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유년, 닭띠 한 해가 새로 열렸습니다. 동양 사람들에게 닭은 우렁찬 목소리로 새벽을 알려주므로 상서로운 동물로 대접을 받습니다. 먼동이 트일 때 퍼져나가는 우렁찬 목소리는 재액을 물리치는 것으로 상징되고, 머리 위에 쓰고 다니는 벼슬은 부귀공명과 입신양명으로 상징되기도 합니다. 만물이 잠깨기 시작하는 이른 봄이면 넉넉히 보이는 어미 닭이 갓 부화한 병아리를 양지바른 곳으로 이끌고 다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자비와 화합의 의미를 새겨볼 수 있습니다. 또, 닭의 울음은 선사들의 깨달음이나 염송에도 친근하게 등장합니다. 우리도 한결같이 새아침을 열어주는 닭의 울음을 죽비 삼아 금강경 공부를 익혀가고, 닭의 울음소리가 우리 마음에서 울려나오는 소리인 줄 알아서 청정 바라밀의 실천이 고무되도록 원력을 세워봅시다.
世尊 善男子善女人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應云何住 云何降伏其心
“세존이시여! 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오면 응당 어떻게 그 마음을 머무르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하오리까?”
<보충설명> 이 부분은 탁발을 끝내고 환지본처하여 의발을 거두고 발을 씻고 선정에 드신 부처님 모습 그 자체로써 이미 무상정등정각의 마음에 대해 해답을 알고 있는 수보리 존자가, 아직도 해답을 찾지 못한 중근기·하근기 대중의 대변자가 되어 부처님께 질문을 청하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에서 수보리 존자는 아주 친절한 대변자로서 대중을 위해 최고의 보리심, 절대평등의 보리심, 너와 내가 한 마음인 보리심을 어떻게 머루르고 어떻게 항복받아야 하는지에 관해 상세하게 여쭙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수보리의 이 물음에 대하여, 다음에 이어지는 제3 대승정종분에서 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 이 네 가지의 相을 없애야 한다고 답을 내려 주십니다.
부처님의 49년 설법은 대중의 근기가 숙성되도록 순차적으로 행해졌습니다. 초기에는 대부분의 법문이 현실생활을 바르게 엮어가도록 인도해 주는 내용입니다. 아함부, 방등부에 속하는 부처님의 초기설법은 보리심을 증장시키기 위해 사성제의 이해와 팔정도의 실천이 강조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대중의 근기가 어느 정도 향상되고 반야부 경전을 시설하게 되면서 부처님께서는 팔정도 실천을 ‘無’字로 묶었다가 다시 흩어버리도록 가르쳤습니다. 즉, 팔정도를 실천해 나가는 신훈의 입장에서 뛰어올라 구류중생이 모두 청정하고 평등한 한마음이므로 광대심을 가지고 萬事萬象과 마주하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이 것은 곧 진공의 마음으로 묘유의 삶을 엮어가라는 가르침입니다. 또, 구류중생이 평등하게 지니고 있는 그 광대심으로 원력을 세워서 제도받아야 할 중생을 제도하더라도, 능소가 끊어진 제일의 마음으로, 제도한다는 흔적조차 없이 제도하여 무여열반에 들게하라고 일러 주셨습니다. 수보리 존자는 근기 낮은 중생을 위해 자비심을 발하여서 부처님께 보리심을 어떻게 머무르고 항복받아야 하겠는지 대신 여쭈었지만, 불생불멸의 진리는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으며 또 보리심은 항상 청정한 것인데 어디에 머무르고 어떻게 항복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능소가 끊어진 한 덩어리 ‘無’字에 묶었다가 삼라만상에로 다시 흩어버리는 진공묘유의 삶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부처님의 앉아 계신 모습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六祖}善男子者 平坦心也 亦是正定心也 能成就一切功德 所往無礙也 善女人者 是正慧心也 由正慧心 能出一切有爲無爲功德也 須菩提 問 一切發菩提心人 應云何住 云何降伏其心 須菩提 見一切衆生 躁擾不停 猶如隙塵 搖動之心 起如飄風 念念相續 無有間歇 爲令降伏故 問 若欲修行 如何降伏其心
선남자란 평탄심이며 또한 바르게 안정된 마음이니, 능히 일체의 공덕을 성취해서 가는 바에 걸림이 없는 것이다. 선여인이란 바른 지혜의 마음이니, 바른 지혜의 마음으로 말미암아 능히 일체의 유위와 무위의 공덕을 창출하는 것이다. 수보리가 “일체의 보리심을 발한 사람들이 응당 어디에 머무르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합니까?”라고 물으신 것은, 수보리가 일체중생이 마구 흔들려 멈추지 않는 것이 마치 문틈에 비추는 티끌과 같으며 요동치는 마음이 마치 바람에 나부끼는 것 같이 일어나 생각생각의 이어짐이 쉴 사이 없는 것을 보시고, (중생들을 위하여) 항복받게 하려고 물으신 것이므로 “만일 수행하고자 한다면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합니까?”라고 하신 것이다.
{冶父}這一問 從甚處出來
이 하나의 질문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보충설명> ‘희유~’ 이하의 질문이 어디에서부터 나왔는가를 생각케하는 야보스님의 고일착입니다. 야보스님은 금강경 원문의 한 대목이 끝나면 언제나 신훈의 입장이 아니고 본분사를 챙기도록 活句를 던져줍니다. 야보스님의 고일착은 부처와 우리가 서로 다르지 않고 하나이며 전체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말씀입니다. 즉, 불생불멸, 불구부정의 당처에서 금강경을 낚아채도록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한편, 야보스님과 달리 종경스님과 부대사는, 소명태자가 나눈 금강경 32分 가운데서 매번 한 分이 끝나면 말미에 頌을 붙여서 우리로 하여금 금강경의 원 뜻을 잘 음미하도록 이끌어 주고 있습니다.
你喜我不喜 君悲我不悲 鴈思飛塞北 燕憶舊巢歸 秋月春花無限意 箇中 只許自家知
너희가 기뻐한다고 해서 내가 기뻐할 것도 없고, 그대가 슬퍼한다고 해서 내가 슬퍼할 것도 없도다. 기러기는 새북으로 나를 것을 생각하고 제비는 옛 둥지로 돌아올 것을 생각하도다. 가을 달과 봄 꽃의 무한한 뜻을 다만 ‘이 낱’ 가운데 스스로 알 뿐이로다.
<보충설명> 우리의 본래 마음은 이름과 모습이 뚝 끊어졌기 때문에, 세간의 기쁨이나 슬픔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는 마치 기러기가 북쪽을 향해 나르고 제비가 옛 둥지를 찾아오는 것과 같이 자연스럽게 그러한 것입니다. 진리는 말로써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가을달이나 봄꽃이 자기네의 살림살이를 스스로만 아는 것처럼, 다만 자기 자신이 스스로 깨달아 아는 것입니다.
{圭峰}二 如來讚許
佛言 善哉善哉 須菩提 如汝所說 如來 善護念諸菩薩 善付囑諸菩薩 汝今諦聽 當爲汝說 善男子善女人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應如是住 如是降伏其心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선재선재라, 수보리여! 그대가 말한 것과 같이 여래는 모든 보살을 잘 호념해주고 모든 보살을 잘 부촉해 주노니, 그대들은 지금 자세히 들으라. 마땅히 그대들을 위해 설하리라. 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이는 마땅히 이와 같이 머무르며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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