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비우기만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계가 마음을 가로막고
현상<事>이 본체<理>를 흐리게 하여
의례껏 경계로부터 도망쳐 마음을 편히 하려 하고
현상을 물리쳐서 본체를 보존하려 한다.
그러나 이들은 오히려 마음이 경계를 가로막고
본체가 현상을 흐리게 한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다.
마음을 비우기만 하면
경계는 저절로 비고
본체를 고요하게만 하면
현상은 저절로 고요해지므로
거꾸로 마음을 쓰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이 보통 마음을 비우려 들지 않는 까닭은
공(空)에 떨어질까 두려워해서인데
자기 마음이 본래부터 비었음을 모르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의 경우는
경계는 없애려고 하면서 마음은 없애지 않는다.
그러나 지혜로운 이는 마음을 없애지 경계를 없애지 않고
나아가 보살은 마음이 허공과 같아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자기가 지은 복덕마저도 탐착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버림에는 세 등급이 있다.
즉 안팎의 몸과 마음을 다 버림이 허공과 같으며
어디에고 집착하지 않은 다음에 곳에 따라 중생에게 응하되
제도하는 주체도 제도될 대상도 모두 잊는 것이
'크게 버림<大捨>'이다.
만약 한편으로 도를 행하고 덕을 펴면서
한편으로는 그것을 이바지하여 놓아 버리고 바라는 마음이 전혀 없으면
'중간의 버림<中捨>'이다.
또한 착한 일을 널리 행하면서도
바라는 바가 있다가 법을 듣고서
빈<空> 줄을 알고 집착하지 않으면
이것은 '작은 버림<小捨>'이다.
큰 버림은 마치 촛불이 바로 정면에 있는 것과 같아서
더 미혹될 것도 깨달을 것도 없으며
중간 버림은 촛불이 옆에 있는 것 같아서
밝기도 하고 어둡기도 하며
작은 버림은
마치 촛불이 등 뒤에 있는 것 같아서
눈앞의 구덩이나 함정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보살의 마음은
허공과 같아서 일체를 다 버린다.
과거의 마음을 버릴 수 없음이 미래를 버린 것이니
이른바 3세를 함께 버렸다고 하는 것이다.
전심법요(傳心法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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