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공간

경허스님의 오도송을 해석해 봅니다. "콧구멍이 없는 소"가 무엇인가?

수선님 2026. 5. 10. 12:35

홀연히 콧구멍이 없다는 말을 듣고

문득 삼천세계가 모두 내 집임을 깨달았네

유월 연암산 아랫길에

들사람이 일없이 태평가를 부르는구나!

 

해석 :

경허스님이 화두를 들고서 화두와 싸움을 할 때에, 시자로 있던 동자승이 아랫 마을에 갔다가 들은 "스님이 신자분들의 시주를 마음대로 쓰다가는 죽어서 소로 태어난다고 하니, 그 말을 들은 스님이 소로 태어나면 어떻게 합니까? 하면서 걱정을 하는데,

 

이때 마을에서 이 내용을 들러주던 거사님이 "소로 태어나더라도 콧 구멍이 없는 소"로 태어 나면 된다고 하였는데, 그 말을 들은 동자스님은 절에 돌아와서, 경허스님에게 "콧구멍이 없는 소"가 무엇이냐고 물어 본 것입니다.

그 질문을 받는 즉시 경허스님의 의심이 깨어지면서 진리의 눈이 활짝 열린 것입니다.

 

진리의 눈이 열리고 보니, 삼천대천 세계가 다 본성(불성)이 만들어 놓은 세계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진리를 모를 때에는 육체를 나라고 합니다.

 

그래서 남에게 자기를 소개할 때에는 나의 키는 180CM요. 나는 서울 000 대학을 졸업해서 지금은 어느 회사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고 소개를 합니다.

그러나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우리의 육체가 아니라, 그 속에 들어있는 영원히 죽지 않는 불성(기독교 영)을 "나"라고 표현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진리를 깨닫고 나서, "나는 진리요, 나는 생명이요, 나는 길이다"고 하신 것입니다. 경허스님도 갑자기 진리의 눈이 열리어서 삼천대천 세계 즉 온 세상을 보니, 그 모든 속에는 영원히 죽지 않는 불성(나)이 있더라는 겁니다. 이것은 누구든지 처음 진리의 눈이 열리면 이런 세상을 반드시 보게 됩니다.

 

홀연히 콧구멍이 없다는 말을 듣고

문득 삼천세계가 모두 내 집임을 깨달았네

 

 

다음 문장을 보겠습니다, 경허 스님의 오도송입니다.

유월 연암산 아랫길에

들사람이 일없이 태평가를 부르는구나!

 

콧구멍이 없는 소 즉 불성은 우주 전체 없는 곳이 없이 다 존재를 합니다. 우주의 모든 것이 다 불성에서 나온 것입니다. 파도가 바닷물의 다른 모습이듯이, 온 만물도 불성의 다른 모습입니다.

 

경허스님이 깨닫고 보니, 그때가 시기적으로 6월달이었는가 봅니다. 6월달 수덕사가 있는 연암산 아래에서 농부들이 농사를 하면서 "태평가"를 부르는데, 태평가의 소리가 나오는 그곳이 바로 "콧구멍이 없는 소"라는 것입니다.

육체를 자기 자신인줄 알 때에는 입에서 태평가의 소리가 나왔는데. 진리의 눈이 열리고 보니, 육체는 진정한 나가 아니라. 그 속에 든 영원한 불성이 나라는 겁니다.

 

태평가의 소리가 바로 그 불성에 나오더라는 겁니다. 예수님은 "콧구멍이 없는 소"라는 말 대신, "진리를 깨달은 인자는 머리둘 곳이 없다" 것으로 표현을 하였습니다.

 

진리를 알지 못하는 새나 여우는 몸을 쉴 곳이 있습니다. 그래서 "새에게는 새집이 있고, 여우에게는 굴이 있지만. 진리를 깨달은 인자에게는 머리둘 곳이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실제 깨닫고 보면, 자신의 머리가 텅 비어 있는 것을 볼 것입니다. 자기의 육체가 텅 비어 있는 것을 보실 것입니다.

육체가 없는 것이 아니라, 육체가 있어도 항상 텅 비어 있는 것으로 보게 됩니다. (십우도에서 나를 잊는 사람처럼 되는 경지입니다)

 

위 사진을 보면 나무 그림자가 물 속에 비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깨닫고나서, 자신의 참 모습이 텅 비어 있는 모양이 없는 거울을 발견하게 되면, 저 사진은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의문이 있으면 항상 물으시기 바랍니다.

 

 

 

 

 

 

 

경허스님의 오도송을 해석해 봅니다. "콧구멍이 없는 소"가 무엇인가?

홀연히 콧구멍이 없다는 말을 듣고 문득 삼천세계가 모두 내 집임을 깨달았네유월 연암산 아랫길에 들사람이 일없이 태평가를 부르는구나! 해석 : 경허스님이 화두를 들고서 화두와 싸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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