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관련

혼자서도 걱정 없는 삶

수선님 2026. 4. 26. 13:13

『아주 오래된 시에서 찾아낸 삶의 해답』

 

내가 읽는 책은 내가 읽기를 원해서, 구해서 읽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제목이 아주 길기도 하고, 제목이 두 개이기도 한 이 책은 내가 구한 것이 아니다. 고등학교 동창인 (송)호섭이가 읽어보라고 주어서 읽게 되는 책이다. 호섭이는 모라에 있는 운수사의 주지도, 방장도 아니지만, 나름대로 실권을 가진 처사다. 그는 절의 살림도 맡고, 신도들도 관리한다. 그렇지만 그가 어떤 일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말해 준 적은 없다. 신도들, 스님들 모시고 새로 개척한 절에 간다고 하기도 하고, 거기 가면 편하게 하루 지낼 수 있다는 말을 한 적은 있다. 어쨌든 책이 내게로 온 경로가 중요한 것이 아니니, 그냥 책속으로 들어가 보기로 한다.

 

저자는 ‘원철’이라고만 소개했는데, 아마도 법명인듯하다. 대중적인 글쓰기를 통해 세상과 소통을 게을리하지 않고, 해인사 講主, 대한불교조계종 불학연구소장, 포교연구실장을 지냈고, 현재(2024)는 불교사회연구소장을 맡고 있다고 한다. 여러 저서를 남겼는데, 『낡아가며 새로워지는 것들에 대하여』『집으로 가는 길은 어디서라도 멀지 않다』『아름다운 인생은 얼굴에 남는다』등 마치 법어 모음집 같은 것들이다.

 

나는 황순원의 단편 〈소나기〉에 나오는 - 소녀가 징검다리에 앉아서 조약돌을 던지던 그 징금다리가 있는 곳 – 그 징검다리가 내 안태고향인 옥천에도 있는 것을 보고 자랐다. 옥천저수지 바로 위 ‘고두방지’라는 곳이 내 안태고향인데, 이제는 아무도 그곳에 살지 않으니 -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종형수가 살고, 고향집이라는 간판으로 장사도 했는데 – 화왕산에 오르거나 관룡사 갈 일이 아니면 거기 갈 일이 없어졌다. 징금다리 자리에도 이제는 콩크리트 다리가 지어져 옛날 향수는 사라졌지만, 간혹 다른 데서 의미가 비슷한 옛날의 그런 다리가 남아 있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주남저수지 아래에 그런 ‘돌다리’가 있어서 가끔 찾는다. 그런 옛다리를 두고 저자 원철 스님이 말했다.

 

‘옛다리’

 

돌다리 아래 물은 흐르지 않고

갈대 사이로 바람만 흘러가더라

 

진짜로 내 마음을 노래한 것 같아서 정겹다.

진천에 가면 寶塔寺라는 절이 있다. 여기에는 고려 시대에 만든 백비가 있어 신기하게 생각되는데, 白碑를 無字碑 혹은 沒字碑라고도 한다. 백비라면 측천무후(則天武后 - 624∼705)가 먼저 생각이 난다. 중국 역사에서 유일한 여성 황제로 15년간 재위하고, 唐나라의 이름을 周로 바꿀 만큼 혁명적인 정치 행보를 보인 인물이다. 그녀는 8m나 되는 거대한 비석을 陝西省 咸陽에 세우고도 비문은 쓰지 말라고 하여 백비의 대명사로 남아 있다. 사실 비문을 채우든, 말든 그것은 남은 자들의 몫이다. 그것은 살아생전 自撰의 해답이다. 과대평가하거나, 평가절하해도, 막을 수 있는 방책이란 게 없기 때문이다.

 

“내가 외람되어 판서의 반열에 올랐으니 영광이 분수에 넘쳤다. 내가 죽거든 절대로 묘비를 세우지 말라.”조선 중기 박수량(朴守良 1491∼1554)의 묘소 앞에는 어떤 글자도 새겨져 있지 않다. 전남 장성군 황룡면 금호리에 있는데, 청백리로 이름이 높았던 그의 백비는 전라남도기념물 제198호다. 조정에서 참관, 판서로 38년간 재직했음에도 집 한 채 없고, 장례비용이 모자랐던 그였지만, 그래서 유언마저도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처음으로 돌아가 이 책의 제목을 다시 본다. [혼자서도 걱정 없는 삶] 이라? 고독을 즐기라는 말인가 싶기도 하지만, ‘혼자서 살아도 두렵지 않고 세상과 떨어져도 걱정하지 않는다’는 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僧乎莫道靑山好 스님이여, 청산이 좋다고 말하지 마소

山好何事更出山 산이 좋다면서 왜 다시 산을 나오시오

試看他日吾蹤跡 뒷 날 내 자취를 두고 보시오

一入靑山更不還 한 번 들어가면 다시는 나오지 않을 테니

 

崔致遠이 만년에 합천 가야산으로 입산하면서 남긴 遯世詩다. 遯은 ‘달아난다’는 뜻이다. 홍류동 籠山亭에는 붉은 글씨로 ‘고운 최선생 둔세지’라는 비가 서 있다. 은둔에는 대은과 중은 소은이 있다고 한다. 은둔을 제대로 하려면 자기만의 내공이 있어야 한다. 獨樂할 수 없다면 은둔자로서는 자격미달이다. 제대로 된 은둔을 위해서는 나름의 좌우명이 필요하다. 周易의 名句 중에 ‘獨立不懼 遯世無悶’이라고 있다. “혼자 있어도 두렵지 않고, 세상과 떨어져 있어도 근심이 없다.”는 말이다. 이 정도는 되어야 은둔할 수 있다. 같이 근무한 김모 씨는 밀양의 표충사 아래에 외딴집을 짓고 살아보려고 했으나, 외로워서 더 못 살겠다고 하소연하던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나혼자 산다’라는 프로를 즐겨보지만, 그것에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하나도 방송에서 본 적이 없다.

 

중국에서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일들을 나귀 일(驢事)이라거나 말일(馬事)이라고 한다. 흔히 볼 수 있는 짐승이 당나귀고 말이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이라면 개일(犬事) 아니면 牛事라고 했을지 모른다. 시비를 가리기도 전에 손익 문제가 겹치니, 세상일은 늘 시끄럽다. 매일 북소리, 종소리가 들리는 절집에서는 그것을 비유한 漢詩가 많다.

 

驪事未了馬事來(여사미료마사래) 이 일 마치기도 전에 저 일 달려오고

鐘聲纔斷鼓聲催(종성재단고성최) 종소리 끊기자마자 북소리 재촉하네.

 

중국 宋대 선종의 한 갈래인 雲門宗을 창시한 法泉스님의 시다.

 

화엄종의 완성자인 당나라 법장(賢首法藏–643∼712)은 “금사자는 절도범에게 사자의 형상은 보이지 않고, 오직 금으로만 보인다. 예술가에게는 오직 사자의 예술적 완성도만 보인다”라고 했다. 고고학자에게 사리는 보이지 않고, 사리함과 글씨만 보이는 것과 같다.

 

‘金不博金 水不洗水’금으로 금을 바꿀 필요가 없고, 물은 물로서 씻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분수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을 경계하라는 말은 많지만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다가는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말처럼 와 닿은 말은 없는 것 같다. 중국의 승조법사(僧肇法師 - 384∼414)는 「반야무지론」에서 “모든 법이 다르지 않다고 하여 어찌 오리의 다리를 잇고 학의 다리를 자르고, 산을 뭉개고 구덩이를 매운 뒤에야 차이가 없다고 하겠는가?라고 일갈했다. 노·장자 사상에 심취해 출가 후 구마라집 문하에서 空사상을 가장 잘 이해한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반야심경』의 주인공 須菩提가 인도에서 解空第一이라 불렸다면, 중국의 해공제일은 승조였다.

 

오리의 다리와 학의 다리를 비교하는 논쟁은 『장자』권8 「변무」에 나온다. 이를 바탕으로 승조 법사가 말했다.

 

鳧脛雖斷續之則憂(부경수단속지즉우)

鶴脛雖長斷之則悲(학경수장단지즉비)

 

오리의 다리가 짧다고 이어주면 걱정거리가 되고,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잘라주면 근심거리가 된다.

 

“뱁새가 황새걸음을 걸으면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속담도 아마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문경 봉암사 대선사를 지낸 은암고우(隱庵古愚, 1937∼2021)선사는 그래서 “다른 사람과 無限競爭하지 말고, 스스로 無限向上하라”고 하셨던 것이다.

 

‘色不異空 空卽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불경》에서 이 말만큼 자주 깊이 회자되는 말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유명한 말이다. 『반야심경』에 나온다. ‘색은 공과 다르지 않고, 공도 색과 다르지 않으니, 색이 곧 공이요 공은 곧 색이다’는 말이다.

 

현장(玄奘 – 602∼664, 본명 陳褘, 하남성 낙양태생), 10대 초반에 형을 따라 출가했고, 29세 때 인도로 유학가서 45세 때 당나라로 귀국했다. 범어로 된 수많은 불경을 번역했으며, 그중에서 가장 사랑받는 것이 『반야심경』이다. 본문이 260자에 불과해 짧기 때문인지 모른다. 반야심경 중에 유명한 구절이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구절이다. 모든 것이 空인 줄 알기에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존재(色)로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誰人甘死片時夢(수인감사편시몽)

超然獨步萬古眞(초연독보만고진)

 

누가 잠깐의 꿈속에서 세상을 살다 죽어가리

만고의 진리를 향해 초연히 나홀로 걸어가리

 

性徹(1912∼1993) 스님이 출가하기 위해 생가를 나서면서 남긴 출가시다. 젊은 시절 이미 제자백가를 비롯한 많은 책을 접했으나, 마음 한 켠에는 늘 미진함이 있었던 그는 어느 날 탁발승한테서 얻은 「證道歌」를 읽고 눈앞이 훤해지는 체험을 했다. 이후 불경공부에 매진하고 출가하게 되었는데, 한 권의 책이 진로를 바꾸게 한 것이다. 臨終揭와 悟道頌은 흔하지만, 출가시는 흔치가 않다. 누구나 끝은 창대할지라도 시작은 미미하기 때문일 것이다. 청나라 3대 황제 順治帝(1638∼1661)의 출가시도 비슷하다. “왕 노릇 18년 동안 자유가 없었다.”라며 궁궐을 박차고 나와 산시성 오대산으로 떠나면서 출가시를 남겼는데 “백 년의 세상일은 하룻밤의 꿈속이요(百年世事三更夢), 만리강산 나랏일은 한판의 바둑 대국이라(萬里江山一局碁)”라고 한 것이다. 이에 비해 왕자와 붓다의 지위를 모두 경험한 석가모니는 탄생게를 남겼다. “세상이 온통 고통 속에 있으니 내 마땅히 편안히 만들겠다(天上天下唯我獨尊 三界皆苦我當安之)”고 외쳤는데, 출가시의 원조가 아닐 수 없다,

 

중국 사람은 차를 좋아하고 한국 사람은 술을 좋아하는 걸까? “차와 술을 즐기면서 일생을 보냈는데, 오고 가는 풍류는 여기서 시작이라.(喫茶飮酒遺一生 來往風流從此始)”고려 시대 白雲居士 李奎報(1168∼1241)의 「孺茶詩」다. 900년 전에 老珪禪師로부터 早芽茶를 대접받고, 이 시로 답례했다고 한다. 거문고와 술을 좋아해 ‘三酷好 선생’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그는 차와 술 마시는 일 뿐아니라, 풍류도 즐겼던 것이다.

 

‘八十年前渠是我 八十年後我是渠’

이 시는 내 나이도 팔십을 내다보는 나이가 되다 보니 남을 말 같지 않게 들린다.

 

“팔십년 전 그대가 나더니 팔십 년 후에는 내가 그대구나.”서산휴정(西山休靜, 1502∼1604)이 묘향산 원적암에서 임종할 무렵 자신의 영정에 직접 남긴 글이라고 전한다. 아마도 열반하기 전에 이미 진영을 그렸던 것으로, 이런 일은 흔치 않다고 한다. 스님의 影幀을 眞影이라고 하는데, 겉모습인 影과 내면의 모습인 眞의 합성어다, 영 속에 진을 담아내는 일이 화공에게는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어제는 나의 과거요, 내일은 나의 미래다. 어제의 결과가 오늘, 오늘은 또다시 내일이라는 결과의 씨앗이기 때문이다.”어제, 오늘, 내일 그리고 하루하루 스스로를 살피는 일을 생활화한다면 그것이 바로 실생활 속에서 宿命通을 갖추는 일이 된다. 멀리서 찾지 말라. 밖에서도 찾지 말라. 숙명통은 이미 내 안에 갖추어져 있다.

 

不出戶身遍十方(불출호신변시방)

不入門常在屋裏(불입문상재옥리)

 

“집을 나가지 않고서도 몸은 온 세상에 두루하고

문에 들지 않고서도 늘 집 안에 있는 것처럼 하여지이다.”

 

매화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 희소성에 있다. 여러 나무가 아니라 오직 한 그루, 한 가지에서 핀 것이 으뜸이다. 그것이 ‘一枝梅’다. 일지매는 혼자 조용히 감상해야 제맛이다. 일본의 호사가들은 일지매를 실내로 끌어들이고, 족자 한 점에 꽃 한 가지를 끌어들인다. 단순절제 속에 처연한 아름다움 ‘와비시비(㭦び寂び)’를 추구한 것이다. 일지매는 꽃 이름에 그치지 않는다. 조선 후기 조수삼(1762∼1849)는 [秋齋奇異]에서 협객의 대명사로 기록했다. 아름다움과 배려심까지를 미루어보건대 여성협객이 아닐까 하는 상상력까지 더해진다. 뒷날 소설, 만화, 영화의 주인공으로 각색되기도 한 것이 일지매다.

 

또다시, 올해도 여지없이 봄은 왔다. 그런데 그 봄을 느끼지 못하면‘春來不似春’이다. ‘春來不復當年興 帖子無心向戶題’- “봄이 와도 올해는 흥이 일어나지 않는지라 입춘첩을 문 위에 써 붙이고 싶은 마음이 없네.”라는 뜻이다. 신흠(申欽- 1566∼1628)은 신숭겸의 후손으로 삼정승을 두루 역임하고, 조선 4대 문장가로서 이름을 떨쳤으나, 정묘호란 등 정치적 격동기를 거치면서 김포로 낙향했다. 성주 가야산 입구의 회연서원에 있는 寒岡 鄭逑(1542∼1620) 선생의 비문도 신흠의 글이다. 회연서원은 ‘百梅軒’으로 불리며 매화로 유명한 곳인데, “일생을 추위 속에 살아도 그 향을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는 신음의 野言이 대중화되면서 더 유명해졌다. 춘래불사춘은 病苦로 마음까지도 수척해지자 봄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여유조차 없음을 고백한 것이다.

 

봄을 매화로 말하기도 하지만, 벚꽃도 봄을 상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때가 있다. ‘現成一段西來意 一片西飛一片東’“보이는 일단이 서쪽에서 온 뜻을 드러내니, 일편(한조작)은 서쪽에 날고, 다른 한 조각은 동쪽으로 나네”벚꽃이 흩날리는 모습을 노래한 것이다. 벚꽃 사랑에 관한 최고를 자랑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피는 시기와 모양새에 따라 나누어 설명하는 언어를 가진 나라다. 피기를 기다리는 꽃을 미쯔하나(待つ花), 처음 피어난 꽃을 하츠하나(草花), 구름을 삼키고 잎을 토해내듯 가득 핀 꽃 모습을 하나노쿠모(花の雲), 눈보라처럼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을 하나후부키(花吹雪), 물에 떨어져 뗏목처럼 줄지어 떠내려가는 꽃잎은 하나이카다(花筏), 혹여 모든 꽃이 다 지고 난 뒤에 혼자 늦게 피는 꽃은 오소자쿠라(遲櫻), 벚꽃이라고 뭉뚱그려 볼 것이 아니다. 자세히 뜯어 볼 안목이 필요한 지 모른다.

 

필 때도 설레고 질 때도 설레는 것이 벚꽃이다. ‘一片西飛一片東’은 동쪽으로 혹은 서쪽으로 꽃잎이 흩날리는 모습을 표현한 말이겠다. 이 말 이전에 ‘萬樹高低爛漫紅’이라고 하여 “높고 낮은 가지에 분홍빛 가득 피더니”라고 했으니, 벚꽃은 꽃의 개화도 순식간이지만, 낙화도 순식간임을 한 작품에 동시에 담고 있다. 지금 밖에 나가면 발길 닿는 곳마다 벚꽃 천지다. ‘필 때도 설레지만 질 때도 설렌다’는 말 실감나는 이 봄날을 마음껏 즐겨보자.

 

‘無主空山’이란 말이 있다. 주인이 없는 산이란 뜻이지만, ‘空山無人 水流花開’라고 하면 “텅 빈 산에 사람 없어도 물은 흐르고 꽃은 피네”라는 뜻이다. 崔致遠은 가야산 계곡의 탄성을 들으며 “시비소리가 귀에 들릴까봐(常恐是非聲到耳), 일부러 흐르는 물로 산을 둘러싸게 했네(故水流水盡籠山)”라는 감상을 홍류동 계곡 농산정의 돌에 새겼다. 또 송나라 때 東坡 蘇軾(1036∼1101)은 어느 날, 폭포소리를 듣고 “계곡의 물소리가 유창한 설법을 하고,(溪聲便是廣長舌) 밤이 오니 팔만대장경이 되는구나.(夜來八萬四千偈)”라는 게송을 남겼다. 폭포소리가 설법이고, 팔만대장경 게송이라니 어처구니없는 비유같지만, 아마도 경험해 보지 못했으니, 와 닿지 않는 것이겠구나 싶다.

분별없이 수행하며 사는 것만큼 좋은 삶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중이 모여 사는 곳에서 獨不將軍처럼 사는 것은 ‘일품’이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다. 그때는 평범한 보통사람의 삶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 송나라 때 五祖法演(1024∼1104) 선사는 새해 아침에 대중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원정계조(元正啓祚)

만물함신(萬物咸新)

 

“설날 아침에 복이 열리고 온갖 것이 모두 새롭구나.”하지만 “그는 수행자의 설날은 섣달그믐과 결코 나눌 수 없다는 이치도 같이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시신야 시구야(是新耶 是舊耶)

“그런데 새로운 것인가? 묵은 것인가?”하고 물은 것이다. 아무튼 신년이나, 음력 설이나 모두 달력에는 빨간 날이다. 새해니 묵은해니 할 것이 아니라, 설날 자체로 축하와 덕담으로 한 해를 시작하는 날이기를 바램해 본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인네들은 화장하기를 좋아하는지, 좋아해야 하는지 모를 만큼 화장을 한다. ‘동쪽에서 바르고 서쪽에서 칠하는(東塗西抹) 것이 화장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천의 얼굴(任千般)이 된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고 했던가. 외형뿐인가 하루에도 수십 번 바뀌는 마음 상태에 따라 표정도 바뀐다.

 

東塗西抹任千般(동도서말인천반)

爭似天眞本來樣(쟁사천진본래양)

 

“제 아무리 잘 다듬고 꾸밀지라도

어찌 천진스러운 본래 모습만하겠는가”

2020년 초 시안의 華淸池를 찾았을 때 현종과 양귀비의 스토리텔링이 더해진 커다란 〈長恨歌〉가 새겨진 비를 보고서 역시 중국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비의 핵심인‘비익조와 연리지’는 이미 널리 알려진 구절이다.

 

재천원작비익조(在天原作比翼鳥)

재지원위연리지(在地原爲連理枝)

 

“하늘에서 만나면 비익조가 되길 원하고

땅에서 만나면 연리지 되기를 바랬지”

 

〈長恨歌〉를 지은 白居易(樂天, 772∼846)는 시를 지을 때마다 글을 모르는 노친네들에게 먼저 읽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이면 즉시 평이한 문장으로 수정했다고 하는데, 그는 독자들을 배려할 줄 아는 친절한 시인이었다. 그런 그지만 적수가 있었으니, 약간 후대기는 해도 雲門(864∼949 )선사는 ‘동쪽에 있는 계곡물은 서쪽 시내로 흘러가고 남산에서 일어난 구름도 북산의 구름이 되네. 앞쪽 누대에 핀 꽃은 뒤쪽 누대에서 볼 수 있고, 뒷절에서 울리는 종소리 아랫마을에서 들을 수 있네(東澗水流西潤水 南山雲起北山雲 前台花發後台見 上界鐘聲下界聞)’라는 시를 ‘南山起雲 北山下雨’라는 8자로 줄였다고 한다. 어쨌던 백낙천은 이 네 줄의 시에 동서남북, 전후상하라는 對句와 틀을 정확히 유지했다.

 

유럽에서 가장 많은 밀을 생산하는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전쟁은 전 세계를 식량 위기로 몰아넣고, 러시아의 천연가스 생산량 조절은 유럽을 추운 겨울로 몰아넣고 있다. 어쩌다 이런 관계로 맺어졌는가 싶지만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 계속 노력한다면 관계성을 회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보면서 여기서 줄인다.

13 혼자라도 걱정 않는 삶 - 예스24.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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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도 걱정 없는 삶

 『아주 오래된 시에서 찾아낸 삶의 해답』 내가 읽는 책은 내가 읽기를 원해서, 구해서 읽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제목이 아주 길기도 하고, 제목이 두 개이기도 한 이 책은 내가 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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