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엄경

[스크랩] 正本首楞嚴經 券 八

수선님 2018. 1. 1. 12:15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난아! 이러한 중생 하나하나의 종류 가운데 각각  열 두가지 뒤바뀜을 갖춘  것이 마치 눈을 비비면 허공에 어지러운  헛 꽃이 발생하는 것과 같아서 오묘하고 원만하고 참되고  바른 밝은 마음을 뒤바꾸어서 이와 같이 허망하고 어지러운  생각을 완
전히 감추게 되었나니라.

 

네가 지금 부처님의 삼마지를 닦아 증득하려면 그  근본 까닭이 되는 원래의  어지러운 생각에 세 가지 점진적 순서를  세워 놓아야 바야흐로 제거하여 없앨 수 있으리니 이는  마치 깨끗한  그릇에 있는 독한 꿀을 제거하고 끓인 물에 재와  향을 섞어 그  그릇을 깨끗이 씻어낸 다음에야 감로를 담을수 있는 것과  같으니 무엇을  세가지 점진적인  순서라고 하는고하면  

 

 

첫째는 닦고 익힘이니  도 닦는데  방해되는 근본을 제거하는  것이요, 

둘째는 참된 수행이니 그 정성(正性)을 없애는  것이요,

 

셋째는 더욱 나아가는  것이니 그 현재의  업을 어기고 역으로  나가는 것이다.

 

 

어떤 것을 도와주는  원인이라고 하는가 하면 아난아! 이  세계에 열 두 가지 종류의 중생이 스스로 완전할  수가 없어서 네 가지 식사방법에 의하여  살아가나니 그것은 이른바 씹어  먹는 것과 접촉으로  먹는 것과 생각으로  먹는 것과 의식으로  먹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일체의 중생들이 모두  먹는 것을 의지하여 살아간다고 한 것이다. 아난아! 일체 중생이 단 것을  먹기 때문에 살고 독한 것을 먹기 때문에 죽나니  이 모든 중생들이 삼마지를 구하고자 할진댄 마땅히 세상의 다섯  가지 냄새나는 채소를 끓어야 하나니라.

 

 

저 다섯 가지  매운 채소는 익혀 먹으면 음란한 마음을  발생하고 날 것으로 먹으면 성내는 마음이 더해지나니  그러므로 이 세계에서 매운 채소를 먹는 사람이 비록 十二부  경전을 설법한다고 하더라도 시방의  하늘이나 신선들이 그 냄새를  싫어하여 모두가 멀리 떠날 것이요 모든 아귀들은 그가 밥  먹을 적에 그 입술을 핥을 것이므로  항상 귀신과 함께 있게 되어 복덕이  날로 사라져서 영원히  이익이 없을 것이며 또 매운 채소를  먹는 사람은 삼마지를 닦더라도  보살과 하늘과 신선과 시방의  선신들이 와서  수호하지 아니하므로 힘센  마구니의 왕이 그  틈을 타서 부처님 몸으로 가장하고 나타나 설법을 하되  금하는 계율을 그르다고 비방하고  음행, 성냄, 어리석음을 찬양하리니  죽어서는 마왕의  권속이 되었다가 마구니의 복을 다 받게  되면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아난아! 보리를  닦는 자는 다섯  가지 매운 채소를 영원히 끊어야 하나니 이것은 수행을  증진해 나아  가는 첫번째 차례라고 하나니라.

 

 

어떤 것을 정성(正性)이라고 하는가 하면 아난아!  이 중생들이 삼마지에 들어가려면 먼저 청정한 계율을 엄하게  지켜서 음욕의 마음을 영원히  끊고 술과 고기를 먹지 않으며 불로써 음
식을 깨끗이 하여  날 것의 기운을 먹지 말아야 한다. 

 

아난아!   저 수행하는  사람이 만약 음란한  마음과 살생할 마음을  끊지 않고서는 삼계에서 벗어나는  그러한 이치가 없나니 마땅히  음욕이 독사보다 심하게 여기거나 원수와 도적을 보는  것처럼 해야 할 것이니라.

          

 

먼저 성문의 네  가지 또는 여덟 가지 내침을 당하는  계율을  잘 지켜서  몸을 가다듬어 흔들리지  말고 그런 다음에  보살의  청정한 율의(律儀)를  행하여 마음을  가다듬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하나니라.

          

음욕과 성냄을 완전히 끊어서 금하는 계율을 성취하면  곧 세상에서 서로 낳고  서로 죽이는 일이 영원히 없어질 것이요  훔치는 것과 겁탈을  행하지 아니하여 서로 빚을 짓는 일이  없으면 역시 세상에서 갚아야 할 묵은 빚도 없어지리라.

          

이렇게 청정한 사람이  삼마지를 닦으면 부모가 낳아준  육신에 천안을 필요로  하지 않더라도 자연히 시방세계를 볼 수  있게 되어 부처님을  뵈옵고 법문을 들어서 직접 성인의 뜻을 받들어서 큰 신통을  얻어 시방세계에 노닐면서 숙명(宿命)이  맑아져서 어렵고 험함이  없어지리니 어떤 것을 현재의  업장이라고 하는가 하면  아난아! 이렇게 청정하게 금하는 계율을 지키는 사람이 마음에  탐욕과 음욕이 없어지면 밖의 여섯 가지  대상인 물질에 대다수가 흘러서 빠지지 않게 되리니  흘러 빠지지 않음으로 인하여 근원을 돌려 스스로 돌아가게 되나니  여섯 가지 대상인 물질이 반연하지 않으면 여섯 개의  감각기관은 상대 할 것이 없어져서 흘러감을 되돌려 전일하게 되어서  여섯 가지 작용이 행해지지 아니하여  시방의 국토가 밝고 청정함이  마치 유리 속에 밝은 달을 달아놓은 듯하여 몸과  마음이 상쾌해져서  오묘하고 원만하고 평등하여 크게 편안함을 얻게 될  것이요 일체 여래의  긴밀하고 원만하며 청정하고  오묘함이 다 그  속에 나타나서 이 사람이 즉시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나니라.

          

 

이로부터 점점 닦아서 가는 곳마다 행동을 발해서  성인의 위치에 편안히  서게 될 것이니 이것이 수행을 증진해  나아가는 세 번째 차례이니라.

 

아난아! 너희들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일체 중생이  여래의 혜명각성(慧命覺性)은 누구든지 다 갖추고 있나니  선남자와 선여인이 대승의 경지를 닦는 사람은 삼마지에 대해  가볍게 편안히 보아 비추어서  마음을 항복받고 기미를 기다려서  화합하고 응집해야만 바야흐로 부처님의 도를 이루나니라.


          

아난아! 저 선남자가 욕애가 말라버려서 감각기관과  그 대상이 서로 만나지  않으면 앞에 나타나는 남은 바탕이 다시는  계속하여 생기지 않을 것이요 집착하는 마음이 비고  밝아져서 순수한 지혜만 남게 될 것이며 지혜로운 성품이  밝고 원만해져서 시방세계가 환하게 통해서 그 지혜가 마른 것은  "간혜지(乾慧地)"라고 이름한다.

 

 

욕애의 습기가 처음으로 말라서 여래의  법류수(法流水)와 접하지 못하므로  모든 부처가 비로소  씨앗이 있는 터전에  응할 수 있는  때를 정하여 보배  구슬을 거두어 들여서  보호하면서 항상 이렇게 미묘한 법륜을 굴리셨으니 너는 마땅히  받들어 지켜서 여래께서 수련하던 바른 길을 밟아서 더디게도  말고 속하게도 말아 정상적인 행동을 자세히 살펴야 하나니라.

 

 

아난아! 이 선남자가 이러한 마음으로 가운데로  가운데로 흘러 들어가면 오묘하고  원만함이 열려 퍼지리니 참되고  오묘하고 원만함을 따라서 거듭 참되고 오묘함을 발생하여  오묘한 믿음이 항상 머물러서  일체의 부질없는 생각이 남김없이  없어져서 중도가  순진하게 되는  것을 "신심주(信心住)"라고  하나니라.

          

 

참됨 믿음이 밝고  또렷해서 일체가 원만하게 통해서  오음과 십이처와 십팔계 이 세 가지가 가로막거나 방해하지  못하며 이와같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무수한 겁을 지내는 동안  몸을 버리고 몸을 받던 일체의 습기가 모두 앞에 나타나게  되면 이 선남자가 그것을 모두  기억해 생각해서 잊어버림이 없는 것을  "염심주(念心住)"라고 하나니라.

          

 

오묘하고 원만함이 순수하고 진실하여 참다운  정기가 조화를 발하여 시작없는 과거로부터의 습기가 하나의  정밀하고 밝음으로 통해지거든 오직  정밀하고 밝음으로써 참되고 청정한 데에 나아가는 것을 "정진심"이라고 하나니라.

          

 

마음에 정기가 앞에  나타나서 순수한 지혜로 되는 것을  "혜심주(慧心住)"라고 하나니라.

          

지혜의 밝음을 잡아가져서  두루두루 맑고 고요하여 그  고요하고 오묘한 것이  항상 엉겨 있음을 "정심주(定心住)"라고  하나니라.

          

 

선정 속에  빛이 밝음을 발하여  밝은 성품이 깊이  들어가서 오직 나아가기만 하고 물러나지 아니함을  "불퇴심"이라고 하나니라.

          

마음으로 나아감이 편안해서  이를 보호하여 지키고 잃지  않아서 시방 여래의  기분과 서로 접촉함을 "호법심"이라고  하나니라.

          

밝은 깨달음을 보호하고  지켜서 능히 오묘한 힘으로써  부처님의 자비광명을 돌이켜서  부처를 향해 편안히 머무름이  마치 두 개의 거울이 빛을 서로 대하는 것과 같아서  그 가운데 오묘한 그림자가 거듭거듭  서로 들어가는 것을 "회향심"이라고  하나니라.

          

마음의 빛이 가만히 돌아와서 부처님의 항상 엉겨있는  위 없이 오묘하고 청정함을 얻어서 작용이 없는 경지에  편안히 머물러서 잃음이 없는 것을 "계심주"라고 하나니라.

          

계에 머물러서 자재하여  시방에 노닐면서 가는 것마다  원하는대로 됨을 "원심주"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이 선남자가  참된 방편으로 이 열가지 마음을  발하여 마음의 정기가  빛을 발해서 열 가지 작용을 거쳐서  하나의 마음을 원만하게 이루는 것을 "발심주"라고 하나니라.

          

마음 속에서 밝음을  발함이 마치 맑은 유리 속에 정밀한  금을 달아놓은  듯하거든 앞의 오묘한  마음으로 이를 밟아  지반(地盤)을 이루는 것을 "치지주"라고 하나니라.

         

심지(心地)에 들어감과 아는  것을 모두가 또렷이 밝음을  얻어서 시방에 노닐면서 머물거나 걸림이 없게 된  것을 "수행주"라고 하나니라.

         

행하는 것이 부처님과  같아서 부처님의 기분을 받음이  마치 중음신이 스스로 부모를 구할 적에 음계의 소식이  가만히 통하는 듯해서 여래의 종성(種性)으로 들어감을  "생귀주"라고 하나니라.

          

이미 도태에 들어서 친히 부처님의 아들을 봉양함이  마치 세상의 부녀자가 이미 아이를 배어서 사람의 모양이  결함이 없는 듯한 것을 "방편구족주"라고 하나니라.

          

용모가 부처님과 같으며  마음도 같은 것을 "정심주"라고  하나니라.

          

몸과  마음이 합하여  이루어져서 날로  점점 자라나는  것을 "불퇴주"라고 하나니라.

          

십신(十身)의 신령한 모양이 일시에 구족한  것을 "동진주"라고 하나니라.

          

형체가  이루어지고 태에서  벗어나서 친히  불자가 된  것을 "법왕자주"라고 하나니라.

          

성인임을 표시함이 마치 나라의 대왕이 모든 나라의  일을 태자에게 나누어  맡기고 저찰리왕의  세자가 장성하거든  이마에 물을 붓는 의식을 진행하는 것과 같은 것을 "관정주"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이  선남자가 부처님의 아들을 성취하고나서  여래의 한량없이 오묘한 덕을  완전하게 갖추어서 시방에 순하게  따르는 것을 '환희행'이라고 하나니라.

          

능히 일체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것을 '요익행'이라고  하나니라.

          

자신도 깨닫고 남도 깨닫게 하여 거스리고 막는  것이 없음을 증득한 것을 '성냄과 원만한이 없는 행'이라고 하나니라.

          

갖가지 중생들이 생겨남에 따라서 미래제가  다하도록 삼세에 평등하며 시방에 통달함을 '다함이 없는 행'이라고 하나니라.

          

모든 것이  합해지고 같아져서  갖가지 법문에  차오(差誤)가 없게 되는 것을  '어리석고 어지러움을 벗어난 행위'라고  하나니라.

          

곧 같아진 가운데 여러가지 다른 것을 나타내며  하나하나 다른 형상에서 각각  보는 것이 같은 것을 '잘 나타내는  행위'라고 하나니라.

          

이와 같이 시방의  허공에 이르기까지 작은 먼지까지도  만족하며 하나하나의 티끌 속에 시방의 세계를 나타내어  티끌을 나타내고 경계를 나타내어도 서로 머물거나 걸림이  없음을 '집착이 없는 행위'라고 하나니라.

          

가지가지 앞에 나타나는  것이 모두 제일의 바라밀다인  것을 '존중행'이라고 하나니라.

          

이와 같이 원융해서 능히 시방 모든 부처님의  법칙을 이룩한 것을 '선법행'이라고 하나니라.

          

하나하나 모든 것이  청정하고 정기가 몸 밖으로  새어나가는 것이 없어진지라 한결같이 참되고 작위가 없어서 성품  본래 그대로인 것을 '진실행'이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저  선남자가 신통력을 만족하게 갖추어서  부처님의 일을 이루고 나서는 순결하게 정진해서 남아 있던  모든 시름이 멀어지거든 마당히 중생을 제도하되 제도하는  상(相)을 없애고 작위가 없는 마음으로  돌아가서 열반의 길로 향하는 것을  '일체 중생을 구호하되 중생상을 여윈 회향'이라고 하나니라.

          

무너뜨려야 할 것은  무너뜨리고 여의어야 할 것은  여의어야 하는 것을 '무너뜨릴 것이 없는 회향'이라고 하나니라.

          

본래 깨달음이 맑고  고요해서 그 깨달음이 부처님의  깨달음  과 같음을 '모든 부처님과 같은 회향'이라고 하나니라.

          

정밀하고 참된 것이  밝음을 발하여 지위가 부처님의  지위와  같아짐을 '모든 곳에 이르는 회향'이라고 하나니라.

          

세계와 여래가 서로  들어가되 걸림이 없는 것을 '다함이  없는 공덕장 회향'이라고 하나니라.

          

부처님의 지위와 같은  데서 그 지위 가운데 각각 청정한  원인이 생기고 그  원인에 의해 빛을 발휘하여 열반의 도를  취하는 것을 '평등한  선근을 순종하여 따르는 회향'이라고  하나니라.

          

참된 선근이 이미 이루어져서 시방의 중생들이 모두  나의 본성인지라 그 성품이  원만하게 이루어져서 중생을 잃지  아니함을 '중생을 평등하게  보는 것을 순종하여 따르는  회향'이라고 하나니라.

          

일체 법에 나아가며  일체상을 여의나니 나아가고 여의는  두 가지에 집착함이 없는 것을 '진여상 회향'이라고 하나니라.

          

참되고 여여한 것을  증득해서 시방에 걸림이 없는 것을  '얽매임이 없이 해탈한 회향'이라고 하나니라.

          

성품의 덕이 원만하게  이루어져서 법계에 한량이 없어진  것을 '법계무량회향'이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이 선남자가 이렇게 청정한 마흔 한  가지 마음을 다하고 다음으로 네  가지 오묘하고 원만한 가행(加行)을  이루나니라.

          

부처님의 깨달음으로 나의 마음을 삼아  나갈듯하면서 나가지 못함이 마치 불을 피울 적에 그 나무를 태우는  것과 같은 것을 '난온지'라고 하나니라.

          

또 자기의 마음으로  부처님께서 밟아오신 것을 이루어서  의지한 듯하면서도  의지하지 않음이 마치  높은 산에 오를  적에 몸은 허공에 들어갔으나 아래는 약간 걸림이 있는  것과 같음을 '정상지'라고 하나니라.

         

마음과 부처 그 두 가지가 같아서 중도를 잘  증득한 것이 마치 모든 일에 잘 참는 사람이 마음에 품고  있지도 않고 밖으로 내보내지도 않는 것처럼 함을 '인내지'라고 하나니라.

          

헤아림이 없어져서  미각(迷覺)과 중도 그  둘 다 지목할  수 없음을 '세계일지'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저 선남자가 큰 보리에 대해 잘  통달하여 그 깨달음이 여래와 통하여 부처님의 경계를 다한 것을  '환희지'라고 하나니라.

          

다른  성품이 같은데로  들어가고 같은  성품도 없어진  것을 '이구지'라고 하나니라.

          

맑음이 지극하여 밝음이 생김을 '발광지'라고 하나니라.

          

밝음이 지극하여 깨달음이 원만함을 '염혜지'라고 하나니라.

          

일체의 같고 다름이  이르지 못하는 것을 '난승지'라고  하나니라.

          

작위가 없는 진여가  되어서 성품이 맑아지고 밝게  드러나는 것을 '현전지'라고 하나니라.

          

진여의 끝까지를 다한 것을 '원행지'라고 하나니라.

          

한결같은 진여의 마음 뿐인 것을 '부동지'라고 하나니라.

          

진여의 작용을 발하는 것을 '선혜지'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저  모든 보살들이  이로부터 이전에는 닦고  익히는 공부를 마치고서 그  공덕이 원만하여졌으므로 그 경지를  지목하여 '닦아 익히는 지위'라고 하나니라.

          

자비의 그늘과 오묘한  구름이 열반의 바다를 덮은 것을  '법운지'라고 하나니라.

          

여래는 흐름을 거스리지만  이러한 보살은 순하게 행하여  이르러서 깨달음의 경지에  들어가 어울린 것을 '등각'이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간혜의  마음에서부터 등각에 이르러야만 그  깨달음이 비로소 금강심 가운데에 첫 간혜지를 얻게 되나니라.
         

이렇게 거듭거듭 열 두 가지를 홑으로 겹으로  해야만 바야흐로 묘각을 다하여 위없는 도를 이루나니라.
          

이 여러가지 지위에 모두 금강으로 허깨비와 같은  열가지 깊은 비유를 관찰하여  사마타(奢摩他) 가운데 모든 여래의  비바사나로써 청정하게 닦아 증득해서 점차 깊이 들어가나니라.

          

아난아! 이것은 모두가 세 가지 증진법으로  수행한 것이므로 쉰 다섯 개 지위의 참된 보리의 길을 훌륭하게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니 이렇게 관찰하는 자는 올바른 관찰이라 하고  다르게 관찰하는 자는 사특한 관찰이라고 하나니라."

          

그때에 문수사리법왕자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이 경전의 이름을  무엇이라 해야 하며 저와 중생들이  그것을 어떻게 받들어 가져야 하겠습니까?"

          

부처님이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경전의 이름은  <대불정시다다반다라무상보인시방여래청정해안>이라고 하며 또  다른 이름은 친척과 그의 인연있는  사람을 구호하여 아난과 이 모임 가운데 있는  성비구니를 제도하여 변지해(遍知海)에 들게  하는 것이며 또 다른 이름은  <여래밀인수증요의>라고도 하며  또 다른 이름은  <대방광묘연화왕시방불모다라니주>라고도 하며  또 다른 이름은  <관정장구제보살만행수능엄>이라고 하니 너는 마땅히 받들어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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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수련증험설(瑜伽修煉證驗說)


동덕조(童德稠)스님이 묻기를 "부처님 법은 비밀이라서 사실 듣기가 어려운  것이니 머리를 
조아리고 공경히 절을 올리며 불법 듣기를 원합니다."

          

불공화상이 말씀하시기를  "불법을 듣고자 하면  먼저 참 스승을 찾아서 정성스런  마음으로 모시고 받들어라. 옛날 석가세존이 출가해서  六년이나 스승을 구하여 후인들로 하여금 본받게 하였으니 너는  마땅히 성심을 다해 목마르게 구해야 할 것이다."

 

대답하기를  "지금 화상을 배알하였사온데 다시 어떤 스님을  찾으란 말씀입니까?"

 

七일 동안 똑바로 앉아서 꼼짝 않고 물러가지  아니하거늘 그 때서야 말씀하시기를  "도란 삼천 육백 가지 문이 있으니 어떤  법을 듣고 싶어하느냐?"

 

대답하기를   "그러한 여러가지 문을  믿고 알아서 닦아 증득하면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을 면할 수 있습니까?"

 

불공화상이 말씀하시기를  "그럴 리는 없나니라. 그럴 리는 없나니라."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지극한 소원은 부처님의 법이 유일한 문입니다."

 

불공화상이 말씀하시기를  "수능엄경은 상근기와  중근기와 하근기가 모두 마땅히  믿고 알아서 닦아  증득해야 할 도이니  너는 마땅히 받들어  지켜야 한다."

 

스님이 누진통의 법을 듣고자 하여 백 번  절하고 애걸하거늘 법사가 입으로 전하고 마음으로 주시니 스님이 큰  서원을 발하고 백 번 절하며 감사드리며 말하기를

"다행이 큰 은혜를 입어  삼마지의 위 없는 매우 깊은 큰  법을 속시원하게 들었습니다만  그 중에서 수행함에 있어  마구니의 어려움과 수행할 떄의 징험을 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불공화상이 말씀하기를  "마구니의 일은  경전 가운데  이미 말하였으니 다시  덧붙여 말하지 않겠지만  징험에 대해서는  조목조목 있으므로  참되게 수행하는 사람이 몰라서는  안 된다. 대략 다음과 같으니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라.

 

처음에 단량법(壇場法)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하여  정욕과 애욕이 다 끊어지고  계율이 정결해지면 삼경(三庚) 때에  이르러 금꽃이 발생하고  봄 기운이  화창해지면서 황홀하고  아득하여 마음과 그 대상들이 모두 고요하게 되리니 이는  처음 간혜지의 징험이니라. 그  다음은 심장의 경락[心經]이 넘치고  솟아올라 입에 단 침이 생기고 다음은 음과 양이 서로  치고 받아서 배에서 우뢰소리 같은  것이 울려오며, 다음은 혼백이 안정되지  못해서 꿈에 놀래거나 두려움이 많아지고 다음은 지니고  있던 질병이 치료하지 않아도 저절로 나으며, 다음은  단전이 따뜻해지고 얼굴  모습이 맑고 수려해지고  다음은 깜깜한 방에  있어도 원만한 빛이 일산 같이 비치며, 다음은 꿈  속에 용기가 솟구쳐서 다른 물건이 해칠 수 없고 다음은 관문이 잠겨 굳게 봉해져서 몸  밖으로 새어나가는 정기가  저절로 끊기며 다음은  우뢰 소리가 한 번  울림에 뼈 마디가 모두 통하여 이어지고  다음은 습기가 저절로 사라져서 탐욕이 움직이지 않나니 이는  십신 누진통의 징험이니라.

 

다음은 침이 가공되어서  치즈처럼 엉기게 되고 다음은  점점 비린내 나는 것으로  입과 배를 채우는 것을 싫어하며,  다음은 참 기운이 차음  가득차게 되어 음식 먹는 것이 줄어들고  다음은 근골이 가볍고  건장해져서 그 몸이 나는 것이 가볍고  다음은 눈동자가 그린듯이 선명해지고 또 번개처럼  빛나며, 다음은 백 걸음 밖에 있는 가을 털처럼 작은 것도 볼 수 있게  되고 다음은 오래 전에 있던 흉터나 주름살이 저절로  없어져서 흔적이 없이 되며, 다음은 눈물 콧물이나 땀이 나오지  않고 다음은 삼시(三尸)와 구충(九蟲)이  모두 없어지며, 다음은 도태가  원만해지고 참  기운이 가득해져서 음식을  끊게 되나니 이는  십주 사다함의 징험이니라

          

다음은 온 몸의 붉은 피가 다 흰 연고처럼  변하고 다음은 입과 코에 저절로 오묘한 향기가 나며, 다음은  백발이 다시 검어지거나 빠진 이가  새로 나게 되고 다음은 내부가 명랑하게 밝아져서 장부를 환하게 볼 수 있으며, 다음은  다른 사람의 병을 입으로 불어서 치료하며 수은을 입김으로 말리고 다음은  추위와 더위가 침입하지  못하고 죽고 삶이 간섭하지 못하며, 다음은 손으로 반석 위에 그리면 글자가 완전하게  새겨지고 다음은 혼백이 돌아다니지 아니하여 꿈과 잠이 없어지며,  다음은 신비한 광채가 명랑해져서  다시 낮과 밤이 없이 되고 다음은  자태는 옥수와 같고 살은 금색처럼 투명해지나니 이는  십행 아나함의 징험이니라.

          

다음은 속 뜻이  맑고 높아서 큰 허공과 합해지고 다음은  양정(陽精)이  체를 이루어서  신부(神府)가 견고해지며,  다음은 고요한 중에  이따금 하늘 음악  소리가 맑게 들려오고  다음은 안으로 항상 화엄국토에 노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다음은 안의 성품이  출현하고 밖의 신이  찾아와 조회하게 되고  다음은 천시(天時)와 사람의  일을 다 미리 알  수 있게 되며, 다음은 용맹스런 힘이 매우 화창하여 항상 위로 올라가게  되고 다음은 공덕과 수행이 원만하여 부처님의 도록(圖錄)을 받게  되며, 다음은 붉은 노을이  눈에 가득하고 금빛이 몸을 감싸며,  다음은 채색 구름이  둘러 싸서 형체와  정신이 모두 오묘하게  되나니 이것은 십회향  아라한의 징험이니라. 대장부의 도가  이루어지고 덕이 세워지는  일이나 그러나 이 뒤에도 다시 위로  향하여 공부해 나갈 일이 있나니라.

          

스님이 공경을  다하여 이마를 대어  절하고 또다시 네  가지 과(果)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묻거늘 불공화상이 대답하기를
          

"수다원은 여기말로  번역하면 성인의 흐름인 누진통에  들어가는 과명(果明)이니 이것이 불법의 근본이 되는  것이고, 사다함은 여기말로 번역하면  일래(一來)라고 하니 한번 천상에 올라갔다가 한번 인간에 내려오는 것이며, 아나함은  여기말로 번역하면 불래(不來)라고 하니 삼계를 초탈해서  욕계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요, 아라한은  여기말로 번역하면  무생(無生)이라고 하니 만가지  번뇌가 다 끊어짐이니  곧 함이 없는  과(果)이니라. 경전에 이르기를 '아라한이란 마음대로  날아다니고 마음대로 변화할 수도 있으며 무한겁(劫)의 수명을 누릴 수가 있으며 천지도 고요하게  할 수도  움직이게 할  수도 있다'고  하시니라."

          

또 화두를 가지고 견성하는 일에 대해서 물으니 대답하기를  "견성은 곧 도를  증득한 뒤에야 볼 수 있는 것이다.  화두를 가지고 견성한다는 말은 어리석은 사람이 꿈 속에서  황금을 얻
은 것과 같으니 내가 상관할 것이 아니며 네가  물을 것도 아니니라."

 

"그러면 옛 성인이 어찌하여 그런 것을 만들어 놓았습니까?"

 

대답하기를  "그러한 방편으로 잡다한 일을 면하게 하기 위해서이니라."

          

동적조(童德稠)스님이 七일간  단식한 것은 마치  혜가대사가 눈 속에 서서 팔을 자른 것과 같은 것이다.
          
유가록에 이르기를, 유가란 여의주의  이름이니 성명(性命)을 수련해서 도태를 결성하는 비유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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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출리심 보리심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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