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菩薩, Bodhisattva)의 일반적인 정의(定義)는 ‘보리(菩提:범어의 음역으로 보리(菩提)라 하고, 도(道), 지(智), 각(覺)이라 번역한다. 불교 최고의 이상인 부처님의 깨친 지혜인 불과(佛果) 또는 불타정각(佛陀正覺)의 지혜를 얻기 위하여 닦는 도를 가리킨다.)를 구하고 있는 유정(有情:마음을 가진 살아 있는 중생)으로서 보리를 증득(證得:바른 지혜로써 깨달음을 얻음.)할 것이 확정된 유정’, ‘구도자(求道者)’ 또는 ‘지혜를 가진 사람’, ‘지혜를 본질로 하는 사람’ 등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홍서원을 세우고 육바라밀을 수행하면서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실천하는 사람을 말한다. 대승불교의 이상적 인간상으로 수행에 힘쓰는 사람들의 총칭이다. 오늘날 보살(菩薩, Bodhisattva)의 호칭을 여러 가지로 해석하여 사용하고 있지만 자세한 내용을 첨부파일을 통해 알아 보기로 한다.
Ⅰ.보살(菩薩, Bodhisattva) 定議
보살(菩薩)은 산스크리트어 보디사트바(Bodhisattva)의 음사(音寫)인 보리살타(菩提薩陀)의 줄인 말로 보디(bodhi:菩提)는 budh(깨닫다)에서 파생된 말로 깨달음, 지혜(智慧), 불지(佛智)라는 의미를 지니며, 사트바(sattva)는 as(存在하다)를 어원(語源)으로 생명 있는 존재, 즉 중생(衆生)․유정(有情:불교에서 마음을 가진 살아 있는 중생을 말한다.)을 뜻한다. 따라서 보살의 정의(定義)는 부처가 되기 위해 수행하는 사람 즉, 보리를 구하고 있는 유정으로서 보리를 증득(證得)할 것이 확정된 유정, 구도자(求道者) 또는 지혜를 가진 사람, 지혜를 본질로 하는 사람이었으나, 이후 불교의 발전에 따라 흔히 수없이 많은 생을 거치며 선업을 닦아 높은 깨달음의 경지에 다다른 위대한 사람을 뜻하게 되었다.
해심밀경(海深密經)➀에서는 미세하고 아주 깊고 통달하기 어려워 범부나 이승은 이해할 수 없는 승의제(勝義諦, Paramartha)②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보살(菩薩)이라 하고 있다.
승의제란 제일의의 진리, 열반, 진여, 실상, 중도 따위의 진리로서 개인의 깨달음과 열반뿐 아니라 중생(衆生)과 함께 열반(涅槃)에 이르는 것을 가장 큰 가치로 삼기 때문이다.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➂이 없는 이를 보살이라 하며 보살(菩薩)은 대승불교(大乘佛敎)의 주요 특징이다.
보살이 모든 사람을 뜻하게 된 것은 대승불교(大乘佛敎)가 확립된 뒤부터이지만, 그 용어와 개념의 시초는 B.C 2세기경에 성립된 본생담(本生譚, 석가모니부처님의 前生에 관한 이야기)에서였다. 본생담(本生譚)은 크게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釋迦牟尼)를 신성시하고, 그 깨달음의 근원을 전생(前生)에서 이룩한 갖가지 수행에서 찾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구도자로서의 석가모니를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특히 연등불 수기(燃燈佛 授記)를 계기로 하여 석가모니를 깨달음을 구하는 사람, 즉 보살이라 일컫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같이 단수(單數)로서 석가모니만을 가리키던 보살이 중생을 뜻하게 된 것은 본생담의 석가모니가 출가 비구(出家 比丘)에 국한되지 않고 왕, 대신(大臣), 직업인, 금수(禽獸:날짐승과 길 짐승, 곧 모든 짐승, 행실이 무례하고 추잡한 사람.)이기도 하였으며, 나아가 과거, 현재, 미래세계에 다수의 부처가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석가보살과 같은 특정의 보살만이 아니라, 누구든지 성불(成佛)의 서원(誓願)을 일으켜 보살의 길로 나아가면 그 사람이 바로 보살이며, 장차 성불(成佛)할 것이라는 이른바 범부(凡夫)의 보살사상이 생겨났다. 이러한 보살사상은 공(空)사상과 결합하여, 육바라밀(六波羅蜜)④, 사무량심(四無量心, 慈․悲․喜․捨)➄, 무생법인(無生法忍)⑥ 등
의 실천을 근간(根幹)으로 대승불교(大乘佛敎)의 기본적인 축(軸)이 되었다. 대승불교의 보살사상 중 기본적인 두 개념은 서원(誓願)과 회향(回向)이다. 그것은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서원이며, 자기의 쌓은바 선근공덕(善根功德)을 남을 위해 돌리겠다는 회향이다.
보살은 스스로 깨달음을 여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머물러 일체중생을 먼저 이상세계 彼岸에 도달하게 하는 뱃사공과 같은 자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보살도 그 수행단계에 의하여 몇 가지 계위(階位)로 분류할 수 있다. 즉 초발심(初發心, 최초단계로서의 진리 추구), 행도(行道,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수행), 불퇴전(不退轉, 도달한 경지에서 물러나거나 수행을 중지하는 일이 없음), 일생보처(一生補處, 한 생이 끝나면 다음에는 부처가 됨)의 4단계가 있는데 후에 『화엄경(華嚴經)』에서는 십지〔(十地 : 환희(歡喜), 이구(離垢), 발광(發光), 염혜(染慧), 난승(難勝), 현전(現前), 원행(遠行), 부동(不動), 선혜(善慧), 법운지(法雲地)〕로 정리되기도 하였다.
보살의 개념이 확대되어 미륵불(彌勒佛, Maitreya)⑦이 탄생하였다. 미륵은 미래에 성불할 부처로서, 현재는 도솔천(兜率天)에 미륵보살로서 거주한다는 미래 지향의 미륵신앙이 나타났다. 또한 정토사상과 관련하여 아촉불(阿閦佛, 아촉보살, Aksobhya -Tathāgata : 東方)⑧, 아미타불(阿彌陀佛, 法藏보살, Amitabha : 西方)⑨의 관계가
성립되었다. 그리고 자비와 절복(折伏)⑩의 신앙대상으로 관음보살(觀音菩薩, Avaloki -tesvara)⑪과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 Mahasthamaprapta)⑫, 반야경 계통의 문수보살(文殊菩薩, Manjushri)⑬, 화엄경 계통의 보현보살(普賢菩薩, Samanta-bhadra)⑭이 성립되고, 이어 지장보살(地藏菩薩, Ksitigarbha)⑮ 등 수많은 보살들이 나타났다. 또한 보살은 실재했던 고승(高僧)이나 대학자에 일종의 존칭과 같이 사용되어 인도의 용수(龍樹, 150?~250?)⑯, 마명(馬鳴)⑰, 제바(提婆)⑱, 무착(無着)⑲, 세친(世親, 320?~400?)⑳ 등도 보살이라 불렀으며, 중국에서는 축법호(竺法護)㉑가 돈황(敦煌)보살로, 도안(道安)㉒이 인수(印手)보살로, 그리고 한국에서는 원효(元曉)㉓ 등이 보살의 칭호를 받았다.
나아가 범부(凡夫)의 보살은 재가(在家), 출가(出家)를 불문하고 모든 불교도 전체로 확대되었는데, 특히 중기 대승불교 이후 성했던 여래장(如來藏), 불성(佛性)사상과 표리(表裏)관계를 이루며, 불, 보살, 일체중생(산천초목도 포함)의 활동은 상구보리 하화중생 자미도 선도타(自未度 先度他 :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을 먼저 제도한다)라는 말을 낳았으며, 불교활동의 중요한 추진력이 되었다.
보살, 즉 각유정(覺有情)이란 뜻 속에는 3가지 해석이 있다.
그 처음은 깨친 중생(衆生), 둘째는 깨치게 하는 중생, 그리고 세 번째는 깨칠 중생이 그것이다. 즉 중생은 중생이로되 이미 불법의 진리를 깨친 중생으로 하여금 깨치도록 유도하는 중생, 그리고 그와 같은 보살(菩薩)과 같이 우리들도 앞으로 깨치게 될 부처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중생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보살은 대승사상에서 유래되는 것으로서 위로는 보리 즉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는 이른바 상구보리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이라는 대승의 이상적 인간상이다. 그러므로 대승경전에는 무수한 보살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Ⅱ.보살(菩薩)의 性格
보살은 大乘佛敎의 주요 특징이다. 개인의 깨달음과 열반(涅槃)뿐 아니라 衆生과 함께 涅槃에 이르는 것을 가장 큰 가치로 삼기 때문이다. 보살의 사홍서원(四弘誓願)㉔은 이러한 특징을 잘 드러낸다. 지장보살(地藏菩薩)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모든 중생이 구원받기 전에는 부처가 되지 않겠다고 서원(誓願:부처·보살이 중생을 구하고자 하는 소원이 이루어 지기를 기원하는 일.)하고, 법장비구〔(法藏比丘):법장보살이라고도 불리며 아미타불이 부처가 되기 전인 전생의 수행 비구(比丘:출가하여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남자 승려, 비구승.〕는 괴로운 중생에게 깨달음을 주기 전에는 결코 부처가 되지 않겠다고 서원한다.
Ⅲ.보살(菩薩)의 수행(修行)
대승불교에서는 修行者로서의 보살은 6바라밀(六波羅密)을 닦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중에서도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은 나머지 다섯 바라밀의 성립 근거가 되는 무분별지(無分別智)로서, 특히 중요시되고 있다. 예를 들어, 대승불교의 논서인 『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는 육안(肉眼) · 천안(天眼) · 혜안(慧眼) · 법안(法眼) · 불안(佛眼)의 오안(五眼)을 얻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닦아야 한다는 불교 경전의 진술을 인용해 이를 해설하고 있다.
대승불교의 6바라밀은 단순히 재가 신도(在家信徒)를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출가 · 재가를 불문하고 전불교도의 기본적인 덕목으로서 8정도(八正道)㉕에서는 설명되어 있지 않는 이타행(利他行)으로서의 보시(布施)가 제1차적으로 취급된 점에 특색이 있다. 또한 후에는 6바라밀에 방편(方便)·원(願)·역(力)·지(智)의 이타적인 내용을 가진 4개의 덕목이 추가되어 십바라밀설(十婆羅蜜說)㉖㉗이 출현했다. 대승불교에서는 이타(利他)가 그대로 자리(自利)로 되는 곳에 대승의 실천도의 현묘함이 있다고 주장한다. 《끝》
※ 주석(註釋)
➀ 해심밀경(海深密經) : 불교 유가(瑜伽)학파의 근본경전.
유가학파의 만법유식사상은 아뢰야식(阿賴耶識)과 종자식(種子識)을 설명하는 이 경전에 의지하여 그 철학적 체계를 정립하였다. 이 경의 성립 연대는 2세기 전후로 추정되어 중관학파의 시조인 용수(龍樹) 직후이며 중기 대승경전에 속한다. 이 경의 특징은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 인간 세계가 아닌 화엄세계에서 미륵과 문수 등을 향해 설법한 경전으로 우주의 법체를 그대로 드러내는 경지에서 대상을 굳이 의식하지 않고 설하고 있으며 이 경전의 유포를 설하는 유통분이 없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주요 내용으로는 유식의 경계를 밝히고 유식의 관법과 행과(行果), 그리고 최고의 경지는 유무(有無)의 2가지 모습과 분별지를 떠나 있으며 아뢰야식의 나타남과 그 3가지 성품을 밝혔다. 이 경의 한역으로는 현장(玄奘) 역 이외에 진제(眞諦)·보리유지(菩提流支)·구나발타라의 4가지가 있으며, 특히 이 경에 대한 주석서를 신라시대 유식학자인 원측(圓測)·원효(元曉)·경흥(憬興)이 저술하였으나 이 중 유일하게 원측의 《해심밀경소》(10권)가 현존하여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 경에 대한 주석서는 중국에서도 남아 있지 않으며, 원측의 주석서는 티베트본으로 남아 있어 이를 통해 한문본이 보충되고 있다.
② 승의제(勝義諦, Paramartha) :
승의제(勝義諦) 또는 세속제(世俗諦)라고 한다. 승의는 범어 paramartha의 번역으로 제일의제. 眞實이라고도 하며, 가장 수승하고 진실한 도리를 말한다. 세속은 범어 samvrti의 번역으로 세간의 통속적인 관습을 말한다. 진여(眞如:사물이 있는 그대의 모습이라는 뜻으로, 우주 만연의 본체인 평등하고 차별이 없는 절대적인 진리를 이르는 말.⟷가상(假相))나 열반(涅槃)과 같이 세간의 통속성을 초월한 진리를 승의제라 하고, 세간의 통속적인 진리를 세속제라 한다.
무위〔無爲:현상을 초월해 상주(常主:정해진 주인) 불변하는 존재.〕의 선법은 승의선이며, 유위(有爲:인연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이르는 말.)의 선법 즉 유루(有漏:번뇌가 있음을 뜻함.)의 선법은 세속선이다. 일체의 유루심(有漏心)에 의한 행은 세속적이므로 유루심을 세속심(世俗心)이라 한다. 세속을 대상으로 하는 유루의 지혜를 세속지(世俗智)라 하고, 세속지로 번뇌를 끊는 것은 세속도(世俗道:세간도(世間道)·세속도(世俗道) 또는 유루로(有漏路)라고도 한다)라 한다. 또한 승의란 말은 승의법과 법상법(法相法) 승의근과 부진근(扶塵根)으로도 쓴다.
권8에서는 승의와 세속을 각각 세 가지로 분류하여 삼승의(三勝義)와 삼세속(三世俗)을 수립한다.
(1) 의승의[義勝義 : 뛰어난 지혜의 대상이 되는 것, 즉 진여] (2) 득승의[得勝義: 증득해야 할 열반] (3) 행승의[行勝義: 正行勝義 라고도 한다. 훌륭한 경계를 향해서 이루는 무루의 지혜]. 또한 변계소집성( 遍計所執性), 의타기성(依他起性), 원성실성(圓成實性)의 삼성에 맞춰 삼세속을 세운다. 가세속[假世俗: 자성이 속[道理俗:온. 처. 계와 같이 體가 있어서 세워진 것], 증득속[證得俗: 4가지 사문과와 같이 깨달음에 이르는 수단으로 수립된 것]. 승의제는 깨달음을 얻으려고 하는 마음을 일으켜 각각 가치 판단을 내리고 보다 깊은 깨달음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은 주장 한다.
➂ 사상(四相) : 사상은 중생이 실재(實在)라 믿는 네가지 상(相)인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를 말한다
상(相)은 "서로 상(相)"뜻으로 쓰이지만, 불교에서는 "사물에 대하여 생기는 생각이나 관념(觀念)"을 뜻하며, 생각이나 관념이 굳어진 것을 상(相)이라 한다.
(1) 깨치지 못한 중생들이 전도(顚倒)된 생각에서 실재한다고 믿는 네 가지 분별심, 곧 아상(我相)ㆍ인상(人相)ㆍ중생상(衆生相)ㆍ수자상(壽者相)을 이른다.
① 아상(我相) : 모든 것을 자기 본위ㆍ자기중심으로 생각하여 자기가 가장 잘 났다고 하거나, 자기의 것만 좋다고 고집하거나, 오온(五蘊)의 일시적 화합으로 이루어진 자기 자신을 실재한다고 집착하는 소견.
② 인상(人相) : 우주만물 중에서 사람이 가장 중요하며, 일체만물은 사람을 위해서 생긴 것이라, 사람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인간본위에 국한된 소견.
③ 중생상(衆生相) : 부처와 중생을 따로 나누어 나 같은 중생이 어떻게 부처가 되고 무엇을 할 수 있으랴 하고 스스로 타락하고 포기하여 향상과 노력이 없는 소견.
④ 수자상(壽者相) : 자기의 나이나 지위나 학벌이나 문벌이 높다는 것에 집착된 소견. 이러한 사상에 사로잡히면 중생이요, 사상을 벗어나야 불보살이 될 수 있다. 사상(四相)을 아인사상(我人四相)이라 한다.
(2) 모든 사람이 다 겪게 되는 네 가지 과정. 일기(一期)사상 또는 과보(果報)사상이라고도 하는데, 인생의 생(生)·로(老)·병(病)·사(死)를 말한다.
(3) 우주만물(宇宙萬物)이 생멸 변화하는 과정을 네 가지로 설명하는 것. 곧 온갖 법의 유위(有爲)를 설명하는 것으로 사유위상(四有爲相)이라 한다.
① 생상(生相) : 만물이 발생하는 것.
③ 이상(異相) : 만물이 쇠퇴하여 가는 것.
② 주상(住相) : 만물이 안주(安住)하여 그대로 존속하는 것.
④ 멸상(滅相) : 만물이 파멸되어 버리는 것.
(4) 우주(宇宙)의 성(成)ㆍ주(住)ㆍ괴(壞)ㆍ공(空) : 불교의 시간관인 사겁(四劫)으로, 성겁(成劫)ㆍ주겁(住劫)ㆍ괴겁(壞劫)ㆍ공겁(空劫)을 줄여서 말할 때 쓰는 말. 불교에서 우주가 시간적으로 무한하여 무시무종(無始無終)인 가운데 생성소멸 변화하는 것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사겁(四劫)을 말하며 그것을 줄여서 성주괴공이라고 한다.
① 성겁(成劫) : 기세간과 유정세간이 형성되는 시기를 말한다. 성겁은 20소겁이 소요된다. 성겁 다음에 주겁의 시대가 온다.
② 주겁(住劫) : 주겁도 20소겁이 소요되며 기세간은 별 변동이 없지만 유정의 과보에는 많은 변동이 있다. 인간들은 처음에는 빛을 내며 하늘을 날 수도 있으며 수명도 8만세까지 장수한다. 그러나 좋은 맛에 탐닉하고 나쁜 마음들로 악업은 심해져 수명은 10세로 짧아지고, 사고, 질병 등의 삼재(三災)가 발생하여 많은 인간들이 죽어가서 1만을 헤아리게 된다. 여기까지 시간을 1소겁이라고 한다. 다시 인간은 죄업을 뉘우치고 선업을 행하여 그 수명이 8만세가 되며, 또다시 욕심이 과다해져서 10세가 되는 등 수명의 기복이 연속된다. 주겁의 기간 동안 20번을 반복한다.
③ 괴겁(壞劫) : 그 뒤로 세계는 파괴되어 가는 시대를 말한다. 이 시대 역시 20소겁이 소요된다. 먼저 유정세간이 파괴되는데 19소겁이 소요되고 화·수·풍의 삼재가 발생하여 세계는 모조리 흩어져 버린다.
④ 공겁(空劫) : 괴겁의 시대가 지나면 허공만이 존재하는 공겁의 시대가 오는데 이 기간에도 20소겁이 흘러간다. 공겁 다음에는 다시 중생들의 업력에 의해 성ㆍ주ㆍ괴ㆍ공이 반복하여 이 세계는 끝없이 생성, 소멸하게 된다.
④ 6바라밀(六波羅密) : 산스크리스트어의 ‘파아라미티아(Paramita)’를 한자로 옮긴 것으로 그 뜻은 ‘저 언덕(Param)에 이른 상태(ita)’라고 하며, ‘완전히 이룬(完成) 것’ 이라고도 한다. 끝없는 어리석음에 빠져있는 현실의 중생 세계와는 반대로 자비와 지혜로 가득 찬 깨달음의 세계를 바로 ‘저 언덕’이라고 한다. 여섯 가지 덕목 · 수행 · 실천을 통칭하는데, 구체적으로 다음을 뜻한다.
(1) 보시 바라밀(布施波羅蜜) : 재시(財施) · 법시(法施: 진리를 가르침) · 무외시(無畏施: 공포를 제거하고 마음을 안정시킴)의 실천.
(2) 지계 바라밀(持戒波羅蜜) : 계율을 지키고 항상 자기반성을 하여 자신의 행동을 규율하는 것.
(3) 인욕 바라밀(忍辱波羅蜜) : 고난을 이겨 나가는 것.(원래 인욕(忍辱)은 법을 진실로 인정하고 이에 복종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4) 정진 바라밀(精進波羅蜜) : 보살로서의 수행을 힘써 닦으며 꾸준히 노력하는 것.
(5) 선정 바라밀(禪定波羅蜜) : 마음을 안정시켜 올바른 지혜(무분별지)가 나타나게 하는 수단인 선정(禪定)을 닦는 것.
(6) 반야(지혜) 바라밀(般若(智慧)波羅蜜) : 진실하고 올바른 지혜, 즉 무분별지(無分別智)를 작용시키는 것.
6바라밀의 여섯 가지 덕목들에서는, 우선 보시, 즉 "주는 것"을 강조하고 마지막 덕목으로 지혜(무분별지)의 완성을 말하고 있다. 이들 여섯 가지 바라밀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마지막 여섯 번째인 반야, 즉 지혜(무분별지)이다. 다른 다섯 가지 덕목 또는 수행("오행 · 五行"")은 반야바라밀에 바탕을 둔 것으로, 이에 따르면 보살행, 즉 보살의 행이란 지혜(무분별지)에 의거한 자비행(慈悲行)임.
➄ 사무량심(四無量心, 慈․悲․喜․捨) : 불교의 보살이 가지는 네 가지의 자비심.
모든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고 괴로움과 미혹을 없애주는 자(慈)·비(悲)·희(喜)·사(捨)의 네 가지 무량심을 의미한다.
(1) 자무량심(慈無量心) : 모든 중생에게 즐거움을 베풀어 주는 마음가짐이며,
(2) 비무량심(悲無量心) : 중생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고통의 세계로부터 구해내어 깨달음의 해탈락(解脫樂)을 주려는 마음가짐이다.
(3) 희무량심(喜無量心) : 중생으로 하여금 고통을 버리고 낙을 얻어 희열하게 하려는 마음가짐이며, (4) 사무량심(捨無量心) : 탐욕이 없음을 근본으로 하여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보고 미움과 가까움에 대한 구별을 두지 않는 마음가짐이다.
처음에는 친한 사람에 대하여 이 마음을 일으키고 점차로 반경을 넓혀서 미운 사람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들에게도 평등하게 이 마음을 일으키도록 되어 있다.
4무량심은 대승불교권에 속하는 우리나라에서 매우 중요하게 강조되었던 교설로서, 고승들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자비를 상징하는 십일면관음(十一面觀音)의 조상(彫像)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곧 십일면관음의 11가지 모습 가운데 불면(佛面)을 제외한 10가지 모습은 이 4무량심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자무량심(慈無量心)은 3면으로 표현된다. 그 까닭은 자무량심이 ① 고통만 있고 즐거움이 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그 괴로움을 떠나 즐거움을 얻도록 하려는 것이고, ② 다행히 복은 있지만 지혜가 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복과 아울러 지혜를 다 갖추도록 하려는 것이며, ③ 지혜는 있지만 통달하지 못한 중생으로 하여금 지혜와 아울러 신통력까지도 다 갖추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무량심(悲無量心) 또한 3면으로 표현된다. 그 까닭은 비무량심이 ① 고통스러운 과보에서 떠나려고 하지만 오히려 욕심 때문에 고통을 낳는 행위에 빠져 있는 자를 구하기 위하여, ② 즐거움의 과보를 얻고자 하면서도 즐거움이 있게 하는 착한 원인을 만들 줄 모르는 자를 구하기 위하여, ③ 적정(寂靜)한 이치를 구하려 하지만 오히려 산란한 경계에 집착하고 있는 자를 구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희무량심(喜無量心) 또한 3면으로 표현된다. 그 까닭은 희무량심이 중생을 제도하고 정업(淨業)을 쌓기를 바라는 이가 몸으로 입으로 마음으로 각각 올바른 행위와 말과 생각을 하는 것을 찬양하기 위한 것이다.
마지막의 사무량심(捨無量心)은 1면으로 표현된다. 착한 이, 악한 이, 선악이 뒤섞여 있는 중생들에게 어떠한 집착도 없이 제도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네 가지 무량심을 철저하게 실천하면 부처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며, 대승불교를 믿는 불제자는 이 마음을 먼저 길러야 함이 강조되고 있다.
⑥ 무생법인(無生法印, 無生法忍) : 일체의 것이 불생불멸임을 인정하는 것.
존재하는 모든 것은 태어난 바가 없다는 깨달음의 확신을 의미한다. 무생인(無生忍)·무생인법(無生忍法)·수습무생인(修習無生忍)이라고도 한다. 여기에서 인(忍)은 인가(忍可)·인지(認知)를 뜻하여 여실한 진리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한다는 것을 뜻한다.
『능가경(Laṅkavatarasūtra)』에서는 무생법인을 ‘태어남이 없는 법의 인증’을 뜻하는
‘anutpattika-dharma-kṣānti’라고 한다. 『무량수경(Sūkhavātivyūha)』에서는 ‘생함을 떠나다’를 뜻하는 ‘jātivyativṛttāḥ samānāḥ…santo’ 라고 한다. 무생법인은 또한 『법화경』에서 설하는 삼법인(三法印)인 법인(法印)·신인(信印)·순인(順印)중의 하나로서, 진리를 깨닫는 지혜를 의미한다. 이 외에도 불전에 따라서 무생의 뜻을 다양하게 해석하여, 성불하기 전까지 악심(惡心)을 내지 않은 것이나 삿된 견해를 일으키지 않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일체의 현상에서 생겨나는 것이 없음을 관찰함으로써 소멸할 것도 없다는 불생불멸의 공성(空性)을 깨닫는 것이다.
『화엄경(華嚴經)』 제44권에서 보살은 작은 법도 생겨남을 보지 않고, 또한 멸하는 것도 보지 않는다고 한다. 이 불생불멸의 공성을 깨달아서 오고가는 일체 대상에 대한 헛된 마음작용이 끊어져 고요한 경지에 이른 자가 보살이다. 『유가사지론』 제74권에서는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에 의해서 본성무생인(本性無生認), 의타기성(依他起性)에 의해 자연무생인(自然無生認), 원성실성(圓成實性)에 의해 혹고무생인(惑苦無生認) 이라는 3가지 무생인을 얻는 자를 불퇴전 보살(不退轉菩薩)이라고 하였다.
⑦ 미륵불(彌勒佛, Maitreya) : 범어로는 마이트레야(Maitreya)이며, 미륵은 성씨이고 이름은 아지타(Ajita, 阿逸多)이다. 성인 미륵은 자씨(慈氏)로 번역되어 흔히 자씨보살로도 불린다.
인도의 바라나시국 브라만 집안에서 태어나 석가모니불의 교화를 받으며 수도하였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授記)를 받은 뒤 도솔천〔兜率天:육욕천(六欲天)의 네 번째 하늘, 미륵보살의 정토(淨土).〕에 올라가 현재 천인(天人)들을 위해 설법하고 있다고 한다. 도솔천은 지나친 욕심이나 번뇌·망상으로 인한 방황이 없는 세계이며,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오유지족(吾唯知足:남과 비교하지 말고, 오직 자신에 대해 만족하라는 가르침 이 담긴 말.)의 무리가 모여사는 하늘나라를 뜻한다.
석가모니불이 입멸한 뒤 56억 7천만년이 되는 때에 다시 사바세계에 출현하여 화림원(華林園)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하고, 3회의 설법으로 모든 중생을 교화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라고 하는데,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하기 이전까지는 미륵보살이라 하고 성불한 이후는 미륵불이라 한다.이 보살은 부처의 업적을 돕는다는 뜻에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 천불 가운데 제5불에 해당한다.
미륵불은 우리들의 미래의 세계를 관장하고 희망을 약속해 주는 미래의 부처님이시다. 미륵
(Maitreya)이라는 말은 원래 '친우(mitra)'라는 말에서 파생된 것이다. '마이트레아(Maitreya)'는 자비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한자로 미륵보살을 자씨보살(慈氏菩薩)이라고 한다. 관세음보살을 대비보살(大悲菩薩)이라고 부르는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에 미륵보살을 원래 인도 '바라나시'에 있는 한 바라문 집안에 태어난 귀공자이다.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으면서 수도하다가 모든 행과 도를 원만히 닦아서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授記, 장차 부처님이 된다는 약속을 받는 것)를 받았다. 수기를 받은 뒤 미륵보살은 도솔천에 올라가 현재 하늘나라 사람들을 위해 설법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석가모니불이 입멸한지 56억 7천만년 뒤 인간들의 수명이 점점 늘어나서 8만세가 될 때에 이 사바세계에 다시 내려오셔서 화림원(華林園)의 용화수(龍華樹) 밑에서 성불(成佛)하시고 거기서 3회의 법회를 열어 아직 제도하지 못한 사람들 272억명을 교화한다고 한다. 미륵반가사유상(彌勒半跏思惟像)은 도솔천에 있는 미륵보살이 다시 사바세계에 오시기까지의 긴 기간동안 중생구제를 위한 자비심을 품고 먼 미래를 생각하며 명상에 잠긴 모습을 잘 묘사한 불상이다.
그러나 미륵보살을 믿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먼 후세에 오실 미륵불을 그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서 지금 미륵보살이 머물고 있는 도솔천에서 자기가 태어나서 미륵보살을 빨리 만나는 원을 세우기도 하는 '상생(上生)' 또는 미륵보살이 약속 기간보다 더 빨리 이 사바세계에 오시기를 기원하는 '하생(下生)'의 신앙이 생기게 되었다. 미륵불을 모신 법당을 용화전(龍華殿), 미륵전(彌勒殿), 장륙전(丈六殿)이라 한다.
이 법당 안에는 도솔천에서 설법중인 미륵보살상을 봉안하기도 하고, 내세에서 성불하여 중생을 교화하는 미륵불상을 봉안하는 경우도 있다. 미륵불상은 '은진미륵', '안동 제비원 미륵불', '법주사(法住寺) 미륵불' 등이 유명하다.
⑧ 아촉불(阿閦佛, 아촉보살, Aksobhya -Tathāgata : 東方) : 불교 경전에 보이는 부처 중의 하나.
불교에서 분노를 가라앉히고 마음의 동요를 진정시키는 역할을 하는 부처이다. 산스크리트어로는 Aksobhya-Tathāgata이며, 아촉불은 이를 음역한 것이다. 의역하여 부동(不動)·무동(無動)·무노불(無怒佛)이라 한다. 이 세계에서 동쪽으로 1천의 불국토를 지나는 곳에 아비라타(Abhirata: 阿比羅提) 라는 나라가 있는데, 옛날 이 곳에 대일여래(大日如來)가 한때 주존으로 있었다. 그 당시 대일여래를 모시던 수행비구 중에 아촉이 있었는데, 어느날 부처님 앞에서 성내지 않겠다는 서원을 하였다. 아촉은 그로부터 용맹정진하여 깨달음을 얻고 지금까지 아비라타국에서 설법을 하고 있다. 아비라타란 선쾌(善快)·환희(歡喜)· 묘락(妙樂)의 의미로, 아촉불은 이 곳에서 보리를 향한 마음이 동요하고 있는 수행자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밀교 계통에서는 금강계 만다라 5불 중의 하나로, 힘과 조복(調伏)의 상징이다. 동쪽에 위치하여 대일여래의 무한한 활동 가운데 말을 듣지 않는 나쁜 무리들을 자비의 입장에서 힐책하여 납득시키는 역할을 한다. 대원경지(大圓鏡智:四智의 하나, 큰 거울에 삼라만상이 그대로 비치듯이 원만하고 분명한 지혜.)를 본성으로 하며, 색으로는 청색이다. 금강계 9회 만다라의 중심을 이루는 갈마회(羯磨會:成身會)에서는 37존 5해탈륜 중 동방 월륜(月輪)의 주존으로 있으며, 존상은 왼손은 주먹을 쥐고 오른손으로는 범협(梵夾: 다라수 잎에 바늘 등으로 경전을 새긴 것)을 들고 있다. 항삼세회(降三世會)에서는 아촉계의 4존 금강보살을 거느린 주존으로, 진리가 갖는 실천적 지향 의지의 활동을 표현하며, 존상의 표현은 양손을 가슴에 교차하는 분노상으로 나타낸다.
만다라의 구성은 1불 1국토 사상이 그 기초를 이루는데, 『금강정경(金剛頂經)』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금강계 5불의 성립 근거가 되는 『금광명경(金光明經)』의 4방 4불에서도 아촉불은 동방을 맡는다. 『金光明經』에서는 구체적으로 각 여래의 정토를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5세기경 중국에서 찬술되었다고 생각되는 『관불삼매경(觀佛三昧經)』 에서는 4방4불의 정토를 말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아촉불이 계신 정토는 묘희정토(妙喜淨土)이다. 현교에서는 각 여래의 불국토를 그려 이를 정토변(淨土變)·정토도(淨土圖)라 하는데, 이를 만다라로 보아 현교 만다라라 하기도 한다.
⑨ 아미타불(阿彌陀佛, 法藏菩薩, Amitabha:西方) : 대승불교에서 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법(法)을 설한다는 부처.
아미타란 이름은 산스크리트의 아미타유스((Amitayus, 무량수(無量壽: 헤아릴 수 없는 수명을 가진 것) 또는 아미타브하(Amitabha, 무량광(無量光):무한한 수명을 가진 것)라는 말에서 온 것으로 한문으로 아미타(阿彌陀)라고 음역하였고,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에서는, 아미타불은 과거에 법장(法藏)이라는 구도자(보살)였는데, 깨달음을 얻어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원(願)을 세우고 오랫동안 수행한 결과 그 원을 성취하여 지금부터 10겁(劫) 전에 부처가 되어 현재 극락세계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부처는 자신이 세운 서원(誓願)으로 하여 무수한 중생들을 제도하는데, 그 원을 아미타불이 되기 이전인 법장보살 때에 처음 세운 원이라고 하여 본원(本願)이라고 한다. 모두 48원(願)인데, 이 48원의 하나하나는 한결같이 남을 위하는 자비심에 가득한 이타행(利他行)으로 되어 있어 대승보살도(大乘菩薩道)를 이룩하고 있는 이 부처의 특징을 말해주고 있다. 그 가운데 12번째의 광명무량원(光明無量願)과 13번째의 수명무량원(壽命無量願)은 아미타불의 본질을 잘 드러내 주고 있으며, 18번째의 염불왕생원(念佛往生願)은 “불국토(佛國土)에 태어나려는 자는 지극한 마음으로 내 이름을 염(念)하면 왕생(往生)하게 될 것”이라고 하여, 중생들에게 염불(念佛)을 통한 정토왕생의 길을 제시해 주고 있다.
사찰의 극락전(極樂殿), 극락보전(極樂寶殿), 무량수전(無量壽殿), 아미타전(阿彌陀殿)에 봉안되며 우협시보살로 관음보살, 좌협시보살로 대세지보살과 함께 삼존불(三尊佛)이 봉안되어있다. 대세지보살 대신 지장보살이 등장하기도 한다. 아미타불의 수인(手印)은 아미타정인(阿彌陀定印)이나 설법인(說法印),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주로 취한다. 佛國寺 금동아미타여래좌상, 부석사 무량수전 소조아미타여래좌상이 유명하다.
⑩ 절복(折伏) :
파절조복(破折調伏)의 뜻으로, 섭수(攝受)의 대립어. 불교에서의 화도홍통(化導弘通)의 방법으로, 섭수(攝受)가 상대방의 입장이나 생각을 용인해서 싸우지 않고 완만히 설득해서 점차로 정법으로 이끄는 방법인데 반해서, 절복(折伏)은 상대방의 입장이나 생각을 용인하지 않고 그 잘못을 철저하게 파절해서 정법으로 이끄는 엄격한 방법으로, 섭수는 어머니의 사랑에, 절복은 엄격하면서 자식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훈계로 비유된다. 섭수, 절복을 중요 문제로 한 것은 법화불교로, 중국법화 불교의 대성자 지의(Chih-i, 智의, 538~597:남북조의 불교를 융합하여 천태종을 창시한 중국의 고승)는 『법화경』 안락행품에서의 타인의 호악장단(好惡長短)을 주장하지 않는 것을 섭수로 보고, 『열반경』에 보이는 정법을 호지하기 위해서 무기를 가지며, 정법을 비방ㆍ날조하는 자를 참수하는 것을 절복으로 보았다. 이에 의하면 『법화경』이 섭수, 『열반경』이 절복되는데, 지의는 법화불교는 절복 방법에 따라서 권교(權敎)를 파절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⑪ 관음보살(觀音菩薩, Avalokitesvara) :
자비로써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 ‘광세음보살(光世音菩薩) 또는 관세음자재보살(觀世音自在菩薩)’이라고도 한다. 당대(唐代)에 태종(太宗) 이세민(李世民:(리 스민)의 휘자(諱字)를 피하여 ‘세’자를 생략하고 ‘관음’이라고 불렀다. 대자대비(大慈大悲)를 서원한 보살로서, 대승불교의 여러 경전 속에 거의 들어있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널리 신앙되었다. 『법화경(法華經)』 <보문품(普門品)>에는 위난(危難)을 당한 중생이 그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관음이 즉시 33종류의 화신으로 변해 그들을 구해준다고 되어 있으며, 현령(顯靈)하여 불법을 강연하던 도량(道場)이 절강성(浙江省) 보타산(普陀山)에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법화경(法華經)』 외에 『화엄경(華嚴經)』 『아미타경(阿彌陀經)』 『능엄경(楞嚴經)』을 중심으로 관음신앙이 전개되었다. 관음보살은 아미타불을 대세지보살과 지장보살과 함께 협시하는 경우가 많고, 아미타를 협시하는 8대 보살로서도 많이 표현된다. 형상은 머리의 보관에 아미타불을 새기고 손에 보병이나 연꽃을 잡는 것이 일반적이다. 중국의 절에서 초기에는 남자상이 많았으나, 당대(唐代) 이후로는 여자상으로 바뀌었다. 밀교의 관음은 백의관음(白衣觀音), 십일면관음(十一面觀音), 천수관음(千手觀音), 여의륜관음(如意輪觀音), 불공견색관음(不空羂索觀音) 등이 있는데, 이는 중생의 제도를 위하여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한 것이다.
중국에서는 안서(安西) 유림굴(楡林窟) 당대 벽화 속에 있는 수월관음(水月觀音)과 대족심신거굴(大足心神車窟)의 오른쪽 벽에 있는 일월관음(日月觀音), 산서성(山西省) 평요현(平遙縣) 쌍림사(雙林寺)에 있는 명대(明代)의 니조자재관음(泥造自在觀音) 등이 있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 말기부터 관음신앙이 유행하기 시작하였고, 십일면관음과 수월관음, 천수관음 신앙이 가장 많이 신앙되었고, 관음보살화로는 고려시대의 수월관음도가 많다. 관음보살은 관음전 또는 원통전에 모셔져 있다.
⑫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 Mahasthama-prapta) : 아미타불의 오른쪽에 있는 보처(補處) 보살.
범명은 마하스타마프라프(Mahasthama-prapta)이며, 마하살타마발라발다(摩訶薩馱摩鉢羅鉢跢)라고 음역된다. ‘대세지’ 또는 ‘득대세(得大勢)’라고도 하며 줄여서 그냥 ‘세지(勢至)’라고 번역하는 경우도 있다.
이 보살은 다른 보살들처럼 독립적으로 조성, 예배되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의 경우 서방극락세계의 보처보살로서 관음보살과 함께 아미타불의 협시불(脇侍佛:主佛의 좌우에 모시는 부처) 형상을 띠고 나타난다.
즉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관음보살이, 오른쪽에는 대세지보살이 수행하는 형태를 갖추게 되는데 이를 아미타삼존(阿彌陀三尊)이라고 부른다. 아미타불의 왼쪽에서 자비문(慈悲門)을 관장하는 관음보살과 함께 대세지보살은 오른쪽에서 아미타불의 지혜문(智慧門)을 상징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독특한 지혜광(智慧光)으로 이 세상의 모든 중생을 비추어 보고 삼도팔난(三途八難:세 가지 나쁜 세상과 여덟 가지 재난)의 고통에 떨어져 허덕이는 중생들을 구원해 준다고 한다.
정토교의 경전인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는 이 보살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이 보살의 몸 크기는 관음보살과 같으며 원광(圓光)을 지닌 채 온 세상을 폭넓게 비추고 있다. 머리 꼭대기의 육발(肉髮) 위에는 한 개의 보배병[寶甁]을 이고 있다. 그 외의 신체적 모습은 관음보살과 동일하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아미타불의 협시로서의 대세지보살은 성관음보살의 모습과 대체로 일치하며 다만 성관음이 관발(冠髮)에 화불(化佛)을 지니고 있는데 반해, 대세지보살은 보배병을 얹고 있는 차이가 있을 따름이다.
이 보살의 위신력은 실로 크고 불가사의하다고 한다. 경전에 따르면 대세지보살은 발을 한번 구르면 삼천대천세계뿐만 아니라 마귀의 궁전까지 뒤흔들 정도의 힘을 지녔다고 한다.
대일경소(大日經疏)에서는 여세국왕(如世國王)과 대신(大臣)의 위력을 대세(大勢)라고 했으며 대세지보살이란 이름은 그와 같은 힘을 가진 보살이라는 뜻이다.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 묘사된 대세지보살의 모습은 그 원광면(圓光面)이 각각 125유순(由旬)이나 되며 250유순 동안 온몸의 찬란한 빛이 시방세계를 태양처럼 비추고 있는 형상이다.
몸은 자금색(紫金色)이며 인연이 있는 모든 중생은 이 보살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시방세계를 훤히 비추고 있는 시방무량제불정사광명(十方無量諸佛淨紗光明)은 그 몸의 땀구멍을 통해 광채를 발한다.
그래서 대세지보살을 무변광(無邊光)이라고도 한다. 그 의미는 지혜의 빛으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골고루 비춘다는 뜻이다. 삼도(三途)의 고통을 영원히 여의고 위 없는 힘을 갖추고 있는 이 보살을 대세지라고 부르게 되는 연유도 여기서 비롯된다.
머리에 이고 있는 천관(天冠)에는 오백 가지의 보화가 있으며 보화 하나 하나에는 각각 오백 보대(五百寶臺)가 갖추어져 있다. 그 보대 하나하나에서 무변광이 비추어져 나온다. 머리 위의 육발은 발두마화(鉢頭摩華:붉은 연꽃)와 같으며 육발 위로는 하나의 보배병이 얹혀져 있다.
이 보배병 속에는 온갖 종류의 광명이 담겨져 있으며 이로서 대세지보살은 보현불사(普現佛事)를 하는 것이다. 그 외의 나머지 모습은 관세음보살상과 거의 차이가 없다.
⑬ 문수보살(文殊菩薩, Manjushri) : 불교의 대승보살(大乘菩薩) 가운데 하나.
우리 나라에서는 이 보살에 대한 신앙이 삼국시대 이래 널리 전승되었다. 문수는 문수사리(文殊師利) 또는 문수시리(文殊尸利)의 준말로, 범어 원어는 만주슈리(Manjushri)이다. ‘만주’는 달다[甘], 묘하다, 훌륭하다는 뜻이고, ‘슈리’는 복덕(福德)이 많다, 길상(吉祥)하다는 뜻으로, 합하여 훌륭한 복덕을 지녔다는 뜻이 된다.
문수보살은 부처님이 돌아가신 뒤 인도에서 태어나 반야(般若)의 도리를 선양한 이로서, 항상 반야지혜의 상징으로 표현되어 왔다. 그는 『반야경(般若經)』을 결집, 편찬한 이로 알려져 있고, 또 모든 부처님의 스승이요 부모라고 표현되어 왔다. 이는 『般若經』이 지혜를 중심으로 취급한 경전이고, 지혜가 부처를 이루는 근본이 되는 데서 유래된 표현이다.
일설에는 이 문수보살이 석가의 교화(敎化)를 돕기 위하여 일시적으로 몸을 바꾸어 보살의 지위에 머물고 있으나, 오랜 옛적에 이미 성불하여 용존상불(龍尊上佛)·대신불(大身佛)·신선불(神仙佛)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또 미래에 성불하여 보견여래(普見如來)로 불릴 것이라고 하였다. 또 다른 일설에는, 현재 북방의 상희세계(常喜世界)에 있는 환회장마니보적불이 곧 문수보살로, 이 부처님의 이름을 들으면 사중죄(四重罪)가 없어진다고 하였다.
이 문수보살의 상주처(常住處)는 신라의 고승 자장(慈藏)이 문수보살을 만나기 위해서 기도를 드렸던 중국 산시성(山西省) 청량산(淸凉山, 일명 五臺山)으로, 현재 1만 명의 보살과 함께 있다고도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강원도의 오대산을 문수보살의 상주도량으로 믿고 신봉한다.
『화엄경(華嚴經)』 속에서 문수보살은 보현보살과 함께 비로자나불의 양쪽 협시보살(夾侍菩薩:좌우에서 모시는 보살)이 되어 삼존불의 일원을 이루고 있다. 보현보살이 세상 속에서 실천적 구도자의 모습을 띠고 행동할 때 문수보살은 사람들의 지혜의 좌표가 되었다. 이 두 보살은 항상 서로의 지혜와 실천행을 주시하고 사랑하면서 스스로의 소임을 다한다.
문수보살은 일반적으로 연화대에 앉아 오른손에는 지혜의 칼을, 왼손에는 푸른 연꽃을 들고 있다. 그러나 때때로 위엄과 용맹을 상징하는 사자를 타고 있기도 하고, 경권(經卷)을 손에 든 모습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많다. 문수보살은 지혜의 완성을 상징하는 화신(化身)이다. 지혜가 완성되었다는 것은 곧 마음에 아무런 분별심·차별의식·우열관념 등이 없는 한없는 고요 속의 밝음이다.
이 문수보살에게도 다른 불보살처럼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십대원(十大願)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① 모든 중생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성취하게 하고 갖가지 방편으로 불도에 들게 한다. ② 문수를 비방하고 미워하고 죽음을 주는 중생이라도 모두 보리심을 내게 한다. ③ 문수를 사랑하거나 미워하거나, 깨끗한 행을 하거나 나쁜 짓을 하거나 모두 보리심을 내게 한다. ④ 문수를 속이거나 업신여기거나 삼보(三寶:불교의 세 가지 보배. 부처, 부처의 가르침, 부처의 제자)를 비방하며 교만한 자들이 모두 보리심을 내게 한다.
⑤ 문수를 천대하고 방해하며 구하지 않는 자 까지 모두 보리심을 내게 한다. ⑥ 살생을 업으로 하는 자나 재물에 욕심이 많은 자까지 모두 보리심을 내게 한다. ⑦ 모든 복덕을 부처님의 보리도에 회향하고 중생이 모두 복을 받게 하며, 모든 수행자에게 보리심을 내게 한다. ⑧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수라·하늘·인간세상)의 중생과 함께 나서 중생을 교화하며 그들이 보리심을 내게 한다.
⑨ 삼보를 비방하고 악업을 일삼는 중생들이 모두 보리심을 내어 위없는 도를 구하게 한다. ⑩ 자비희사(慈悲喜捨)와 허공같이 넓은 마음으로 중생을 끊임없이 제도하여 보리를 깨닫고 정각을 이루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이래 이 문수보살에 대한 신앙이 성행하였다. 우리 나라에 문수신앙을 최초로 이식한 이는 자장(慈藏, 590년(진평왕 12) ~ 658년(태종무열왕 5)이며, 이 밖에도 신라의 경흥대덕(憬興大德)이 문수의 경책을 받은 일이나 연회국사(緣會國師)가 문수보살을 친견한 이야기, 신라의 태자 보천〔寶川:신라 31대 신문왕(神文王:정신대왕(淨神大王?)의 두 아들, 아우는 효명(孝明). 보천과 효명이 하서군(河西郡)에 가 놀다가 갑자기 세속(世俗) 밖의 뜻을 약속하고 오대산(五臺山)에 들어갔다. 보천은 중대(中臺) 청련(靑蓮) 꽃이 핀 데에 암자(庵子)를 짓고 보천암이라 하였다.〕과 효명(孝明)이 오대산에 문수보살을 중심으로 한 오방위신앙을 정립시킨 기록이 있다.
또 경순왕이 문수보살의 화신인 줄 모르고 공양 올리기를 꺼린 설화, 문수보살과 함께 수도했던 고려 고승 3인에 얽힌 설화, 세조의 병을 고쳐 준 문수동자의 설화, 문수동자의 경책을 들은 환우화상 이야기, 땡추로 변화한 문수보살, 하동 칠불암의 문수동자 설화 등 많은 이야기가 전래되고 있다. 문수보살을 본존으로 하고 닦는 기도법으로는 문수팔자법(文殊八字法)이 있는데, 이는 천변·일식·월식·병란 등을 피하는 수행법(修行法)이다.
우리 나라의 문수신앙은 신라의 고승 자장(慈藏)에 의해서 정착되었다. 『화엄경(華嚴經)』에 의하면 중국의 청량산(淸凉山)을 문수보살의 상주처(常住處)라고 하였는데, 이 청량산에서 수행한 자장이 청량산의 태화지(太和池)에 있는 문수보살 석상 앞에서 7일 동안 기도하여 보살로부터 범어로 된 사구게(四句偈)를 받았다. 이어서 한 노승으로부터 범어 게송에 대한 해석을 듣고 부처님의 가사(袈裟)와 발우를 받았으며, 신라에 구층탑을 세워 나라를 편안하게 할 것을 부탁받았다.
이때 그 노승에게서 우리 나라의 오대산(五臺山:강원도 평창군·홍천군·강릉시에 걸쳐 있는 산이다.)이 문수보살의 상주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자장(慈藏)은 643년(선덕여왕 12) 귀국하여 황룡사(皇龍寺)에 구층탑을 세우고 오대산 중대(中臺)에 적멸보궁(寂滅寶宮)을 건립하여 오대산을 문수신앙의 중심 도량으로 만들었다. 그 뒤 강릉 수다사(水多寺), 태백산(太白山) 석남원(石南院) 등지에서 문수보살과 관련된 이적들을 남겼다. 그리고 통일신라시대의 고승 보천은 오대산의 중대가 1만의 문수보살이 머무는 도량임을 강조하여, 이후 향화(香華)가 끊이지 않게 하였다. 특히, 조선 세조가 등창병으로 고생할 때 오대산 상원사(上院寺)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문수동자의 감응을 받아 병이 낫게 된 뒤부터 문수신앙은 더욱 성행하게 되었다.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문수도량으로는 오대산(五臺山)을 비롯하여 강원도 춘천시 청평사(淸平寺)를 들 수 있으며, 이 밖에 삼각산 문수암, 김포 문수암, 평창시 문수사, 옥천군 문수사, 서산시 문수사, 구미시(선산) 문수사, 고성군 문수암, 울산시(울주) 문수암, 김제시 문수사, 익산시 문수사, 고창군 문수사 등이 있다.
우리 나라의 사찰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좌측에 문수보살을 봉안하는 경우가 많고, 대적광전(大寂光殿)에도 비로자나불 좌측에 문수보살을 봉안하며, 특별히 문수신앙이 강한 사찰에는 문수보살상만을 모신 문수전(文殊殿)을 따로 두기도 한다.
⑭ 보현보살(普賢菩薩, Samantabhadra) : 부처님의 행원(行願)을 대변하는 보살. 이 보살은 문수보살(文殊菩薩)과 함께 석가모니불을 협시(脇侍)하는 보살로 유명하다. 문수보살이 여래의 왼편에서 여러 부처님의 지덕(智德)과 체덕(體德)을 맡음에 대하여, 보현보살은 오른쪽에서 이덕(理德)과 정덕(定德)과 행덕(行德)을 맡는다.
또 문수보살과 함께 일체보살의 으뜸이 되어서 언제나 여래께서 중생을 제도하는 일을 돕고 널리 선양한다. 또 중생들의 목숨을 길게 하는 덕을 가졌으므로 보현연명보살 또는 연명보살(延命菩薩)이라고도 한다. 형상은 여러 가지로 묘사되나 크게 나누면 흰 코끼리를 탄 모양과 연화대에 앉은 모양의 2종이 있다. 예로부터 이 보살은 코끼리에 탄 형상으로 많이 표현되었고, 연화대에 앉은 모습은 주로 진언밀교(眞言密敎) 계통에서 많이 만들어졌다.
『화엄경(華嚴經)』에 의하면, 이 보살은 일찍이 비로자나불 밑에서 보살행을 닦았던 보살들의 대표로, 구도자들에게 법계(法界)를 열어 보여주는 사실상의 『華嚴經』 설법사이다.
그는 일찍이 수천 억의 여래에게 봉사하고, 모든 보살도의 구극에 도달하고, 삼매에 의하여 자재력을 얻고 모든 것을 알며, 여래의 비밀처에 통하여 일체의 불법에 대하여 의문을 끊고, 일체여래의 가지(加持)를 받으며, 일체중생의 근기(根機)를 알며, 일체중생의 신해(信解)와 해탈에의 길을 잘 보여주며, 모든 여래의 가계(家系)를 흥성하게 하는 지혜를 가지며, 모든 부처님의 법을 해설하는데 능통하며, 기타 무량한 덕성을 완비하고 있다.
그리고 보현보살은 모든 부처님의 본원력(本願力)에 근거하여 그 가지법(加持法)에 의해서 중생이익의 원을 세워서 수행하는 것을 그 의무로 삼고 있다. 이것을 보현의 행원이라고 하는데, 이를 압축하면 10대원(大願)이 된다.
① 모든 부처님께 예배·공양하고(禮敬諸佛), ② 모든 부처님을 우러러 찬탄하고(稱讚如來), ③ 모든 부처님을 널리 공양하며(廣修供養), ④ 스스로의 업장을 참회하고(懺悔業障), ⑤ 남의 공덕을 따라서 기뻐하며(隨喜功德), ⑥ 부처님이 설법해 주기를 청하고(請轉法輪), ⑦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래 머무르기를 청하고(請佛住世), ⑧ 항상 부처님을 따라 배우고(常隨佛學), ⑨ 항상 중생들에게 순응하며(恒順衆生), ⑩ 두루 모든 것을 가지고 회향하는 것(普皆廻向)이다.
이 10대원은 보현보살의 본원이자 모든 구도자들이 이룩하기 위하여 실천해야 하는 조항으로서, 우리 나라에서는 널리 신봉되고 있다. 특히 고려 광종 때의 균여(均如)는 <보현십원가(普賢十願歌)>를 지어 불교의 대중화를 꾀하기도 하였다. 특히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많이 유포되는 경전 가운데의 하나로서 보현보살을 관하는 중생들에게 보현삼매(普賢三昧)에 몰입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보현보살을 본존으로 하고 제법실상(諸法實相)의 이치를 관하여 죄장(罪障)을 참회하는 이 삼매는 『法華經』의 유행과 함께 우리 나라의 천태종(天台宗) 등 법화신앙계 종파에서 널리 유행하였다.
그러나 보현보살은 관음이나 지장보살처럼 현세이익 또는 내세이익의 측면이 부족하였으므로 신앙으로는 널리 유행하지는 못하였다.
⑮ 지장보살(地藏菩薩, Ksitigarbha) : 육도(六道:지옥·아귀·축생·수라·하늘·인간세상의 여섯 가지 세상)의 중생을 구원하는 대비보살(大悲菩薩)
도리천(忉利天)에서 석가여래의 부촉을 받고 매일 아침 선정(禪定)에 들어 중생의 근기를 관찰하며, 석가여래가 입멸한 뒤부터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천상에서 지옥까지의 일체중생을 교화하는 대자대비의 보살이다.
지장보살에 관한 경전으로는 『지장십륜경(地藏十輪經)』과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점찰선악업보경(占察善惡業報經)』이 있다. 이들 경에 의하면 지장보살은 이미 여래의 경지를 증득하였고 무생법인(無生法印)을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중생들을 성숙시키기 위하여 모든 부처의 국토에 머물러 있다고 한다.
지장보살에게는 다른 보살에게서 찾기 어려운 몇 가지의 특징이 있다.
첫째, 자신의 성불(成佛)을 포기한 보살이다. 불교의 궁극적인 이상은 성불이고 모든 중생의 성불은 부처가 보장하였지만 지장보살만은 예외이다. 그는 모든 중생, 특히 악도(惡道)에 떨어져서 헤매는 중생, 지옥의 고통을 받으며 괴로워하는 중생들 모두가 빠짐없이 성불하기 전에는 자신도 결코 성불하지 않을 것을 맹세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중생의 성불은 기약할 수 없는 것이므로 지장보살은 성불을 사실상 포기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지장보살을 대원본존(大願本尊)이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둘째, 정한 업을 면하기 어렵다[定業難免]는 불교의 일반설이 지장보살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 세상의 모든 중생의 운명은 전생의 업에 의하여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것이 업보사상이다. 누구든지 업보에 의해서 결정된 괴로움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장보살은 이와 같은 정해진 업도 모두 소멸시킨다. 지장보살에게 귀의하여 해탈을 구하면 악도를 벗어나서 천상락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죽은 뒤 뿐만 아니라 살아 있을 때도 똑같이 적용된다.
셋째, 지장보살은 부처가 있지 않은 세상에서 모든 중생의 행복을 책임지는 보살이다. 악업의 중생들을 보살펴 자비로써 감싸 주는 지장보살의 사상은 무한의 용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지장보살에게는 벌을 받게 버려 두어야 할 중생이 하나도 없다. 그는 모든 중생을 한계 없이 용서하여 천상락을 누리고 열반의 길에 들게 인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보다 더욱 큰 특징은 모든 중생을 지옥의 고통에서부터 구제해 준다는 것이다. 그는 지옥문을 지키고 있으면서 그곳에 들어가는 중생을 못 들어가도록 가로막는다. 또는, 지옥 그 자체를 부수어서 그 속에서 고생하는 중생들을 천상이나 극락으로 인도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지장보살의 자비 때문에 우리 나라에서는 일찍부터 지장보살에 대한 신앙이 성행하여 대표적인 불교신앙 중의 하나로 유포되었다. 특히, 지옥에 떨어질 것을 걱정하는 후손들에 의해서 지장보살은 널리 신봉되었다. 즉 현실의 죄나 고통을 없애 주는 보살로서는 관음보살이 으뜸인데 비하여, 죽은 뒤의 육도윤회나 지옥에 떨어지는 고통을 구제해 주는 데는 지장보살이 으뜸인 것이다.
따라서, 지장보살은 육도윤회를 심판하는 명부(冥府)의 구세주로 등장하게 되었고, 우리 나라 사찰에서는 명부전(冥府殿)의 주존으로 신앙하게 되었다.
이 지장보살의 형상은 원래는 천관을 쓰고 가사를 입었으며, 왼손에는 연꽃을, 오른손은 시무외인(施無畏印)을 짓고 있는 형상이었다. 또, 왼손에 연꽃을 쥐고 오른손에 보주(寶珠)를 든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하였다. 이것이 원래의 정형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석장(錫杖)을 짚고 있는 모습으로 많이 묘사되는데, 이는 『연명지장경(延命地藏經)』에 근거를 둔 모습이다.
이 경우 지장보살은 삭발한 머리에 석장을 짚고 여의주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 지장보살은 때때로 육지장(六地藏)의 존재로 분류되기도 한다. 이는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육도를 거두어 교화한다는 경전의 말씀을 근거로 모시고 공양하는 6체(體)의 지장으로, 명칭은 일정하지 않다.
태장계만다라(胎藏界曼茶羅)에서는 지장·보처(寶處)·보수(寶手)·지지(持地)·보인수(寶印手)·견고(堅固)
보살로 묘사되고, 『연화삼매경(蓮花三昧經)』에서는 광미(光味)·모니(牟尼)·제룡(諸龍)·구승(救勝)·호찬
(護讚)·불휴식(不休息)으로, 『시왕경(十王經)』에는 예천하(豫天賀)·방광왕(放光王)·금강당(金剛幢)·금강비
(金剛悲)·금강보(金剛寶)·금강원(金剛願) 등으로, 『현종기』에서는 단타(檀陀)·보주·보인(寶印)·지지·제개장(除蓋藏)·일광(日光) 등으로 표현된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와 같은 육지장설보다는 6도 전체가 삼계(三界)라고 보고 그 삼계를 각각 통괄하는 천장(天藏)·지지(持地)·지장(地藏)의 삼장보살(三藏菩薩)로써 지장신앙을 확산시켜 갔다. 이것은 조선 중기에 널리 성행하였으며, 이 때 지장은 신중(神衆)의 기능까지 도맡게 된다. 이 밖에도 우리 나라에는 지장보살과 관계된 특별한 의식이 많이 전래되고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유명한 것은 매년 7월 24일에 거행되는 지장재(地藏齋)와 백중날에 개최되는 우란분회(盂蘭盆會)이다. 백중인 7월 15일은 참회의 날로서 과거·현재의 죽은 어버이를 위하여 시방의 부처와 승려들에게 온갖 음식을 공양하고 극락왕생을 기원하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관세음보살과 함께 지장보살은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의 기능까지도 갖게 되었다.
지장보살은 그 신력(神力)과 자비와 지혜와 변재(辯才)가 불가사의한 보살이며, 모든 악업에서 해탈하게 하는 보살이며, 죽은 사람과 산 사람 모두를 이롭게 하는 보살이다. 따라서, 신라시대 이후로 이 신앙은 가장 일반적인 신앙으로 신봉되었고, 특히 죽은 사람을 위한 49재(齋) 때에는 절대적인 권능을 가지는 보살로 받들어지고 있다.
⑯ 용수(龍樹, 150? ~ 250?) : 인도의 승려로 대승불교의 교리를 체계화하는 데 크게 기여하여 대승8종의 종조(宗祖)로 불린다.
원래의 이름은 나가르주나(Nagarjuna)이며, 용수(龍樹)는 산스크리트어로 용(龍)을 뜻하는 나가(naga)와 나무[樹]를 뜻하는 아가르주나(agarjuna)를 한자로 옮겨 표기한 것이다. 한국·중국·일본 등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는 모두 용수라는 이름으로 나타내며, 존칭(尊稱)으로 용수보살(龍樹菩薩)이나 용수대사(龍樹大士)라고 부르기도 한다. 밀교(密教)에서는 ‘용맹(龍猛)’이라고 나타내기도 한다.
인도 중부 데칸고원(Deccan)에 있는 비다르바(vidarbha)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브라만교(Brahmanism)의 교리를 공부하였으며, 카시미르(Kashmir)와 인도 북부 지역을 두루 여행하며 소승불교의 경전도 깊게 공부하였다. 그리고 『반야경(般若經)』 등의 대승불교 경전을 공부하여 새롭게 발흥하던 대승불교의 교리를 체계화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당시 인도 중남부의 사타바하나 왕조
(Satavahanas)는 하이데라바드(Hyderabad) 인근에 불교 강원(講院)을 세워 실론과 간다라, 중국 등지의 유학승들을 머무르게 했는데, 용수는 만년에 이곳에서 사타바하나 왕조의 보호를 받으며 가르침을 펼쳤다. 그래서 강원이 있던 곳은 그의 이름을 따서 나가르주나 언덕이라고 불렸다고 전해진다.
용수는 공(空)과 중도(中道) 이론을 체계화하여 대승불교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쳐 대승8종(大乘八宗)의 종사(祖師)라고도 불린다. 그는 모든 현상은 그 나름의 인과관계로 나타난다는 석가의 연기설(緣起說)을 바탕으로 대승불교의 기반이 된 『반야경(般若經)』에서 강조된 ‘공(空)’을 논증하였다. 그는 모든 현상은 인과관계로 나타나는 것이므로 스스로 독립해 존재하는 불변의 실체는 없다고 보고, 모든 존재는 무자성(無自性)이며 공(空)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용수의 공은 무자성공(無自性空)이라고 나타내기도 한다.
그리고 그는 진속이제설(眞俗二諦說)을 기초로 공(空)과 연기(緣起)가 대립하지 않음을 밝히며 중도(中道)에 대해서도 논증하였다. 그는 인간의 인식을 초월한 진리의 세계를 진제(眞諦)인 제일의제(第一義諦)라고 하였고, 언어나 개념으로 인식된 상대적인 현상의 세계를 세속제(世俗諦)라고 구분하였다. 그리고 진제(眞諦)에서는 모든 법이 공(空)하지만 세속제(世俗諦)의 현상적인 차원에서는 연기(緣起)에 의한 상대적인 세계가 이루어지며, 진제와 세속제는 서로 의존하고 있는 진속불이(眞俗不二)의 관계에 있다고 보았다. 곧 공(空)은 ‘없음[無]’이 아니라 모든 것이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연기(緣起)이며, 있음과 없음을 초월한 중도(中道)야말로 불교의 가장 핵심적인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그는 중론(中論)에서 “연기법이 곧 공이며 가명이며 중도(中道)의 뜻이다.〔중인연생법(衆因緣生法) 아설즉시무(我說卽是無) 역위시가명(亦爲是假名) 역시중도의(亦是中道義)〕”라고 하였고, 중도(中道)에 대해서는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상주하지도 않고 단멸하지도 않으며, 동일하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으며,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다.〔불생역불멸(不生亦不滅) 불상역불단(不常亦不斷) 불일역불이(不一亦不異) 불래역불출(不來亦不出)〕”라고 설하였다.
이러한 용수의 사상은 불교 교리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사상은 구마라습(鳩摩羅什)에 의해 중국으로 전해져 ‘삼론종(三論宗)’을 형성하였다. 또한 8세기 산타라크시타(Santaraksita, 적호:寂護)에 의해 티베트로 전래되어 티베트 불교의 형성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용수에게는 ≪중론≫, ≪회쟁론(廻諍論)≫, ≪공칠십론(空七十論)≫, ≪십이문론(十二門論)≫, ≪대지도론(大智度論)≫, ≪마하반야바라밀경(摩訶般若波羅蜜経)≫,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 ≪보행왕정론(寶行王正論)≫ 등의 저술이 전해진다. 하지만 이 가운데 ≪중론≫과 ≪회쟁론≫을 제외한 나머지 저술들은 학계에서 그의 저술로 확실히 인정되지는 않고 있으며, 다양한 이견이 제출되고 있다.
⑰ 마명(馬鳴, Aśvaghoṣa, Asvaghosa) : 아습박구사(阿濕縛寠沙) 또는 아나보저(阿那菩底)라고도 한다.
인도의 학승으로 산스크리트어 이름은 아슈바고샤(Aśvaghoṣa)이다. 아슈바고샤라는 말의 뜻을 번역하여 한역 경전에서는 마명(馬鳴)으로 불린다. 『불소행찬(佛所行讚)』과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의 저자로 유명하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 전통적으로 알려져 온 것과는 달리, 『대승기신론』은 인도에서 찬술된 문헌이 아닌 중국에서 찬술된 위경일 것이라는 주장이 불교학자들에 의해 제기되면서 마명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발생하였다. 논란의 핵심은 『대승기신론』은 전통적으로 알려져 온 것과는 달리 이 인도의 마명(馬鳴, Asvaghosa)보살이 아닌, 중국에서 활동한 인도의 역경승이나 중국인에 의해 처음부터 중국어로 씌어진 저술이라는 것이다.
『대승기신론』은 동북아 불교에서 아주 중요한 문헌이므로 이러한 위찬(僞撰)의 논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전통적 기록에 의하면 그는 코살라(kosala) 혹은 마가다(magada)국 태생으로서 정통바라문 출신이었으나 불교 승려인 부나야사(富那夜奢, Punyayasas), 혹은 협존자(脇尊者, Parsva)와의 대론에서 패배하여 그의 제자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후에 카니시카왕에 의해 간다라에 가서 그의 위호 아래 불법을 크게 선양하였다고 한다. 『불소행찬(佛所行讚, Buddhacarita)』은 석가모니의 행적을 기술한 책으로 붓다의 출생부터 입적 후 사리를 여러 국가로 나누는 부분까지를 내용에 담고 있다. 붓다의 생애와 가르침을 알수 있는 중요한 문헌으로 한역본 뿐만 아니라 산스크리트어 원전도 일부 존재한다.
⑱ 제바(提婆, Deva) : 제바달다(提婆達多)의 준말이며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devadatta의 음사. 붓다의 사촌 동생으로, 출가하여 그의 제자가 됨. 붓다에게 승단을 물려줄 것을 청하여 거절당하자 500여 명의 비구를 규합하여 승단을 이탈함. 여러 번 붓다를 살해하려다 실패함.
① 산스크리트어 deva의 음사. 천(天). 천신(天神). 신(神). 천계(天界)에 사는 신(神)들.
② 산스크리트어 deva의 음사. 2세기-3세기, 남인도 바라문 출신의 승려로, 용수(龍樹)의 제자. 성천(聖天, 산스크리트어 ārya-deva)이라고도 하고, 또 한쪽 눈이 멀었으므로 가나제바(迦那提婆, 산스크리트어 kāṇa-deva)라고도 함. 산스크리트어 kāṇa는 애꾸눈이라는 뜻. 중인도와 남인도에서 여러 외도들의 주장을 논파함. 남인도에서 외도의 칼에 맞아 죽음. 저서 : 백론(百論)·광백론본(廣百論本)·백자론(百字論).
③ 제바달다(提婆達多)의 준말.
⑲ 무착(無着, Asańga) :
① 인도의 대승불교 유식파(唯識派)의 대학자. 산스크리트명 아상가(Asaṅga)의 한역. 생몰연대 미상. 4~5세기경의 사람. 서북 인도의 간다라국(현대의 파키스탄, 페샤와르 지방)에서 브라만의 자식으로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카우실카(kausika), 어머니는 비린치(Vrinci), 형제 3명 중 장남이었다. 그의 아우로는 설일체유부에서 유식파로 전향해서 대성한 바스반두(세친)가 있다. 처음에 부파(소승)불교의 화지부(化地部, 일설에는 설일체유부)에서 출가해서, 명상에 의거한 욕망으로부터의 해탈법을 습득했다.
<공(空)>의 교리를 이해할 수 없어서 자살하려고 고민했을 때, 동방, 비데하국(현재의 비하르주 북부)의 핀돌라(Pindola) 아라한을 만나서 겨우 소승의 공관(空觀)도 체득했다. 그러나 이에 만족할 수 없는 아상가는 인도 중부의 아요딘야(현, 아우드)에 가서 대승불교의 수행의 하나인 유가행에 노력했다. 거기에서 마이트레야(미륵)에게서 대승의 공(空)사상을 공부하고, 대승불교도가 되었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이트레야가 직접 『유가사지론』을 설교하도록 요청하고, 아상가는 해탈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유식(唯識)사상 유포의 단서가 되었다. 또한 그는 마아트레야에게서 일광삼매를 배웠는데, 대승의 교의를 용이하게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말년에는 대승을 비방하는 동생 바스반두를 아요디야에 불러서 위대한 대승불교자로 키웠다. 주저서로는 『현양성교론(顯揚聖敎論)』 20권, 『섭대승론(攝大乘論)』 3권,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7권, 미륵 보살의 말을 적은 것으로 전해지는 『유가사지론』 100권, 『대승장엄론』 13권이 있다.
② 중국 승려. 당나라 한주 문희(文喜)의 호. 7세에 출가하여 교학과 계율을 공부하고, 당나라 선종 때에는 오대산으로 문수 보살을 예배가려던 길에 어떤 노인을 만나 "전삼삼 후삼삼(前三三 後三三)"이란 말을 들은 것으로 유명하다. 함통 3년에는 홍주 관음원에서 앙산 혜적을 만나 심요(心要)를 깨닫고, 광화 3(900)년 80세에 입적하였다.
⑳ 세친(世親, Vasubandhu, 320? ~ 400?) :
천친(天親)이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 바수반두를, 바수반두(婆數槃豆)·벌소반도(伐蘇畔度) 등으로 음역한다. 간다라국(國)의 정통 브라만 출신. 형인 무착(無著, Asańga)과 동생 사자각(師子覺)도 유명한 불교학자이다. 처음에는 소승불교 가운데의 최대학파였던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와 경량부(經量部)의 사상을 공부하여, 하루에 한 게송(偈頌)씩 600게를 지었다는 명저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을 저술하였다. 이 책은 소승불교의 특징 있는 여러 사상(불교철학)을 잘 간추려 엮은 것으로서, 인도·중국·한국·일본 등지에서 널리 읽혔다. 뒤에 형 무착의 권유로 대승불교로 전향하여, 미륵(彌勒)·무착으로 이어져 확립된 유식사상(唯識思想)을 《유식이십론(唯識二十論)》과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에 결집하였다.
대승불교에서의 그의 위치는, 《화엄(華嚴)》 《법화(法華)》 《열반(涅槃)》 《승만(勝鬘)》 《무량수경(無量壽經)》 등의 여러 대승경전(大乘經典)의 연구 발표로, 대승 전반에 걸쳐 개척자적인 지위를 확보하였는데, 특히 중요한 것은 형 무착의 유식학(唯識學)을 계승하여 이를 완성시킨 데 있다. 무착과 세친의 대승불교는 유가행파(瑜伽行派)로 불리어, 용수(龍樹) 등의 중관파(中觀派)와 더불어 인도 대승불교의 양대 주류를 이루었다. 《대승성업론(大乘成業論)》 《불성론(佛性論)》 《변중변론(辨中邊論)》 등의 저서도 있다.
㉑ 축법호(竺法護, 239년 ~ 316년) : 중국 간쑤성[甘肅省] 서부에 있는 도시 진대(晉代) 둔황(燉煌, 敦煌(돈황) Dunhuang)의 승려로 범어로 된 불전을 한역(漢譯)하고 교화(敎化)에도 힘을 기울였다. 중국에 관음(觀音)의 이름이 알려진 것은 그가 《정법화경(正法華經)》을 번역한 이후의 일이라 한다.
서진(西晋)의 승려. 감숙성(甘肅省) 돈황(敦煌) 월지국(月氏國) 출신으로 지법호(支法護)라고도 불리었으나, 스승인 축고좌(竺高座)의 “축”(竺)을 따서 보통 축법호라고 부른다. 8세에 출가하여 축고좌(竺高座)를 스승으로 모시고 불경(佛經)을 학습함. 스승과 함께 서역(西域)을 편력하면서 많은 범본(梵本)을 수집하고 낙양(洛陽)에 와서 광찬경(光讚經)·현겁경(賢劫經)·정법화경(正法華經)·보요경(普曜經)·생경(生經)·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우란분경(盂蘭盆經) 등, 총 145종을 번역함.
선조는 대월지국(大月氏國) 출신으로, 범명(梵名)으로는 다르마라크사(Darmaraksa)라고 한다. 8세에 출가하여 외국의 사문고좌(沙門高座)들을 스승으로 하였으며, 여러 나라를 편력하여 36개 국어에 통하였다. 서진(西晉) 시대에 범어로 된 불전을 가지고 창안[장안(長安)]·뤄양[낙양(洛陽)]으로 와서, 266∼308년 그 한역(漢譯)에 몰두하는 한편, 교화(敎化)에도 힘을 기울였다.
《반야(般若)》 《법화(法華)》 《유마(維摩)》 《무량수(無量壽)》 등의 《대승경전(大乘經典)》을 비롯한 많은 경전을 번역하였는데, 경전이 중국에 널리 보급된 데는 그의 힘이 컸으며, 생존 당시 둔황보살(敦煌菩薩)·월지보살(月氏菩薩)이라는 존칭을 들었다. 중국에 관음(觀音)의 이름이 알려지고, 그 영험설화와 신앙이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그가 《정법화경(正法華經)》을 번역한 이후의 일이었다.
㉒ 도안(道安, 312~385)
중국의 승려. 허베이성(河北省) 창산푸류현(常山扶柳縣) 출생. 12세에 출가하여, 총명하였으나 용모가 너무 못생겨 스승에게서 귀염도 받지 못한 채 논밭에서 3년 동안 일하였다. 어느날 《변의경(辯意經)》과 《성구광명경(成具光朋經)》을 배운 뒤 곧 외어서 스승을 놀라게 하였다.
유학이 허락되어 서역승(西域僧) 불도징(佛圖澄)을 스승으로 섬기고, 법제(法濟)․지담(支曇) 등에게 배웠다. 스승이 죽은 뒤 혜원(慧遠) 등 400명 가량의 문하생을 거느리고 샹양(襄陽)에 단계사(壇溪寺)를 세워 엄숙한 구도연수(求道硏修)의 교단을 조직하여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았다. 379년 전진(前秦)의 왕 부견(符堅)이 샹양을 공략한 뒤 도안을 장안(長安)으로 맞아들여 오중사(五重寺)에서 경전을 번역․강존케 하였다. 그는 여러 경전 가운데 잘못된 곳을 개탄,《반야경(般若經)》 《도행경(道行經)》 《밀적경(密跡經)》 《안반경(安般經)》 등의 문구를 비교하여 시작되고 끝나는 뜻을 밝혔다.
또한 한역불전(漢譯佛典)의 총목록인 《종리중경목록(綜理衆經目錄)》을 편찬하고 불사(佛寺)생활의
규율을 제정하는 등 후세의 불교 발달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의 학설은 반야의 공론(空論)을 주장, 중국 초기의 불교는 인도와 서역에서 온 승려에 의하여 개척되었는데 도안 때부터 중국인에 의하여 중국불교가 일어났다. 세상에서는 그를 인수보살(印手菩薩)이라 부른다.
㉓ 원효(元曉, 617~686.3.30) : 신라의 승려로 일심(一心)과 화쟁(和諍) 사상을 중심으로 불교의 대중화에 힘썼으며 수많은 저술을 남겨 불교 사상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속성(俗姓)은 설(薛), 아명(兒名)은 서당(誓幢)·신당(新幢)이다. 법명(法名)은 스스로 원효(元曉)라고 지었는데, 이는 불교를 새로 빛나게 한다는 뜻이며 당시 사람들은 ‘새벽[시단(始旦)]’이라는 뜻의 우리말로 불렀다고 전해진다. 617년(진평왕 39년) 압량군(押梁郡) 불지촌(佛地村,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북쪽 율곡(栗谷)에서 태어났으며, 조부는 잉피공(仍皮公, 赤大公이라고도 함)이고, 아버지는 신라 17관등 가운데 11위 내마(柰麻)의 지위에 있던 담날(談捺)이다. 설총(薛聰)을 낳은 뒤에 스스로 소성거사(小性居士)·복성거사(卜性居士)라고 칭하기도 했으며, 고려 숙종 때(1101년)에는 대성화쟁국사(大聖和諍國師)라는 시호(諡號)를 받았다. 한국 불교 사상의 발달에 크게 기여하여 해동보살(海東菩薩), 해동종주(海東宗主)라고도 불린다.
15세 무렵에 집안의 재산을 희사(喜捨)하고 출가하여 자신의 집을 절로 지어 초개사(初開寺)라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태어난 사라수(裟羅樹) 곁에 사라사(沙羅寺)를 세웠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낭지(朗智)와 혜공(惠空) 등의 고승에게 불법을 배웠다고 전해지며, 완산주(完山州)에 머무르며 열반종(涅槃宗)을 강론하던 고구려의 승려 보덕(普德)에게 열반경(涅槃經)과 유마경(維摩經) 등을 배웠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특별하게 한 명의 스승을 정해 놓고 배우지는 않았으며, 스스로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648년(진덕여왕 2년)에는 황룡사(皇龍寺)에서 불경을 연구하며 수도하였다.
650년 의상(義湘)과 함께 현장(玄奘)이 인도에서 새로 들여온 신유식(新唯識)을 배우기 위해 중국의 당(唐) 나라로 유학을 떠나려 했으나 요동(遼東)에서 첩자(諜者)로 몰려 사로잡히면서 실패하였다. 661년(문무왕 원년)에 다시 의상과 함께 당 나라로 떠나려 하였으나, 배를 타러 당항성(唐項城,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으로 가던 길에서 진리는 밖에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고 되돌아왔다. 밤에 오래된 무덤에서 잠을 자다가 잠결에 해골에 괸 물을 마시고 ‘이 세상의 온갖 현상은 모두 마음에서 일어나며, 모든 법은 오직 인식일 뿐이다. 마음 밖에 법이 없는데, 어찌 따로 구할 필요가 있겠는가(三界唯心 萬法唯識 心外無法 胡用別求)’라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 뒤 분황사(芬皇寺) 등에 머무르며 불경의 연구와 <화엄경소(華嚴經疏)> 등의 저술에 힘쓰기도 하였으나, 요석공주(瑤石公主)와의 사이에서 설총(薛聰)을 낳은 뒤에는 스스로 소성거사(小性居士), 복성거사(卜性居士)라고 칭하며 서민 속으로 들어가 불교의 대중화에 힘썼다. 광대들이 가지고 노는 큰 박으로 도구를 만들어 이를 ‘무애(無碍)’라 하였다. 무애(無碍)는 ‘일체의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 한 길로 삶과 죽음을 넘어설 수 있다(一切無碍人 一道出生死)’는 화엄경(華嚴經)의 구절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이를 가지고 각지를 떠돌며 불교의 교리를 쉬운 노래로 만들어 전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본래의 마음을 깨달으면 정토(淨土)를 이룰 수 있으며, 입으로 부처의 이름을 외우고 귀로 부처의 가르침을 들으면 성불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이러한 원효의 활동으로 신라의 백성들은 모두 부처의 이름을 알고 ‘나무아미타불’의 염불을 외우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만년에는 경주의 고선사(高仙寺)에 머무르다가, 686년(신문왕 6년) 3월 30일 혈사(穴寺)에서 70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 그가 죽은 뒤에 아들인 설총이 유골을 빻아 소상(塑像)을 만들어 분황사에 안치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신라 애장왕(哀莊王) 때에 그의 후손인 설중업(薛仲業)이 당시 실권자였던 각간(角干) 김언승(金彦昇, 뒷날의 헌덕왕)의 후원으로 고선사(高仙寺)에 서당화상비(誓幢和尙碑)를 세웠다. 이 비석은 오늘날에도 일부가 훼손되어 전해지는데, 원효의 전기에 관한 가장 오래된 자료로서의 의의를 지닌다. 고려 명종(明宗) 때에도 분황사에 화쟁국사비(和諍國師碑)를 세웠다고 전해지지만, 오늘날에는 남아 있지 않다.
원효에 관한 기록은 <삼국유사>와 ‘서당화상비’ 이외에 중국의 송(宋) 나라 때에 찬녕(贊寧)이 편찬한 <송고승전(宋高僧傳)> 등에도 전해진다. <삼국유사>에는 ‘원효불기(元曉不羈)’ 이외에 ‘낭지승운보현수(朗智乘雲普賢樹)’, ‘사복불언(蛇福不言)’, ‘의상전교(義湘傳敎)’, ‘이혜동진(二惠同塵)’, ‘낙산이대성관음정취조신(洛山二大聖觀音正趣調信), ‘광덕엄장(廣德嚴莊)’ 조(條) 등에 원효와 관련된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㉔ 사홍서원(四弘誓願) : 불교도들이 지녀야 할 네 가지 큰 서원.
대승불교의 근본이 되는 원이며, 모든 보살(菩薩)이 다 함께 일으키는 원이라고 하여 총원(總願)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불교의식 및 법회의 시작에 삼귀의(三歸依:불·법·승 삼보에 돌아가 의지함.)를 하고 마지막으로 사홍서원을 외워 끝을 맺게 된다.
국가 및 종파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외우는 사홍서원은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이다.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는 중생의 수가 한없이 많지만 모두를 교화하여 생사해탈의 열반(涅槃)에 이르게 하겠다는 것이고,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은 다함이 없는 번뇌를 반드시 끊어서 생사를 벗어나겠다는 것이며,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은 한량없는 법문을 남김없이 배워 마치겠다는 것이며,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은 위없는 최상의 불도를 마침내 이루겠다는 맹세이다.
이들 네 가지 서원 첫머리의 중생·번뇌·법문·불도는 불교의 기본진리인 고(苦)·집(集)·멸(滅)·도(道)의 사제(四諦)와 대비를 시켜 구성한 것이라는 설도 있고, 앞의 하나는 이타(利他)의 원이고, 뒤의 셋은 자리(自利)의 원이라고 분류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무변·무진·무량·무상한 것을 제도하고 끊고 배우고 이루겠다고 한 점이다. 실제에 있어서 배우고 배워도 한량이 없는 법문을 모두 배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가없는 중생을 다 구하겠다는 것 또한 논리에 맞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만 보살은 이와 같은 사홍서원을 세우고 그 서원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한다. 왜냐하면 그 원을 이루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이야말로 보살의 길이기 때문에 이들 원을 실천한다는 것이다.
㉕ 8정도(八正道) : 불교 수행에서의 8가지 올바른 길.
정견(正見)·정사유(正思惟)·정어(正語)·정업(正業)·정명(正命)·정념(正念)·정정진(正精進)·정정(正定)을 말한다. 우리 나라의 불교는 대승불교권에 속하지만, 불교를 믿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먼저 이 팔정도에 의하여 수행하고 생활하도록 되어 있다. 이 팔정도는 팔지성도(八支聖道)라고도 하며, ‘여덟 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진 성스러운 도(道)’라는 의미이다.
이 도는 팔리어로 막고(maggo)라는 단수형으로 표시되는데, 이는 8개의 것이 하나의 성스러운 도의 각 부분을 구성하고 있고, 8개 가운데 하나가 실천되면 다른 7개가 그 하나에 포함되어 동시에 행해진다는 상섭(相攝)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팔정도는 사성제(四聖諦:네 가지의 성스러운 진리. 즉, 苦·集·滅·道) 중 하나인 도제(道諦)의 구체적인 내용으로 설명된 것이다.
팔정도는 욕락과 고행 등의 극단을 떠난 중도(中道)이며, 올바른 깨침으로 인도하기 위한 가장 합리적인 올바른 방법으로 되어 있다. 이 팔정도는 중정(中正)·중도의 완전한 수행법이므로 정도, 성인의 도이므로 성도, 8종으로 나누었으므로 지(支), 또는 분(分)이라 한다. 그 하나하나를 보면 다음과 같다.
(1) 정견(正見)
바른 견해이며, 불교의 바른 세계관과 인생관으로서의 인연과 사제에 관한 지혜이다. 그러나 아직도 이 지혜를 확립하지 않은 자에게는 바른 신앙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도 어떤 사업을 하는 경우의 전체적인 계획이나 전망이 정견에 해당된다.
(2) 정사유(正思惟)
몸과 말에 의한 행위를 하기 전의 바른 의사 또는 결의를 가리킨다. 출가자라면 출가자다운 유화(柔和:부드러운 조화)와 자비와 충정의 마음으로 사념사유(思念思惟:바르게 기억하고 바르게 생각함)하는 일이다. 일반 사회에서도 자기의 처지를 언제나 바르게 생각하고 의지를 바르게 갖는 것이 정사유이다.
(3) 정어(正語)
정사유 뒤에 생기는 바른 언어적 행위이다. 망어(妄語:거짓말)·악구(惡口:나쁜말)·양설(兩說:이간질 하는 말)·기어(綺語:속이는 말)를 하지 않고, 진실하고 남을 사랑하며 융화시키는 유익한 말을 하는 일이다.
(4) 정업(正業)
정사유 뒤에 생기는 바른 신체적 행위이다. 살생·투도·사음을 떠나서 생명의 애호, 시여자선(施與慈善:자비로 베풂), 성도덕을 지키는 등의 선행을 하는 일이다.
(5) 정명(正命)
바른 생활이다. 이것은 바른 직업에 의하여 바르게 생활하는 것이지만 일상생활을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기도 하다. 수면·식사·업무·운동·휴식 등에서 규칙적인 생활을 함으로써 건강이 증진되고 일의 능률도 향상되며, 경제생활과 가정생활이 건전하게 수행되는 것이다.
(6) 정정진(正精進)
용기를 가지고 바르게 노력하는 것이다. 정진은 이상을 향하여 노력하는 것이며, 그것은 종교·윤리·정치·경제·육체 건강상의 모든 면에서 이상으로서의 선(善)을 낳고 증대시키되, 이에 어긋나는 악을 줄이고 제거하도록 노력하는 것을 가리킨다.
(7) 정념(正念)
바른 의식을 가지고 이상과 목적을 언제나 잊지 않는 일이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도 맑은 정신으로 세상을 살아가되 무상(無常:모든 것은 항상 하지 않고 변화함)·고(苦:모든 것은 불완전하여 괴로움)·무아(無我:나라는 실체가 없음) 등을 언제나 염두에 두고 잊지 않는 일이다.
(8) 정정(正定)
정신통일을 말하며 선정(禪定)을 가리킨다. 깊은 선정은 일반인으로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일상생활에서도 마음을 안정시키고 정신을 집중하는 것은 바른 지혜를 얻거나 지혜를 적절하게 활용하기 위해 필요하다. 명경지수(明鏡止水)와 같이 흐림이 없는 마음과 무념무상과 같은 마음의 상태는 정정이 진전된 것이다.
여기서 정견은 나머지 일곱을 달성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리고 팔정도는 여덟 가지 항목이지만, 이것은 하나의 성도를 이루는 각 부분이며, 여덟 가지는 일체로서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별개의 것이 아니다. 또한 팔정도를 계(戒)·정(定)·혜(慧) 삼학과 관계지어 보면 정견과 정사유는 혜이며, 정어·정업·정명은 계이며, 정정진은 삼학에 공통되고, 정념·정정은 정과 관계지을 수 있다.
곧 부처님의 최초의 법문은 이것을 설한 것이며, 사제·12연기와 함께 불교의 기본적 근본 교의가 되는 것이다. 이 팔정도는 중생을 미혹세계인 이곳에서 깨달음의 세계인 피안〔彼岸:이승의 번뇌를 해탈하여 열반의 세계에 도달하는 일.↔치안(治安)〕으로 건네주는 힘을 가지고 있어 선(船)이나 뗏목〔筏〕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㉖ 십바라밀(十婆羅蜜) : 육바라라밀 중 덕목 · 수행 · 실천을 통칭하는데, 방편, 원, 력, 지바라밀을 추가한 바라밀로서 구체적으로 다음을 뜻한다.
(7) 방편(方便, Upaya) 바라밀 : 보살이 방편으로 여러 형상을 나타내어 중생을 제도하는 것으로, 앞의 육바라밀의 행에 의해 모든 선근(善根)을 중생들에게 돌려주어 그들과 함께 위없는 보리(菩提)를 구하는 회향방편선교(廻向方便善巧)와 일체 중생을 제도하는 구제방편선교(救濟方便善巧)가 있다.
(8) 원(願, Pranidhana) 바라밀 : 보리열반(菩提涅槃)을 얻고자 원하고, 또한 속히 成佛을 하여 일체 중생을 이익 되고 기쁘게 하고자 원하는 것이다.
(9) 력(力, Bala) 바라밀 : 모든 실상을 분별하여 택하고(思擇力), 용맹 수습함(修習力)을 말한다.
(10) 지(智, Jnana) 바라밀 : 만법의 실상을 여실하게 아는 지혜는 생사하는 이 언덕을 지나서 열반의 저 언덕에 이르는 배(船)가 되므로 지바라밀이라고 한다.
㉗ 무재칠시(無財七施) : '무재칠시(無財七施)'란 신시(身施), 심시(心施), 안시(眼施), 화안시(和顔施), 언시(言施), 상좌시(床座施), 방사시(房舍施)이다. 말 그대로 무재칠시의 뜻은 재물 없이 남에게 베풀 수 있는 일곱 가지의 보시(布施)이다.
첫째 신시(身施) : 몸으로 남에게 봉사하는 것을 뜻한다.
둘째 심시(心施) : 남에게 동정심 등 따뜻한 마음을 베푸는 것,
셋째 안시(眼施) : 눈으로 남을 볼 때 남이 평온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
넷째 화안시(和顔施) : 온화한 얼굴 표정을 통하여 남에게 도움을 주는 것,
다섯째 언시(言施) : 남에게 친절하고 따뜻한 말을 해주는 것,
여섯째 상좌시(床座施) : 남에게 자리를 찾아 주거나 양보하거나 편안하게 해주는 것,
일곱째 방사시(房舍施) : 남에게 자기의 방을 이용하게 하거나 집에 와서 쉬거나 묵게 하는 것이다.
[출처] 보살(菩薩, Bodhisattva)|작성자 칠구사
'불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수보살 (2) | 2023.10.22 |
---|---|
천태사상의 역사와 전통 (2) | 2023.09.24 |
불교(佛敎) (0) | 2023.07.16 |
반야사상 (0) | 2023.07.09 |
사찰 주련(柱聯)이야기 (0) | 2023.06.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