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식

“禪은 깨어있고 열려있는 삶 자체다” / 월암스님

수선님 2025. 1. 30. 15:05
문경 한산사 용성선원장 월암스님

경북 문경시 동로면 석항3리 한산사의 정식명칭은 ‘사부대중 수행공동체 시방총림 불이마을-한산사 용성선원’이다. ‘현대적 의미의 간화선 근본도량’이자 ‘사부대중이 함께 하는 수행공동체’이다. ‘수행이 곧 생활’을 추구하는 사부대중 수행공동체다.

선원장은 선회(禪會)를 통해 지리산 벽송사를 널리 알린 월암스님. 조계종 <선원청규>(공저)와 선수행의 교과서로 칭송받는 <간화정로> <돈오선>의 저자로도 잘 알려졌다. 북경대 철학과에서 공부, <돈오선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백양사, 화엄사, 봉암사, 정혜사, 벽송사 선원과 중국의 남하사, 진여사, 운문사, 백림사 등에서 수행했다.

벽송사 벽송선원장, 전국선원수좌회 학술위원장, 행복선수행학교 교장 등으로 간화선 대중화의 선봉에 서 있는 월암스님을 지난 8월25일 한산사에서 만났다. 백두대간 소백산 자락. 전국 오미자의 45%를 생산하는 주산지, 산약초 재배지로 이름 난 청정산야에서 스님은 부처님의 씨앗을 키우고 있다.

“禪, 지금의 고통이 실체가 없음을 깨달아

고통이 고통이 아닌 행복으로 돌려쓰는 깨어있는 삶…”

월암스님은 초등학교 5학년 시절 불교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도서실에서 도서출납을 담당한 것이 계기였을까. 방과 후면 늘 도서실에 묻혀 책 출납과 책 읽기에 몰두했다. 위인전에 특히 관심이 많이 가곤 했는데 읽고 나면 ‘사람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라는 막연한 의문과 함께 ‘이 우주의 끝은 어디인가?’라는 호기심이 생겼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는 학교보다 불교를 가까이 하게 됐다. 불교학생회를 통해 경주 분황사에서 훗날 은사가 되는 도문(道文)스님으로부터 처음으로 법문을 듣게 됐다. “나는 무엇을 생각할까. 도(道)를 생각하리라. 나는 무엇을 말할까. 도(道)를 말하리라. 나는 무엇을 행할까. 도를 행하리라. 하여 도(道)를 생각하는 마음 잠깐인들 잊으리까”라는 게송이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대장부의 기상을 확인할 수 있는 울림이 있었다. “그래. 대장부가 이 세상에 태어나 도를 생각하고, 도를 말하고, 도를 행하며 살 수 있다면 이보다 더 값진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문득 들면서 방과 후면 절에 들어와 행자생활을 했다.

그 뒤로 고교 때까지 늘 불교학생회에서는 ‘출가수행자의 길을 갈 것인가’ ‘재가불자로서 불교중흥을 위해 헌신할 것인가’ 두 패로 나뉘어 나이에 맞지 않는 논쟁까지 펼치곤 했다. 그러던 중 본격적으로 수행자의 길로 들어선 것은 군 제대 후이다.

칠불사로 가서 재출가하는 심정으로 기도한 후 속가(俗家)에 들러 일주일째 되는 날 걸망을 지고 일어섰다. “저 갑니다.” 야속한 자식을 향해 어머니는 문어귀에 기대어 서서 허공을 향해 안타까이 단 한 마디 말씀을 남겼다. “마! 가나?”

“도(道)를 생각하는 마음 잠깐이라도 놓지 말라”고 한 은사 스님의 법문과 “그냥 그렇게 가야만 하느냐(마! 가나)”라고 절규하던 어머니의 한마디는 지금도 스님의 공부를 채찍질하고 있다. 도(道)를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라는 은사스님 법문은 ‘견성성불(見性成佛)’하라는 수행으로, ‘마! 가나’라고 한 어머니의 말씀은 늘 중생의 은혜를 생각하고 ‘요익중생(饒益衆生)’하라는 교화(敎化)의 경구(經句)가 되어 항상 출가사문으로서의 자세를 돌아보게 했다.

스님은 중국유학시절 대혜선사가 수행하고 교화했던 천목산(天目山) 경산사(徑山寺) 능인선원(能仁禪院)에서 구지(舊址)를 참배한 적 있다.

그 때 폐허된 간화조정(看話祖庭)을 보고 가슴 아파하면서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한국의 간화선 중흥과 중국의 간화선풍 진작을 발원하며, 이 시대에 맞는 간화정종(看話正宗, 간화선 지침서)을 마련하는 데 일조하리라.”

이 결심은 2004년 동안거를 덕숭총림 정혜사(定慧寺)에서 나면서 구체화됐다.

도반들과 함께 정진하던 중 대중들이 쉽게 볼 수 있는 간화선지침서가 필요하다는 수좌(首座) 설정스님(현 방장) 말씀에 용기를 내어 해제철에 틈틈이 원고를 쓰게 됐다. 그 다음해 동안거. 능인선원과 스님의 인연은 지중했다. 그동안 써 놓은 원고를 정리하여 ‘간화선의 역사와 사상’이라는 교재를 만들어 능인선원 대중들에게 3일간 강의를 하게 됐다.

대중들의 호응은 계속돼 스님은 강의로 그칠 수 없어 결국 <간화정로(看話正路)>라는 이름으로 책 냈다. 스님은 이 책의 서문을 통해 청소년시절 불교와의 인연을 이야기하며 ‘간화선 성립의 배경’에서 ‘이론과 수행’ ‘현재 간화선풍에 대한 반성’에 이르기까지 간화선에 대한 모든 것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냈다.

“한국불교가 새 시대 종교로

살아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친절’해야 한다”

“선(禪)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단이나 깨달은 이후의 경지로 국한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선(禪)을 적멸(寂滅)의 경지를 얻는 것으로 착각한다든가, 신비한 영적 체험을 경험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외적 초월성에 초점을 맞추어 현실을 도외시하고 적정한처(寂靜閑處)에 안주하는 것 또한 올바른 선(禪)이 아니다”는 것이 대전제다.

“선(禪)은 지금 여기 고통의 현실 속에서 그 고통이 실체가 없음(空)을 직하(直下)에 요달(了達)하여 고통이 고통이 아닌 행복으로 돌려쓰는 깨어있고 열려있는 삶 자체다. 그래서 조사선(祖師禪)의 핵심은 한 생각(一念)이 번뇌망념(煩惱妄念)을 보리정념(菩提正念)으로 돌려쓰는 일념해탈(一念解脫), 일념성불(一念成佛)에 있는 것이며 내가 숨 쉬고 있는 바로 여기에서 주인이 되어, 주체적으로 해탈의 진실세계를 살아가는 것을 임제선사는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이라고 말했다”며 “이러한 조사선의 정신이 간화방법론으로 계승되어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님은 화두의 참구를 통해 안심입명(安心立命)의 해탈을 위한 수심의 정로(修心正路)를 제시한 대혜선사의 말을 소개하며 간화선의 줄기를 짚어갔다.

“간화선 역시 수단이나 방법론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깨달은 자의 경계만을 설하는 것도 아니다. 순간마다 화두(話頭)로 깨어있고 무심(無心)으로 열려 있어, 전도망상(顚倒妄想)이 바로 진정견해(眞正見解)가 되는 자유의 삶이 바로 간화선의 지향점이다.

곧 화두참구를 통해 본래 없음을 체탈하여 구경의 깨달음으로 안심입명하는 것이 간화종지이다. 화두참구의 수행 자체가 구경각(究竟覺)은 아니지만 또한 구경각을 떠나 있는 것도 아니다. 화두일념은 깨달음의 현현(顯現)이며, 깨달음 또한 화두일념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두 참구의 의정이 간화선 수행의 관건이 되는 것이다.”

사진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 ‘불이마을’은…

‘수행과 생활’ 일치하는 사부대중 수행공동체

3.1독립선언의 33인 가운데 한 분이기도 한 용성스님의 사상을 그대로 이어받은 수행공동체로 선농겸수(禪農兼修), 선교일치(禪敎一致)를 근본으로 삼는다. 중국 송대(宋代)의 간화선이 교학의 바탕에서 융성하였듯이 이곳 용성선원도 교(敎)를 바탕으로 하는 선(禪)수행을 기본으로 하는 것은 물론이다.

반교반선(半敎半禪), 반농반선(半農半禪)으로 선교(禪敎)가 결국 둘일 수 없으며, 수행과 생활, 수행과 인격이 일치하는 삶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고통 받는 중생이 곧 부처’ ‘사람이 부처’라는 진리가 모토로, 가까이서 찾으면 ‘경허-만공-용성스님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생활 자체가 수행으로 승화될 수 있는 삶, 그런 삶으로 생을 회향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 한다”는 취지다.

월암스님은 “용성스님을 비롯한 역대 조사 스님들이 늘 ‘친절(親切)’을 강조했다”고 말한다. ‘목표한 바에 사무치게’ ‘상대의 마음에 사무치게’ 수행하는 것이 바로 친절의 본 의미라는 것이다. “일체중생을 부처님처럼 섬기는 것이 곧 ‘친절’의 의미로 이는 승가, 나아가 불가의 용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승가와 재가, 사찰 안팎이 온전히 ‘상구보리 하화중생’ 곧 ‘요익중생’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하며 “한국불교가 불교 본연의 도리를 다하고 새 시대의 종교로 살아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친절해야’ 한다”는 것이며 ‘최소한 깨달은 만큼 실천하자’는 의미이다.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50, 60대 퇴직이후 30~40여년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이 이 공동체가 풀어가야 할 화두라 할 수 있다. 월암스님은 이들을 위해 먼저 출가문호를 크게 열었다. ‘반승반속’ ‘반절반가’. 노후의 삶을 절에서 살 수 있도록 만들자, 육체적 정신적 요양시설이자 수행도량으로 한산사 용성선원을 부처님품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2년 남짓한 기간이지만 스님들을 위한 용성선원과 재가자를 위한 휴정선원을 비롯한 도량 유지에 필수적인 당우 10채는 이미 완공돼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비구니스님과 외국인을 위한 국제선원을 완공해 명실상부한 ‘선원총림’을 만드는 것이 불이마을 한산사 용성선원의 최종 완성도이다.

매월 둘째 토~일요일 열리는 ‘안심법회’ ‘수행나누기’, 지금은 없어진 전통승가의 ‘입실문신’ 등 프로그램 또한 눈길을 끈다. 수좌들과 조실 스님간의 선문답만 같던 ‘입실문신’을 재가자들의 수행을 북돋우기 위해 선원장 월암스님이 담당하고 있다. 선원장이자 심리상담사로서 역할이다.

오전 경전공부, 오후 울력과 참선 수행으로 이어지는 템플스테이는 일상적으로 운영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www.hansansa.org)

[불교신문 2754호/ 9월28일자]

문경=김선두 기자 sdkim25@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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