻이 함축돼있다.

배는 가는데 어부는 보이지 않고 달빛만 가득 실고 간다. 지견(知見)을 내지 말라가 경의 뜻이다. 어부니 배니 강이니 달이니 따지면 벌써 틀린 소리다. 경의 뜻과 대비해 보면 게송의 뜻이 확 드러난다. 역시 야보 선사답다. 야보 도천의 게송은 고요한 세계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차분하고 섬세하고 독특한 이미지가 담겨져 있다.

산당정야좌무언(山堂夜靜坐無言) ― 깊은 밤 절에 말없이 앉았으니

적적요요본자연(寂寂寥寥本自然) ― 고요하고 적요함 본래 자연 그대로네.

하사서풍동림야(何事西風動林野) ― 그런데 무순 일로 서풍은 수풀을 흔드는가

일성한안려장천(一聲寒雁淚長天) ― 한 소리 기러기가 장천을 울고 가네.

지나온 세월 야보 선사 게송은 승속을 막론하고 널리 애송 됐다. 시정(詩情)이 매끄럽고 간결함이 심산 속에 옹달샘 맛이라 할까, 읊으면 읊을수록 감미로운 게송이다. 이 게송은 <금강경> ‘장엄정토분(莊嚴淨土分)’의 게송이다.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以生其心)이 ‘장엄정토분’의 핵심이다. 산사의 정경과 <금강경> 핵심을 드러내는 선시로다. 야보 선사가 멋지게 읊었다.

야보 선사는 출가 전부터 법문 듣기를 좋아했다. 법회가 열린다는 소식만 들으면 멀고 가까움을 불문하고 만사를 제치고 달려가 법문을 경청했다. 그가 벼슬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문에 직무 태만 죄로 태형(笞刑)을 맞게 됐다.

형틀에 묶여서 곤장을 맞으면서도 화두 일념에 골몰했다. 그 때문에 곤장을 몇 차례 때렸는데도 별 반응이 없었다.

그러자 형을 집행하던 관리가 화를 내면서 사정을 두지 말고 치라고 호통을 쳤다. 이 말에 곤장을 때리던 형리(刑吏)가 억울하다는 듯 있는 힘을 다해 곤장을 내리쳤다.

이 순간 곤장이 부러지고 야보는 아픔을 못 이겨 소리치다가 동시에 간택한 화두를 타파하고 천지가 열리는 확철대오 크게 깨쳤다는 일화를 남겼다.

• 종경은 제강(提綱-중요한 줄거리)을 달았는데, 무상(無相 :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없음)을 골자로 경의 취지를 말했다. 즉, 종경의 <제강>도 사상적 견지에서는 야보의 저술과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 이 두 사람의 <금강경> 풀이에서 특히 주목되는 점은 교학적인 색채가 사라지고 순전히 선적인 해석을 베풀고 있다는 점이다. 다음은 예장 종경(豫章宗鏡)의 선시 「청산(靑山)」이다.

청산불묵천년병(靑山不墨千年屛) ― 청산은 먹으로 그리지 않은 천년의 병풍이요,

유수무현만고금(流水無弦萬古琴) ― 흐르는 물은 줄이 없는 만고의 거문고이어라.

천강유수천강월(千江有水千江月) ― 천 강에 물이 있으니 천 강에 달이 있음이요,

만리무운만리천(萬里無雲萬里天) ― 만 리 하늘에 구름 없으니 만 리 하늘이어라.

예장 종경의 선시 「청산(靑山)」은 산을 병풍에 물을 거문고에 비유했고, 이어서 달을 보신(報身)과 화신(化身)에, 강을 법신(法身)으로 비유하며, 비추어진 달(보신, 화신)보다는 비추어진 모습이 있는 본체인 강(법신)을 볼 것을, 그리고 하늘의 달은 또 다른 보신과 화신이고, 밝은 달을 있게 한 본체인 하늘이 진정한 법신임을 전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규봉(圭峰), 육조(六祖), 부대사(傅大士), 야보(冶父), 종경(宗鏡) 등은 전부 선사(禪師)에 해당된다. 그래서 그 설한 내용이 모두 선리(禪理)로 설명돼있기 때문에 선서(禪書)로 격상된 것이다. 이렇게 <금강경>이 선서로까지 취급받는 것은 바로 <오가해>의 선사들이 <금강경>을 선의 입장에서 간파한 때문이며, 오늘날까지 여러 불자들이 아끼는 요인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된다. 이 <오가해(五家解)>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금강경>을 조사 스님들이 여러 가지로 설명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이상과 같이 <금강경오가해>는 <금강경>에 대한 인도 유식학파의 논리적인 해석으로부터 중국 선의 형성과 완숙에 이르는 노선에 이르기까지 대표적인 주석을 의식적으로 배열한 것이라 할 수가 있다.

그런데 이상 다섯 권은 본래 별본(別本)으로 유통되고 있었던 것을 하나로 묶은 책인데, 누가 합본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조선에서는 무학(無學) 대사의 제자 함허 득통(涵虛得通, 1376~1433, 己和)이 중국에서 이미 편집돼 전해오는 <금강경오가해>를 다시 대조 교정해서 서문을 붙이고 추가 해설을 한 내용을 <금강경오가해 설의(金剛經五家解說誼)>로 보충 설명을 해 출간 대중화했으므로, <금강경오가해>는 다섯 분의 해설을 실은 것인데, 우리나라 함허 스님의 <설의(說誼)>까지 합해서 육가해(六家解)라 할 수 있다.

특히 함허의 <금강경오가해 서설>은 명문으로 알려져 있으며, 다섯 분 주석의 어려운 부분에 해석을 붙인 <금강경오가해설의>는 함허의 불교관을 유감없이 발휘한 아름다운 문체라고 한다.

함허 화상은 <금강경오가해>를 다른 판본들과 비교해서, 탈자, 중복, 뒤바뀜, 오자 등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고, 다른 책을 참고할 수 없는 경우에는 뜻에 의해 바르고 틀린 것을 판단해 정확한 교정본을 만들었다. 그리고 경문 중 중요한 부분이나 마땅히 해석이 있어야 할 곳은 집중적으로 주석을 하는 방식을 취했다. <금강경오가해>에 대해 함허 화상이 주석을 가한 곳은 <금강경> 본문과 야보와 종경의 저술에 대해서이다. 종밀⋅부흡⋅혜능 등의 주석에 대해서는 오자의 정정에 그치고 있다.

이를 <금강경오가해설의(金剛經五家解說誼)>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는데, 함허 득통의 이 <설의>가 판본으로 출간된 이래 끊임없이 간행됐다. 현재도 우리나라에서는 전통 강원인 승가대학에서 교재로 사용하고 있다.

이와 같이 고려시대 보조 지눌과 함허의 <금강경> 선양으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금강경>이 조계종의 소의경전으로 자리를 굳히는데 일조했다.

다음은 함허(涵虛) 화상의 <금강경오가해 서설>의 앞 부분이다.

유일물어차(有一物於此) ― 여기에‘이 무엇[一物]’이 있는데,

절명상관고금(絶名相貫古今) ― 이름과 모양이 없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어지고

처일진위육합(處一塵圍六合) ― 한 티끌 속에 있으면서도 사방천지를 에워싸는구나.

내함중묘(內含衆妙) ― 안으로는 온갖 오묘한 도리를 머금고,

외응군기(外應群機) ― 밖으로는 온갖 중생들의 근기에 감응하며,

주어삼재왕어만법(主於三才王於萬法) ― 하늘 땅 사람을 주관하면서 온갖 법의 왕이 되니

탕탕호기무비(蕩蕩乎其無比) ― 넓고 넓어라! 그 넓이와 비교될 것이 없고

외외호기무륜(巍巍乎其無倫) ― 높고 높아라! 그 높이에 버금갈 것이 없도다.

불왕신호(不曰神乎) ― 어찌 신령스럽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소소부앙지간(昭昭俯仰之間) ― 밝고 밝아 고개를 숙이고 드는 사이에도 있고

은은어시청지제(隱隱於視聽之際) ― 은은해 보고 듣는 가운데 언제나 있느니라.

불왕현호(不曰玄乎) ― 어찌 그윽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선천지이무기시(先天地而無其始) ― 천지보다 먼저 있되 그 시작이 없고

후천지이무기종(後天地而無其終) ― 천지보다 뒤에 있되 그 끝이 없느니라.

공야(空耶) 유야(有耶) ― 텅 빈 것이냐, 아니면 무엇이 있는 것이냐?

오미지기소이(吾未知其所以) ― 나는 아직까지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노라.

아가문(我迦文) ― 우리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득도일착자(得這一着子) ― ‘이 무엇’을 얻고 난 뒤

보관중생(普觀衆生) 동품이미(同稟而迷) ― 두루 중생들이 모두 똑같이 이를 받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리석게 살고 있음을 보시고는

탄왕기재(歎曰奇哉) ― 탄식하시기를“참으로 기이한 일이로다”라고 말씀하셨다.

향생사해붕(向生死海中) ― 생사고해를 향해

가무저선(駕無底船) ― ‘밑바닥이 없는 배[無底船]’를 타고

취무공적(吹無孔笛) ― ‘구멍이 없는 피리[無孔笛]’를 부니,

묘음동지(妙音動地) ― 오묘한 소리가 땅을 움직이고

법해만천(法海漫天) ― 온갖 법이 하늘에 가득하다.

어시롱애진성(於是聾騃盡醒) ― 이에 어리석은 사람들이 모두 다 깨어나고

고고실윤(枯槀悉潤) ― 마른 나무에 물이 올라 다 윤택해지니

대지함생(大地含生) 각득기소(各得其所) ― 대지에 사는 온갖 중생들이 저마다 분에 맞는 도리를 얻게 되었도다.

 

 

 

[출처]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작성자 초암 정만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