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절)에 관한 시모음 1)
불국사(佛國寺) /박목월
흰달빛
자하문(紫霞門)
달안개
물소리
대웅전(大雄殿)
큰보살
바람소리
솔소리
범영루(泛影樓)
뜬그림자
흐는히
젖는데
흰달빛
자하문
바람소리 물소리
白羊寺에서 /송희철
만암* 대종사 기일에
운문암에서 백양사로 내려오신
서옹* 큰스님 뵈오러
너른 절방으로 공손히 들어가
큰절 세 번 올리고
주춤 물러나 무릎 꿇고 좌정했더니
가느다란 눈가으로 흐르는 잔잔한
미소 건네며
"편히 앉으시오" 하신다.
처음 뵈었어도
백암산 청청한 솔빛 그 바람
그 향기 전신에 둘러
이미 부처이신 당신의 자비 앞에서
아, 어쩌랴
편히 앉을 수 없음을,
이 뭣고*,
평생 나 오늘까지
쌓이고 고인 번뇌와 탐욕의 물주머니
행여 당신의 법력으로 터져
아래로 흐르지 않도록
힘껏 오므리고 있으므로…….
*만암, 서옹 : 종정을 지내신 큰스님들
*이 뭣고 : 백양사 입구에 서 있는 화두
-『1994년 올해의 시』(한국문연, 1995)
서운산 청룡사 /목필균
구름을 타고 내려왔다는 청룡의 전설이
나옹화상 목탁소리로 흐르는 도량에는
대웅전 부처님 내려다보며
진흙탕에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연꽃같이 살라한다
대웅전 지붕과 공포를 수백 년 떠받친
자연목 기둥은 허술한 듯 견고하게
정진의 불심을 지켜왔는데
세월 따라 부는 바람이야 어쩌랴
전국을 돌아다니며
춤과 노래, 곡예로 살아가는 남사당패를
남루한 탁발승 발걸음으로 품어 안은
청룡사는
누구라도 마른 목축이게 하는
옥천수 같은 자비로움으로
두 손 모으게 한다
송광사에 와서 /이근배
아직도 흐르고 있느냐
조계산이 온 몸으로 끌어 안던
밤이 살 냄새를 다 씻지못하고
물소리는 저데로 치닫고만 있느냐
피가 비칠세랴
뼈가 드러날세랴
사랑은 숨죽여 안개속에 묻히더니
그 입덧은 자꾸 기어나와
국사전 뒷뜰에 부스럼같은
상사화로 피어 있구나
눈에 보이는 것은
본래 없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름이야 열번 백번
바뀐들 어떠랴
산에 오면 나도
산이 되어야 할텐데
감로탑 앞에 서면 나도
머리깍은 돌이 되어야 할텐데
왜 내겐 물소리 뿐이지
저 삐죽삐죽한 상사화들이
내 잃어버린 사랑으로 보이지
왜 나는 물소리가 되지 못하지
헛것들에 갇혀서
돌아오는 길을 잃고 있지
백담사 운(百潭寺 韻) /송수권
변산 뻘에 절인 절인 소금기 씻으러
불원천리 열여섯 시간을 달려
백담사 無今堂에 들렸더니
무금당은 비어있고 인기척은 없었다
신발짝 하나 놓이지 않은
댓돌이 그리 허전할 수 없었다
은산 철벽을 날아올라
霧山은
저 月明을 깨뜨리려
동해에 나간 것일까
댓돌을 두어 번 쾅쾅 내리치며
냇물로 내려서서 李시인, 羅시인, 나 셋이서
별이 총총한 밤 하늘에다 무슨 원 그리 깊어
견우 직녀처럼 만나
또 부질없는 돌탑 백 개를 쌓았다
절 고랑 풍경소리, 바람소리, 물소리
백 개의 못물이 푸르러 百潭을 이룬들
사람 없이 만인산을 뒤집어쓴
절집은 무에다 쓰랴
내년 여름, 만해시인학교엔 결단코 오지 않으리라.
해인사 /조병화
큰 절이나
작은 절이나
믿음은 하나
큰 집에 사나
작은 집에 사나
인간은 하나
범 어 사 /하태수
금정산 동문에 처사님 삶의 윤회
그 역경 피 눈물 굽이굽이 흘러
산자락 계곡 옹달샘에 고여지고
북문에 보살님 살아온 나날
해후 한 고통 두 눈방울 두 이슬
처사님 보살님 백팔번뇌 밤 낮 으로
오체투지(五體投地) 천배 만배
두 정강이 뼈마디 마디 어스러지니
면벽하던 법당스님 전생 업보 에게
범종소리 은은히 합장케 하고
부처님 자비 로 우리네 삶
윤회전생 거두어 가네.
불명산 화암사 /김백기
화암사 가는 길은 바위 골짜기
바위 위로 흐르는 물 아홉 구비
폭포 소리 오염된 귀 씻어주고
바위에서 떨어지는 폭포수를 따라가서
꽃비가 흩날리는 우화루에 올라서면
사백년된 극락전은
국내 유일 백제식 하앙건물 특이하네
국난시에 스스로 울렸다는
동종의 맑은 소리
우리 영혼 일깨우네
白羊寺 /정진규
羊들의 울음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羊들의 떼울음 소리 한 채 절로 잠재우는 白羊寺,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을 만큼만 편안하게 머물다 가라 하였다
덕분이었다
겨우 속울음으로 등 돌릴 수 있었다
- 정진규,『本色』(천년의시작, 2004)
칠현산 칠장사 /潤疇 목필균
쏜살같이 빠르다는 세월
천년이 흘러도 고즈넉한 칠현사 칠장사에는
얽힌 전설도, 품은 사연도, 유물도 많다
궁예가 유년기를 보내며 활쏘기를 했다는 활터
도적 일곱 명에게 지성으로 가르침을 주어
현인이 되게 했다는 해소국사
왕자로 태어난 것이 죄라고 어린나이에 죽은
영창대군의 극락왕생을 빌어주었다는 인목대비
병해대사와 임꺽정에 얽힌 스승과 제자 이야기
박문수의 장원급제를 도왔다는 나한전 꿈 이야기
일제강점기 독한 쇠 공출을 면한 당간지주까지
그 많은 이야기 다 품은 부처님들
대웅전에서, 명부전에서, 극락전에서
극락왕생 하는 길은
죄업을 닦으며, 자비로 이승을 사는 거라고
진리의 법문을 늘 그 자리에서 전하고 있다
望海寺 /정군수
서해가 흐르다 흐르다
물거품도 걸러내고
뜬구름 그림자도 가져가고
부처님의 영롱한 빛깔만 남아
큰 별자리 다 버리고
썰물 때 바닷새 쉬어가는 그곳
잠든 바닷소리로 남는다
징게 맹경들판 달리다 달리다
쭉정이도 걸러내고
고목 썩은 가지도 가져가고
진묵대사의 법의장삼 먹물만 남아
마른자리 논 다 버리고
새참 때 모여드는 그곳
달려온 들판의 숨소리로 남는다
바다를 본다 보아
천년 전에도 바다였을 그 바다를
법당에 드신 스님의 신발 모아 놓고
반짝이는 부처로 본다
부석사 /박태강
하늘이 부서지고 비가 쏟아지며
천둥 번개에
바위와 돌이 날아
악한들이 스스로 놀라
먼곳으로 자취를 감춘 후
봉황산 기슭에 터잡은 부석사
양지바른 소백산을
뜰안에 보듬고
천혜의 요지요 반도의 중심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하신
의상 대사
지금도 그 흔적
살아계셔
수많은 중생에게 참을 깨우친다.
개심사 /변종환
길 잃어
휘휘 산길
감돌아 다시 찾아가는
개심사
미리 기별했건만
어디론가
가버린 주지스님 대신
요사채 창문
격자무늬 창살위로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가을볕
모나면
모난 대로
굽으면 굽은 대로
저 혼자 정정한 해동 솔 같이
나중에 나 쓰일 자리
하나는
있으리라 믿으며
눈 시린
푸른 하늘 아래서
탑돌이를 했다.
천년 고찰 갑사 /初月 윤갑수
老松이 파란 하늘 쓰고
蒼空을 감아 그늘 만들고
千年寺刹 甲寺를 지켜온 너
나뭇잎 새로 햇살 뿌리는
태양도 歎服한 鷄龍山에
그대 발길 다다르니 솔개의
눈이 되어 숲속을 헤맨다.
가파른 길 다듬듯 마음에
간직한 그대 故鄕의 숨결
저 하늘 끝 아래
깊은 골짜기마다 너울지니
하얗게 핀 들국화 香氣
코끝에 바람에 살랑인다.
개심사 /김사이
개심사에 갔다
모든 사람이 마음먹기에 따라 영생을 받을 수 있는
예수가 태어난 날에 갔다
단아하고 소박하게 들어앉은 개심사
고장 난 마음을 수리해준다는 뜻일까
마음을 열게 해준다는 뜻일까
고요하고 적막한 긴 연못 입구
커다란 고사목 겨드랑이에서 작은 나무가 자라고 있다
줄기를 뻗어 바람결에 노니는 것처럼 하늘거린다
어느 홀씨 하나 날아와 안식처로 삼았나 보다
고사한 나무는 모든 영양분을 거기에 모았나 보다
몇 가닥 가지들이 싱싱하게 커가고
내 몸 가랭이나 입으로 어느 씨앗이 뿌리를 내린다면
죽은 내 몸뚱이는 그 씨앗 자연스레 받을 수 있을까
구천을 떠도는 내 영혼이 고사목처럼 썩어가는 살덩이에
마른 피 한 방울이라도 짜내려 육신을 떠나지 않을는지
죽은 몸 안에 또 한 생명을 키울 수는 있다는
어디까지 해보겠다는 건가
징그러운 아주 징그러운
난 죽은 건지 구원받은 건지
온 몸뚱이 근질근질해지며 거꾸로 치솟는다
백천사(百泉寺) /소산 문재학
사천시 와룡산 기슭
숨 막히는 풍경 속에 터 잡은
신라 의상대사가 창건한 백천사
‘가을 햇살을 희롱하는
졍결한 소슬바람이
심신을 휘감아 돌고
병마를 씻어주는
약사와불(藥師臥佛)의 자애로운 미소는
민초들의 경건한 두 손을 모으게 했다.
입소문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우보살(암소) 신비로운 목탁소리는
고요한 산사를 흔들고
영생의 안식에 들어간
수많은 새하얀 불탑들이
인생무상의 연을 끊고 있었다,
돌아서는 길
맑디맑은 대형 저수지 위로
고운 단풍이 물들고 있었다.
만덕산 백련사 /潤疇 목필균
만덕산 백련사
사천왕은 어디로 갔는지
오욕에 물든 허물 많은 중생들에게
지엄한 보검도 부릅뜬 눈도 보여주지 않네
시끄러운 세상이 다 남의 탓이겠냐고
참회와 수행으로 정토를 만들고자 결사했다는
백련사 *요세스님 법문이
범종의 울림으로 전해오고
노스님 독경소리에 마음을 닦았는지
수백 년 묵은 근육질 배롱나무가
한겨울에도 결 고운 가지를 벋는데
다산선생도 초의선사도 선문답으로 오고갔을
동백나무숲길 따라
천수경 첫장도 넘기지 못한 땡땡이 불자들도
사철 푸른 잎에 붉은 입맞춤으로
정진의 길을 닦는다
* 요세스님 : 1211년 (고려 희종 7년)에 원묘국사 요세(1163~1245) 스님이 옛터에 중창하고 백련결사로 크게 이르을 날려 백련사(白蓮社)로 불리우게 되었다.
사찰(절)에 관한 시모음 1)
사찰(절)에 관한 시모음 1) 불국사(佛國寺) /박목월 흰달빛자하문(紫霞門)달안개물소리대웅전(大雄殿)큰보살바람소리솔소리범영루(泛影樓)뜬그림자흐는히젖는데흰달빛자하문바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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