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심리치료
김재성 /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교수
■ 김재성/ 서울대 철학과 학부 및 대학원 졸업. 일본 동경대 대학원 인도철학불교학과 석사 및 박사 수료. 대한불교조계종 전통사상서 간행위원회 선임연구원. 한국불교심리치료학회 운영위원. <불교학연구> 편집위원장.
▒ 목 차 ▒
1. 시작하는 말 ▲ 위로
심리치료에 불교접목 관심 높다
최근 한국에서 불교와 심리학.심리치료의 관계 및 접목에 대한 관심이 점차로 높아져 가고 있다. 불교학과 수행 전문가들의 심리치료에 대한 관심과 심리학, 정신의학 전문가들의 불교에 대한 관심이 함께 높아져 가고 있는 것이다.
출가한 스님들의 관심 또한 높아져가고 있다. 지난 해 11월에 조계종 교육원 연수교육 과정 가운데 하나였던 <불교와 심리치료 , 강사: 서광스님, 김재성>에는 100명이 넘는 스님들이 신청하였을 정도였다. 이는 현재 한국불교가 초기불교와 심리치료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모습니다.
한국은 서양의 심리치료와 동양의 도(道)를 융합시켜온 도(道)정신치료의 창시자 이동식 박사를 중심으로 1979년 창립된 한국정신치료학회가 정신과의사들과 상담가들을 중심으로 심리치료의 한 흐름을 형성해오고 있다.
70년대 중반 불교와 명상 관심 일었고
20년전부터는 임상효과가 과학적 입증
정규대학에서는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동국대학교, 동방대학원대학교를 중심으로, 학회 차원에서는 한국상담심리학회 산하의 동양상담연구회, 한국불교심리치료학회, 불교상담학회, 한국명상치료학회, 밝은사람들연구소 등의 활동이 수 년 동안 이어지고 있으며, 불교상담개발원 불교상담대학, 중앙승가대학교 불교상담대학, 대원불교문화대학, 대원불교대학 등도 불교와 상담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 3~4년 사이에 생겨난 이러한 움직임은 불교와 심리치료에 대한 관심이 학문과 실제적인 차원에서 높아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한국에서 불교와 심리학.심리치료의 접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한 가지 이유는 한국적 상담 및 심리치료의 필요성이 보다 절실하게 요청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서양의 학문으로 수입된 심리학은 20~30년 사이에 한국에서 든든한 뿌리를 내렸다. 서양의 과학적 전통을 잇는 학문의 하나로서 심리학과 그것의 응용인 심리치료 및 상담은 중요한 분야로 확실한 자리를 잡았다.
한국의 불교 및 명상 전문가들의 심리치료에 대한 관심의 고조와 심리치료 전문가들의 불교 및 명상에 대한 관심이 서로 맞물리고 있는 상황의 배경에는 탄생한지 100년이 조금 넘은 서양 심리학에서의 불교 및 명상에 대한 관심과 깊은 관계가 있다.
특히 1970년 중반 이후 서양 심리학계와 정신의학계에서 불교와 명상에 대한 관심이 무르익기 시작하고, 최근 20여 년 전부터 마음챙김 명상(위빠사나)의 임상적 효과가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서양과 일본 등지에서 불교와 심리치료가 어떻게 접목되어 왔으며, 현황은 어떠한지에 대해서 소개하면서, 현재 한국에서의 현황을 이해하고 불교심리치료를 위한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글의 순서는 서양 불교의 현황과 특징, 불교와 심리학의 만남의 역사, 서양심리학과 불교심리학, 정신분석, 행동주의, 인본주의 심리치료와 불교와의 접목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2. 서양불교의 현황과 특징 ▲ 위로
미산스님에 의하면, 19세기 이후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서양(유럽과 미국)에 불교가 전해지게 되었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본격적으로 불교가 도입되기 시작한다.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준비기,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안정적인 번영기를 거치면서, 1990년대에는 청년기를 맞이하게 된다.
시카고 대학교 사회학자인 제임스 콜맨(James Coleman)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서양인들이 불교를 믿게 된 동기를 보면 정신개발과 수행에 대한 관심이 50%, 개인의 고민 해결이 22%, 가족, 친구 그리고 존경하는 사람이 불교를 믿기 때문에 12%라고 한다.
최근 미국과 유럽은 명상의 열풍과 함께 세계의 불교 전통들이 살아 움직이는 지역이 되었다. 현재 전통적인 불교는 중국, 한국, 일본의 동아시아권,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등지의 동남아시아권, 인도, 스리랑카, 티베트 등지의 남아시아권에 2천년이 넘도록 이어져 오고 있다. 이에 비해서 19세기 후반부터 불교를 접하게 된 서양은 기존의 기독교 전통 위에 새로운 종교로서 불교를 받아들였다.
따라서 서양인들은 불교를 신흥종교이자 새로운 사상이며, 신체적, 정신적 건강과 정신적 성숙을 위한 길로 받아들이고 있다. 최근에 불교명상은 심리치료에 접목되어 다양한 심리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직간접적인 방법으로 응용되고 있다.
불교를 종교로 받아들이는 흐름은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종교의 맥락을 떠나 과학과 의학의 영역에서 불교명상은 그 효과가 입증되고 있다. 이는 불교의 가르침과 실천체계의 보편성을 보여주는 면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서구에선 불교명상을 심리치료에 접목
다양한 심리장애 극복방법으로 응용해
미국불교에 한정시켜 보면, 명상지도자이자 심리치료자인 잭 콘필드는 안정적 번영기 들어선 1970년대 이후 미국불교의 중심 문제를 3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첫 번째는 민주화(democratization)이다. 아시아의 불교전통은 위계질서나 권위를 중시한다. 즉 스승이나 승단의 권위가 제자와 재가자들에게 중요하게 작용하는데 비해서, 미국에 전해진 불교는 아시아에서와는 달리 위계질서가 그다지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공동체 전체의 의견을 수렴해 나가는 과정이 민주적인 절차를 따르고 있다.
이 점은 미국불교가 지닌 생동적인 요인이며 불교의 변화된 모습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민주적인 공동체 운영의 방식은 공동체 구성원들의 자율성과 그에 대한 책임이 중요하다. 서양불교도들이 만들어 가는 이러한 민주적인 공동체 운영방식이 지닌 장점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을 것이다.
두 번째는 여성화(feminization)이다. 미국불교의 가장 중요한 모습일지도 모르는 여성화의 움직임도 아시아에서 전통적으로 남성 중심으로 전해지던 불교와는 다른 모습을 띠고 있다.
이는 서양의 여성주의(feminism)의 운동과 관련이 있다. 서양의 불교 공동체에 여성 불교지도자 혹은 명상지도자가 많은 것은 이러한 여성화의 구체적인 모습이다.
3. 서양불교의 특징 ▲ 위로
세계 불교전통 통합적 수용
앞서 말한 민주화, 여성화에 이어 서양불교의 또 한 가지 중요한 측면은 세계의 다양한 불교전통을 통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즉 통합(integration)이다. 아시아 불교는 각 지역마다 천 년 이상의 전통이 있어, 각자의 전통이 사원이나 전문 수행도량을 중심으로 세속의 활동을 멀리한 승려들과 수행전문가들에 의해 이어져왔다.
미국서 불교접한 이들은 신앙뿐 아니라
다양한 방법을 통해 깨달음 경험 노력
그리고 대부분의 재가자들은 전문적인 수행의 기회를 가지지 못한 채 신앙생활을 통해서 불교를 접하는 것이 큰 흐름이었다. 물론 20세기 중반부터 전통적인 불교국가의 수행(위빠사나, 간화선)이 대중화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미국을 포함한 서양에서는 단지 출가승단을 지원하는 형태의 신앙중심의 불교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미국에서 불교를 접한 이들은 신앙을 통한 접근뿐만 아니라 스스로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깨달음을 경험하려는 통합적인 접근을 시도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사회생활, 가정생활, 직장생활을 하면서 불교의 궁극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즉 세속 생활과 출세간을 통합하려고 하였다.
통합화의 시도는 재가와 출가의 구분에 별 의미를 두지 않게 되었고, 재가자들이 출가자들처럼 진지하고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풍토를 낳게 되었다. 티벳 불교의 수행법과 보살행을 배우고, 일본과 한국에서 전해진 선불교를 실천하고, 인도, 미얀마, 태국, 스리랑카에서 전해진 남방불교의 교학과 위빠사나 수행을 위화감 없이 접하고 자신들에게 알맞은 방식으로 소화해 가는 통합적인 불교 전통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통합의 과정을 보여주는 저술의 하나가 조셉 골드스틴의 <하나의 법(One Dharma>이다.
조셉은 서양에서 최근에 만들어진 하나의 법의 모습을 이렇게 설명한다. 방법은 마음챙김(mindfulness)이며, 표현은 연민 또는 자비(compassion)이고, 핵심은 지혜(wisdom)이다. 조셉이 말하는 마음챙김이란 위빠사나 수행을 말한다. 마음챙김을 지니고 수행을 하면 우리 마음은 우리자신을 포함해서 주의의 괴로움에 대해서 열리게 되며 자연스럽게 자비행을 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불법의 핵심은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을 비추어주는 지혜이다. 지혜는 이론적으로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수행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조셉이 말하는 하나의 법에는 위빠사나 뿐만 아니라 티벳의 수행법(족첸 수행)도 다양하게 소개되어 있다. 조셉의 설명은 아시아의 다양한 불교전통이 미국이라는 용광로에서 통합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불교의 통합화의 모습은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불교에서도 보인다. 불교전통의 통합뿐만 아니라, 현대 학문, 특히 심리학과 행동의학과의 만남은 불교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600년의 불교가 새로운 토양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정착해 가는 것은 불교사상이 지닌 포용성과 유연성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민주화, 여성화, 통합화의 특징을 지닌 서양불교가 현대인의 심리적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심리학과 만나게 되었는지 살펴본다.
4. ‘불교와 심리학’ 만남의 역사 ▲ 위로
반커트 Bankart(2003)에 의하면 불교가 서양의 심리학.심리치료와 만나게 되는 다섯 국면이 있었다고 한다. 다섯 가지 국면은 1. 프로이트의 정신역동적 오리엔탈리즘, 2. 융의 분석심리학적 신비주의, 3. 신 프로이트 학파의 절충주의, 4. 행동주의적 실용주의, 5. 뉴에이지 의식이다.
서양 심리학이 철학에서 분리되어 하나의 독립된 학문으로 시작한 사람은 독일의 빌헬름 분트에게서 시작되었다고 한다면, 프로이트는 현대적인 의미에서 심리치료를 시작한 선구자였다. 프로이트는 처음으로 환자와 본인의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치료법을 썼는데 이 방식은 ‘대화 치료’로 알려지게 되었다. 프로이트는 말년인 1930년에 한 친구와 편지를 교환했는데, 그 편지에서 그는 동양철학이 자신에게는 생소한 것이며, 아마도 “자신의 본성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임을 인정했다.
이런 입장에도 불구하고 프로이트는 <문명과 불만족> 에서, “대양적 감정들(oceanic feeling) 또는 종교적 축복”은 본질적으로 어머니와의 합일을 위한 유아의 본래적인 소망인 퇴행의 증거라고 했다.
독일의 인도학자이자 빠알리 전문가인 올덴버그 등을 통해서 불교를 알았던, 프로이트 학파의 프란츠 알렉산더는 “인위적인 긴장병(catatonia)으로서의 불교 수행: 심리적 사건의 생물학적 의미”라는 논문에서 불교의 선정 수행(四禪)과 그 결과로 얻게 되는 열반은 자폐증적인 비사회적 세상포기라는 깊은 퇴행으로 빠지게 한다고 하며 불교를 허무주의로 폄하하는 오리엔탈리즘적인 해석을 내렸다. 알렉산더는 심지어 붓다는 제자들에 대한 자신의 억압된 대상 전이(repressed object transference)도 분석하지 못했기 때문에, 불교는 한 사람의 신경증적인 고투를 반영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처럼 프로이트와 고전정신분석학자들은 불교에 대한 왜곡된 오해가 있었다.
프로이드 ‘대화치료’를 통해 접목시도
칼융.뉴에이지 중심이론으로 발전
프로이트와 그 동료에 의해 전체적으로 거부되었던 동양 및 불교에 대한 태도와는 달리 융은 동양사상에 대해서 포용적이었다. 1931년에 <티벳 사자의 서>의 해설을 쓴 칼 융은 일생동안 동양심리학에 호기심을 가졌고 동양사상과 수행을 신비주의로 간주하였고 그 가치를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융이 보인 입장은 동양과 서양이 서로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태도였다.
동양과 서양이 서로 다른 의식의 양식들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즉 동양은 일방적으로 내향성, 서양은 일방적으로 외향성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서로 알 수 없다고 융은 주장한다. 물과 불을 섞어 놓을 수 없는 것처럼, 동양과 서양은 서로 상대방을 무의미하게 한다고 했다. 하지만 융은 서로 모순되지만 동양과 서양은 각각 우주의 반을 대표하고 있다고 보았다. 서양의 외향적 태도가 의식의 본질과 존재의 자각에 대한 더 큰 통찰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점을 보았고, 동양의 내향적인 태도가 보다 이성적이고 관계적으로 되려고 노력하고 있는 점을 보았다. 융은 서양의 심리치료가 동양과 서양 사이의 형이상학적 가교를 제공하는 것으로 여겼다.
신 프로이트 학파 가운데 에리히 프롬과 카렌 호나이는 선(禪) 학자이자 선불교를 서양에 알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스즈키 다이세츠와 교류하며 선불교와 정신분석학에 대한 토론을 하였다. 이들은 서양의 심리치료자들이 훈련 과정에서 불교의 심리치료에 대한 사상과 원리에 대해 전문적인 관심을 표현한 첫 번째 세대이다.
불교의 명상을 통해서 비로소 상담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점은 불교와 심리치료의 만남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1995년, 정신분석의이자 위빠사나 수행자인 마크 엡스타인은 정신역동 임상가들에게 불교심리학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촉발한 <붓다의 심리학>을 썼다.
5. 행동주의, 실용주의와 만나다 ▲ 위로
행동주의 심리치료와 불교를 체계적으로 통합한 최초의 심리학자는 미쿨라스(Mikulas)이다. 미쿨라스는 다음과 같이 행동주의 심리치료와 불교의 공통점을 제시했다. 자기 조절(self-control)의 최우선적 강조, 이론적 구조의 최소한의 이용, 일상생활의 실제적 문제에 초점을 둠, 관찰 가능한 행동에 대한 객관적 연구에 관심, 깨어있는 의식의 경험 내용에 초점을 둠, 이완과 바이오피드백의 증상별 적용, 비역사적이며, 지금 여기에 초점을 둠, 일반에 대한 관심, 행동과 성격의 구분, 신체의 미세한 신호에 대한 점증적인 알아차림, 지도받은 수련을 통한 행동 변화에 초점을 둠, 모든 형태의 치료의 보조로서 명상, 수련자가 덜 독단적이며 더욱 유연하고 공감적이 되도록 도와줌, 내담자 우위가 분명한 작업, 체계적인 자기 관차를 통해 성취되는 마음의 평화와 행복에 대한 강조이다.
1970년대 행동주의는 주로 초월명상(TM)을 대상으로 연구를 했다. 특히 명상에 대한 연구는 하버드대학의 심장병학 전문의인 허버트 벤슨(Herbert Benson)의 심장병 치료를 위한 명상 활용을 시작으로 왕성해졌다. 임상심리학은 심리치료의 부속분야 또는 심리치료 자체로서 명상에 대한 수많은 논문과 보조를 맞췄다. 1977년, 미국정신의학회(APA)는 명상의 치료적인 효용성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다. 그 당시 대부분의 학술지 논문들은 초월명상(TM)과 벤슨의 프로그램과 같은 집중명상을 연구했다.
드 실바(de Silva)는 괴로움에 대한 초기불교의 접근과 현대의 행동주의 개입 사이에는 놀라울 정도의 유사성이 있다고 한다. 그 다섯 가지는 내현적 민감화(covert sensitization), 사고의 정지, 노출, 주의산만기법, 사고 대체이다.
서구의 심리학과 불교의 융화 통해
명상심리치료 연구 활발히 진행
불교와 뉴 에이지 의식과의 관련은 세 가지 중요한 사건이 있다. 먼저 앨런 왓츠(Alan Watts)의 <동양과 서양의 정신치료>의 출판이었다. 두 번째 사건은 1969년 <자아초월심리학회지>의 출판이었다. 다음은 1986년에 켄 윌버 등의 <의식의 변형>의 출판이다. 이 세 가지 사건에 의해서 의식에 대한 학문적 연구의 영역이 자아초월적 체험의 영역까지 확장되었고, 육체적 심리적 안녕감에서 의식의 역할의 중요성이 재인식되었다.
반커트는 마지막으로 서양의 심리치료자들은 문화적 정신적 맥락을 벗어난 동양의 수련을 응용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서 주의해야 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멧칼프(Metcalf)에 의하면 서양의 심리학이 불교화 되고 있는 경향도 무시할 수 없다고 한다. 미국에서 영성지향 심리치료의 놀라울 정도의 성장은 심리학에 대한 불교의 영향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서양의 불교는 심리학화 되어 가고, 심리학자들은 불교적이 되어가고 있다.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는 아시아의 다른 나라로 전해지면서 각 지역의 고유문화와 토속신앙과 습합하면서 자연스럽게 변화되었다. 19세기 말부터 서양에 전해진 불교는 서양의 심리학과 심리치료와 만나면서 변화되어 왔다. 서양의 명상가들은 심리치료의 도움을 받고 있다. 미국을 대표하는 명상지도자의 한 사람이자 심리치료자인 잭 콘필드는 오랜 수행을 통해서 해결되지 않았던 자신의 내면의 문제 - 감정적인 미숙함, 비난과 두려움, 수용과 거부-를 심리치료를 통해 극복하였다고 한다.
“우리의 명상 수행은 반드시 깊은 개인적 성찰과 병행하여 이뤄져야 한다. 서구의 명상수행이 인정해야 할 점은 우리의 영적 삶에서 드러나는 깊숙한 문제들 대부분이 명상만으로 치유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어린 시절의 상처, 중독, 애정결핍, 성적 학대 같은 문제들은 노련한 치료자의 친밀하고 의식적이며 지속적인 도움이 있어야만 해결될 수 있다.” 불교 명상과 심리치료의 상보적인 협력의 중요성을 잭 콘필드는 개인적인 경험과 많은 사례를 통해서 역설하고 있다.
6. 역기능적 사고가 고통 부른다 ▲ 위로
명상, 수행 목적은 자기성찰과 고통 경감
괴로움 원인 찾아 잘못된 생각 고쳐야…
불교와 심리치료를 접목시킨 대표적인 심리치료자로서 정신분석의 전통의 정신과 의사 마크 엡스타인(Mark Epstein, 붓다의 심리학)과 인본 심리치료와 불교를 접목시킨 심리치료자인 데이빗 브레이저(David Brazier, 선 치료, 1995)에 대해서 고찰해보자.
조이 매니(Joy Manne)의 <현대 불교 심리치료 만들기>(Creating a Contemporary Buddhist Psychotherapy, 경험의 권위: 불교와 심리학에 대한 논문들 The Authority of Experience: Essays on Buddhism and Psychology)에 의하면, 이 두 저술은 실제 심리치료전문가이자 자신의 불교 수행의 경험을 바탕으로 불교와 심리치료를 접목한 현대의 대표적인 업적이라고 한다.
인지행동치료의 경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는 마음챙김에 근거한 스트레스 감소(MBSR) 프로그램을 만든 존 카밧진이라고 할 수 있다. 카밧진은 심리치료 전문가가 아니지만, 1979년부터 만성질환자를 중심으로 시행해온 MBSR을 통해 위빠사나 또는 마음챙김명상이라는 불교명상을 행동의학에 접목시켰으며, 수용(acceptance)과 알아차림(awareness)을 핵심 치료요소로 하는 인지치료의 제 3동향의 기반을 제공하였다고 볼 수 있다.
정신분석, 행동치료를 중심으로 한 서양 심리치료와 마음챙김 명상을 기반으로 한 불교심리학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서는 풀톤(Fulton)과 시걸(Siegal)이 <불교심리학과 서양심리학: 공동의 기반을 찾아서>(Buddhist and Western Psychology: Seeking Common Ground)에서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먼저 불교의 마음챙김과 심리치료 사이에 최소한 두 가지 분명한 관계성이 나타난다. 첫째, 마음챙김 명상은 정신적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하여 제안된 신중한 수행으로 서양 심리학과 대조될 수 있다. 둘째, 마음챙김 그 자체는 현재 경험을 수용하면서 알아차리는 것으로 서양심리학과 마음챙김 명상 양 쪽 모두에 효과가 있다.
먼저 불교와 심리치료의 공통점은 두 전통 모두 심리적 괴로움의 경감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서양 심리학처럼 불교의 마음챙김 명상은 심리적 원인 때문에 생긴 괴로움을 대처하기 위해 발전했다. 심리치료처럼 마음챙김 명상의 주 영역은 생각, 느낌, 지각, 의도, 행위를 포함하고 있다. 여기에 초점을 두고 불교심리학은 심리적 장애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적 틀을 서양의 심리치료와 자연스럽게 공유한다. 두 체계는 1) 증상(苦)을 확인하고 2) 병의 원인(集)에 대해 설명하고 3) 예후(滅)를 제안하며 4)치료법(道)을 처방한다.
마지막 치료법에 대해서 정리해 보면, 정신역동, 행동주의, 마음챙김 명상 모두 자기성찰(內省)과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한 행동변화를 필요로 하며, 통찰과 진리의 발견을 중시한다.
불교와 심리치료는 사고의 역할과 목적, 자아관 등에서 차이점이 있다.
인지행동치료에서는 사고의 일탈이 괴로움의 원인이고, 잘못된 생각을 고쳐주는 것이 마음을 안정시키는 방법이다. 역기능적인 사고에 의해 고통이 생겨난다고 보는 것이다.
정신역동치료에서는 언어는 치료를 관리하기 위한 필요한 도구이다. 근원적으로 가지고 있는 동기, 갈등이나 욕구 등이 발설된 말(spoken words)에 숨겨진 형태로 나타난다. 이처럼 치료가 언어에 의존하기 때문에 심리치료자와 환자는 말로 나타나지 않는 것을 ‘제3의 귀’로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마음챙김 명상은 거의 모든 생각을 내려놓기 때문에 다른 심리치료 전통과 구분된다. 마음챙김 수행은 언어에 의해 중재되지 않은 집중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심리치료에서 이해되는 내용 또는 이야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또한 과거나 미래에 대한 광범위한 사고에 빠져 있다면 마음챙김 수행 영역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7. 불교, 무아 통찰력을 배양한다 ▲ 위로
심리치료는 개개인을 문화에 맞춰 정상적 발달로 복귀시키거나 각 개인이 속한 사회에 최대한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불교심리학은 사회로의 복귀보다는 인간의 내재된 문제인 탐욕, 분노, 어리석음을 소멸시키는 것, 그래서 최상의 행복을 자신의 힘으로 경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다른 표현으로 하면, 불교는 인간의 실존적 괴로움을 포함한 인간의 보편적인 괴로움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데 비해, 심리치료는 실존적 괴로움에 대한 회피나 저항 그리고 관계에서 초래된 다양한 신경증적인 괴로움을 치료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서양심리학 전통에서 건강증진의 의미는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개별화되는 것과 스스로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아는 것과 자기 자신의 경계에 적절히 존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명확하고 안정된 주체와 결합과 존중된 자아에 대한 감각이 있어야 한다.
성공적인 정신치료의 종착지는 인간의 불행…
명상수행의 출발점 심리치료는 개개인을 문화에 맞춰
서양심리치료에는 “자존감을 살리고, 관계에서 자신의 요구가 무엇인지 알아내고, 자아에 좀 더 밀착하고, 자기 영역을 확립하고 그 영역을 관계에서 유지시키는” 등의 의도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불교의 마음챙김은 자아감을 회복시키는데 필요한 기술이 아니다. 마음챙김의 목적은 어떤 사람이 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무아(no-self)에 대한 통찰력을 배양하는 것이다. 심리치료와 마음챙김 명상은 이 점에서 현저하게 다르다. 마음챙김 명상은 정신적, 정서적, 도덕적 그리고 일반적으로 말하는 “깨달음”이라고 부르는 영적인 자유에서 부족함을 느끼지 않기 위한 것이다.
실체 없는 자아(無我)의 관점을 이해하는 것은 마음챙김을 탐구하는 서양인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도 가장 어려운 과제중 하나일 것이다. 불교 명상에서 기르는 ‘무아(no-self)’의 통찰력은 늘 변화하는 일정한 흐름, 움직임의 세계 즉 무상(無常)의 경험에 근거해서 생기는 것이다. 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는 처음에 인간의 동기의 원천으로 두 가지 추동을 가정했다. 성(erotic)과 공격성(aggressive)이다. 이것은 본능이며 변하지 않는다고 단언하였다.
불교심리는 고통을 불러일으키는 세 가지 근본 원인인 탐, 진, 치를 말한다. 처음 두 가지 원인과 프로이트의 본능은 유사하다. 성적 추동(erotic drive)은 탐욕, 그리고 공격적 추동은 분노라고 할 수 있다. 정신역동과 마음챙김 명상 전통에서는 이러한 힘들이 어떻게 정신 건강을 파괴하고 있는지 설명하고 있고 이들의 영향을 이해하고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그것들을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 반면 불교 심리에서는 그것들을 단번에 그리고 영원히 뿌리 뽑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러한 관점에서 불교 심리는 성공적인 정신분석치료의 종착지를 일반적인 인간의 불행으로 보고 이것을 병리학적 관점에서 명상 수행의 출발점이라고 한다. 그리고 증상 완화를 넘어 고통을 넘어선 상태로 도달하게 한다. 심리치료와 불교 사이에 분명한 차이는 대인 관계의 역할이다. 대부분의 정신역동과 행동주의 심리치료는 치료자와 환자(내담자)라는 두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이는 의미 있는 대인관계로 나타난다.
그룹과 가족 치료도 대인관계에서 유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어떤 심리치료는 홀로 행해지기도 하지만, 심리치료에서 관계는 중요하다. 혼자 하는 불교명상은 친밀한 관계에서 비롯되는 귀찮은 압력으로부터의 탈출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명상이 ‘치료’의 가장 복잡한 형태라고 말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명상은 대인관계의 문제를 드러내지 않은 상태로 남겨놓을 것이다. 특히 명상지도자는 역전이(count-transference)의 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
자신이 지도하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내적인 분노를 발산하거나 잘못된 애착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는 말이다. 서양의 많은 명상센터들에서 주기적으로 그들의 집단에서 나타나는 ‘역전이’로 말미암은 심리증상 때문에 임상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다.
8. 행복을 경험하도록 돕는가 ▲ 위로
명상의 체계적 탐구의 목적은
과학적 감시하에 있는 반복 가능한 현실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의 목적을 위한 이해를 추구한다
‘지지’에 대한 이해의 차이점
내담자나 환자가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심리적인 문제에 당면하였을 때, 그 어려움에 직면하기 위한 개인의 노력을 지지하는 심리치료의 구성요소는 중요하다. 이론의 여지는 있지만, 심리치료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은 치료기법보다는 틀림없이 치료자와 내담자의 치료관계의 질일 것이다. 치료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치료자의 열린 마음과 받아드릴 준비가 되어있는 자세이다. 치료자가 진정으로 두려움이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환자는 고통스럽거나 치욕적인 경험과 기억들에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치료자의 지속적인 관심과 진정한 배려, 프리이트가 말하는 ‘고르게 떠있는 주의’(evenly-hovering attention)로서 전문적으로 중립을 지킨 공감, 한결같은 관심과 진심어린 배려도 치료에 도움이 되는 환경을 조성해준다. 이것이 정신역동심리학자인 위니컷(Winnicott)이 말한 ‘버텨주는 환경’(holding environment)이다. 이러한 지지가 심리치료에서 중요하다고 하여 정신분석가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자질이라고 하였다.
불교의 마음챙김은 잘 발달된 수행법이고 2000년 이상 열성적인 수행자에 의해 그 수행의 결과를 성취해 왔다. 명상수행은 때로는 험난할 수 있지만, 수행의 구성요소를 포함하여 개인의 노력을 지지하는 많은 요소들이 있다. 지도(地圖)로써의 전통적 가르침으로 초기경전과 <청정도론> 등과 같은 수행법을 해설한 전문적인 논서를 통해서 명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 일어날지 모르는 다양한 장애를 이해하고 다루는 법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전통적으로 불교교단이 담당했던 명상을 가르치고 함께 수행하는, 같은 성향의 사람들의 집단은 수행의 초보자들에게는 많은 지지가 된다. 지혜와 자비를 갖춘 경험 있는 수행지도자나 수행동료 등 다른 사람의 경험을 모델로 삼는 것도 지지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열심히 노력하여 성공적인 수행 경험을 하게 되었을 때 그 노력은 더욱 강화된다. 이러한 요소들과 함께 집중의 힘, 바른 신체 자세 등도 불교명상을 위한 지지 환경을 만들어 준다.
진리에 대한 이해의 차이
심리학의 과학적 방법은 관찰, 가설, 실험과 복제를 통해 예언하고 현상들을 조종하려고 노력한다. 이는 서양의 이성적 전통과 일관된 기초적 믿음을 표현하고 있다. 사실(true)인 것은 우리의 해석과 상관없이 사실이고 진실(truth)은 객관적인 것이다.
불교명상에서의 진실(truth)은 약간 다르다. 명상의 체계적 탐구의 목적은 과학적 감시하에 있는 반복 가능한 현실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의 목적을 위한 이해를 추구하고 있다. 이는 수행자 개개인이 심리적으로 자유로운 상태가 되고 행복을 경험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불교 명상은 현실에서 경험될 수 있는 실용적 적용과는 거리가 먼 객관적 진실을 찾는 것을 강조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명상은 상당히 경험적인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불교와 심리치료의 보완적 입장
심리치료와 불교명상은 모두 정신적 고통의 제거에 중점을 두고 있고, 최근에 양자는 공통기반을 찾기 위한 보람 있는 노력을 해나가고 있다. 각 전통의 정중한 평가를 내리게 되면, 각각의 강점과 취약점을 설명하고, 어느 한쪽의 입장에서 다른 쪽을 격하시키는 일을 피하며, 각각의 전통 안에서 각 실천의 본래의 모습을 간과하게 되는 위험을 경고해준다. 불교와 심리치료 전통이 함께 이러한 예방책을 택하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심리치료에서 마음챙김을 위시로 한 불교심리학의 역할이 보다 확장되고 깊어질 수 있는 탐구의 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불교도 심리치료에서 얻을 수 있는 현대의 지혜에 마음을 열어 놓을 수 있을 것이다.
9. 명상만으로는 정신치료 불가 ▲ 위로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무아’ 체득해야”
엡스타인, 정신분석.정신치료계에 제시
정신분석과 불교의 접목을 본격적으로 다룬 정신의학자는 마크 엡스타인(Mark Epstein)이다. 그에 의하면 불교를 나르시시즘에 대한 추구로 해석하는 프로이트로 대표되는 기존의 정신분석학계의 해석은 잘못된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며, 불교와 정신분석 심리학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
그는 프로이트의 불교에 대한 오해가 불교적 접근이 심리학에 줄 수 있는 잠재적 공헌을 닫아버렸다고 하며, 그의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정신분석과 불교의 통합 시도에 의해 많은 정신역동 임상가들의 불교심리학에 대한 호기심이 촉발되었다.
엡스타인은 1995년에 출판된 <붓다의 심리학>에서 여섯 갈래의 윤회인 6도 윤회를 신경증적 마음에 대한 불교적 모델로 해석하였다. 즉 지옥은 공포, 적의로 대표되는 신경증적 상태로 해석하였고, 아귀는 성취되지 않은 갈망으로 대표되는 상태로, 축생은 식욕과 성욕의 본능, 욕구, 충동으로 대표되는 상태로, 아수라는 자아의 공격적 에너지로 대표되는 상태로, 인간은 거짓 자기, 나르시시즘으로 대표되는 상태로, 천상의 존재는 자아경계가 일시적으로 소멸된 대양적 느낌으로 대표되는 신경증적 상태로 해석하였다.
그는 이처럼 윤회의 세계를 인간의 다양한 심리 상태로 해석하면서 종교적 색채를 배제하려 하였다. 이 시도는 심리치료의 입장에서 불교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볼 수 있다. 불교는 이러한 신경증적인 상태를 극복하는 심리학적 가르침이며 특히 불교의 핵심적인 가르침으로 사성제를 통해 불교심리학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불교의 순수한 주의집중인 마음챙김과 정신분석학의 기억, 반복, 훈습이라는 심리치료의 방법을 비교한다.
엡스타인은 개인적으로 정신분석을 통해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명상 수행을 통해 해결하였다고 한다. 그는 명상 자체는 사람들의 감정문제를 해결하는데 특별히 효과적이지 않다고 하면서, 명상이 인간을 덜 수용적이고 덜 방어적인 존재로 만들 수 있지만, 치료자의 개입 없이는 마비를 불러일으킬 수 위험이 있다고 하면서, 명상은 자아에게 성공적인 정신치료에 필수적인 힘을 부여할 수 있지만, 명상만으로는 정신치료를 할 수 없다고 한다.
엡스타인은 이 책 전체를 통해서 우리가 가진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자아(Self)’의 실체가 없다는 무아를 체득해야 한다는 것을 정신분석과 서양 정신치료계에 제시하고 있다.
이후 엡스타인의 입장에 동의하는 많은 심리학자들이 불교와 정신역동심리학을 비교한 저술을 발표하였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학자는 제프리 루빈(Jeffrey B. Rubin), 안소니 몰리노(Anthony Molino), 제레미 사프란(Jeremy D. Safran), 하비 아론손(Harvey B. Aronson) 등이다. 루빈은 <심리치료와 불교>에서 정서적 안녕감을 정신분석의 모델로 설명하는 것은 한계에 도달했으며, 불교에서 제시하는 건강 모델이 정신분석을 보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하며, 정신분석가들은 명상 수행에 의해 얻은 주의와 집중의 힘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고, 불교 스승들도 정신분석에서 배울 것이 많다고 하였다.
몰리노 등은 <카우치와 나무>라는 불교와 정신분석학에 관련된 논문집을 편집하였다. 샤프란은 <정신분석과 불교: 대화나누기> 에서 불교의 가르침은 다양한 서구 문화에서 발견되며, 불교는 구시대의 정신분석학적 사유방식을 성장시킬 수 있다고 하였다. 아론손은 <서양의 토태에서 불교실천: 동양 사상과 서양심리학의 조화> 에서 서양 심리학과 테라와다 및 티베트불교 수행이 서로 어떻게 유익하며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 주는지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저술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정신분석/정신역동심리학과 불교의 공통점은 두 영역 모두 고통의 감소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과 지각과 감정, 자아감을 포함한 개인의 현실 역동을 찾는 데 경험적 접근방식을 활용한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10. ‘팔정도’로 괴로움 소멸 ▲ 위로
엡스타인, ‘마음챙김’을 ‘정신분석 기법’과 비교
불교는 생로병사의 인간의 실존적인 괴로움(苦苦)과 원증회고(怨憎會苦), 애별이고(愛別離苦), 구부득고(求不得苦)의 정서적인 괴로움(壞苦)을 포함, 존재를 구성하는 오온(五蘊)을 영원한 자아라고 집착하는 것을 괴로움(五取蘊苦, 行苦)으로 본다.
엡스타인은 괴로움을 전반적인 불만족으로 해석하였다. 고고(苦苦)는 피할 수 없는 현상으로써 인간이 바라는 불멸(不滅)의 환상과 충돌하는 것으로 보았다. 괴고(壞苦)는 호불호(好不好)를 원인으로 하는 불만족의 느낌이다. 행고(行苦)는 ‘자기 자신에 대한 불만족’으로 불완전성, 비실체성, 불확실성, 불안정한 정서에 영향을 받는다고 보았다. 그의 이러한 해석은 심리적 괴로움의 측면을 강조한 것이며 ‘이루지 못한 불멸’과, ‘불만족의 느낌’ 때문에, ‘초자아(superego)’ 즉, 이상적 자아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오는 2차적인 괴로움이다.
초기경전에서 괴로움의 원인은 3가지 갈애(渴愛)로 제시되는데, 감각적 쾌락, 존재(有), 비존재(非有)에 대한 갈망을 말한다. 엡스타인은 이 갈애를 프로이트가 제시하는 정신의 구성 요소인 본능(id), 자아(ego), 초자아(superego)로 해석하였다. 감각적 쾌락에 대한 갈애(欲愛)는 프로이트의 쾌락원칙(id)과 그 의미가 상통한다고 보았다. 존재에 대한 갈애(有愛)는 과대감으로 나르시시스적 갈망, 즉 자신의 이미지에 사로잡혀 그 자족감(自足感)을 추구하는 갈망으로 보았다.
불교의 유애(有愛)는 ‘행복을 경험하는 자아가 영원히 존속하기를 바라는 갈망’이다. 이에 반해 엡스타인은 자아추구의 부정적 측면을 유애(有愛)로 보았다. 프로이트는 ‘본능(id)과 초자아(superego)가 있는 곳에 자아(ego)가 있게 하라’라고 하면서, 건강한 자아에 대한 추구를 강조하였다. 이는 정신분석치료의 1차적 목표가 자아의 강화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때문에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건강한 자아(ego)에 대한 추구는 치료의 핵심요소로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불교의 가르침에서 유애(有愛)는 초자아(superego)에 대한 갈망뿐만 아니라 자아(ego)에 대한 갈망도 포함한다.
엡스타인은 비존재에 대한 갈애(無有愛)를 공허감과 연관되는 ‘자신의 무가치성에 대한 믿음’ 혹은 허무주의로 보았다. 무유애가 괴로운 현실을 회피하는 방법으로 죽음을 갈망하는 것이므로 불교의 입장과 유사하다.
불교는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를 남김없이 소멸시킨 것을 괴로움의 소멸이라고 한다. 한편 엡스타인은 그 상태를 ‘승화(sublimation)’로 보았다. 안나 프로이트가 주장한 자아의 방어기제의 하나이인 승화는 정신적 전환 상태로, 자아 리비도(ego libido)와 대상 리비도(object libido)의 에너지를 현실에서 수용 가능한 형태로 바꾸는 것을 말한다. 정신분석의 입장에서 승화는 ‘유아의 소망적 충동의 불가능한 요구들’로부터 벗어 날수 있는 가능성으로, 충동이 더 상위의 목표로 대체되는 것이다.
이러한 엡스타인의 해석은 불교의 전통적인 갈애의 소멸과 차이를 보인다. 불교에서 말하는 갈애가 소멸된 상태는 생로병사(生老病死) 등의 모든 괴로움이 소멸한 열반(涅槃)을 의미한다. 승화는 ‘유아기에 형성되는 충동’에서 형성되는 갈애(渴愛)를 수용 가능한 형태로 전환시킴으로써, 현재의 괴로움을 유발하는 ‘불가능한 욕구’로부터 벗어나는 상태, 추동적 에너지를 좀 더 건강한 성장을 위한 형태로 전환하는 것이므로, 불교의 관점에서 보면 세속적인 선업(善業)을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는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로 팔정도(八正道)을 제시한다. 엡스타인은 팔정도 가운데 특히 바른 마음챙김(正念)을 정신분석 기법과 비교하고 있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의 방법 꿈의 해석, 자유연상과 함께 분석가가 지녀야할 태도로 ‘고르게 떠있는 주의(evenly-hovering attention)’를 강조하였다. 이러한 주의에 대한 강조를 팔정도의 마음챙김과 비슷하다고 본 것이다. 엡스타인의 이러한 이해에 대해 많은 심리학자들이 동의하며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으로 마음챙김 명상(위빠사나)을 통해 주의를 기를 수 있다고 보았다.
11. 인본주의 치료, 불교와 만나다 ▲ 위로
브레이저 박사, 서양심리치료와
아비담마 선불교 등 접목 시도
인본주의 심리학은 ‘인간의 내적 과정을 무시한 채, 관찰 가능한 행동만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미국 심리학계를 중심으로 한 행동주의의 기계론적 인간관’과 ‘인간행동은 무의식적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인간을 무의식에 의한 결정론적인 존재로 보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의 결정론적 인간관’을 비판하면서, 1940년대 후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심리학의 제3세력이다. 인간존중과 인간 잠재성을 탐구하는 심리학의 사조로 대표적인 학자로는 아브라함 매슬로우, 칼 로저스, 프리츠 펄스 등이 있다. 이들에 의해서 상담과 치료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이 증대되었다.
칼 로저스, 아브라함 매슬로우와 프리츠 펄스에 의해 주도된 인간의 잠재성 운동과 제3의 치료 이론의 물결은 1950년대와 1960년대 심리학과 심리치료를 대중화 했다. 심리학과 심리치료를 의료 전문가들의 영역에서 가져와 좀 더 평등주의적 철학을 만들어냈다. 정신분석가와 행동주의자 사이에 위치한, 제3세대 치료 이론은 자신을 새롭고 차이가 나는 운동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심리학적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환자(patient)가 아니라, 내담자(client, 의뢰인)가 되었다. 이러한 용어의 변화는 칼 로저스에 의해 도입되었다. 이는 전문가들의 권위적인 태도에 저항하는 것이었다. 용어의 변화가 결과에 미친 영향을 보는 것은 흥미롭다. 의료나 치유의 맥락에서 치료를 받는 입장에서, 치료를 소비자의 맥락으로 재위치 시켰다.
인본주의 심리학/심리치료와 불교를 접목시킨 대표적인 심리치료자는 영국의 데이빗 브레이저(David Brazier) 박사이다. 그는 2010년 처음, 한국불교심리치료학회(cafe.daum. net/kabp)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여, 자신의 불교심리치료에 대해서 소개한 적이 있다. 그는 1995년, <선 치료(Zen Therapy)>를 통해서 서양 심리치료와 초기불교 및 아비담마, 선불교 및 정토사상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불교전통과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 이후 그는 1997년 <느끼는 붓다(The Feeling Buddha)>, 2001년 <새로운 불교 (The New Buddhism)>, 2005년 <사랑하는 사람은 편히 죽는다(Who Loves Dies Well)>, 2009년 <사랑과 그 실망( Love and Its Disappointment)>을 저술하며, 불교심리치료이론을 발전시켜왔다. 그는 파트너인 캐롤라인 브레이저와 함께 ‘타인중심치료(Other-Centred Therapy)’라는 불교의 세계관과 가치관에 입각한 불교심리치료의 이론과 실천 체계를 정립시켰다.
브레이저는 1970년경, 처음 선불교를 접하면서 선이 가진 심리치료적인 힘을 경험한다. 하루 종일 수행을 하고 지도자와의 면담에서 “보고할 내용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궁극적 진리에 대해 무엇인가 말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으로 느껴졌고, 이 질문으로 세상을 보는 시각이 전환되어 “새들이 노래하고 있군요”라고 대답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브레이저는 근본적으로 인생의 방향이 바뀌었다고 한다. 이후 초기경전과 아비담마에 대한 개인적인 연구와 티베트 불교, 선불교(일본 임제종), 정토불교 등 다양한 불교전통을 배우고 실천하였다. 1981년에 아미다 트러스트라는 단체를 설립하여, 현재까지 이 단체를 이끌고 있으며, 1995년부터 이 단체의 프로그램은 불교정신에 근거한 신행과 다양한 사회참여를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브레이저는 1978년에 스리랑카의 뿐나지(Punnaji)스님이 발표한 <심리치료로서 불교: Buddhism as A Psychotherapy>(http://purifymind.com/BuddhismAsPsycho.htm)에서 ‘불교가 종교나 철학으로서 뿐만 아니라, 심리치료로서 현대세계에 소개된다면 부처님의 메시지는 올바르게 이해될 것’이라고 한 말에 영향을 받았고, 심리치료자이자 불교도, 그리고 사회활동가로서 전세계를 무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12. 상담자, 세 가지 덕목 갖춰라 ▲ 위로
브레이저의 <선치료>는 불교와 심리치료를 연결하기 위한 노력의 일차적인 성과인데, 그의 기본적인 심리치료 입장은 내담자 중심치료의 창시자이자 인본주의 심리치료의 대표자의 한 사람인 칼 로저스(Carl Rogers)의 상담법이라고 할 수 있다.
로저스가 말하는 상담자의 세 가지 핵심적 치료 태도인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 공감적 이해, 진솔성을 각각 불교의 3가지 선근(善根)인 탐욕 없음(無貪), 분노 없음(無瞋), 어리석음 없음(無痴)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시각은 상담자 태도란 곧 불교의 선근(善根)을 갖추는 것임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慈)과 연민(悲)과 지혜라는 세 가지 덕목이 바로 탐진치가 없는 삼선근(三善根)으로 보고 있다.
그는 만일 심리치료를 약간의 기법을 배운 뒤에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이라고 생각하면서 치료자가 내면의 공간을 마련해놓지 않을 때 빠질 수 있는 병폐를 지적한다. 그는 심리치료자가 되기 위해서는 삶에 대한 검증을 통과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자만심을 내려놓는 법을 배워서 마음의 공간을 정화해야 한다고 한다.
사랑 연민 지혜가 탐진치 없는 삼선근
공안은 ‘심리치료와 오계’ 결합시킨 것
불교의 불성(佛性)에 대한 믿음과 인간의 성장가능성을 강조하는 인본주의는 같은 입장이라고 하면서도 인간이 실존적인 딜레마에 있다는 점에 대해서 인본주의에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한계점도 지적한다. 선(禪)은 생태학적인 관점에서는 자아도취에 빠질 수 있는 인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자아초월 심리학(Transpersonal Psychology)의 입장에 가깝다.
브레이저 박사는 선(禪)불교의 공안(公案)은 심리치료와 윤리(5계)를 결합시킨 것이라고 한다(4장). 내담자가 가져오는 풀 수 없는 문제(윤리적 갈등 또는 딜레마)를 공안으로 생각하여, 좀 더 솔직하게 자신의 자아와 대면하도록 인도한다. 살생 등을 삼가는 5계를 지니는 것은 자신의 삶을 찾는 방법이며, 남을 돕는 것이 자신을 돕는 것임을 이야기하면서 심리치료자는 대승의 보살임을 역설한다. 따라서 괴로워하는 내담자를 돕는 상담 및 심리치료는 불교에서 말하는 보살행으로 여겨진다. 한편 정신분석가와 보살은 신경적 자극을 받지만 이를 알아차리고 내담자를 돕는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이동식 박사의 도(道) 정신치료의 입장을 인용하기도 한다.
심리치료자는 기쁨(piti, 喜), 마음집중(samadhi, 定), 마음챙김(sati, 念)을 통해 평정(upekkha, 捨)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하여 평정으로 바탕으로 자애(metta, 慈)와 연민(karuna, 悲)과 지혜(pan~n~a, 慧)를 성숙시켜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러한 덕목을 갖추어야 내면의 공간을 확보하게 되고, 자기 정화를 바탕으로 한 상담 및 심리치료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2부의 불교심리학에서는 팔리 아비담마의 핵심적인 가르침이 24조건(緣)설을 바탕으로 불교와 심리치료의 공통점을 탐색해 간다(part 2: Buddhist psychology). 근본원인, 대상관계, 우월관계, 연상, 순서적인 연상, 함께 발생, 상호조건 등의 불교의 조건론과 서양심리학을 대비시켜가면서 불교심리학과 서양심리학의 유사성을 제시한다.
예컨대, 불교의 근본 인연(Root Relations, Hetu)은 탐, 진, 치에 의해 조건 지워지고, 그 반대의 것들인 무탐, 무진, 무치에 의해 조건 지워지지 않는데, 무탐, 무진, 무치는 칼 로저스 이론에서 상담자의 3가지 태도와 유사하다고 한다. 대상 인연(Object Relations, Arammana)의 경우에는 마음의 상태는 주의 대상에 의해 조건 지어지는데, 브레이저 박사의 타인 중심 접근이 이 입장과 유사하다. 이와 같이 아비담마 교학에서 제시하는 24가지 조건을 심리치료와 비교하면서 대조하고 있다.
13. 수행-상담가 되는 길은 같다 ▲ 위로
진정한 공동체 만드는 것은
곧 정신질환을 예방하는 것
브레이저는 유식사상의 8식설을 통해서 자아 콤플랙스인 7식 자아의식과 오랜시간 동안 우리가 만들어온 모드 집착과 업을 저장하고 있는 무의식인 8식을 설명한다. 7식은 에고 콤플렉스에 의해 통제되며, 에고 콤플렉스는 모든 것을 자기 방어적 혹은 자기 확장적인 방식으로 조직하려고 애쓴다. 조건적인 마음 상태인 7식과 8식은 함께 작용하여, 6식이 존재의 본성인 불성(佛性)을 보지 못하게 한다. 마음의 조건화 작용이 중지되면, 7식이 쉬게 되고, 8식도 잠잠해져 마음은 불성의 빛으로 가득차게 된다. 이 때 그 의식은 이 빛으로 주변세계를 비추게 된다. 이 빛이 바로 대지혜다.
브레이저는 불교의 근본적인 목적이 탐진치라는 3불선(不善)의 뿌리를 없애는 데 있음을 <선치료>에서 자주 강조한다. 이 덕목은 로저스가 말하는 상담자가 갖추어야 하는 세 가지 태도와도 일치하기 때문에 불교 수행과 상담가가 되는 일은 같은 일이 된다고 한다.
브레이저는 말한다. 선(禪)에는 초기불교의 욕망을 멀리하는 은둔자의 입장과 타인의 괴로움을 느끼면서 타인에게 봉사하는 것을 수행의 방편으로 삼는 대승불교의 보살도와 우리가 겪는 모든 경험을 축복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순수한 영역(淨土)으로 직접 들어가는 밀교의 탄트라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초기불교, 대승불교, 밀교라는 세 가지 수행을 심리치료에 사용할 수 있도록 변형시키면, 좋은 씨앗 찾기(심층적으로 관찰하기), 정체감에 대한 인식 바꾸기(부정적 경험과 동일시하지 않고, 내면의 청정한 생명에너지 발견하기), 유익한 마음의 비전 세우기(내면의 에너지의 방향을 자신과 타인의 이익을 위해 재조정하기)가 된다.
브레이저는 선(禪)에서 깊이 듣는 것을 배우고,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을 배우며, 감사한 마음으로 알아차리는 것을 배운다고 한다. 이런 수련은 단순히 심리치료 기법을 50분간 적용하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이것은 단지 관념이 아니라, 존재의 길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심리치료란 충만한 생동감을 체험하는 만남이며, 가슴에서 가슴으로 이루어지고, 예측할 수 없는 내면의 과정을 따라 전개된다고 한다. 그리고 나에 대한 집착을 더 잘 내려놓을수록 치료를 위한 좋은 조건을 더 성공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근본적인 치료의 원리는 사랑과 이해 즉 자비와 지혜라고 하면서, 우리의 과제는 마음 내면에 있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한다.
선의 반야는 자애(慈)와 연민(悲)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지혜가 표현되는 방식으로 보시(布施), 애어(愛語), 이행(利行), 동사(同事)의 사섭법(四攝法)을 제시한다. 보답을 바라지 않고 베풀어주는 보시, 다른 사람에게 자비로운 존경으로 가득찬 말을 하는 애어, 타인에게 이익이 되게 하는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나와 남을 구별하지 않는 대자대비로 가득한 동사는 바로 사랑이자 지혜로서 불교수행자 뿐만 아니라, 심리치료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 된다.
브레이저는 마음으로 만들어낸 환상으로 가득 찬 세상을 지혜로 보면, 모든 것은 무상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한다. 무상을 이해할 때, 우리는 자신을 우울하게 하는 대상에 대한 집착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게 된다. 죽음이나 상실은 더 이상 우리에게 문제가 되지 않게 된다. 그는 마지막 장에서 인간 공동체 안에서의 조화뿐만 아니라, 자연과의 생태적인 조화를 강조하는 불교의 입장을 통해 참다운 심리치료는 개개의 인간뿐만 아니라 온 지구를 어떻게 치유할 것인지에 대한 비전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 선치료를 마무리 하고 있다.
선을 포함한 모든 불교전통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의 하나는 진정한 공동체의 재창조라고 하며, 수행을 지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상가(sangha)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진정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정신질환을 예방하는 것이며, 심리치료는 관계에 의존함을 강조하면서, 최근 서양의 심리치료는 공동체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선(禪)의 삶을 사는 사람은 홀로 있다할지라도 공동체 속에 함께 있는 것이고, 다른 사람과 함께 있어도 홀로 있는 것이라고 한다.
14. 제3동향 배경은 위빠사나 ▲ 위로
미국을 중심으로 발전한 인지행동치료(CBT: Cognitive Behavior Therapy)는 제1세대로 파블로프와 스키너의 행동주의에 입각한 조작적 조건화에 의한 행동치료가 등장하였고, 제2세대로 아론 베크와 엘리스의 인지치료를 거쳐서, 제3세대인 마음챙김과 수용을 도입한 인지행동치료의 제3동향으로 변천해왔다.
먼저 부적응적인 외적 행동에 초점을 두는 행동주의적 접근은 처음에는 주관적 경험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스키너는 <행동주의에 대하여>에서, 행동주의는 마음(mind)은 탐구할 필요가 없는 ‘블랙박스’라고 하였으며, 심리적 어려움은 부적응적 강화 수반의 결과라고 하였다.
1970년대 중반 본격적으로 알려져
심리치료와 만나는 데 10여년 걸려
하지만 제2세대의 행동주의자들을 대표하는 아론 베크(Beck, <인지치료와 정서적 장애>)와 알버트 엘리스(Ellis, <심리치료에서 이성과 정서>)는 결국 주관적인 경험에 관심을 보였다. 그들은 부적응적 행동과 결합된 사고, 감정, 이미지 때문에 그러한 행동이 일어나기 때문에 사고, 감정, 이미지가 인과관계의 중요한 고리임을 밝혔다.
이후, 인지행동치료는 의식을 통해 흘러가는 사고, 느낌, 그리고 이미지를 포착하거나 알아차리기 위한 기법으로 등장했다. 특히 ‘비합리적’ 사고를 괴로움의 원인으로 간주하였다.
인지행동치료는 동일시와 부적응적인 행동으로 이끄는 비합리적인 사고 패턴의 변화를 강조하고 있다. 비합리적인 사고는 분류되고, 도전되고, 더 합리적인 사고로 대치된다. 합리적 사고에 의해 더욱 적응적이고, 만족스러운 행동을 하게 된다. 특히 마음챙김에 근거한 인지행동치료의 발전과 함께 이 접근법은 최근에 영역을 넓히고 있는데, 이 방법은 이전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없애기 보다는 수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변형적일 수 있다는 불교의 마음챙김 명상에서 빌려온 것이다. 다양한 전통에서 발전하고 있는 인지행동치료 가운데 불교의 마음챙김의 원리를 바탕으로 현재 경험에 대한 상위인지적(meta-cognitive) 알아차림과 심리적 경험의 수용에 역점을 두는 새로운 접근법이 대두하게 된 것이다.
인지행동치료의 제3동향의 배경에는 태국과 미얀마에서 1950년대에 대중화되기 시작한 위빠사나 수행(마음챙김 명상)운동이 있었다. 이 위빠사나 수행은 1970년대 중반에 서양에 본격적으로 알려졌고, 이렇게 전해진 마음챙김 명상이 심리치료와 만나는 데는 10여년의 시간이 걸렸다. 미국에 마음챙김 명상이 시작된 것은 나로파대학에서 죠셉 골드스틴과 잭 콘필드가 1974년에 처음 집중수행을 실시한 때를 기점으로 하고, 1976년 이래 메사츄세츠주의 IMS(Insight Meditation Society)에서 정기적인 수련을 시작하면서 활성화된다.
이미 1972년에 미국에서 선을 지도하기 시작한 숭산스님에게 선불교를 배운 경험이 있었던 메사츄세츠 의과대학의 존 카밧진 박사는 1970년대 후반에 마음챙김 명상을 접하고, 1979년부터 만성 통증과 스트레스로 괴로워하는 일반인들을 중심으로 마음챙김에 근거한 스트레스 감소(MBSR)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MBSR은 행동의학(심신의학)에 근거해 있고 그 효과가 임상적, 과학적으로 입증되어 왔다.
이를 계기로 마음챙김은 인지행동치료의 중요한 치료 개입방법으로 도입되는데, 거기에는 네 가지 주요 접근법이 있다. (1)육체와 정신적인 건강에 대해 복합적으로 적용되는 8주에서 10주의 마음챙김에 근거한 스트레스 감소(MBSR: Kabat-Zinn)프로그램. (2)환자들에게 생각을 관찰하는 것을 가르치는, 인지치료법과 우울증 치료에 적용된 마음챙김에 근거한 인지치료(MBCT: Segal, Willams, Teasdale), (3)경계성 성격 장애와 일반적인 정동 조절(affect regulation)에 사용된 변증법적 행동치료(DBT: Linehan). (4)환자들에게 불유쾌한 감각들을 제어하기 보다는 수용하도록 용기를 북돋는 수용-참여(전념)치료(ACT: Hayes) 등이 있다.
15. 위빠사나 명상 의료현장 정착 ▲ 위로
서양에서 위빠사나 명상이 의료 현장에서 공식적인 치유 프로그램으로 정착하게 된 계기는, 존 카밧-진 박사의 ‘마음챙김에 근거한 스트레스 완화(MBSR)’프로그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해도 좋다.
카밧-진 박사는 1979년 메사추세츠 주립병원에서 만성병 환자를 대상으로 MBSR프로그램을 도입하였다. 카밧-진은 MIT의 분자생물학 박사 출신 과학자이다. 그는 대학시절부터 요가를 실천해왔으며, 1970년대 초에 숭산 대선사를 통해 한국의 선불교를 익히고, 1976년 이후 위빠사나 수행을 만난 후, 자신의 수련 경험을 바탕으로 MBSR프로그램을 만들어, 병원을 중심으로 활동해왔다. 임상적, 과학적 연구결과를 학계에 지속적으로 발표해온 카밧-진 박사의 MBSR은 현재 미국에서만 200곳이 넘는 기관에서 실시되고 있는 보완대체의학의 중요한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았다.
MBSR은 만성적인 통증과 스트레스와 관련된 병을 지닌 환자들을 위해 행동의학의 토대위에서 개발되었고, 마음챙김 명상의 집중적인 훈련에 바탕을 두고 있다. 표준 형식은 2시간 반에서 3시간 동안 진행되는 매주 한 번의 회기를 8주 동안 진행한다. 6번 째 주 중에는 하루 종일 진행되는 마음챙김 수련이 있다. 그리고 마음챙김 수련을 연장한 집에서의 과제 실습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이는 단순히 8주 동안 일주일에 한 번 2~3시간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마음챙김 훈련을 습관화하도록 만든 것이다. 숙제를 성실하게 수행하느냐에 MBSR의 효과가 달려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중요하다. 마음챙김의 생활화가 8주간의 MBSR 프로그램의 목표이기도 하다.
숭산스님에게 참선 지도받은 카밧-진 박사
‘스트레스 완화’ 프로그램 200곳 이상 활용
한 반의 규모는 광범위한 장애와 병이 있는 30명 정도의 참가자로 구성된다. 단체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지만, 집단 치료(group therapy)는 아니다. 개인이 모여 함께 만든 집단 안에서 각자가 자기 명상을 심화시켜나가는 프로그램이라는 의미이다. 이는 불교의 상가 전통과 유사하다. 구성원간의 화합에 의한 지지 환경 안에서 개인은 자기의 실존적 문제 해결을 위해 정진하는 구조가 상가의 본질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수행을 지지해주지 못한다면, 집단은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다. 개인의 성장을 충분히 배려하는 화합된 집단이 중요하다.
명상은 동기가 충분하지 않으면, 중도에 그만둘 확률이 높다. MBSR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주로 만성질환자라는 점과 그 질환이 전통적 의료로는 잘 치료되지 않는다는 것, 그런데 고통이나 스트레스를 완화하기를 원한다는 것은 수련의 좋은 동기가 된다.
집에서의 명상 수련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참가자들은 모든 그룹 회기에 참석하고 매일 집에서 하는 수련 과제(적어도 하루 45분, 일주일에 6일)를 완수하리라는 것을 약속하도록 격려 받는다. 왜 집에서까지 45분씩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카밧-진은 ‘그냥 해보세요(Just do it!)’라고 간단히 대답한다.
MBSR은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 개인적인 면담이 있는데, 그 면담에서 프로그램의 경험과 미래의 목표가 논의된다. 8번의 그룹 회기는 아주 경험적인데, 상당한 시간이 건포도 명상, 바디스캔, 좌선, 마음챙김 요가 등의 마음챙김 수련과 그룹 참가자의 수련 체험에 대한 토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련과 함께 강의를 통해 전달되는 스트레스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의 회기에 포함되어 있고, 스트레스 생리학,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 그리고 스트레스 인식에 대한 평가의 효과에 관한 주제들이 포함되어 있다.
불교 수행을 지도하는 경우, 개인적이거나 그룹을 위한 면담이 수행에 큰 도움이 된다. 수행자들은 자신의 수행상태를 정기적으로 점검받으며 수행을 진행하게 되는데, 이는 안내자와 함께 떠나는 여행과 같이 안전하게 길을 가는데 큰 도움이 된다.
16. 명상을 응용한 대표적 치료법 ▲ 위로
인지행동치료에 불교명상이 응용된 대표적인 치료접근법에는 경계성 성격 장애와 일반적인 정동 조절(affect regulation)에 사용된 변증법적 행동치료(DBT: Linehan), 환자들에게 생각을 관찰하는 것을 가르치며 인지치료법과 우울증 치료를 위해 개발된 마음챙김에 근거한 인지치료(MBCT: Segal, Willams, Teasdale), 환자들에게 불유쾌한 감각들을 제어하기 보다는 수용하도록 용기를 북돋고 가치 있는 삶에 참여하도록 도와주는 수용-참여(전념)치료(ACT: Hayes)가 있다.
‘자비명상’도 주목받기 시작
인지적 문제는 정서 문제와
함께 접근해야 ‘더 효과적’
인지행동치료의 제3 동향의 원리가 되고 있는 마음챙김 명상에 의한 심리적 변화는 어떤 것이며, 마음챙김 명상이 지니는 심리치유적 기능, 심리치유적 효과가 나타나는 심리적 과정 그리고 마음챙김 명상과 기존의 심리치료와 다른 새로운 치료적 효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자기관찰: 관찰자아와 경험자아의 탈동일시를 통해 집착을 방지하게 되어 다양한 심리적 경험을 충분히 자각하되 정서적 동요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분노, 불안, 우울을 유발하는 부정적 경험에 함몰되지 않아, 정서장애를 극복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다.
(2) 마음챙김에 의한 현재의 자기경험에 대한 세밀한 관찰은 자기이해를 깊게 만들며 자신에 대한 통찰을 가져오고, 과거의 부적응적 습관을 약화시키며, 고통과 불안을 유발하는 심리적 경험(스트레스)에 대한 반복적 노출(exposure)을 통해서 그에 대한 인내력을 증진시키고, 정서적 동요가 감소하며 심리적 평정을 얻게 된다. 어떤 감정이나 생각도 일시적인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매순간의 경험이 항상 새롭고 신선하게 느껴지는 탈친숙화가 이루어진다.
(3) 비판단적인 수용적 자기관찰을 통해 이완반응과 같은 정서적 평정과 심리적 자유로움을 얻게 된다. 따라서 우울증이나 불안장애와 같은 정서적 문제를 지닌 사람들이 마음챙김 명상을 통해서 수용적인 자세로 자기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면, 탈자동화가 일어나 정서적 평정과 안정을 얻게 될 것이다.
(4) 성취지향적이고 경쟁적인 행위양식에서 현재의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생생한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양식으로의 전환된다. 존재양식에서는 생각과 감정이 마음에서 일어나는 사건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새롭고 독특한 경험이 펼쳐지는 신선함과 자유로움을 느끼게 된다.
다음은 마음챙김 명상을 심리치료에 활용하기 위한 방법과 고려할 점을 정리해본다.
(1) 마음챙김 명상을 심리치료에 도입하고자 하는 치료자는 스스로 명상을 상당한 수준까지 직접 체험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치료자의 치료적 자질인 주의와 공감 향상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이는 치료자 자신과 내담자 모두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준다.
(2) 치료자는 내담자의 성향과 문제에 따라서 그에 알맞은 맞춤식 명상을 권해야 한다. 일반인의 경우에도 명상하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명상의 방법과 결과가 달라진다. MBSR을 기반으로 우울증에 적용하기 위해 개발된 마음챙김에 근거한 인지치료(MBCT)의 탄생과정은 주의해서 참조해야 할 것이다.
(3) 앞의 (2)와 관련해서 마음챙김 명상을 효과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명상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 마음챙김 명상과 기존의 심리치료방법을 효과적으로 접목하거나 통합한 치료프로그램이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마음챙김 명상의 행동의학적, 심신의학적 통합프로그램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MBSR이다.
만성통증과 스트레스 감소를 위해 개발된 MBSR은 임상적으로 많은 영역에서 그 효과가 입증되어 왔다. 심리치료를 위한 접근과 함께 개인과 공동체의 안녕감(well-being)과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한 통합치유프로그램의 개발이 학제적인 협력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마음챙김 명상과 함께 자애명상의 치료적인 응용도 최근 몇 년 전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인지적 문제는 정서적 문제와 함께 접근할 때 더욱 효과적으로 치유될 수 있다.
17. 번뇌소멸이 곧 불교심리치료 (끝) ▲ 위로
“좋은 스승·지도자에게 배우는 것은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대부분”
그 동안 서양에서 불교와 심리치료가 어떻게 접목되어 왔으며, 현황은 어떠한지에 대해 개관해보았다. 이제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불교심리치료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심리적 불건강의 문제 즉 마음의 괴로움의 문제는 바로 붓다가 치유하고자 했던 핵심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사성제에서 고성제의 첫 번째 진리인 괴로움의 진리에서 사고(四苦) 팔고(八苦)로 제시된 괴로움을 치유하기 위해서 붓다는 괴로움의 원인을 제거하는 길을 선택했다는 점과도 통한다.
인간의 고통을 신체적인 통증의 차원(pain)과 정신적인 괴로움(suffering)으로 구분하고, <괴로움=통증 X 저항>이라는 설명은 통증과 괴로움의 상관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상윳따 니까야>에서는 육체의 통증을 첫 번째 화살이라고 하고, 마음의 괴로움을 두 번째 화살이라고 하여, 첫 번째 화살은 피할 수 없지만, 두 번째 화살은 피할 수 있다고 한다.(SN[36.6])
괴로움을 치유하는 불교의 접근법은 자신의 마음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관찰해서 그 본질을 이해하고, 원인을 규명해서 해결해가는 자기치유의 1인칭적인 접근법이다. 물론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발견하기 어렵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붓다를 위시로 한 스승들에게서 지도받기 때문에 스승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그 점에서 열린 마음으로 공감적인 관계를 맺는 것도 중요한 자기치유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좋은 벗으로서의 스승의 중요성은 이미 붓다가 아난 존자와의 대화에서 밝힌 바 있다. 좋은 스승, 지도자를 가까이 하여 배우는 것은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의 거의 전부라고 할 정도로 중요하다. (SN[45.2])
괴로움에는 실존적인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괴로움과 욕망, 증오, 무지(貪瞋痴)와 관련된 4가지 괴로움이 있다. 즉, 사랑하는 대상과 헤어지는 괴로움(愛別離苦), 미워하는 대상과 만나는 괴로움(怨憎會苦), 구하지만 얻지 못하는 괴로움(求不得苦), 육체와 마음(五蘊)에 대한 집착의 괴로움(五取蘊苦)이다. 이 여덟 가지 괴로움을 팔고(八苦)라고 한다.
이 가운데 생로병사의 괴로움에 대해서 불교는 별 다른 치료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육체가 있는 존재들이라면 누구나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괴로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욕망, 분노, 무지와 관련된 네가지 괴로움인데, 이 괴로움이 바로 심리적 괴로움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불교를 통해 치유되는 괴로움은 이 네가지 괴로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간단히 말하면 육체와 마음(五蘊)에 대한 집착이 바로 괴로움을 치유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불교에서 말하는 괴로움에 대한 이해는 바로 육체와 마음 그리고 그에 대한 집착에 대한 이해로 귀결된다. 괴로움을 없애기 위해서는 그 원인을 없애야 한다.
초기경전에 제시된 괴로움의 원인은 감각적 욕망의 갈애(欲愛), 존재의 갈애(有愛), 비존재의 갈애(無有愛)인 세 가지 갈애이다. 갈애란 목이 타는 듯 한 갈망이다. 이 세 가지 갈애가 완전히 소멸한 자는 바로 초기경전에 등장하는 최고의 성자인 아라한이다. 번뇌를 다한 아라한이야말로 마음의 병을 모두 치유한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욕망의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 인간은 항상 감각적 욕망의 갈애, 존재의 갈애, 비존재의 갈애라는 마음의 병 때문에 괴롭다는 것이다. 서양에서 말하는 마음의 장애 즉 정서적 심리적인 장애가 현실생활에 부적응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면, 불교의 마음의 장애는 현실생활의 부적응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는 근본적인 오염원 또는 번뇌인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에 뿌리를 둔 모든 해로운 심리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넓은 의미의 마음의 병이며, 불교에서 말하는 번뇌를 치유하는 것이 바로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것이며, 불교심리치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끝> ▲ 위로
[출처: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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